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0. 7. 17. 07:40

외국에 오래 살다보니 특히 우리 집은 다문화가정이라 굳이 김치 없이도 살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 집 냉장고엔 거의 늘 김치를 담은 항아리나 플라스틱통이 자리잡고 있다. 한때는 김치가 떨어질 무렵 김치맛에 빠져 있는 유럽인 아내가 김치를 만들자고 성화를 부렸다. 

초기엔 김치 만드는 일은 항상 내 몫이었다. 소금에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배춧잎마다 양념을 바르는 일체의 과정을 혼자서 해야 했다. 김치 만들기에 다소 게으름을 피우자 아내는 "그러면 양념은 내가 준비하고 나머지만 당신이 좀 해"라면서 거들기 시작했다.

우리 식구가 먹을 김치만 만드는 때보다 주위 사람들과 나눠 먹을 김치를 만드는 때가 더 많다. 그래서 배추 여러 포기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는 데 제법 시간과 수고가 든다. 아직까지 이 일은 내가 한다.   


무, 양파, 마늘, 당근, 생강 등으로 김치양념을 만드는 일은 이제 아내가 맡아서 한다.    


올해 들어서 그동안 김치 만들기에 항상 방관자였던 고등학교 3학년 딸 요가일래가 어느 날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있는데 끼어들었다.


"아빠 내가 한번 해봐도 돼?"
"이거 하고 나면 손가락에 양념이 스며들어서 매운 맛이 있을 거야."
"괜찮아. 나도 이제 성년이 되었으니 직접 한번 해볼래."
"그럼 해봐."    


이렇게 해보더니 그후부터 김치를 담글 때마다 양념 바르기는 요가일래가 전담하고 있다. 특히 요가일래는 밥에다가 김치만으로 만족스럽게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이렇게 식구 세 명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니 김치 담그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귀찮아서 다음으로 미루는 일도 없게 되었다. 하나 더 좋은 점은 협력해서 만들어놓은 김치 맛이 각자 마음에 썩 들지 않아도 누구 하나 선듯 "왜 이렇게 맛없게 담갔니?"라는 투정이 사라졌다. 

아래는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아이유의 한낮의 꿈>을 부르는 요가일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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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20. 2. 25. 07:24

일년에 네다섯 번 정도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유럽 리투아니아인 장모를 방문한다. 부활절, 성탄절, 여름 방학 그리고 가을이다.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240km 떨여져 있다. 차로 3시간 걸린다. 옛날에는 라면, 다시다, 미역, 김 등을 챙겨가서 음식을 직접 해먹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음식을 가져가지 않는다. 유럽인 장모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고 온다. 

유럽인 장모를 방문할 때 어떤 음식을 얻어 먹고 올까... 
먼저 가장 많이 먹는 음식 중 하나가 감자 요리다. 오븐에 구은 감자와 붉은 사탕무(비트)다. 감자 위에 붙어 있는 검은 것은 캐리웨이(caraway) 열매다. 캐리웨이는 미나리과의 초본 식물이다. 호밀빵, 신양배추(자우어크라우트, sauerkraut, 양배추를 발효시켜 만든 음식) 등을 만들 때 널리 사용하는 향신료다. 닭고기를 양념하는데에도 사용한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주로 닭고기와 돼지고기를 먹는다. 빻은 돼지고기 위에 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웠다. 노란색 치즈가 군침을 삼키게 한다.  


붉은 사탕무와 작두콩을 삶아서 만든 요리다. 


고기 먹을 때 빠지지 않는 오이피클이다. 장모가 직접 만들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 이 오이피클 유리병이 늘 차 짐칸에 실려 있다.  


주섬주섬 주어 담은 이날 점심 접시다.


다음 번 식사의 주식은 푹 삶은 돼지고기였다. 신양배추와 함께 먹은 포슬포슬 분이 난 감자가 제일 맛있었다.


장모가 냉장고에서 예전에 우리가 준 고추장통을 꺼냈다.
"사위, 맛 좀 봐. 내가 직접 담근 김치야!"
"뭐라고요?! 장모님이 직접 김치를 담갔어요! 믿기 어려워..."
"맛 봐!"
"우와 먹을만해요."
"어떻게 알고 이렇게 김치까지?"
"딸이 전화로 가르쳐준 대로 해봤어."
"우리 장모 최고!"라고 하면서 엄지척했다.  


양념재료들이 많이 부족했지만 김치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이 장모표 김치를 고추장과 함께 쌀밥에 비벼 먹으면 참 맛있겠다.  


아래는 유럽인 아내가 직접 담근 김치다. 장모에게 갈 때마다 집에 김치가 있으면 이렇게 유리병에 담아서 선물로 가져간다. 


김치 빛깔부터 다르다... ㅎㅎㅎ


한국인 사위에게 한국의 대표음식 중 하나인 김치를 손수 담가서 맛을 보게 한 유럽인 장모의 정성이 김치의 부실과 맛을 평할 수 없게 만든다. 그냥 최고요!!!

* 몇 분이 댓글로 의견을 주셨습니다. 이 글에서 "장모"를 어떻게 표현할까 저도 고민했습니다. 호칭이나 지칭으로 사용할 때는 "장모님"이라고 해야 예의에 맞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아내의 어머니"라는 명사로서 "장모"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8. 12. 1. 04:35

이제 한국에는 김장철이다. 이곳 리투아니아 빌뉴스도 겨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날씨로 접어 들었다. 기온이 낮이나 밤이나 영하다. 어제 저녁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후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소식 하나를 전해주었다.

윗층에 사는 이웃이 느닷없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잠깐 방문해도 될까?"
"물론."

이웃은 70대 중반의 할머니다. 아내가 문을 열고 맞이하니 할머니는 그릇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이내 할머니는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내가 만든 김치야. 전에 내가 살았던 곳이 우즈베키스탄인데 그곳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았어. 한국 사람들은 정말 부지런해. 시장에 가면 여러 한국 음식을 쉽게 구입할 수가 있었어. 나도 김치 등을 사먹었는데 리투아니아로 이사를 온 후부터는 지난 수십년 동안 김치를 먹을 수가 없어 참 아쉬웠어. 그런데 며칠 전 잡지에서 김치 요리법을 읽게 되었지. 옛날 즐겨 먹은 김치가 떠올라서 한번 만들어 보기로 했어. 어디 한번 맛 좀 봐줘."
"평가해 줄 남편이 지금 집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덴테..."
"김치를 무엇으로 만드는 지 알아? 바로 중국 배추야!!!"

이 말에 아내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유럽인 아내는 오래 전부터 집에서 직접 김치를 담가 먹기 때문에 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참고로 유럽 사람들은 우리의 배추를 "중국 혹은 북경 배추"라 부른다. 우리는 유럽의 배추를 "양배추"라 부른다. 

이웃 할머니는 한국 사람이 살고 있는 우리 집에 와서 김치를 만들어 보았다는 자부심을 보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김치에 강황을 넣었다고 강조했다. 강황은 맵고 쓴 맛을 내며 노란색을 지니고 있다. 카레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그 김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아내가 냉장고에서 할머니가 만든 김치를 꺼냈다.

* 이웃집 유럽인 할머니가 평생 처음 담근 김치 

"앗, 백김치네!!! 고춧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매운 맛을 내기 위해 강황을 넣어겠구나. 그래도 붉은 색을 내기 위해 붉은 고추를 썰어서 넣었네. 볍씨처럼 생긴 저것은 뭐지?"
"크미나스(kmynas)라고 하는데 에스페란토로는 카르비오(karvio), 영어로는 캐러웨이(caraway)다." 검색해보니 캐러웨이는 미나리과의 초분 식물로 열매는 치즈, 술, 빵, 제약 등에 쓰인다. 

할머니가 만든 김치 맛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약간 맵고 시큼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갈 즈음 아내가 말했다. 
"며칠 전에 남편이 한국에서 공수해온 김치가 있다."

누군가 그릇에 음식 등을 가져 왔을 때 한국 사람들은 그냥 빈그릇으로 돌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아내는 발코니로 가서 김치 한 포기를 그릇에 담아 주었다.

"우와, 정말 한국 김치를 이렇게 먹을 수 있다니!!! 우리 남편이 정말 좋아하겠다."


평생 처음 담근 김치를 한국인에게 맛 보여 주려고 왔는데 이렇게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 직접 만든 김치를 맛볼 수 있다니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사실 주변에 알게 모르게 김치를 직접 담가 먹는 현지 유럽인들이 여러 있다. 포도주 평가사가 있듯이 언젠가 세계 곳곳에 김치 평가사라는 직업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8. 11. 23. 14:07

어디를 여행하든지 가급적이면 짐을 가볍게 가져 간다. 이번 11월 초 한국에 갈 때도 기내용 작은 가방만 가져 가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꼭 챙겨 주어야 할 분들에게 드리는 선물을 이미 준비했기에 어쩔 수 없이 화물용 가방 하나를 더 가져 가야 했다. 

의도적으로 3단 접이 가방을 택했다. 시간이 갈 수록 선물은 줄어들고 이 가방을 접으면 기내용 가방에 쏙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을 떠나기 바로 직전에 미역, 김, 다시마 등 몇 가지 한국 식자재를 넣어 수화물칸으로 가져올 생각이었다.

이렇게 폴란드인 친구와 함께 여러 도시를 방문했다. 가는 곳마다 친척이나 지인들의 초대와 환대 속에 즐거운 여행을 했다. 뭐하니 해도 한국 음식을 마음껏 그리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잘 먹는 폴란드인 친구에게도 참으로 좋은 기회였다. 옆에서 지켜보니 그는 김치를 밥만큼 많이 먹었다. 나는 김치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데 그는 여러 조각을 듬뿍 젓가락으로 집어 한입에 넣었다. 이렇게 해서 식당에서는 김치를 여러 번 더 주기를 부탁해야 했다. 그가 돌아와서 한 말이 떠오른다. "한국 음식이 맵다는 것은 한국 사람이 다 개고기를 먹는다라는 말과 같은 허황된 신화다." 

 
김치를 잘 먹는 그를 보더니 한 지인이 유럽으로 돌아갈 때 김치를 보내 주겠다고까지 했다. 비행기로 가져 가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사양해 봤지만 해외에 갈 때 수화물칸에 김치를 가져 간 경험이 있다면서 꼭 보내 주겠다고 했다. 여름철이 아니고 또한 아주 튼튼하게 잘 싸면 괜찮을 것이다라고 안심시켰다. 그렇다면 정말 조금만 보내줄 것을 부탁하면서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밤에 묵을 지인의 집주소를 알려 주었다.


그 후 여러 날을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다가 이제 한국 체류 마지막날이 되었다. 이날 밤 10시가 넘어서야 우체국 택배가 도착했다. 지인이 보낸 상자가 셋이나 되었다. 녹색 테이프로 꽁꽁 감싼 상자가 바로 김치다. 무게를 재어보니 24.5kg(김치 20kg + 기타 음식과 상자 무게)이나 나갔다. 이를 어찌하오리... 감사한 마음이 충만했지만 과연 이 김치 상자를 무사히 수화물칸에 실어 집까지 가져 갈 수 있을 지 심히 걱정 되었다. 


루프탄자 항공을 타고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최종 목적지 빌뉴스를 도착하는 노선이다. 우선 김치 상자 무게가 수화물 가방의 최고 허용 무게인 23kg를 넘어섰다. 추가 요금 지불 상황도 감안했는데 다행히 친구의 수화물 가방 무게가 15kg이어서 그런지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단지 아래 질문만 받았다.

"이 상자 안에 든 내용물이 무엇인가요?"
"아, 집에서 챙겨 준 김치가 들어 있어요."

탑승수속을 다 마친 후 직원이 화물용 가방 내용물을 최종 확인하는데 약 5분 정도 걸리니 잠시 가까운 곳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혹시 거절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으로 이때가 가장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호출이 없었다. 휴~~~ 이렇게 김치 20kg은 성공적으로 수화물칸으로 들어갔다. 


자, 이제 빌뉴스 입국시 세관통과만 남았다. 국경통과 간소화 쉥겐 조약국 공항을 출발해 쉥겐 조약국 공항에 도착해서 그런지 주변에 세관 직원도 보이지 않았다. 수화물 가방을 각각 찾아 입국장을 빠져 나오자마자 우리는 "(김치 무사 통과) 만세! 만세! 만세!"를 불렀다. 밤 12시에 도착해 일단 김치 상자를 난방이 안 들어오는 발코니에 옮겨 놓았다.  



시차 등으로 피곤해서 잠시 잊어 버리고 있었다. 귀국 3일째 되는 아침 발코니에 있는 김치 상자를 보니 부풀어 오른 듯했다. 아차, 진작에 김치를 다른 용기에 옮겨 담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열다가 김치 봉지가 터지게 되면 참으로 낭패다. 과연 김치를 어떻게 포장했을까 궁금해졌다. 두 겹으로 둘러 묶인 테이프를 뜯어 내니 아이스 박스가 나왔다. 


그리고 포장랩으로 여러 겹 촘촘히 씌운 봉지가 나왔다. 아이스팩 여러 개가 사이사이에 끼어져 있었다. 뽀족한 것으로 찌르면 한 순간에 펑하고 터져 버릴 듯했다. 김치 폭발 -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일단 조심스럽게 포장랩을 뜯어 내었다. 얇은 비닐 봉지가 나왔다. 눌러 보니 그 속이 생각보다 딱딱하지가 않고 물렁물렁했다. 터지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희망이 보였다. 첫 번째 비닐 봉지를 열어 보니 두 번째 비닐 봉지가 나왔다. 이를 열어 보니 김치를 최종으로 담은 약간 두꺼운 비닐 봉지가 나왔다. 참으로 철저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이어 아내는 평소 우리가 빌뉴스에서 만든 김치를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김치를 나눠 주기를 위해 크고 작은 여러 용기에 김치를 옮겨 담았다. 


이렇게 우리는 유럽에서 맛있는 한국 김치를 한 동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김치를 보내준 지인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한국 시골에서 직접 만든 김치를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주변 현지인들이 이 김치에 과연 어떤 반응을 할 지 궁금하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6. 12. 26. 06:12

유럽의 가장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다. 리투아니아의 크리스마스 공휴일은 24일, 25일, 26일이다. 대부분 학교는 2주일간 겨울 방학이다. 곳곳에 흩여진 가족들이 만나는 날이다. 24일은 가장 가까운 식구들이 모여 함께 풍성하게 저녁식사를 한다 [크리스마스 음식에 대한 글은 예전 글 참조]. 25일은 친척들이 서로 방문하면서 선물을 주고 받는다.   

친척들간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가 3년 전부터 우리 집은 김치로 하고 있다. 올해도 평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담갔다. 

크리스마스를 지방 도시에 사는 장모댁에서 보내려고 23일 도착했다. 장모님은 양배추국을 준비했다. 감자와 발효 양배추 그리고 돼지고기를 넣어 푹 삶은 국이다. 먼저 고기를 들어내고 국을 먹는다.


이어 고기를 빵과 함께 따로 먹는다. 


크리스마스 전야음식 식탁에 올릴 김치를 가져왔다고 하니 식탁에 둘러 않은 모두가 빨리 내놓아라고 했다. ㅎㅎㅎ 

큰 처남 왈 "고기와 김치!!! 이것이 최고 맛이지!"
따로 큰 처남 식구를 위해 김치를 큰 유리병에 담아두었다. 


다음날 저녁 장모댁을 방문한 작은 처남의 처가 통에 담긴 김치를 보더니 탐을 내었다. 아주머니는 독일에  일하고 있는데 잠시 휴가를 받아 돌아왔다.
"독일 친구들한테 한국 김치맛을 보여주려고 하니 조금 담아주면 좋겠네."


어설프게 담근 김치이지만 이렇게 고대하고 맛있게 먹는 처가집 식구들이 있으니 매운 맛을 참으면서 김치를 담근 보람을 느낀다. 올해는 이 김치가 몇몇 독일인들 입에까지 오르게 된다니...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6. 1. 28. 09:08

푸석푸석한 밥에 익숙한 사람은 윤기가 쫙 흐르는 찰진 밥이 맛이 없다고 먹기를 꺼린다. 반대로 찰진 밥에 익숙한 사람은 푸석한 밥이 맛이 없다고 먹기를 꺼린다. 전자는 주로 유럽인들이고, 후자는 한국인들이다. 물론 누구든 배가 고픈 사람은 이에 크게 구해 받지를 않겠다.

주변 유럽인들은 그렇게 자주 쌀밥을 먹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푸석한 밥이나 찰진 밥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갖지 않고 있다. 그저 이들에겐 쌀로 지은 밥에 불과하다. 

마르티나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하도 집밥(전기 압력밥솥으로 한 밥)이 생각이 나서 한국 식품가게에 가서 구입했다고 한다.


바로 김치와 햇반이었다. ㅎㅎㅎ



이렇게 찰진 밥 맛에 한번 푹 빠지면 정말이지 푸석푸석한 밥은 눈에도 맛이 없을 것이다. ㅎㅎㅎ 
쌀밥과 김치에 집을 떠올리는 유학생...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12. 23. 07:28

이제 이틀 후면 크리스마스다. "즐거운 크리스마스"라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지만, 어느 때엔 즐거움은 사라지고 고민만 머리 속에 맴돈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인데 가까운 친척들에게 "올해는 무엇으로 선물해야 하나?"가 12월 초순부터 우리 집의 화두다. 

어린이들은 순진무구하다. 그저 자기가 받고 싶은 물건을 산타 할아버지에게 부탁하는 편지를 쓰기만 하면 된다. 이 또한 부모로서는 고민거리다. 어떤 아이는 그 편지를 다른 식구들이 뜯지 못하도록 풀로 꼭꼭 붙여놓는다. 이 경우 부모로서 먼저 그 받고 싶은 물건이 무엇인지 파악해내야 한다. 설사 알아내었더라도 그 물건이 황당하거나 값이 부모가 감당하지 못할 때는 역시 고민스럽다.

* 방문에 부모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몰래 포장하니 방해하지 마라는 딸아이의 안내문 


친척들도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살짝 이야기해준다면 좋겠다. 말이 가까운 친척이지 일년에 서너 차례 정도 만난다. 그러니 이 또한 알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다'라는 원칙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올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만든 물건을 선물하는 것이 유행이다. 며칠 전 한국어 종강 수업에 한 학생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었다. 다른 학생들은 초콜릿 등을 선물했지만, 이 학생은 집에서 직접 만든 사과잼과 토마토잼을 선물했다.

* 빌뉴스대학교 한국어 수강생이 직접 만들어 선물한 사과잼과 토마토잼


자, 그렇다면 우리 집은 올해 어떤 선물을 결정했을까?
12월초 유럽인 아내와 선물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올해 친척들에게 무엇을 선물하지?"
"친척들이 우리 김치가 맛있다고 하니 김치로 하면 어떨까?"
"하기야 지금까지 김치를 선물한 적은 없었지."
"평소보다 더 많이 담그면 되겠네."
"우리만이 할 수 있으니 김치 선물이 딱 좋겠다." 

유럽인 아내의 일가친척들은 결혼 초기에 김치를 냄새가 나는 괴상한 음식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김치에 익숙해지더니 우리 집에 오면 이들이 제일 먼저 찾는 음식이 바로 김치가 되어버렸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어느듯 김치는 이들에게 신(神)적인 음식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김치 선물이 딱 좋을 수밖에... 

이렇게 아내와 함께 김치를 넉넉하게 담갔다. 소금을 뿌리고, 양념을 준비하고, 절인 배춧잎에 양념을 바르는데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들었다.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선물을 받아 좋아할 친척들을 생각하니 힘들지는 않았다.    


어젯밤 아내는 먹기 쉽게 긴 배춧잎을 입에 넣기 좋을 만큼 잘게 잘랐다. 그리고 유리병에 김치를 담아 포장까지 마쳤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전야 때 12가지 음식을 먹는다. 다가오는 새해의 12달 동안 건강하게 살자라는 염원이 담겨져 있다. 이날은 생선을 제외한 고기 음식은 없다. 


* 유럽인 친척들의 크리스마스 전야 식탁에 오를 초유스표 김치

  

이 식탁에 우리가 만든 김치가 12가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겨울철이라 김치에 마늘을 평소보다 2배는 더 넣었다. 매워서 입은 헐 수도 있지만 김치 효능으로 모두 건강한 새해를 맞기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다음첫면2014. 9. 29. 05:00

한국인이 외국에 살면 누구나 흔히 접하는 질문 중 하나가 있다.


"김치는 먹나?"
"먹지."
"사서 먹어 아니면 담가 먹어?"
"담가 먹지."

유럽에 산 지가 제법 되어서 김치 생각은 그렇게 간절하지 않다. 더욱이 매운 음식도 이제는 옛날처럼 잘 먹지를 못한다.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하다. 하지만 종종 라면 먹을 때 김치가 없으면 라면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 혹은 요리할 시간이 없어 식사해야 할 때 '아, 김치 하나만 있으면 후다닥 먹을 수 있을 텐데......'라고 아쉬워 하곤 한다.

우리 집에서 김치를 담그자고 재촉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리투아니아인 아내와 딸아이다. 딸아이는 김치가 매워서 먹지 않지만, 밥에다 김치를 발라서 즐겨 먹는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 생각날 때 김치를 담근다.    

담근 김치는 리투아니아인 친척들이 오거나 방문할 때 조금씩 선물로 준다. 이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김치를 찾는다. 일전에 친척이 방문했기에 조그만한 통에 김치를 담아주었다. 그 다음날 저녁 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내준 김치가 맛있어!"
"정말?"
"정말이지. 부탁 하나 있어."
"뭔데?"
"김치를 담가줘. 꼭 살게."
"김치 팔 정도로 김치를 담그지 못해."
"무슨 소리야! 정말 최고야."
"말은 고맙지만 아내에게 물어볼게."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상의했다.
"친척에게 돈 받고 김치를 담가주는 것이 우리 성격에 어울리지 않아."
"맞아. 하지만 배춧값 등 원가도 있고, 우리가 따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니까 받아도 나쁘지는 않지."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더욱이 그 친척 살람도 넉넉한 편이니까."

아내와 함께 난생 처음 팔 김치를 5킬로그램을 담갔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나중에 양념에 배추를 버무리는 일은 내가 하고, 양념 만들기는 아내가 맡았다. 


"그런데 얼마를 받지?"
"주는 대로 받지."
"그래도 기준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맛있다는 전제로 받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다른 것으로 보상해주면 어떨까?"
"동의!"


친척이 김치를 받으려 왔다. 맛을 보더니 아주 만족했다. 지갑을 열고 값을 지불했다.
아내가 원가를 제하고 나머지를 반반씩 나눠 각자 용돈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유럽에서 25년 살면서 이렇게 처음으로 김치 팔아 용돈까지 챙기다니 역시 살고 볼 일이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2. 10. 07:02

유럽인 아내의 조카가 30살 생일을 맞아 토요일 잔치를 열었다. 그는 리투아니아 국가 대표 축구 선수이자 러시아 프로 축구 선수이다. 특이한 사람이다. 보통 운동 선수들은 육식을 즐기는 데 그는 채식주의자다. 오래 전부터 육식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에 오면 그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바로 밥과 김치이다.

유럽 사람들은 30살 생일을 아주 성대하게 치른다. 그는 30이라는 숫자에 맞게 친척과 친구를 포함해 30명을 빌뉴스 텔레비전 탑 19층 하늘 식당으로 초대했다. 

이런 초대를 받으면 선물을 무엇으로 할까가 늘 고민이다. 

여러 가지 궁리 끝에 물질적으로 부족한 사람이 아니므로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떠오르는 물건이 그가 우리 집에 왔을 때 가장 잘 먹는 음식인 김치였다. 

알고 지내는 한인에게 전화했다. 마침 김치를 6kg 정도 곧 담글 예정이라고 했다. 김치만 달랑 줄 수 없으니 50도짜리 리투아니아 전통 꿀술도 준비했다. 10년을 1kg로 계산해 김치 3kg를 유리병에 담았다. 그리고 붉은 고춧가루에 어울리는 붉은 열매꽃을 꽃가게에서 샀다. 이렇게 선물이 마련되었다. 

토요일 저녁 7시에 텔레비전 하늘 식당에 도착했다. 빙빙 돌아가는 식당이다. 식사하면서 창 밖에 펼쳐지는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 그런데 이날 온도가 영상의 날씨라 늦은 오후부터 안개가 깔리기 시작했다. 결국 의도한 것과는 달리 전등빛 도시 야경을 즐길 수 없었다.

"붉은 색 김치, 50도 활활 타오르는 꿀주, 붉은 색 열매꽃처럼 앞으로도 계속 열정으로 살기 바란다."라고 말하면서 조카에게 선물을 건냈다. 뜻밖의 김치 선물에 조카는 몹시 기뻐했다.


"와, 정말 아껴 먹어야겠다. 오늘 식사에 이 김치 내놓으면 최고일 거야."
"뭐 오늘은 여기 고급 음식 먹고... 김치는 네 말대로 집에서 아껴 먹어... ㅎㅎㅎㅎ"

이 색다른 선물에 주위 사람들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한마디했다.

"앞으로 선물은 고민하지 말고 선물용 그릇에 김치를 담아주면 되겠다."
"나도 동감이야. 오늘 사람들 반응을 보니 정말이지 앞으로는 김치가 최고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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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2. 9. 10. 06:34

일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탈린에서 빌뉴스로 오는 국제선 버스에서 아내에게 전화해서 밥을 해놓아라고 말했다. 호텔이나 식당 음식만 먹으니 전기밥솥에서 한 따끈하고 찰진 밥이 몹시 먹고싶었다. 김치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들지 않았으니 없을 것이다.

아빠 현관문을 열자 딸아이가 제일 먼저 꺼낸 말이 식욕을 더욱 돋구었다.

"아빠, 엄마가 마리아(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한국인)님으로부터 김치를 샀어."
"정말?!"
"정말이지 빨리 밥 먹어."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내가 나를 위해 맛있는 김치까지 사서 준비해놓다니 한마디로 감동이었다.

김치통을 열자 감동은 조금 사그라졌다. 냄새와 빛깔이 사온 김치가 아니고 아내가 만든 김치임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10여년을 살면서 아내가 이렇게 나없이 혼자 직접 김치를 만든 일은 처음이다. 나 대신 아내는 딸아이와 함께 돌아올 나를 위해 정성껏 김치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며칠 있으면 더 맛있을 거야!"
"내일 아침엔 김치찌게를 해먹어야지."

* 아빠 대신 난생 처음 김치 양념을 버무리는 요가일래

아내는 폴란드인 친구가 만든 김치제작도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폴란드인 친구 라덱은 김치를 정말 좋아한다. 지난 여름 내가 만든 김치와 그가 만든 김치를 놓고 여러 사람들이 평가한 적이 있었다. 모두가 그의 것이 내 것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 

* 폴란드인 라덱이 만든 김치제작도

일전에 라덱은 자기가 만든 김치제작도를 나에게 보냈다. 역시 전력시설물 설계사답게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있다. 앞으로 김치 만들기를 묻는 현지인 친구들에게 이것을 보여주면서 설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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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2. 1. 9. 06:56

지난해 여러 달 동안 김치를 먹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직접 담근 김치 맛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3주 동안 한국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먹은 김치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돌아가면 꼭 김치를 담궈야겠다는 의욕까지 일어났다. 11월 초순 빌뉴스 집으로 돌아왔다. 리투아니아인 아내도 벌써 김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 김치 담그자."
"그럼 한번 다시 시도해보자."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지만, 배추 네 포기로 김치를 담궜다.

"짠 부분도 있고, 안 짠 부분도 있고......"라고 아내가 평가했다. 
"연말연초를 기해 요리사 친구가 우리 집에 와서 있을 때 김치 담그기를 우리 확실히 배우자!"
"정말 좋은 기회다."라며 아내가 아주 좋아했다. 

드디어 연초에 스웨덴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친구로부터 김치 담그기를 배우게 되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아내는 매순간마다 카메라로 기록했다.

▲ 그 동안 포기 김치를 담궜다. 그렇더니 배추 윗부분은 잘 절어지지 않았다. 또한 먹으려면 다시 포기를 조각조각 짤라야 했다. 요리사 왈: "먹기 좋을 만큼 미리 짤라서 소금에 절이는 것이 좋다."

▲  그 동안 물기없이 그냥 포기 안으로 소금을 뿌렸다. 요리사 왈: "배추에 물을 적시고 소금을 뿌리면 소금이 배추에 더 잘 붙는다."

▲ "김치 담그는 집에 큰 통이 있어야지, 이게 뭐여?!"라고 요리사가 일침을 놓았다. "여보, 우리 큰 통 하나 빨리 장만하자."라고 쑥스러움을 아내에게 전했다. 

▲ 절이는 배추 위에 돌을 얹어놓던 어머니의 모습이 이제야 떠올랐다. 요리사 왈: "물도 조금 넣어 절이는 배추가 모두 소금물에 잠기도록 해야 골고루 절어진다."

▲ 요리사 왈: "밀가루는 반드시 찬물에 풀고 끓어야 한다."
 
 
▲ 우리 김치에 들어갈 양념이다. 어떤 지인은 양파를 넣지 말라고 했다.
 
 
▲ 이번엔 양념 모두 빻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마늘과 생강만 빻고 다른 것은 잘게 썰어넣는 것이 좋다고 했다. 고추의 붉은색과 파의 초록색을 살리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음엔 이를 유념해야겠다.  
 
 
▲ 이렇게 통에 절인 배추와 빻은 양념을 넣고 섞었다.   

▲ 지금 우리 집 냉장고에서 익어가고 있는 김치  

음력 설날을 맞아 리투아니아 현지인 친구들을 벌써 우리 집으로 초대해놓았다. 요리사와 함께 담근 이 김치를 선보이고자 한다. 확실하게 배우고 나니 이젠 김치 담글 일이 걱정 되지 않는다. 계속 담그다보면 손맛도 늘어날 것 같다.

* 관련글: 김치에 정말 좋은 한국냄새가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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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1. 11. 28. 08:17

"한국에 가면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서 정말 좋겠다."라면 아내가 부러워했다.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처음 한국에 갔을 때에는 밥과 달걀, 김, 잡채 정도 밖에 먹지 못했다. 두 번째부터 아내는 김치찌게로부터 시작해서 뭐든지 먹으려고 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솜씨는 없지만 아내와 합작으로 자주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김치나 고추장을 먹고나면 속이 부담스러워했다. 그리고 당뇨 증세가 있다고 진단을 받은 후부터는 거의 삼가했다. 한국에 가도 삼가할 작정이었다. 막상 가보니 작정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 김치를 아무리 먹어도 속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난 왜 속에 부담주지 않는 이런 김치를 집에서 만들 수 없을까...... 

고국 가는 즐거움은 일가 친척, 친구, 지인을 만나는 데 있지만, 그 동안 먹지 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데도 있다. 한편 리투아니아 술을 가져가 맛을 보이게 하는 것도 즐겁다. 규정이 있어 넉넉하게 가져가지 못함이 아쉽다. 첫 모임은 에스페란토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리투아니아 술 보벨리네를 대접했다.    
 

만남을 위해 건배~~~
아래는 한국에서 머물면서 먹었던 음식들이다. 되도록 많이 찍어서 리투아니아 친구들에게 보여주려고 했지만 먹고 싶은 음식 앞에 두고 카메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위에게는 죄스러운 일이었다.  


바로 위 사진은 귀국길 비행기에서 발트해의 일몰 광경을 찍은 사진이다. 붉은 노을이 서울 인사동 한 칼국수 집에서 먹었던 붉은 김치를 떠올리게 했다. 김치를 다시 해먹야지 생각했지만 돌아온 지 벌써 2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노을을 김치 삼아 맥주를 한 잔하고 싶다. 하지만 우중충한 겨울철이라 저런 노을도 이제 보기가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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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1. 11. 12. 05:02

북동유럽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에는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클럽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카우나스(Kaunas)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류>이고, 다른 하나는 빌뉴스(Vilnius)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빌뉴스>이다. 이 두 클럽 모두 한국어를 배운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한국영화 보기, 한국문화 익히기 등 수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11월 10일 <한류> 한국문화 클럽은 김치에 대한 강연과 함께 직접 김치를 만드는 과정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들은 김치뿐만 아니라 오이소박이도 만들었다. 이날 열린 김치 만들기 이모저모를 담은 사진을 아래 소개한다. [사진출처 nuotraukos: Hallyu
 

이렇게 김치 만들기를 직접하면서 한류의 세계화에 일조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대학생들이 참으로 돋보인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박수 짝짝짝!!!

아래 영상은 김치를 맛보고 있는 리투아니아 사람들 모습이다. 주변에서 만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김치를 먹어본 후 "김치는 맵지만 맛있다"고 말했다.


* 관련글: 김치에 정말 좋은 한국냄새가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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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1. 9. 26. 06:04

금요일 딸아이는 바쁘다. 일반학교를 다녀오자마자 음학학교에 가야한다. 또 집으로 돌아와서 짐시 쉰 후 발레학교에 간다. 올 9월부터 발레 과외를 받는다. 허리를 곧곧하게 하고 다리를 똑바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보내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 이렇게 발레학교를 다녀온 딸아이에게 과제가 하나 더 있었다. 대출한 책 다섯 권을 인근 도서관에 반납하는 것이었다. 마감일이라 더 늦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집에는 딸아이와 나와 단 둘이 있었다.

"혼자 갈 수 있니?"
"아빠하고 같이 가면 더 좋지."
"그래 같이 가자."

도서관 가까이에 피자집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학교, 음악, 발레에 지친 딸아이에게 좋아하는 피자를 사주고 싶었다. 덩달아 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을 셈이었다. 

"우리 피자 먹고 갈까?"
"좋아. 그런데 우리 사가지고 집에서 먹자."

"가는 동안 식으면 맛이 없잖아. 그냥 피자집에서 먹고 가자."
"싫어."

"그런데 할인 카드(한 판 값으로 피자 두 판)를 엄마가 가지고 있어."
"그럼, 안 되겠다. 바보짓했다고 엄마가 화낼 수 있어."

"그래, 집에 가서 김치하고 밥 먹자."
"아빠, 빨리 집에 가자."

집으로 돌아와 접시에 밥을 담았다. 냉장고에서 있는 김치통을 꺼내 열었다. 익은 김치에서 나는 새콤한 냄새를 맡으면서 딸아이가 말했다.

"음~~~ 정말 좋은 한국냄새가 나네!!!"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는 김치의 배추는 아직 먹지 못하지만, 김치를 밥에 발라서 곧잘 먹는다. 보기에 맛이 하나도 없을 것 같지만, 딸아이는 붉게 페인트를 칠한 듯한 밥을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중 하나"로 꼽는다. 물론 접시 옆에 물컵이 반듯이 있다. 

딸아이가 이렇게 먹곤하다가 더 자라면 김치를 온전히 먹을 날이 올 것이라 기대된다. 대부분 유럽 사람들은 김치냄새에 눈살을 찌푸르는 데 김치에 정말 좋은 한국냄새가 난다는 딸아이 말에 웬지 한국인으로서 흐뭇한 마음이 든다.

* 최근글: 아리스토텔레스식 사위 고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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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음2011. 3. 23. 06:44

우리나라에서 배추라고 부르는 채소는 유럽에서는 중국배추라 부르고, 우리나라의 양배추를 배추라 부른다. 이곳 리투아니아 빌뉴스 대형마트에서도 쉽게 중국배추를 구입할 수 있다. 대부분 수입된 것이다. 요즘 중국배추의 값은 1kg 당 약 4리타스(천8백원) 한다.

하지만 이 중국배추의 꽃을 본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을 듯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우리나라 배추의 꽃을 본 사람이 있나요?"라고 묻고 싶다. 어린 시절을 한국 시골에서 보냈지만 배추꽃을 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최근 페이스북 친구를 통해 이 배추꽃을 보게 되었다.

바르샤바에서 살고 있는 폴란드 사람이 (중국)배추를 구입해 집안을 장식하는 화초로 키우고 있다. 비록 사진 안이지만 노란색 꽃을 바라보고 있으니 화사한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Foto: Wiesław Kaczmarek / sourc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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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을 떠오르게 하는 이 노란색 배추꽃으로 봄의 정취를 앞서서 감상하는 폴란드 사람이 부럽다. 김치재료의 배추가 화초 용도로도 아무런 손색이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7. 20. 08:56

이번 여름은 유럽인 아내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지 꼭 10년째가 되는 때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더니 적어도 아내의 식생활만큼은 확실히 변했다.

1999년 여름 두 달 간 한국을 방문했다. 이때 아내가 가장 고생한 것이 음식이었다. 매운 것을 먹지 못했던 아내가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밥과 달걀요리 혹은 김, 그리고 맵지 않은 국뿐이었다.

당시 한국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주로 에스페란토 친구들을 만났다.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지만 아내는 식성 때문에 이 환대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지나가자 아내는 용기를 내어 매운 김치를 맛보았다. 당시 포항 한식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맵지만 먹을 만하네"라고 한 두 점을 먹어본 아내를 말했다.
"바봐, 겁먹지 말고 그냥 먹어보면 된다구!"라고 맞짱구를 쳤다.
 
이날 아내는 김치 여러 점을 고기와 밥하고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매운 음식에 대한 용기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당연히 이날 저녁의 최고 화제는 김치였다.

하지만 기쁨 뒤의 고통은 너무나 빨리 왔다. 맛있는 식사 후 자고 있는 데 아내는 갑자기 속이 거북하다면서 깨웠다. 아뿔싸, 구토로 새벽내내 아내는 고생했다. 반드시 김치가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김치가 원인이라고 아내는 믿었다. 이후 아내의 김치 멀리하기는 방문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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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진수성찬에 밥 하나만 먹기엔 너무 억울해!"

2001년 다시 한국을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이때 한국을 방문하기 전 아내는 "이번엔 꼭 매운 것을 먹는 데 성공할 것이야! 진수성찬에 밥 하나만 먹기엔 너무 억울해!"라고 다짐했다. 믿음이 강해서 그런지 당시 방문에 한국음식먹기는 대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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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한인회장 부인으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는 아내 (왼쪽 첫 번째)

리투아니아 집으로 돌아온 이후 아내는 직접 김치 담그기를 시도했다. 인터넷에 얻은 정보로 아내와 같이 김치를 담궜지만 김치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는 리투아니아 한인회장 부인을 찾아가 직접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김치는 어떨까?

그 이후 우리집엔 김치가 떨어지는 날이 드물다. 김치가 없으면 김치 담그자고 아내가 오히려 재촉한다. 리투아니아 현지인 친구집을 갈 때 아내는 자주 김치를 가져가 한국의 최고 건강식품이라며 김치예찬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이렇게 10년을 같이 살다보니 유럽인 아내의 김치애호는 마치 강산이 변한 듯하다.  

* 관련글: 리투아니아인들에게 김치는 어떨까?
               "한국 김밥 정말 최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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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09. 4. 4.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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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목요일 저녁 밤 9시경
딸아이는 배가 고프다며 잠자리에 들지를 않았다.
저녁 내내 일을 하다가 밥을 아직 안 먹었기에
모처럼 딸아이와 함께 부엌 식탁에 앉아
늦은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먼저 7살 딸아이에겐 양념 김과 밥을 챙겨주었다.
냉장고에서 김치통을 꺼내 그릇에 김치를 담았다.

김치통을 열자 확 쏟아지는 김치 냄새를
맡으면서 딸아이는 평소처럼 김치 냄새에 찬탄했다.

"아~~, 김치 냄새 정말 좋다!"

이어서 딸아이는 김치통 안으로
코를 내밀고 시큼하고 쏘는 맛을 다시 음미했다.
그리고 딸아이는 한 마디를 더 했다.

"아빠, 우리가 이 김치 냄새를 우리 차 안에 놓으면 좋겠다."
"왜?"
"그러니까 우리 차에만 김치의 향긋한 냄새가 나니까!"

딸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김치 먹기를 권했을 때
딸아이는 "크면 먹을려요"라고 늘 답했다.
그러다가 만 6살이 된 어느 날
"아빠, 나 김치 먹을래!"라고 말했다.

그후 지금까지 딸아이는 배추는 먹지 않고
김치를 밥에 발라서 먹거나 밥을 김치에 찍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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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면서 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김치의 시큼하고 톡 쏘는 냄새를 향긋하다고 말하고,
이를 자동차 방향제로 사용하면 좋겠다는
깜찍한 발상을 한 딸아이 말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1. 30. 07:12

최근 처음 알게 된 리투아니아인이 자기 집 사우나로 초대했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초대 받으면 술과 약간의 음식을 가져 갑니다. 이럴 때 제가 가져가는 단골 음식은 뭐니해도 김치이죠.

처음 본 음식이라 모두들 한 번은 맛을 봅니다. 이날 한 사람은 포크로 가득 빵과 함께 먹어보더니 맵지만 먹을 만하다고 말하고, 다른 한 사람은 너무 매워서 먹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정말 김치의 매운 맛에 반했다고 합니다.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매운 김치를 한 두 번 먹다보면 이들 중 거의 대부분  김치를 좋아합니다.



* 이 동영상으로 2008년 2월 1일 다음블로거뉴스 동영상 특종상을 받았습니다.
* 배경 노래는 리투아니아 가수 안드류스 마몬토바스의 "달콤하고 어두운 밤"입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