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1. 12. 8. 08:11

Portikas
Frontonas
Orderis
Kapitelis
Antablementas: architravas, frizas, karnizas

무슨 용어일까? 건축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위에 있는 단어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용어이다. 리투아니아어로 표기된 것이다. 어제 유럽 건축 역사(고대, 로마시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고전주의, 역사주의, 모더니즘 등) 시험을 보았다.

정말이지 1990년대 초반 헝가리 대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후 20여년만에 처음으로 시험공부를 해보았다. 그것도 모국어 한국어가 아닌 리투아니아어로 보는 시험이었다. 

시험 일주일 전 교수는 그 동안 강의한 자료들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시험문제는 전부 주관식이었다. 한 단어로 답하는 것도 몇 개 있었지만, 대부분 문장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총 42개였다.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었지만, 교수는 서두르지 않았다. 끝까지 시험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기다렸다.

전혀 생소한 단어와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불혹의 나이에 암기까지 해야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왜 내가 이 나이에 이 고생을 하지?"라고 몇 번이나 되내어 보았다.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옆에서 지켜보더니 참 신기해하면서 재미있어 했다. 대체 어떤 방법이었을까?


시험공부다운 시험공부는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시험 공부할 때는 교과서와 참고서가 있었고, 옆에는 늘 하나 더 있었다. 백지로 된 연습장이었다. 추억의 시험공부법이다.

단어나 문장을 암기하려면 바로 이 연습장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수없이 적었다. 처음에는 글자를 또박또박 써다가 암기에 속도가 나면 그냥 볼펜으로 의미없는 모양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이번에 시험공부를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이 옛날 방법을 택했다. 눈으로 반복해서 암기하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잠시 후면 가물가물해졌다. 필기시험이므로 뇌가 다 외우지 못한다면 익숙해진 손이라도 답을 써내려갈 것 같은 바램이 있었다.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당신 같으면 어떻게 공부할 것인데?"
"먼저 눈으로 단어와 문장을 확실히 파악한다. 그리고 연관되는 단어나 문장을 떠올리면서 이해하고 습득한다. 예를 들면 단어 'kapitelis'를 보자. 에스페란토로 kapo가 머리이니, kapitelis는 '위'라는 의미가 있을 듯하다.....
."

아내는 건축용어 'kapitelis'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내의 추론이 맞다. 'kapitelis'는 장식된 기둥(column) 윗부분을 말한다. 암기하려고 종이와 볼펜을 낭비한 내 자신이 무척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당신 정말 대단해!"라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시험공부법에 대한 부모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초4 딸아이가 거들었다.
"아빠는 아빠에게 편하는 방법으로 시험공부하면 돼." 

부끄러움을 상쇄시키는 위로의 말로 들렸다. 중고등학교 시험공부 시절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지금도 연습장에 낙서하듯이 시험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 최근글: 상식을 뛰어넘는 러시아식 선거 수학은 이렇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 4. 20. 17:49

어제 저녁 컴퓨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데
마르티나(고등학교 1학년)가 파일 4개를 스카이프로 보내왔다.
우리 집은 네트워크 프린터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엇이냐고 물으니 역사시험 준비용이라고 한다.
A4용지에 글자가 빽빽하게 채워진 문서이다.

"우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다니!!!"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가 생각이 났다.
길게 서술된 책 내용의 핵심사항을 일일이 공책에 적었다.
그리고 그 핵심사항을 다 외울 때까지 수십 번을 연습지에 쓰곤 했다.    

과거엔 공책에 적었지만 요즘 학생들은 컴퓨터에 적어 프린트를 한다.
그래서 요점 정리 하느라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칭찬해주었다.

"어, 이것은 선생님이 한 것인데......"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자세히 물어보았다.
학교에 역사 선생님이 있는데,
이 선생님은 시험 때가 되면 자기가 가르친 것을
요점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이메일로 보내준다.

학생들은 이 요점 정리한 것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시험문제는 주관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 이렇게 선생님이 직접 요점 정리를 해서
메일로 보내주니 얼마나 시험공부가 편한가!
우리 시절엔 왜 이런 선생님이 없었을까?

하지만 스스로 요점 정리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느리고 힘들지만 이렇게 편하게 공부하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음에 한 표를 던진다.

그래도 요점 정리해주는 자상한 선생님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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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