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3. 10. 4. 06:42

지난 달 우리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 한 분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다른 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둘이 자매로 70대 중반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연해주에 살다가 중앙 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다. 언니는 폴란드로 유학온 후 남게 되었고, 동생은 카자흐스탄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해 자녀가 살고 있는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집에서는 한국어로 했지만, 학교 생활 등으로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러시아어가 되었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이 분들은 딸아이 요가일래를 칭찬하고, 아주 부러워하고 한편 후회스러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가일래가 아직 어리지만, 아빠와는 늘 한국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 두 자매는 각기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당시는 러시아어가 최고였으므로 소련에서 살려면 자녀가 러시아어를 잘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나?"
"아, 가르치지 않고 그냥 모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한국말만 하고 있어요."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나?"
"말하기만 하고, 쓰기와 읽기는 완전 초보 단계입니다."
"혹시 책은 없나?"
"딸아이 책장에서 한번 찾아볼게요."

이렇게 한국어 초급 쓰기와 읽기 책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보자 두 자매는 아이처럼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복사를 부탁했다. 집에 가서 자기들도 꼭 공부하고, 아들과 딸은 늦었지만 손자들에게 꼭 공부시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배움의 의욕에 가득 찬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국인은 역시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봐, 할머니는 이제라고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너는 쉽게 알았잖아. 아빠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이제부터라도 한국어 읽기와 쓰기에도 좀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노력할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4. 13. 08:07

지난해부터 한 프랑스인 에스페란티스토가 종종 편지를 보내온다. 내용은 간단한 한국어 문장을 묻는 것이다. 그의 동기는 간단했다. 자기가 참석하는 모임이 있는데 이 모임 회원 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다. 그는 이 사람을 놀라게 해줄 생각으로 한국어 문장을 몰래(?) 배우고 싶다고 했다.

 * 한글로 쓴 자신의 이름을 받고 기뻐하는 리투아니아 여대생들

그렇게 해서 에스페란토를 매개어로 해서 그에게 몇 차례 한국어 문장을 가르쳐 주었다. 이 덕분에 그는 그 한국인과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물론 이들은 프랑스어로 문제없이 대화할 수 있지만 이러한 그의 작은 노력이 상대방의 모국어에 관심과 존경을 조금이나마 표현하는 것이다.

얼마 전 그는 "당신은 어디로?"라는 번역 프로젝트 문장을 부탁했다. 간단하지만 여러 언어로 번역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였다.  

- Kien vi?
- 당신은 어디로?    dangŝinun odiro

- Ĉu vi estas koreano ?   (mi preferus: ĉu vi estas koreo?")
- 당신은 한국인이세요?   dangŝinon hangukinisejo

- Ĉu vi parolas la korean? 
- 당신은 한국말을 해요?  dangŝinon hangukmalul hejo

- Kien vi deziras iri?
-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어요?  dangŝinon odiro gago ŝipojo 

- Ĉu mi povas helpi al vi ?
- 제가 당신을 도와줄까요?  ĝega dangŝinul doŭaĝulkajo

- Mi povas helpi al vi.
- 제가 당신을 도울 수 있어요. ĝega dangŝinul doul su itsojo

- Antaudankon por via helpo.
- 당신 도움에 먼저 감사해요. dangŝin doume monĝo gamsahejo


여러 가지 바쁘다는 것을 빌미로 삼아 편지 답변을 늦추는 경우도 있지만, 그의 한국어 문장 부탁 편지에는 즉각 답을 해준다. "우와, 답이 빨라 놀랐어."라는 말을 들을 때 느끼는 기쁨은 그가 한국어 문장을 익히는 기쁨에 견줄만 할 것 같다.   

 
위 동영상은 자석출판에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짜맞춰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비록 이렇게 조금 조금이지만 한글이 세계에 널리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 최근글: 한국인임을 부끄럽게 만든 빌뉴스 한류 학생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 29. 18:57

한국의 새 정부가 학교에서 거의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려고 한다는 말을 하자, 한 리투아니아인은 한국이 한국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 평했다. 소련 지배를 받으면서도 리투아니아인들은 학교에서 러시아어가 아닌 리투아니아어로 교육을 받았다. 그러니 영어권의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에서 스스로 영어로 교육을 시도한다는 소식에 한국 국적을 가진 내 스스로가 이들에게 웃음거리를 넘어 비하거리로 전락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시기에 지난 1월 26일 리투아니아 국내외에선 대대적인 리투아니아어 받아쓰기 대회가 열렸다. 낮 11시 라디오와 텔레비전 생중계로 읽혀진 문장을 받아쓰는 이번 대회엔 리투아니아어를 하는 누구든지 참가할 수 있었다. 단지 공식적인 답안지를 작성하는 대회장엔 리투아니아어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제외되었다. 도청, 시청, 군청, 학교 및 국외 외교관 공관 등에서 많게는 수백명, 적게는 수십명이 함께 모여 받아쓰기를 했다.

임시 집계에 의하면 답안지를 낸 사람은 천여명을 넘었다. 당일 받아쓰기가 열리는 빌뉴스 시청 대회의실에 만난 한 할아버지와 한 아가씨는 참가한 이유에 대한 물음에 뜻 깊은 시민운동에도 참가하고, 자신의 모국어 지식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각자의 집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받아쓰기에 참가했다. 오늘 만난 빌뉴스 대학교의 한 교수는 팔순인 자신의 어머니도 집에서 받아쓰기를 했는데 두 개만 틀렸다고 말했다.

이날 국내외의 리투아니아인들은 받아쓰기로 하나임을 느꼈다.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면 글자가 자동으로 화면에 나타나고, 또한 틀린 글자가 있으면 교정까지 해주는 시대에 손으로 직접 받아쓰기를 하면서 자신의 모국어 지식을 점검하고 실력을 키우려는 리투아니아인들의 노력이 참 보기 좋았다. 특히 유럽연합이 선포한 “2008년 유럽 문화간 대화의 해”를 맞아 열린 이번 행사는 그 의미를 더해주었다. 강대국 언어 범람 속에 모국어인 소수 언어 리투아니아어를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이들의 모습이 한국 상황과 맞물리면서 더욱 돋보인다.

발트어에 속하는 리투아니아어는 단어와 문장구조에서 산스크리트와 공통점과 유사점을 지니고 있고, 현존하는 인도유럽어 중 가장 오래된 언어 중 하나이다. 철자는 32개로 모음이 12개, 자음이 20개이다. 명사는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어지고, 어순은 자유롭고, 강조음은 불규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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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아쓰기를 위해 빌뉴스 시청 대회의실에 모인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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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을 귀담아 들고 있는 한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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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심히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한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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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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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아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참가자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