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8. 12. 28. 11:51

유럽인들도 운세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다. 거의 대부분 잡지나 신문은 특히 점성술에 기반을 둔 연별, 월별, 주일별,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가까운 주위 사람들은 역술인(여기선 마녀이라 표현함)을 찾아갈 만큼 열성적이 못하다.

몇 해 전 폴란드 비드고쉬츠(Bydgoszcz)에서 현지인 친구들과 대화 중 한 친구가 일전에 역술인을 방문하였다고 말했다. 다음날 그 친구의 안내로 유럽에서 역술인을 처음 방문했다. 이곳의 역술인은 어떤 모습이며, 어떻게 하고 살까 몹시 궁금했다. 우리들처럼 대나무 깃발을 높이 건 골목집일까? 시내중심가를 벗어나 찾아간 집은 시멘트 블록으로 조립한 아파트 1층집에 살고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백발에 녹색 겉옷을 걸친 수수한 할머니가 문을 열었다.

들어가자 우선 낡은 가구들이 있어 첫 느낌에 화려함과 재물과 거리가 먼 역술인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안내한 방에는 어릴 때 찍은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고 방안에는 온통 열대식물 나무와 화분으로 가득 차있었다. 양 벽면엔 폭포와 꽃들이 피어있는 산과 호수의 큰 사진, 그리고 다른 벽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역술인이 사는 방이라 무슨 특별한 것을 찾아보려고 하였으나 이것을 제외하고는 주목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 할머니는 60세 정도 되어 보였지만, 실제 연세가 85세였다. 시각, 청각 등 모두가 온전했다. 얼굴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았고, 입은 옷은 평상복이였다. 그저 평범하고 수수한 이웃집 할머니 같았고, 얼굴에 화기(和氣)가 넘쳐 흘렸다. 할머니는 10세부터 사람의 운명을 예견하는 영험이 있었다고 했다. 2차 대전을 예견하고 독일 패망을 점쳤고, 3차 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손금을 보았다. 생명선, 지능선, 심장선(손바닥 상위에 있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뻗은 것)을 보고 점을 쳤다. 왼쪽 주먹을 쥐게 하고, 왼쪽 측면에 있는 주름을 보면서 자녀의 수를, 왼쪽 주먹을 쥔 채 엄지 손바닥에 있는 줄을 보면서 배우자의 수를 점쳤다. 손금 점은 10분 정도 지속되었다. 이어 내가 카드 세 장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할머니가 순서에 따라 카드를 배열하면서 집안 식구 및 주위 친구들과의 관계 등을 점쳤다. 다시 내가 카드 13장을 선택하고 탁자 위에 놓았고, 이 카드로 점쳤다.

그 다음 아주 큰 카드를 섞어 내가 13개 뭉치로 나누어 탁자에 놓고 다시 이를 순서에 따라 다시 합쳤다. 그리고 이 중에 카드 13장을 다시 선택하여 탁자에 놓았다. 순서에 관계없이 카드 왼쪽이나 오른쪽을 손으로 지적하면, 이 분이 카드를 뒤집어 그 카드에 써진 글을 읽었다 [돈을 벌 것이다(상단) / 잃을 것이다 (하단), 행복할 것이다 / 불행할 것이다 등].

이렇게 약 30분간 점을 쳤다. 점치는 것과 성당에 나가는 것을 물었더니 이 분은 아주 독실한 천주교신자라고 했다. 숙명론과 개척론에 관해 물었더니 자기에게 오는 운명을 의지에 따라 피해 갈 수 있다고 했다. 한 달에 보통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느냐가 물었더니 직접 대답을 회피했다. 오는 사람을 무조건 다 받지 않는다고 했다. 옛날에는 복채를 받지 않고 점을 쳐주었으나, 손자와 살고 있어 손자를 양육하기 위해 복채를 받는다고 했다. 복채는 균일하게 10즐로티(5천원)를 받았다.

이곳에도 신년이나 집안이 어수선하면 이렇게 역술인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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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모음2008. 12. 24. 07:22

오늘은 성탄 전야일이다. 유럽에서 최대 명절이 성탄절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12월 초순부터 성탄 트리를 파는 사람들로 거리가 붐비고,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잉어를 파는 사람들로 시장이 붐빈다. 이곳의 성탄절은 우리의 추석과 같은 분위기이다. 흩어진 가족들이 모여 모처럼 정을 나누는 날이다.

성대한 성탄 전야 저녁만찬은 참석자 모두가 흰 미사빵을 나누어 먹으면서 소원 성취 기원으로 시작된다. 이날 저녁상에는 반드시 빈 의자 하나를 더 놓는다. 혹시라도 찾아오는 손님을 위해서다. 이날 저녁상에는 육류와 지방분이 없는 음식 12가지가 마련된다. 따라서 이날은 생선,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특히 잉어를 먹는다. 

12가지 음식은 보통 다음과 같다.
     1. 만두  
     2. 붉은 사탕무 수프
     3. 삶거나 구운 잉어
     4. 양귀비씨앗 비빔 밀가루요리      5. 삶은 양배추요리 (속에 쌀밥과 버섯)
     6. 강남콩과 양배추요리                7. 생선 돈가스                8. 삶은 감자
     9. 절인 양배추 샐러드                10. 마른 자두, 배, 사과로 끊인 과일차
    11. 빵                                      12. 과자


라트비아 천주교인은 정열의 피를 기원하면서 붉은 사탕무, 돈을 기원하면서 생선, 행복을 기원하면서 당근, 가정의 화목을 기원하면서 밀알요리, 가난에 찌들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감자, 아이들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강남콩을 먹는다.

저녁만찬 후 산타가 방문하여 선물을 나누어준다. 대부분 아이들은 시를 낭송하거나 노래를 부르고 선물을 받는다. 그리고 촛불을 켜놓고 찬송가를 부른다. 자정에는 미사에 참석한다. 리투아니아에는 자정을 기다리면서 다음해 운세를 보는 여러 가지 놀이를 한다.

식탁보 밑에 보릿짚을 놓고 눈을 감고 하나를 잡아당긴다. 길면 오래 살고, 짧으면 단명한다. 처녀는 문턱에 서서 밖을 내다보면서 신발 한 짝을 방안으로 던진다. 신발 앞창이 문턱을 향하면 오는 해에 시집간다. 총각 처녀가 어둠 속에 장작을 한 아름 들고 방안으로 와서 장작의 개수가 짝수이면 오는 해에 짝을 만난다. 총각 처녀가 밖에 나가 나무 울타리를 양팔을 펴고 잡는다. 잡은 나무의 개수가 짝수이면 오는 해에 짝을 만난다.

오늘 성탄전야를 맞아 결혼을 생각하거나 짝이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리투아니아 민속놀이로 내년 운세를 한 번 보세요. 즐거운 성탄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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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2. 19. 15:28

한국 민담에 “햇님과 달님이 된 남매”를 보면 어느 날 이웃 마을에 날품을 간 어머니가 밤늦게 돌아오는 길에 호랑이에게 잡아 먹혔고, 이 호랑이는 어머니의 옷을 입고 어머니로 가장하여 외딴 집에서 애타게 어머니를 기다리는 남매까지 잡아먹으려 한다.

하지만 남매는 뒷문으로 빠져나가 우물가 나무에 올라가 하느님의 도움을 받아 밧줄을 타고 하늘나라에 가서 씩씩한 남성인 오빠는 해가 되고, 조용한 여성인 여동생은 달님이 되었다. 하지만 여동생은 밤에만 다니는 것이 싫어 오빠를 졸라 다시 해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동양의 음양이론에 의하면 해는 양이고, 달은 음이다. 남자는 양이고, 여자는 음이다. 

이 민담을 보면서 이곳의 언어들은 해와 달의 성을 어떻게 규정할까 궁금했다. 한국어에는 명사의 성이 없지만, 유럽의 많은 언어들은 성을 지니고 있어 우리들에겐 배우기가 어렵다. 이 성에 따라 수식하는 형용사의 형태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동사의 어미도 변화한다.

▲ 리투아니아의 해맞이 영상이다. 태양 어머니의 떠오름을 기다리며 노래하는 리투아니아인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고 신비한 느낌마저 받는다.

리투아니아어에는 모든 명사들이 성(性)을 지니고 있는 데 해는 여성명사이고, 달은 남성명사이다. 해는 어머니처럼 만물의 생장을 도와주고 관리하고 따뜻함을 주기 때문에 여성명사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달은 밤에만 살짝 와서 밤일을 하고 이내 달아난다고 하여 남성명사라고 한다. 리투아니아의 유명한 민담 중의 하나가 바로 “해 여왕(女王)을 구출한 왕자”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폴란드어에는 해가 중성이고, 달은 남성이다. 러시아어와 불가리아어에는 해가 중성이고, 달은 여성이다.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민족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살다보면 많은 것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사실이 세상 저편에서는 그 반대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것을 절대화해 타인의 것을 이해하기보다는 그릇됨으로 낙인찍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 한 예가 바로 해와 달의 성(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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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양이론에 의하며는 해는 양이고 남자로 통하지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해를 여자로 여긴다.

* 관련글: 데굴데굴 굴려올 것 같은 아름다운 달
               태양이 내 손안에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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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2. 12. 07:31

벌써 10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어느 국경검문소나 국제공항에서 생길 수 있다. 당시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면서 여러 번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다. 주로 "에스페란토" 국제행사에 참석하고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했다. 한국 여권소지자는 2주일간 비자 없이 리투아니아에 체류할 수 있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까지 오는 데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버스로 약 8-9시간이 소요된다.

특히 해가 긴 여름에 버스여행은 환상적이다.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길 양옆에 즐비하게 서 있고, 평지와 구릉지가 잘 조화되어 있으며, 크고 작은 호수들을 마음껏 눈으로 즐길 수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푸른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젖소들을 보면서 목가생활을 절로 동경하게 된다. 이곳의 소나무는 우리나라에 쉽게 볼 수 있는 이리저리 굽어있는 소나무가 아니라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 하늘로 뻗은 키가 큰 소나무이다.

이렇게 자연풍경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버스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바로 잇는 국경검문소에 도착하게 된다. 국가간 정기운행 여객버스는 국경검문소에서 보통 오래 지체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처럼 미지의 나라(그들에게)의 여행객이 있을 경우 많으면 30분 이상 단지 지체되곤 한다. 우선 경찰관은 여권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이쪽저쪽을 넘겨보다가 다시 검문소 사무실로 가져간다. 그리고 근무하는 모든 경찰관들의 손을 두루 옮겨 다니가 한참 후에야 여권을 받는다. 

한번은 국경검문소를 통과하다가 아주 곤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이번에도 경찰관이 뚫어지게 여권을 보다가 사무실에 가져가서 오더니 사증이 없으니 입국할 수 없다고 했다. 바르샤바로 다시 가서 사증을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리투아니아 폴란드 대사관에서 2주간 체류시 사증이 필요 없다고 했다고 영어와 폴란드어로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태산 같은 걱정과 좌절감으로 맥없이 국경경찰관의 명에 따라 짐을 내렸다. 버스는 나를 뒤로 하고 서서히 앞으로 향했다. 일단 이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염치 불구하고 새벽 2시에 리투아니아 친구에게 전화해서 지난 번에도 사증 없이 입국했다는 것을 경찰관에게 알려주라고 부탁했다. 경찰관은 다시 한 번 무사증 입국관련 문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사무실에 짐을 갖고 들어가니 약간 어두컴컴한 곳에 6명의 경찰관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영어를 하지 못했고, 다행히 한 젊은 경찰관이 조금 폴란드어를 할 수 있어 의사소통이 겨우 가능했다. 무사증입국관련 국가들의 목록이 벽에 붙어 있는 데 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다고 하니까 이들은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허락했다.

두 단으로 구성된 A4용지를 자세히 살펴가는 데 첫 번째 단에 북한이 있었고, 외교관을 제외하고는 사증이 필요하다고 적어져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단에 한국(남한) 국민들은 사증이 필요 없다고 적어져 있었다. 경찰관들은 좀 멋쩍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하면서 빨리 버스를 가라고 했다. 

이들은 그때까지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 알고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조선인민민주공화국이든 대한민국이든 모두 Korea라고 생각하고 첫 번째 단에 있는 Korea만을 보고 사증을 받지 않은 나의 입국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하나의 Korea"에 대한 열망이 불같이 온몸을 태우고 있었다.

다행히 떠난 줄 알았던 버스가 아직도 기다리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친구와의 대화를 듣고 무언가 경찰관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다른 젊은 경찰관이 일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차를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경찰관의 잘못으로 고통을 받게 되니 어디든지 권한 있는 자의 현명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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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2. 10. 16:51

인구 60여만명의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선 중국식당이 50여개, 일본식당이 10여개가 있지만, 한국식당은 아직 없다.

몇 해 전 부다페스트에서 김치가 그리워 한번 시내 중심가에 있는 한국식당에 갔다. 그곳에서 된장찌개를 시켰다. 흔히들 한국요리는 반찬요리라 말한다. 상위에 있는 크고 작은 수십 가지의 반찬들이 외국인들에게는 거의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때 들른 한국 식당은 반찬에는 김치도 없고 단지 깍두기와 계란찜 그리고 시금치무침이 전부였다. 가격도 중국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비쌌다. 그 후 다소 기름기가 있지만 푸짐하고 가격도 괜찮은 중국식당을 선호한다. 

언젠가 요리하기를 좋아하는 폴란드 친구 라덱이 한국요리를 한 번 해보고 싶어도 한국요리를 소개한 책을 쉽게 구할 수 없어 아쉽다는 말을 했다. 그는 한국보다 작은 나라들의 요리도 소개되는 데 왜 오랜 요리문화를 가졌으면서도 김치를 비롯한 불고기, 삼계탕 등 아직 세계에 널리 알려져 않고 있는 지에 물음을 제기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요리 책 몇 권을 살펴보았다. Ho Chee-Ming이가 쓴 총 192쪽 칼라 요리책 “아시아 요리(Kuchnia Azjatycka)”에는 일본,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요리만이 소개되어 있다.

Annette Wolter와 Christian Teubner가 쓴 총 381쪽 “세계특별요리(Specjanos'ci kuchni s'wiatowej)”에는 전세계 400가지의 특별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의 아시아편에는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요리만이 소개되어 있다.

Barbara Rias-Bucher가 지은 총 704쪽 칼라 “좋은 요리 큰 책(Wielka Ksie,ga Dobrej kuchni)”에는 전 세계 1,000가지의 다양한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도 한국요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없다.

이렇게 책장을 넘기면서 한국요리 세계화의 첩경 중 하나는 바로 여러 나라말로 한국요리책이 번역되는 것이라고 느꼈다. 

한국에서 가져와 해먹는 미역국은 이곳 사람들도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김도 좋아한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김치는 대환영이다. 불고기, 삼계탕 등을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에 녹아난다.   

한국의 대표적 요리들이 여러 나라말로 많이 번역되어 한국식당에서뿐만 아니라 이곳의 일반가정에서도 한국요리를 쉽게 해먹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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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보니 김치 전도사가 되어버린 요리무식의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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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2. 9. 18:20

폴란드 역사를 읽으면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 바로 폴란드 국왕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왕권이 세습되어 왔지만, 폴란드에는 귀족들이 자기들의 이해관계, 국내 정세 그리고 외세에 따라 폴란드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국왕으로 선출했다. 하지만 이렇게 수입된(?) 왕들 중에는 폴란드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왕들도 많았다.
 
폴란드 역사는 10세기부터 시작된다. 폴란드 최초 왕은 미에쉬코 1세(960?-992)로 그는 천주교를 국교로 수용하고, 영토를 확장했다. 그가 죽자 후계자 문제로 권력 투쟁이 일어났다.
 
슬라브 전통에 의하면 장자에게만 상속권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아들들도 권리를 요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장자인 볼레스와브 1세가 권력을 잡았다.
 
그가 사망하자 차남인 미에쉬코 2세가 왕위에 오르자, 장자인 베스프럼과 그의 동생 오톤이 왕권을 요구했다. 이로써 수백년간 걸치는 피로 얼룩진 권력투쟁이 일어나고, 폴란드는 여러 왕국으로 나누어져 때로는 독일, 때로는 체코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카지미에스 대왕(1310-1370)은 비록 영토는 다소 축소되었지만, 다시 통일 국가 건설을 했고, 사회 경제 국방 등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그는 1364년 크라코브대학  (지금의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을 설립했다. 그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으로 10세기부터 시작된  피아스트 왕조의 폴란드 통치는 드디어 막을 내리게 되었다.
 
폴란드 왕위는 헝가리 왕 루드빅에게로 넘어갔고, 그가 1382년에 사망하자 2년 후 1384년 그의 둘째딸인 야드비가가 폴란드 왕으로 즉위했다.
 
한편 리투아니아는 이때 영토를 확장하고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고, 폴란드 귀족들은 리투아니아의 대공이 된 요가일라와 합의하여 그가 야드비가와 결혼하고 폴란드의 지배자가 되는 댓가로 리투아니아 영토를 폴란드에 통합시키도록 했다. 이로써 리투아니아인 요가일라는 1386년 폴란드의 왕으로 즉위했고, 근 200년간 요가일라 왕국이 지속되었다.

1573년 폴란드 의회는 프랑스 국왕 카롤 9세의 동생인 헨릭 발레지를 국왕으로 선출했고, 그가 6개월만에 프랑스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떠나자, 트란실바니아의 스테판 바토리를 폴란드 국왕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1587년에는 스웨덴 얀 3세의 아들 지그문트 3세를 국왕으로 선출했, 그는 1596년 수도를 크라쿠브에서 바르샤바로 옮겼다.
 
이어서 1673년 터키군을 대파한 얀 소비에스키는 폴란드 국왕(1674-1696)으로 선출되었고, 1683년 직접 폴란드 군대를 지휘하며 12만명의 터키 군대를 오스트리아 군대와 함께 무찌르고 터키의 침략으로부터 유럽을 수호한 왕으로 명성을 얻게 되였다.
 
그의 사후 합스부르크의 지지를 받는 삭센 영주 아우구스트가 폴란드 귀족들의 특권과 특혜를 인정하며 폴란드의 국왕으로 선출되었다.
 
이어 1795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연합국가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3차 분할로 귀족공화국이 멸망하고, 1918년 독립을 회복할 때까지 123년 동안 유럽 정치지도에서 사라지는 불운을 맞이했다.
 
이와 같이 폴란드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스스럼없이 외세와 결탁하여 이웃나라의 왕족들을 자신의 국왕으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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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인으로 폴란드 왕이 된 요가일라 (야기에워)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2. 9. 09:13

요즈음 같이 인지가 발달한 시대에 똑똑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이 빨간 옷을 입고 하얀 수염을 가진 산타 할아버지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얼마나 믿고 있는 지 궁금하다. 주위에 있는 리투아니아 아이들 대부분은 산타를 철석같이 믿으며, 이들은 산타에게 편지 쓰기에 한창이다. 아이들은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우체통에 넣거나 크리스마스 트리 밑에 가지런히 놓아둔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산타의 눈썰매를 끄는 사슴이 하늘을 날 수가 없고, 집집마다 굴뚝으로 드나드는 산타의 옷이 저렇게 깨끗할 수가 없으며, 하루 밤사이에 모든 어린이의 집을 방문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여덟 살 다우그비다스는 산타의 존재에 대해 엄마에게 하도 물어대자 엄마는 그만 산타는 동화 속에 있는 인물이라고 실토하고 말았다. 이제 그는 지금까지 산타가 선물을 준 것이 아니라 엄마가 준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또래 아이들이 산타에게 편지를 쓸 때 그는 어른이 된 듯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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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살 그레타는 몇 해 전 밤이 늦을 때까지 이불 속에서 잠자지 않은 채 산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방문을 살짝 열고 선물을 갖다 놓는 것을 목격했다. 그 뒤 그는 산타는 엄마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여덟 살 마르티나는 어떤 아이는 산타를 믿고 어떤 아이는 믿지 않아 올해는 다소 심난한 듯했다. 그래도 할머니와 엄마가 끝까지 산타가 있다고 하니 선물을 받고 싶어 이번에도 정성스럽게 산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전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몹시 기다려요. 물론 할아버지도요. 모든 아이들이 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부탁해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선물을 부탁해요. 할아버지, 예쁜 반지와 귀걸이를 선물로 주세요. 저는 할아버지를 직접 만나고 싶어요. 할아버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그리고 엄마가 제 귀를 뚫도록 해주세요.” 그녀는 편지 밑에 산타가 찾아 올 주소를 또렷하게 적었다. 

엄마가 주든 산타가 주든 아이들에겐 역시 선물 받는 기쁨이 더 중요할 것이겠지만 동화 같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갖게 해주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물론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속았다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알게 될 때까지 산타의 존재를 비밀로 하는 것이 아이들의 동심에 부합되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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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이렇게 생각하지만, 실제로 입을 다물기가 어렵다. 이왕 선물한다면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아이에게 직설적으로 묻게 된다. 이런 장면이 아내에게 들키거나 이런 물음이 막 입 밖에 나오는 것을 감지할 때 우리 부부는 한 동안 갈등과 냉전 심지어 언쟁까지 하게 된다.

산타에게 부탁하는 선물은 비밀이기 때문이다. 비밀이 지켜져야 소원이 이루어진다. 아빠가 미리 알고 해주었다면 그것은 아빠가 준 선물이지 산타가 준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산타가 오지 않은 것은 아이에겐 엄청난 충격이다. 성탄절 선물을 아이가 꺼낼 때까지 아이는 부모가 그 선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더욱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산타 문화 속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엄마와 산타 문화 속에 살지 않았던 아빠 사이엔 늘 이렇게 산타의 존재 유무를 밝힐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아두고 일촉즉발의 갈등 속에 살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2. 8. 13:52

최근 미국의 조셉슨 연구소가 미국 10대 청소년들의 윤리의식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10명 중 6명(64%)가 컨닝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한편 지난 5일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는 전교조의 명단을 공개하면서 “전교조는 아이들에게 커닝을 하라고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이든 한국이든 유럽이든 “시험 있는 곳에 컨닝 있다”라는 말이 통함을 알 수 있다. 

사실 중․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커닝을 조금이나마 하지 않았거나 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없는 학생들은 극히 드물다. 부끄럽게도 초유스도 이 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중학교 2학년 다닐 때였다. 시험지를 나누어주는 순간 우선 재빨리 주마간산처럼 문제들을 읽어간다. 정말 모르는 문제를 발견하면 앞뒤 친구에게 속사포로 답을 물어본다. 이때 감독선생님은 시험지가 끝까지 잘 배포되는지만 신경 쓰지 우리들의 속삭임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잘 통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앞뒤에 앉은 친구들이 등수를 놓고 서로 심한 경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려고 했지 아는 것을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려고 했다. 이러한 어린 우리들의 태도는 벌써 심한 경쟁사회의 병폐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 다닐 때에는 보통 미리 예상문제를 수십 개 주었기 때문에 그것만 열심히 하면 큰 무리 없이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특히 대부분 시험이 논술형이라 단답형과는 달리 커닝으로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대학교에서 시험을 치를 때에는 교수와 일대일 구술시험이라 컨닝을 도저히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죽으라고 공부를 해야지 요행을 피울 수가 없었다. 졸업시험에는 교수 3명으로부터 그 동안 배운 과목에 대한 집중적으로 구두 질문공세를 받아야 했다.

언젠가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있는 친구 집에 며칠 머문 적이 있었다. 이 친구 부인은 당시 대학교 생물학과 4학년에 재학중이었다. 그 날 늦은 새벽까지 잠도 자지 않고 시험공부에 열중했다. 건데 아침에 공부한 흔적을 보여준 것은 바로 쪽지모음들이었다.

책을 읽고 암기한 것이 아니라 바로 쪽지 수십 장에 출제 예상되는 문제들의 답을 빽빽하게 써서 풀로 붙인 것이 그가 한 시험 공부였다. 이 쪽지를 손바닥으로 감싸고 감독관의 눈을 피해 몰래 베끼는 것이 생물학과생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컨닝방법이라고 말했다.

하기야 이 쪽지를 꼼꼼히 만드는 과정에서 얻어야할 지식을 부분이나마 얻었을 것일 것이다. 약삭빠른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든 이 쪽지를 복사해 친구들에게 팔기도 한다. 이렇게 시험 컨닝은 동·서양이 따로 없다. 컨닝이 화두였기에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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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 대학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컨닝 방법 - 작은 책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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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2. 3. 12:03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은 이발소에 간다. 머리카락은 좀 억세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빨리 자르는 것 같다. 이곳에는 여자들만이 가는 미용실, 미장원과 남자들만이 가는 이발소, 이용원이라는 구별이 따로 없다. 머리를 깎는 곳이면 대부분 남녀 구분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종종 남자 고객만, 혹은 여자 고객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발소가 있다.   

이발하기 전에 보통 집에서 머리를 감고 간다. 일반적으로 이발한 후에 머리를 감아주지 않는다. 특별히 원할 경우에 이발하기 전에 돈을 더 주고 머리를 감을 수 있다. 몸에 붙어 있는 잘린 머리카락이 그렇게도 근지럽게 하여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반드시 머리를 감아야 직성이 풀린다. 이발 후 머리 감기를 부탁하면 처음에 이발사는 다소 어리둥절하지만 돈을 더 받으니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은 습관이 되어 이발 후 잽싸게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감는다. 

이곳 유럽인들은 머리카락 굵기가 우선 우리보다 작으며 부드럽다. 머리카락이 몸에 붙어 있어도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러니 깎은 후 굳이 머리를 감을 필요가 없는 듯하다. 그저 잘 털어내면 될 뿐이다.

이곳에 이발소를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한 이발사는 머리가 흰 노인이었다. 얼마나 정성껏 머리를 깎는지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이 분의 특징은 이발을 다 끝낸 후 머리카락을 일차적으로 털어 낸 후 물에 적신 솜털을 빗에 발라 일일이 머리를 빗어 깎인 털을 제거해 주었다. 한 번은 아주 예쁘고 젊은 여자 이발사였는데 머리카락이 억센 것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 이발 중 여러 번 자신의 손바닥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촉감을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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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이발사들의 손놀림이 엄청 빨라서 그런지 보통 이발하는 데 10분 내지 15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대체로 30분이 넘게 걸린다.

자주 찾아가는 이발사(거의 대부분 여자이발사)는 머리카락의 성질을 알고 잘 깎아준다. 현지인보다 머리 깎기에 수고로움이 더 덜지만 요금은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받는다. 간혹 어떤 이발사는 기준요금보다 좀 더 높은 값을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억센 머리카락 때문에 전기 이발기기가 순간적인 굉음을 낼 때마다 기기가 손상되지 않았는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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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요금은 시내중심가와 동네 이발소마다 차이가 있다.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중심가엔 약 2만 5천원하고, 동네 이발소는 1만원한다. 이곳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척 혹은 친구들 중 이발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굳이 이발소를 가지 않고 집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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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2. 3. 07:05

몇 해 전 헝가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헝가리 친구는 부다페스트 근교의 한적한 곳에 있는 연립주택에 살고 있었다. 친구가 준 열쇠를 가지고 현관문을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가 않았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초인종을 눌렸더니, 턱수염이 있고 약간 살찐 사람이 나왔다. 이 친구는 부다페스트 공과대학에 다니는 페트로라는 친구이다.

우리의 인사소리를 듣고 3층에서 키가 훤칠한 여자 한 명이 내려왔다. 야간 기차를 타고 막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고 하니까, 친절하게 따뜻한 차와 아침식사에 초대했다. 이 여자는 실비아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20대 초반이고,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에서 무용수를 일하다가 지금은 부다페스트에서 한 무역회사의 시장조사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우선 피곤한 심신을 잠으로 달래다 보니 벌써 저녁 무렵이 되어버렸다. 배가 몹시 고파 가까이 있는 동네 상점에 가서 쌀 세 봉지(한 봉지 1인분)와 백포도주 한 병, 그리고 직사각형 모양의 즉석 돈가스(일 것이라 생각하고)를 샀다.

쌀을 봉지 채로 물과 함께 끊었다. 잘 알다시피 이곳 사람들은 쌀을 자주 먹지 않고, 국에 국수 대신에 넣는 경우가 있고, 또한 간혹 감자 대신에 먹는다. 헝가리 국 중에 쌀을 넣은 토마토국을 아주 좋아한다. 이곳 사람들은 입바람에 날러가는 밥이 제일 맛있는 밥이라고 한다. 사실 끈끈하든, 날아가든 이들의 입맛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먹어본 이곳 쌀 중 이탈리아와 헝가리에서 나온 쌀이 우리나라 쌀처럼 끈끈하다.

그리고 네모 모양의 돈가스를 아주 정성껏 튀기기 시작했다. 한편 페트로는 방에서 레스토랑처럼 식탁을 차렸고, 촛불도 켰다. 아침초대에 보답하기 위해 실비아를 초청했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울어 초대에 응할 수가 없었다.

페트로와 단 둘이 식사를 하는 데 정말 우스운 일이 일어났다. 돈가스를 칼로 자르는데 고기 한 점은커녕 난데없이 달콤한 밤색 액이 흘러나왔다. 알고 보니 이 네모난 것은 돈가스가 아니라 아이들 간식용으로 튀겨서 먹는 초콜릿이었다.

실비아가 오지 않았을 망정이지 왔다면 속된 말로 얼마나 쪽 팔렸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렇게 하여 난생 처음 초콜릿을 주된 반찬으로 하여 밥을 먹어보았다. 이것이 낯선 나라에서 맛볼 수 있는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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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강 건너 건물이 국회의사당) / 사진제공: 마르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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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2. 2. 15:42

이제 2008년이 마지막 달을 남겨 놓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술자리는 더욱 잦아진다. 오늘은 폴란드에 살았을 때 겪었던 일상에서의 술문화에 대해 조금 얘기하고자 한다.

여기는 종로나 신촌에 즐비하게 있는 생맥주집 골목도 없고, 포장마차도 없다. 레스토랑이나 선술집만이 군데군데 있다. 일을 끝내고 직장동료와 술을 한 잔하는 습관도 없다. 술은 주로 집에서 친구들을 초대하여 마신다.

이곳 사람들은 주로 맥주와 보드카(알코올 농도가 40도에서 50도)를 마신다. 우선 맥주 몇 잔으로 시작하고, 이어서 독한 보드카를 마신다. 다시 맥주로 입가심을 한다.

친구 집에 초대받아 가면 자기가 마실 술을 가져가는 것이 이곳의 습관이다. 보드카 한 병(500ml-750ml)이 보통 가게에서 15,000원에서 35,000원 정도 한다. 3병만 사도 술값이 5만원이 넘어가니, 초대하는 이나 초대받는 이나 모두에게 부담스럽다. 그래서 마음껏 자기가 가져온 술을 마시니 서로에게 심리적 경제적 부담이 별로 없다. 

초대하는 이는 채소무침, 샌드위치, 음료수 등을 준비한다. 여기는 거의 안주를 먹지 않는다. 물론 소시지나 양념고기를 불에 굽어 함께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아주 드물게 있는 일이다. 남자들은 보드카와 함께 식초에 저린 생선을 함께 먹기를 좋아한다. 여자들은 샴페인, 포도주, 과일주 등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을 선호한다.

보드카를 마실 때에는 우리의 소주잔과 비슷한 잔에 술을 따라 “건강을 위하여”(나즈드로비예)라고 하면서 잔을 비운다. 독한 술이라 이곳의 사람들은 보드카를 마시고 난 다음 즉시 콜라나 사이다를 마셔 중화시키기도 한다. 하루는 보드카가 너무 독해 따로 콜라를 마시는 것보다 함께 섞어 마시면 콜라의 당분으로 인해 넘기기가 쉬울 것 같아 마셨는데 친구가 이것은 반칙이라고 한다.

서로 모르는 남녀들이 함께 술을 마실 때, 존칭으로 상대편을 부르기가 불편하고 또한 서로 가까워졌을 때에는 남녀가 서로 팔을 걸면서 잔을 비우고 입맞춤을 하고, 그리고 상대편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더 이상 “최대석씨!”라고 부르지 않아도 되고, “대석아!”라고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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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들간 일상의 술자리는 보통 이렇다.

언젠가 친구 집을 방문했는데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기에 “야, 네 벌써 몇 잔 했니?”하고 물으니 “난 부자(富者)야!”라고 동문서답했다. “너 완전히 맛이 갔구만!”라고 말하니, 그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보여주었다. 티셔츠에는 거품이 가득 찬 맥주  잔과 그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져 있었다.
         
    맥주 1잔: dobrze się czuje (난 기분좋아!)
    맥주 2잔: jestem wesoły (난 기뻐!)
    맥주 3잔: dobrze wyglądam (난 잘 생겼어!)
    맥주 4잔: jestem bogaty (난 부자야!)
    맥주 5잔: kuloodporny (난 난공불락이야!)


요즘같이 어려운 때 맥주 4잔으로 부자만 될 수 있다면 매일이 아니라 시간 단위로 마시고 싶다. 여러분은 오늘 기분이 좋아요, 아니면 부자가 되었습니까?

* 관련글: 유럽에도 술 따르는 법이 있다
               건배할 때 상대방 눈을 쳐다보라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1. 21. 16:27

폴란드 바르샤바 구시가지 광장에서 전혀 예상 밖의 조각상 하나를 만날 수 있다. 바로 검을 쳐들고 있는 인어상(人魚像)이다. 이 인어상은 바르샤바의 문장(紋章), 상징물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바닷가 돌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인어 여인만 생각하다가 이렇게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바르샤바의 인어를 보면 겁이 날 듯하다.

바르샤바 기원 전설에 따르면 수백년 전 비스와(비스툴라) 강가에 작은 어촌이 있었다. 이 어촌에는 바르스(Wars)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청년이 사바(Sawa)라는 이름을 가진 아내와 같이 살고 있었다. 물고기를 잡던 어느 날 그는 예쁜 인어를 잡았다. 자유롭게 해주는 대가로 그녀는 바르스에게 부(富)와 보호를 약속했다. 이 이야기는 어민들과 통치자들의 마음에 사로잡아 이 인어의 이미지가 고대 정착민들의 상징이 되었고, 바르샤바의 문장이 되었다.

최초 인어상은 1855년 세워졌고, 두 번째 인어상은 1905년 세워졌다. 이 인어상은 많은 그림과 그래픽, 동전, 메달, 우표 등 주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 인어의 모습은 수세기를 통해 변화했지만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것은 변화지 않았다. 15세기 말엽과 16세기 많은 문서들은 목 옷깃을 갖고 있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겉옷을 입고 있는 상을 가지고 있다. 이 상의 하반신은 큰 발톱과 넓은 날개를 가진 새의 모습을 띠고 있다. 또한 둥근 방패와 짧은 검을 들고 있다. 물고기 꼬리를 한 여성 상은 18세기 말엽 바르샤바의 공식 상징으로 처음 등장했고, 스타니스와브 아우구스투스 포냐토브스키 왕(1764-1795) 통치 때 아주 일반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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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가 3국으로 분리된 후 바르샤바의 문장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15년 러시아 지배를 벗어난 바르샤바는 문장으로 다시 인어를 사용했다. 물고기 꼬리는 바로 구시가지가 강가에 있고, 이 강을 통해 더 넓은 세상과의 연결을 의미한다. 검과 방패는 바르샤바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이 인어 여인이 검과 방패를 들고 있는 지 궁금해진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바르샤바 어부들이 그물망에 걸린 인어를 잡았다. 이 인어는 아름답게 노래했다. 인어는 물을 떠나 모래강변에서 휴식을 취했고, 그 자리가 마음에 들어 살기로 결심했다. 인어는 아름다운 노래로 어부들을 매혹시켰고, 이들은 인어를 해치지 않았다.

어느 날 상인이 인어를 보자 잡아서 시장에 갖다 놓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그는 인어를 속여 잡아서 물 없는 헛간에 가두었다. 한 젊은 농사꾼이 인어의 울음소리를 듣고 친구들과 함께 밤에 그녀를 구출했다. 인어는 마을 사람들이 도와준 것에 깊이 감사하고, 필요한 때에 꼭 도울 것을 약속했다. 이것이 바로 인어가 검과 방패를 무장한 이유이다.

혹시 있을 바르샤바 여행자에게 이 글이 구시가지 광장 인어 여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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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1. 20. 05:58

몇 해 전 리투아니아 파스발리스 지방의 한 시골마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 이 마을은 난데없이 콘돔이 불티나게 팔려 큰 주목을 받았다.

이유인즉 이 마을에 사는 한 여성(30세)이 바로 에이즈 말기 환자로 판명된 사실이 널리 펴졌기 때문이었다. 이 여성은 두 딸을 두었고, 이 두 딸의 아버지도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로 판명되었다. 또한 이 부인과 최근 동거한 적이 있던 남자도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로 판명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도 막연하게 에이즈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늘 멀리 있는 듯 느껴졌으나, 막상 자기들이 사는 마을에 에이즈 환자와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충격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남자들은 대량으로 콘돔을 사게 되었고, 심지어 여자들도 콘돔을 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시골에 에이즈 환자 1명이 있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술과 성관계로 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 에이즈 환자나 바이러스 보유자의 신분이 공공연히 드러나게 되어 리투아니아 사회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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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도별 에이즈균 보유자 발견수 (출처: http://www.aids.lt) 

리투아니아는 1988년 첫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가 발견된 후 지금(2005년 현재)까지 1122명이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자로 판명되었다. 이중 남자가 984명으로 여자 138명에 비해 월등히 많다. 에이즈 바이러스 보유 경로는 이성 성관계 114명, 동성 성관계 70명, 정맥주사 마약 사용 881명, 미확인 57명으로 집계되었다.

속옷만 입고 뉴스진행 TV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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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10. 25. 17:16

일전에 리투아니아 비사기나스에 살고 있는 옐레나(Jelena) 가족을 방문했다. 에스페란토 행사에서 여러 번 만나 알게 된 친구이다. 이 가족은 아소르티(Asorti)라는 그룹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옐레나가 노래를 부르고, 남편 에드바르다스는 기타를 치고, 아들 에드가르는 바이올린을 켠다

주말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이 가족의 따뜻한 환대가 인상적이었고, 음악과 다중언어 생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옐레나와 아들은 러시아어로, 아들과 아버지는 리투아니아로, 옐레나와 남편은 에스페란토로, 그리고 모든 가족이 모일 때는 러시아어로 말한다. 언어생활이 복잡해 보이지만 상대방을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언어전환이 되어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한다. 이 덕분에 세 식구 모두가 세 개의 언어를 능숙하게 말한다.  

가장 흥미 있는 것은 바로 이들 피에 있는 민족성이 너무 다양하다는 점이다. 이날은 “다민족 사회” 혹은 “다민족 국가”라는 말에 덧붙여 “다민족 인간”이라는 말이 더욱 각인되었다. 한국처럼 단일민족이 한 국가에 사는 곳에는 낯설지만, 유럽에서 특히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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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남편의 할머니는 미국인이었다. 이 할머니는 공산주의자였는데 2차 대전 후 미국을 떠나 공산주의국가인 리투아니아로 이주해 리투아니아인과 결혼을 해 눌러 앉았다. 옐레나의 민족성은 좀 더 복잡하다. 우선 그녀 아버지의 아버지는 라트비아인이고 어머니는 폴란드인이다. 옐레나 아버지는 소련 시대 때 일자리를 찾아 시베리아 광산에서 일하다가 에스토니아에서 온 부인을 만났다. 이 부인의 부모님은 스탈린 시대 때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이 부인의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고, 아버지는 에스토인아인이다.

옐레나 부모님은 결혼 후 시베리아를 떠나 카자흐스탄에서 살았다. 옐레나 아버지는 카자흐스탄에서 옐레나에게 라트비아 고향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영향으로 부모 곁을 떠나 옐레나는 어린 소녀로 아버지의 고향 라트비아에서 음악공부를 했다. 이후 부모도 라트비아에 왔지만 일자리가 없어 지금 살고 있는 리투아니아에서 일자리를 구해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이렇게 옐레나는 라트비아인-폴란드인에서 태어난 아버지와 에스토니아인-우크라이나인에서 태어난 어머니를 두고 있다. 그녀의 피 속에는 네 민족이 자리 잡고 있다. 옐레나의 아들은 이 네 민족의 피에 다시 리투아니아와 미국 피가 더 섞어있다. 옐레나와 남편의 조모, 증조모, 고조모의 민족성까지 고려해본다면 이들의 피 속에 수많은 민족의 피가 섞어 있음을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아들은 리투아니아에 살고 또한 아버지의 국적이 리투아니아이지만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민족성이 더 복잡한 어머니를 따라 라트비아인이라고 한다. 비록 이것은 여권상 표기에 그치지만, 아버지를 따르지 않고 어머니를 따르는 것을 보면 이곳에 흔히 볼 수 있는 강한 모계사회의 전통을 엿볼 수가 있다. 우리 같으면 아버지를 따르지 않는다고 호적에서 파내버리겠다니 이혼을 하겠다니 하는 등 한 바탕 집안 소동을 벌일 법도 한 데 이곳에서는 아들 너 스스로가 결정할 일이니 아버지인 내가 어찌 너의 고유권한을 간섭할 수 있겠느냐 하는 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은 민족성에 그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어느 민족에 속해 있다기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충실하면서 그저 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

     * 아들 에드가르의 바이올린 연주   * 가족사진 출처: esperanto.cri.cn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7. 18. 15:43

지난 번에 이어 슬로바키아의 농담을 소개한다. 슬로바키아는 체코, 폴란드, 우크라이나, 헝가리,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접해 있다. 수도는 브라티슬라바, 인구는 540만명이다. 1993년 체코 공화국과 평화롭게 분리되어 독립국가가 되었다.

* 남편이 매일 아침체조를 하는 이유

- 아침체조 방송이 라디오에서 나오자마자, 내 남편은 침대에서 뛰어내린다는 것을 한번 상상해 봐.
- 그가 매일 아침체조를 하니?
- 그가 아니라, 마주 보이는 창가에서 아가씨가.

* 사장이 해고해도 걱정하지마
- 소문에 사장이 많은 직원들을 해고할 것이라고 하는데......
- 걱정하지마, 우리와는 상관없어. 그가 단지 아내와 다투어서 그녀의 모든 친척들을 해고함으로써 그녀에게 복수하고 싶은 거야.

* 가장 맛있는 음식
두 미식가(美食家)가 대화하기를
- 무엇이 너에게 가장 맛있니?
- 다른 부인의 집에서 하는 아침식사.

* 전시회에 아내를 보내게
한 화가가 자랑하기를
- 내 그림을 본 후 사람들은 벙어리가 돼.
- 정말이냐? 언제 전시회가 열려? 그곳에 내 아내를 보내게.

* 그렇게 많은 돈은 아직
- 아내의 생일에 선물을 살만큼 약간의 돈을 저축하는 데 성공했어. 그런데 무엇을 사지.   
- 그녀에게 한번 물어 봐.
- 그렇게 많은 돈은 저축하지 못했어......

* 아내 요리는 칭찬까지 해야
- 너는 아내가 해주는 모든 요리를 먹니?
- 단지 그것만! 칭찬까지 해야만 해!    
 
* 내 죽은 후에
- 내가 죽은 후 두 번째 부인이 내 속옷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세요 - 라고 마리아가 남편에게 부탁한다.
- 서약까지 할 수 있어. 그녀는 당신보다 훨씬 키가 크고 그렇게 살찌지 않았어 - 라고 남편이 대답한다.

* 미리 말했어야지
택시기사가 술에 취한 승객을 태워 가고 있는데, 반사경으로 보니 그가 벌거벗고 벌써 누워 있다.
- 이보세요, 아직 당신 집이 아니고, 택시 안입니다 - 라고 기사가 주의를 준다.
- 기사 양반, 내가 문 앞에서 신발을 벗기 전에 말했어야지. 너무 늦었오 - 라고 취객이 대답한다.

* 어느 정도 술을 먹어야
- 술은 가정 생활에 있어서 많은 불행의 근원입니다. 저는 아내가 술을 마시는 남편을 버리고 떠난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 라고 금주 강연에서 한 연사가 말한다.
청중들 사이로 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 연사님, 아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술을 마셔야 하는 지를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 기숙사를 찾은 아버지
한 촌부는 저녁 늦게 자기 아들 휴프가 공부하고 있는 도시에 왔다. 아들이 살고 있는 대학기숙사에 초인종을 누르고 묻기를
- 여기 휴프라는 학생 살아요?
- 예, 문 앞에 내려놓고 가세요. 제가 나중에 안으로 옮기겠습니다 - 라고 문지기가 대답한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