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3. 7. 6. 05:57

그 동안 나를 담당했던 의사 3명이 다니는 병원을 그만두었다. 임금이 더 높은 서유럽 나라로 이동한 것으로 여겨진다. 리투아니아에서 거의 모든 치료와 진료는 가정의사로부터 시작된다. 일전에 치료를 위해 가정의사 진료를 예약하기 위해 관할 종합진료소를 찾았다.

그런데 담당 가정의사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얼굴도 예쁘고 자상하게 환자를 대해주었는데 몹시 아쉬웠다. 예전에는 해당 거리를 담당하는 의사에게 무조건 자동으로 등록이 되었는데 이제는 환자가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게 되었다. 

* 내가 다니는 빌뉴스 중앙 종합진료소

큰딸이 자신의 가정의사가 젊고 아주 씩씩하게 일한다고 소개했다. 딸의 이름을 말하고 아버지라고 소개하니 금방 딸을 알아보았다. 덕분에 초면인데도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진료소에 이런 의사도 있구나"라는 첫 인상을 받았다. 

나이가 벌써 50살이 넘었다고 하니 가정의사는 더욱 의욕적으로 대해주었다.  

"자, 이제부터 나와 함께 종합검진을 해보도록 하자."

가정의사는 간호사에게 필요한 모든 검사와 전문의 방문를 위한 일정을 잡도록 했다. 받아보니 빠른 시일에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해 약 2개월이 걸리는 일정이었다.  

- 정밀 혈액 검사
- 대소변 검사
- 심전도 검사
- 영양사 방문
- 비뇨기과 전문의 방문
- 안과 전문의 방문
- 내분비 기관 전문의 방문 

이렇게 해서 어제는 비뇨기과 전문의를 방문했다. 정년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듯한 나이가 지긋한 의사로 보였다. 

"어디서 왔어요?"
"남한에서 왔어요."(이럴 때마다 한국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말하면 분명히 '남쪽이냐 아니면 북쪽이냐'고 물어볼 것이 뻔하다.)
"몇 해 전에 서울에 갔어요."
"그래요? 얼마나 있었어요?"
"5일 동안 있었는데 한국이 참 좋았어요. 경치도 아름답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어디 아파서 왔어요?"
"아니요. 50살이 넘었으니 가정의사가 종합검진을 받아라고 일정을 잡아주었어요."

이렇게 대화를 하다보니 의사와 환자간 거리가 사라지는 듯 했다. 한국에서 받은 좋은 인상 덕분인지 의사는 정성스럽게 신장 등 관련 신체부위를 초음파로 검사해준 것 같았다. 검진을 마치고 비뇨기과 전무의실에서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국 사람들이 심어준 좋은 인상 때문에 외국 땅 리투아니아에서 내가 그 덕을 보는구나. 나도 내가 받을 생각은 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자. 그로 인해 오늘 나 경우처럼 다른 사람이 호의를 입을 수도 있겠다.'

비뇨기과 전문의의 호의를 침소봉대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 물론 의사는 병과는 관련없는 어떠한 배경도 고려하지 않은 채 환자를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 해 성대 결절 검사가 떠오른다. 종합진료소 전문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듯했다. 의사는 아무런 성대 결절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 대학병원 종합진료소를 찾았다. 이 의사도 아무런 결절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가려고 하는 순간에 우연히 대회가 이어졌다.

"리투아니아에서 하는 일은?"
"지금 빌뉴스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그래요? 나도 같은 대학교에서 가르치고 있어요. 우리는 서로 동료네요. 어디 한번 카메라로 더 세밀하게 성대를 살펴봅시다."

이렇게 해 결절을 찾았고, 수술까지 하게 되었다. 아뭏든 의사가 한국에서 받은 좋은 인상으로 한국인인 내가 오늘 호의적으로 비뇨기과 진료를 잘 받았다. 리투아니아 의사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 미지의 한국인들에게 감사드린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6. 29. 07:12

지방 통역 출장을 떠났다. 그 다음날 아내와 작은 딸은 큰 딸이 사는 영국으로 떠났다. 그렇게 우리 집은 하루 밤 동안 빈 집으로 남게 되었다. 통역은 3일 하고, 상황에 따라 2일 더 연장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더 하는 것이 좋겠어요? 아니면 집중적으로 3일만 하고 돌아갈려요?"
"아내가 없는 집이지만 ,그래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요. 통역말고도 할 일이 많아요."
"우리(리투아니아 남편들)은 아내가 없으면 집에 가지 않고 술 마시고 노는데...... ㅎㅎㅎ"

더 하면 더 벌 수 있겠지만, 그래도 웬지 일찍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집에는 나외에도 또 다른 동물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딸이 키우는 애완동물 햄스터다. 딸아이는 친척 집에 맡겨놓고 영국으로 떠나려고 했지만, 마지막에 마음을 바꿨다. 혼자 놓아두는 시간이 하루라서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먼저 부엌에 놓아둔 햄스터 집으로 가보았다. 27일 새벽 5시에 아내가 떠났고, 내가 돌아온 시간은 28일 저녁 9시였다. 햄스터가 혼자 있은 시간은 총 40시간이었다. 평소에 누군가 가까이 오면 반기는 듯 행동을 하는데 힘이 전혀 없어 보였다.

* 40시간이 지나도 해바리기 씨앗은 그대로

먹이통을 보니 해바라기 씨앗이 그대로 있었다. 그렇다면 40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았을까? 보통 해바라기 씨앗을 손으로 입 가까이에 주면 얼른 받아 까먹거나 통채로 입 먹이주머니에 넣는다. 그런데 집 밖으로 나왔지만, 먹이에 대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곧 야자수 열매 속으로 들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 기운이 쭉 빠진 듯한 햄스터 

돌봐주던 주인이 집을 비운 것을 알고서 올 때까지 단식하면서 기다리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니 정말 집에 빨리 돌아오길 잘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완동물 기르기에 익숙하지 않지만 딸을 대신에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우선 햄스터에게 주인은 아니지만 내가 집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못 부르는 노래도 하면서 일단 햄스터의 기분을 전환해주기로 했다. 부엌에 혼자 있게 하지 말고 내 방에 햄스터 집을 옮겨 놓았다. 컴퓨터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보면 생기를 되찾아 쳇바퀴 놀이를 할 것 같았다. 아내가 없다고 집에 가지 않고 노는 것 대신 슬픔에 빠져 있는 듯한 햄스터를 돌보게 되었다. 이 공덕으로 아내와 작은 딸이 영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오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3. 6. 27. 08:10

에스토니아 탈린 구시가지 변 공원에 분수대가 있다. 아이 둘이가 우산을 쓰고 떨어지는 빗물을 가지고 놁 있는 모습이다.  


최근 이곳을 지나다가 얕은 물웅덩이에서 푸드득 목욕을 즐기고 있는 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여름 더위에 새들도 물을 즐기는데 조만간 리투아니아 맑은 호수에 나도 풍덩 해봐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6. 17. 05:55

발트3국 관광안내사 일을 하느라 3주 정도 집을 비우게 되었다. 이 도시 저 도시, 이 나라 저 나라로 돌아다녔다. 인터넷 덕분에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프 등으로 집에 있는 식구들과 자주 연락을 서로 할 수 있으니 집을 떠나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래도 출장은 출장이다. 같이 부대끼면서 살다가 잠시지만 가까이 없으니 허전하다. 

* 리투아니아 트라카이

*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 에스토니아 탈린

* 라트비아 리가

지난 토요일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바빠서 선물을 사오지 못했어 미안해."
"괜찮아. 아빠가 집으로 온 것이 선물이지. 그리고 나하고 같이 놀아줘."
"무슨 놀이?"
"우리 탁구 치자. 옛날처럼 노래하면서 치자."


노래 한 곡을 다 할 때까지 탁구를 친다. 하다가 중간에 공이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노래한다. 


이렇게 출장에서 돌아와 한국 동요 "반달"을 부르면서 딸아이와 정겨운 시간을 가졌다. 선물 안 사왔다고 토라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좋은 선물이라고 즐거워하는 딸아이가 고맙다. 지친 몸이었지만, 딸아이와 기꺼이 탁구 놀이를 했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13. 6. 12. 05:39

1990년 6월 처음으로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을 방문했을 때이다. 당시만 해도 동양인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유럽인들이 자주 쳐다보았다. 그 중 용기있는 사람들이 묻는 첫 번째 질문이다.

"어디에서 왔나?"
"한국에서"
"남한이냐 북한인냐?"
"남한."
"아, 환상적인 서울 올림픽의 나라!!!"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유럽인들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아, 그 붉은 물결의 응원이 참 인상적이다"라고 답하곤 했다. 그렇다면 요즘은 어떨까?

*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시청 광장

일전에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구시가지 시청 광장 근처에서 어린이들을 만났다. 보통의 에스토니아인답지 않게 이들은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한국."

이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들은 강남스타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스마트폰으로 즉석에서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어주자 더욱 신나게 춤을 추었다.



"강남스타일 = 한국"이라는 등식이 이 에스토니아 어린이들에게도 형성되어 있다니 참으로 놀랍다. 한국을 널리 알린 싸이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5. 22. 06:06

외국에 나가 살고 있으면, 고향 나라 집에서 먹던 일상 음식이 참 그립다. 그래서 한국인 부모는 고추장, 된장, 고춧가루 등을 유학하는 자녀에게 보낸다. 

우리 집도 종종 한국으로부터 고추장 등을 받는다. 요리하기 귀찮거나 시간이 없을 때 흔히 맨밥에다가 여러 야채를 썰어 참기름을 조금 넣고 고추장을 비벼 먹는다. 

"이 맛이 진짜 꿀맛이다!"라고 유럽인 아내에게 말하면 "거짓말! 야채에 고추장이 뭐가 맛있어?"라고 반응한다. 그렇다면 리투아니아를 떠나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큰딸은 무슨 고향 음식을 그리워할까? 얼마 전 작은딸은 언니와 협상을 했다. 서로 좋아하는 것을 우편으로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위에 있는  리투아니아어 문장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안녕, 언니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여기 전에 협상한 물건이 들어 있는 소포야.
맛있게 먹어."  

결국 이 소포 보내기 일은 아내 몫이다. 2kg 미만 소포를 항공으로 영국에 보내는 데 드는 우편요금은 한국돈으로 7천원이다. 생각보다 비싼 편이 아니라 별 부담없이 보낼 수 있다. 


리투아니아 동네 우체국 모습이다. 보통 독립적인 건물이 아니고 아파트 건물 1층에 위치해 있다.


소포에 들어 있는 물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호밀빵
연유
훈제고기, 훈제소시지
해바라기씨 (TV를 보거나 할 때 가장 좋아하는 간식꺼리)

뭐니 해도 리투아니아인들은 주로 호밀로 만드는 흙빵을 외국에서 가장 먹고 싶어한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리투아니아 집으로 돌아오면 아내는 먼저 흙빵부터 찾는다.
 

며칠 후 영국 언니로부터 소포가 도착했다.


이 안에는 작은딸이 좋은 과자, 인형 등이 있었고, 나를 위해 LCD 화면 청수기가 들어있었다. 특히 인형은 작은딸에게 당분간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늘 잘 때 안고 잔다.


협상 결과물에 대만족해 하는 작은딸의 표정을 보니 큰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도 큰딸에게 음식물 소포 보내기는 이어진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5. 9. 06:33

유럽인 아내와의 생활에 어떤 어려운 점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대답의 첫 마디는 "살다보면 유럽인 아내, 동양인 남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사람인 아내와 사람인 남편이 살아간다."이다. 

* 아내와 함께 찍은 그림자 사진

굳이 예를 들어 어려운 점을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우긴다면 대답은 이렇다. 두리뭉실하고 '좋은 게 좋다'와 '그냥 그렇게 해' 방식에 익숙한 남편에게 유럽인 아내의 따지고 분석적인 성격이 종종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왜 짜증내?"
"ㄱㄴㄷㄹㅁㅂ......"
"그건 이유라고 할 수 없지. 진짜 이유를 말해 봐. "
"ㅂㅁㄹㄷㄴㄱ......"
"그것도 이유가 안 되는데. 뭐 표면적인 이유는 그렇다 치고 그 뒤에 숨은 진짜 이유는 뭐야?"

이렇게 이어지는 따지기에 짜증 수준이 화 수준으로 급등하게 된다.

아내의 이런 따지고 분석하려는 성격 탓으로 최근 덕을 본 일이 있어 소개한다. 리투아니아는 매년 4월 30일까지 지난 해 발생한 종합 소득을 신고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주민소득세와 사회보장세를 낸다. 

지난 해 소득 활동은 좀 복잡했다. 우선 고정 소득은 빌뉴스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댓가로 받은 강사료이다. 다음은 여름철 관광 안내사로 받은 소득이다. 이것이 까다롭다. 처음엔 영업허가(verslo liudijimas) 제도로 활동했고, 중간에 이것이 없어지면서 개인활동(individuali veikla, 오른쪽 사진) 제도로 했다.

어떻게 종합 소득을 신고해야 할 지 정확한 정보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다 4월말에야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인터넷으로 하게 되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세금 관련 일은 해결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 아내는 여기저기에서 유익한 정보를 얻었고, 의문 되는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지식을 습득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된 후에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 내 종합 소득을 신고하는 데 성공했다.

종합 소득을 신고한 지 불과 3일만에 국립 사회보장기금 기구(소드라: SODRA, 연금 등을 관리하는 정부 기구)에서 전화가 왔다. 요지는 사회보장세를 납부하라는 것이었다. 국세청에 신고한 정보가 그렇게 빨리 소드라로 넘어가다니...... 리투아니아 공무원들의 업무 처리 속도에 새삼 놀랐다.

"원래 세금 거두는 사람은 빠르잖아."라고 아내가 응답했다.  

"소득 신고액 기준으로 000를 납부해야 한다."라고 소드라 직원은 구체적인 납부 금액을 알려주었다.
"어딘가에서 30%를 제외한 금액에서 계산해야 한다고 읽었는데 아는 바가 없나?"라고 아내가 물었다.
"이것은 우리 측 사안이 아니므로 국세청에 문의해야 한다."라고 좀 차갑게 직원은 반응했다. 

아내는 호흡을 가다듬은 후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어느 정도 숙지한 후 국세청에 문의했다. 국세청 직원은 생각보다 훨씬 호의적으로 관련 사항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내용인즉 개인활동으로 얻은 소득액의 30%는 지출 영수증 없이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지출 영수증이 있다면 30%이상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특별히 이를 위해 영수증도 챙기지 않았고, 또한 100%에서 세금을 계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30%를 제하는 것이 정답이니 여기에 만족했다. 아내는 마치 공짜 돈을 얻은 듯이 기뻐했다. 
   
총 소득액에서 30%를 제한다. 남은 액수의 70% 중 5%를 주민소득세로 국세청에 납부한다. 또한 그 70%를 반으로 나눈 금액의 28.5%를 사회보장세로 소드라에 납부하고, 9%를 의무 의료보험료로 낸다.

이렇게 계산해보니 소드라 직원이 처음에 제시한 납부 금액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마침 이날 저녁에 아내의 생일잔치가 중식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그 차액으로 잔치비용을 부담하고도 솔찬한 액수가 남았다.

무엇인가 따지고 분석하려는 유럽인 아내의 성격으로 종종 피곤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날 따라 아내의 이런 성격이 정말 박수칠 만하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5. 8. 07:07

너도밤나무 꽃 냄새가 코를 찌르는 5월 초순인 7일은 아내의 생일이다. 올해는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이유는 봄이 평년보다 2-3주 늦게 왔기 때문이다.

* 같은 시기 지난 해 너도밤나무 꽃(좌)와 올해 너도밤나무 꽃(우)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보통 5년과 10년 주기에 생일을 크게 한다. 생일이 있는 주말에 일가 친척을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하면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렇지 않은 해에는 친지들에게 생일을 알리지 않고 가족과 함께 생일을 보낸다. 하지만 늘 어느 누군가는 축하하기 위해 올 수 있다는 것에 대비한다. 오는 손님을 그냥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45번을 맞는 생일이라 무엇인가 선물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했다. 요즘은 별로 소용이 없는 듯하지만 아내는 시계를 가지고 싶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동안 한국에서 기념으로 받은 시계를 차고 다니지만, 오래 되어서 고장이 난다. 벌써 여러 차례 시계병원을 다녀왔다.

함께 살아도 이런 선물은 아내가 직접 고르는 것이 제일이다. 몇 번이나 사라고 권유했지만, 아내는 아직 사지 않고 있다. 딱히 살만한 것이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는 손발이 차다. 특히 발이 시러워서 금방 잠에 들지 못한다. 술을 한 잔하고 잠자리에 들면 몸이 따뜻해져 잠이 잘 온다고 한다. 둘 다 술을 마시는 편이 아니라서 이마저도 행하지 않는다. 향이 좋은 꼬냑을 종종 아내는 상상한다. 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술값이 장난이 아니다. 좋은 포도주보다 값이 서너 배나 더 비싸다.

생일 전날 아내가 직장에 간 사이에 슈퍼마켓에 들러 최고의 꼬냑은 부담이 되어서 사지는 못하고, 중간 정도의 코냑을 선물로 샀다. 이는 이제까지 내가 구입한 술 중 제일 비싼 술이다. 아내와 함께 갔다가는 비싸다고 절대 사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산 꼬냑을 선물하니 아내는 기뻐했다.

이날 밤 아내와 꼬냑을 한 잔 하면서 '내일 아침 일찍 아내가 잠 든 사이에 살짝 나가서 꽃을 사와야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계획이 딸아이의 방해로 변경됐다. 

딸아이는 보통 밤 10시에 잔다. 이날은 숙제 때문에 10시 30분에야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11시경 딸아이 방을 보니 여전히 불이 켜져 있었다.

"빨리 자야지. 엄마가 보면 꾸중할 거야."
"쉿! 아빠가 살짝 오기를 기다렸어."
"왜?"
"내가 내일 학교에서 집에 올 때 엄마에게 생일 선물할 꽃을 사올 거야. 아빠가 돈을 좀 줘."
"아빠가 내일 새벽에 사려고 하는데."
"아빠는 벌써 꼬냑을 선물했잖아. 나도 뭔가를 선물해야 하잖아. 내가 꽃을 살게."
"알았어. 돈을 줄 테니, 빨리 자."

* 역할 분담으로 꽃을 선물한 딸아이

이렇게 딸아이와 생일 선물을 분담하게 되었다. 저녁에는 친지들을 중식당으로 초대해 식사를 하면서 생일잔치를 했다. 아내는 지난 해 연말 하나뿐인 여동생이 사망한 이후로 여전히 잔치할 기분이 아니지만, 그래도 기념적인 생일을 챙겨주는 것이 남편의 도리라 여겨서 하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13. 5. 4. 12:10

유럽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된 역사 영상이다. 1000년부터 2000년까지 유럽 역사 지도를 일목요연하게 영상으로 정리해 놓았다. 200년 단위로 정지 화면을 잡아서 큰 줄기만 한번 살펴보자.   

 1000년: 이슬람 스페인, 프랑스, 로마 제국,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비잔티움 제국, 키예프 루시 등이 눈에 띈다.

 1200년: 이슬람 스페인이 작아지고, 프랑스, 로마 제국,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키예프 루스 등이 눈에 띈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이 사라졌다.  

 1400년: 카스티야 왕국, 프랑스, 헝가리,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만 제국, 킵차크 칸국이 눈에 띈다. 키예프 루시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몽골 세력인 킵차크 칸국이 들어선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몽골 세력의 서방 진출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600년: 스페인, 프랑스, 폴란드-리투아니아, 오스만 제국, 러시아. 러시아가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해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광활한 옛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 

 1800년: 스페인, 프랑스,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이 눈에 띈다. 1300년대부터 700년대 말까지 동유럽의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2000년: 지금의 유럽 모습이다. 수많은 공국으로 갈라져 있던 독일이 하나로 되었다. 동유럽에서는 루마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가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새롭게 유럽 역사에 등장했다.
 


이 영상 덕분에 비록 주마간산격이지만 유럽의 1000년 역사를 쉽게 엿볼 수 있다. 200년 단위로 살펴보면서 매번 큰 변화가 있었다. 지금부터 200년 후 유럽의 모습은 어떠할까? 유럽 연합이 더 확대되어 큰 전쟁과 갈등이 사라진 평화스러운 세상이 구현될까......
Posted by 초유스

발트 3국을 여행하는 한국 사람들이 라트비아에서 대표적으로 방문하는 곳은 수도 리가(Riga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유르말라(Jurmala), 남쪽으로 룬달레(Rundale) 궁전, 동쪽으로 투라이다(Turaida) 성이다. 

* 투라이다 상 입구(상)와 방어탑에서 내려본 전경(하)

리가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는 투라이다 성은 가우야(Gauja) 강변의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가톨릭 리가 대주교 알베르트(Albert)가 1214년 세우기 시작했고, 리가 주교의 거주지 중 하나였다. 1776년 화재로 폐허가 되었고, 1970년대부터 유적 발굴과 복원 사업이 전개되었다. 지금은 일부가 복원되어 박물관으로사용되고 있다. 특히 높은 방어탑에서 내려다 보는 주변 경관이 일품이다. 


* 투라이다 성 안 뜰에서 본 모습

투라이다 성은 "투라이다의 장미" 이야기로 유명하다. 폴란드와 스웨덴 전쟁 중 1601년 봄 전투장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여자아이 한 명 발견된다. 성 관리인은 마이야(5월이라는 뜻)라고 이름 짓고 친딸처럼 잘 키운다. 

마이야는 "투라이다의 장미"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로 자라 강 건너 시굴다(Sigula) 성의 정원tk 빅토르 헤일(Viktor Heil)과 약혼한다. 한편 당시 성에 근무하던 폴란드 군인 아담 야쿠보브스키도 청혼했지만, 마이야는 이를 단번에 거절한다. 아담은 빅토르가 편지를 쓴 것처럼 속여서 마이야를 인근에 있는 구트마나(Gutmana) 동굴로 유인한다.

마이야는 약혼자에게 지조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아담에게 자신의 붉은 스카프는 마법을 지니고 있어서 심지어 검으로부터도 자신을 보호해줄 수 있다고 하면서 한번 해보라고 한다. 이에 아담은 그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친다. 이때가 1620년, 마이야가 19살이다.  

* '투라이다의 장미'(마이야)의 무덤

약혼녀의 죽음을 전해 들은 빅토르는 동굴로 달려온다. 서두러다가 잃어버린 그의 도끼가 동굴 속에서 발견된다. 졸지에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하지만 아담의 동료 군인이 진실을 법정에서 밝히자 빅토르는 풀러난다. 마이야는 투라이드 성 안에 묻혔고, 빅토르는 그 무덤 곁에 보리수 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이 나무는 두 사람의 슬픈 사랑을 표현이라도 하듯이 기이한 모습을 하고 지금도 자라고 있다. 

* 마이야가 죽은 장소로 알려진 구트마나 동굴

마이야가 지조를 위해 목숨을 버린 구트마나 동굴은 발트 3국에서 가장 큰 동굴이다. 길이 19m, 너비 12m, 높이 10m이다. 사암층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치료와 회준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 내려온다. 지난해 여름 이 동굴에서 나와 도로변 주차장으로 돌아오다가 신기한 나무의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나무 밑은 연리목이요, 위는 연리지이다.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은 흔히 연리목(連理木)이나 연리지(連理枝)로 비유된다. 밑에서 연리목이 된 두 나무는 또 다시 위에서 연리지를 형성한다. 훨씬 후세대에 자라기 시작한 나무이지만, 마치 마이야와 빅토르의 애틋한 사랑의 극치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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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13. 4. 26. 07:00

유럽 사람들은 옛날부터 자녀가 출생 비밀을 물을 때 "저기 있는 저 황새가 너룰 물어다 주었지"라고 흔히 대답한다. 요즈음 남쪽에서 날아온 황새를 리투아니아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황새는 리투아니아의 국조(國鳥)이다.

동양에 사는 흰 부리 황새와는 달리 유럽에 사는 붉은 부리 황새는 인가 근처에 서식한다. 유럽 사람들은 황새를 길조(吉鳥)로 여긴다. 황새는 주로 농가 가까이에 있는 전봇대나 탑,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틀고 산다. 황새가 자신의 마당에 둥지를 틀도록 사람들은 각별히 원한다. 때론 자기 마당에 높은 나무 기둥을 세우고 직접 둥지를 만들어 황새가 머물도록 도와주는 사람도 있다.

리투아니아는 3년째 황새의 삶을 인터넷으로 실시간 생중계를 하고 있다. 황새의 위치는 한국인 관관갱들도 자주 찾는 <십자가 언덕>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나이세이(Naisiai)라는 마을의 농가이다. 농가의 높은 곡물 탑에 황새 한 쌍이 살고 있다. 


한 마리가 4월 21일 이 둥지에 먼저 도착해 둥지를 살펴보고 다른 황새를 맞을 준비를 했다. 곧 이어 온 황새와 쌍을 이루어 살고 있다. 농민, 사업가, 후원자 등이 협력해 영상과 음향 기기를 설치했다. 이 마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새 둥지가 있다. 그 지름이 3미터이다. 새집 박물관도 있는데 다양한 새집 150여개가 전시되어 있다.   



한편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그해 처음으로 본 황새의 모습에 따라 운세를 점친다. 예를 들면 처음 본 황새가 둥지에 있으면, 그해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즉 시집을 가지 않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거나 이사를 하지 않는다. 날아가는 황새를 보았다면, 그해 시집을 가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혹은 이사를 한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3. 4. 23. 06:33

북위 55도에 위치한 리투아니아에는 한국이나 일본에 흔한 벚나무가 자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네리스 강변 언덕에는 작지만 벚나무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난 일요일 이 공원을 다녀왔다. 만개를 기대하고 가봤지만, 이제서야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조만간 아름다운 꽃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곧 강남에 간 제비가 돌아오고, 벚꽃이 만개하면 여기서도 완연한 봄을 즐길 수 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20. 05:59

이번 주 낮 기온은 기록적이었다. 18일 빌뉴스 최대 기온이 22도까지 올라갔다. 4월 중순에 보기 드문 여름 날씨이다. 꽃들은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겠지만, 아직은 대부분 나무들이 새싹을 못 틔우고 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맘때 집안에서 파릇파릇한 나뭇잎을 감상하면서 봄의 정취를 느낀다. 2월 하순 경에 버드나무 가지를 사거나 꺾어서 화병에 담아 거실에 놓아둔다. 우리 집 거실에 버들강아지가 주렁주렁 맺힌 버드나무 가지가 있다. 


얼마 전부터 파릇파릇한 잎이 나아  보는 이의 기분을 싱그럽게 하고 있다. 진달래가 없는 나라에서 이렇게나마 버드나무 잎으로 마음 속에서 완연한 봄을 앞당겨 본다.


겨울철 내내 거실에서 피고 있는 서양란도 봄날 햇살에 더욱 돋보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17. 06:33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기에 평소보다 더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화요일 아내는 직장에 가지 않는다. 직장이 음악 학교인 아내는 원칙적으로 수업이 있는 날과 그 시간에만 학교에 간다. 월요일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꼭 금요일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다.

이번 월요일 밤에도 그랬다. 아내의 수면제는 읽기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여년 동안 일간지를 정기 구독했다. 하지만 올해 초 신문 구독을 끊었다. 이유는 인터넷 때문이다. 아내는 이제 신문 대신 휴대폰, 아이팟 혹은 탭북으로 신문 기사 등을 읽으면서 잠에 든다. 어제는 고이 자는 남편을 깨웠다.

"왜 그래?"
"창문이 정신없이 흔들려 잠을 잘 수가 없어."
"리투아니아는 지진이 없는 나라잖아."
"그게 아니고 머리가 어지러워."
"봐, 좀 철분약을 먹었어야지."

아내는 평소에도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다. 한 달에 한 번은 더 심한 현기증을 겪는다. 이 경우에 철분약 섭취를 습관화하라고 권하지만, 무슨 약이든지 복용을 꺼리는 아내는 참고 견디는 편이다. 

이날 비상약통에서 철분약을 꺼내 아내에게 주었다. 이어서 심장박동수가 현저하게 떨어진 것 같다고 해 심장약도 주었다.

"빨리 인터넷에서 빈혈 응급처치를 알아봐."
"미역국, 김, 다시마 등이 철분이 풍부해 좋다고 해. 내일 고기 넣고 미역국을 끓어줄 테니까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을 청해봐."

* 작년 가을 후(거의 6개월만에) 처음으로 발코니에서 생활

화요일은 정말 진짠 봄 같은 날씨였다. 낮 기온이 영상 14도였다. 처음으로 목도리 없이 외출했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온 후 발코니를 혼자 말끔히 청소하고 잠잘 때까지 발코니에서 생활했다. 한편 이날 딸아이는 친구들과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놀다가 평소보다 두 시간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빨리 집으로 와. 맛있는 미역국이 있어?"
"누가 했는데? 엄마 아니면 아빠?"
"네가 와서 먹어보고 말해."

딸아이는 아빠가 한 밥과 엄마가 한 밥, 아빠가 끓인 라면과 엄마가 끓인 라면, 아빠가 한 미역국과 엄마가 한 미역국을 구별한다. 구별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주로 전자만 먹으려고 한다. 

"미역국 맛 보니 어때?"
"정말 맛있어."
"누가 했을까?"
"엄마 냄새가 나는데."
"봐, 엄마도 미역국을 맛있게 할 수 있잖아."

* 식은 후의 미역국

아내와 나는 눈짓으로 딸아이의 짐작을 그냥 받아들이고, 진실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이제는 엄마가 미역국을 끓이는 것을 직접 보아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때론 아이에게 이런 편법으로 가르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8. 05:20

겨울 내내에 발코니에 놓아두었던 긴화분을 토요일에 욕실로 옮겨 물을 듬뿍 주었다. 그리고 씨앗을 심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내가 극구 반대했다.

이유는 월력으로 보면 심을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장모와 전화한 후 "지금은 달이 그믐으로 향하니까 씨앗을 심을 수가 없다. 심으면 씨앗이 자라지 않는다. 기다렸다가 그믐달이 상현달로 커질 때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4월 5일이 식목일이야. 그리고 3일 후면 그믐이야. 지금 심는다고 해서 씨앗이 자르지 않는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토양, 온도 등이 맞으니 씨앗이 싹을 띄울 거야."
"고집 그만 부리고,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고대부터 해오던 대로 하면 안 돼?"

주말이다. 씨앗 심기 유혹에 벗어날 수 없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유혹에 넘어가기로 했다. 아내가 딸아이와 함께 볼링장에 간 틈을 이용해 부활절에 사놓은 딸기 씨앗 봉지를 뜯었다. 


딸기의 학명은 fragaria ananassa이고, 영어로는 strawberry이다. 에스페란토로는 frago인데 이는 바로 딸기의 라틴어 학명에 어원을 두고 있다.  

대형상점에서 풍성한 딸기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발코니에 놀고 있는 긴화분이 생각 나서 별다른 고민 없이 씨앗을 샀다. 아내가 옆에 있었더라면 극구 말렸을 것이다. 예전에 딸기 심었다가 큰 수확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고, 또한 한 봉지 가격이 10리타스(약 4천5백 원)이었기 때문이다. 


봉지를 뜯어보니 "애고, 잘못 샀구나!"라는 후회심이 먼저 들었다. 눈꼽보다 더 작은 씨앗이 달랑 다섯 알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가격으로 딸기를 사먹는 것이 더 현명할 듯하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다섯 개 씨앗을 심었다. 


아내의 말대로 달이 하현에서 그믐으로 향하는 때 심은 씨앗은 정말 싹이 트지 않을까? 아니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풍성하게 자라 적어도 하루 분량 딸기를 맺을 수 있을까? 두 서 달 후가 벌써 궁금하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3. 06:38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처가집을 방문하는 때는 일년에 적어도 두 번은 고정적이다. 바로 성탄절과 부활절이다. 아무리 바빠도 가족의 화목을 위해 이 두 경우만큼은 이탈할 수가 없다. 올해도 어김없이 갔다. 

유럽 곳곳을 강타한 폭설이 리투아니아에도 주말에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간간히 눈이 내렸지만 폭설까지는 아니여서 다행이었다. 250km 거리를 이동하는데 일부 구간에서 눈이 내렸지만, 교통에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4월 1일 부활절 아침 창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성탄절로 착각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렇게 따뜻한 봄을 기대하고 있는데 꽃 부활 대신 눈 폭탄이 터진 부활절이었다. 


부엌 창가에 핀 실내 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리투아니아는 부활절 일요일과 아울러 그 다음 월요일에도 국경일이다. 이 이틀 동안 일가 친척이나 친구 집을 방문해 그 동안 절제해왔던 고기 음식과 함께 술을 마신다.

찾아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중 처남이 찾아왔다. 처남은 감기로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급히 딸아이를 거실로 피신을 시켰다. 감기 예방의 최고는 감기 환자와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방문은 좋지만...... 아, 좀 참아주지. 전화로 충분하지 않나?"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래도 부활절인데. 대신 빨리 우리 마늘 먹자!"

나는 사과 조각과 함께 생마늘을 먹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아내는 마늘을 조각조각 내어 빵에 얹어서 주었다. 


"자, 생마늘 치즈다!"
"그래도 먹기 싫어."
"감기 들어 고생하는 것보다 싫은 것을 먹는 것이 더 좋아. 엄마가 어렸을 때 이것이 최고의 감기 예방약이었다."


"한국 사람은 마늘의 자손이므로 마늘을 잘 먹어야 돼"라고 옆에서 거들었다. 이렇게 유럽의 리투아니아들도 마늘을 흔히 먹는다. 물론 가급적 외출이 없는 날 먹는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4. 1. 07:11

오늘은 만우절이다. 오늘은 만우절이다. 지금 글을 올리는 이 시각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자기 전 내일이 만우절이라 의식하지만, 일어나면 진짜 같은 거짓말에 속기가 십상이다. 한국은 벌써 오전이므로 벌써 선의의 거짓말을 했거나 속은 사람들이 있을 법하다.

지난해 여론조사에 의하면 리투아니아 사람 74%가 만우절을 좋아하고 이날을 기억한다. 이날을 1년 중 가
장 자유롭고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날로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만우절 거짓말에 속아야 1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흔히 화장실 성별 표시 중 하나는 치마가 있는냐 없느냐이다. 남자 화장실 표시에 치마만 살짝 입혔다. 특히 남자들이 우글대는 때라면 웃음보다 창피가 앞설 것 같다.  


무지개가 바로 코앞에 떠있다. 이렇게 기발한 방법으로 사라름들은 만우절을 즐긴다. 그런데 최근 폴란드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가 된 만우절 속이기는 정말 그 정성에 감탄을 자아낸다.  [사진출처 source link]


만우절 재미를 만끽하려면 이 정도 공력은 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뭏든 만우절은 빈약한 거짓말이라도 속고 속이며 한 바탕 크게 웃는 날이다. 오늘 아침 리투아니아 신문이나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 어떤 거짓 뉴스가 나올지 궁금하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만우절 속아 1년간 모두 행복하세요.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3. 3. 28. 06:27

오는 일요일은 부활절이다. 부활의 의미처럼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는 절기이다. 그런데 동유럽은 여전히 춥다. 최근 부다페스트에 폭설이 내렸고, 이어서 키예프에 폭설이 내렸고, 또 이어서 모스크바에 폭설이 내렸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번 주말 리투아니아에 눈이 내린다. 부활절을 보내기 위해 인구의 대이동이 일어나는데 폭설은 제발 아니길 바란다. 

* 사진 출처: demotywatory.pl

바로 위 사진이 지금의 동유럽 부활절 날씨를 잘 말해주고 있다. 눈사람 대신 부활절 달걀을 눈으로 만들어놓았다. 참으로 날씨에 딱 맞는 기발한 발상이다. 

하지만 바깥 날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백화점이나 대형상점은 부활절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활절 조형물 등을 세워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뭐니 해도 부활절의 상징물은 색칠한 달걀과 토끼 초콜릿이다. 최근 빌뉴스 오자스(Ozas)를 다녀왔다. 그 다채롭고 화사함에 넋마저 잃은 듯했다.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 집 거실도 위 사진 속처럼 꾸며보고 싶은 충동이 순간적으로 폭발했다.         


특히 넓은 우리 속에서 살아있는 병아리와 토끼 전시가 인상적이었다. 


부활절은 다가오건만 날씨는 여전히 겨울이다. 그래도 봄은 오니 기다릴 수밖에...... 부활절 잘 보내세요.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11. 28. 08:17

"한국에 가면 한국 음식을 많이 먹어서 정말 좋겠다."라면 아내가 부러워했다.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처음 한국에 갔을 때에는 밥과 달걀, 김, 잡채 정도 밖에 먹지 못했다. 두 번째부터 아내는 김치찌게로부터 시작해서 뭐든지 먹으려고 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솜씨는 없지만 아내와 합작으로 자주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하지만 김치나 고추장을 먹고나면 속이 부담스러워했다. 그리고 당뇨 증세가 있다고 진단을 받은 후부터는 거의 삼가했다. 한국에 가도 삼가할 작정이었다. 막상 가보니 작정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신기한 것은 한국에서 김치를 아무리 먹어도 속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난 왜 속에 부담주지 않는 이런 김치를 집에서 만들 수 없을까...... 

고국 가는 즐거움은 일가 친척, 친구, 지인을 만나는 데 있지만, 그 동안 먹지 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데도 있다. 한편 리투아니아 술을 가져가 맛을 보이게 하는 것도 즐겁다. 규정이 있어 넉넉하게 가져가지 못함이 아쉽다. 첫 모임은 에스페란토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리투아니아 술 보벨리네를 대접했다.    
 

만남을 위해 건배~~~
아래는 한국에서 머물면서 먹었던 음식들이다. 되도록 많이 찍어서 리투아니아 친구들에게 보여주려고 했지만 먹고 싶은 음식 앞에 두고 카메라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위에게는 죄스러운 일이었다.  


바로 위 사진은 귀국길 비행기에서 발트해의 일몰 광경을 찍은 사진이다. 붉은 노을이 서울 인사동 한 칼국수 집에서 먹었던 붉은 김치를 떠올리게 했다. 김치를 다시 해먹야지 생각했지만 돌아온 지 벌써 2주일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노을을 김치 삼아 맥주를 한 잔하고 싶다. 하지만 우중충한 겨울철이라 저런 노을도 이제 보기가 힘들어졌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2. 12. 07:33

어제 보건소를 다녀왔다.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동행할 계획이었다. 어제는 아내가 쉬는 날이라 보건소 예약을 세 군데나 했다. 요즈음 리투아니아에도 아주 편해졌다. 인터넷으로 담당의사 진료예약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 가면 된다. 인터넷 예약이 없었을 때는 의사 근무시간에 맞추어 복도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요가일래 진료, 아내 진료, 나 진료 셋 모두 장소가 각각 다른 보건소였다. 3시, 4시, 5시였다. 내 진료예약 시간이 다가오자 아내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아직 아내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으니 혼자 담당의사에게 가라고 했다. 아내가 없으니 의사소통에 좀 문제가 있을 듯 했다. 하지만 다시 또 예약하려면 시간이 마냥 지체될 것 같았다. 진료 도중 아내가 도착한다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다라는 심정으로 보건소로 달려갔다.

리투아니아는 1차적으로 가정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필요한 검사와 해당 전문의를 결정한다. 이날 처음 대면한 가정의사는 참 친절했다. 편하게 대화했다. 낯선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면 꼭 나오는 말이 있다.

"리투아니아어 잘 하시네."
"정말 어려워요."

문법과 강조음이 형편 없다고 늘 생각하는 데 리투아니아인들은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다. 당연히 외국인이니까 문법 등은 서툴지만 일단 리투아니아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칭찬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는 이렇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한국에서."
"그렇게 먼 나라에서?! 온지 얼마나 되었어요?"
"10년."

"리투아니아에 50년 이상을 산 외국인들 중 아직 리투아니아어를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라는 말이 첨가된다. 그리고 이들은 새내기 동양인이 말하는 것에 아주 만족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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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봄 함께 리투아니아어 강좌에 참가했던 리투아니아 거주 외국인들

보건소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함께 모임을 나가려고 했다. 아내는 아직 아파트 내에 있었다. 먼저 현관문을 나오려는 참이었다. 그때 10미터 전방에서 할머니 두 분이 오고 계셨다. 현관문을 잡고 두 분을 기다렸다. 잠긴 문을 열려면 코드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번거러움이 따른다.

"안녕하세요. 들어가세요."라고 열린 문을 잡은 채 말했다.
"역시 외국인은 달라!!!"라고 답했다.

잠시 후 내려온 아내가 말했다.
"방금 할머니들이 당신을 존경한다고 꼭 전해달라고 부탁했어. 리투아니아 사람 같으면 인사도 없이 그냥 모르는 척 문을 확 닫고 가버렸을 거야."
"인사 한 마디 하고 현관문 잡고 잠시 기다렸을 뿐이데 존경이라는 단어까지 듣다니......"


그렇다. 단기든 장기든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의 인삿말을 익혀 적어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꼬박꼬박 인사하고 현관문 잡는 것 같은 작은 친절이라도 베풀만 '존경'이라는 영광스러운 단어를 수확할 수 있게 된다.

3층에 사는 한국사람 정말 존경스럽다라는 소문을 할머니들이 쫙 퍼트리면 앞으로 더욱 더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니 부담스러워서 어쩌나......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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