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 Viktor Tsoi, Viktor Coj, 최빅토르, 빅토르 최)가 사망한 지 30주년을 맞는 해이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 최고 소비에트(최고 의결기구)는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모든 15개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소련을 해체했다. 아직은 소련이던 시절 1990년 11월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체코 프라하를 출발해 우크라이나를 거쳐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다. 이때 만난 현지인들로부터 많이 받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혹시 빅토로 초이를 알아?"
"빅토르 초이?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아버지가 한국인이야. 소련에서 아주 유명한 가수지."
"그렇다면 초이는 나와 같은 성(姓)인 최일게다. 로마자로 보통 choi(tsoi)로 쓰니까."
"우와 성이 같다니 축하해."

나중에 그에 대해 좀 더 알아보니 초이(Цой)는 한국인 성 최(崔)의 러시아어식 표기다. 공교롭게도 그는 나와 같은 성에다가 같은 해에 태어났다. 

빅토르 초이는 아버지 고려인 로베르트와 어머니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발렌티나 사이에 1962년 6월 21일 레닌그라드(소련 붕괴 후 상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어머니가 교사로 일하던 학교를 다녔고 1977년 예술중학교를 졸업했다. 1977년 세로프(Serov) 예술대학에 입학했으나 얼마 후 학업성적 부진으로 퇴학당했다. 이후 기술대학에서 목각술을 배웠다. 어릴 때부터 그림, 조각, 노래 등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17세에 작곡을 시작했다. 1970-80년대 당시 소련에서 록음악 활동은 주로 레닌그라드에서 이뤄졌다. 모스크바 팝송 가수들은 소련 정부의 호의를 받은 반면에 록음악은 저항음악으로 간주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록음악가들과 교류하면서 활발한 작곡과 연주 활동을 했다. 주로 레닌그라드 거리의 삶을 노래에 담았다. 

1981년 여름 알렉세이 리빈(Алексей Рыбин)과 올레그 발린스키(Олег Валинский)와 함께 "가린과 쌍곡선"(Гарин и Гиперболоиды) 그룹을 결성했다. 얼마 후 올레그가 군입대를 하자 1982년 봄 그룹명을 "키노"(Кино, 극장)로 변경하고 첫 앨범 45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45는 앨범 재생시간이 45분이라는 데서 연유한다. 이 앨범에 실린 노래 "Elektrichka"(전차, 교외통근전차)의 가사를 한국어로 한번 번역해봤다.

어제 늦게 잠들고 오늘 일찍 일어났어.
어제 늦게 잠들고 거의 자지도 못했어.
아마 아침에 의사한테 갔어야 했는데
지금 기차가 내 가고 싶지 않은 데로 날 데려가.

기차가 내 가고 싶지 않은 데로 날 데려가.

객실입구는 춥기도 하고 다소 따뜻하네.
객실입구는 연기도 나고 다소 상큼하네. 
왜 난 침묵해, 왜 난 소리치지 않아? 난 침묵해.

기차가 내 가고 싶지 않은 데로 날 데려가. 
     

이 가사에서 그는 개인이 원하지 않은 곳으로 전차가 끌고 가는 소련체제의 부조리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곧 젊은이들에게 자유와 변화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고 큰 인기를 끌었다. 곧 소련 당국에 의해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공연이 펼쳐졌고 앨범은 소련 전역으로 널리 펴졌다.      

1985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의 개혁과 개방 정책으로 1986년부터 다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전국 순회공연까지 돌입했다. 1990년 6월 24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2018년 월드컵 축구경기장, 구명칭 레닌 스타디움)에서 열린 키노의 마지막 순회공연에는 6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1988년 출시된 키노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 "혈액형"(Группа Крови)은 키노 앨범 중 국내외로부터 가장 큰 인기를 얻었다. 타이틀곡 혈액형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판하는 노래로 꼽힌다. 1986년부터 "휴가 끝", "아사", "바늘" 등에서 영화배우로도 활약했다.

모스크바 공연을 마친 후 프랑스에서 새 앨범을 녹음하기 전 키노 그룹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빅토르는 라트비아 최고의 여름 휴양지 유르말라 근교 플리엔치엠스(Plieņciems) 마을에 있는 집을 임대해 친구들과 여름 휴가를 보냈다. 이곳에서 그의 생애 마지막 노래가 되어 버린 "뻐꾸기"(Кукушка)가 만들졌고 데모녹음되었다. 이때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990년 8월 15일 새벽 5시 승용차 모스크비치-2141를 혼자 몰고 인근 숲속 호수로 낚시를 떠났다. 이날은 해가 쨍쨍한 맑은 날씨였다. 대낮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일어났다. 유르말라 슬로카-탈시(Jurmala Sloka-Talsi) 도로 35km 지점에서 11시 28분 반대편 차선에서 마주오는 빈 버스(Ikarus-250, 운전사 Janis Karlovich Fibex)와 충돌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관련 참고기사]. 교통경찰의 공식조사에 따르면 빅토로의 졸음운전 사고였다.   

그의 죽음에는 음모론도 있다. 그는 변화의 상징이었다. 당시 리투아니아는 1990년 3월 11일, 라트비아는 1990년 5월 4일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소련 공산체제의 붕괴를 막고자 했던 강경보수파 세력에 의해 그가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8월 19월 레닌그라드 보고슬로브스키 묘지(Богословский кладбище)에서 빅토르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이때 5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추모했다. 충격으로 그를 따라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키노의 "최후의 영웅"(Последний герой) 앨범 타이틀처럼 그는 당시 세대에게 최후의 영웅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사망한 지 30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추모 모임 등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9월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서 그의 추모벽을 보면서 그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한편 그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지점(구글 좌표 57.1154804, 23.1857539)을 직접 다녀왔다.


유르말라 마요리 기차역 앞 주차장을 떠나 128번 도로를 따라 탈시(Talsi)로 향해 간다. 44km 되는 지점이 바로 그 위치다. 


포장된 시골 도로가 나온다. 왕복 2차선 도로다. 도로 양옆으로 소나무, 자작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한적하기 짝이 없는 도로다. 위급시 도로 바깥으로 운전대를 돌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저 앞 완만하게 굽어지는 곳을 벗어나면 곧 사망지점이 나온다.



사망지점에는 그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Viktors Cojs는 빅토르 초이의 라트비아어식 표기다.


구소련 전역에서 팬들이 성금을 모아서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지금의 모습은 2018년 12월에 새롭게 단장된 것이다. 




팬들이 이곳을 방문해 담배 한 개비씩을 그에게 바치면서 그의 노래 "담배 한 갑"을 떠올렸을 것이다. 갑자기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가사 중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가 생각난다. 


기념비 앞에는 사진, 촛불, 사탕, 담배, 인형, 음료수, 초콜릿 등이 놓여 있다. 이렇게 음식 등을 보고 있으니 한국의 성묘풍습이 떠오른다.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이 눈길을 끈다.

빅토르 팬들의 좌우명 "Цой жив!"(초이는 살아있다!)를 새삼스럽게 확인해본다.



빅토르 반신상이다. 


사망지점을 영상으로도 담아봤다. 라트비아 빅토르 팬클럽 유튜브 채널(35km.lv)에서 더 많은 관련 영상을 볼 수 있다. 나도 이제 빅토르 초이와 친해져 봐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1. 10. 9. 06:00

세계적 유명 가수 레이디 가가는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스티브 잡스. 하루 종일 사과만 먹을 게요"라고 자신의 트위터에 애도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사망에 슬퍼하고 있다. 이는 그가 공동 창업한 애플이 세계 사람들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그의 장례식은 장소와 시간이 공개되지 않았고 몇몇 사람들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IT 혁명이라는 엄청나게 큰 일을 해놓고서도 조용하고 검소하게 생을 마감한 잡스가 가슴에 와닿는다. 세계 여러 나라 광고회사 등이 만든 잡스와의 작별을 위한 30가지 애도 로고는 세계인들의 추모 열기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 Jonathan Mak
▲ 광고 회사: Maksim Fulltime, Guayaquil (에쿠아도르)
▲ 광고 회사: Redlime (스리랑카)
▲ 광고 회사: Bang In The Middle, Gurgaon (인도)
▲ 광고 회사: agenta agenturgruppe, Münster, Hamburg, Berlin (독일)
▲ 광고 회사: DDB Cairo (이집트)
▲ 광고 회사: DDB Cairo (이집트)
▲ 광고 회사: DDB Cairo (이집트)
▲ 광고 회사: Erwin Penland (미국)
▲ 광고 회사: The Lab Ideas
▲ Odysseas Galinos- Paparounis
▲ 광고 회사: DDB, Dubai (아랍에미레이트)
▲ 광고 회사: Euro RSCG 360, Lion (프랑스)
▲ Craig Fitzgerald
▲ Eduardo Rodriguez 

▲ 광고 회사: Extra Credit Projects, Grand Rapids (미국) 
▲ 광고 회사: 과테말라, Mangomedia, Ciudad de Guatemala 
▲ 광고 회사: Federico Mauro,Rzym (이탈리아)
▲ 광고 회사: San José (코스타리카)
▲ 광고 회사: Publicis, Montreal (카나다) 
▲ 광고 회사: Raineri Design (이탈리아)
▲ 광고 회사: AUFBRUCH, Düsseldorf (독일)
▲ 광고 회사: Agency4e7, Wiedeń (오스트리아)
▲  Avrett Free Ginsberg
▲ Daniel Rehpani
▲ 광고 회사: Periscope, Minneapolis, Minnesota (미국)
▲ Enrique Espinoza
▲ 
▲ 광고 회사: ACTIF Advertising Agency (코스타리카)

역시 광고 회사의 애도법은 독창적이고 기발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 3. 14. 08:31

지진, 쓰나미, 원전 폭발에 이어 화산 폭발까지 겪고 있는 일본 국민들을 위해 전 세계가 애도하고 있다. 유럽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이에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 대사관을 찾아 담장에 촛불을 밝히고 있다. 모처럼 햇볕을 받으면서 산책하고 있었지만, 내내 마음 한 구석은 일본이 자리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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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지역 최근 모습
* 최근글: 폴란드판 개똥녀 봉변 - 살아보면 이해 간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0. 4. 14. 15:52

오늘은 폴란드 대통령궁 애도현장을 다녀온 현지인 두 에스페란토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이들은 최근 수많은 사람들이 꽃과 촛불을 가지고 모인 바르샤바 대통령궁을 다녀온 온 후 각자 블로그에 글과 사진을 올려서 현장소식을 전세계 친구들에게 전했다.

1. 카메라를 휴대했지만 차마 찍울 수가 없었다는 친구 이렉

이렉(Irek)이 쓴 블로그 글에 따르면 그는 자기 주변에 흥미로운 일이 생기면 늘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4월 10일 바르샤바 중심가에 위치한 대통령궁을 가면서 그는 호주머니 속에 작은 카메라를 휴대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니 사진을 찍고 싶지가 않았다.

대통령궁을 비롯한 주변 거리를 가득 메운 수천 명의 사람들, 수천 송이의 꽃들, 수천 개의 촛불...... 하지만 마치 도시에 사람들이 텅비어 있는 듯이 너무나 조용했다. 군중의 신비한 고요함이 그의 가슴에 와닿았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와 유사한 것을 보지 못했고, 겪어보지 못했다. 그는 마음 속에 담기로 하고 호주머니 속 카메라를 꺼내지를 않았다. 이렇게 그는 일명 인증샷 하나도 찍지 않았다.

이렉은 카친스키의 우파적 성향으로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날 이렉의 한 친구가 "폴란드 사람들이 카친스키를 좋아하지 않는데 왜 그토록 깊이 애도하느냐?"고 물었다. 이렉은 "폴란드 국민 전체는 어떤 누구에게도 그런 비극적인 운명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야기 출처 source link)

2. 카메라로 찍었지만 칼라 대신 모두 흑백으로 올린 친구 마쳭

바르샤바에 살고 있는 또 한 친구 마쳭(Maciek)도 4월 11일 카메라를 휴대하고 바르샤바 중심가로 행했다. 그는 이렉과는 달리 현장을 촬영했다. 그리고 여러 사진들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 방문객들에게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그는 블로그에 올리면서 모든 사진들을 흑백처리를 했다. 지금 폴란드의 많은 웹사이트들은 칼라 사진 대신에 흑백 사진을 게재함으로써 사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다. 이날 친구 마쳭이 찍은 사진들을 아래에 올린다. (사진촬영: Maciek; 사진출처 images sourc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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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차가 바르샤바 중심가 대통령궁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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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둘 다 카메라를 휴대했지만 한 사람은 차마 찍을 수가 없었다. 대신 이날의 느낌을 블로그에 글로 올렸다. 또 한 사람은 찍었지만 칼라 사진 대신 흑백 사진으로 애도현장을 세상에 알렸다. 소식을 전한 두 친구의 사진과 글이 고마웠고, 고인들의 명복을 거듭 빈다.

* 최근글: 폴란드 참사로 3일간 조기 다는 리투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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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10. 4. 13.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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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비행기 참사로 큰 곤경에 빠진 나라 중 한 나라가 바로 러시아이다. 설상가상으로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발다스 아담쿠스 전직 대통령과 함께 러시아에 맞서 전쟁을 치뤈 그루지야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왔다. 러시아의 소극적인 대응에도 불구하고 카친스키 대통령은 '카틴의 숲 사건'을 세계에 널리 알리도록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평소 러시아 정부를 비판해온 카친스키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총리의 초대를 받지 못했고, 개별적으로 추모식에 참석하려다가 참변을 당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부는 이번 사건의 해결에 최대한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투아니아 언론은 "러시아가 적극적이고 성의있게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라는 폴란드 현지 기자들의 말을 전했다.

러시아는 12일 추모일을 선포하고 조기를 달거나 국기에 추모의 검은띠를 붙였다. 스웨덴 일간지 기자이자 에스페란토 친구인 칼레 크니빌라(Kalle Kniivilä kniivila.net)가 모스크바 현지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어제 자신의 ipernity.com 블로그에 올린 4월 12일 조기를 단 러시아 크레믈린 사진이 눈길을 끌어 소개한다. (사진촬영: Kalle Kniivilä, 사진 출처 | Images source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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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글: 빌뉴스 거리에서 만난 한국어의 위상
* 관련글: 폴란드 대통령 쌍둥이 형, 비행기추락사를 면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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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모음2010. 4. 12. 06:30

러시아 스몰렌스크 인근 폴란드 대표단의 비행기사고로 리투아니아 국민들도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11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3일간 추모기간으로 선포했다. 월요일 오전 7시부터 수요일 밤 10시까지 추모기간으로 정하고 조기를 달기로 했다. 유럽연합은 12일을 추모의 날로 선포했다.

14세기 말부터 200여년 동안 리투아니아인이 폴란드 왕이 되었고, 이후에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1795년까지 국가연합을 이루면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2차 대전 후 폴란드의 가장 큰 참사로 알려진 이번 사고 이웃 나라 리투아니아 국민과 여기에 거주하는 폴란드인들의 슬픔은 남다르다.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소재한 폴란드 대사관 앞 인도에는 폴란드 카친스키 대통령를 비롯한 사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시민들이 바친 꽃과 촛불로 가득 차 있다. 11일 저녁 이곳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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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들에게 삼가 명복을 빕니다.

* 최근글: 가요제 상 타도 피자, 상 안 타도 피자 먹는 딸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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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0. 4. 1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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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8일(목) 미국 오마바 대통령이 발트 3국 대통령을 프라하에 초대했지만,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대신 국무총리를 보냈다.

이날 리투아니아 달랴 그리바우스카이테(Dalia Grybauskaitė)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Lech Kaczyński)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른쪽 사진: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과 달랴 그리바우스카이테; 사진출처: source link)

오늘 토요일 음악회에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 접속하니 카친스키 대통령이 비행기 추락으로 서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소식에 따르면 10일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 등이 탑승한 러시아제 비행기가 러시아 스몰렌스크 공항에 접근하던 중 나무와 부딛쳐 추락해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이날 카친스키 대통령 일행은 폴란드와 러시아간 여전히 갈들을 빗고 있는 '카틴 숲 사건' 추모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스몰렌스크로 가던 중이었다.

이 사건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 숲에서 폴란드인 2만 2천여명을 암매장한 사건이다. 소련은 이를 나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폴란드는 이를 소련 비밀경찰의 소행이라 주장하고 있다. 

폴란드는 이 사건을 국제범죄로 규정하고 러시아에 관련자료 공개와 범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카친스키 대통령의 이번 러시아 영토내 서거가 앞으로 이 사건 해결과 양국간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중세시대에 수세기 동안 국가연합을 이루며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1차 대전후 폴란드가 빌뉴스를 점령함으로써 두 나라는 외교단절이라는 최악의 상태를 맞았다. 1990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에서 독립한 후 두 나라는 양국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왔다. 

2008년 2월 16일 리투아니아 독립기념일을 맞아 빌뉴스를 방문한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이번 추락으로 사망한 모든 사람들의 명복을 머리 숙여 빈다.



사건 현장을 전하는 유튜브 동영상이다.


`카틴 숲 사건'은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에 대해 가진 원한의 상징 중 하나이다. 오늘 폴란드인들이 즐겨하던 농담 하나가 떠올라 소개한다.

러시아인, 독일인, 폴란드인 세 사람이 함께 비행을 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독일 상공을 날자, 독일인이 갑자기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밖으로 던져버린다.
폴란드인: 왜 아까운 시계를 버립니까?
독일인: 아, 우리나라에는 시계가 너무 많아서요.

비행기가 다시 러시아 상공을 날자, 러시아인이 마시고 있던 보드카를 병 채로 밖으로 던져버린다.
독일인: 왜 피 같은 술을 버립니까?
러시안: 아, 우리나라에는 보드카가 너무 많아서요.

비행기가 다시 폴란드 상공을 날자, 폴란드인이 옆에 않아 있던 러시아인을 갑자기 들더니 밖으로 던져버린다.
독일인: 아니, 사람을 밖으로 던져버리다니...
폴란드인: 우리나라에는 러시아인들이 너무 많아서요.

— 해설: 오랫동안 러시아와 소련의 지배를 받은 동유럽에는 러시아인들에 대한 반감들이 상당히 강하다. 그래서 이들에 얽힌 풍자나 농담들이 수없이 많다.  

* 최근글:
대통령 잃은 폴란드 인터넷은 흑백색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 11. 3. 07:08

11월 1일은 가톨릭 인구가 다수를 차지하는 리투아니아에서 ‘모든 성인의 날’이라 불리는 국가 공휴일이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이날과 2일을 구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벨리네스’라 부른다. ‘벨레’는 영혼, ‘벨리네스’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날’을 뜻한다. 죽은 사람 영혼을 추모하는 이 풍습은 고대로부터 내려왔는데, 죽은 이들의 영혼이 특정 시점에 사후 세계를 떠나 가족을 방문하러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 해의 수확을 마친 뒤부터 시작해 10월 한 달 내내, 그리고 11월 첫 주에 절정에 이른다. ‘벨리네스’ 풍습은 14세기 말 기독교가 전래된 뒤 기독교적 의미가 추가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을 기해 리투아니아인들은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조상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 그리고 유명 인사 무덤을 방문한다. 우리의 추석 성묘를 연상케 한다. 우리가 ‘벌초’를 하는 것처럼, 무덤 화단에 흩어진 낙엽을 줍고 시든 화초를 뽑고 새것을 심는다. 대개 꽃이 활짝 핀 국화를 심는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에겐 국화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또 무덤에 바칠 꽃송이는 반드시 짝수로 하고, 죽은 사람 영혼이 어둠 속에 헤매지 않도록 촛불을 밝히는 풍습도 있다. ‘성묘’에 나선 이들은 긴 시간 말없이 촛불을 응시하며, 죽은 이의 선행과 일생을 되돌아보며 기도를 하곤 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타오르는 촛불로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20세기 초까지도 리투아니아인들은 11월 1일 밤 죽은 사람 영혼이 들어오도록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또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침대를 마련하고 사우나실에 불도 넣었다. 영혼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개를 개집에 가두기도 했고, 영혼을 젖게 하지 않도록 물을 뿌리지 않았다. 영혼에 상처를 입힐까봐 예리한 물건들은 숨겼고, 영혼의 눈에 들어갈까봐 화덕에서 재를 꺼내지 않았다. 밤에 집에서 나가거나 가축을 밖에 내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믿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들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곤 고요함 밤에 들리는 바람 소리,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무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물이 튀기는 소리를 영혼이 오는 징표라 여겼다.

이어 영혼을 집으로 초대하고, 가족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 뒤 침묵 속에 식사를 한다. 밥을 먹는 동안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초대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그대로 놓아둔다. 음식은 밤새도록 식탁에 놓아뒀다가 다음날 걸인들에게 나눠준다. 걸인들을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영혼들 사이의 매개체로 믿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음식을 무덤으로 가져가 놓아뒀다고 한다. 이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은 ‘음부세계’에서 보낸 사람으로 여겨 극진히 환대하고 접대하는 풍습도 있다.

우리나라의 추석성묘를 연상시키는 11월 1일 리투아니아인들이 ‘벨리네스’를 맞아 묘지를 찾는 모습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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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일 죽은 이들의 영혼이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무덤가에 촛불을 밝힌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