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2018.11.23 05:41

유럽에 살면서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한다. 대부분 1월이나 2월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11월 초중순에 다녀왔다. 날씨를 걱정했는데 10여일 머무는 동안 참으로 날씨운이 좋았다. 낮온도가 15-20도 사이였으니 여름철을 한 번 더 보낸 셈이었다. 형제들이 살고 있는 대구 방문는 빼놓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이 서울이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온 동대구역은 옛날의 동대구역이 아니였다. 역 앞에는 아주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고 그 옆에는 백화점이 들어서 있다. 마침 국화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도착 후 혹은 출발 전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이를 즐기고 있었다.


국화꽃으로 장식된 빨간 사과는 사과 주산지로서의 명성을 말해주는 듯하다.


태극부채다.


심장 안에 얼굴을 내밀고 기념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늘 사랑 충만하길 바란다.


여의보주를 물고 있는 용이다. 금방이라도 승천할 것 같다.


그 여의보주로 한반도 전역에 
아름다운 국화꽃 향기가 퍼지도록 하고


마침내 통일이 이루어져 언젠가 유럽에서 승용차로 와 고향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하소서...
Posted by 초유스

폴란드 포즈난에서 매년 9월 에스페란토 예술 행사가 열린다. 
올해는 한국에서 대금 연주자 성민우(마주 MAJU)와 가야금 연주자 조영예 
그리고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성악가 오혜민이 참가해 
"Pacon kune"(함께 평화를)라는 주제로 한국 음악을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 사진: Gražvydas Jurgelevičius


이날 요가일래도 이 한국 음악 공연해 참가해 

마주 성민우가 작사한 "38선 ( 피의 맹세)를 에스페란토로 불렀다.

한국어 가사 번역은 최대석(초유스)이 했다. 

(에스페란토로 어떻게 들리는 지 궁금하시는 분은 아래 동영상을 보세요.)


38선 (피의 맹세)

세상을 가로질로 지금 우리는 가네

희망이 가득한 평화를 약속하네


고요한 운명의 바람

완고한 벽은 허물어지네


Do you hear the people suffring?

We do dont want be slave again.

Then joiin in the fight.


Do you change your destiny?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Let's singing revolution.

 

세상을 가로질로 지금 우리는 가네

희망이 가득한 평화를 약속하네


고요한 운명의 바람

완고한 벽은 허물어지네


Do you hear the people suffring?

We do dont want be slave again.

Then joiin in the fight.


Do you change your destiny?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Let's singing revolution.

La 38a norda paralelo (La sanga ĵuro)


Trans la mondon ja ni iras en ĉi moment’. 

Je esper’ plenan pacon do ĵuras ni jen. 


De la vent’ de kvieta sort’ 

nun falas muro kun obstina fort’. 


Ĉu vi aŭdas ĝemon de l’ homar’? 

Resklavi ni ne volas jam. 

Ek al lukto tuj! 


Ĉu vi volas ŝanĝon de l’ destin’? 

Startigas nova vivo sin. 

Kantu ni pri ribel’! 


Trans la mondon ja ni iras en ĉi moment’. 

Je esper’ plenan pacon do ĵuras ni jen. 


De la vent’ de kvieta sort’ 

nun falas muro kun obstina fort’. 


Ĉu vi aŭdas ĝemon de l’ homar’? 

Resklavi ni ne volas jam. 

Ek al lukto tuj! 


Ĉu vi volas ŝanĝon de l’ destin’? 

Startigas nova vivo sin. 

Kantu ni pri ribel’!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8.02.18 07:09

만 100년 전 1918년 2월 16일은 
리투아니아 역사에 대단히 중요한 날이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리투아니아는 
3차 3국 분할로 인해 1795년부터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러시아 제국이 쭉 지배을 해오다가 
1차 대전 중인 1915년 독일 제국이 점령했다. 
독일점령하에 리투아니아 평의회 20명 회원이
1918년 2월 16일 리투아니아 독립을 선언했다. 

참고로 리투아니아는 1919년 9월
대한민국을 정식으로 승인한 국가 중 하나이다.

10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2월 16일 하루 종일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어울러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특히 어둠이 다가오자
가장 중심가 거리인 게디미나스 거리에는 
모닥불 100개가 불을 밝히고 경축 인파들에게 온기를 전해주었다.
1990-1991년 소련에서 다시 독립할 때 모닥불을 피우고 
목숨을 걸고 국회와 방송탑을 지키던 
용감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만나는 듯했다.  


 

많은 건물들은 
리투아니아 국기 색인 노랑 초록 빨강 색깔로 조명 장식이 되었다.
이날은 그야말로 삼색으로 하나된 하루였다.




이날 삼색 조명의 압권은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빌뉴스 대성당 종탑이었다.
   


집 근처 공익광고의 문구가 눈어 확 들어왔다.
리투아니아 재건 독립의 상징적인 인물은 요나스 바스나비츄스의 말이다.

"역사는 당신에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다" 



이 광고를 보니 평창 동계 올림픽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문구의 "역사"는 "통일"로 변했다.

"통일은 당신에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09.20 06:03

지난 여름 어느 날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중심가에 있는 종합진료소를 다녀왔다. 당뇨증세가 있어 진료를 받기 위해서였다. 혈액검사를 마치고 담당 전문의 진료실을 찾았다. 진료실 앞 대기석에는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 리투아니아 빌뉴스 중앙 종합진료소
 

"어느 분이 마지막인가요?"라고 물었다.
"간호사가 호명하는 대로 들어가요."라고 안경 쓴 사람이 답했다.

그 분 옆에 앉았다. 영어로 된 잡지를 읽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진료를 받았는데 오늘은 검사결과만 전해주기만 하면 되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금 후에 그 분이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리투아니아어를 잘 해요?"
"아니요. 아주 조금밖에 못해요."
"리투아니아에 온지 얼마나 되어요?"
"10년."
"리투아니아에 50-60년 산 사람들도 리투아니아어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리투아니아어 정말 어려워요. 격변화도 많고, 강조음도 불규칙적이고......"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좋아요."

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칭찬했다. 몇마디 현지어를 한 것을 가지고 칭찬을 받으니 괜히 쑥쓰러웠다.  잠시 후 안경 쓴 할머니가 다시 말을 걸었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어요."
"남이요? 북이요?"
"남이요."
"한국은 여름에 안 더워요?"
"덥죠"
"습하지는 않아요?"
"리투아니아는 건조하지만 한국은 정말 습해요. 여름은 리투아니아가 정말 좋아요."

"나는 미국 뉴욕 맨하턴에서 16년 살았어요."
"그럼, 이제 완전히 리투아니아로 되돌아온 것인가요?"
"그래요. 뉴욕은 너무 복잡해요. 도시내 이동에 하루가 다가요. 여긴 모든 것이 가까이에 있어요."
"맞아요. 서울도 마찬가지요."
"북한 사람들이 먹을 것도 없는 것이 참 안타까워요."
"그래요."
"통일은 언제 될까요?"
"그렇게 바라지만 딱 언제 된다고 말할 수가 없네요." 

낯모르는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대부분 마지막 대화 사항은 이렇게 북한과 통일로 흘러간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11.09 08:15

일전에 "폴란드에 북한고아원이 있었다구?" 블로그의 글을 읽으면서 체코를 방문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체코는 여러 번 다녀왔다. 그 중 두 번이나 수십년 전에 한국(북한) 사람들을 가르친 체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첫 번째는 1990년 10월 16일이다. 장소는 프라하 남쪽에 있는 '보로틴'이라는 시골마을이다. 당시 에스페란토를 하는 교사 부부 초청을 받아 외국인 방문객이 거의 없는 이 한적한 시골을 가게 되었다. 방문 중 어느 날 바로 옆집에 사는 학교 교장 선생님이 초대했다.

거실 탁자에는 사진첩이 놓여있었다. 집에서 직접 구은 빵과자와 만든 배 발효주로 대접을 받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이 교장 선생님 부부는 특히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바로 한국전쟁 때 체코에서 북한 고아들을 보살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당시의 추억을 전해주었다. 그 사진첩에는 북한 아이들과 함께 한 시절의 사진들이 빽빽히 꽂혀 있었다. 마치 당시의 북한 어린이가 자라서 돌아온 양 기뻐했다.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기도 무섭지만, 북한 관련 이야기를 듣만 것만 해도 왠지 두려움과 경계심이 앞섰다.

이들 부부는 북한 아이들이 아주 착하고, 똑똑하고, 참 예절이 발랐다고 회상했다.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남북한 냉전시대의 떠돌이 여행객이 할 수 있는 말은 "언젠가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수소문하는 데 도와주겠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는 2002년 10월 프라하 근처에서 열린 에스페란토 학술회의에서 또 다른 체코 사람을 만났다. 자기소개 시간에 한국 사람이다고 하니 다가와서 손을 꼭 잡으면서 기뻐했다. 사연인즉 그 또한 한국전쟁 때 체코에서 북한 고아들을 보살폈다.

그는 적십자가 운영하는 리베쉬쩨 고아원에서 1953년 북한 고아들을 보살피고 가르쳤다. 그도 첫 번째 만난 교장선생님 부부처럼 북한 아이들이 참으로 똑똑하고 착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얼굴을 기억한다고 하니 당시 얼마나 정이 들었을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은퇴한 철도 엔지니어는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체코 철도지도를 초유스를 여행자라 생각하고 선물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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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철도지도 위 왼쪽 상단에 "1953년 리베쉬쩨에서 한국 고아들을 보살핀 사람이 한국 친구에게 주는 선물이다"고 직접 써주었다. 그도 기회가 되면 당시의 북한 어린이들을 만나고 싶어한다. 이 두 번의 경우를 봐도 한국전쟁으로 인해 한국의 이산가족뿐만 아니라 체코 사람도 그리움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식 전하고 싶을 때 아무런 제재없이 전할 수 있고, 만나고 싶을 때 아무런 제재없이 만날 수 있는 그런 날이 한반도에 하루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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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의 아파트 창문가에 나타나는 산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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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