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3국 여행2015. 6. 30. 06:29

관광안내사(가이드, 이하 안내사로 표현) 일을 하다보면 자주 부탁을 받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관광객들로부터 사진을 좀 찍어달라는 것이다. 

어떤 인솔자(한국에서 같이 비행기를 타고와 호텔, 숙박 등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도와주는 사람)는 안내사는 관광지 안내자의 역할만을 규정하면서 사진 촬영을 안내사에게 부탁하지 말라고 냉정하게 선을 그어 준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듯이 이는 인간미가 없는 듯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안내사는 현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더우기 안내사가 사진 촬영에 일가견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안내사가 찍어주는 사진은 멋질 것이고, 이로써 더 멋진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

일정에 차질이 없는 이상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에 나는 기꺼이 응한다.

한편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어도 안내사와 같이 사진 찍자는 관광객은 극히 드물다. 적게는 2박,많게는 8박을 함께 하면서 열정적으로 관광지를 설명하는데 말이다. ㅎㅎㅎ  

어떤 이는 여행의 보람은 만나는 안내사에 좌우된다고 말한다. 해외여행을 선택할 때 대부분 여행지와 가격 등에 중점을 두지만, 개인적으로 안내사 또한 경시할 수 없는 사항이다. 여행자는 여행사로부터 안내사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얻을 필요가 있겠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군가 관광지를 안내하는 내 근로현장의 생생한 장면을 찍어주면 좋겠다. 혹시나 기회가 된다면 아내나 딸이 동행해 내 안내사의 삶을 담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물론 이 동행시 비용은 내가 부담할 것이다.

이런 내 바람이 통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최근 일어났다. 단체 여행객 21명 중 한 분이 내 모습을 찍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한 두 번으로 그칠 것이라 생각했으나, 여행이 끝날 때까지 관광객들에게 설명하는 내 모습까지 넣어서 사진을 찍었다.

'한 두 번 찍고 말 것이지 왜 파파라치처럼 자꾸 찍으실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관광안내를 다 끝내고 일정 중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하기 전 여러 가지 약과 음식을 선물로 주면서 연락처를 물었다. 내 또한 그 분의 남편이 제기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 정확한 답을 안 후에 알려주기로 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다음날 카카오톡이 수없이 카톡카톡카톡... 울어댔다. 놀라운 사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내사 일을 십여년 해오고 있지만, 안내사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담은 사진은 극히 적다. 우리 가족은 내가 안내사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현장은 사진으로도 쉽게 볼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번 정도는 가족을 동반시키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관광안내사로서의 내 삶을 엿볼 수 있도록 바로 이 분이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분의 동의를 얻어 보내준 여러 사진 중 몇 장을 올린다.

이렇게 남이 모르게, 어쩌면 남에게 오해의 소지를 남기면서까지 그에게 아주 소중한 일을 하는 사람이 세상이 있구나를 새삼스럽게 확신하게 된다. 참으로 그 분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7. 24. 06:59

유럽을 여행하는 동양인들 중 한국인을 쉽게 구별하는 방법 중 하나가 똑똑전화(스마트폰)라는 글을 일전에 올렸다[관련글: 유럽에서 한국인 관광객 구별되는 법 - 스마트폰]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보니 2012년 한국의 똑똑전화 보급륭은 67.6%로 세계 1위이다. 이는 세계 평균인 14.8보다 4.6배 높은 수치이다.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므로 유럽에 여행오는 한국인들은 100에 100이 똑똑전화를 소지하고 있는 것이다. 

발트 3국 관광안내사 일을 하다보면 종종 한국인 손님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가이드님은 왜 스마트폰이 없어요?"
"그렇게 필요하지 않아요."
"얼마나 좋은 지를 아직 모르시네. 디카가 따로 필요 없어요. 사진 해상도도 엄청 좋아요."

관광안내를 하는 동안에 늘 내 바지 주머니에는 구식 휴대전화기와 디카가 들어가 있다. 관광지에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으면 순간포착을 하기 위해 항상 디카를 소지하고 다닌다. 대답은 "그렇게 필요하지 않아요."라고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가 지금 거짓말하고 있네'가 자리잡고 있다. 

똑똑전화가 있다면 참 좋겠다.
손님들에게 즉각 구글지도로 이동거리와 소요시간을 알려줄 수 있고, 일기예보도 수시로 알려줄 수 있다. 점심메뉴나 다음날 일정을 알리기 위해 굳이 종이서류를 꺼내 확인하는 대신 파일을 보면서 하면 된다. 하루 일정을 끝내고 호텔방에서 인터넷을 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무게가 나가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 우리집 휴대전화기 변천사

그런데 주변에 있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나처럼 구식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물론 똑똑전화가 비싸기도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빨리 갖고 싶어하는 조바심이 한국 사람들에 비해 낮다. 젊은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식 휴대전화기에 여전히 만족하고 있다.          

* 최근까지 즐겨 사용한 내 휴대전화기

이런 상황 속에 살다보니 똑똑전화를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게 발동하지 않았다. 관광안내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한국 사람들이 왜 나는 똑똑전화가 없는 지를 자꾸 물어봐."라고 아내와 딸에게 종종 말한다.

며칠 전 어느 한국인 관광객 한 분이 내가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기를 보더니 한 마디했다. 

"가이드님도 이제 스마트폰 하나 갖추세요."

이를 듣는 순간 '당신은 한국인이니까 스마트폰을 갖춰라'라는 말로 해석되었다. 구년묵이 휴대전화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내가 시대에 몹시 뒤떨어져 보인 듯했다. 속된 말로 쪽 팔렸다. 이번에 집에 돌아가면 반드시 똑똑전화 지름신을 불려야겠다고 다짐해보았다.

* 이제 나도 갤럭시 노트2 똑똑전화기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지름신을 부르지 않아도 소원성취했다. 어떻게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아내와 딸이 삼성 갤럭시 노트2 똑똑전화기를 구입해놓은 후 잠시 집을 떠났다[관련글: 지령 쪽지로 스마트폰 선물하는 딸의 별난 방법]

이제 나도 똑똑전화기를 가지고 있으니 한국인 관광객들과 동등한 수준에 오르게 되었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7. 9. 07:46

유럽의 대부분 나라와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가족 중심이다. 가능한 어디를 가든 가족, 혹은 부부가 함께 간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산 가족이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큰 딸 마르티나 때문이다. 

마르티나는 여름 방학인데도 집에 못 오고 있다. 이유는 방학을 집에서 보내다가 학년이 시잘 무렵 영국으로 돌아가면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시간제로 일하던 커피숍에서 방학 동안 정식으로 일하고 있다. 궁금한 분을 위해 알리자면 영국 스코트랜드 에딘버러에서 그가 받는 시급은 6.29파운드(한국돈으로 10500원)이다. 단기간 목표는 열심히 일해서 내년에 6개월 동안 중동 두바이에 있는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나머지 가족이 방학을 맞아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아내는 세 식구(나, 아내, 작은 딸)가 모두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을 찾아봤으나 불가능했다. 결국 아내와 작은 딸 둘이만 영국 에딘버러로 떠났다.

하루 이틀은 그런 대로 견딜만 했다. 식구 각자의 식성이 달라서 함께 있을 때도 같이 밥을 먹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요리해주는 따뜻한 음식은 모두가 식탁에 앉아 먹곤 한다. 

아내가 없는 동안 밥 때가 되면 더 바빠지는 듯하다. 요리를 해서 혼자 먹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울 것인가가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간이식품으로 눈과 손이 가게 된다. 여름철이 되니 귀한 한국 간이음식들이 우리 집 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연은 간단하다. 여름철엔 발트 3국 관광안내사(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을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것 같은 나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기 때문이다. 


음식 선물을 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이 음식이 아내가 없는 지금 아주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컵라면 봉지가 쌓여간다. 


버리지 않고서라고 핏잔을 줄 사람도 있겠다. 참고로 컵라면 봉지는 시골에 계시는 장모님이 이른 봄철 씨파종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모운다. 아내가 그리운 지, 따뜻한 음식이 그리운 지... 아뭏든 잘 있다 오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