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4. 12. 15. 08:22

세상 어디나 누군가를 방문할 때 무엇인가 선물을 들고 간다. 일전에 지방에 살고 계시는 리투아니아인 장모님이 우리 집을 잠깐 방문했다. 빌뉴스 병원에서 진료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 장모님은 몇 가지 선물을 가져 오신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훈제 돼지고기, 그리고 아내가 좋아하는 시골 치즈다. 그런데 이날은 사위를 위한 선물도 가져 오셨다. 바로 아래 플라스틱병에 담긴 것이다. 



무엇일까? 하얀 조각들이 밑에 깔려 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마늘 조각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생마늘을 조각 내어서 밑에 넣고 그 위에 40도짜리 술 보드카를 부었다. 한마디로 마늘주다. 사위가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아시는데 왜 이 마늘주을 선물했을까?

"사위, 이게 뭔지 알아?"
"마늘이 있네요."
"이게 바로 내 겨울철 상비약이야."
"특별히 어디에 좋은 데는요?"
"이게 말이야. 감기에 특효약이야. 내가 이거 때문에 감기에 안 걸린다고."
"그럼, 언제 마시나요?"
"감기 낌새가 있을 때 바로 한잔씩 마셔봐. 그럼, 감기가 도망가."


마늘 보드카 = 고춧가루 소주
한국 사람들도 감기에 걸렸을 때 소주에 고춧가루를 넣어 마신다고 하니 장모님이 맞장구를 쳐셨다. 
"봐, 매운 마늘이 매운 고춧고루와 서로 통하잖아."

부엌 찬장에 놓아 둔 것만으로 효과는 있는지 다행히 아직까지 이번 겨울에는 이 장모님 마늘주를 마실 기회가 없었다. 물론 계속 없길 바란다. 감기와 마늘 이야기가 나왔으니 마늘로 감기를 예방한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몇 해 전 독감이 유행했을 때 빌뉴스의 한 유치원에서는 아이 한 명도 독감에 걸리지 않아서 화제가 되었다. 그 비책이 마늘이다. 유치원 교사 두 명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걀 모양의 초콜릿 킨더 서프라이즈의 플라스틱통을 이용했다. 

이 통 안에 껍질을 깐 마늘 한 쪽을 넣는다. 이 통을 실로 묶어서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에 걸어 놓는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놀면서 가끔 이 통을 열고 마늘 냄새를 맡게 한다. 매일 새로운 마늘을 교체한다. 이 유치원은 음식에도 평소보다 더 많이 마늘 양념을 사용하고 있다.
 
대체로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마늘 냄새를 싫어한다. 아내나 남편의 접근을 막으려면 마늘을 먹으면 된다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감기 초기나 감기 예방을 위해 이 마늘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4. 07:08

남편의 처가 안 챙기기나 아내의 지나친 처가 챙기기는 가정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명절에 양가 부모님 용돈 챙기기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넉넉한 살림이라면 예외일 것이다. 그런데 주변 리투아니아 부부들에게는 부모님 용돈 주기로 서로 골치 아파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연금을 받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 대부분은 최저 월급(50만 원)에 못 미치는 연금을 받고 있지만, 부모 두 분이 받으면 자녀에게 아쉬운 부탁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여름철 텃밭에서 직접 재배하는 오이, 양파, 마늘, 양배추, 붉은 사탕무, 완두콩, 감자, 당근 등은 식료비를 줄이는 데 크게 이바지한다. 사과, 버찌, 딸기를 비롯한 식용 열매도 겨울철에 많은 도움을 준다.

그러니 처가집에 갈 때 물질적으로 큰 부담감이 없다. 무슨 선물을 사서 드릴까만 고민하면 된다. 보통 선물은 건강보조품이다. 

장모님은 다른 연금 수령자보다 처지가 조금 나은 편에 속한다. 바로 자력이 없는 노모를 모시고 살기 때문이다. 이 경우 노모 연금에다 보살피는 비용으로 연금 하나가 더 나온다. 세 식구가 사는 데 연금이 4명 분이니 절약하면 다소 여유가 있다.

▲ 부활절이지만 밖에 눈이 내리고, 부엌엔 장모님이 키우는 화초가 꽃을 피우고 있다.

장모님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기름값 하라고 약간의 돈을 아내의 지갑에 넣어준다. 이번 부활절에는 느닷없이 부르더니 나에게까지 챙겨주셨다.

"이거 지나났지만 생일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생일이 지났는데......"

완강히 거절했지만 더 완강히 주려고 하셨다. 

"가계살림 계좌에 넣지 않고 용돈으로 잘 써겠습니다."

가계살림은 아내가 맡아서 하고, 가족을 위한 이 계좌로 들어가면 마음 놓고 개인 용도로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장모님의 200리타스(약 9만 원)

지천명의 나이에 비록 생일 선물용이지만 장모님으로부터 돈을 받으니 꼭 세뱃돈을 받은 아이의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연금 제도 덕분에 부모 용돈 챙기기에 자녀가 별다른 신경을 써지 않아도 되는 이곳 사람들의 삶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9. 26. 06:10

이번 주말 몇년 동안 쌓아만 오던 책들을 정리했다. 자주 필요한 책은 눈에 띄는 곳에 놓고 별다른 필요가 없는 책은 박스에 넣기로 했다. 

"당신은 책정리를 하는 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걸리나?"라며 아내가 한 소리했다.

책정리 시간이 아니라 독서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분류할까 생각하면서 쪽을 넘긴다는 것이 벌써 그 내용에 빠져들고 있었다. 

손에는 20년전 슬로바키아에서 출판된 "Anekdotoj pri famaj homoj"(유명인사들의 일화)라는 에스페란토 책이 잡혀있었다. 이들 중 아리스토텔레스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Aristoteles
, malnovgreka filozofo (-384 ~ -322)
La filozofo Aristoteles havis filinon. Iutage venis svati ŝin du junuloj - unu riĉa, la alia malriĉa.
Al la riĉa li diris:
"Mi ne donos al vi mian filinon."
Kaj li donis ŝin al la malriĉa.
Demandita, kial li faris tiel, Aristoteles respondis:
"Tiu riĉulo estas stulta, do mi timis, ke li malriĉiĝos, sed la malriĉa knabo estas saĝa, do mi povas esperi, ke li fariĝos riĉa."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그리스 철학자 (기원전 384-322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겐 딸이 있었다. 어느 날 두 청년이 청혼하러 왔다.  한 청년은 부자였고, 다른 청년은 가난했다. 
"너에게 내 딸을 주지 않겠다"라고 부유한 청년에게 말했다. 
그는 가난한 청년에게 딸을 주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질문을 받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부자는 바보이다. 그래서 그가 가난해질 것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 빈자는 현명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부자가 될 것이라 기대할 수가 있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생각해서 사위를 선택했다. 당장 부자이지만, 그 부를 지속시킬 수 없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그는 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은 빈자이지만, 부자가 될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에게 딸을 주었다. 200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위 선택법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즘은 부모가 사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딸이 남편을 선택하는 시대이다. 세상의 딸들이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결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닮기를 바란다. 부유하면서 그 부유함을 지속시킬 수 있는 현명함을 가진 남자라면 바랄 나위가 없을 것 같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6. 27.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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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은 하지이다. 일년 중 낮이 가장 긴 날이자 밤이 가장 짧은 날이다. 이날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하지 축제가 열리는 장소를 향해 몰린다. 리투아니아는 24일이 국경일로 할 정도로 하지를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긴다. 새벽 4시가 되면 밝아지고 밤 11시가 되야 어두워진다. 

날이 훤하지만, 저녁 무렵 사람들은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향한다. 가면서 꽃과 풀로 화관을 만든다. 아이들은 나무에 화관걸기 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 화관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데 이날 노래의 주된 주제는 바로 태양을 찬미하는 노래들이다. 이를 통해 태양숭배의 고대풍습을 엿볼 수 있다. 해가 언덕을 넘으면 사람들은 모닥불을 피운다. 이 모닥불은 건강과 풍년을 기원한다. 그리고 이제 점점 길어질 밤의 악령을 쫓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모닥불 주위에서 춤을 추다가 밤 12시가 되면 강가로 간다. 바로 머리에 쓴 화관에 초을 얹고 강물에 띄우기 위해서다. 옛날엔 결혼하지 않는 여자들이 화관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모두가 만든다. 왜 강물에 띄울까? 아주 옛날 흘러내려오는 화관을 줍는 이웃 마을 총각이 바로 그 여자의 배필이 된다는 설이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지금은 각자의 꿈과 소원을 담아 강물에 띄워보낸다. 그리고 다시 모닥불로 돌아와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흥겨운 춤과 노래로 밤을 보낸다. 이렇게 짧은 하지 밤을 보내며 한 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리투아니아 사람들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이날 아내는 행사장으로 가든지 친척집을 가든지 아파트를 벗어나자고 했다. 약간의 행선지 실랑이를 벌이다가 빌뉴스 교외에 사는 친척집으로 꼬치구이를 사서 가기로 했다. 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꼬치구이를 하면서 긴긴 날을 작별했다. 그래도 음악이 있어야 하기에 이날의 악사는 남자 두 분이다. 이들은 사위와 장인이었다. 두 분 다 백발이라 누가 사위이고, 장인인지 모르는 사람은 구별하기가 힘든다. 
 


하모니카 불고, 아코디언 연주하는 장인과 사위의 정겨운 모습을 보고 있으니 한 리투아니아인 친구가 떠올랐다. 친구는 당시 40대 중반 노총각이었고, 20대 중반의 여자친구와 동거하고 있었다. 어느날 여자친구에게 "아버지 같은 노총각을 사귄다"는 것에 주변 사람들의 의견은 어떠한 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또래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듣거나,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본 기억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 오히려 아버지는 자기 친구 같은 사위를 얻게 되어 기뻐할 정도라고 했다. 이에 아래 동영상 속 사위와 장인의 경우와 똑 같다. 


이렇게 주변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보면 애인이나 배필을 선택할 때 우선 나이 차이나 외형적 조건을 따지면서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사람들과는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연령 차이가 많다고 해서 부모가 극구 반대하는 것은 찾아보기가 힘든다. 하모니카(장인)와 아코디언(사위)의 흥겨운 소리에 짝들의 연령차이에 대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처세를 소개해본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0. 3. 15. 05:01

이 글은 해외에서 갑상선 수술체험기 - 진단과 수술결정에 이어지는 글이다. 이 글은 해외에서 갑상선 수술체험기 - 입원과 수술 편이다. 드디어 3월 8일 오전 빌뉴스대학교 수술병원에 속한 보건소 담당의사와 수술병동 원무과를 거쳐 병실이 있는 5층으로 왔다. 병실 배정은 간호사의 몫이었다.

“두 청년이 있는 4인 병실이 어때요?”라고 간호사가 아내에게 물었다.
“아참, 오늘이 여성의 날인데 꽃을 잊었네. 꽃 대신 여기 초콜릿 선물을 받으세요.”라고 옆에서 내가 끼어들었다.

병원에서 있는 동안 혹시 친절한 간호사가 있으면 주려고 서너 개의 초콜릿을 준비했다. 순간적으로 초콜릿이 무슨 힘을 발휘했는지 간호사는 잠시 병실입실표를 살펴보더니 말을 이어갔다.

“비어있는 2인실 병실은 어때요?”
“좋아요.”

이렇게 방을 배정받았다. 화장실과 세면대가 딸린 방이었다. 입원 첫 날은 2인실 방을 독방으로 쓰게 되었다. 아내는 떠나고 홀로 남은 방에서 다음날의 수술을 잊기 위해 책을 쉼 없이 읽었다. 이 날은 식사제공이 없어 병원식당에 가서 밥을 사먹어야 했다.

서류담당 의사로부터 수술에 관한 설명을 들었고, 여러 곳에 서명했다. 수술범위가 갑상선 전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적혀있었다. 지난 번 수술의사를 면담할 때는 일단 갑상선 결절을 드러내면서 즉각 세포검사를 하고 악성으로 판단되면 전체를 제거하는 것으로 협의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일단 서명했다. 얼마 후 수술담당 의사가 병실로 와서 지난 번 협의를 확인했고, 서류담당 의사가 새로운 서류를 작성해왔다. 기존에 서명한 서류를 내가 보는 앞에서 찢었다.

오후에 마취의사가 찾아왔다. 그 동안 수술 경험과 마취 경험, 약물 부작용을 확인했다. 병원약국에서 수술 후 다리 근육 보호를 위한 띠 3m와 피부 접착제를 구입했다. 수술하면 봉합용 바늘과 실이 떠오르는 데 이제 접착제를 사용하는 것 같아 몹시 놀라웠다. 간호사는 수술 후 상처 표시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안심시켰다. 수술과 회복에는 보통 2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다음날 3월 9일 10시 40분에 수술실 침대에 눕혀졌다. 저승사자가 내 침대를 끌고 가는 기분이 들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는 복도의 전등은 밝았다. 누운 침대는 모두 4개였다. 병실 침대, 병실에서 수술실 입구까지 이동 침대, 수술실 입구에서 수술대까치 이동 침대, 그리고 수술대 침대였다. 수술실을 주마간산(走馬看山)해보니 최신식 시설물이었다. 이어서 수술대 바로 위의 전등을 보고 있는데 정신이 몽롱함을 느끼자마자 그 후 기억은 사라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위가 산만했다. 내 주위에 사람들이 뭔가를 정리하는 듯했다. 눈을 떠보니 수술대 전등이 아니었다. 회복실이었다. 병실로 돌아오니 수술 시작한 후 4시간 뒤였다.

우리는 정보를 알려줄 수 없어요 - 인상적이었다

수술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아내와 장모뿐이었다고 한다. 수술시간이 길어지자 아내는 수술실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붙잡고 “한국인 어떻게 되었나요?”라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물었다. 모두가 한결 같은 대답을 했다. “우리는 정보를 알려줄 수가 없어요.” 이 대답은 이번 수술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지난 번 2차 조직검사를 했을 때 결과를 전화로 문의했다. 그때도 “담당의사외에는 정보를 알려줄 수가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보건소에서 혈액검사 결과를 물었을 때 “우리는 검사만 하지 분석결과는 담당의사가 한다.”라는 답을 들었다.

회복실에서 나와 병실로 와보니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병실에 의자가 두 개 있는데 하나는 아내가 앉아있었고, 다른 하나는 시골에 사는 장모가 앉아있었다. 의식이 몽롱한 상태라 헛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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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술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겨진 사위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 장모님

이 날 장모는 아침 일찍 일어나 250km 떨어진 곳에서 기차를 타고 왔다. 빌뉴스로 오는 중에 아내에게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보내면서 마치 시골집에 있는 것처럼 격려했다. 수술 받는 동안 수술병동에 도착한 후에야 아내에게 전화해서 정확한 위치를 물었다. 수술결과 불안에 떨고 있는 아내에게 장모의 출현은 큰 힘이 되었다. 사위와 딸에게 먼 길을 멀다하지 않고 깜짝출현으로 힘을 실어주신 장모님이 무척 고마웠다.

수술 직후 의사는 아내에게 암이 없음을 판단해서 한 쪽만 절개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학술연구를 위해 보건소에 가지 말고 직접 1년간 몇 차례 수술의사한테 와서 향후 갑상선 기능 검사를 하는 데 서명했다.

* 관련글: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2. 9.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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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살면서 겨울철에 제일 그리운 것이 바로 한국식 온돌이다. 따뜻한 바닥에 깔아놓은 이불 속에서 들어가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는 달콤한 맛을 안 본 지도 오래되었다.

유럽의 난방은 대부분 라디에이터이다. 창문 밑 벽에 가로로 길쭉하게 설치되어 있다. 중앙난방인 우리집 복도에는 집높이 중간에 걸어놓은 온도계가 있다. 겨울철에는 바깥온도와는 무관하게 보통 20도를 가르키고 있지만 바닥은 이 보다 온도가 더 낮다.

양말 한 벌을 싣고 신으면 특히 발목에서 한기를 을씬 느낀다. 그래서 겨울철에는 양말 두 벌을 신고 실내화까지 신으면서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실내화 대신 틀실로 짜서 만든 덧신을 신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은 긴긴 겨울밤에 털실로 덧신을 만들어 신기도 하고 선물이나 팔기도 한다.

지난 주말 친척의 장례식 참석차 장모님이 살고 계시는 도시를 다녀왔다. 갈 때마다 장모님이 텃밭에서 재배한 양파, 마늘, 당근, 양배추, 사과 등을 푸짐하게 받아온다. 이번에는 부수적으로 선물 하나를 더 받았다. 이 선물이 바로 털신 덧신이다. 사위, 딸, 손녀들 모두에게 직접 짠 털신 덧신을 주었다. 이렇게 장모님표 털신 덧신으로 남은 겨울을 몸과 마음 모두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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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할머니가 직접 짠 털실 덧신을 신고 있는 요가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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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털신 선물 받았어!"라고 끼어드는 아내의 왼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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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모님표 덧신으로 따뜻하게 겨울나기하는 초유스의 두 발

"장모님, 털실이 너무 쉽게 닳아서 한 철 밖에 신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쉬워요."
"이보게, 걱정하지마! 내년에도 또 짜줌세."


* 최근글: 주사위 1만 4천개로 만든 모자이크 얼굴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9. 3. 19. 12:31

우선 일전에 올린 "유럽인 장모의 사위 대접 음식"에 큰 관심과 많은 호응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리투아니아 음식이라서 그런지 적지 않은 분들이 댓글에서 한 번 요리해보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더 많은 동유럽 음식들 소개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쿠겔리스'(kugelis)보다 더 널리 알려진 리투아니아 전통음식 '쩨펠리나이'(cepelinai,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감자 왕만두')를 영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리투아니아를 방문하는 외국 사람치고 이 음식을 맛보지 않은 사람들은 드물 것입니다. 영상에 나오는 분은 초유스의 장모님입니다.  

장모님 말씀처럼 "쩨펠리나이"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일이 필요하죠. 그래서 이는 주로 주말, 축제일 등에 만들어 먹는 음식입니다. 온 가족이 합심해서 만들죠. 만들기는 어렵지만,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일을 분담하고 협력하면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이국적인 음식을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은 한 번 시도해보세요. 저는 이 '쩨펠리나이'를 먹을 때마다 어린 시절 어머님께서 해주신 감자개떡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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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마지막 컷에 나오는 장모님의 노랫말 "오늘 아름다운 우리 가족이 모이네. 쩨펠리나이 잔치가 열리네"처럼, 모든 가족의 아름다움과 화목을 위해 이 영상의 '쩨펠리나이'를 바칩니다.

* 관련글:
유럽인 장모의 사위 대접 음식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9. 3. 16. 11:28

한국에는 흔히 '백년 손님'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아 대접한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장모는 딸의 화목한 결혼생활을 바라면서 사위를 극진하게 대접해야 하는 귀한 존재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유럽인 장모를 둔 사위가 처갓집을 가면 과연 무슨 음식을 대접받을까? 나라마다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초유스의 경우가 이렇다.

먼저 음식을 말하기 전에 보편적으로 리투아니아에서 사위와 장모의 관계는 그렇게 썩 좋은 관계가 아니다. 한 예로 집안의 골방이나 다락방, 물건창고를 농담으로 '장모방'이라 부른다. 장모가 딸을 보기 위해 찾아왔을 때 장모가 이곳에서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 한다. 장모의 지나친 간섭에 사위들의 반란인 셈이다. 더욱이 리투아니아는 모권이 강한 사회이니 주눅 든 사위들이 한풀이인 셈이다.

그래도 딸의 남편, 사위인지라 장모는 잘해준다. 지난 주 3월 11일은 리투아니아가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인데, 한국 같으면 3월 1일절에 해당하는 중요한 경축행사이다. 그래서 주말까지 연휴라 거의 6개월 만에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250킬로미터 떨어진 처갓집으로 갔다. 도착이니 저녁 무렵이라 그냥 별다른 음식 없이 술과 평상의 음식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다음날 점심엔 장모의 사위 대접 특별음식이 마련되었다. 블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장모는 한국인들에게 유럽 장모가 해주는 사위 대접 리투아니아 전통 음식을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면서 사진 촬영을 하라고 하신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주말이나 손님이 왔을 때 주로 해 먹는 음식이 바로 '쩨펠리나이'와 '쿠겔리스' 등이다. 이날 장모는 사위를 위해 '쿠겔리스'를 했다. 장모의 지시(?)대로 요리과정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먼저 생감자를 갈아서 양파, 달걀, 후추, 끓인 우유(찬 우유는 감자 색을 변화시킴), 소금 등으로 양념한다. 그리고 보통 하루 전에 닭고기를 미리 양념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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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에 식용유를 골고루 뿌리고, 그 위에 약간의 밀가루를 뿌린다. 이는 음식이 오븐에 달라붙는 것을 완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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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닭고기를 얹고 그 위로 양념한 생감자즙을 골고루 붓는다. 닭고기 밑에도 생감자즙을 넣는다. 마지막으로 생감자즙을 평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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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 시간 정도 가스불에 요리하면,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운 '쿠겔리스' 요리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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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가 해주신 '쿠겔리스'가 접시에 오르는 순간이다. 닭고기와 감자가 어울린 '쿠겔리스'를 먹으면서 한국 장모들의 '씨암탉'이 떠오른다. 장모와 사위의 영원한 화목을 위해! 그런데 이잉~~ 맥주가 빠졌네...... '쿠겔리스' 반주로는 맥주가 일품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