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1. 12. 25. 14:48

보통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장을 본다. 그런데 올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12월 22일 예기치 않게 코로나바이러스 3차 백신접종 부스터샷을 맞아서 활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구 셋이서 다 슈퍼마겟을 가지 못하는 사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에서 비교적 팔팔한 나에게 크리스마스 전야를 위한 구입할 목록이 작성되었다.
 
1. 생선 - 연어, 송어, 청어, 대구 중 아무거나
2. 양귀비씨앗
3. 게맛살
4. 오이
5. 애호박  
 
구입할 목록에는 육류가 없다. 이유는 가톨릭 신도가 대다수인 리투아니아는 대림절부터 크리스마스 전야까지 가급적 육식을 하지 않는다. 특히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신도가 아니더라도 육식을 하지 않는다. 참고로 유럽 여러 나라들의 육류소비량이다. 1인당 1년에 먹는 육류량이다. 가장 많이 육류를 먹는 나라는 스페인, 포르투갈, 아이슬란드, 폴란드, 오스트리아, 리투아니아 순이다.
 
목록 쪽지를 챙겨 24일 아침 일찍 인근 대형 슈퍼마겟으로 간다. 생선매장에 가니 싱싱한 생선은 없고 거의 허물허물한 생선만 남아있다. 이런 것을 사 가지고 갔다가는 핀잔 듣기 십상일 것이다. 냉동매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냉동매장의 생선판매대는 텅 비어 있다. 벌써 어제 다 팔린 듯하다. 집 냉장고 냉동실 한 칸 깊숙히 생선이 숨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돌아온다.
 
다행히 냉동실에 대구와 바다빙어가 있었다. 리투아니아 크리스마스 전야 음식에 생선이 빠지만 안 된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폴란드, 체코 등 중동유럽 나라들은 생선 중 주로 잉어를 먹는다. 그리고 반드시 12가지 이상 음식이 준비되어야 한다. 숫자 12가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다.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고, 1년은 12달로 되어 있고, 하루는 낮과 밤 각각 12시로 되어 있다. 크리스마스 전야에 12가지 음식을 먹어야 1년 12달 배고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서너 시간 동안 식구 셋이 준비한 음식이다(코로나바이러스가 없었는 평년 같으면 식탁 의자가 부족해 임시 의자를 더 갖다 놓아야 했는데 말이다...) 
 
준비하다보니 12가지가 넘어버려...

양귀비씨앗을 갈아서 즙을 내서 만든 물에 건빵을 넣은 음식 - 필수음식이다

삶은 강남콩
미역줄기무침
김치
게맛살과 완두콩
파전
사과케익
튀긴 생선알
튀긴 대구
호박전
튀긴 바다빙어
지속되는 코로나바이러스 상황과 달라진 시대상이 그대로 크리스마스 전야 저녁상에도 드러난다. 식구 셋이 먹고 있는 모습을 호주 시드니에서 곧 아침을 맞을 큰딸이 스마트폰으로 지켜보고 있다.
   

크리스마스 전야 저녁상에 스마트폰도 필수가 된 듯하다

다가오는 1년 12달 내내 세상 사람들 모두 건강하길 기원하면서 음식 하나하나 숫자를 세면서 먹어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12. 25. 06:46

크리스마스다. 유럽은 일년 중 어느 때보다도 가족이 함께 하는 명절이다, 올해 우리 집은 식구가 다 함께 하지 못했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큰딸 마르티나가 빠졌다. 지금까지 매년 저가항공권을 구입해 집으로 와서 짧은 겨울방학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이유가 명확해야 서로 이해할 수가 있다. 마르티나는 네 가지 이유로 부모를 이해시켰다. 첫째로 11월초 가족여행을 스페인 카나리아제도를 다녀왔고, 둘째로 아무리 저가항공이지만 평소보다 표값이 3배가 더 비싸고, 세째로 친구들과 아름다운 에딘버러에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고 싶고, 네째로 아르바이트 직장을 오래 비울 수가 없다.

그래도 어떻게 명절을 보내는 지 궁금하다. 마르티나는 실시간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전해왔다. 흔히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하얀 눈이 쌓여있고, 그 위로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가득 싣고 온다. 그런데 올해는 리투아니아에 눈이 없다. 마르티나는  하늘에 쌍무지개가 펼쳐진 사진을 보내왔다. 믿기지가 않았다. 눈은 없을 수 있지만, 무지개가 뜨는 크리스마스 전날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언제 찍은 사진이지?"
"방금."


리투아니아에서 크리스마스 전야 만찬을 하는데 페이스북으로 또 소식을 알려왔다. 유학하는 리투아니아 대학생 6명이 모여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날 12가지 음식을 준비한다. 이들도 의기투합해 12가지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 가족을 의아하게 했다. 칠면조 고기 요리를 준비하는 사진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날 생선을 제외한 육식을 전혀 하지 않는다.



"오늘 칠면조 고기를 먹나?" 
"비록 집을 떠나 있지만 그 (전통 풍습) 정도는 알고 있지. 내일 먹으려고 준비해 놓은거야."
"오늘 음식은 몇 가지?"
"12가지."


아무 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살기 쉬운  대학 시절인데 12가지 음식을 만들고, 


크리스마스트리까지 마련해 놓고 친구들과 함께 명절 분위기에 젖어 있는 마르티나에게 즐거운 명절과 유익한 대학생활을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