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14. 2. 28. 06:24

빅토르 프숀카(Viktor Pavlovych Pshonka)는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을 역임했을 때 우크라이나의검찰총장(2010년 11월4일-2014년 2월22일)이었다. 시민혁명이 성공하자 야누코비치와 마찬가지로 그도 의회에서 탄핵당했고,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시위대가 그의 저택을 점령해 언론에 공개한 모습을 보면 마치 왕궁 내부를 보는 듯하다. 그야말로 호화롭기 그지 없다. 부패한 고위공직자의 적나라한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참고로 우크라이나 2013년 1인당 GDP가 3,862달러로 추정된다. 

한편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 자치 공화국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현재 러시아와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자치 공화국은 새로운 검찰총장을 임명했다. 나탈리아 포클론스카야(Natalia Poklonskaya) 검사가 그 주인공이다. [관련글: 크림반도 러시아 귀속 찬성, 검찰총장 미모도 화제]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4. 2. 25. 06:00

세계가 러시아 소치 올림픽에 관심을 집중할 때 동유럽 우크라이나에서 또 한 번 엄청난 역사의 변혁을 맞이했다. 2004년 대통령 부정선거를 규탄했던 오렌지 혁명을 잇는 제2의 시민 혁명이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유럽연합 사전 가입을 위한 절차였던 유럽연합과의 무역 협정에 서명하지 않기로 지난해 11월 21일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이 서명을 기대했던 유럽연합 가입 지지 세력들은 서명 촉구를 위한 시위를 펼쳤다.

3개월 동안 지속된 반정부 시위는 결국 유혈 사태로 이어졌고,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로 100여명의 사람들이 숨졌다. 유럽연합 대신 러시아를 선택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2일 의회에서 탄핵되었고 시위대에 쫓겨 도망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에게는 현재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야누코비치는 공항에서 헬기 탈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어 쌍방의 총격전까지 벌리면서 승용차로 러시아로 국경 통과를 시도했으나 이 또한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림 반도에서 붙잡혀 키에프로 압송되는 것으로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현재 그의 행방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가 버리고 간 관저에는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이를 본 시민들은 다시 한번 분노했다. 메치기랴 공원의 한 구석에 조촐한 집에 살고 있다고 그가 말해왔는데, 실제로는 조촐한 집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호화 대저택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면적의 절반 크기의 땅에 세워진 그의 관저에는 15세기 대형 범선까지 장식된 인공 호수, 동물원, 헬기장, 골프장, 호화 내부 장식, 실내 장식비로 170만유로가 소요된 다실, 금으로 된 수도꼭지, 고급 승용차 수십대, 주유소......  국민을 다시 한번 분노케 한 그의 저택 모습이다. 


아래는 야누코비치의 관저를 담은 영상이다. 
 

  
'푸틴의 잔치'로 알려진 소치 올림픽에 푸틴이 집중할 때 러시아가 지원하는 우크라이나 지배세력이 시민들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인구 5000만명의 17.3%가 러시아인들이다. 이들은 주로 드네프로 강 동쪽 러시아 국경 인근 지역에 살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서쪽과 친할수록 러시아는 우려할 수밖에 없다. 우쿠라이나는 러시아의 주요 대외 수입원인 가스관 등이 통과하고, 흑핸 연안의 크림반도에는 러시아의 흑해함대 기지가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흑해와 카스피해 주변의 소수민족이 분리 독립할 경우 러시아의 전략자원인 석유와 가스 등의 통제에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는 러시아가 향후 수립될 우크라이나 정부의 정책에 따라 내전까지도 야기시킬 수 있는 배경이 될 수 있다. 크림반도의 심페로폴, 세바스토폴에는 벌써 러시아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결집되고 있다.  박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극한 상황에 따라서는 드네프로 강을 중심으로 러시아 지지 동쪽과 유럽연합 지지 서쪽이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될 수도 있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 3. 5. 15:31

리투아니아인 아내 쪽 친척들이 모이면 종종 들리는 소리가 있다.

"으, 리투아니아에서 한국인과 이집트인이 친척이 되었네!"

아내 쪽의 친척이 이집트인과 몇해 전에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살고 있다. 이집트의 시민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의 체제가 무너질 당시 이 이집트인 친척은 위성 텔레비전 방송 시청에 여념이 없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자 우리 집은 곧장 그에게 축하 메세지를 보냈다.

그는 1990년-1991년 리투아니아가 50년 동안 지배해오던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운동에 견주면서 이집트 상황을 설명했다. 무바라크는 지난 30년 동안 이집트를 통치했다.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된 무바라크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그가 입고 있는 양복의 줄무늬를 자세히 보면 바로 그의 이름 "HOSNY MUBARAK"이 새겨져 있다. 기막힌 생각에 놀랄 뿐이다. 과연 진짜일까?
(sourc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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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인 우상적 요소가 결국 시민혁명을 야기한 것으로 여겨진다. 혹시 도난방지용으로 새긴 것은 아닐까...... 좌우간 "이집트=무바라크" 시대가 청산이 되고 "이집트=이집트 모든 국민" 시대가 순조롭게 정착되길 바란다.

* 최근글: 물침대를 보니 보리침대가 떠오른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