생활얘기2020. 2. 23. 04:19

우리 집엔 세 식구가 살고 있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각자가 스스로 식사를 해서 먹는다. 무엇을 해먹을까 생각하면서 찬장 속 식품통을 뒤져 본다. 

그런데 알지 못하는 글자도 섞여 있는 과자봉지가 눈에 뛴다. 오른쪽 상단에 "맛있다"가 보인다. 내가 산 적이 없는데 누가 이걸 샀을까... 
  

"맛있다"를 로마자로 표기한 듯한 "Masita"가 보인다. "맛있다"가 없다면 "Masita"를 "마시타 혹은 마시따"로 읽어 한글을 쉽게 떠올릴 수 없겠다. 내가 알고 있는 "맛있다"의 로마자 표기는 "masitda" 또는 "masitta"다. 한글 서체도 좀 세련되지 않아 보인다. 영어로 한국산 해조류(Korean seaweed)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적어도 한국하고 관련이 있는 듯하다.  

궁금증이 일어났다. 뒷봉지를 자세히 읽어보니 태국-한국 회사가 한국산 해조류로 태국에서 제조해 유럽으로 수출한 제품이다. 자세한 식품 내용물은 핀란드어, 스웨덴어, 에스토니아어, 라트비아어 그리고 리투아니아어로 설명되어 있다. 
 

거실에 있는 유럽인 아내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내가 이걸 안 샀는데 누가 샀지?"
"내가 슈퍼마겟에서 샀지."
"어떤 것이지 알고 이걸 샀나?"
"한국어 단어가 눈에 들어와서 샀지."
"뭐지 알아?"
"알지. 한국에서 먹어본 맥주 안주잖아."
"우와, 이제 여기 유럽 리투아니아에서도 바삭바삭 구운 해조류 안주를 살 수 있다니 놀랍다!!!"


내친 김에 아내와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셔본다. 
 

태국에서 제조된 한국산 안주로 리투아니아산 맥주를 마시니 둘 다 평소보다 맛이 더 좋은 듯했다. 이날 집에 있는 캔맥주도 한 개뿐이고 안주도 한 봉지뿐이었다. 아내도 아쉬워하고 나도 아쉬워 했다. 그렇다고 가게에 갈 수도 없었다. 리투아니아는 오후 8시부터는 상점에서 주류 판매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한 봉지만 사지 말고 여러 봉지를 사오지 않고서 말이야."
"내가 이렇게 바삭바삭하고 고소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안주인 줄을 어떻게 알 수 없잖아."
"다음에 슈퍼마겟에 가면 여러 봉지를 사오자. 유럽 현지인 손님들한테도 한번 맛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7. 4. 10. 05:41

최근 뜻하지 않게 한국식품 두 가지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는 파래자반이고, 다른 하나는 우동이다. 이것을 한국식품 가게가 아니라 리투아니아 빌뉴스 현지 큰가게(슈퍼마켓)에서 구입했다.

큰가게에서 물건을 산 후 아내가 잠시 어디를 다녀왔다. 저기 오는 아내의 손에 뭔가 지어져 있었고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뭘 또 샀는데?"
"여기 한국식품! 파래자반."
"당신이 어떻게?"
"오는 데 한글이 눈에 확 띄었어. 밥에 뿌려먹으면 맛있잖아."


다른 날에도 함께 큰가게를 갔다. 
과일판매대에 있는 데 아내가 또 손에 뭔가를 들고 왔다.

"이번에는 뭘?"
"봐. 우동이야!"
"아, 이건 대박이다. 내가 좋아하는 면이다. 한국인 내 눈보다 어찌 당신 눈에 더 잘 보이나?"
"그러게. ㅎㅎㅎ"


굵은 우동면을 보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꼬춧가루를 조금 뿌려 즐겨 먹던 한국에서의 우동이 떠올랐다. 


일반 큰가게에서 남편이 한국인이라 한국식품을 사준 아내에게 감사의 표시로 엉성하게나마 우동을 끓여 대접했다. 막상 사진을 찍고보니 여러 가지 야채를 더 넣어 끊일 것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이날 모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했다고 좋아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