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13. 4. 18. 06:33

4월 17일 대처 영국 전 총리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영국 여왕이 윈스턴 처칠 전 총리 장례식 이후 55년 만에 처음으로 정치인의 장례식에 참석할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달랴 그리바우스카이테 여성 대통령이 초청 받아 장례식에 참석했다.


리투아니아인들 사이에 화제가 된 것은 바로 대통령이 타고 간 비행기이다. 달랴 그리바우스카이테 대통령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타고 가는 비행기 안에 찍은 사진을 자신의 사회교제망 페이스북에 올렸다. 비행기는 전용기도, 전세기도, 군용기도 아닌 바로 소시민들이 애용하는 저가 항공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저가 항공 노선 위즈에어(Wizzair)가 선명하게 나온 사진이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실에 따르면 대통령은 편리하고 싸고 빠른 이유 때문에 저가 항공 비행기를 선택했다. 빌뉴스에서 런던까지 왕복 비용이 군용기는 5만 리타스(약 2천5백만 원), 전세기는 최소 15만 리타스 (7천5백만 원)이다. 하지만 저가 항공 왕복 비용은 3천 리타스(백5십만 원)이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살아가는 공무원이라면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리투아니아 달랴 그리바우스카이테 대통령의 이런 선택은 귀감이 될만하다. 지나치게 품위나 체면을 유지하기 세금을 과하게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되지 않을까...... 

지난 1월 헝가리에서 고위직을 역임하고 정년 퇴임한 에스페란티스토를 한국에서 만났다. 그는 이탈리아 출장을 갔는데 규정상 5성급 호텔에서 자야 했다. 하지만 5성급 호텔 대신에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을 더 가까이에서 접하기 위해 민박했다. 돌아와 남은 여비를 돌려주자 칭찬 대신 규정을 어긴 데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이런 고위공직자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0. 6. 30. 10:37

6월 26일 리투아니아 전직 대통령인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77세)가 서거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현대 정치사에가 가장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 중 한 명이다. 1988년 리투아니아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었고, 1989년 리투아니아 공산당을 소련 공산당으로 분리시켰다.

이는 리투아니아 독립운동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그는 국회의장, 대통령, 국무총리를 두루 역임했다. 지난 20년 세월 동안 그는 무려 12년 동안 리투아니아 지도자로 일하면서 리투아니아의 유럽연합과 나토 가입에 큰 기여를 했다. 어제 우리 가족은 에스페란토 친구들과 함께 그의 시신이 임시 안치된 대통령궁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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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문행렬이 길 것으로 예상했지만, 여름휴가철이라서 그런지 줄을 서지 않고 쑥쑥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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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국기 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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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신이 임시 안치된 대통령궁 후원에 있는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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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옆에는 그의 추모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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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당(사회민주당) 소속의 사람들이 조문을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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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궁 어귀의 모습이다. 한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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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조문행렬로 약 2시간을 예상했으나, 단 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일찍이어서 이렇게 레스토랑에서 담소를 한 동안 나누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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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8. 5. 9. 06:57

지난 5월 7일 오전 휴대전화기로 쪽지가 들어왔다. 내용인즉 빌뉴스 에스페란토 동아리 회원의 아버지가 돌아가 함께 조문을 가자는 것이었다. 평소 우리 부부와 잘 아는 사람이라 같이 가려고 했으나, 아내는 학교 일 때문에 혼자 가게 되었다. 저녁 6시 시신이 안치된 성당 앞에서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 여섯 명이 되었다.

조화는 한 친구가 퇴근하는 길에 사왔다. 국화로 장식된 꽃바구니를 30리타스(약 13500원)에 샀고, 각자 5리타스를 내어 값을 치렀다. "한국 같으면 내가 살께~"라고 할 법 하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대개 참가 인원수로 공동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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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의 망자가 부활한 듯한 꽃밭묘지

일반적으로 조문객들은 각자 꽃이나 화관을 가져온다. 하지만 화관 대신 조의금을 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친구들이 말한다. 이날 온 친구들은 공동 꽃바구니 외에 각자 성의껏 조의금을 냈다. 모두 준비한 봉투가 아니라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한 친구가 그 돈을 모아서 봉투 하나에 다 넣었다.

한국에선 각자 하얀 봉투 앞면엔 부의(賻儀)라고 적고, 봉투 뒷면엔 자신의 이름을 적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이렇게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은 다 같이 한 봉투에 넣어 선물한다고 한다. 누가 얼마를 내었는지 상주는 알 수가 없다. 나중에 상주가 이에 상응하게 보답할 수가 없게 되어서 좀 아쉽지만, 내가 낸 부의금 액수 때문에 쑥스러워하거나 상주의 나중 대응에 섭섭해 할 필요가 없다.

이날 이름 없이 다 함께 모은 조의금 봉투에서 상 없는 부조의 미를 읽을 수 있었다.

한편 조문객을 위한 접대는 없었다. 한 시간 동안 조문하는 동안 눈물을 훔치는 사람은 있어도, 소리 내어 곡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용한 가운데 사망자를 추모하고 안식을 기원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