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1. 10. 20. 09:41

10월 8일 아내는 훌쩍 아시아 인도로 떠나버렸다. 인도로 간다면 보통 정신 수양 내지 고행을 떠올릴 법하다. 아내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다행스럽다. 자신의 마음을 찾는다고 인도에서 더 오래 머물겠다고 고집한다면 가족의 균형이 깨질 것 같기 때문이다.

결혼한 후 아내가 딸아이와 남편을 남겨놓고 집을 떠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자 가장 긴 시간이다. 아내는 3주간 인도 정부 초청으로 델리에서 국제 리더쉽 연수에 참가하고 있다.

아내없이 지내는 동안 가장 힘든 일은 뭐니해도 음식 장만이었다. 다문화 가정인 우리 집은 자기 식사는 자기가 챙겨먹는 일이 다반사이다. 아내는 리투아니아식, 나는 한국식, 딸아이는 잡식이다. 딸아이 음식은 라면, 국수, 미역국, 김치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내가 돕는다.

다양한 식품을 계획하고 구입하는 일은 아내의 몫이다. 그런데 아내가 없다. 특히 딸아이의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어떻게 아이의 끼니를 해결하나?"가 가장 큰 화두였다. 아침은 빵 두 조각에 코코아차, 점심은 가게에서 구입한 닭고기, 저녁은 우유밥...... 그러면 내일은? 그리고 그 다음날은? 어느 날은 하루 세끼를 피자만 먹은 날도 있었다. 되돌아보니 어떻게 지금껏 끼니를 해결했는지 전설이 된 것 같다.

음식 장만에 버금가는 일이 설겆이이다. 왜 그리 딸아이는 물컵을 많이 사용하는지, 왜 그리 접시는 사방에 널려있는지...... 아내가 있을 때 자기 그릇은 자기가 씻는 일이 허다했다. 아내는 깔끔한 성격에 늘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귀찮아도 설겆이를 해야 했다. 그런데 바쁘다는 핑계로 부엌에는 씻어야 할 물컵, 접시 등이 쌓여만 갔다. 예전에 아내가 식기세착기를 사자고 제안했을 때 사버릴 것을...... 반대하다가 요렇게 생고생하는구나!

어제 결혼생활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려보았다. 아내가 떠나기 전 어떻게 세탁기를 사용해야 하는 지 공책에 순서대로 하나하나 적어놓았다. 공책을 펼쳐놓고 세탁을 시작했다. 다행히 성공이었다. 세탁한 옷은 라디에이터에서 지금 잘 마르고 있다.

또 다른 힘들은 아직 미성년인 만 10살 딸아이를 돌보는 일이다. 딸은 특히 어두워지는 저녁 시간에는 홀로 있기를 싫어한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월요일과 수요일 딸아이는 발레 수업을 듣고 저녁 6시경에 돌아오고, 나는 5시 30분경 수업을 듣기 위해 집을 나가야 한다. 아래는 바로 이때 딸에게 남긴 쪽지이다.


아내없이 지난 12일!
아내라는 존재, 엄마라는 존재가 가족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함을 새롭게 실감했다. 아내가 있을 때는 아내의 역할이 그렇게 대스럽지 않게 보였는데 막상 없으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였다. "있을 때 서로 잘 해!"라는 말이 뼈속까지 느껴지는 기간이었다. 몇 시간 후면 딸아이와 둘이서 한국을 방문할 시간이다. 여전히 아내없는 둘만의 시간이지만 한국에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10. 6. 08:09

리투아니아 법에 따르면 부모 중 한 사람이 미성년자 자녀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려면 부모 한 쪽의 동의서를 공증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사항이 폐지되어 동의서가 없어도 된다. 이제 얼마 후 딸아이와 둘이서만 한국에 간다. 아내의 동의서 없이도 리투아니아를 출국할 수가 있다. 하지만 불안요소는 있다.

내 여권에 미성년자 딸아이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면 걱정이 없다. 문제는 딸아이의 국적은 리투아니아, 내 국적은 한국이다. 또한 여권상 딸아이의 성(姓)과 나의 성이 다르다. 이렇게 여권상 완전히 아버지와 딸이 남남이다. 가족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표면상 근거는 얼굴이 닮았다는 것과 둘이 한국어로 말한다는 것이다.  

딸아이가 태어나자 국적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고민거리였다. 리투아니아가 생활 터전이니 리투아니아 국적을 주는 것이 도리라 생각했다. 지금도 리투아니아는 이중 국적에 관대하지 않다. 1990년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리투아니아는 단일 국적이 절실했다. 리투아니아에는 폴란드인,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등 여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소수 민족이 다수를 이룬다. 그래서 리투아니아는 단일 국적을 국가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한 방법으로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의서가 없어도 되지만 행여나 제3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동의서와 공증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론 아내는 이에 대해 소극적이었다. 종종 다문화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부모 중 한 사람이 자녀를 데리고 도망을 가버리는 경우이다. 동의서는 도망가는 쪽에게는 날개를 달아주고, 남은 쪽에는 그야말로 후회막급을 안겨준다.

공증사무실에 가면서 아내와 나눈 대화다.

"언제까지 동의서를 유효하게 할 것인데?"라고 아내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까지로 해야지. 당신 한국 가서 안돌아오면 어떻게 해?"
"지금껏 같이 살았으면 믿어야지. 그리고 다음에 딸아이와 또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있잖아."
"기간은 한국에서 돌아오는 날까지, 장소는 한국으로 국한해서 동의서를 작성할 거야."
"알았어.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라고 답했다.

아내의 근심에 불을 더 짚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공증사무실에 도착하자 아내의 태도가 달라졌다. 문서를 작성하는 직원이 물었다.

"기간은 언제까지 할까요?"
"딸아이가 (18세) 성년이 될 때까지 해주세요."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어느 나라로 가든지 상관이 없도록 해주세요."

아내에게 왜 조금 전과 180도 다른 결정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당신을 믿잖아!"

 
동의서를 확인해보았다. 핵심 내용은 "미성년자인 나의 딸이 성년이 될 때까지 동행인 최대석과 함께 어느 나라에도 가는 것에 동의한다"이다. 아내에게는 딸이라는 것이 분명히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버지라는 표현이 전혀 없다. 아버지라는 단어 대신에 동행인이 들어가 있다. 아무리 정형적인 문구이지만 기분이 섭섭했다. "동행인 최대석"보다야 "아버지 최대석"이가 훨씬 더 친근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8. 14. 06:06

일전에 리투아니아 현지인들과 함께 주말여행을 다녀왔다. 첫날 강을 따라 카누를 타면서 보냈고, 다음날 호수에서 수영하면서 일광욕을 즐겼다. 일행은 대부분 30-40대 연령층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대화를 나누는 중 아내가 말을 꺼냈다.

[오른쪽 사진: 조형물 같은 리투아니아 무인 주유소 (샤울레이 소재)] 

"여자는 그래도 가슴이 좀 있어야 하겠더라."
"난데없이 왜?"
"오늘 비키니 입은 사람들 보니 가슴이 거의 없더라."
"그러게. 아마 모두 미혼이라서 그럴까......"

며칠 후 주유소를 갔다. 리투아니아 주유소는 대부분 운전자가 직접 주유한다. 아내는 무인 주유소를 선호한다. 돈을 내려고 사무실까지 가야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고, 또한 가격이 유인 주유소보다 약간 싸기 때문이다.

우리 집 차 운전은 아내 몫이고, 주유소에서 급유는 나의 몫이다. 우리 차 바로 앞에 고급차 렉서스가 주유하려고 멈추어섰다. 운전석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날씬하고 잘 생긴 젊은 여자였다.

이 여자는 가슴이 보이는 쪽으로 서서 주유하고 있었다. 등을 보이고 주유했더라면 아내의 놀림이 이어지지 않았을 텐테 말이다. 

주유소에 가면 늘 주의하는 것이 하나 있다. 주유기 앞부문 색깔이다. 녹색이냐 아니면 검은색이냐이다. 녹색은 휘발유이고, 검은색은 디젤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차도 디젤이었다. 어느 날 그날따라 기름통을 가득 채웠다. 주유소가 언덕 위에 있었다. 주유를 마치고 신나게 언덕을 내려와서 오르막길을 오를 때 시동이 꺼져버렸다. 황당 그 자체였다. 아무리 시동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결국 정비소 차를 불렀다. 원인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디젤를 넣어야 하는 데 휘발유를 넣었기 때문이다. 주유할 때마다 주의하는 데 말이다. 그날도 주의한다고 하면서 주유했는데 결과적으로 휘발유를 넣었다. 무엇에 꼭 홀린 것 같았다.

이후부터 더욱 주의한다. 주유하는 앞 사람이 무슨 색의 주유기를 들고 있는지도 유심히 보고, 또한 주유기를 기름통에 꽂아넣고도 무슨 색인지를 다시 확인한다.


이날도 앞 사람의 주유기를 살피느라 자연히 눈의 촛점이 그쪽으로 향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아내는 "예쁜 여자"가 앞에 있으니 남편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 궁금한 듯했다. 더욱이 "예쁜 여자"는 한눈에 노브라임을 금방 알 수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 관련글: 생애 첫 주유하는 여자의 서툰 모습 인기

"세상 남자들은 다 똑 같아. 저 여자의 동선따라 당신 눈이 그대로 따라가네."
"그래. 나라고 별 수 있겠니...... ㅎㅎㅎ"

이런 경우 주유기 색깔 확인 버릇 때문이라는 변명은 너무 궁색하다. 놀림을 그대로 수긍하는 것이 놀림에 의한 심적 갈등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일이 아닐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12. 27. 07:11

지난 20일(일요일) 친척 부부와 함께 우리 부부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180km 떨어진 도시를 다녀왔다. 가는 동안 빌뉴스 지역에서는 내내 눈이 내리는 악천후였다. 하지만 이 지역을 벗어나니 눈은 내리지 않았다.

일을 보고 빌뉴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목적지를 100km 앞에 놓아두고 차가 말썽이었다. "안전을 위해 시동을 꺼겼으니 가까운 서비스 센타에 가서 점검을 받으라"라는 내용의 메세지가 떴다. 가까운 서비스 센타라!!!

4차선 140km 고속도로인데 중간지점에 도시가 하나 있을 뿐이다. 그외에는 정말 허허 벌판이다. 눈은 쏟아지고, 밤은 어둡고, 지나가는 차는 거의 없으니 그야말로 두려움과 공포감마저 일어났다. 경고 메세지를 무시하고 여러 차례 앞으로 거북이 속도로 나아갔지만 지속적으로 경고음이 나오고, 차의 시동은 매번 자동으로 꺼졌다.

어떻게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부담없이 일단 견인차를 불러기로 했다. 보험조건 중 목적지까지 견인차로 차를 운반하고, 택시로 사람들을 태워주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눈오는 밤 8시에 신속하게 견인차가 올리는 만무했다. 보험회사에 전화하니 차분한 목소리로 가까운 지역에 있는 견인차를 수소문하겠다는 답이 왔다. 2시간 이내에 도착한다는 추가 전화가 왔다.

그렇다고 무작정 눈이 펑펑 쏟아지는 도로가에 정차해 기다리는 것보다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는 데에 모두 뜻을 모았다. 요령이 생겼다. 경고음이 울리고 난 후 신속히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기어를 d에서 p에 놓으니 차가 자동으로 시동을 끄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엔진과 밧데리에 무리를 줄 수도 있다는 염려가 있었지만 이 요령 터득으로 30km를 더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었다.

마침내 중간 지점인 주유소에 도착해 견인차와 택시를 기다렸다. 긴장이 확 풀렸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아직 종합보험에 들기를 꺼려하고, 대부분 책임보험만 든다. 이런 견인의 경우를 당하니 종합보험에 가입해놓기를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험회사가 계약조건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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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차가 견인되자 사진기를 꺼내 현장을 찍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당신은 우리 차가 견인되는 데 도대체 어린애처럼 사진찍을 마음이 어디에서 나오나?"라고 울화가 치미는 듯 말했다. 서비스 센타에 가서 받을 원인진단과 수리 비용견적을 생각하니 아내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았다.

차만 견인차에 보내고 우리 일행 모두는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오면서 이제는 집에 돌아간다는 안도감에 농담들이 오고갔다. 아뿔싸, 견인차에 대한 정보를 하나도 적어놓지 않았다. 물론 보험회사와 한 통화기록은 남아있지만, 혹시 견인차의 운전수가 나쁜 마음을 먹고 우리 차를 빼돌린다면 어덯게 하나..... 농담 반 걱정 반이 대화 속에 묻어나왔다.

"당신이 아까 사진을 찍어놓길 이제 생각해보니 정말 잘 한 것 같다."라고 아내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 최근글: 유럽 차에 붙은 초록색 단풍잎의 의미는?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5. 18. 15:59

7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하도 졸라서 지난 일요일 사우나를 다녀왔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도 최신식 사우나장이 여러 곳에 있다. 대부분 다양한 사우나와 수영장,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물미끄럼틀 등이 갖추어져 있다.

▲ 임풀스 수영장 내부 (사진 출처: impuls.lt)


이제 곧 여름에 오면 호수에 가서 수영을 많이 할 것이라고 말려보지만, "내가 시험에서 만점을 맞았으니 내 소원 딱 한 번만 들어줘야 해!"라는 딸아이 말에 그만 손을 들고 말았다.

집에서 가까운 사우나장에 가기로 했다. 가족 3인 입장권이 66라타스(3만3천원)였다. 들어가는 입구는 남녀가 따로따로이지만, 모두 수영복을 입고 사우나장에서 같이 만나는 구조로 되어있다.

아직 7살이라 딸아이를 혼자 놓아두지 못하고 우리 부부는 번갈아가면서 사우나를 해야 했다. 특히 한창 헤엄치기를 배우는 딸아이는 자기 키보다 깊은 물에서 수영배우기를 즐겨했다. 하다가 지치면 다양한 수압마사지를 할 수 있는 온탕에 들어가 쉬곤했다.

이렇게 딸아이와 둘이서 온탕에 있는 데 우리에게 계속 시선을 집중하던 한 여자가 갑자기 다가왔다. 그리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거리를 좀 두고 말을 걸었다. 첫 물음은 "어이"라는 말이 "중국말인지 일본말이지 아느냐?"였다.

"얼마 전 마사지소에서 들은 말인 데 리투아니아어로 "터잎"을 "어이"라고 하더라. 이 말이 맞냐?"

별 양념가가 없는 말을 건넸다. 중국말과 일본말을 모른다고 해도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물어왔다. 그리고 거리를 좁히고 자꾸만 우리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그 여자가 수영복 어깨끈을 자주 바르게 할 때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난감했다.

마침내 딸아이와 피부를 맞닿는 거리까지 왔다. 사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편이다. 이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다. 걸어오는 말에 싫다고 갑자기 자리를 뜨기도 이상할 것 같아 딸아이가 중간에 위치하도록 무척 애를 썼다. 사우나실에 간 아내가 재빨리 돌아와 구원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머리 속에는 1990년대 초 헝가리 부타페스트에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어느 날 공중 온천탕을 갔다. 넓은 탕 안에서 몸을 담그고 있는 데, 60대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부다페스트 출신인데 파리에 살면서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아 인도와 티베트를 자주 왕래한다고 하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나도 티가 나지 않게 조금씩 오른쪽으로 피해갔다. 어느 새 탕 입구 계단까지 오자, 이제 피하기도 그렇고 했어 친구가 빨리 와주기만을 바랬다. 곧 마사지를 받으러 간 친구가 돌아오자 안도의 숨을 쉬고 잽싸게 그와 함께 뒤편에 있는 사우나실로 가버렸다.

사우나실에서 그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순간 사우나실 문이 열리고 그 할아버지가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내 곁에 앉더니 웃으면서 내 왼쪽 다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부탁도 하지도 않았는데, 더군다나 그를 피해 이 사우나실로 들어왔는데 이렇게 더 노골적이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와 기분 좋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난감하고 난처한 경우도 있다.

후기: 어제 있었던 이 일을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늘 홈페이지로 설정된 이 블로그를 아내가 보더니 무슨 글을 올렸기에 동시 접속한 사람들이 수 백명이 되는가라고 물었다. 그때서야 어제 일을 이야기 했다. 아내는 멀리서 지켜보면서 "저 여자가 내 남편에게 무슨 수작을 부리나 지켜보고 있었지... ㅎㅎㅎ"라고 답했다. 아내가 빨리 오기를 무척 기다렸는데......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