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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2. 12. 24. 06:15

12월 21일 
하필이면 세상 종말의 날에 수술날짜를 받았다. 고대 마야인이 남긴 마야력의 주기가 2012년 12월 21일로 끝이 난다는 이유로 지구 종말론이 나돌아 지구촌 곳곳을 뒤숭숭하게 했다.  
전날 우리 식구들은 하나같이 이 지구 종말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지구 멸망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멸망해가는 지구를 구경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종말론을 믿어 가족을 버리고 재물을 받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리투아니아에서 수술은 세 번째이다. 이번 수술은 비교적 작은 수술이었다. "어려운 수술이냐?"는 내 질문에 담당 수술의사는 "크든 작든 수술은 수술이다."라고 답했다. 전신마취를 해야한다고 하니 혹시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수술일이 정말 내 지구 종말이겠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성대결절 수술을 받았다. 
지난 2월 담낭제거 수술을 받았을 때 호흡기 튜브가 성대를 건드려서 상처가 났다. 이는 종종 있는 일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수술 후 몸조리를 잘 해야 하는데 수술 때문에 빌뉴스대학교 한국어 개강일이 늦춰졌다. 그래서 수술마치자마자 그 다음주부터 한국어 강의를 세 차례하고 나니 목이 쉬고, 아파왔다. 그냥 감기 증상으로 목이 아픈 것으로 것으로 생각했다. 

2개월 후 종합진료소에서 성대 육안 진찰을 받았는데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하기에 안심했다. 그런데 이후에도 조금만 말을 많이 하면 목이 빨리 쉬고,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9월에 빌뉴스 대학교 병원을 찾았다. 담당의사는 육안으로 진찰해보더니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나도 (의과대학에서) 강의하고, 당신도 (한국어를) 강의하니 어디 한번 카메라 주입 검사를 해보자"라고 했다. 열심히 찾아보더니 성대에 맺혀 있는 미세한 결절을 발견했다. 그는 수술을 권했다. 수술 일정도 올해 더 이상 강의가 없는 12월 21일로 잡아주었다. 

리투아니아는 수술일 3-10일 전에 관할 종합진료소(poliklinika)에서 수술에 필요한 모든 검사(혈액, 당뇨, 소변, 심전도 등)을 받아야 한다. 이 검사 결과와 의사 소견서를 가지고 수술 병원인 빌뉴스 대학교 병원으로 갔다. 먼저 진료의사 간호사가 서류를 확인한 후 수술 병동 입실 절차하는 곳으로 보냈다. 여기 가서 안내를 받아 해당 층으로 가면 간호사가 병실을 배정한다. 그런데 약 1시간 동안 배정을 받지 못하고 복도에 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수술 예정 임박한 시간에 방을 배정받았다. 깨끗한 1인실이었다. 간단한 성대 진찰을 받고, 곧 바로 수술실로 직행했다. 리투아니아어를 한다고 하니 모두들 반갑게 인사했다. 일원상 서원문을 외우면서 마취제의 위력에 서서히 의식은 사라졌다. 눈을 떠보니 대기실이었고, 병실에 실려오니 1시간 15분이 지난 후였다. 12시 15분에 돌아왔다.



1인실에 소파도 있었지만, 아내는 무사 수술만 확인하고 내 점심 식사를 대신 후다닥 먹고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갔다. 리투아니아에서 세 번 수술을 체험하면서 느낀 것은 환자 가족은 참 편하다라는 것이다. 환자 옆에 상시로 붙어있지 않고, 그저 방문 시간에만 잠깐 같이 있는다.
   


의사는 앞으로 5일간 가능한 절대로 말을 하지 말라고 했다. 묵언수행하는 셈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보았다. 아침에 먹지도, 마시도 못했다. 저녁이 되니 그렇게 배가 고팠다. 저녁 식사로 나온 보리죽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다. 


그런데 수술 후 묵언수행을 처참히 파괴한 제1호가 생겼다. 
저녁 7시 18분 간호사가 체온측정기를 가지고 와서 겨드랑이에 넣어라고 하면서 나갔다.
"체온 측정했어요?"라고 조금 후에 와서 물었다.
"예, 35...."
"말하지 마세요!"

'그러면 아예 묻지를 말지!'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묵은수행을 스스로 파괴해 후회했지만, 성대수술 후 첫 목소리를 확인하게 되어서 기뻤다. 

다음날 오전 퇴원 절차를 도우려고 아내가 왔다. 나는 종이에 쓰고 아내는 말을 했다.
"당분간 고개로 ‘예’와 ‘아니’라고 답할 수는 질문만 하도록 해라."

집으로 돌아와자 딸아이는 ‘아빠가 말할 수 없다’는 것에 신기해 했다. 나름대로 의사소통하는 법을 생각해냈다. 박수를 네 번 치면 "딸아, 나 한테로 와! 도움이 필요해"라는 신호이다. 

아내가 가까이 오자 손짓으로 쫓아내었다. 아내가 영문을 몰라서 화난 듯했다. 종이에 이렇게 썼다.

"Kiam iu estas apude, mi volas paroli" (누가 옆에 있으면 말하고 싶어.)

아내는 딸들에게 이 쪽지를 전하자 식구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다. 생활 속 묵언수행은 모두에게 어렵다. 

덧붙여 성대수술 비용은 사회보장으로 해결되었다. 실제로 들어간 비용은 집에서 병원까지 왕복 자동차 연료비와 주차비였다. 1인실 배정받았다고 해서 비용을 더 부담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12월 21일 지구의 종말은 오지 않았지만, 내 수술 역사는 이번 세 번으로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란다. 모두에게 건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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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