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에 해당되는 글 471건

  1. 2013.10.04 일흔 넘었지만 한국어는 꼭 배워야겠다 1
  2. 2013.09.30 멋진 아빠, 자기 두 어깨가 그네 지지대
  3. 2013.09.30 딸과 함께 아파트 실내에 텐트 치고 자보니 2
  4. 2013.09.24 원 디렉션에 홀딱 반한 딸에 대한 상반된 견해 4
  5. 2013.09.23 피자집 이쑤시개 쓸쩍하다 발칵된 딸에게 한 마디
  6. 2013.09.16 3주만에 2.5cm나 키 커진 초등 딸아이
  7. 2013.09.13 딸아이, 해외 벽광고 보더니 '대한민국' 외치네 2
  8. 2013.09.09 딸아이 손 안에서 잠드는 햄스터 귀여워
  9. 2013.09.04 학교 가고 싶어하는 딸아이 이유를 들어보니 4
  10. 2013.09.03 초등 딸, 자기 방 장식과 배치 혼자 구상 1
  11. 2013.08.22 아빠, 신기한 과학 놀이 보여줄게 4
  12. 2013.08.14 초등 딸, 컵송으로 친구와의 우정 오래 간직 4
  13. 2013.08.08 초등 5학년 딸아이의 즉석 영어 작문 실력은?
  14. 2013.07.29 딸아이, 땋은 머리로 지친 몸을 가쁜하게 앞으로 1
  15. 2013.07.09 아내가 없으니 컵라면 봉지가 자꾸 쌓여간다
  16. 2013.06.29 아내 없이 혼자에 대한 외국인의 조언에 反해
  17. 2013.06.27 아빠를 사랑하되, 아빠를 사랑하지 마 1
  18. 2013.06.17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선물 대신 탁구 놀이 2
  19. 2013.05.13 제일 좋은 학교에 못가더라도 러시아어 선택 3
  20. 2013.05.13 딸의 어려운 숙제 문제로 부부 싸움날 뻔
  21. 2013.05.09 선인장 가시로 물 소리 내는 딸아이 4
  22. 2013.05.07 손가락 다쳐 아프다면서 좋아하는 딸의 이유
  23. 2013.04.24 난방 끊어진 봄철 방안 텐트에서 따뜻한 생활 2
  24. 2013.04.23 이마 흉터 수술을 안 하겠다는 초등 딸의 이유 4
  25. 2013.04.17 미역국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고 속인 이유 1
  26. 2013.04.09 사진 만화 영화 만들던 딸의 문제 해결에 미소
  27. 2013.04.05 컴퓨터 대신 바느질 재미에 빠진 딸아이
  28. 2013.03.29 페이스북 친구 신청했다가 퇴자 맞아보니
  29. 2013.03.25 한국인이라서 놀림 받은 딸, 그나마 다행 4
  30. 2013.03.05 햄스터를 야생에 놓아두면 매가 잡아먹잖아
생활얘기2013. 10. 4. 06:42

지난 달 우리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 한 분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다른 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둘이 자매로 70대 중반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연해주에 살다가 중앙 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다. 언니는 폴란드로 유학온 후 남게 되었고, 동생은 카자흐스탄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해 자녀가 살고 있는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집에서는 한국어로 했지만, 학교 생활 등으로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러시아어가 되었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이 분들은 딸아이 요가일래를 칭찬하고, 아주 부러워하고 한편 후회스러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가일래가 아직 어리지만, 아빠와는 늘 한국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 두 자매는 각기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당시는 러시아어가 최고였으므로 소련에서 살려면 자녀가 러시아어를 잘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나?"
"아, 가르치지 않고 그냥 모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한국말만 하고 있어요."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나?"
"말하기만 하고, 쓰기와 읽기는 완전 초보 단계입니다."
"혹시 책은 없나?"
"딸아이 책장에서 한번 찾아볼게요."

이렇게 한국어 초급 쓰기와 읽기 책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보자 두 자매는 아이처럼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복사를 부탁했다. 집에 가서 자기들도 꼭 공부하고, 아들과 딸은 늦었지만 손자들에게 꼭 공부시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배움의 의욕에 가득 찬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국인은 역시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봐, 할머니는 이제라고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너는 쉽게 알았잖아. 아빠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이제부터라도 한국어 읽기와 쓰기에도 좀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노력할게."    


Posted by 초유스
재미감탄 세계화제2013. 9. 30. 07:08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마당이나 집 안 어딘가에 그네가 있을 법하다. 아이들이 그네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네가 없다면 아빠들은 그네타기를 위해 기꺼이 자기 다리를 내줄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아빠 다리를 꼭 껴안고 흔들흔들 재미나게 놀 것이다.

폴란드 누리꾼들 사이에 최근 화제가 된 사진 한 장이다. 봐아하니 중국인 아빠 같다. 의자를 두 개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자기 몸을 그네 지지대로 활용하고 있다. 
 

큰 각도로 왕복해서 그네를 탈 수 없지만, 딸아이가 아빠의 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듯하다. 이 사진을 보니 우리 집 발코니에 있는 그네가 떠올랐다.

딸아이가 두 살이었을 때 이 그네를 매달았는 데 아직도 있다. 얼마 전 이제 더 이상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 그네를 떼내자고 하니 딸아이가 극구 반대했다. 

"내 추억이 있는 데 떼내지마!"  


이제 곧 12살이 되는 딸아이가 언제까지 저 그네를 발코니에 둘 지 궁금하다. 옛날처럼 온 힘을 다해 그네를 탈 수는 없겠지만, 앉아서 흔들흔들 상념에 젖을 수는 있겠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9. 30. 06:13

이제 가을 초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기온은 겨울이다. 이번 주 내내 바깥 낮 온도가 영상 5도 내외이다. 밤에는 영하 2-4로 떨어진다. 아직 중앙난방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양말을 두 컬레 신고, 내복과 바지를 입고, 스웨터 두 벌을 입어도 무릎과 손등에는 한기를 느낀다.


이번 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온기를 좀 그 더 느끼게 위해 조카가 쳐준 천막이 떠올랐다. 딸아이에게 텐트를 치자가 제안했다. 때 마침 아내가 주말에 집을 비웠다. 지방 도시에서 합창단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토요일 떠났다.

여름철 가족과 함께 호수 등 야외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4인용 텐트를 3년 전에 구입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한 반도 이를 사용해보지 못했다. 이유는 여름철 관광안내사 출장을 다니느라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빠 딸, 우리 텐트 치자."
"와, 좋은 생각이다."
"오늘 우리 텐트에서 따뜻하게 잠을 잔다."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딸과 함께 협동하면서 텐트를 쳤다. 생각보다 텐트치기가 어렵고 힘들었다. 자주 사용해봐야 숙달될 텐데 말이다. 


막상 내 방에 텐트를 쳤지만, 공간을 많이 차지했다. 또한 기대한 만큼 텐트 내부가 따뜻하지 않았다. 4인용 텐트는 난방없는 환절기엔 별 다른 효과가 없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도 주말 딸과 함께 무엇인가 한 두시간 공동으로 작업했다는 것에 뿌듯한 마음이 든다.

딸과 함께 텐트 속에서 잠을 자고 일찍 일어난 후에 내 이불을 딸 이불에 덮어주었다. 일요일 오전 10시에 일어난 딸아이가 "아, 정말 따뜻하게 잘 잤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웃음이 맴돌았다. 

'아빠 이불 때문이겠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9. 24. 07:11

딸아이가 자람에 따라 방 벽면이 포스터나 사진으로 장식이 되고 있다. 더 어렸을 때에는 텅 비어 있었는데 만 10살 때부터 가수들 사진이 붙여져 있다. 강남스타일이 한창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을 때에는 싸이 포스터가 있었다. 

그런데 지난 여름부터 딸아이의 우상이 바꿨다. 새로운 우상은 원 디렉션(One Direction)이다. 나도 이때 처음 알았다. 영국인 리암 페인, 제일 말리크, 해리 스타일스, 루이 톰림슨과 아일랜드인 나일 호란으로 구성된 5인조 남성 밴드이다. 


아직 개봉되지도 않았던 기록 영화 "One Direction: This is us"를 보겠다고 난리를 쳐서 한 달 전에 표를 사기도 했다. 영화를 본 이후 원 디렉션에 홀딱 빠졌다. 그 후 방 네 벽면이 원 디렉션 포스터로 채워졌다. 잘 때 머리 쪽이 있는 벽면에도, 책상 앞 벽면에도, 전등 스위치가 있는 방문 벽면에도, 방문 벽 반대편 벽면에도, 심지어 책상 위에도 원 디렉션이다. 원 디렉션에 너무 집착하는 듯해서 걱정스럽다.


"아빠, 난 원디렉션하고 결혼할 거야."
"정말? 옛날에는 한국 사람하고 결혼한다고 했잖아."
"그건 옛날이지."
"아직 어린 데 벌써 결혼할 생각하면 너무 빠르다."
"친구들도 벌써 정했어."
"아빠, 저기 원 디렉션 중에 누가 제일 잘 생겼어?"
"글세, 왼쪽에서 두 번째."
"바로 그 사람이야."
"이 세상에 수 많은 언니들이 너처럼 저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어할 거야"
"알아. 하지만 내가 이길 거야."
"어떻게?"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내가 저 사람보다 더 인기있는 사람이 될 거야."
"그래? 그럴 마음이라면 앞으로도 계속 그 마음을 가져도 되겠다. 네가 인기 있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저 사람이 너를 쳐다볼 확률이 높지."  

한편 엄마도 걱정스러워했다. 

"우린 네가 너무 원 디렉션에 관심을 두는 것이 싫어."
"왜?"
"부모나 공부 대신에 네가 너무 원 디렉션에 푹 빠지기 때문이다."
"난 이제 아이가 아니고, 점점 자라고 있어.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엄마 어린 시절에는 모든 엄마 또래 아이들이 리투아니아 농구 영웅 사보니스의 아내가 되길 꿈꾸었다. 그런데 봐! 아니잖아. 아내는 딱 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제 12살 네가 그런 꿈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그 허황된 꿈을 버리고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이 좋겠다."

아내와 딸의 대화를 전해듣고 아내에게 말했다.

"어느 하나를 두고도 부정적으로 조언할 수 있고, 긍정적으로 조언할 수 있다. 비현실적인 꿈이라도 어떻게 활용하는냐에 따라 좋은 결과를 나을 수도 있으니까 우린 앞으로 그렇게 딸아이를 키우자."
"당신 말이 맞지만, 그래도 허황된 꿈은 일찍 깨우쳐주는 것이 내 경우를 봐서는 좋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가르치면서 딸아이가 스스로 터득해 나가게 하는 좋겠다."
  
일반학교에서 돌아온 후 잠시 쉰 딸아이는 음악학교에 가려고 현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딸아이 귀에는 MP3 수신기가 꽂혀 있었다.

"너무 자주 노래를 들어으면 재미 없잖아. 오늘은 MP3 플레이어를 가지고 가지 마라."
"안 돼. 원 디렉션 음악을 들으면 내 마음이 좋아져." 
"그러면 아빠 말도 조금 들으라. 알아서 적당하게 들어라."

사실 딸을 둔 어느 아빠들처럼 나도 모질지가 못하다. "음악없이 살 수 없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딸아이, 만약 혹시 훗날 가수가 된다면 듣는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감을 주는 가수가 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9. 23. 06:12

어제 일요일 비가 오지 않을 같아서 점심 후 아내가 부추겨서 식구 셋이가 함께 도심으로 산책을 나갔다. 얼마 후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정형적인 가을비다. 집으로 돌아올까, 아니면 가게에 들러서 올까를 고민하게 하는 중간지점이었다.

이왕 집 밖에 나왔으니 잠시 후에 비가 그칠 기대로 가게까지 가기로 했다. 가게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나니 비가 조금 더 굵게 내렸다. 이때 선택하기에 딱 좋은 것은 찻집이나 식당이다. 가게 앞 피자집이 눈에 확 들어왔다. 

피자집 할인카드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아내의 말은 아버지와 딸의 단결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피자를 다 먹은 후 영수증을 기다리는 동안이었다. 딸아이가 이쑤시개 네 개를 잠바 주머니에 쓸쩍 넣는 것을 보았다.


"아빠 딸,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뭔데?"
"바로 지금처럼 네가 남의 것을 함부로 가져가는 것이야!"

딸아이는 "아빠가 그런 말을 하니 내 가슴이 콩당 깜짝 놀랐잖아!"라면서 잠바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던 이쑤시개를 식탁 위 통 안으로 다시 넣었다.

"내가 사용하지 않은 이쑤시개 네 개를 가져가고 싶었어. 하나는 엄마, 하나는 나, 하나는 아빠 것이지. 그리고 하나만 더 가졌다. 그런데 아빠는 왜 호텔에서 샴푸(머리비누)를 가져오는데?"

여름철 발트3국 관광안내사로 일하면서 투숙한 호텔에서 샴푸를 가져오곤 했다. 어릴 때부터 비누로 머리를 감은 데 익숙해져 샴푸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딸아이는 아빠의 행위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아빠는 아빠 몫으로 나온 것을 사용하지 않고 가져오는 것이고, 너는 필요 이상으로 더 가져가려고 하니까 문제이지."
"알았어. 안 가져갈게."

* 딸아이는 다시 이쑤시개를 통 안에 넣었다.

피자집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는 말했다.

"사실 내가 이쑤시개 여러 개를 잠바 주머니에 넣으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거야. 밖에서 꼬치고기를 먹을 때 보통 이 잠바를 입잖아. 이 잠바에 이쑤시개를 넣어두면, 잘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 네가 그렇게 멀리 내다보는 생각을 하고 있었네. 아빠가 미안해. 하지만 집에 있는 이쑤시개를 그 주머니에 넣으면 더 좋잖아."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9. 16. 07:30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어딘가에 연필로 키를 잰 자국이 있을 법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딸아이 방문 입구에 있는 기둥에는 기회있을 때마다 잰 딸아이의 키 크기가 표시되어 있다.


언젠가 학부모 모임이 있어 딸아이 학급을 찾았다. 그런데 딸아이 책상이 첫 줄에 있었다. 이유는 뻔하다. 키가 작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키 순서로 책상 위치를 지정받을 때 나는 항상 제일 첫 줄이었다.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괜히 미안했다. 키 작은 아빠의 유전자를 받아서 딸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키는 정말 아빠 닮지 말아라'라고 속으로 기도해보았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키가 작다고 하면 늘 내가 농담으로 하던 답이 있다.

"땅에서 위로 키를 재면 너가 더 크지만, 하늘에서 머리까지 키를 재면 내가 더 크다. ㅎㅎㅎ"


어제 아침 웬지 딸아이가 훌쩍 커진 것 같았다. 그래서 키를 한번 재보자고 했다. 결과는 짐작이 맞았다. 3주만에 딸아이가 무려 2.5cm나 자랐기 때문이다.


"우와~ 조금 있으면 아빠보다 더 크겠다. 어떻게 그렇게 커졌니?"
"봐! 내가 우유와 치즈를 많이 먹으니까."
"그래 앞으로도 쭉~ 많이 먹어라. 우리 집에서 제일 키가 큰 사람이 되어라."

조금씩 자라다가 이렇게 한 순간에 커지는 경우가 어디 딸아이의 키에만 국한될까...... 이날 딸아이의 키를 잼으로써 갑자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갖지 말고 꾸준히 하다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9. 13. 06:22

이번 여름 에스페란토 국제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딸아이와 함께 리투아니아 북동지방에 위치한 도시 우테나(Utena)에 갔다. 인구 3만명의 이 도시는 주변에 호수들이 많아서 여름철이면 많은 휴가객들이 찾아온다. 

도심에 깨끗한 호수가 있어 이른 아침부터 낚시하는 사람들, 호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밤에는 음악 분수대가 있어 사람들을 호수로 다시 끌어모운다.
 


어느 날 우테나 도심을 산책하는 데 갑자기 딸아이가 외쳤다.

"대한민국이다!"
"왜?"
"저기 벽에 봐!" 


지역 잡지를 광고하는 내용이다. 윗 부분에 태극기와 대한민국 글자가 선명한 옷을 입은 사람이 있다. 


"너는 눈도 밝다. 저렇게 작은 것도 보이니?"
"내가 한국 사람이니까 보이지."
"그래 맞다. 하지만 아빠가 너한테 한국말을 가르쳤기 때문이지."
"고맙습니다, 아버님!!!"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9. 9. 06:11

우리 집 애완동물은 난쟁이 햄스터이다. 초등학생 딸아이가 돌본다. 지난해 성탄절에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딸아이는 햄스터에게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고, 햄스터를 "길레(도투리라는 뜻)라 부른다.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길레야, 엄마 왔어. 잘 있었어?"라고 말한다.

"자, 할아버지하고도 놀아야지?"라면서 종종 딸아이는 햄스터를 내 손에 놓는다. 햄스터는 손바닥에서 어깨까지 살금살금 기어올라간다.    



최근 딸아이는 아빠에게 카메라를 준비하라고 했다.

"아빠, 내가 길레를 재울 수 있어."
"어떻게?"
"잘 보고 촬영해."

딸아이는 길레는 손에 보듬고 소파에 누웠다. 


잠시 동안 길레는 딸아이 손의 포근함에 정말 잠이 들었다.


한 동안 길레는 작은 철망 우리 대신 넓은 거실을 우리 삼아 잠에 빠졌다. 말은 서로 통하지 않지만 딸아이와 햄스터는 이렇게 교감하며 즐거워한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9. 4. 06:19

딸아이는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 되었다. 9월 2일 개학식을 다녀왔고, 화요일 처음으로 6시간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이번에 가장 달라진 점은 교복 착용이다. 학교가 교복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제 무슨 옷을 입고 학교에 갈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또한 엄마와 아침부터 옷 선택으로 실강이를 벌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상의만 통일된 교복이고, 하의는 학생들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 

* 교복 입은 요가일래

딸아이의 교복을 보니 학교 문장이 특이했다. 학교 이름 오른쪽에 있는 말풍선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각각 세 개 있다. 의문을 가지고, 그 의문을 해결한 후 얻은 기쁨을 느낌표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 학교 문장

화요일 딸아이가 학교에 간 후부터 우리 집은 허전했다. 여름 방학 동안 식구 모두가 같이 있을 때에는 몰랐는 데, 딸이 없으니 아내가 있어도 집안은 공허감이 돌았다.

"요가일래 언제 오나?"
"벌써 그리워?"
"없으니 집이 텅 비어있는 것 같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딸아이가 아파트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나자, 각자의 방에서 있던 아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함께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보고 싶었어."
"그래?"
"나 또 학교 가고 싶어."
"금방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또 학교에 가고 싶다고?"
"그래."
"왜?"
"새로 전학온 학생이 둘이 있는데 정말 좋아. 같이 많이 놀고 싶어."
"그러면 네 짝궁이 질투하지 않을까?"
"아니야. 우리 둘이 하고, 새로운 친구 둘이가 모두 친하게 되었어. 새로 온 학생이니까 잘 모르잖아. 그래서 우리가 도와줘야 해."
"좋은 생각이다." 

딸아이 반은 제일 처음에는 25명이었으나, 중간에 들어오는 전학생들로 지금은 30명이다. 나도 시골에서 5학년을 마칠 쯤 대도시로 전학했다. 당시 시골 촌놈이라 따돌리는 대신 함께 놀아준 도시 친구들이 있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이야기를 딸아이에게 해주었다.

"너도 아빠 친구처럼 새로운 학생들을 잘 보살펴줘라."
"알았어. 새로운 학생이 있으니까 학교 가는 재미가 더 있어서 좋아."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9. 3. 06:12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9월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된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9월 2일 월요일 오후 빌뉴스 도심에는 여기저기 개학한 학생들의 무리들이 시끄럽게 돌아다녔다. 딸아이는 이제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생, 리투아니아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생이 되었다. 

9월 2일 개학식이었다. 우리 부부 늘 지금까지의 개학식에 참가했지만, 올해는 딸아이가 혼자 가겠다고 했다. 걱정되었지만, 딸아이가 자랐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딸의 의견을 존중했다.

뭐니해도 성장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은 방 가구 재배치이다. 그 동안 언니가 사용하던 방을 그대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제 6학년이 되자 스스로 방 가구를 배치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최근 출장에서 돌아오자 딸아이는 확 달라진 자신의 방을 보여주면서 자랑했다.

"아빠, 내 방 한번 볼래? 눈 감아!"

눈을 감고 복도를 따라 딸아이의 방에 도착했다.


"짜짠~~~ 이제 눈 떠!"
"우와!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니? 누구 생각이냐? 엄마 생각? 아니면 네 생각?"
"물론 내 생각이지."
"참 잘 했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가구 옆에 하얀 상자였다. 

"이건 뭔데?"
"장난감 상자야."
"샀어?"
"아니. 내가 직접 만들었지."
"어떻게?"
"어렸을 때 맛있게 먹었던 배 상자 알지?"
"그래."
"바로 그 상자에 종이 옷을 입혔어."


딸아이는 궁금해하는 아빠에게 만드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헌책 종이를 하나하나 붙여서 만들었다. 비록 단순한 일이지만, 여러 시간을 쏟아서 완성했다. 


부모가 쉽게 해주는 것보다 혼자 구상하고 자기 방을 꾸민 초등 딸아이가 이젠 정말 자랐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요즘 들어 딸아이는 "아빠, 나도 이제 자랐어. 할 수 있단 말이야. 하게 해줘."라는 말을 부쩍 자주 한다. 이는 사춘기에 점점 접어들고 있음이다. 별 탈없이 넘어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8. 22. 06:52

"초유스의 동유럽" 블로그를 통해 다문화 가정 딸아이의 성장 과정을 기회있는 대로 소개했다. 가장 먼저 올린 글을 확인해보니 "러시아어 유치원 재롱잔치"였다. 2007년 11월 28일에 올린 동영상 글이다. 

유치원에 다니던 딸아이는 지난 6년 동안 얼마나 성장했을까......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과 그때를 비교하면 그야말로 '폭풍성장'이다. 이제는 아이가 아니라 점점 애띤 숙녀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일전에 친구집에서 찍은 요가일래의 모습이다. 


이번 9월 1일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이 된다. 친구집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무슨 큰 것을 터득한 듯 자랑했다.

"아빠, 내가 신기한 과학 놀이를 보여줄게/"
"그래?! 뭔데?
"잘 봐! 정말 신기해."


"우와~~ 신기한 발견이네."

사실 누구나 어린 시절 이런 과학 놀이를 했을 법하다. 어린 시절 물을 채운 양동이에 끈을 메달고 돌리면 물이 쏟아지지 않는 것을 놀이 삼아서 즐겨하던 때가 떠올랐다. 

"이런 것은 아빠도 어렸을 때 많이 한 쉬운 놀이야"라고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비록 작은 발견이지만 딸아이가 스스로 놀이를 통해 경험하는 것을 존중하고 싶어서 칭찬하고 싶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8. 14. 06:23

초등학생 딸아이 요가일래는 빌뉴스에 사는 한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둘이는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을 통해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곤 했다.

이번 여름 방학 때 요가일래는 그 친구 집에 다녀와서는 배운 "묘기"를 보여주겠다면 소개했다, 컵송이다.
   
"아빠도 해봐! 정말 쉬워!"
"그런 어려운 것을 아빠에게 시키니... 그런데 노래를 부르면서 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맞아. 나중에 그 친구와 같이 할게."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들었는데 며칠 후 우리 집에 그 친구가 방문했다. 막 출장에서 집으로 돌아오자 요가일래는 부탁했다.

"아빠, 우리가 노래하는 것을 찍어! 잘 찍어야 돼!"
"알았어."


둘이는 거의 7년 동안 친구의 정을 나눴다, 그런데 바로 친구가 한국으로 곧 돌아가게 되었다. 둘의 우정을 간직하기 위해서 요가일래는 "아빠, 잘 찍어야 돼"라고 말을 한 듯했다. 


정말이지 어제 친구가 빌뉴스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갔다. 이제 둘이 언제 다시 얼굴을 서로 볼 수 있을 지는 기약이 없다. 먼 훗날 이 영상을 보면서 이들은 그 때 그 시절을 더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둘의 우정이 오래 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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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3. 8. 8. 07:04

딸아이 요가일래의 근황을 자주 알려달라는 <초유스의 동유럽> 블로그 독자들이 있다. 여름철에는 발트 3국 관광안내사로 일하느라 가족과 함게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지 않다. 지금도 가족과 함께 떨어져 있다.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고 지금 리투아니아 발트해 해변 도시인 니다(Nida)에서 여름을 즐기고 있다. 어제 늦은 밤에 딸아이에게 전화했다.

"지금 뭐하니?"
"이제 자려고 해."
"아빠는 뭐해?"
"일하지."
"무슨 일?"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해. 얼마 전에 네가 영어로 쓴 글을 아빠 블로그에 올려도 돼?"
"돼. 올려도 돼."
"좀 틀린 데도 있지만, 그래도 너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올리자."
"그래. 그럼, 잘 자!"

이렇게 딸아이의 허락을 받았다. 얼마 전 리투아니아 북동지방 도시 우테나(Utena)에서 국제 에스페란토 행사가 열렸다. 마침 아내와 함께 원불교 성가를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러시아인 친구도 참석하게 되었다. 우리 셋이는 행사 기간 중에 따로 시간을 내어서 함께 번역을 다듬었다. 


이때 딸아이는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요가일래는 삼성 아티브(ATIV) 노트북으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컴퓨터 게임을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빠, 내가 혼자 뭐했는지 궁금하지?"
"물론이지. 뭐했어? 게임했지?"
"여기 봐!"

우선 아티브의 S노트이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이것을 몰라서 안 사용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생 딸아이는 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두 번째는 영어 작문이다. 사전도 없이 딸아이는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척척 자신의 생각을 사진까지 넣어가면서 기술한 것에 놀랐다. S 노트의 이미지 보내기 기능으로 딸아이의 영어 작문을 소개한다. 


비록 문법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딸아이의 이런 영어 창작 욕구가 반짝 충동에 그치지 않고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참고로 아래는 딸아이가 6살 때 직접 영어로 생각해낸 오리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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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3. 7. 29. 07:10

지난 주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접경 지대 푼스크(Puńsk, Punskas)를 다녀왔다. 폴란드 영토인 푼스크는 인구가 천명이고, 80% 이상이 리투아니아인이다. 일명 폴란드내 리투아니아인 수도로 불린다. 

바르샤바에 살고 있는 친구의 처가가 바로 이 동네에 있다. 우리가 바르샤바까지 가기에는 멀어서 그의 처가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모처럼 방문한 우리를 이 지역의 유명 관광명소로 안내했다. 그 중 하나가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철도 다리로 알려진 스탄치키(Stańczyki)이다. 이 마을은 2차 대전까지 독일(동프로이센)에 속했다.


다리의 총 길이는 200미터, 높이는 36미터, 다섯 개의 아치로 구성되어 있다. 각 아치의 길이는 15미터이다. 다리는 두 개로 되어 있는데 북쪽 다리는 1912-1914년, 남쪽 다리는 1923-1926년에 세워졌다. 지금은 철도가 폐쇄되었고, 관광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리 위를 걸어보고 주변을 산책하는 데 입장료가 4즐로티(약 1500원)이다. 


이날 날씨가 몹시 덥고 또한 36미터 위로 올라가야 하므로 초등학생 딸아이 요가일래가 몹시 힘들어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는 재미난 발상 하나를 떠올렸다. 땋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생기있게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게으름이나 핑계를 찾아서 다리 위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딸아이가 선언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렇게 가쁜한 걸음을 해준 딸아이가 고마웠다. 이것이 기끼어 명소를 안내하고 있는 폴란드 친구의 성의에 보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땋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가는 딸아이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마치 땋은 머리가 기관차가 되어서 더위에 지친 딸아이의 몸믈 견인해 철도 다리를 건너게 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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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3. 7. 9. 07:46

유럽의 대부분 나라와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가족 중심이다. 가능한 어디를 가든 가족, 혹은 부부가 함께 간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산 가족이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큰 딸 마르티나 때문이다. 

마르티나는 여름 방학인데도 집에 못 오고 있다. 이유는 방학을 집에서 보내다가 학년이 시잘 무렵 영국으로 돌아가면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시간제로 일하던 커피숍에서 방학 동안 정식으로 일하고 있다. 궁금한 분을 위해 알리자면 영국 스코트랜드 에딘버러에서 그가 받는 시급은 6.29파운드(한국돈으로 10500원)이다. 단기간 목표는 열심히 일해서 내년에 6개월 동안 중동 두바이에 있는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나머지 가족이 방학을 맞아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아내는 세 식구(나, 아내, 작은 딸)가 모두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을 찾아봤으나 불가능했다. 결국 아내와 작은 딸 둘이만 영국 에딘버러로 떠났다.

하루 이틀은 그런 대로 견딜만 했다. 식구 각자의 식성이 달라서 함께 있을 때도 같이 밥을 먹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요리해주는 따뜻한 음식은 모두가 식탁에 앉아 먹곤 한다. 

아내가 없는 동안 밥 때가 되면 더 바빠지는 듯하다. 요리를 해서 혼자 먹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울 것인가가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간이식품으로 눈과 손이 가게 된다. 여름철이 되니 귀한 한국 간이음식들이 우리 집 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연은 간단하다. 여름철엔 발트 3국 관광안내사(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을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것 같은 나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기 때문이다. 


음식 선물을 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이 음식이 아내가 없는 지금 아주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컵라면 봉지가 쌓여간다. 


버리지 않고서라고 핏잔을 줄 사람도 있겠다. 참고로 컵라면 봉지는 시골에 계시는 장모님이 이른 봄철 씨파종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모운다. 아내가 그리운 지, 따뜻한 음식이 그리운 지... 아뭏든 잘 있다 오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6. 29. 07:12

지방 통역 출장을 떠났다. 그 다음날 아내와 작은 딸은 큰 딸이 사는 영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우리 집은 하루 밤 동안 빈 집으로 남게 되었다. 통역은 3일 하고, 상황에 따라 2일 더 연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더 하는 것이 좋겠어요? 아니면 집중적으로 3일만 하고 돌아갈려요?"
"아내가 없는 집이지만 ,그래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통역말고도 할 일이 많아요."
"우리(리투아니아 남편들)은 아내가 없으면 집에 가지 않고 술 마시고 노는데...... ㅎㅎㅎ"

더 하면 더 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웬지 일찍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집에는 나외에도 또 다른 동물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딸이 키우는 애완동물 햄스터다. 딸아이는 친척 집에 맡겨놓고 영국으로 떠나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마음을 바꿨다. 혼자 놓아두는 시간이 하루라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먼저 부엌에 놓아둔 햄스터 집으로 가보았다. 27일 새벽 5시에 아내가 떠났고, 내가 돌아온 시간은 28일 저녁 9시였다. 햄스터가 혼자 있은 시간은 총 40시간이었다. 평소에 누군가 가까이 오면 반기는 듯 행동을 하는데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 40시간이 지나도 해바리기 씨앗은 그대로

먹이통을 보니 해바라기 씨앗이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40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을까? 보통 해바라기 씨앗을 손으로 입 가까이에 주면 얼른 받아 까먹거나 통채로 입 먹이주머니에 넣는다. 그런데 집 밖으로 나왔지만, 먹이에 대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곧 야자수 열매 속으로 들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 기운이 쭉 빠진 듯한 햄스터 

돌봐주던 주인이 집을 비운 것을 알고서 올 때까지 단식하면서 기다리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정말 집에 빨리 돌아오길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완동물 기르기에 익숙하지 않지만 딸을 대신에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우선 햄스터에게 주인은 아니지만 내가 집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못 부르는 노래도 하면서 일단 햄스터의 기분을 전환해주기로 했다. 부엌에 혼자 있게 하지 말고 내 방에 햄스터 집을 옮겨 놓았다.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면 생기를 되찾아 쳇바퀴 놀이를 할 것 같았다. 아내가 없다고 집에 가지 않고 노는 것 대신 슬픔에 빠져 있는 듯한 햄스터를 돌보게 되었다. 이 공덕으로 아내와 작은 딸이 영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6. 27. 09:25

올해 한국 방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딸아이가 공항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언제 아빠가 가장 보고 싶었어?"
"아빠가 한국에 도착했을 때. 그리고 아빠가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공항에서 아빠를 기다리면서 내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어."
"아빠가 자주 말했잖아. 아빠를 사랑하되 사랑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알아."
"뭔데?"
"그러니까 너무 사랑해서 그 사랑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지 말라는 말이잖아."
"그래"

이날  비행기에 오래 앉아 오느라 굳어진 등을 딸아이가 안마해주었다. 
"네가 안마를 해주다니!!! 고마워."
"그런데 앞으로도 내가 원할 때 아빠에게 안마해줄게."
"피아노를 쳐서 그런지 손가락 끝이 아주 맵네".
"엄마 손가락 끝이 더 맵지."

며칠 전 지방 출장을 떠나기 전 곧 영국에 있는 언니를 방문하기 위해 떠날 딸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아빠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아빠도 나 보고 싶을 거지?"
"물론이지. 그런데 아빠 말 기억해?"
"알아. 사랑하되 사랑하지 마."
"좋아하되 좋아하지 마. 싫어하되 싫어하지 마. 사람은 집착이 없어야 돼."

* 사진출처: https://www.facebook.com/jogaile.cojute / 
  짐을 싼 후 떠날 준비 인증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딸아이

요즈음은 집을 비우는 날이 거의 대부분이라 딸아이와 페이스북으로 대화한다. 오늘 아침 비행기로 영국으로 떠나는 딸아이에게 쪽지를 남겼다.  

"영국에 잘 갔다가 와~~~. 엄마 말을 잘 듣고, 언니하고 잘 놀아라!!! 안녕~~~"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6. 17. 05:55

발트3국 관광안내사 일을 하느라 3주 정도 집을 비우게 되었다.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로 돌아다녔다. 인터넷 덕분에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프 등으로 집에 있는 식구들과 자주 연락을 서로 할 수 있으니 집을 떠나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출장은 출장이다. 같이 부대끼면서 살다가 잠시지만 가까이 없으니 허전하다. 

* 리투아니아 트라카이

*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 에스토니아 탈린

* 라트비아 리가

지난 토요일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바빠서 선물을 사오지 못했어 미안해."
"괜찮아. 아빠가 집으로 온 것이 선물이지. 그리고 나하고 같이 놀아줘."
"무슨 놀이?"
"우리 탁구 치자. 옛날처럼 노래하면서 치자."


노래 한 곡을 다 할 때까지 탁구를 친다. 하다가 중간에 공이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노래한다. 


이렇게 출장에서 돌아와 한국 동요 "반달"을 부르면서 딸아이와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선물 안 사왔다고 토라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좋은 선물이라고 즐거워하는 딸아이가 고맙다. 지친 몸이었지만, 딸아이와 기꺼이 탁구 놀이를 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5. 13. 06:33

딸아이는 곧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다. 9월 1일 시작되는 6학년부터 달라지는 과목이 하나 있다. 제2 외국어이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빌뉴스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가 특화된 초등학교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프랑스어와 영어 중 하나를 선택해서 2학년 때부터 배운다. 물론 이렇게 선택한 제1 외국어는 졸업할 때까지 배운다. 

6학년부터는 제2 외국어 교육이 시작된다. 선택할 수 있는 언어는 프랑스어, 영어, 러시아어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가족은 별 다른 고민 없이 러시아어를 선택했다. 그런데 걸림돌이 하나 있다. 리투아니아에서 제일 좋은 고등학교는 제2 외국어로 러시아어가 없다. 프랑스어, 영어와 독일어만 있다.  

"아빠, 담임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어. 제일 좋은 고등학교를 가려는 학생은 러시아어를 선택할 수가 없어."
"왜?"
"그 학교는 러시아어가 없어."
"안 좋다. 원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러시아어도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러게."
"너는 그 학교에 가고 싶어?"
"가고 싶지만 어려워."
"그 학교에 안 가도 돼지?"
"그래."
"그럼, 문제는 해결됐어. 러시아어를 선택하자. 어느 슬라브어 하나를 알면 다른 많은 슬라브어를 이해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된다."

* 제2 외국어로 러시아어 선택 동의서

소련시대 공용어였던 러시아어는 리투아니아가 1990년 독립을 선언한 후부터 배척되었다. 소련시대 우대를 받았던 러시아어 교사들은 교직을 그만두거나 새로운 과목으로 전환해야 했다. 이때 많은 교사들이 영어나 리투아니아어 교사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러시아어 대신 영어가 자리잡았다. 이 결과로 대부분 20-30세 이하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러시아어에 대한 지식이 없다.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나이에 우리 부부는 고민했다. 리투아니아어 유치원을 보낼 것인가, 러시아어 유치원을 보낼 것인가. 비록 찬밥 신세에 처해 있지만, 언젠가 다시 러시아어가 각광 받을 날이 올 것이다라는 기대로 러시아어 유치원을 결정했다.

3년을 다니는 동안 딸아이는 러시아어가 아름답다고 하면서 모국어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런데 리투아니아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어 그 동안 러시아어를 많이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제 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배운다면 그 옛날 뇌에 자연스럽게 저장된 러시아어가 쉽게 표출될 것이다.


* 유치원 시절 5개 언어로 노래하는 요가일래

러시아어가 없는 최상의 학교에 가지 못하더라도 러시아어를 잘 하면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 기대한다. 영어로는 서쪽으로 러시아어로는 동쪽으로 간다면, 훨씬 더 폭넓은 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5. 13. 06:33

며칠 전 초등학교 5년생인 딸아이의 수학 숙제 때문에 잠시 동안 우리 부부는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되었다. 학교에 일하러 집을 나서면서 아내가 부탁했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당신이 요가일래의 수학 숙제을 도와줘."

'초등학교 수학 문제쯤이야 쉽게 알겠지.'라고 생각했다. 

"아빠, 이거 정말 어려워. 아빠가 도와줘."
"그래. 알았다."

소숫점 세 자리까지 나오는 나누기 문제였다. 보니까 한국에서 40년 전에 배운 수학과는 수식 표기와 푸는 방식이 다 달랐다. 특히 풀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한국어로 그 방식을 설명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우선 한국은 곱하기를 x, 나누기를 ÷로 표기하는데 리투아니아는 곱하기를 ., 나누기를 :로 표기한다.

푸는 방식은 12 ÷ 4이면 한국은 4┌ 12로 뒤의 숫자가 앞으로 가고 앞의 숫자가 뒤로 가는 방식으로 하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푼다. 리투아니아는 아래 사진에서 붉은색으로 네모칸을 표시한 것처럼 12 └ 4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푼다. 물론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답은 마찬가지이지만, 리투아니아 학교에 다니므로 한국식보다는 리투아니아식으로 해결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이 더 좋겠다. 


소숫점 자리 수가 많아지자 딸아이가 정말 어려워했다. 아예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 이것은 초등학교 5학년생이 풀 수 없는 문제야. 아빠도 힘들어 하잖아."
"그래. 엄마가 아빠보다 리투아니아어로 더 잘 설명해줄 거야. 그리고 정말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알려고 하다보면 머리가 더 아플 거야. 숙제를 다 못해 간다고 너무 불안하고 걱정하지마. 선생님에게 솔직히 말해 - 어려워서 이해할 수가 없으니 선생님이 다시 한번 설명해주면 좋겠다고."

이날따라 아내가 늦게까지 일하고 밤 10시경에 돌아왔다.

"수학 숙제는?"
"설명하기 어려워 당신을 기다렸지."
"뭐?!"

피곤한 아내는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딸아이는 여전히 이 문제가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것이라 믿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아내의 언성은 높아지고, 딸아이의 눈물은 점점 진해졌다.

급기야 화살은 나에게로 향했다. 아내의 참을성은 한계에 도달했고, 불만과 질책은 쏟아졌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요가일래 수학 숙제 하나도 해결해주지 못 했어! 당신은 오늘 도대체 뭐했어?"

100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모르더라도 강요해서 딸에게 지식을 주입시키느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모르더라도 내일은 알 수도 있다. 스스로 해결 능력이 자연스럽게도 생길 수도 있다. 이해하기 힘든 것을 윽박질러서 가르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

숙제를 다 하지 못해서 학교에 가면 해온 친구들과 비교가 된다. 그러면 자존심이 상하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것이 딸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당신, 이제 그만해!!! 자, 숙제 다 못 해도 되니까, 요가일래 너는 자러 가라. 벌써 밤 11시다. 그리고 내일은 일체 컴퓨터도 할 수 없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다. 오로지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해라. 봤지? 네 숙제로 결국은 엄마와 아빠가 서로 얼굴 붉히게 되잖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네가 좀 잘 해라."
"정말 어려워. 학교 가기 싫어."
"내일 아침 되면 학교에 가고 싶을 거야. 숙제 생각하지 말고 편하게 잠을 자라. 세상에는 모르는 것도 있어야지. 모르니까 학교에 가는 것이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5. 9. 06:55

요즈음 햇볕이 많아서 좋다. '1년이 요즘만 같아라'라는 바램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다. 딸아이도 학교에 갔다 오면 대부분의 시간을 오후부터 저녁까지 햇볕이 드는 거실에서 생활한다. 


어느 순간 거실 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그 소리라면 욕실이나 부엌에서 나야지 왜 거실에서 날까......


가보니 물 소리는 선인장 가시에서 나는 소리였다. 딸아이는 숙제를 하다가 잠시 선인장 가시와 놀고 있었던 것이다. 위에서 손가락으로 가시를 훑어 내려올 때 나는 소리가 꼭 물이 흐르는 소리를 닮았다.


저러다가 가시에 손가락이라도 찔리면 피가 날 수 있고, 아플텐데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무섭게 쭈빗쭈빗 나온 가시를 이용해 졸졸좔좔 물 소리를 만들어 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5. 7. 05:08

부엌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가 방으로 달려왔다.

"손 다쳤어. 빨리 도와줘."
"왜?"
"소시지 자르다가."

딸아이는 부엌에서 수제 훈제 소시지를 혼자 자르고 있었다. 너무 딱딱해 세게 누른 칼이 그만 손가락을 향했다. 

"칼을 사용할 때는 늘 칼이 손 쪽으로 향하지 말고 다른 쪽으로 조금 눕혀서 사용해야지."
"알아. 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

손가락에 피를 흘리는 딸아이가 너무 안스러웠다.

"앞으로는 부모가 집에 있을 때 혼자 절대로 칼을 사용하지 마라."
"아빠, 난 이제 아기 아니야! 나도 할 수 있어야 돼."

위험하다고 항상 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쳐 아파하는 딸에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난 이제 아기 아니야!"라는 말에 내 말은 더 이상 효력이 없음이 드러났다.

"그래, 앞으로는 정말 조심해서 해라."

조금 후 딸아이는 내일 학교에 갈 생각을 하니 오히려 기쁘다고 했다.

"왜 기쁜데?"
"그러니까 학교 친구들이 붕대를 감은 내 손가락을 보고 왜 그렇게 되었냐고 물어볼 거야."


친구들의 관심과 동정을 받을 생각하니 아픔은 잊어버리고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이래서 어린이는 순진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너도 다른 친구들이 아프면 관심을 가져줘."
"알았어."

아래는 최근 본 영국 음료 회사 로빈슨스(Robinsons) 광고 영상이다. 마지막에 나오는 광고 문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It's good to be a dad. It's better to be a friend.
                 아빠 되는 것은 좋다. 친구 되는 것은 더 좋다.


나는 과연 딸아이에게 친구일까? 아빠일까? ...... 
친구 같은 아빠가 되도록 특히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더욱 다짐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4. 24. 06:06

4월 초순부터 중앙 난방이 끊어졌다. 겨울철 방안보다 더 따뜻하게 옷을 입어야 한다. 지금 바깥 기온이 영상 15도이고, 실내 기온은 영상 17도이다. 컴퓨터 자판기를 치고 있는 이 순간에 손등과 손가락이 몹시 시리다.

* 우리 집 아파트 23일 낮 12시, 바깥 기온 영상 17.5도(왼쪽), 실내 기온 영상 17도)

(잠시 휴식) 욕실에 가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근 후 다시 글을 쓴다. 며칠 전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는 어린 시절 많이 놀았던 텐트를 꺼내서 방안에 쳤다.

"왜 텐트를 쳤니?"
"놀려고."

딸아이의 말에 지난 1월 한국에 갔을 때 춥다고 방안에 천막을 처준 조카가 떠올랐다.


텐트 속에서 딸아이는 컴퓨터도 하고, 애완 햄스터와 놀기도 하고, 숙제도 했다. 정말이지 시간이 지나자 텐트 속에는 방보다 훨씬 더 따뜻했다. 


그냥 심심해서 놀려고 세운 텐트가 난방 대체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완연한 봄으로 건물벽이 따뜻해져 실내 온도가 올라갈 때까지 당분간 방안 텐트는 우리 집 상설물이 될 듯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4. 23. 07:15

딸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 "너는 언제 자라나? 빨리빨리 자라거라!"라며 한숨을 내쉴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딸아이는 벌써 초등학교 5학년생으로 훌쩍 자라버렸다. 아직은 느끼지 못하지만, 조만간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다. 

1살 반경 딸아이는 언니와 놀다가 쇠 난간에 이마가 부딛혀 상처를 입었다. 그 흉터 자국이 남아 있다. 예쁜 얼굴에 있는 이 흉터를 볼 때마다 당시 제대로 주의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일전에 이 흉터 자국을 보면서 딸아이에게 말했다.


"나중에 네 이마에 있는 흉터를 제거하는 성형수술을 받자."
"안 돼. 나 안 할래."
"무서워서?"
"아니."
"그럼, 왜?"
"어릴 때 추억이잖아. 그리고 이 흉터를 보면서 늘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잖아."
"그래. 네 생각이 옳다. 거울 볼 때 그 흉터를 보고, 그 흉터를 볼 때마다 앞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다짐하는 거야. 그러면 그 자국이 흉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보다 더 아름답다. 오늘 우리가 한 말을 잊지 말고 살아가자."


이마에 있는 흉터가 보기 싫은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추억의 징표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표시로 생각하는 초등학생 딸아이가 대견스럽다. 아이가 어른을 가르친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아무튼 딸아이가 이런 마음을 오래오래 변치 말고 살아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17. 06:33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평소보다 더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화요일 아내는 직장에 가지 않는다. 직장이 음악 학교인 아내는 원칙적으로 수업이 있는 날과 그 시간에만 학교에 간다. 월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꼭 금요일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다.

이번 월요일 밤에도 그랬다. 아내의 수면제는 읽기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여년 동안 일간지를 정기 구독했다. 하지만 올해 초 신문 구독을 끊었다. 이유는 인터넷 때문이다. 아내는 이제 신문 대신 휴대폰, 아이팟 혹은 탭북으로 신문 기사 등을 읽으면서 잠에 든다. 어제는 고이 자는 남편을 깨웠다.

"왜 그래?"
"창문이 정신없이 흔들려 잠을 잘 수가 없어."
"리투아니아는 지진이 없는 나라잖아."
"그게 아니고 머리가 어지러워."
"봐, 좀 철분약을 먹었어야지."

아내는 평소에도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다. 한 달에 한 번은 더 심한 현기증을 겪는다. 이 경우에 철분약 섭취를 습관화하라고 권하지만, 무슨 약이든지 복용을 꺼리는 아내는 참고 견디는 편이다. 

이날 비상약통에서 철분약을 꺼내 아내에게 주었다. 이어서 심장박동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 같다고 해 심장약도 주었다.

"빨리 인터넷에서 빈혈 응급처치를 알아봐."
"미역국, 김, 다시마 등이 철분이 풍부해 좋다고 해. 내일 고기 넣고 미역국을 끓어줄 테니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해봐."

* 작년 가을 후(거의 6개월만에) 처음으로 발코니에서 생활

화요일은 정말 진짠 봄 같은 날씨였다. 낮 기온이 영상 14도였다. 처음으로 목도리 없이 외출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 발코니를 혼자 말끔히 청소하고 잠잘 때까지 발코니에서 생활했다. 한편 이날 딸아이는 친구들과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놀다가 평소보다 두 시간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빨리 집으로 와. 맛있는 미역국이 있어?"
"누가 했는데? 엄마 아니면 아빠?"
"네가 와서 먹어보고 말해."

딸아이는 아빠가 한 밥과 엄마가 한 밥, 아빠가 끓인 라면과 엄마가 끓인 라면, 아빠가 한 미역국과 엄마가 한 미역국을 구별한다. 구별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주로 전자만 먹으려고 한다. 

"미역국 맛 보니 어때?"
"정말 맛있어."
"누가 했을까?"
"엄마 냄새가 나는데."
"봐, 엄마도 미역국을 맛있게 할 수 있잖아."

* 식은 후의 미역국

아내와 나는 눈짓으로 딸아이의 짐작을 그냥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이제는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는 것을 직접 보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때론 아이에게 이런 편법으로 가르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4. 9. 05:43

지난해 여름 초등학생 딸아이가 400장의 사진을 찍어 만든 아래 만화 영화를 소개했다. 


최근 부활절 방학으로 심심하던 딸아이가 또 다시 레고(LEGO) 사진을 찍었다. 다 찍고 나서 아빠를 불러 카메라 화면에서 빠른 속도로 사진을 돌려 영화처럼 보여주었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이 계단을 내려오다가 그만 계단이 무너졌다. 무너진 계단을 붙이고 다시 내려오는 장면을 찍을 수도 있는데 딸아이는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다. 


흔히 방송사고에 나오는 "technical difficulties"(기술 문제)라는 표현으로 깔끔하게 처리했다. 딸아이의 재치 있는 해결책은 아빠의 미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앞으로도 딸아이가 컴퓨터를 덜 사용하고 이런 놀이를 더 많이 해주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4. 5. 07:43

최근 초등학교 5학년생 딸아이에게 새로운 재미가 하나 생겼다. 바로 바느질이다. 집에 있는 천조각으로 주머니 등을 만든다. 어려운 것은 먼저 엄마에게 재봉틀로 깁어달라고 한다. 그 다음에 혼자 바느질로 무늬를 넣는다.


"바느질이 재미있어?"
"재미있지."
"그런데 이렇게 바느질 하는 것을 어디에서 배웠니?"
"학교에서."
"학교에서 가르쳐?"
"수업이 있어."
"앞으로도 컴퓨터 많이 하는 대신에 이런 것을 많이 만들어봐."
"알았어."


욕실에 갈 때마다 걸려있는 딸아이의 바느질 주머니를 볼 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일어난다. 정말이지 컴퓨터 대신 이런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도록 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3. 29. 09:51

현재 리투아니아 페이스북 사용자는 114만 명이다. 이는 총인구의 32%, 온라인 인구의 55%에 해당한다. 한국은 830만 명으로 인구의 17%, 온라인 인구의 20%이다. 비율로 따지면 리투아니아가 사용률에서 한국보다 더 앞선다. 가입 연령이 제한되어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들도 나이를 높여서 흔히 사용한다. 

페이스북 친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 대신 친구 수락 신청을 가끔 받게 되는데 그 사람의 신상을 유심히 살피지 않고 쉽게 수락한다. 그런데 최근 어떤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는데 정중히 거절당했다.

페이스북 에스페란토 동아리가 있다. 이 동아리 운영자가 에스페란토 글자가 써진 수건으로 덮고 있는 딸아이 사진을 찾아 대문에 걸어놓았다. 이 사진이 회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독일인 한 사람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인 딸아이의 언어능력에 호의적으로 궁금해했다. 서너 차례 댓글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이 정도라면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친구 더하기> 단추를 눌렀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뜻밖의 내용에 깜짝 놀랐다. 


"페이스북 친구에 대해: 미안하지만  인터넷이 아니라 현실 세상에 있는 친구나 친척만을 페이스북 친구로 받아들인다. "가상 친구"를 안 받지만, 너의 편지를 받아보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팍하게 알고 지내는 것보다 기존부터 얼굴을 맞대고 알고지내는 친척이나 친구들과 페이스북을 통해 빠른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정의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임을 일깨워주는 답장이었다. 

이 사람 덕분에 앞으로는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나 수락을 보다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3. 25. 07:11

며칠 전 스웨덴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친구와 스카이프(skype)로 모처럼 문자로 대화했다. 

"요가일래가 고민이 많은 모양인데 학교생활에 대해 부모한테 자세한 이여기를 안 하나보지."
"주리하고 대화하는 것을 우리가 다 듣고 있는데..,,,,"
"주리가 심각하게 이야기하길래. 여긴 또 틀리니까. 바로 학부모 호출해서 사과시기고 하니까."
"내일 한번 물어볼게"

비교적 딸아이와 소통을 잘 하는 편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딸아이의 고민을 제3자로부터 듣게 되었다. 벌써 딸아이가 부모보다 친구에게 먼저 고민을 털어놓는 나이가 되어버렸구나를 생각했다. 사춘기로 접어들 나이가 되어버렸다.

다음날 분위기를 살펴서 딸아이에게 물었다.

"학교에 무슨 문제가 있니?"
"아니 없어."
"있는 것 같은데."
"아이, 벌써 잘 끝났어."
"그러면 문제가 있었네. 아빠에게 말해봐."
"친구들이 좀 놀랬어."
"뭐 때문에?"
"내가 리투아니아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라고."
"하지만 엄마가 리투아니아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놀릴까?"
"내가 자기들이 하지 못하는 한국말도 잘 하고, 또 좀 잘 나가니까 그런가봐."
"선생님에게 말했어?"
"했지. 친구들이 사과하고 이제 사이좋게 잘 지내."
"어떤 친구가 그렇게 말했나?"
"그건 말하지 않을 거야."

시간이 좀 지난 후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아빠나 엄마에게 그런 문제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 친구에게 했나?"
"아빠나 엄마는 벌써 학생이 아니잖아. 학교 일은 학생이 제일 잘 조언해줘."
"그래도 앞으로는 부모에게도 말해줘야지."


앞으로도 이런 유시한 일을 많이 겪을 수 있는 딸아이를 생각하니 걱정이 된다. 이런 경우에 늘 가슴에 와닿는 말이 있다.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자멘호프가 1905년 제1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연설의 한 구절로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시하는 바가 크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어제 밤 잠들기 전 아빠의 팔을 베고 누워있는 딸아이에게 조용히 물었다.

"너는 한국 사람인 것이 좋아. 아니면 안 좋아?"
"물론 좋지."
"왜?"
"전부 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면 재미가 없잖아."
"그래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서로 어울러 사람으로 살아가면 재미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친구들이 한국 사람이라고 때론 놀려대도 자기가 한국 사람인 것을 좋아한다면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3. 5. 06:31

학교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 딸아이가 집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에서 서재까지 상대적으로 긴 복도가 있다. 햄스터가 없었을 때 딸아이는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향해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하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 부엌 창가에 놓아둔 햄스터에게 달려가 '(출필고)반필면'을 잊어버렸다.  

"봐, 햄스터 때문에 아빠를 잊었지?"
"햄스터는 살아있는 장난감이잖아. 아이들은 장난감을 좋아해. 그래서 먼저 장남감하고 놀아." 


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외할머니가 난쟁이 햄스터(드워프 햄스터, dwarf hamster) 새끼 한 마리를 선물로 주었다. 여러 차례 애완동물, 특히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라대었지만 완고하게 거절했다. 애완동물 기르기는 많은 장점이 있는 줄은 알지만, 그저 사람은 사람끼리 사는 것이 좋다는 주의에 충실하고 싶다. 애완동물에 대한 특별한 애(愛)나 증(憎)은 없다. 

어제 딸아이는 학교에서 오자마자 햄스터를 우리에서 꺼내 침실로 가져갔다. 조금 후 딸아이는 햄스터에게 재미나게 호통을 쳤다.
"야~~~ 이렇게 내 옷에 오줌을 누면 어떻게 해? 앞으로 한번만 더 하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


우리에서 꺼낸 햄스터가 침대포 위에 똥을 누는 경우도 있다. 좁쌀만한 똥을 딸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맨손으로 주워 쓰레기통에 버린다. 

"비누로 손 씨는 것을 잊지마!" 

애완동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구절(정산 종사)이 있다.

어항을 치워라. 못에서 마음대로 헤엄침을 보리라. 
화병을 치우라. 정원에 피어있는 그대로를 보리라. 
조롱을 열어 주라. 마음대로 날으는 것은 보리라.


어느 날 이 구절을 딸아이에게 해주었다. 
"이 햄스터가 야생에서 자유롭게 자라면 얼마나 좋겠니?"
"아빠, 그렇게 하면 매가 햄스터를 잡아먹잖아. 햄스터가 그렇게 죽으면 아빠는 좋겠어? 우리가 키워주면 자연히 죽을 때까지 잘 살잖아."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