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는 친구나 지인을 대면으로 만나는 것을 어렵게 하지만 예전보다 오히려 접촉빈도는 엄청 많아지게 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 국제어 에스페란토 친구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1년에 한 번쯤 국제행사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다. 지난 4월 비대면 강연자로 바르샤바에 살고 있는 폴란드인 로만(Roman)을 섭외하는 일을 맡았다. 로만은 폴란드뿐만 아니라 세계에스페란토계에서도 많은 활동을 한 사람이다. 그는 폴란드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스페인어권을 담당한 프로듀서(PD)로 정년퇴임을 했다.
로만의 저서 <Verda Simio>
이 강연이 계기가 되어서 로만과 수시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 안에 갇혀 있는 동안 그는 서랍에 있는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50여년이 지난 에스페란토 원작을 찾아냈다. 이를 모아 책(Verda Simio)으로 펴내기로 하고 나에게 교정을 부탁했다. 꼭 답례를 하고 싶으니 폴란드 바르샤바로 올 경우 연락하라고 했다. 마침 일전에 여권 발급 신청으로 폴란드 한국 대사관을 방문했다. 드디어 바르샤바로 간다고 하니 이렇게 답이 왔다.
"비행기로 오면 공항으로 마중 갈 것이고 버스로 오면 버스역으로 마중 갈 것이고 기차로 오면 기차역으로 마중갈 것이다. 어떻게 올 것인가?"
"승용차로 가는데 대사관에서 일을 보고 연락을 할 것이다."
"대사관에서 일 마치면 내 집으로 와라."
유럽 사람들은 친구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사에 대해서는 서로 잘 모른다. 나이가 구체적으로 몇 살이며 가족은 몇이며 등등.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는 알고 있지만 혼자 사는지, 자녀와 사는지, 자녀가 있는지 등은 모른다. 여러 궁금 사항을 머리 속에만 맴돌게 하고 로만이 알려준 주소로 쉽게 찾아간다. 다행히 한국 대사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다.
아파트로 들어가니 신상털기를 따로 할 필요가 없다. 벽장 위에 80이란 숫자 장식물이 놓여 있다. 한국 나이로 로만는 올해 85세다. 홀로 살고 있다. 몇 해 전 몬테카지노(Monte Cassino)에서 폭염 아래 취재를 하다가 손상된 청력을 제외하고는 기력이 왕성하다.
로만과 초유스
거실로 들어가니 벌써 네 명 분의 접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로만 그리고 우리 식구 셋
접시의 문양이 참 토속적이고 예쁘다. 몇 해 전에 돌아간 아내가 젊은 시절 폴란드 벼룩시장을 찾아다니면서 구입한 것이다라고 한다.
이제 85세 로만이 손수 요리해서 우리 가족을 대접한 음식을 아래 소개한다.
정오라 따뜻한 커피를 먼저 청한다. 예쁜 커피잔 문양만큼 작고 작은 숟가락도 마음에 든다.
반주가 없으면 식사 의미도 없다고 하면서 진토닉(술 1)을 권한다. 술을 거의 먹지 않지만 흔쾌히 응한다.
전식으로 청어 두 종류를 내놓는다. 청어를 보자 아내는 미소를 띄우고 나를 보자 웃는다.
왜일까?
청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아주 즐겨 먹는다. 그래서 군침의 미소를 띄었다. 나를 보고 웃은 것은 바로 내가 평소 청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에게 귀한 손님 대접하듯이 청어가 전식으로 나오니 내 반응이 궁금해서 웃는다. 그것도 한 종류가 아니고 두 종류다.
소금에 절인 청어토마토 소스에 넣은 청어
"청어를 먹을 때 보드카(술 2)가 필수다."
"빵도 필수!"
유럽 거주 초기에 먹은 청어가 너무 짜고 잔가시가 많아서 꺼리게 되었다. 한잔 기운으로 오늘 한번 먹어보자.
아, 청어가 이렇게 맛있다니!!!
잔가시는 빵과 함께 밑으로... ㅎㅎㅎ
본식이다. 약한 불에 오랫동안 요리한 모로코 음식이다.
"우리 부부가 모로코로 갔을 때 먹은 음식이 정말 맛있어 아예 요리기구인 토기까지 구입해 가져와 이렇게 내가 직접 요리한다."
야채와 고기(모로코에서는 양고기, 폴란드에서는 구하기 어려우니 돼지고기)를 함께 넣어 푹 삶는다.
"이 음식을 먹을 때는 포도주(술 3)를 마셔야 한다. 포르투갈 포로투 와인이다."
좁쌀처럼 생긴 쿠스쿠스(접시 속 하얀 음식)를 감자나 밥 대신에 먹는다.
이제 후식이다. 마지팬(마르치판)이다.
아몬드가 많은 부분을 접시에 담아준다.
후식엔 예거마이스터(jagermeister 술 4)다.
약초와 향료 56가지 재료로 만든 독일 술이다.
가정집에서 레스토랑 음식을 격식있게 먹게 되었다.
85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혼자 외국음식을 요리를 해서 술 4종류와 함께 손님 대접을 이렇게 극진히 해주다니 참으로 감동 그 자체다. 세계 곳곳에 나이나 민족이나 종교를 떠나서 이런 에스페란토 친구들을 두고 있다는 것이 삶의 큰 기쁨이다.
한국어로 번안되어 가장 널리 알려져 불려지고 있는 폴란드 민요는 <아가씨들아>일 것이다. 19세기 초 폴란드 실레시아(실롱스크) 지방에서 시작된 이 노래는 폴란드의 대표적인 민요 중 하나다. 실레시아는 체코 동북부와 폴란드 서남부에 걸쳐 있는 지역의 역사적 명칭이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폴란드 도시는 LG 가전공장이 있는 브로츠와프(Wrocław)다. "아가씨들아" 한국어 가사는 아래와 같다.
산새들이 노래한다 수풀 속에서
아가씨들아 숲으로 가자
우리들은 아름드리 나무를 지고
아가씨들아 풀을 베어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랄랄랄 랄랄랄 랄랄랄 랄라
한낮이 되면 모두 둘러앉아서
아가씨들아 점심을 먹자
하루일이 끝나면은 손에 손잡고
노래에 맞춰 함께 춤추자
원래 가사에 있는 사냥꾼이 번안곡에서는 나무꾼으로 탈바꿈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사뭇 다르다. 아래는 폴란드어 가사가 자막으로도 나오는 동영상이다.
폴란드어 원래 가사는 어떨까? 폴란드어 원래 가사도 일부가 조금씩 다르다. 1990년대 초 폴란드에 잠시 거주할 때 현주인들로부터 배운 민요라 더욱 애정이 간다.
Szła dzieweczka do laseczka, Do zielonego, do zielonego, do zielonego. Napotkała myśliweczka, bardzo szwarnego, Bardzo szwarnego, bardzo szwarnego.
Gdzie jest ta ulica, gdzie jest ten dom, Gdzie jest ta dziewczyna, co kocham ją? Znalazłem ulicę, znalazłem dom, Znalazłem dziewczynę, co kocham ją.
O mój miły myśliweczku, bardzom ci rada, Bardzom ci rada, bardzom ci rada. Dałabym ci chleba z masłem, alem go zjadła, Alem go zjadła, alem go zjadła.
Jakżeś zjadła, tożeś zjadła, to mi się nie chwal, To mi się nie chwal, to mi się nie chwal. Jakbym znalazł kawał kija, to bym cię zabrał, To bym cię zabrał, to bym cię zabrał.
아가씨가 갔지
아가씨가 숲에 갔지 푸른 숲으로 푸른 숲으로 푸른 숲으로. 사냥꾼과 마주쳤지 정말 잘생긴 정말 잘생긴 정말 잘생긴.
길거리가 어디, 집이 어디 내 사랑 아가씨 어디 있니? 길거리도 찾고 집도 찾고 내 사랑 아가씨도 찾았네.
나의 사랑 사냥꾼아, 정말 반가워 정말 반가워, 정말 반가워. 주고 싶은 버터빵을 먹어 버렸네 먹어 버렸네 먹어 버렸네.
최근 국제어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가사를 살펴보게 될 기회가 생겼다. 노래 번역은 다른 번역에 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더 있다. 가장 중요한 사항이 악보 음표의 강약과 가사 단어의 강약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가능하다면 각운을 맞추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가사에 있는 단어가 없어지기도 하고 전혀 새로운 단어가 들어가기도 한다.
예를 들면 kun la ĝoj'와 sur la sama voj'는 원래 가사에 전혀 없다. 하지만 이 두 구를 넣으면서 ĝoj'와 voj'가 각운을 이룬다. 음절수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는 음절 강세나 각운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번역자에게는 아주 다행스럽다.
에스페란토 가사 - Roman Dobrzyński
한국어 번역 - 최대석 (초유스)
Iris Knabineto
Knabineto arbareton iris kun la ĝoj’, iris kun la ĝoj’, iris kun la ĝoj’, kaj renkontis ĉasisteton sur la sama voj', sur la sama voj', sur la sama voj'.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la
Ĉasisteto, samvojano, mi salutas vin, mi salutas vin, mi salutas vin. Vi ricevus buterpanon, sed mi manĝis ĝin, sed mi manĝis ĝin, sed mi manĝis ĝin.
Se vi manĝis, do vi manĝis, ne incitu min, ne incitu min, ne incitu min. Se mi havus bastoneton, do mi batus vin, do mi batus vin, do mi batus vin.
아가씨가 갔지
아가씨가 숲속으로 즐겁게 갔지, 즐겁게 갔지, 즐겁게 갔지. 사냥꾼을 마주쳤네 같은 길에서, 같은 길에서, 같은 길에서.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라
오 사냥꾼 길동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주고 싶은 버터빵을 먹어 버렸네, 먹어 버렸네, 먹어 버렸네.
벨라루스는 벨라루스 사람이라고 하고 리투아니아는 리투아니아 사람이라고 하고 폴란드는 폴란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문학인이 있다. 바로 그가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Bernard Mickiewicz, 1798-1855)다. 그는 지금의 벨라루스에 속한 나바흐루다크(노보그루데크) 근처에서 태어나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공부를 하고 카우나스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폴란드어로 문학 작품을 썼다. 그는 폴란드의 셰익스피어, 괴테, 푸시킨으로 비유되며 폴란드 최고 민족시인으로 불리어진다.
아담 미츠키에비치
그가 태어나기 3년 전인 1795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1569년 결성)이 주변 강대국인 프러시아, 러시아 그리고 오스트리아에 의해 마지막으로 분할되고 더 이상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태어난 곳은 러시아 짜르체제의 통치를 받고 있었지만, 500여 년간 지속된 다양한 언어와 종교가 공존한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민중의 가슴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었다.
미츠키에비치는 1815년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수도인 빌뉴스로 이주하여 대학교를 다녔다. 1579년 세워진 빌뉴스대학교는 당시 동유럽의 주요한 교육과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대학시절부터 그는 시적 재능, 박학다식과 지도력으로 유명해졌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부활을 목적으로 비밀리에 정치활동을 하였다.
1819년부터 4년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역사, 법률, 문학을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면서 시작(詩作) 활동에 헌신하였다. 서사시 <그라지나>(Grażyna, Gražina)가 1823년 출판되었다. <그라지나>는 노보그루데크 리투아니아 공작부인 그라지나가 독일 기사단에 맞서서 싸우다가 영웅적으로 죽는다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823년 그는 정치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당했고 다음해 8월 러시아로 추방당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푸쉬킨과 교제했다. 독일 기사단과 리투아니아인들의 전투를 그린 서사시 <콘라트 발렌로트(Konrad Wallenrod>가 1828년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콘라트는 리투아니아 소년으로서 독일 기사단에 붙들려 가서 교육을 받고 공을 세워 기사단 총장이 된다. 어느 날 리투아니아 유랑 악사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의 뿌리를 느끼고, 기사단을 전장으로 이끌고 가서 전멸토록 한다.
러시아에서 5년 간 유배 생활 후 1829년 마침내 국외이주 허락을 받았다. 독일(바이마르), 스위스를 거쳐 1830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 정착했다. 1832년부터 파리에 정착한 후 그의 대표작인 <판 타데우시>(Pan Tadeusz)를 써서 1834년에 출판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 군대의 동진(東進)과 더불어 자유를 획득하려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희망이 커진 1811-1812년의 역사적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총 12편에 9,670 시구와 후기(後記) 129 시구로 되어 있고 매 시구는 13음절로 되어 있고, 완벽한 운을 맞추고 있고 있다.
Staris juna knabino; vesto, blanke brila...
1834년 파리에서 폴란드인과 결혼해 아들 4명, 딸 2 명을 두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교사 생활을 하면서 도서관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러시아와 터키 간 크림전쟁(1853-1856)이 이 일어나자 다시 폴란드의 독립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희망이 켜졌다. 1855년 11월 그는 파리를 떠나 이스탄불에 도착해 폴란드인 군단 조직을 시도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콜레라에 걸려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파리에 묻혔다가 1890년 폴란드 크라쿠프 바벨성에 이장되었다.
Tadeo kaj Zosia
그의 주요 작품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보낸 리투아니아 대공국에 관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는 평생 고향에 대한 향수에 사무쳐 있었고 역사에서 사라진 조국 독립을 위해 정열을 쏟았다. 조국애 사상이 그의 작품에 짙게 스며있다. "그라지나"와 "콘라트 발렌로트"에서 그는 독일 기사단에 대항한 리투아니아인들의 용기와 희생을 높이 평가했다. 폴란드뿐만 아니라 리투아니아에도 그를 기념하는 동상과 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그의 작품 <판 타데우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국제어 에스페란토는 안토니 그라보프스키(Antoni Grabowski)가 번역해 1918년 출판되었다.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1859-1917)가 이 작품 일부의 에스페란토 번역본을 직접 읽어본 후 끝까지 완역하기를 부탁해서 이루어졌다. 한국 에스페란티스토 40여 명이 뜻을 모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 이 작품을 가지고 함께 2월 10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공부하기로 했다.
야외 소풍을 갈 때 거의 필수품처럼 챙겨 가는 것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다. 플라스틱 접시, 플라스틱 숟가락, 플라스틱 포크 등이다. 플라스틱은 편리함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환경오염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플라스틱은 미생물이 쉽게 분해할 수 없는 화학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연분해 기간이 수백년이다. 예를 들면 플라스틱 생수통이 분해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500년이다. 이에 반해 종이류는 1개월에서 6개월이다.
버려지고 방치된 플라스틱은 대부분이 땅 속에 묻히지만 일부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 거대한 플라스틱 섬을 이루어 떠다니고 있다. 어류 뱃속에 가득 들어 있는 플라스틱에 관한 소식은 환경오염에 큰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미생물에 분해되는 대체재가 시급하다. 폴란드의 한 회사(Biotrem)가 플라스틱 대체품을 만들고 있어 화제다. 이 회사는 밀기울(wheat bran, 밀을 빻아 체로 쳐서 남은 찌꺼기)를 사용해 접시, 숟가락 등 식기를 만든다. 밀기울 식기 생산공정은 폴란드인 예지 비소쯔키(Jerzy Wysocki)가 2000년대 초에 발명했다.
폴란드 포즈난에서 매년 9월 에스페란토 예술 행사가 열린다.올해는 한국에서 대금 연주자 성민우(마주 MAJU)와 가야금 연주자 조영예 그리고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오혜민이 참가해 "Pacon kune"(함께 평화를)라는 주제로 한국 음악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 사진: Gražvydas Jurgelevičius
이날 요가일래도 이 한국 음악 공연해 참가해 "바람이 잠든 곳으로 - 황후의 노래"를 에스페란토로 불렸다. 한국어 가사 번역은 최대석(초유스)이 했다.(에스페란토로 어떻게 들리는 지 궁금하시는 분은 아래 동영상을 보세요.)
바람이 잠든 곳으로 - 황후의 노래
바람에 날려 여기로 왔네 저 달빛 속에 머물렀네 구름은 모두 저편에 멀어지네 참았던 눈물 바다로 떨어지네
닿을 수 없었던 너 내 곁에 있는데 내 마음이리도 왜 이리 서글퍼지는 건지
저 하늘이 내려준 우리의 인연은 바람이 잠드는 그곳으로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강물 후회해도 이젠 소용없어 따스한 너의 두 손을 잡아도 두 눈가에 슬픔만이 가득하네
닿을 수 없었던 너 내 곁에 있는데 내 마음 이리도 왜 이리 서글퍼지는 건지
저 하늘이 내려준 우리의 인연은 바람이 잠드는 그곳으로
후회하지마 힘들어도 이제는 가야만 하네 그 먼곳으로
닿을 수 없었던 너 내 곁에 있는데 내 마음 이리도 왜 이리 서글퍼지는 건지
저 하늘이 내려준 우리의 인연은 구름이 잠드는 그곳으로
Kie dormas vent’ – Kanto de la imperiestrino
Jen alvenis mi laŭ la venta flu’. Restadis mi en tiu luna lum’. Malproksimen tien iras la nubar’. Tenita longe larmo falas al la mar’.
Apud mi ĉeestas vi, neatingebla vi. Ho kial tamen tristas, tiel tiel tristas mia kor’?
Destinita de l’ ĉiel’ aldrivas nia am’ al tiu loko, kie dormas vent’.
Netranseblas nun tiu ĉi river’. Nun estas tro malfrue por bedaŭr’. Kvankam viajn varmajn manojn tenas mi, la du okuloj plenas sole de malĝoj’.
Apud mi ĉeestas vi, neatingebla vi. Ho kial tamen tristas, tiel tiel tristas mia kor’?
Destinita de l’ ĉiel’ aldrivas nia am’ al tiu loko, kie dormas vent’.
Bedaŭru ne plu! Eĉ malgraŭ peno devas mi ekiri nun al la fora lok’.
Apud mi ĉeestas vi, neatingebla vi. Ho kial tamen tristas, tiel tiel tristas mia kor’?
Destinita de l’ ĉiel’ aldrivas nia am’ al tiu loko, kie dormas vent’.
최근 부산에서 담배 밀수가 적발되었다. 소식에 따르면 러시아인 선장 일당은 부산에서 수출용으로 불가리아산 담배 2만 2천갑을 구입했다. 물에 젖지 않도록 담배상자를 밀봉하고 그물로 묶은 후 위치추적장치까지 달았다. 배들이 뜸한 해상으로 나가 담배상자를 통채로 바다에 뿌렸다.
이후 소형어선이 신호를 추적해서 건진 후 다시 국내로 들여와서 파는 방법이다. 500원에 수출용으로 구입한 한 갑(불가리아산)이 부산 국제시장이나 서울 이태원 등에서 3000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최근 폴란드에서도 대규모 담배 밀수가 적발되었다. 벨라루스에서 들어온 목재에 담배를 숨겨들어왔다. 양은 약 60만개피로 가치는 40만즐로티(1억1400만원)다.
지난 주중에 왕복 1000킬로미터 문상을 다녀왔다. 폴란드 바르샤바에 살고 있는 친구 라덱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9월에 심장마비 증세로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여러 일로 바빠서 병문안을 가지 못했다. 10월에 한번 다녀올 생각을 하고 있는 중 부고를 받아 마음이 더욱 아팠다. 화장일을 맞춰 다녀왔다. 1991년 1월부터 알고 지내왔으니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술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만날 때마다 술을 권했다. 거절하는 나에게 한국말로 "절반?! 절반?!"이라고 자꾸 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망과 문상 이야기를 풀고자 한다.
죽어도 살아 있다
9월 5일 토요일 아침 무렵 꿈을 꾸다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발밑에 있는 이불 끝자락을 잡아 당기면서 "라덱(아들 이름), 빨리 일어나!"라고 외쳤다.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평소 꿈에 나타나지 않는데, 이날 꿈 장면이 하도 생생해서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 라덱이 여러 해를 걸쳐 직접 지은 집
꿈이 너무 이상해 어머니 사후 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아버지에게 급히 전화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한 생각이 들어 즉시 옷을 갈아입고 아파트 열쇠를 챙겨 차를 몰았다. 아파트에 들어가니 아버지(78세, 1938년생)는 거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희미한 의식은 있지만, 가쁜 숨을 힙겹게 내쉬었다. 술 냄새가 물씬 풍겼다.
탁자 밑에는 독한 맥주 빈병 3개가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여러 해 전 건강을 크게 잃은 후부터 술을 조금만 마시고 있고, 또한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술을 마실 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순간 불길함이 뇌리로 몰려왔다. 즉시 구급대를 불렀다. 심장마비 증세였다. 심장이 10-15% 정도만 기능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사경에 처해 있으니 돌아가신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깨우게 된 것을 통해 아들은 "사람은 죽어도 살아 있다"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쓰러지기 훨씬 전에 모스크바에 있는 이모가 9월 6일 방문하기 위해 기차표를 구입해 놓았다.
그후 알게 된 그날 밤의 일이다. 보그단이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그는 아버지가 이렇게 된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인사겸 찾아와서 선물로 가져온 보드카 200그램을 나눠 마셨다. 아버지는 맥주를 마시지 않고 보드카를 조금 마셨다고 한다. 친구가 돌아간 후 아버지는 술김에 냉장고에 있던 맥주를 꺼내 혼자 다 마셨다. 며칠 후 아내의 기일이라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병세는 호전되었으나 한 순간에 유명을 달리
입원한 지 한 달 뒤부터 병세는 점점 호전되고 있었다. 매일 병실을 찾았다. 아버지 친구들도 틈나는 대로 병문안을 다녀갔다. 아버지는 자주 헛된 말을 했지만, 충분히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사지를 온전하게 사용하지 못하면서 자꾸 집으로 데려다달라고 했다. 집에만 가면 혼자 일어서서 걸을 수도 있고, 밥을 해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숟가락도 혼자 힘으로 들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번은 친구 스테판이 어젯밤에 찾아와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고 했다. 병원에서 음주는 불가하므로 망령된 말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스테판 아저씨에게 이야기했더니 깜짝 놀랐다. 바로 어젯밤에 그가 아버지와 맥주를 마시는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시는 날 동생이 찾아왔다. 지방에 살고 있어 쉽게 올 수가 없었다. 입원한 후 처음이었고, 이것이 마지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두 형제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온하고 추억 어린 시간을 가졌다. 동생이 막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자, 형이 동생에게 귀속말로 "너는 피에댜(fiedja)야!"라 속삭였다. 동생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어린 시절 후부터는 한번도 듣지 못했던 별명을 형이 기억해 지금 말하고 있다니... 이들이 작별한 지 3시간 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어머니가 남은 가족을 생각해 데리고 가
아버지는 "바로 그날 심장마비 증세가 일어났을 때 돌아갔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고 말하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기신 지 6개월 동안 아버지는 우울증 증세를 무척 고생하셨다. 어머니가 자꾸 부른다는 망상에 빠졌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서 약을 복용해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 친구와 이웃들이 정기적으로 찾아와 말친구가 되어 주었고, 소량이지만 이들과 한 두 잔 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우울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어느 정도 호전되더라도 의사는 심장이 20% 이상 기능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지를 마음대로 쓸 수가 없으니 퇴원을 하더라도 누군가 24시간 간병을 해야 한다. 자식된 도리를 다해야 하기에 퇴원 후 간병을 여러 가지 궁리를 했지만 뽀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그래서 걱정이 그야먈로 태산이었다.
"이런 이유로 어머니가 남은 가족을 생각해 아버지를 데리고 갔구나"라고 아들은 믿게 되었다.
숫자 17이 참으로 묘하다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던 숫자가 17이다.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좋아했다. 가게에 가서도 17이 들어간 상품을 즐겨 구입했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가신 날짜도 9월 17일이다. 공교롭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짜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꼭 1년 1개월인 10월 17일이다.
여러 해에 걸쳐 지은 집 층간 복도에 어머니가 정년퇴임 후 취미생활로 만든 자수 그림 작품 18점을 걸었다. 그런데 걸려있던 한 작품이 어느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던 숫자가 17이라 그 떨어진 작품을 다시 걸지 않았다. 현재 17점이 걸려 있다.
▲ 어머니가 취미로 만든 자수 그림 작품
15분 동안만 화장장 CCTV 화면으로 작별
가톨릭 신자가 약 90%인 폴란드는 매장이 일반적이지만, 화장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늘어나고 있다. 어머니에 이어 아버지도 화장하기로 했다. 화장 시간 오후 1시에 맞춰 도심에서 많이 떨어진 묘지에 있는 화장장으로 갔다.
화장장은 화장 시작 15분 전에 작별실 문을 열어주었다. 작별실에는 의자 12개와 소파가 놓여 있는 작은 방이었다. 앞에는 유리 진열장으로 막아놓았고, 그 안에는 관을 보관하는 방의 모습을 CCTV로 보여주는 텔레비젼이 걸려 있다.
아버지 친구들이 하나 둘 자리를 메웠다. 화면에는 화장장에 들어갈 목관이 보였다. 조문객들은 적막한 침묵 속에 기도에 임했다. 있을 법한 흐느끼는 울음 소리는 전혀 없었다. 15분 후 목관이 화로로 옮겨지자 화장장 관리인이 작별실 문을 닫아야 함으로 사람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유골함은 다음날 받기로 했다.
▲ 화장장 작별실
▲ 작별실에서 나와 상주에게 위로하는 조문객ㄷ들
▲ 바르샤바 피아세츠노 화장장 정면 모습
▲ 화장장 바로 뒤에 위치한 납골당
▲ 주검이 연기로 변해 하늘을 닿고 있다
평소에 잘 보살피고, 간소하게 보내야지
화장장 밖에서 조문객들은 줄을 서서 상주인 라덱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어 삼삼오오 모여 잠시 얘기를 나누더니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화환을 가져온 사람은 몇이 되지 않았다. 보통 묘지에 안치식을 할 때 화환을 가져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덱에게 물었다.
"마지막 작별인데 돌아가신 분의 얼굴이라도 보면서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어머니를 보낸 지 1년밖에 안 되는데 또 다시 아버지를 보내게 되었다. 삼촌이 이번에는 그냥 이렇게 보내자고 해서 동의했다. 평소에는 모시기를 게을리하다가 돌아가신 후 성대하게 미사를 지내고, 꽃으로 무덤을 장식해 효자임네 자랑하는 것이 무슨 소용 있나? 평소에 잘 보살피고 간소하게 보내는 것이지. 조만간 일가 친척이 주말에 모여 유골함 안치식을 가질 것이다."
▲ 장자(莊子)를 떠오르게 한 밤의 술상
이날 저녁부터 라덱과 함께 돌아가신 분을 위해 쿠바 기타 음악을 들으면서 보드카 한 잔 한 잔 건배를 했다. 아내가 죽자 곡(哭) 대신 노래했던 장자가 떠오르는 밤이었다. 하지만 간간이 눈물을 훔치는 라덱을 보니 역시 죽음은 남은 자에게 슬픔이로다...
겨울이다. 북동유럽 리투아니아에는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12월 중순인데도 아직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았다. 벌써 한 두 번은 영하 15 내외의 날씨가 있어야 정상인데 올해는 아직 그런 날이 없었다. 도처에 있는 호수에서 얼음낚시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겐 울상을 짓게 하는 일이고, 겨울 난방비가 걱정되는 사람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산악지대의 얼음 호수 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다. 이 호수는 높은타트리산맥(Tatry Wysokie, Vysoké Tatry)에 위치하고 있다.
* 높은타트리산맥 전경: 사진 - 위키백과
이 산맥은 북쪽으로는 폴란드, 남쪽으로는 슬로바키아에 퍼져 있는 아주 높은 산악 지대이다. 총길이가 26킬로미터, 폭이 17킬로미터, 면적이 341평방킬로미터(슬로바키아 260km², 폴란드 81km²)이다. 가장 높은 산은 게를라호브스키 봉으로 2655미터이다. 백두산보다 약 100미터가 낮다.
* 높은타트리산맥의 최고봉 게를라호브스키(2655미터) - 1992년에 저 정상을 밟았다. 사진 - 위키백과
영상이 화제가 된 이유는 수정처럼 투명한 얼움이 경이로움과 공포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얼어버린 호수 위로 등산객이 걸으면서 촬영한 영상이다.어린 시절 시골 강에서 보던 수정같은 얼음을 떠올리게 한다.
밑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얼음의 두께와 호수의 깊이마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바로 아래 사진은 산 위에서 내려다본 이 호수(Veľké Hincovo pleso)이다. 해발 1946미터에 위치하고 표면은 연중 270일 얼어있다.
이 호수의 깊이가 무려 53미터이다. 깊이를 모르고 걷는 편이 심리적으로 더 좋을 듯하다.
등산객은 얼음 위가 아니라 마치 맑은 호수 위를 걷는 "기적의 사나이"처럼 보인다. 한편 나라도 저 얼음 호수에는 살얼음 위를 걷듯이 걸을 수밖에 없을 듯하다.
4. 이 모양을 건져 불에 비추면 벽에 그림자가 생긴다. 이 그림자 형상이 무엇을 닮았냐에 따라 다음해의 운명을 알 수 있다.
* 녹인 양초를 물에 붓는다.
* 부울 때 열쇠 구멍을 통해서 해야 한다.
* 물에 담긴 양초 용약은 이렇게 어떻게 붓는냐에 따라 모양을 달리 한다.
* 이 모양을 불이 비춰 벽에 나타난 형상을 가지고 내년 운세를 점친다. 보는 사람에 따라 형상도 달리 해석될 수 있으므로, 자기 해석 주장에 모두들 시간가는 줄 모를 듯하다.
신발 놀이도 있다. 미혼 여자들이 각각 신발 한 짝을 벗는다. 이렇게 모인 신발을 방문 쪽으로 하나하나 연결한다. 이때 신발 앞 부분이 문을 향하도록 한다. 방문에 닿는 신발의 주인이 제일 먼저 시집간다.
또 다른 놀이는 미래 남편 이름 알아맞히기다. 작은 종이마다 각각 다른 남자 이름을 쓴다. 이 종이들을 베개 밑에 놓고 잔다. 아침에 일어나 베개 밑에서 종이 하나를 꺼낸다. 이때 종이에 써여진 이름이 바로 미래의 남편 이름이다. 때론 이름이 아니라 운명 문구를 적기도 한다.
이제 밤이 제일 긴 동지를 향해 나아간다. 오후 4시가 되면 벌써 어두워진다. 이 긴긴 밤에 이런 전통 놀이로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겠다.
세계 여러 나라 음식 요리를 즐겨하는 어느 스웨덴인[처음엔 폴란드인으로 여겼으나 관련인과 직접 접촉을 통해 알아본 결과 스웨덴인]의 제육볶음 동영상이 최근 눈길을 끌었다. 유튜브 사용자 "The Food Emperor"는 자신이 직접 제육볶음을 요리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어 11월 14일 유튜브에 공개했다. 현재 이 동영상 조회수는 16만을 넘었다.
일전에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에서 가족여행을 한 후 폴란드 바르샤바를 들러서 리투아니아 빌뉴스 집으로 돌아왔다. 바르샤바에서는 20여년을 알고 지내는 폴란드인 친구 라덱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시골에 있는 그의 삼촌집을 방문했다.
당시 라덱의 초등학생 사촌동생은 이제 30대 중반이 되어서 자기 가족이 살 단독주택을 거의 다 짓고 있었다. 축하할 겸 이 집도 둘러보았다.
이어서 라덱의 삼촌댁에 도착했다. 벌써 식탁에는 많은 음식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폴란드 시골 사람들은 어떤 음식으로 손님을 맞이할까 궁금한 블로그 독자들을 위해 이날 먹은 음식을 차례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아래 컵에 담긴 것은 커피도 아니고, 차도 아니다.
무엇일까?
비트(붉은사탕무)를 끓인 국이다. 비트는 적혈구를 만들고 혈액 전부를 조절해주는데 가장 좋은 야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비트국과 먹은 전식이다. 부침개로 그 속에 고기가 들어가 있다. 한 번 베어먹고 비트국을 마신다.
다음은 비고스(bigos)라는 음식이다.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등지의 전통 음식이다. 양배추에 고기(돼지고기, 훈제, 소고기, 베이컨, 햄 혹은 소시지 등)를 넣어 푹 삶은 음식이다. 리투아니아인으로 1386년 폴란드 왕이 된 요기일라가 폴란드에 전한 음식이라는 말도 있다.
옥수수, 새우 샐러드이다.
절인 오이다.
직접 채취해 요리한 버섯이다.
돼지고기 커틑릿(돈가스)이 이날 주된 고기였다.
모처럼 접한 삶은 감자다. 분이 참 많았고, 아주 맛있었다.
오른쪽으로부터 라덱 삼촌, 그리고 그의 아들, 며느리와 부인이다.
직접 만든 소시지이다.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접시에 담았다.
손님맞이에 술이 빠질 수는 없다. 아주 특별한 술을 대접 받았다.
바로 직접 민들레꽃으로 만든 술이다. 민들레화주!!!
그 다음이 감동이었다. 안주인은 식물학자로 식물원에서 일하다 정년 퇴임했다. 한국과 각별한 인연(라덱의 작고한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뜰에 소나무 품종 하나인 한국소나무를 심었다. 이 소나무에서 피어나는 어린 꽃을 따서 술을 만들었다. 술에 취하고, 향내에 취하고...
커피다. 커피가루을 밑에 놓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케잌이다. 직접 집에서 만들었다.
정성어린 음식, 푸짐한 음식,
정말이지 호텔 만찬이 부럽지 않았다.
더욱이 한국소나무꽃술까지 대접 받았으니 포만감과 만족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날 만남의 절정은 이 참나무다. 22년 전 처음 이 시골집을 방문했을 때 내가 심은 나무이다. 이곳 사람들은 이 나무를 내 이름을 따서 "대석나무"라 부른다. 벌써 이렇게 자랐다. 또 20년이 흐른다면 저 나뭇가지에 매달린 그네가 누군가의 아이를 즐겁게 해줄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음식과 시간이 벌써 그리워진다.
코파츠 총리는 역대 두 번째 폴란드 여성 총리이다. 소아과의사 출신인 그는 폴란드 최초로 여성 하원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4년 9월 22일 도날드 투스크에 이어서 폴란드 총리가 되었다.
폴란드는 대부분 서유럽 국가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루고 있다. 독일이 연 0.4% 성장한 반면에 폴란드는 1.6%이다. 하지만 양국간 총생산량, 임금, 시간당 생산성은 여전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3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독일이 42.8유로, 폴란드가 10.6유로이다. 2012년 평균연봉액에서 독일은 26,580유로. 폴란드가 5,060유로이다.
폴란드 인구가 4천여만명으로 유럽에서 아홉 번째로 큰 나라이고, 이는 독일 인구의 반이다. 양국 경제규모 차이로 현재 폴란드에 사는 독일인보다 독일에 사는 폴란드인이 10배이상이나 많다.
이번 양국 여성 최고지도자 정상회담에서 폴란드인들과 누리꾼들에게 큰 관심을 끈 사람은 코파츠 총리이다. 그는 공식 환영 사열식에서 세계 정상 무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어설픈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장면 1: 0:00-0:07
코파츠 총리가 메르켈 총리 오른쪽에서 걸어가야 하는데 왼쪽으로 가니까 메르켈 총리가 그의 몸을 잡고 오른쪽으로 이동시켜 줌.
장면 2: 0:15-0:12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데 코파츠 총리는 계속 무대포로 직진하려고 한다. 이에 메르켈 총리가 다시 그의 오른팔을 잡고 방향을 일러줌.
장면 3: 0:55-0:59
뒤로 돌아 사열대에게 인사를 해야 하는데 코파츠 총리는 당당하게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이에 메르켈 총리가 속삭여 방향을 전환시켜준다.
메르켈 독일 총리가 코파츠 폴란드 총리를 바로잡아주는 장면을 보니 한편의 정치코미디를 보는 듯했다. 격에 맞는 의전을 왜 사전에 숙지하거나 숙지시켜주지 않았을까......
홍지인 주 리투아니아 대사가 12일 리투아니아 대통령 관저에서 달랴 그리바우스카이테 리투아니아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다. 홍 대사는 주 폴란드 대사를 겸하고 있으며, 대사 업무는 주 폴란드 한국 대사관에서 이루어진다.
[사진=리투아니아 대통령실, 촬영 P. Pleckis]
이날 신임장 제정식에서 양국 관계, 경제 분야, 국제 기구에서의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그리바우스카이테 대통령은 한국 울산에서 제조된 LNG선박의 클라이페다 터미날 개막식에 한국 대표가 참가해줄 것을 기대하고, 리투아니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한국이 지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홍 대사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리투아니아 정부와 국회 고위 인사들도 만나서 양국 관계 확대 방안을 협의했다. 빌뉴스대학교와 10월 발트 3국 최초로 세종학당이 개설될 미콜리스로메리스대학교를 각각 방문해 해당 대학교 총장과 함께 한국 문화와 한국어 보급에 대해 협의했다.
또한 리투아니아 한인회(회장 김유명) 임원들과 유학생 및 교환학생 대표들을 만나 격려했다.
리투아니아 최대 일간지 <Lietuvos rytas> 인터뷰에서 홍 대사는 한국과 유사점이 많은 리투아니아가 한국과 유럽 연합간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양국간 경제, 교육, 에너지 분야에서 더 많은 상호 협력을 기대했다.
홍 대사는 캐나다, 파키스탄, 미국, 인도, 네덜란드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고, 캐나다 총영사와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모처럼 정장 차림으로 아내가 직장인 음악학교로 출근했다. 하늘은 맑았지만 이맘 때는 언제라도 비가 내릴 수 있다. 그래서 아내가 한마디했다.
"내가 퇴근할 무렵 비가 오면 당신이 우산을 챙겨서 학교로 와."
"알았어."
아내가 퇴근할 오후 7시 30분 경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 뭉치가 여기저기 있지만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잠시 후 아파트 입구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렀다. 우리 집 아파트 문을 열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아내를 보았다.
얼굴은 그야말로 꽃다발에 파묻혀있었다. 아내가 가르치는 피아노 학생들의 학년말 연주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1년 동안 가르쳐준 선생님에게 감사의 뜻으로 꽃이나 선물 등으로 성의를 표한다. 그런데 선물한 꽃의 규모는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달렸다.
"이건 러시아인 학생이 선물했고, 이건 리투아니아인 학생이 선물했고, 이건 폴란드인 학생이 선물했어."
"우와, 정말 민족별로 참 다르네."
* 러시아인 두 학생이 각각 선물한 꽃다발
* 리투아니아인과 폴란드인 학생들이 선물한 꽃송이
물론 어느 민족 전체의 성향으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아내가 받는 꽃선물을 통해서는 민족에 따라 확연히 다름을 쉽게 알 수 있다. 러시아인은 아주 큼직한 꽃다발이다. 이에 반해 리투아니아인과 폴란드인 학생은 꽃 한 송이나 세 송이에 초콜릿 등 과자를 선물한다.
"학생들에게 너무 과한 꽃다발 선물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되나?"
"그렇게 말하기가 어렵지."
"이 중 어느 꽃선물이 제일 마음에 드나?"
"다 마음에 들지만 꼭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이 은방울꽃 묶음이야."
숲 속 이른 아침에 즐길 수 있는 은은한 은방울꽃 향기가 이제 며칠 동안 우리 집 거실에 피어날 것이다. 한편 앞으로 러시아인을 축하할 때에는 아내가 받은 큼직한 꽃다발처럼 선물하는 것이 좋겠다.
폴란드 중고차 시장에 매물로 나온 2006년식 BMW E60 M5의 가격은 34,091유로(약 5천100만원)이다. 중고차를 살 때 제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사고차였는지 여부이다. 하지만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를 식별하기가 참 어렵다.
특히 고급 중고차를 살 때 더욱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아래는 폴란드 중고차 매매사이트에 올라온 BMW M5 자동차이다.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좌우, 앞뒤 어디를 봐도 아무런 이상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온전하게 사용하다가 중고차 시장에 팔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아래는 이 차량의 전신을 알려주는 미국 사이트 정보이다. 즉 미국에서 교통사고가 난 차를 수입해서 폴란드에서 기가 막히게 수리해서 5000만원에 팔고 있다.
Model Year 2006 Make BMW Model M5 Body Type 4 Door Sedan Country GERMANY Actual Cash Value $98,975 USD Repair Cost $98,975 USD Title State FLORIDA Title TypeCERTIFICATE OF DESTRUCTION Odometer0 NOT ACTUAL Primary DamageROLLOVER VIN WBSNB93596B582522
자, 수리하기 전 BMW의 모습이다. 처참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이 정보를 어떻게 알아냈을까? 바로 VIN코드 때문이다.
VIN은 Vehicle Indentification Number의 약자로 개별 차량을 구분하기 위해 자동차 업계에서 사용하는 일련번호이다. 개인의 주민등록번호과 같아서 위변조를 막기 위해 차량에 고정되어 있다. 위의 BMW 차량의 고유번호는 WBSNB93596B582522 이다. 이 번호를 이용해 정보를 얻어낸 것이다.
17자로 되어 있는 VIN 코드는 중고차 구입시 꼭 알아둘 사항이다. 아무리 비싸고 외관이 멋있더라도 중고시장에 나오기 전 모습을 이렇게 알게 되면 구입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