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0. 10. 16. 13:01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은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모두가 뼈조리게 느끼고 있다. 특히 관광이나 모임 행사 등으로 사람들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이나 일거리를 잃게 되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이벤트 회사에 다니던 큰딸 마르티나도 지난 3월에 직장을 잃었다. 해마다 1년에 한 번 정도 가족이 만나는데 국경봉쇄로 하늘길이 막혀서 유럽으로 돌아오거나 제 3국에서 가족을 만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래서 사륜구동 레저용 차를 구입해 차박을 하면서 호주 곳곳을 돌아다녔다[관련글: 코로나19로 호주에서 실직한 딸 - 차박으로 탈출]. 다행히 실업수당이 나오서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었다. 

호주 여행을 하면서도 유럽으로 잠시 돌아올 기회를 기다렸다. 호주 시민이나 영주권자의 해외 방문이 제한되어 있고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가족방문으로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서류 등을 호주로 보냈다. 이렇게 허락을 받자마자 지난 8월 하순 호주 출국 이틀 전에 비행기표를 구입했다라는 소식을 받았다. 아래 동영상은 멜버른에서 도하(Doha)로 오는 비행기의 객실 모습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요즘 항공기 승객들에게 개인전용기를 타고 다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    


유럽 리투아니아 빌뉴스 집에 도착한 바로 다음날 호주 정부기관으로부터 국제전화가 왔다.
"무슨 이유로 전화했지?"
"호주를 출국한 날로부터 입국하는 날까지 실업수당 지급이 중지된다고 통보하네."
"어떻게 출국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역시 호주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다."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밟을 때 직원이 관련기관에 연락하는 것을 봤어."
"지급이 중지돼서 아쉽지만 호주는 선진국답다. 한동안 재워주고 먹어줄 여유는 있으니 편하게 지내라."

와, 이런 세상을 경험해보다니!
호주에서 온 사람들은 자가격리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안전을 위해 1주일 동안 외출뿐만 아니라 거실에서조차 나가지 않았고 집안에서 욕실이나 화장실을 갈 때에도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했다. 부엌은 아예 출입을 못하도록 했다. 음식도 하루 세 끼를 부엌에서 거실까지 배달했다. 와, 이런 세상을 경험해보다니! 1주일 후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해서 음성 판정을 받은 후에야 우리 가족은 안심하고 자유롭게 접촉했다. 또한 마르티나는 이때부터 외출을 할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많은 변화가 생겼다. 유럽뿐만 아니라 호주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2차 감염파동이 일어났다. 마르티나는 격리비용 국가부담 마감일에 유익한 정보를 알게 되어 왕복표가 아니라 편도귀국표를 7월에 급하게 구입했다. 즉 출국해서 귀국하는 비행기표를 이날까지 구입해야 격리비용 혜택을 받을 수 있다라는 정보다. 이렇게 격리시 들어갈 체류비 부담을 덜게 되었다.

역시 화술이 중요하구나!
또 다른 문제는 구입한 호주 귀국표의 첫 구간 비행기가 취소되었다. 항공사와 국제전화를 여러 차례하면서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퇴사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근무하는 직원과 우연히 연결이 되어서 대화를 나눴다. 옆에서 들어니 항공사 직원과 손님과의 대화라기보다는 친구와 친구 사이의 친근한 대화로 오인할 정도였다. 역시 화술이 중요하구나!

이날 대화의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추가비용없이 항공 출발지를 영국 런던으로 변경할 수 있었다. 상황이 악화되더라도 런던-아부다비-시드니 비행구간이 취소될 확률은 지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편도항공권을 구입 비용을 알아보니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일반석 편도요금이 5000유로를 넘었다.        

당시 에디하드항공사 탑승은 출발 72시간 이내 코로나바이러스 검사을 받아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만 할 수 있었다. 아래 동영상에서 보듯이 10월 6일 런던-아부다비 항공기뿐만 아니라 아부다비-시드니 항공기 객실 또한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격리시설에 지인을 만나다니 
시드시 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마치자 10여명의 사람들을 버스에 태우고 경찰 안내 하에 격리장소로 이동했다. 격리장소는 항구가 보이는 시드니 중심가 4성급 호텔이다. 투숙 절차를 밟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나타났다. 이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사람이었다. 병에 들어가니 깜짝선물이 기다렸다. 리투아니아어 환영인사 카드와 쉬라즈 포도주 한 병이 탁자에 놓여 있었다.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듯이 지인을 이렇게 격리호텔에서 만나다니 그것도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니... 그래서 세상 복 중 인연복이 최고라고 하지 않았나...         


자, 이제는 격리 중에 제공받는 음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호텔방 밖으로도 나갈 수가 없고 음식은 각방으로 포장 배달된다. 요일마다 메뉴가 달라지고 점심과 저녁은 각각 음식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예를 들면 토요일 음식이다. 



격리 중 어떤 음식이 제공되나

아침식사

소시지와 토마토 렐리시를 곁들인 시금치와 햇볕에 말린 토마토 프리타타

요구르트

초콜릿

과일음료수 

점심식사 

닭고기 또는 야채커리 중 택일

저녁식사

구운 닭고기 소시지 또는 계란볶음밥 중 택일



식사 때 음료를 따로 주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하이네켄 맥주 330ml 네 병이 15 호주달러(1만2천5백원)이다.  



적십자로부터 입국 환영과 더불어 도움을 원하다면 연락하라는 쪽지를 받았다. 



음식은 이렇게 표장 되어 각방으로 배달된다.



커리다. 사진으로 보기엔 그렇지만 맛은 괜찮다고 한다.



다행히 마르티나는 리투아니아 집에서 익숙해진 쌀밥 덕분에 이런 음식을 즐겨 선택한다.




생선과 감자 튀김이다.



이탈리아 요리 프리타타(frittata)다.



"주는 음식 맛은 어때?"

"먹고자 한다면 다 맛은 괜찮아."

"다 깨끗이 비우나?"

"아니. 아주 조그만 먹어."

"왜? 격리 중이니 음식이라도 먹고 기운을 내야지."

"많이 먹으면 기운이 넘쳐서 외출하고 싶어하는 충동심을 억누르기가 너무 힘들어. 그래서 최소한의 기운을 유지할 만큼만 먹어."



"보통 어떻게 하루를 보내?"

"유럽에서 한 달 살고 와서 시차에 적응이 아직 되는 않은 것도 있지만 낮에는 자는 것으로 원칙을 정했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와 맑은 햇볕을 보면 음성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갇혀 있다는 것 자체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그래서 해가 떠 있는 낮에는 자고 밤에 일어나 요가, 독서, 인터넷, 넷플릭스 드라마 보기 등을 하고 있어."

"격리생활은 할만해?"

"이럴 줄 알았으면 호주에서 밖으로 아예 출국하지 않았을 것이다."


호주는 2차 파동 조짐이 일어났지만 현재 잘 통제되고 있다. 10월 11일 새로운 확진자수는 인구 2천5백만명인 호주가 21명이고 인구 280만명인 리투아니아가 160명이다. 인구비율로 계산하면 리투아니아의 160명은 호주의 1430명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니 마르티나는 유럽 리투아니아로부터 코로나바이러스 통제가 훨씬 잘 되고 있는 호주로 피신을 잘한 셈이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20. 7. 11. 18:39

아침 일찍 호주에서 살고 있는 큰딸 마르티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소리조차 기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와, 카이트(연)를 되찾았어!"
"뭐라고?"
"두 달 전에 잃어버린 카이트."
"어떻게 찾았니?"
"새로운 카이트를 오늘 구입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 카이트를 찾았다고 아침에 시드니에서 전화가 왔어."  

마르티나의 취미는 카이트서핑이다. 이는 카이트(연)을 사용해 보드를 탄 상태에서 물 위를 활주하는 수상 스포츠다. 패러글라이딩과 서핑을 접목한 것이다.  


장비는 카이트, 조종용 라인(컨트롤바), 하네스 그리고 서핑보드다. 벨트처럼 허리에 차는 하네스(harness)는 카이트와 몸을 연결해주는 장치다. 카이트를 하늘에 띄워 바람과 저항하는 동력으로 서핑을 한다. 마르티나가 시드니 공항 앞바다에서 카이트서핑을 즐기는 모습을 몇 해 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카이트서핑의 매력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바람을 가르고 물 위를 미끄려질 때 느끼는 짜릿한 맛이라고 한다.    



풍속과 실력에 따라 수미터 높이까지 점핑할 수도 있다. 
마르티나는 점핑을 시도하다 그만 바닷물에 첨벙... 


때론 하늘로 뛰어올라 얼마 동안 날 수도 있다.


카이트의 크기는 바람의 세기, 타는 사람의 몸무게 또는 서핑보드에 따라 다르다. 보통 4-15미터 정도다. 바로 아래 있는 카이트를 마르티나가 잃어버렸다.  


두 달 전에 카이트서핑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해서 자동차 짐칸에 실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니 카이트가 든 배낭만 사라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었을 것이다. 
몇 해 전 자동차로 크로아티아를 가족여행할 때 일이다. 휴게소에서 쉬면서 숙소에서 타온 커피를 잔에 붓고 보온병을 자동차 짐칸 위에 올려 놓았다.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했다. 나중에 커피를 마시려고 보은병을 찾았으나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뿔싸, 짐칸 위에 올려놓은 보온병을 챙기지 않고 그냥 와버린 것이다. 정말 아내가 아끼던 한국산 보온병이었는데...       

마르티나가 정신을 가다듬고 살펴보니 자동차 짐칸문이 제대로 닫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도중에 카이트가 밖으로 떨어져 나가버렸다. 카이트서핑 동호인들에게 잃어버린 사실을 알리고 경찰서에 분실신고를 하고 사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찾지를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두 달이 흘렸고 그동안 동호인에게 카이트를 빌려서 서핑을 하곤 했다.

새로운 카이트를 구입하려고 한 날인 오늘 시드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카이트서핑 장비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가 전화했다. 어떤 사람이 두 달 전에 길에서 카이트가 든 배낭을 주었는데 그동안 바빠서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 사람의 주인 찾아주기 전화를 받자마자 친구는 카이트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마르티나는 약 130만원 하는 새로운 카이트를 사려는 날 두 달 전에 잃어버린 카이트를 되찾게 된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되찾기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실직한 마르티나[관련글은 여기로]에게 금전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세상 어느 곳에는 이런 훈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하필 매장에서 전화를 받은 사람이 마르티나 친구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20. 6. 7. 05:49

예기치 않은 코로나바이러스 출현으로 개인, 가장, 사회, 국가, 세계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5월 31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확진자가 620만명, 사망자가 37만명을 넘어섰다. 

가장 크게 미친 산업 중 하나가 여행업이다. 예년 이맘때 같으면 발트 3국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을 안내하느라 집에서 묵는 날이 거의 없다. 올해는 일거리가 없어 당분간 실업자로 등록해야 했다.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5성급 호텔 직원으로 전직한 친구가 있는데 그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실직했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듣게 되었다. 

5월 29일 발표된 통계자료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과 방역을 위한 봉쇄령으로 유럽연합 회원국들의 실업률이 대폭 늘어났다. 2020년 예상실업률은 그리스 19.9%, 스페인 18.9%, 이탈리아 11.8%, 크로아티아 10.2%, 프랑스 10.1%, 스웨덴 9.7%, 포르투갈 9.7%, 리투아니아 9.7%, 에스토니아 9.2%다. 유럽연합 회원국 전체 평균 예상실업률은 9%다. 독일 예상실업률은 4%다.

큰딸 마르티나는 호주에서 그동안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주로 사람들이 많이 참가하는 행사를 조직하는 일을 하다보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결국 회사는 3월 하순 문을 닫았고 직원들은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참고로 5월 31일 현재 호주는 확진자 7,195명, 사망자 103명, 당일 새로운 확진자 10명이다. 인구 1백만명당 사망자수는 4명이다.

시드니 방 월세비가 부담되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부모로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스스로 해결하도록 놓아두었다. 당장 꼭 필요하지 않는 물건들은 직거래사이트를 통해 처분했다. 문이 두 개인 소형 승용차와 소형 오토바이를 팔았다. 그래서 문이 4개인 소형 사륜구동 중고차(스포츠유틸리티차량, SUV)를 구입했다. 


이렇게 레저용 중고차를 구입하고 나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바로 차박(차에서 숙박하는 것)을 하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진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실업수당(월급의 70%)을 받으면서 생계를 해결하고 방 월세비를 내지 않으니 그 돈으로 기름값을 낸다. 좋아하는 카이트서핑에 적합한 해변을 찾아서 시드니를 탈출해 퀸즐랜드로 서서히 이동한다. 동행할 친구도 찾았다. 이렇게 계획을 세운 후 곧 바로 실행에 옮긴다. 

먼저 뒷좌석을 분리해서 떼내고 공간을 확보한다. 그 자리에 합판으로 침대를 만들고 밑에는 짐을 놓을 수 있도록 한다. 목공작업은 카이트서핑을 하는 동호인의 도움을 받았다.


시트를 합판에 위에 얹으니 그럴 듯한 침대가 완성되어 2명은 족히 잘 수가 있다. 


이렇게 차박할 수 있도록 개조한 차로 모래해변에 자리를 잡는다. 


카이트서핑에 적합한 해변에서 늘 동호인들을 만난다.



우중충한 비가 온 뒤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피듯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코로나19가 종식된 뒤에 
모두에게 보다 나은 세상이 오길 바란다.


차박하면서 맞는 일출이다.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경계가 애매할 정도로 둘 다 검붉게 타오르고 있다. 동쪽에 바다가 없는 리투아니아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일출 광경이다.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되어 자칫하면 암울한 생각에 젖어 있을 수도 있을텐데 마르티나는 차박과 카이트서핑 취미를 연결시켜 여행을 하면서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 소형 레저용 차에서 숙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임에도 이런 용기를 내어서 젊은 시절의 인생 경험을 풍부하게 하는 마르티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6. 1. 28. 09:08

푸석푸석한 밥에 익숙한 사람은 윤기가 쫙 흐르는 찰진 밥이 맛이 없다고 먹기를 꺼린다. 반대로 찰진 밥에 익숙한 사람은 푸석한 밥이 맛이 없다고 먹기를 꺼린다. 전자는 주로 유럽인들이고, 후자는 한국인들이다. 물론 누구든 배가 고픈 사람은 이에 크게 구해 받지를 않겠다.

주변 유럽인들은 그렇게 자주 쌀밥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푸석한 밥이나 찰진 밥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갖지 않고 있다. 그저 이들에겐 쌀로 지은 밥에 불과하다. 

마르티나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하도 집밥(전기 압력밥솥으로 한 밥)이 생각이 나서 한국 식품가게에 가서 구입했다고 한다.


바로 김치와 햇반이었다. ㅎㅎㅎ



이렇게 찰진 밥 맛에 한번 푹 빠지면 정말이지 푸석푸석한 밥은 눈에도 맛이 없을 것이다. ㅎㅎㅎ 
쌀밥과 김치에 집을 떠올리는 유학생...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8. 12. 06:09

헝가리인 친구는 최근 영국항공를 타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다녀왔다. 그런데 비행기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는데 화물칸으로 보낸 짐가방이 찾을 수가 없었다. 기내로 들고 가는 가방의 무게에 한계가 있어 중요한 물건들도 어쩔 수 없이 짐가방에 담아 화물칸으로 보내야 했다. 


도착한 지 벌써 5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짐가방의 존재는 오리무중이다. 수백번 전화하고 문자쪽지도 보냈지만 항공사에서는 아무런 답변이 없어 노심초사이다. 다시는 영국항공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해 여행객 6명이 러시아항공을 타고 모스크바에서 리가에 도착했다. 그런데 여섯 명 모두의 짐가방이 도착하지 않았다. 여행에 필요한 물품이 다 짐가방에 들어 있어서 큰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다음날 오후에 짐가방이 모두 도착했다. 

며칠 전 큰딸 마르티나가 8개월 동안 미국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짐을 정리하는데 짐가방 앞면이 눈길을 끌었다. A4 용지에 큼직하게 출발지와 경유지와 도착지 도시명이 적혀 있었다. 


세인트 루이스 -> 시카고 -> 코펜하게 -> 빌뉴스

"누가 이거 붙였나?"
"내가."
"왜?"
"화물 꼬리표만 믿을 수 없어서."


그 순간 짐가방이 도착하지 않아 연일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전하는 헝가리 친구가 떠올랐다. 마르티나는 꼬리표에 적힌 도시명과 바코드가 미덥지 못해 이렇게 큰 글씨로 도시명을 적었다. 이것이 얼마나 화물 관련 공항직원들의 관심을 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짐가방이 무사히 함께 도착해 무척 다행이다. 

앞으로 화물칸으로 보내는 짐가방에 나도 이렇게 큼직하게 적어볼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10. 25. 08:57

월요일, 수요일, 목요일 학교에서 돌아온 작은딸에게 점심을 챙겨주고 음악학교로 보내는 일은 내가 맡은 일이다. 아내는 딸보다 몇 시간 전에 음악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전 아내는 신신당부했다.

"제발, 딸에게 오늘은 일반학교 교복을 입지 말고 음악학교로 오라고 해."
"왜?"
"지금까지 계속 일반학교, 음악학교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같은 교복만 입으니까 별로 안 좋잖아."
"알았어."

오후 2시에 집에 와야 할 딸은 3시가 돼도 오지 않았다. 빨리 오라고 하자 그제서야 친구집에서 왔다. 1시간 후에 음악학교로 가야 했다. 지금껏 딸아이는 음악학교에 가는 날엔 교복을 벗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는 아무 말도 미리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교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 교복 말고 다른 옷을 입고 음악학교에 오라고 엄마가 말했어."
"알았어."
"그런데 평상복을 입지 말고 음악학교에 갈 옷을 입으면 더 좋잖아."
"아직 또 다시 갈아입을 시간이 충분해. 아빠, 걱정하지마."

30분이 지난 후 아파트 입구에서 숫자 코드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우리 식구외에 아주 가까운 친척 둘뿐이다. 이 시간에 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내뿐이었다. 학생이 오지 않아 잠시 집으로 온 듯했다.

"딸아, 엄마가 온 것 같으니 현관문을 열어줘라."

자기 방에 있던 작은딸은 아무런 인기척을 내지 않았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둘이서 서로 대화를 할 법한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손님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 손님은 다름아닌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큰딸이었다.

어제 늦은 밤까지만 해도 교환학생으로 갈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대해 아내와 함께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깜짝 출현이 제일 좋은 선물 그 자체였다. 작은딸은 이미 한 달 전에 언니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언니를 기다렸던 것이다. 입이 근질근질해서 그 동안 어떻게 참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 인내심에 고개가 숙여질 정도이다.

"벌써 음악학교에 갈 시간이다. 빨리 가야지."
"언니가 왔는데 어떻게 내가 학교에 갈 수가 있나? 아빠는 생각을 좀 해라. 노래 선생님에게  오늘 결석한다고 어제 쪽지 보냈어."
"뭐라고?"
"오늘 언니가 집에 오는데 갈 수가 없다고. 엄마를 놀래려고 하니 만약 엄마가 선생님에게 전화하면 내가 머리 아파서 수업에 못 온다고 꼭 전해달라고."  
"그래?! 언니가 무슨 선물했니?"
"안 물어봤어. 안 물을 거야. 선물을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난 언니를 사랑해."
"그래, 그런 마음이 중요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아내를 놀래는 일이다. 딸 둘은 엄마의 표정을 담기 위해 동영상 촬영을 위해 카메라까지 방에 설치했다. 큰딸이 부엌에 있을까, 아니면 작은딸 방에 있을까 둘이서 상의하더니 연출하기에 편한 작은딸 방을 선택했다. 퇴근해서 집에 막 도착한 엄마를 어떻게 제일 먼저 방으로 유인할 방법을 작은딸이 궁리했다.

엄마가 직장 동료인 노래 선생님에게 작은딸이 수업에 참가할 수 없다고 전화하자 선생님은 태연하게 웃으면서 이미 알고 있다고 답했다.

드디어 아내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맡은 일은 카메라를 작동하고 살짝 빠지는 것이었다. 작은딸이 현관문에서 엄마를 맞았다. 곧장 욕실에 가 손을 씻으려는 엄마를 가로막았다.

"엄마,  이제 내 머리가 안 아파. 그런데 내 방에 옷장이 넘어져 방이 엉망진창이야. 빨리 한번 보고 도와줘야 돼. 내가 할 수 없어."


이렇게 작은딸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아내는 기쁨의 충격으로 순간적으로 돌이 되어 버렸다. 어젯밤까지 이번 짧은 방학에는 비행기표 구하기가 어려워서 빌뉴스 집으로 오지 못하겠다고 한 딸이 눈 앞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 기뻐서 그만 눈물까지 흘렸다. 


언니 사랑에 푹 빠져 음악학교에 가지 않은 작은딸의 꾀병도 쉽게 이해가 되었고, 모두에게 순간 엔돌핀이 팍팍 치솟았다. 큰딸의 예고없는 깜짝 방문으로 끈끈한 가족애를 식구 모두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9. 25. 05:33

아내가 누리는 즐거움 중 하나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 마르티나와 스카이프(skye)로 대화하기이다. 마르티나는 아르바이트 생활하면서 느낀 재미난 언어 사건을 어젯밤 아내에게 했다. 그 덕분에 우리 식구들은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일주일에 마르티나는 25시간 아르바이트 생활을 하고 있다. 영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일하고 있는 커피숍에서 직원들의 언어 실수로 재미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지라 쉬운 단어도 어떨 때는 입에서 금방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엉뚱한 단어가 뜻하지 않게 튀어나온다.


1.
마르티나: "오늘 출근하는 길에 자동차 두 대가 서로 쾅~쾅~하는 것을 봤어요."
사장: "아~ accident?"  
마르티나: "맞아요."

이날 사장은 마르티나를 볼 때마다 "쾅~쾅~"이라고 놀려대었다.

2.
단골 프랑스인 고객: "물 주세요."
이날은 어떤 물을 원하는 지 몰라서 마르티나는 물 두 병을 가져왔다. 그리고 손님에게 설명했다.
"이것은 정상적인 물이고, 이것은 피시시~ 물입니다."
마개를 여는 시늉까지하면서 생생하게 탄산수를 설명하니 주변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순간적으로 "water with gas"와 "water without gas"가 떠오르지 않았다.


3. 
마르티나 동료 중 한 사람은 연봉 많은 애플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복잡하게 머리 쓰는 일이 싫어서 그만두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있다. 
마르티나가 뒤에서 보니 그가 뭔가 잘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마르티나: "Do you have testicles?"
마르티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동료의 얼굴은 순간 홍당무가 되어 있었다. 
분명 안경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왜 얼굴이 붉여졌을까 의아해하는 순간 마르티나는 엄청난 말실수를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안경을 뜻하는 "spectacle"이라는 단어 대신 갑자기 의약용어 고환을 뜻하는 "testicle"이 튀어나왔다. 그러니 남자 동료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힐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 하루 종일 커피숍은 마르티나의 이 황당한 단어 실수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집에 있을 때에는 비교적 말수가 적은 데 낯선 곳에서 동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면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재미나게 하고 있는 마르티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열심히 아르바이트해서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데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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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3. 7. 9. 07:46

유럽의 대부분 나라와 마찬가지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생활은 한마디로 가족 중심이다. 가능한 어디를 가든 가족, 혹은 부부가 함께 간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산 가족이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큰 딸 마르티나 때문이다. 

마르티나는 여름 방학인데도 집에 못 오고 있다. 이유는 방학을 집에서 보내다가 학년이 시잘 무렵 영국으로 돌아가면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시간제로 일하던 커피숍에서 방학 동안 정식으로 일하고 있다. 궁금한 분을 위해 알리자면 영국 스코트랜드 에딘버러에서 그가 받는 시급은 6.29파운드(한국돈으로 10500원)이다. 단기간 목표는 열심히 일해서 내년에 6개월 동안 중동 두바이에 있는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나머지 가족이 방학을 맞아 영국으로 가기로 했다. 아내는 세 식구(나, 아내, 작은 딸)가 모두 함께 갈 수 있는 시간을 찾아봤으나 불가능했다. 결국 아내와 작은 딸 둘이만 영국 에딘버러로 떠났다.

하루 이틀은 그런 대로 견딜만 했다. 식구 각자의 식성이 달라서 함께 있을 때도 같이 밥을 먹는 경우가 많지가 않다. 하지만 그래도 아내가 요리해주는 따뜻한 음식은 모두가 식탁에 앉아 먹곤 한다. 

아내가 없는 동안 밥 때가 되면 더 바빠지는 듯하다. 요리를 해서 혼자 먹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허기진 배를 빨리 채울 것인가가 떠오른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간이식품으로 눈과 손이 가게 된다. 여름철이 되니 귀한 한국 간이음식들이 우리 집 찬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사연은 간단하다. 여름철엔 발트 3국 관광안내사(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한국 관광객들이 먹고 남은 음식들을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 것 같은 나에게 선물로 주고 떠나기 때문이다. 


음식 선물을 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드린다. 이 음식이 아내가 없는 지금 아주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이렇게 컵라면 봉지가 쌓여간다. 


버리지 않고서라고 핏잔을 줄 사람도 있겠다. 참고로 컵라면 봉지는 시골에 계시는 장모님이 이른 봄철 씨파종을 위해 요긴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버리지 않고 모운다. 아내가 그리운 지, 따뜻한 음식이 그리운 지... 아뭏든 잘 있다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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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12. 10. 19. 06:04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마르티나는 최근 노트북 키보드가 먹통이라고 알려왔다.

"컴퓨터 수리점에 맡겨!"
"물어보니 너무 비싸."
"얼마 달라고 하는 데?"
"가장 적게 부르는 곳이 100파운드(18만원)야."
"뭐라고? 그렇게 비싸. 너무 황당하다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어."
"수리하는 대신 약간 더 보태서 새 노트북 하나 사는 것이 좋겠다."
"이베이(e-bay)에서 새 키보드가 40파운드(7만원) 해."
"그렇다면 수리점 수고비가 11만원이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마르티나가 전화를 했는데 기분이 아주 좋아보였다.

"무슨 일이야?"
"내가 해냈지."
"뭘?"
"이베이에서 직접 키보드를 구입해서 내가 직접 교체하는 데 성공했어."
"우와~ 돈 벌었네."

* 직접 키보드를 교체하면서 11만원을 절약한 마르티나

유럽에서 컴퓨터가 고장나면 참 골치 아프다. 부품도 부품이지만 수리비가 장난이 아니다. 이제는 내 경우이다. 멀쩡한 노트북이 어느 날부터 화면이 가끔씩 일그러러졌다. 그리고 한 순간부터 아예 화면이 뜨지를 않았다. 이유는 그래픽 카드였다. 찾아간 수리점과 전화한 수리점에 따르면 교체 가격은 400리타스(약 20만원)이다. 

"보증기간은?"
"없다."
"왜 없나?"
"교체한 새 그래픽 카드가 언제 말썽을 부릴 지 우리도 모른다."
"그럼, 교체하는 것이 좋나? 아니면 안 하는 것이 좋나?"
"당신이 알아서 판단해라."

보증기간이 3-6개월만 돼도 급한 김에 노트북 그래픽 카드를 교체하고 싶은 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노트북 수리 관련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는 데 유익한 글을 하나 접했다. 간단하게 소개한다[출처1 2].

영국 스카이뉴스 TV 채널이 실제 취재한 내용이다. 기자가 메모리 모듈을 잘못 꽂아놓은 채 런던에 있는 컴퓨터 수리점 6개를 방문했다. 노트북에는 수리기사가 어떻게 하는 지를 지켜볼 수 있도록 몰래 카메라가 내장되었다.
 
수리점 1: 메인 보드 교체해야 함. 비용은 130파운드(23만원). 수리기사는 내장된 문서, 휴가 사진 열람. 여성 사진을 자신의 USB로 저장. 소유자의 페이스북, 핫메일 등으로 접속. 인터넷 뱅킹 접속 시도. 
수리점 2: 소유자의 휴가 사진 열람.
수리점 3: 메인 보드 교체해야 함. 비용은 230파운드(41만원)
수리점 4: 곧 바로 수리됨. 추가로 진단검사가 필요함. 비용은 145파운드(26만원)
수리점 5: 메모리 모듈을 제자리로 꽂아놓은 후 메인 보드 교체가 필요하다고 알림.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자 노트북이 또 다시 작동되지 않도록 메모리 모듈을 원래대로 돌려놓음.  
수리점 6: 메모리 모듈을 제자리로 꽂아놓음. 비용은 무료

그래도 6개 수리점 가운데 양심적인 수리점이 하나 있어 다행이다. 정말 이렇다면 적어도 영국 런던에서 컴퓨터 수리를 맡기려면 발품을 엄청나게 많이 팔아야하겠다. 컴퓨터 수리 맡기기 전에 가능하다면 모든 중요한 정보를 일단 삭제하고 맡기는 것이 좋겠다(사실 삭제한다고 복원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이 기사를 함께 읽은 아내는 이제부터 모든 정보는 USB 하드를 이용해야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은 그렇게 하고 있다. 한편 그래픽 카드 고장난 노트북을 수리하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멀리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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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2. 10. 2. 06:11

리투아니아 국내 대학을 다녀라는 조언에도 큰 딸 마르티나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영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단 조건은 하나, 주거비는 부모가 도와주되, 의식생활비는 아르바이트해서 해결한다. 대학 1학년 때 안일한 생각으로 학년이 시작할 무렵 영국으로 가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 2학년 개학 훨씬 전부터 영국으로 돌아갔다.

어려웠지만 다행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운영되는 식당이다. 1시간당 임금이 5파운드이다. 이 정도면 힘들더라도 생활비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콧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르바이트 식당 사장의 행동이 부담스러웠다.

꽃부터 시작해서 적지 않은 선물, 레스토랑 식사 초대 공세로 마르티나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자기 집으로 초대까지 했다. 만약의 상황을 우려해 마르티나는 이런 경우 항상 리투아니아 여자친구와 동행했다. 급기야 젊은 사장은 "우리 사귀자"라고 진지하게 고백했다. 마르티나는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불안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장으로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도 없고, 문자쪽지도 없었다. 그 전에는 정식 직원의 결근시나 휴일에 항상 이렇게 마르티나를 불렀다. 며칠이 지난 후 마르티나는 직접 여러 번 전화했으나 의도적으로 받지 않았고, 또한 많은 문자쪽지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 찾아가도 만나주지를 않았다. 이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했다. 


마르티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바로 사장과 정면 돌파로 단판을 짓기로 했다. 사귀자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이렇게 해고당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억울했다. 그래서 호기를 기다렸다. 며칠 절 사장의 생일이었다. 마르티나는 집에서 사과케익을 직접 만들었다. 식당 문을 닫는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갔다.

사장은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면서 식당문을 열어주지 않고 문전박대했다.

"아직, 식당 안에 내 신발이 있다. 신발을 찾으로 왔으니 제발 문 좀 열어."
"그래, 신발만 챙겨 빨리 나가."

거절로 헤어진 뒤 사장과 처음 얼굴을 맞대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사과케익을 꺼내 생일 선물이라고 건냈다. 사장의 심리가 약간 누그러지자 대화를 시도했다.

"사귀자를 거절해도 사장과 알바생으로 그대로 남고 싶다."
"너를 보면 내 감정을 억제하기가 힘든다. 그래서 아예 다시 보고 싶지가 않다."
"나도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사장도 새 아르바이트생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서로에게 시간 낭비다. 나는 어느 정도 벌써 숙련되었는데 새로운 사람이 오면 다시 일을 배워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감정 잘 다스리고 내 일자리를 그대로 두는 것이 좋지 않나?"
"그럼, 크리스마스 때까지 다시 일하는 것으로 하자. 그때 가서도 내 감정이 완전히 아물지 않는다면 진짜 해고다."
"동의한다."

이렇게 마르티나는 다시 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사장한테 필요 이상의 웃음이나 친절을 베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누구나 처음 일자리를 얻으면 사장 마음에 들도록 행동거지를 조심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더 홀가분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아뭏든 마르티나의 유학생활이 별탈없이 잘 진행되길 한가위를 맞아 또 다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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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1. 9. 30. 07:53

지난 7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 딸 마르티나는 최근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마르티나 방을 작은 딸 요가일래가 이제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이번 주 내내 마르티나가 남겨놓은 책, 서류, 사진, 옷 등을 정리했다. 

사진을 정리하면서 마르티나의 학급사진이 눈에 띄었다. 한국은 초등학교 졸업앨범, 중학교 졸업앨범, 고등학교 졸업앨범이 있다. 리투아니아는 따로 앨범이 없고, 사진만 있다.

특히 학년을 마칠 때마다 학급이 기념 사진을 찍는다. 12년 학교생활이니 사진이 12장이다. 마르티나의 학급사진을 찾아서 정리해보니 10장뿐이었다. 2장(초등학교 2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 사진)을 찾지 못해 아쉽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빌뉴스로 전학와서 12학년을 마쳤다. 처음 만난 학급친구들과 9년을 함께 학교생활을 했지만, 대부분은 12년을 함께 같은 학급에서 보냈다.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서로 지켜보면서 자랐다.  

1. 1999년-2000년 (초등학교 1학년)

2. 2001년-2002년 (초등학교 3학년)

3. 2002년-2003년 (초등학교 4학년)

4. 2003년-2004년 (초등학교 5학년)

5. 2004년-2005년 (초등학교 6학년)

6. 2005년-2006년 (중학교 1학년)

7. 2006년-2007년 (중학교 2학년)

8. 2007년-2008년 (중학교 3학년)

9. 2008년-2009년 (고등학교 1학년)

10. 2010년-2011년 (고등학교 3학년)

학년마다 찍은 이 학급사진을 보고 있으면, 12년의 학교생활이 그대로 총정리가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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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1. 9. 23. 05:55

큰 딸 마르티나는 지난 7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외할머니는 그 동안 고등학교 졸업할 때 주려고 적금을 들어놓았다. 이 적금(리투아니아 돈으로 2000리타스, 약 1백만원)을 타서 졸업 축하금으로 주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큰 고민없이 마르티나는 미국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금액이 조금 부족하기에 사용하고 있던 노트북까지 팔았다. 

"외할머니가 한 푼 두 푼 모아 선물한 것인데 좀 더 건설적으로 사용하면 안 되겠니?"
"내 꿈은 미국 한 번 가보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나에겐 최고의 선택이다."

대학생이 되면 유용하게 쓸 데가 많을 것 같은데 미국 가는 비행기표에 홀랑 다써버린다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성년이니 부모 의견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외할머니가 졸업 선물로 거액을 주었으니 부모가 그냥 있을 수는 없는 노롯이었다. 그래서 졸업 축하금으로 미국 여행경비를 대기로 했다.

이렇게 보스톤, 뉴욕, 워싱턴, 나이가라 등지를 2달 동안 여행하다가 어제 마르티나가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 어때?"
"집이 최고야. 그곳에 살고 싶지는 않아. 가는 곳마다 걸인에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고 냄새나고, 몇 번 속임수도 당했어. 빌뉴스가 조용하고 깨끗하고 참 살기 좋다는 것을 느꼈어."
"미국 대도시에는 그럴 수 있지만 지방에는 빌뉴스보다 좋은 데가 많을 거야. 미국 간 것 후회 안 돼?"
"후회는 안 돼. 이번 한 번으로 만족한다."



마르티나가 돌아오자 제일 반가워하는 사람은 바로 요가일래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요가일래는 숙제를 마치자마자 언니를 환영할 그림을 그렸다. 어렸을 때에는 하루에도 여러 장씩 그림을 그리더니 요즘 통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그림도 자꾸 그려봐야 내공이 생기는 법인데 말이다.

무슨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했다. 언니가 집으로 오자 공개한 그림이 바로 아래 그림이다.
"Hi!"
"Miss you!"
"Labas!"  
"Muliu!"
"Love you!"


철자 'i'와 느낌표"!" 대칭이 눈길을 끈다. 이제 오는 일요일 언니 마르티나는 영국 유학을 위해 집을 떠난다. 둘 사이의 작별 충격이 커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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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0. 6. 9.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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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만 18세 생일에 성인이 된다. 3월 30일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생인 마르티나가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관련글: 딸의 생일잔치로 부모가 외박하다). 성인이 되자마자 마르티나가 성인으로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먼저 마르티나는 자신의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개설했다. 그 동안 엄마 은행계좌에 자신의 용돈을 저축했는데 이제는 스스로 금전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곡간을 자꾸 비울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채워나가길 기대한다. 엄마는 딸이 이제 스스로 은행관리를 할 수 있는 성인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한편 자신의 품을 떠나게 되는 것을 아시워했다.

여고 2학년생, 한국에서는 대학입시를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때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마르티나는 난데 없이 운전면허증을 따겠다고 법석을 떨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따기를 권했지만 성인이 되었으니 스스로 결정한다고 답했다. 처음엔 달래보았지만, 학원등록까지 해놓고 금전적 지원을 청했다. 만 18세 학교 친구들 중에도 차를 몰고 다니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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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유학가면 그곳에는 따기가 더 힘들 것 같아 지금 리투아니아에서 따놓는 것이 좋다."고 마르티나는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운전면허증 따기를 후원하기로 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엔 100점 만점으로 한 번에 합격했다. 그리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도로주행시험도 한 번에 합격했다. 덕분에 추가비용이 들지 않았다. 참고로 마르티나가 운전면허증 따기 위해 지출한 비용은 1500리타스(70만원)이었다. (사진: 마르티나의 은행계좌 연결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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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마르티나는 여름방학을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있는 영국으로 7일 떠났다. 여름방학 동안 내내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목적이다. 부모로서는 집에 남아서 부족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앞섰지만 영국에서 일하면서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는 것도 좋은 일이라 판단했다. (사진: 마르티나의 운전면허증; 즉석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얼굴을 가렸다.)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용기있게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마르티나를 보면서 부모세대인 우리는 그 나이에 너무 나약했던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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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0. 5. 19. 07:15

3월 30일 큰 딸 마르티나가 만 18세가 되는 생일을 맞았다. 리투아니아에서는 만 18세가 되면 성인이 된다. 이 날 마르티나는 가까운 친구 15명을 초대해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음날 새벽까지 집에서 놀았다(관련글: 딸의 생일잔치로 부모가 외박하다).

주로 마르티나가 엄마의 도움을 받아 음식을 준비했다. 성년일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이 없었다. 샌드위치와 과자, 약간의 채소 등을 마련했다. 술은 마시지 않았을? 물어보니 주로 남자들은 음료수를 탄 보드카, 여자들은 도수가 약한 맥주나 샴페인을 마셨다고 했다. 이 날 우리 부부는 보드카 두 병을 사주었다. 유럽 청소년들의 성년일 생일 음식은 어떨까? 마르티나 생일 음식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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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된 음식상 뒷편에 놓인 간식용 과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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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을 굽어 생마늘을 발랐다. 흔히 맥주안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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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름에 직접 튀겨 만든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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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자튀김 스낵이다. 마르티나가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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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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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에 버터를 바르고 그 위에 소시지를 얹었다. 가장 일반적인 아침이나 저녁 음식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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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이장아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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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흔히 먹는 채소 중 하나인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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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흔히 먹는 채소 중 하나인 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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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밥솥엔 따뜻한 밥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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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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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제된 연어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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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장미 19송이 (18세이지만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짝수로 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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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선물로 받은 노트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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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날 모인 친구들. 화제는 바로 젓가락질이었다.


생일축하 분위기를 엿볼 수 동영상이다. 믿기지 않은 노트북 선물을 받고 기쁘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최근글: 현지인 아내 없이 방송촬영 간 곳에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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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09. 10. 27. 06:48

글을 쓰고, 영상을 편집하는 일을 하다보니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는 고요한 늦은 밤에 일을 하는 것이 하루 중 제일 편하다. 그러다가 보니 늘 잠드는 시간은 다른 식구들보다 훨씬 늦어진다. 침실에는 이미 아내와 작은 딸아이 요가일래가 한 침대에 자고 있다.

자기 침대가 버젓이 옆에 놓여있지만, 요가일래는 부모 침대에서 편하게 놀다가 잠이 든다. 딸아이의 고소한 잠을 방해하면서 침대로 옮기는 일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부모 침대보다 다소 불편한 침대에 딸아이를 재우려하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한편 아내와 딸아이 둘 다 저음을 듣는 데는 귀신이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아빠 코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잤다고 불평하는 날이 더러 있다.

그래서 대부분 일방(서재)에 있는 침대에서 따로 잠을 잔다. 밤 12시경 자는 식구들은 주중에는 7시에 일어나고, 주말에는 보통 10시에 일어난다. 어제 월요일은 임시 방학의 첫날이다. 새벽 설잠에 잠간 눈을 떴는데 방문에 흰색 옷을 입은 사람 형체가 서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너무 놀라서 무서운 생각보다는 멍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차츰 그 흰색 옷이 다가와 침대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제는 멍한 상태가 공포감으로 변하고 있었다. 잠시 후 흰색 옷의 정체는 아내로 밝혀졌다. 10년을 같이 살면서 새벽에 잠자리로 아내의 방문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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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티나가 현재 남친을 방문하고 웨일즈 애버리스트위스(Aberystwyth) 전경 (사진: 베르세쯔카이테)

"무슨 일?"
"손발이 오므라들고 심장이 요동친다."
"이 새벽에 무엇 때문에?"
"마르티나(큰 딸)가 임신을 한 꿈을 꾸었어. 그 꿈에서 막 깨어나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생각하니 사지가 부덜부덜 떨렸다. 더욱이 마르티나는 지금 가 있는 애버리스트위스가 자기가 바라던 환상의 도시라고 하니 그 기분에 취해서 부주의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니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았다."
"마르티나가 우리보다 더 잘 안다고 했으니 믿어야지. 상상으로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일은 안하는 것이 좋다.증거없이 상상으로 스스로의 건강을 해치는 일은 하지 말자. 상황에 무덤덤한 마음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


사실 아내의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고등학교 2학년 딸아이를 영국 대학에 유학가 있는 남자친구에게 비록 잠시지만 혼자 보내놓았으니 마음 편한 순간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최근 영국에는 멀지 않아 13세 아빠와 14세 엄마가 탄생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그러니 딸을 보내놓은 엄마의 마음이 꿈에서조차 편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보냈으니 올 때까지 모든 근심 걱정거리를 잊어버리는 것이 본인 건강에 더 좋다.

이날 아침 아내는 인터넷 채팅 프로그램인 skype에 딸아이가 들어오기를 학수고대했다. 이어서 걱정마라는 딸아이의 말에 아내는 안심이 되었고,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바로 이런 것이 딸 가진 세상의 부모들이 겪어야 하는 마음고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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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10. 14. 08:53

지난 주말 우리 집에 한 바탕 난리가 났다. 고등학교 2학년 딸 마르티나 때문이다. 지난 여름 남자친구의 영국 대학 진학으로 생이별을 해야 했던 마르티나는 영국으로 갈 기회를 찾았다.

11월 1일과 2일은 국경일이다. 이때를 즈음해 학교는 일주일간 임시 방학이다. 이때를 위해 저가 비행기표를 지난 8월에 사려고 했으나 이미 늦었다. 결국은 이 전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러면 수업을 빼먹야 한다. 마르티나는 2주일 체류 저가 비행기표를 자기 용돈으로 구입해놓았다. 그리고 부모가 구입해준 1주일 체류 저가 비행기표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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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친구에게 줄 선물. 두 사람 이름의 첫글자를 새겼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날이 가까워지자 집안에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엄마는 학교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가는 것이 못마땅했다. 1주일 체류는 이틀 수업, 2주일 체류는 칠일 수업을 빼먹게 된다. 엄마는 처음에에 완강히 거부했다. 이해할 만했다. 한국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마르티나는 반 친구들 중에는 심지어 한 달 수업을 빼먹은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해외여행 갔을 때 직장 근무일을 빼먹었던 일을 지적했다.

"어차피 가는 것을 허락한 이상 1주일은 적다. 당신이라면 1주일이 좋겠나? 2주일이 좋겠나? 학교를 빼먹는 것이 가장 큰 유감이지만, 공부는 반드시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잖아?! 보내주는 김에 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 좋겠다. 다행히 마르티나가 공부를 잘 하는 편에 속하니, 빼먹은 수업을 나중에 열심히 보충하도록 하면 된다. 가끔이지만 자식에게 감동 주는 부모가 되는 것도 좋겠다."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 하듯이 결국 아내도 받아들었다.

어제 아내는 마치 자기 자신이 여행을 떠나듯이 분주하게 마르티나 영국 여행을 위해 환전, 여행자 보험, 휴대전화 국제로밍 등 일을 했다. 저녁에는 가족 송별 피자 파티까지 열어주었다. 피자를 먹으면서 마르티나에게 몇 가지 물어보았다.

- 여행 기간은?
- 2주일이다. 10월 14일에서 28일까지.

- 왜 가니?
- 새로운 나라를 구경하고, 남자친구를 만나고, 그리고 특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할 대학교를 미리 가보는 것이다. (마르티나는 남친따라 영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 학교는 모두 몇 일 빼먹니?
- 수업일로 7일이다.

- 어떻게 보충할 것이니?
- 빼먹을 수업 내용을 다 복사했다. 남자친구가 학교에 가는 시간에 공부할 것이다.
(공부를 정말 할 것인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복사까지 한 것을 보니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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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먹을 수업 내용을 복사해서 여행 가방에 넣었다.

마르티나의 여행에서 부모가 제일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남자친구와 둘만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6개월 후면 만18세 성인이 된다. 마르티나는 "이모는 16세에 시집 갔고, 외삼촌은 17세에 장가를 갔다. 내 나이에 엄마도 있다. 알 것은 안다. 하지만 난 학업과 경력을 가장 우선시한다. 25세 이후에 결혼할 것이다."고 확언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 듯 엄마는 여행 떠나려는 딸에게 "피임하는 것 꼭 잊지마!"라고 말했다. 딸은 "우리 세대가 엄마 세대보다 더 잘 알아!"라고 씩 웃으면서 답했다. 좀 어색하지만 이런 문제를 엄마와 여고생 딸이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만큼 딸이 다 자랐음을 뜻한다. 아뭏든 딸이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미래에 진학하려고 하는 대학교를 잘 둘러보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란다.

* 관련글: 10대 딸의 남친에게 여비를 보탰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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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9. 9. 06:07

9월 1일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큰 딸 마르티나가 남자친구 없이 지낸 지가 발써 한 달이 되었다. 2년부터 사귀어오던 남자친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이들 둘이는 당분간 생이별을 하게 된 셈이다.

인터넷이 없는 시대라면 편지로 주고받으면서 사귐을 지속했을 것이만, 지금은 화상채팅 등으로 실시간으로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다. 먼 거리에 있지만 마치 서로 옆집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애절한 기다림의 맛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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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으로 떠난 남자친구는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도시이지만 잘 적응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에서도 좋은 대학교를 진학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영국을 떠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립심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신문돌리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하루 1시간 일주일 6일을 일해서 30파운드(6만 2천원)를 번다. 그리고 까페를 찾아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더니 시간당 5파운드(만원)에 일하게 되었다. 이 수입으로 방 하나 월세값을 내고, 식사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대학교 1학년생이 낯선 나라에서 이렇게 손수 아르바이트를 구해 스스로 학업을 진행한다는 것에 대견함과 존경심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마르티나도 그를 따라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한다.

마르티나의 남자친구가 영국에 있으니까 우리집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그가 빌뉴스에 있었을 때 마르티나는 그와 같이 시간을 보내느라 늘 집에 늦게 돌어왔다. 그래서 딸의 귀가시간 문제로 우리집에는 크고 작은 말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마르티나의 "내 인생이야!"이라는 주장과 부모의 "만 18세까지는 부모가 보호한다"라는 주장이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곤 했다.
 
남자친구가 영국으로 가버리자 마르티나는 집에 늦게 돌아올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졌다. 더군다나 그와 화상채팅을 시작하는 시간이 저녁무렵이다. 그래서 마르티나는 학교를 마치면 대부분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가족 구성원간 대화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리고 큰 딸이 집안일을 도와주는 일도 많이 생긴다. 같이 있었을 때도 그렇게 가족을 배려했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보니 딸아이의 남자친구가 가까이 없으니 우리 가족이 더 화목해진 것 같다. 아뭏든 이 둘의 좋은 인연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 관련글: 10대 딸의 남친에게 여비를 보탰더니
               여고 1학년 딸, 남친과 해외여행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8.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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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8월 12일은 큰 딸 마르티나에게 정말 견디기 어려운 날이었다. 만 17세 마르티나는 오는 9월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된다. 바로 어제 남자친구가 영국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리투아니아를 떠났기 때문이다.

그래도 딸의 남친인데 부모가 모르는 체하기엔 예의가 아닐 것 같았다. 그래서 전날 밤 아내에게 약간의 여비라도 보태는 것이 어떨까 물었다. 아내도 내심 하고 있었다고 한다. 예쁜 카드에 영국으로 유학을 가니 영어로 "We truly wish you all the best and great success with your study in England."라고 쓰고 약간의 달러를 넣어 봉투를 봉했다.

공항에서 환송할 때 전해달라고 마르티나에게 부탁했다. 공항에서 봉투를 열어본 남친은 뜻하지 않은 선물에 기뻐서 몸을 떨기까지 했다고 마르티나는 전했다. (아마 여친의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에 정말 고마워했다.

마르티나는 영국에 도착한 남친의 안부 전화를 기다리면서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보기 드문 일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 언제 이 남친을 사귀기 시작했니?
- 2007년 11월 17일

- 같은 반에서 남친이나 여친을 둔 사람은 얼마나 되니?
- 반 학생은 30명이다. 사생활에 대해서는 서로 묻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지만 반 이상은 될 것이다.
 
- 만남 100일, 1000일을 기념하지는 않나?
- 날짜는 계산하지 않는다. 해마다 사귀기 시작한 날을 중요시 여긴다. 
  처음 사귄 일자(예, 매월 17일)에 남자친구가 꽃을 선물한다.

- 사귐 생일을 어떻게 주로 기념하니?
- 남친은 꽃과 더불어 반지나 귀걸이 같은 선물을 한다.
  여친은 향수나 자기 이름을 새긴 티셔츠 등을 선물한다.
  그리고 레스토랑에 가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기념한다.

- 남친과 2년 차이인데 친구들은 주로 몇 살 차이가 나니?
- 여자친구들은 보통 나이가 1-3살이 더 많은 상급생과 사귄다.

- 남친이 리투아니아 국내 대학교에 진학하면 자주 많나고 좋을 텐데 왜 영국을 선택했나?
- 남친은 평소 18세 이상 성인되면 부모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해서 살아가기로 했다.
  리투아니아에 있으면 아무래도 부모의 도움을 받기가 쉽다.
  그래서 영국을 선택해 학비와 생활비 등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영국에 있는 Aberystwyth University에 정치학을 전공할 것이다.

- 언제 남친을 만날 것이니?
- 11월초 있는 짧은 방학을 맞아 영국에 가서 만날 것이다.

- 영국까지 가려면 여비가 비쌀텐데. 어떻게 해결하려고?
- 모아놓은 용돈으로 저가 항공을 이용하면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 남친이 영국에 새 여친을 만날 수 있을 법한데......
- 그가 새 여친을, 내가 새 남친을 만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서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기다려야 한다.

- 미래에 대한 계획은?
- 2년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남친과 같이 살면서 같은 대학교에서 공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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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심 강한 이 한 쌍의 10대로부터 강한 인상을 받고 있다. 이들의 굳은 사랑이 지금처럼 변하지 않고 둘 다 뜻하는 바를 꼭 이루기를 바란다.

* 관련글: 여고 1학년 딸, 남친과 해외여행
* 최근글: 리투아니아 최초 에르틱박물관 개관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7. 20. 13:05

일전에 올린 "아빠, 낯선 손님 데리고 오지마!" 글에 써여진 댓글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왜 맨날 요가일래 얘기만 나오고 17살 딸 얘기는 하나도 안나오나요? ㅋㅋ 너무 신비주의~ 전 요가일래가 외동딸인줄 알았어요...

우리집 가족 구성원은 모두 4명이다. 아내, 나, 17살 딸 마르티나, 7살 딸 요기일래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작은 딸과 늘 집에서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요가일래에 대한 글을 많이 올리고 있다. 마르티나는 오는 9월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2년이 된다. 10대 후반이니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집밖에서 친구들과 어울러 놀고 있다.

"아빠, 이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줘," "아빠, 내가 포즈를 취할테니 사진 찍어서 사람들이 보도록 해줘" 등등 요가일래는 자신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친권이 부모 둘 다에게 있기 때문에 민감한 주제에 관해서는 늘 아내의 동의를 구한다.

한편 마르티나는 사생활 문제에 예민한 나이에 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글을 올리기가 주저된다. 그래서 자연히 마르티나에 대한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거의 접할 수 없게 되었다. 위의 댓글을 아내와 마르티나에게 전해주었더니, 오히려 섭섭해 하는 듯했다. 이 댓글은 마르티나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게 한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마르티나를 통해 유럽 10대들의 이야기를 기회 있는 대로 쓰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마르티나가 남자친구와 단 둘이서 이웃 나라 벨로루시로 여행을 떠난 이야기이다.

마르티나는 6월 초순 벌써 여름방학을 맞았다. 방학이면 집에서 그 동안 못한 공부도 하고, 고등학교 2년 때 배울 과목도 미리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공부하라"는 말에 늘 마르티나와 요가일래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 같다.

"왜 방학이 있나? 바로 그 동안 공부하느라 지친 데서 잠시 쉬는 것이야!"

모두가 자녀들에게 "공부하라" 윽박지르는 혹은 윽박지르게 하는 사회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부부는 두 딸의 항변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래, 방학인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라."

아뿔사, 6월 하순 마르티나는 난데 없이 남자친구와 벨로루시로 여행을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남자친구가 벨로루시에는 살고 있는 친척을 방문하는 길에 마르티나에게 동행할 것을 제안했다. 지난 2년 동안 남자친구와 사귀는 것에 우리 부부는 익숙해 있지만, 막상 아직 미성년자인 마르티나가 남자친구와 단 둘이서 해외여행을 떠나겠다고 하니 그 당돌함에 충격을 받았다. 한 바탕 질책 후에 며칠 간 마르티나와 냉전을 치루었다.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여자 나이 만 17세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마르티나의 이모는 만 16세에 시집갔고, 외삼촌은 만 17세에 장가갔다. 마르티나 또래 친구들을 보면 남친과의 둘 만의 여행은 흔하다. 그들 부모들은 동양인이 보기에 지나칠 정도로 자녀들의 이성교제에 관대하다. 결국 아내와 함께 마르티나의 해외여행에 동의하기로 했다.

"가서 러시아어도 좀 배워오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직접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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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비자발급비와 여행경비 지원까지 받은 마르티나는 이렇게 남자친구와 함께 벨로루시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우리 부부도 단 둘이 해외여행을 떠난 경우도 드문데 여고 1학년 딸이 남자친구와 오붓이 해외여행가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 관련글: 유럽인 아내, 김치에 푹 빠지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