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한국인 관광객들을 안내하면서 북유럽 라트비아 리가 구시가지를 다니다보면 때때로 스웨던문 쪽에서 귀에 익은 노래의 악기 연주 소리를 듣게 된다. 이때 어떤 사람은 "어,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를 여기에서 듣다니!", 또 어떤 사람은 "그건 러시아 민요야!"라고 반응한다. 멀고 먼 라트비아에 와서 이 〈백만 송이  장미〉 노래를 듣는 것에 대체로 모두들 반가워하고 발걸음을 멈추고 끝까지 듣는다. 

 

* 리가 구시가지 스웨덴문에서 캉클레스로 〈백만 송이  장미〉를 연주하는 거리악사

 

리가뿐만 아니라 투라이다성 근처 동굴 입구에서도 종종 〈백만 송이 장미〉의 섹스폰 연주 소리를 듣는다. 라트비아 악사 주변에는 주로 아시아인들이 귀 기우리며 이 연주를 듣고 있다. 아시아인들이 특히 한국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본 눈치 빠른 악사는 이내 노래 연주를 시작하는 경우도 봤다. 한국인인 줄 어떻께 알까? 자주 보는 안내사 얼굴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왜 〈백만 송이 장미〉일까?   

거리악사는 대체로 러시아 민요로 알려진 이 노래가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노래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노래는 

민요가 아니다.

러시아 노래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노래의 정체는 무엇일까?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은 라트비아 가요다.

 

원곡명은 〈마리냐가 소녀에게 인생을 주었지〉(Dāvāja Māriņa meitenei mūžiņu 또는 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다. 이 원곡은 1981년 라트비아 가요제(Mikrofona aptauja 마이크로폰 심문)에서 우승한 곡이다. 참고로 마리냐(Māriņa)는 라트비아 신화에서 나오는 여신이다. 노래는 아이야 쿠쿠레(Aija Kuule)와 리가 크레이츠베르가(Līga Kreicberga), 작사는 레온스 브리에디스(Leons Briedis) 그리고 작곡은 라이몬츠 파울스(Raimonds Pauls)가 했다. 

 

 

이 가요제는 1968년에서 1994년까지 열린 라트비아의 대표적인 가요제이고 라이몬츠 파울스는 작곡으로 11차례나 우승했다. 라트비아에서의 그의 명성을 짐착할 수 있다. 후에 그는 라트비아 국회의원, 문화부 장관, 대통령 후보도 역임했다.  

 

원곡 1절을 초벌로 한번 번역해봤다.

어릴 적에 어릴 적

온종일 내가 아파서 

 

서두르고 서두를 때

곧 바로 엄마를 찾아.

앞치마에 손을 대고

나를 보고 엄마는 

미소를 지며 말했어. 

"마리냐, 마리냐, 마리냐, 마리냐가

소녀에게 소녀에게 인생을 주었지.

하지만 소녀에게 하나를 잊었어.  

행복을 주는 것을 까맣게 잊었어."

 

그렇다면 어떻게 이 노래가 러시아 민요로 알려졌을까? 

이 노래는 라이몬츠 파울스가 작곡한 곡 중 가장 큰 인기를 얻은 노래로 꼽힌다. 많은 가수들이 커버해서 불렀다. 그 중 한 사람이 소련 공로예술가(나중에 인민예술가)인 러시아 알라 푸가초바(Alla Pugachova, 또는 알라 푸가체바 Alla Pugacheva)다.

 

* 라트비아 최고 관광명소 중 하나인 룬달레궁전 장미정원

 

 

1982년에 발표된 알라 푸가초바 커버송의 가사는 원곡과는 전혀 다르다. 새로운 곡명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백만 송이 장미〉(Million Scarlet Roses, 러시아어로 Миллион алых роз)다. 가사는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Andrei Voznesensky)가 썼다. 조지아 화가 니코 피로스마니(Niko Pirosmani) 인생에서 영감을 얻어서 이 곡의 가사를 썼다. 소문에 따르면 화가는 자기가 애정을 둔 프랑스 여배우가 체류하고 있는 호텔의 광장을 꽃으로 가득 메웠다.    

 

* 룬달레궁전 장미정원에 핀 장미꽃

 

〈백만 송이 장미〉는 한국에서 1982년 임주리, 1997년 심수봉이 각각 번안된 가사로 커버해서 불렀다. 먼저 리가 구시가지 스웨덴문에서 라트비아 거리악사가 발트 현악기 캉클레스(라트비아어 코클레스, 에스토니아어 칸넬)로 연주하는 음악을 소개한다.    

 

아래는 한국 전통음악 순회공연에서 이성애 연주자가 리투아니아 드루스키닌카이에서 한국 관악기 대금으로 연주하고 있다. 

 

러시아 민요로 잘못 알려져 있는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이 라트비아 가요 〈마리냐가 소녀에게 인생을 주었지〉임이 서서히 알려져 가고 있다. 이 노래가 앞으로도 라트비아와 한국간의 상호이해와 유대감을 키워가는 데에 좋은 역할을 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 29. 08:33

기회 있을 때마다 초딩 딸아이는 캉클레스 악기를 사달라고 했다. 특히 이 악기 반주에 따라 노래를 부른 날은 좀 극성적으로 졸라댔다. 그럴 때마다 적당한 기회가 생기면 악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래는 몇 해 전 캉클레스 반주에 따라 리투아니아 민요을 부르는 딸 동영상이다.
 
 
캉클레스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민속 현악기이다. 본체는 단단한 통나무로 만들고, 이를 깎아 그 위에 가문비나무 같은 연한 나무판을 올린다. 그 소리판에 꽃무늬나 별 모양을 내서 구멍을 낸다. 철사나 동물의 내장으로 줄을 만든다. 
 

고대 리투아니아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간 날 숲 속에 베어온 나무가 소리를 잘 낸다고 믿었다. 캉클레스 연주는 곧 명상과 같고 죽음, 질병, 사고로부터 연주인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캉클레스 연주를 들으면 애절함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최근에야 딸아이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이날 사오자마자 딸아이는 홀로 연주 시도에 몰두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진작에 사줄 것을 아쉬워했다. 

 
어슬픈 초짜의 솜씨이지만 딸아이는 리투아니아 민요 한 곡을 이날 시도해보았다. 캉클레스 연주에 익숙해져 자라서 나중에 한국의 거문고나 가야금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참 좋겠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12. 19. 07:45

연말이다. 한국에서는 망년 모임으로 바쁘게 보낼 것 같다. 주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는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학교 교사인 아내와 음악학교에서 다니는 딸아이 요가일래 때문에 우리 가족은 일년 중 12월이 제일 바쁘다. 연주회와 공연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금요일 음악학교 1년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의 음악회가 열렸다. 전공별로 엄선해서 악기 연주와 노래 공연이 있었다. 개인과 단체 모두 26개 팀이 참가했다. 요가일래는 합창단, 앙상블, 개인으로 세 차례나 출연했다. 출연마다 의상이 달랐다. 합창단과 앙상블은 단체이니 문제가 되지 않았다.

▲ Itsy Bitsy Teenie Weenie Yellow Polka Dot Bikini 

이번 음악회 주제는 크리스마스를 기해 각국의 노래나 연주곡으로 떠나보는 세계 여행이었다. 출연자는 그 나라 음악에 맞는 의상을 입었다. 요가일래는 말할 필요없이 한국을 맡았다. 노래는 동요 "노을"이었고, 특히 이번 반주는 피아노가 아니라 리투아니아 전통 악기 캉클레스가 맡기로 했다.

한국 노래에 리투아니아 악기 반주라 사람들이 벌써부터 관심을 보였다. 문제는 의상이다. 분위기상 한복이 적격이다. 그런데 딱 맞는 한복이 없다. 지난 5월 개량 한복을 입고 "노을"을 부른 적이 있었다[관련글: 유럽 중앙에 울려퍼진 한국 동요 - 노을]. 그때도 옷이 작아서 입힐까 말까 크게 고민했다. 다행히 소매 길이는 아직 그런대로 봐줄만 했다.

이번에는 일단 이 개량 한복을 제외시켰다. 지인의 딸이 입었던 한복이 떠올랐다. 하지만 커버린 요가일래에게 소매도 짧고, 치마도 짧았다. 이 옷을 입은 요가일래의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릴 경우 악성댓글이 나올 것 같아 염려스러웠다.

▲ 리투아니아 전통악기 캉클레스 반주에 따라 한국 노래 "노을"을 부르는 요가일래 

"이번엔 한복 말고 다른 옷을 입히는 것이 좋겠다."
"안돼. 반주가 리투아니아 전통 악기라 사람들이 한국적인 옷을 훨씬 더 기대할 거야."
"그런데 옷이 작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
"소매를 길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옷 수선에 약간의 소질이 있는 아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한복을 입히고자 했다. 그런데 아내도 다른 연주회를 준비하느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공연 전날 아내는 좋은 생각이라면서 소매 끝자락을 뜯었다. 그렇더니 소매가 더 길어졌다.

"어때?"
"길어졌지만 소매 밖에 그려진 꽃무늬가 소매 안으로 들어가버렸잖아. 안 예뻐!"
"사람들이 멀리서 보는 데 알아채지 못할 거야.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소매가 짧다고 해서 소매를 길게 했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나?"
라며 아내가 언성을 높였다.

옆에 있던 딸 마르티나가 의견을 말했다.
"한국 사람들한테는 확실하게 소매도 짧고, 치마도 짧게 보이지만 한복을 처음 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것이 오히려 더 세련되고 멋있어 보일 거야. 무엇보다도 한복이니 시선을 잡을 거야. 있는 그대로 입히는 것이 지금은 최선이다."

이 의견에 우리 가족 모두는 수긍했고, 아내는 뜯어낸 소매를 다시 원위치로 깁어야 했다.
"다음에 한국 가면 반드시 한복 한 벌 사!""
"금새 커버리는 데 소용이 있을까......"


옷을 세 차례나 갈아입는 수고를 했지만 이날 요가일래 한국 노래 공연은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기꺼이 딸아이를 좋아하는 피자집으로 데려갔다.


아내 왈: "요가일래 선생님이 다음에는 한국 민요을 부탁했어. 각 민족 노래 시합이 있을 거야."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11. 5. 11. 05:49

이제 한 두 달 후면 리투아니아 학생들은 한 학년을 마친다. 요즘 특히 음악학교 학생들은 각종 공연 등으로 바쁘게 지낸다. 교사들은 학교뿐만 아니라 성당, 고아원 등 학교 이외에서도 공연회를 조직한다.


딸아이 요가일래는 음악학교에서 노래를 전공한다. 어제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캉클레스 앙상블이 성당에서 개최한 연주회를 다녀왔다. 캉클레스의 반주에 따라 요가일래는 리투아니아 노래 "Skrido bitele"(아기벌이 날아갔어)를 불렸다.
 

아래 동영상은 이날 주된 공연을 한 캉클레스 앙상블의 연주를 담고 있다. 리투아니아 전통악기인 캉클레스의 선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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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0. 5. 17. 07:05

일전에 어머니날을 맞아 딸아이 요가일래가 노래 공연을 한 적이 있었다. 최근 그날 공연을 찍은 사진사가 사진을 보내왔다. 리투아니아의 민속옷을 입고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민속악기 캉클레스를 연주하는 사진 모습이 잘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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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클레스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민속 현악기이다. 본체는 단단한 통나무로 만들고, 이를 깎아 그 위에 가문비나무 같은 연한 나무판을 올린다. 그 소리판에 꽃무늬나 별 모양을 내서 구멍을 낸다. 철사나 동물의 내장으로 줄을 만든다. 이 캉클레스 선율에 따라 노래하는 딸아이 요가일래(8살)가 인상적이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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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9. 10. 1.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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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내가 다니는 음악학교 학생들의 연주 영상을 올린다.

먼저 리투아니아 민속악기 오케스트라 영상이다.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민속악기는 바로 캉클레스이다. 본체는 단단한 통나무로 만들고, 이를 깎아 그 위에 가문비나무 같은 연한 나무판을 올린다. 그 소리판에 꽃무늬나 별 모양을 내서 구멍을 낸다. 철사나 동물의 내장으로 줄을 만든다.

앞줄에 앉아서 연주하는 악기가 바로 캉클레스이다.



다음은 바이올린 합주 영상이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5. 1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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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클레스는 리투아니아의 대표적인 민속 현악기이다. 본체는 단단한 통나무로 만들고, 이를 깎아 그 위에 가문비나무 같은 연한 나무판을 올린다. 그 소리판에 꽃무늬나 별 모양을 내서 구멍을 낸다. 철사나 동물의 내장으로 줄을 만든다.

고대 리투아니아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간 날 숲 속에 베어온 나무가 소리를 잘 낸다고 믿었다. 온 집안이 슬퍼할 때 나무가 깊이와 영혼을 빨아들인다. 캉클레스 연주는 곧 명상과 같고 죽음, 질병, 사고로부터 연주인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런지 캉클레스 연주를 들으면 애절함이 가득 찬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한편 캉클레스 수십 대, 수백대가 연주될 때 나오는 소리는 참으로 장엄하기 그지없다. 리투아니아 여인들의 캉클레스 연주를 들어보세요.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