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3. 7. 6. 05:57

그 동안 나를 담당했던 의사 3명이 다니는 병원을 그만두었다. 임금이 더 높은 서유럽 나라로 이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리투아니아에서 거의 모든 치료와 진료는 가정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일전에 치료를 위해 가정의사 진료를 예약하기 위해 관할 종합진료소를 찾았다.

그런데 담당 가정의사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도 예쁘고 자상하게 환자를 대해주었는데 몹시 아쉬웠다. 예전에는 해당 거리를 담당하는 의사에게 무조건 자동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이제는 환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다. 

* 내가 다니는 빌뉴스 중앙 종합진료소

큰딸이 자신의 가정의사가 젊고 아주 씩씩하게 일한다고 소개했다. 딸의 이름을 말하고 아버지라고 소개하니 금방 딸을 알아보았다. 덕분에 초면인데도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진료소에 이런 의사도 있구나"라는 첫 인상을 받았다. 

나이가 벌써 50살이 넘었다고 하니 가정의사는 더욱 의욕적으로 대해주었다.  

"자, 이제부터 나와 함께 종합검진을 해보도록 하자."

가정의사는 간호사에게 필요한 모든 검사와 전문의 방문를 위한 일정을 잡도록 했다. 받아보니 빠른 시일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해 약 2개월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 정밀 혈액 검사
- 대소변 검사
- 심전도 검사
- 영양사 방문
- 비뇨기과 전문의 방문
- 안과 전문의 방문
- 내분비 기관 전문의 방문 

이렇게 해서 어제는 비뇨기과 전문의를 방문했다. 정년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한 나이가 지긋한 의사로 보였다. 

"어디서 왔어요?"
"남한에서 왔어요."(이럴 때마다 한국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말하면 분명히 '남쪽이냐 아니면 북쪽이냐'고 물어볼 것이 뻔하다.)
"몇 해 전에 서울에 갔어요."
"그래요? 얼마나 있었어요?"
"5일 동안 있었는데 한국이 참 좋았어요. 경치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디 아파서 왔어요?"
"아니요. 50살이 넘었으니 가정의사가 종합검진을 받아라고 일정을 잡아주었어요."

이렇게 대화를 하다보니 의사와 환자간 거리가 사라지는 듯 했다. 한국에서 받은 좋은 인상 덕분인지 의사는 정성스럽게 신장 등 관련 신체부위를 초음파로 검사해준 것 같았다. 검진을 마치고 비뇨기과 전무의실에서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국 사람들이 심어준 좋은 인상 때문에 외국 땅 리투아니아에서 내가 그 덕을 보는구나. 나도 내가 받을 생각은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로 인해 오늘 나 경우처럼 다른 사람이 호의를 입을 수도 있겠다.'

비뇨기과 전문의의 호의를 침소봉대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물론 의사는 병과는 관련없는 어떠한 배경도 고려하지 않은 채 환자를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해 성대 결절 검사가 떠오른다. 종합진료소 전문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의사는 아무런 성대 결절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 대학병원 종합진료소를 찾았다. 이 의사도 아무런 결절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우연히 대회가 이어졌다.

"리투아니아에서 하는 일은?"
"지금 빌뉴스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요? 나도 같은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동료네요. 어디 한번 카메라로 더 세밀하게 성대를 살펴봅시다."

이렇게 해 결절을 찾았고,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아뭏든 의사가 한국에서 받은 좋은 인상으로 한국인인 내가 오늘 호의적으로 비뇨기과 진료를 잘 받았다. 리투아니아 의사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미지의 한국인들에게 감사드린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9. 20. 06:03

지난 여름 어느 날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중심가에 있는 종합진료소를 다녀왔다. 당뇨증세가 있어 진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혈액검사를 마치고 담당 전문의 진료실을 찾았다. 진료실 앞 대기석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 리투아니아 빌뉴스 중앙 종합진료소
 

"어느 분이 마지막인가요?"라고 물었다.
"간호사가 호명하는 대로 들어가요."라고 안경 쓴 사람이 답했다.

그 분 옆에 앉았다. 영어로 된 잡지를 읽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진료를 받았는데 오늘은 검사결과만 전해주기만 하면 되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금 후에 그 분이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리투아니아어를 잘 해요?"
"아니요. 아주 조금밖에 못해요."
"리투아니아에 온지 얼마나 되어요?"
"10년."
"리투아니아에 50-60년 산 사람들도 리투아니아어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리투아니아어 정말 어려워요. 격변화도 많고, 강조음도 불규칙적이고......"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아요."

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칭찬했다. 몇마디 현지어를 한 것을 가지고 칭찬을 받으니 괜히 쑥쓰러웠다.  잠시 후 안경 쓴 할머니가 다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남이요? 북이요?"
"남이요."
"한국은 여름에 안 더워요?"
"덥죠"
"습하지는 않아요?"
"리투아니아는 건조하지만 한국은 정말 습해요. 여름은 리투아니아가 정말 좋아요."

"나는 미국 뉴욕 맨하턴에서 16년 살았어요."
"그럼, 이제 완전히 리투아니아로 되돌아온 것인가요?"
"그래요. 뉴욕은 너무 복잡해요. 도시내 이동에 하루가 다가요. 여긴 모든 것이 가까이에 있어요."
"맞아요. 서울도 마찬가지요."
"북한 사람들이 먹을 것도 없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그래요."
"통일은 언제 될까요?"
"그렇게 바라지만 딱 언제 된다고 말할 수가 없네요." 

낯모르는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부분 마지막 대화 사항은 이렇게 북한과 통일로 흘러간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