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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07 일본 하이쿠에 한국 시조의 세계화가 아쉽다 9
생활얘기2009. 11. 7. 07:17

하이쿠는 17음절로 된 일본의 정형시이다. 한 줄로 쓰기도 하지만, 보통 3줄로 된 짧은 시이다. 3줄은 각각 5음절, 7음절, 5음절로 구성된다. 주로 자연을 기술한다. 하이쿠는 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선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하이쿠는 자연을 기술만 하고, 논평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 이는 독자의 몫이다.

이 하이쿠라는 말을 처음 접한 것은 2003년이다. 당시 한국에서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원불교 교전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일을 진행했다. 그때 번역 윤문 작업에 참가한 스페인 사람을 만났다. 그는 일본에 유학했고, 일본문학을 전공해 박사학위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책 한 권을 선물로 주었다. 그가 일본의 옛 하이쿠로 스페인어로 번역한 책이었다.

스페인어로 된 하이쿠 책! 하이쿠와 스페인어에 문외한 사람에게 이 책은 그 동안 서고의 기념품으로만 남았다. 그러다가 2007년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가 요코하마에서 열렸다. 직접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으로 대회 일일 신문을 꼬박 읽었다. 이 신문에 하이쿠에 대한 강연 기사가 있었고, 관련 웹사이트가 적어져 잇었다. 2003년의 하이쿠 단어가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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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에도 하이쿠 애호가들이 활발하다. 빌뉴스 2009년 유럽 문화 수도를 기념해 발간한 "빌뉴스를 위한 하이쿠" 책이다. 유럽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하이쿠처럼 시조를 읊을 날이 올까?

이후 종종 하이쿠를 에스페란토로 써보곤 했다. 계절과 느낌을 17(5+7+5) 음절에 딱 맞게 기술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만 흥미로웠다. 하나의 하이쿠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때론 하루를 꼬박 시름하기가 했다. 왼쪽은 에스페란토 언어이고, 오른쪽은 이를 번역한 것이다.
             Jen kandelaro                     촛불 무리가
             fajras tombejan nokton —    묘지밤을 밝힌다 —
             vintra komenco                   겨울의 시작  (11월 1일은 묘지에 촛불을 밝히는 날이다)  

             Soras la blanko                   파란 하늘에  
             sur la ĉiela bluo,                  하얀 색이 떠올라  
             galopas hejmen.                 집에 달린다.

             Malantaŭ nubo                   구름 뒤에는
             la brila bela suno                 빛나고 예쁜 해가
             ĉiame lumas.                      늘 빛을 낸다
.
 
이렇게 에스페란토로 일본의 하이쿠를 지을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바로 한국의 전통적인 정형시 시조때문이다. 오래 전에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노산 이은상의 시조집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직 에스페란토 초보자라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못했다. 일본의 하이쿠를 접하니 이제서야 노산의 에스페란토 시조집이 공부하고 싶어진다. 책부터 구해야겠다.

기회가 되면 앞으로 한국의 시조를 열심히 공부해서 에스페란토로 직접 시조를 써보고 싶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조의 세계화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 한국의 시조도 일본의 하이쿠처럼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 관련글: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 최근글: 유럽 슈퍼마켓에서 만난 한글 '도시락'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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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