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8. 12. 31. 06:30

지난 11월 한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거의 만나지 못한 친구를 한 명 만났다. 37년만이었다. 오랫 동안 소식을 모르다가 몇 해 전부터 사회교제망으로 서로 연락하고 있다. 몇 차례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짧은 한국 체류 일정으로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많은 세월이 흘렸지만 친구의 옛 모습은 그대로였다. 다음 약속으로 정해진 짧은 시간 안에 그 동안 쌓인 수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기는 불가능했다. 그가 한 이야기 중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이 있었다. 이순의 나이로 접어들 무렵 시절마다 자기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친구들을 손꼽아 보면서 인생을 한번 되돌아 보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2명
초등 시절 2명
고등 시절 2명
대학 시절 2명
그후 시절 2명

참으로 멋진 생각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면서 마음 속으로 나도 한번 되돌아 보았다. 나에게도 과연 그와 같은 친구들이 있었을까... 아쉬운 작별을 하면서 그는 선물 하나를 주었다. 


빌뉴스 집으로 돌아와 포장을 뜯어보니 선물은 바로 도자기 액자였다. 친구가 손으로 직접 글씨를 썼다고 했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기적이 되는 삶...
이를 이루기는 힘들지만 늘 이를 지향하면서 살아야겠다. 그가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는 화두처럼 내 마음 속에 여전히 맴돌고 있다. 한편 훗날 소일거리를 하면서 지낼 때 나도 손글씨를 한번 익혀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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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첫면2015. 2. 9. 06:44

8일 동안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러시아 에스페란토인과 함께 한국을 돌아다녔다. 특히 그는 세계 에스페란토계에서 문학가(시인, 소설가)과 번역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자신이 지은 시를 노래를 부르면서 그 의미를 전달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그는 시인답게 자신의 한국 체험을 짧은 문장에 담아내었다. 아래 에스페란토 문장이다.  

En Koreio 

           Brasiko akra, 

           vodko akva;

En Rusio

           Brasiko dolĉa

           vodko forta.   

번역하면 이렇다.
           한국 배추는 맵고, 술(소주)은 물이요
           러시아 배추(양배추)는 달고, 술(보드카)은 세지요.
 
김치 속 배추는 설명하지도 않아도 외국인들에게는 맵다. 술이라고 나온 소주는 독주를 좋아하는 그에게는 약간 달짝지근한 물맛에 더 가까웠다.

여행지 음식에 잘 적응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는 종종 아래와 같은 질문으로 속내를 드러내었다.
"왜 한국 음식에는 빵이 없지?" (산골에서 4일 머무는 동안 빵은 없었다) 
"왜 한국 사람들은 고기를 안 먹지?" (반찬 속 고기는  있었지만 고기가 주된 음식인 경우는 아직 없었다.)

어느 날 레스토랑에 들렀다. 이 집은 연잎밥과 함박스테이크 두 종류를 제공했다. 나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연잎밥을 선택했다. 찰진 연잎밥이 참 맛있었다.   


연잎밥으로 한국적 별미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설명했지만, 러시아 에스페란토 친구는 '고기'라는 한 마디 설명에 함박스테이크를 선택했다. 함박스테이크를 앞에 두고 소년처럼 좋아하는 순박한 그의 얼굴 웃음이 아직도 눈 앞에 선하다. 



그가 느낀 또 하나의 색다른 음식 문화는 바로 국(수프)이다. 한국 음식에는 일반적으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밥상에 국물요리가 나온다. 이에 반해 유럽에서 수프는 하루 식사 중 가장 든든하게 먹는 끼니(보통 점심)에 나온다. 하루 세 끼 때마다 국을 먹는 일은 그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았다.  



아래는 한국 방문 중 먹은 다양한 국이다. 


▲ 미역국

▲ 홍합국

▲ 매생이국

▲ 대구국


여행 막바지 어느 날 아침 식사에 된장국이 등장했다. 된장국을 바라보면서 그가 던진 한마디가 내 뇌리에 쉽게 각인되었다.

"아, 또 국이야!" 


끼니 때마다 밥만큼이나 국도 외국인들에게는 낯설다. 밥은 먹어야 하지만, 국은 먹지 않을 수 있다. 이번에 그와 함께 다니면서 얻은 소득 중 하나는 앞으로 외국 손님하고 다닐 때에는 적어도 국만큼은 먼저 의향을 물어본 후에 국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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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4. 3. 14. 09:07

근래에 들어와 학교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의 하교 시간이 늦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에 남아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놓아두다가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아내가 수요일 저녁에 한마디했다.

"앞으로는 음악학교에 가지 않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한 시간 정도 늦게 돌아오는 것을 허락한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노는 것도 정말 중요해. 엄마가 이해해줘야지."
"그래도 안 돼. 숙제도 해야 되고, 음악학교에도 가야 되고."

아내의 결정이 쉽게 이해된다. 자녀들이 학교에 남아서 놀다보면 무슨 일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사춘기에 점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목요일이었다. 어머니의 결정을 하루도 안 돼서 잊어버렸는지 딸아이가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3시까지 돌아와야 했다. 딸아이는 3시 조금 후에 돌아오겠다는 문자쪽지를 보냈다. 그런데 시침은 점점 4시로 향해는데 딸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 걱정이 되어서 쪽지를 보냈다. 


답은 이렇다:

내가 빨리 올게. 혼내지마. 친구를 혼내줬어. 엄마한데 내가 그렇게 늦게 왔는거 말하지마.


보통 한국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머니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정다감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깥 양반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회초리를 들고 훈계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어제 목요일 한국어 수업시간에 리투아니아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무서워했나? 어머니를 무서워했나?"

한결같은 대답은 "어머니를 무서워했다."였다. 

"대체로 유럽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무서워할까?"
"그럴 것이다."
"왜 그럴까?"
"그냥 대대로 ㅎㅎㅎ."

유럽 아이들이 부모가 혼내는 방법 중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허리띠로 엉덩이 맞기다.

자, 왜 딸아이는 목요일 늦었을까? 
친구를 혼내주느라 늦었다고 했다. 여기서 혼내주다는 설득하다가 맞는 표현이다. 학교에서 딸아이가 근래 서로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딸(A)을 포함해서 셋(A, B, C)이다. 그런데 B가 C에게 삐져서 사이가 좋지 않다. B는 딸에게 더 이상 C와 같이 놀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수업이 다 끝난 후 학교에 남아서 B를 설득했다.

"결과는?"
"친구(B)가 조금 좋아졌어. 내일 학교에 가서 더 말해야 돼. 그런데 내가 오늘 늦었으니 내일(금요일)은 내가 놀지 않고 수업 끝나고 바로 집에 올게."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에 두 번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딸아이의 부탁대로 어제 늦게 온 것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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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4. 2. 27. 06:46

며칠 일 전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생인 딸아이가 전해준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1. 네가 담배 피웠나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생활지도 선생님이 어느 학생이 담배를 피웠을까를 조사하고 있었다. 답은 누가 바로 직전에 화장실을 다녀왔는가이다. 각 반을 돌면서 누가 최근에 화장실을 사용했는지 탐문 조사를 했다. 그 조사 대상에 딸아이가 걸렸다. 같은 반에 누군가 딸아이가 최근에 화장실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학교 화장실을 꺼리는 딸아이인데 이 날 학교 화장실을 사용했다. 이에 딸아이는 생활지도 선생님에게 불러서 입냄새를 맡게 했다. 결과는 딸아이에게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 사진출처 [facebook.com]

2. 우린 다 사람이잖아
딸아이는 최근 들어 한 해 저학년생인 5학년생들과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고 있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이들과 대화하기를 즐겨한다. 그런데 같은 반 친구들이 이상하게 딸아이를 쳐다본다. 이유는 간단하다. 같은 반 친구들과 놀아야지 학년이 다른 학생들과 노는 것은 맞지 않기 때문이다.

* 요가일래 [사진출처 facebook,com]

딸아이의 이유는 간단하다.
"아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반 친구들이 이상해."
"왜?"
"학년이 다르다고 해서 친구가 도리 수 없다는 것은 잘못되었어. 우리는 사람이니까 친구가 될 수 있어야 돼."
"그래 지위나 연령, 피부, 종교, 민족, 신념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 부담없는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다. 반 친구들이 뭐라고 해도 네가 지금처럼 학년이 다른 학생들과 친구하도록 해. 이유는 네 말처럼  간단하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니까."

이날 따라 딸아이의 "우린 다 사람이잖아"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남녀노소, 지위고하에 얽매여 가장 큰 근본인 "우리 모두 사람이잖아"를 망각한 경우가 참으로 흔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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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3. 12. 30. 08:40

긴 크리스마스와 주말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리투아니아는 국민 대다수(77%)가 로마 가톨릭교를 믿는지라 크리스마스 국경일은 3일이다. 24일, 25일, 26일이 쉬는 날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 3일 휴가를 보냈을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휴가를 보낸 가족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집처럼 보냈을 것이다.

24일은 가족과 음식 만들기 

크리스마스 전야 저녁 식사는 그야말로 만찬이다. 이날은 생선을 제외한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다. 만찬 식탁에는 12가지 음식[관련글 읽기]이 올라온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주부 한 명이 일하기에는 힘이 든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도와서 음식을 준비한다. 

온 가족이 식탁에서 기도한 후 미사빵을 나눠먹는다. 이날은 편식하지 않고 12가지 음식을 고르게 먹는다. 식탁에는 혹시 방문할 사람을 위해 빈 의자, 빈 접시와 수저를 마련한다. 식사 후 식탁에 둘러앉아 지난 1년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찬송가도 부른다. 이날은 식사 후에도 식탁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는 집도 있다. 그리고 성당에서 열리는 밤 미사에 참가한다. 

 


25일은 가족과 함께

25일 성당 미사에도 참가한다. 이날은 가급적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날만큼 우리 가족은 모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공동 놀이를 하기로 했다. 유럽 지도 놀이와 화투 놀이를 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함께 했던 부엌이나 거실에서 식구들은 자기 방으로 한명씩 사라졌다. 낮에는 "오늘은 함께 놀아야 돼"라고 책망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함께 놀기가 이젠 지루해"에 공감도가 높아져 갔다.

 

26일은 친구들과 함께

휴가 3일째는 주로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초대에 응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척 부부 한 쌍과 친구 부부 한 쌍, 그리고 이들의 딸과 남자친구를 초대했다. 어른이 모두 8명이었고, 나라는 4개국(한국, 리투아니아, 이집트, 스페인)이었다. 친척의 남편이 이집트 사람이고, 친구 딸의 남자친구가 스페인 사람이다.

먼저 탁구 놀이로 시작했다. 이어 찬 음식을 먹으면서 맥주나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따뜻한 음식으로는 닭볶음탕을 준비했다. 식탁에서 가장 웃음을 선사한 것은 혀 꼬이게 하는 각 나라말의 문장이었다. 

외국에서 흔히 접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현지인들이 놀이삼아 질문한다. "너, 이 (리투아니아어) 문장을 따라할 수 있어? 한번 해봐! 해봐!"
잘하든 못하든 외국인의 시도에 현지인의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런 경우에 가장 좋은 대응책은 이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내가 말하는 (한국어) 문장을 한번 따라해봐!"

 

혀 꼬이게 하는 문장

이날 모임에 나온 각 나라말 중 혀 꼬이게 하는 문장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순서는 아랍어, 리투아니아어, 스페인어이다. 

 


제일 나중에 한국어 차례였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았던 문장을 소개했다.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 


이 문장에 모두가 대장대소했다. 이 한국어 문장이 4개 언어 중 가장 따라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낙점되었다. 이런 즐거움과 유쾌함 속에 모처럼 빌뉴스 우리집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였다. 그야말로 "즐거운 성탄절"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1. 23. 08:08

금요일은 초등학교 딸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준비를 도와주는 날이다.

"아빠, 나 오늘 집에 늦게 올 거야."
"왜?"
"친구들하고 같이 시내로 놀러 가기로 했어."

학년이 높아갈 수록 특히 6학년생이 된 후부터는 집에 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예전에는 학교 마지막 수업이 끝난 후 20분 안에 꼬박꼬박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제는 딸아이에게 보내는 쪽지의 대부분 내용이 아래와 같다. 빨리 집에 와야지......


금요일이라 친구들과 시내 중심가로 가서 감자튀김과 햄버거도 사먹고 놀다가 오겠다고 한다.

"그러면 먼저 집에 와서 책가방을 놓고 가. 무겁잖아."
"아니야, 오늘은 내가 가방을 가볍게 했어. 한번 들어봐."
"그래도 집에 놓고 놀러 가."
"아니야. 친구들도 다 책가방을 가지고 가."
"우리 집 옆을 지나가야 시내 중심가로 갈 수 있잖아."
"책가방 안에 지갑도 있어."
"책가방 안에 지갑을 넣어두면 위험하잖아."
"아빠, 내 친구들 도둑이 아니야."

이 말에 "그럼, 알았다. 너 편한 대로 해."라고 대화를 끝냈다. 

30-40여년 전 학교 다닐 때 종종 누군가 책가방 속에 넣어둔 물건을 잊어버려 훔친 이가 나올 때까지 학급 전체가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 꿇고 벌을 선 적이 떠올랐다.

딸아이의 믿음대로 요즈음 그런 일들이 일어나질 않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7. 29. 07:10

지난 주말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접경 지대 푼스크(Puńsk, Punskas)를 다녀왔다. 폴란드 영토인 푼스크는 인구가 천명이고, 80% 이상이 리투아니아인이다. 일명 폴란드내 리투아니아인 수도로 불린다. 

바르샤바에 살고 있는 친구의 처가가 바로 이 동네에 있다. 우리가 바르샤바까지 가기에는 멀어서 그의 처가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는 모처럼 방문한 우리를 이 지역의 유명 관광명소로 안내했다. 그 중 하나가 폴란드에서 가장 높은 철도 다리로 알려진 스탄치키(Stańczyki)이다. 이 마을은 2차 대전까지 독일(동프로이센)에 속했다.


다리의 총 길이는 200미터, 높이는 36미터, 다섯 개의 아치로 구성되어 있다. 각 아치의 길이는 15미터이다. 다리는 두 개로 되어 있는데 북쪽 다리는 1912-1914년, 남쪽 다리는 1923-1926년에 세워졌다. 지금은 철도가 폐쇄되었고, 관광상품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리 위를 걸어보고 주변을 산책하는 데 입장료가 4즐로티(약 1500원)이다. 


이날 날씨가 몹시 덥고 또한 36미터 위로 올라가야 하므로 초등학생 딸아이 요가일래가 몹시 힘들어했다. 그런데 갑자기 딸아이는 재미난 발상 하나를 떠올렸다. 땋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생기있게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게으름이나 핑계를 찾아서 다리 위로 올라가지 않겠다고 딸아이가 선언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이렇게 가쁜한 걸음을 해준 딸아이가 고마웠다. 이것이 기끼어 명소를 안내하고 있는 폴란드 친구의 성의에 보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땋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가는 딸아이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마치 땋은 머리가 기관차가 되어서 더위에 지친 딸아이의 몸믈 견인해 철도 다리를 건너게 해주는 듯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6. 14. 05:49

낯선 지방이나 나라에 벗이 있어 만나면 참으로 기쁘다. 일전에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리투아니아 빌뉴스로 내려오는 국제선 버스를 기다리면서 약 5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혼자 사진도 찍으면서 탈린 구시가지에 산책할까하다가 그 동안 몇 차례 에스페란토 행사에서 만나서 이름 정도 알고 지내던 에스토니아인을 한번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먼저 며칠 전 페이스북으로 "모월 모일 모시에 시간이 있으니 괜찮다면 만나고 싶다"는 쪽지를 남겼다. "나도 시간이 되니 꼭 만나고 싶다. 내 전화는 다음과 같다"라고 금방 답이 왔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전화를 하니 곧 내가 있는 곳으로 차로 올 테니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라고 했다.

파란색 현대차가 다가왔다. 안에는 덩치가 큰 바로 그 지인이 타고 있었다. 악수를 하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단지 여러 사람들 사이에 조금 알고 지내는 사이인테 우리는 만나자마자 오랜 친구가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 외국인이 가기 어려운 곳으로 구경시켜주려고 하는 데 어때?"
"나야 좋지."

그는 소련 시대 해군이 주둔해 통행이 금지되었던 곳으로 안내했다. 지금은 탈린 시민들이 해수욕이나 일광욕을 즐겨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탈린 구시가지의 또 다른 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화강암이 해변 바다 위에 우뚝 솟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살고 있는 리투아니아 해변에서는 바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사방 천지가 모두 분말가루같은 모래뿐이기 때문이다.


친구의 여러 이야기 중 몇 가지가 관광안내사(가이드) 일을 하고 있는 내 머리 속에 속속 잘 들어왔다. 

- 탈린은 스웨덴의 스톡홀름, 핀란드의 헬싱키,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형성된 도시이다.
- 탈린은 동쪽 내륙에서 나오는 왁스를 수출하고, 발트해를 통해 소금을 수입하던 전초기지였다.
- 독일 기사단이나 스웨덴이 지배하던 시절 지배계층은 에스토니아인들과 결혼하지 않았지만, 제정 러시아 시대 러시아인들은 토착인들과 결혼했다. 그래서 에스토니아인의 DNA는 러시아인에 더 많이 닮았다.
- 에스토니아 북부 지방은 석회암이 대부분이고, 저기 있는 화강암은 빙하가 녹으면서 스칸디나비아에서 흘러내려온 것이다.


그가 타고온 현대차 이야기다.

"현대차에 만족하나?"
"이 차는 관용차이다. 매년 3년마다 우리 부처에서 새로운 차로 교체해준다. 내 개인차도 한국 자동차 회사가 만든 기아차이다."
"정말? 어때?"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 다양차를 운전해보았는데 한국차도 이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아주 만족한다. 하지만 이제 한국차라는 데에 별다른 큰 의미가 없다."
"왜?"
"알다시피 자동차를 비롯한 전자제품 등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된 부품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한국차도 사실 100% 한국차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의 부정적인 선입견만을 고집해 그 특정 나라의 차를 평가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나도 동의한다. 그래도 네가 한국인인 나를 한국차로 구경시켜주니 기분은 좋다. 그런 뜻에서 오늘 저녁식사는 내가 쏘겠다."


그는 내가 손님이라면서 극구 자기가 내겠다고 했지만, 오랜 친구처럼 나를 맞아준 데에 대한 고마움으로 내가 먼저 지갑을 열어 계산했다. 우리 둘이는 서로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게 해준 국제어 에스페란토의 존재와 위력에 대해 새삼스럽게 감탄하면서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3. 29. 09:51

현재 리투아니아 페이스북 사용자는 114만 명이다. 이는 총인구의 32%, 온라인 인구의 55%에 해당한다. 한국은 830만 명으로 인구의 17%, 온라인 인구의 20%이다. 비율로 따지면 리투아니아가 사용률에서 한국보다 더 앞선다. 가입 연령이 제한되어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들도 나이를 높여서 흔히 사용한다. 

페이스북 친구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지는 않는다. 대신 친구 수락 신청을 가끔 받게 되는데 그 사람의 신상을 유심히 살피지 않고 쉽게 수락한다. 그런데 최근 어떤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는데 정중히 거절당했다.

페이스북 에스페란토 동아리가 있다. 이 동아리 운영자가 에스페란토 글자가 써진 수건으로 덮고 있는 딸아이 사진을 찾아 대문에 걸어놓았다. 이 사진이 회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독일인 한 사람이 다문화 가정의 아이인 딸아이의 언어능력에 호의적으로 궁금해했다. 서너 차례 댓글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이 정도라면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해 <친구 더하기> 단추를 눌렀다.


얼마 후 답장이 왔다.  뜻밖의 내용에 깜짝 놀랐다. 


"페이스북 친구에 대해: 미안하지만  인터넷이 아니라 현실 세상에 있는 친구나 친척만을 페이스북 친구로 받아들인다. "가상 친구"를 안 받지만, 너의 편지를 받아보고 싶다."

새로운 사람들을 알팍하게 알고 지내는 것보다 기존부터 얼굴을 맞대고 알고지내는 친척이나 친구들과 페이스북을 통해 빠른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정의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이 더 현명한 일임을 일깨워주는 답장이었다. 

이 사람 덕분에 앞으로는 페이스북 친구 신청이나 수락을 보다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 3. 25. 08:33

낮 기온이 영하 5도, 밤 기온이 영하 10도이다. 북반구 도처에는 봄이 오고 있지만, 북동유럽 리투아니아에는 여전히 겨울이다. 벌써 3월 난방비 청구서가 걱정스럽다. 보통 3월이면 영상의 날씨가 비교적 많아서 1월과 2월에 비해 난방비가 적게 나온다. 

모처럼 현지인 친구 부부를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지난 가을 이후 서로가 바빠 만나지를 못했다. 식사후 그의 집에서 사우나를 하기로 했다. 그의 집 사우나는 늘 기대된다. 대중 사우나에서는 사우나에 들어가 땀을 내는 수준이지만, 그의 집 사우나는 종교 의식에 가깝다. 

▲ 친구집 사우나 - 어른 7-9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

▲ 3월 하순 눈이 녹지 않는 날씨에 사우나는 여전히 제격이다. 

주인이 종을 울리면 일제히 손님들이 사우나로 들어간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바가지 물에 각자 손가락을 넣고 소원을 비는 것이다. 첫 번째 사우나는 다양한 나뭇가지 뭉치(리투아니아어로 Vanta, 반타)로 한다. 주인이 손님들 앞에서 뭉치로 바람을 일으킨다. 더운 열기가 몸으로 향가고 나무별 독특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날 바람을 일으킨 건조시칸 나무 뭉치는 전나무, 보리수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 순이다.

▲ 사우나실 입구에 나뭇가지 뭉치가 주렁주렁 걸려있다.

▲ 리투아니아 사우나 필수품 중 하나인 나뭇가지 뭉치. 전나무(위 왼쪽), 보리수나무(위 오른쪽), 단풍나무(밑 왼쪽), 자작나무(밑 오른쪽)

▲ 나뭇가지 뭉치를 찬물에 재워놓는다. 이 뭉치로 바람을 일으키거나 몸을 두드린다.

두 번째 사우나는 소금이다. 주인이 통 두 개를 가지고 소금을 위에서 아래로 붓는다. 소금에서 나오는 짠내가 스며든 공기를 깊숙히 들어마신다. 사우나 사이에는 휴식 공간에서 맥주나 음료수, 간식 등을 먹으면서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이때 사우나실에 걸어놓은 달궈진 돌 주머니를 발 밑에 놓는다. 

▲ 사우나실에 달궈진 돌 주머니는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발을 데워주고 있다. 

세 번째 사우나는 주인이 긴 천으로 손님들을 향해 바람을 일으킨다. 그 열기는 참기가 어렵다. 네 번째 사우나는 사우나 안에서 나뭇가지 뭉치나 비누 혹은 막대기 뭉치로 안마를 받는 일이다. 매번 각각 15-20분 정도로 사우나실에 머문다. 

▲  친구 아내가 철 막대기로 머리를 안마하고 있다.


이 친구 집에서 사우나를 할 때마다 놀라는 일은 다름 아닌 친구의 헌신이다. 자신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손님들의 만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마치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성직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막대기 뭉치로 전신 안마를 해주고 있는 친구. 영상 참조

아래는 친구의 헌신을 엿볼 수 있는 영상이다. 막대기 뭉치로 안마한다. 20분에 걸쳐 그는 한번도 쉼없이 정성스럽게 이웃에게 이 안마를 해주고 있다.  


이날 함께 사우나를 한 일행은 이런 사우나에 익숙한 사람들은 절대로 대중 사우나에서 사우나를 즐길 수가 없다고 한결같이 말했다. 

"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다음에 사우나하러 오기가 주저된다."
"별 말을 다하네.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의 기쁨이야. 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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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2. 10. 2. 06:11

리투아니아 국내 대학을 다녀라는 조언에도 큰 딸 마르티나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영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단 조건은 하나, 주거비는 부모가 도와주되, 의식생활비는 아르바이트해서 해결한다. 대학 1학년 때 안일한 생각으로 학년이 시작할 무렵 영국으로 가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 2학년 개학 훨씬 전부터 영국으로 돌아갔다.

어려웠지만 다행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아침 9시에서 오후 5시까지 운영되는 식당이다. 1시간당 임금이 5파운드이다. 이 정도면 힘들더라도 생활비 걱정없이 공부할 수 있다고 콧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르바이트 식당 사장의 행동이 부담스러웠다.

꽃부터 시작해서 적지 않은 선물, 레스토랑 식사 초대 공세로 마르티나의 환심을 사고자 했다. 자기 집으로 초대까지 했다. 만약의 상황을 우려해 마르티나는 이런 경우 항상 리투아니아 여자친구와 동행했다. 급기야 젊은 사장은 "우리 사귀자"라고 진지하게 고백했다. 마르티나는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불안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장으로부터 출근하라는 전화도 없고, 문자쪽지도 없었다. 그 전에는 정식 직원의 결근시나 휴일에 항상 이렇게 마르티나를 불렀다. 며칠이 지난 후 마르티나는 직접 여러 번 전화했으나 의도적으로 받지 않았고, 또한 많은 문자쪽지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다. 찾아가도 만나주지를 않았다. 이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했다. 


마르티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바로 사장과 정면 돌파로 단판을 짓기로 했다. 사귀자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이렇게 해고당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억울했다. 그래서 호기를 기다렸다. 며칠 절 사장의 생일이었다. 마르티나는 집에서 사과케익을 직접 만들었다. 식당 문을 닫는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갔다.

사장은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면서 식당문을 열어주지 않고 문전박대했다.

"아직, 식당 안에 내 신발이 있다. 신발을 찾으로 왔으니 제발 문 좀 열어."
"그래, 신발만 챙겨 빨리 나가."

거절로 헤어진 뒤 사장과 처음 얼굴을 맞대었다. 그리고 가방에서 사과케익을 꺼내 생일 선물이라고 건냈다. 사장의 심리가 약간 누그러지자 대화를 시도했다.

"사귀자를 거절해도 사장과 알바생으로 그대로 남고 싶다."
"너를 보면 내 감정을 억제하기가 힘든다. 그래서 아예 다시 보고 싶지가 않다."
"나도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하고, 사장도 새 아르바이트생을 찾아야 하는데 이는 서로에게 시간 낭비다. 나는 어느 정도 벌써 숙련되었는데 새로운 사람이 오면 다시 일을 배워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감정 잘 다스리고 내 일자리를 그대로 두는 것이 좋지 않나?"
"그럼, 크리스마스 때까지 다시 일하는 것으로 하자. 그때 가서도 내 감정이 완전히 아물지 않는다면 진짜 해고다."
"동의한다."

이렇게 마르티나는 다시 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사장한테 필요 이상의 웃음이나 친절을 베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누구나 처음 일자리를 얻으면 사장 마음에 들도록 행동거지를 조심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 더 홀가분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아뭏든 마르티나의 유학생활이 별탈없이 잘 진행되길 한가위를 맞아 또 다시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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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2. 3. 14. 06:44

지난주 내내 집을 떠나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아내와 딸아이가 전해주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아이 요가일래는 화요일을 몹시 기다린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 집에 놀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요일은 집으로 곧장 돌아와서 밥을 먹고 음악학교나 발레 수업을 받으러 간다.

화요일 학교 친구인 시모나 집에 놀러갔다. 시모나 할머니가 점심을 차려주어서 시모나와 함께 먹었다. 시모나는 말끔하게 그릇을 다 비웠다. 그런데 요가일래는 다 먹지를 못했다. 참고로 요가일래는 음식을 가리고 또한 한꺼번에 많이 먹지 않는다. 조금씩 자주 먹는다. 

두 아이는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가서 놀고 있었다. 할머니가 부엌에 와서 식탁 그릇을 보면서 물었다. 

"누가 이렇게 음식을 남겼니?"

요가일래는 미안하고 불편한 생각이 들었다. 머뭇거리고 있는 순간 시모나가 큰 소리로 답했다.

"할머니, 제가 먹은 그릇이예요."

요가일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순간 시모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난처함으로부터 친구를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주는 시모나로부터 큰 감동을 받았다. 물론 거짓말하는 자체가 옳은 일은 아니다. 자기 집에 놀러온 친구를 배려해주는 마음이 거짓말보다 더 돋보인다.

이렇게 친구의 허물을 감싸준 시모나!
초딩 어린이지만 참 대견스럽다.  

* 요가일래의 또 다른 친구 밀다. 요가일래의 TV 노래 경연 때 밀다는 온 가족과 함께 정성스럽게 응원 플래카드를 만들어 들고 왔다.

"요가일래, 너는 정말 좋은 친구를 두었네. 시모나로부터 큰 가르침을 받았다. 시모나보다 먼저 솔직하게 대답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친구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은 시모나로부터 배워야 한다. 너도 친구를 위해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도록 해라."
"아빠, 노력할게."


이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친구를 잘 두어야 한다.

* 최근글: 한복 입고 외국 TV 노래 경연하는 요가일래 응원 투표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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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09. 11. 22. 06:32

집 근처에 있는 한 광장에는 매주 토요일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 날씨가 좋은 여름철엔 아침 산책길에 종종 들러곤 한다. 굳이 무엇을 사고자 하는 것보다는 어떤 옛 물건들이 있나 궁금하다. 고서, 동전, 기념뱃지, 은수저, 차주전차, 가구, 농기구 등등 다양하다. 어제 낮 바로 이 골동품 시장에 있다면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시간 있으면 우리 집에 들러서 차라도 마시고 갈 것을 권했다.

"골동품에 관심 있어 갔니?"
"돈이 부족해 뭐 좀 팔아보려고."
"뭔데?"
"은숟가락."


그는 가방에서 은숟가락 두 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하나는 차숟가락, 다른 하나는 국숟가락이었다. 가격이 궁금했다. 적정가격은 차숟가락은 50리타스(2만5천원), 국숟가락은 100리타스(5만원)라고 했다.

"자네 같은 외국인이 오면 가격은 2-3배로 뛴다."
"그러니 내가 골동품 시장을 가지를 않는다. 불황인데 골동품 가격도 떨어지지 않았나?"
"세계 어디든지 언제라도 은은 은이다." (불황에 관계없이 은은 은값을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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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골동품 시장

왜 골동품을 간직하지 않고 팔려고 하느냐라는 물음이 이어졌다. 그는 두 직장을 동시에 다니고 있다. 하나는 부동산 중개업소이고, 다른 하나는 보험회사이다. 부동산 매매 수수료가 수입인데 불황으로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버려 거래가 사라진 상태이다. 그러니 수입이 없다. 보험회사에서는 적은 기본금에 실적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두 달 동안 실적이 없으면 이 기본금마저도 받지를 못한다. 실직자는 늘어나고, 월급은 자꾸만 줄어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가 직장을 가진 소련시대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검문해서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곧 일자리를 주는 시대였다. 적어도 걱정 없이 먹을 빵은 있었다. 먹을 것을 찾아서 이 쓰레기통 저 쓰레기통을 전전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부자는 없었지만, 우리 같은 평민들은 모두가 비슷한 월급에 비슷비슷하게 마음 편하게 살았다.  

"그렇다면 공산당에 표를 찍을 거니?"
"과거의 좋은 것은 버리지 말고 그대로 이어가자는 것이다."


자유와 경쟁이 주를 이루는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 모두가 직장과 기본적인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았던 소련 시대의 요소를 함께 구현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돈이 부족해 은숟가락을 팔아야 하는 친구에게 어제는 따뜻한 차를 대접했지만, 다음 번에 오면 따뜻한 밥을 대접해주고 싶다.

* 관련글: 불황 속 가게로 손님 끄는 법
               경제 불황엔 이런 노래가 뜬다
* 최근글: 시청자를 매료시킨 8살 아이의 춤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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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 11. 17. 18:42

몇 해 동안 소식이 없던 친구가 지난 주말 편지를 보내왔다. 이 친구는 독일인이고,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통해 알게 되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알려준 사진모음에 들어가 보았다.

한국의 가을 찍은 사진이 쌓인 낙엽처럼 듬뿍 있었다. 노랗디노란 은행잎, 빨갛디빨간 단풍잎 사진을 보자 고향에 대한 향수가 한없이 울컥 쏟아져 나왔다. 그 아름다움은 도저히 이곳 리투아니아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의 허락을 얻어 사진을 올린다. 앞으로 기회 되는 대로 "초유스의 동유럽" 블로그를 통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에스페란토 친구들의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함께 올리고자 한다. 독일인 친구 비르케(Birke)가 찍은 한국의 가을풍경 더 많은 사진들을 그의 ipernity.com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Jen mi aperigas fotojn de Birke pri korea aŭtuno. Ŝi loĝas en Koreio. Dankon, Birke, pro viaj foto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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