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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3. 5. 14. 14:48

살면서 가장 힘겨운 일 중 하나가 병이다. 수술로 치료해야 하는 병은 더 고생스럽다. 병원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지천명 나이를 전후로 해서 병원 신세를 몇 차례 지게 되었다. 먼저 갑상선 결절 수술이었다. 이 수술 한 번으로 이제 건강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또 다른 병이 찾아왔다. 


담낭 제거 수술을 지난해 2월 받았는데 그 간접적인 휴유증으로 인해 좀 고생하고 있다. 이야기를 1년 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월 16일은 1918년 리투아니아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날로 국경일이다. 아내는 딸을 데리고 지방에 있는 친정으로 갔다. <리투아니아 역사> 시험 공부하느라 혼자 집에 남아 있었다. 이날 오후 잠시 한국 교민 모임에 참가해 맛있게 만두국과 군만두를 원 없이 먹었다. 

17일 혼자 저녁을 먹고 간식으로 기름진 빵을 두 개 먹었다. 그리고 집중도 안 되고 눈도 피곤해 밤 9시 30분경에 취침했다. 그런데 배가 아파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밤 12시였다. 조금 후면 사라지겠지 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견디기 힘든 통증이 지속되었다. 열은 없고, 식은 땀이 나고, 속이 메스껍고, 오른쪽 배와 옆구리가 아팠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갑상선 수술을 한 후 정기적으로 병원에 검사를 다녔다. 초음파 검사에서 쓸개에 돌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통을 참으면서 아이팟으로 인터넷에서 담석증 증상을 찾아보았다. 일치했다. 혹시나 해서 음식 먹고 체했을 때처럼 바늘로 엄지 손가락, 엄지 발가락을 따보았다. 그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잠자는 가족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침이 되도록 꾹 참았다. 하지만 여전히 통증은 지속되었다. 

18일 아침 6시에 아내에게 전화했다. 집에 있는 진통제를 복용했지만, 통증은 여전했다. 결론은 112로 전화해 응급차를 불렀다. 방문 의사는 체온과 혈압을 측정했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진통제 주사, 아니면 병원행?"

진통제 주사를 맞아 일시적으로 고통을 줄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치유 방법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입원시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서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아픈 옆구리를 잡고 혼자 진료 등록을 하고 피 검사와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초음파 검사에서 3cm 크기의 담석이 발견되었고, 의사는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다시 정밀 피 검사를 받았고, 심전도 검사이어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주소와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었다. 

"보험되어 있지요?" 
"예."  

환자복을 받아 입원 수속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따라 병동으로 갔다. 4인실에 배정받았다. 11시 30분경 진통제와 링겔을 맞았다. 아내는 이날 저녁 무렵에 병원을 잠시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19일 일요일에는 아침도 없고, 링겔도 안 주고, 점심에는 고작 당근국 하나, 저녁에는 차 한 잔.
 
20일 월요일 10시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엄지손가락 두 개 만한 내시경으로 위까지 검사하는 데 구토 증세를 참느라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점심은 보리죽과 빵. 저녁은 차 한 잔. 마취의사가 찾아와서 마취제에 대해 과민반응 여부를 물었다.
 
21일 화요일 아침에 샤워를 하고 수술 시간을 기다렸다. 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오후 1시에 간호사가 왔다. 아내가 일찍 오기로 했는데 학교 일 때문에 오지 못했다. "혼자 태어나 혼자 살다 혼자 간다."라는 어느 리투아니아 독신 할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수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서 실려가는데 수술실 바로 앞에 승강기에서 아내를 만났다. 일원상 서원문을 암송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하면서 수술대에 올랐다. 오후 1시에 수술실에 들어가 오후 3시 40분에 병실로 돌아왔다. 복강경으로 수술이 이루어졌다.

의식을 회복한 지 제일 먼저 한 말이 "As gyvas?"(내가 살았어?)이다.

병원에 온 지 7일만인 24일 금요일 퇴원했다. 담석 제거 수술로 인해 몇 가지 부작용이 있었다. 수술 후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 두 달간 통원치료를 받았다. 또한 수술 후 곧 바로 대학교에서 강의를 해서 성대에 결절이 생겨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갑상선 수술할 때처럼 리투아니아에서 병원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보험이 되어 있으면 수술 비용에 별다른 걱정이 없고, 또한 보호자가 참 편하다."는 것이다. 보호자는 일상 생활을 그대로 하면서 방문 시간에만 찾아와 잠시 환자 곁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모든 국민이 적어도 의료비와 교육비에 대한 부담만큼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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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