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2018.11.30 16:15

11월 초중순 한국 방문 때 1991년부터 알고 지내는 폴란드인 친구가 동행했다. 그의 직업은 전기설계사다. 발전소나 대규모 시설물의 전력이나 전기를 설계한다. 설계뿐만 아니라 전기 공사에도 능숙하다. 친척이나 지인들의 주택 전기를 설계해줄 뿐만 아니라 배선 공사까지 해주었다.  

때마침 머물고 있는 집에 전기 배선 공사가 필요했다. 대충하자면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옥외 배전함부터 건조기가 놓일 위치까지 전기선을 배선하는 것이다. 필요한 길이의 전기선을 구입해 작업을 개시하면 될 듯한데 그는 종이와 연필로 설계부터 했다. 아, 이래서 직업은 못 속인다고 하는구나... 

그의 작업 목록을 살펴보았다.
1. 노출된 기존 전기선와 새로운 전기선을 쫄대나 보호관에 넣어 정리한다
2. 전등 두 구를 추가로 설치하고 기존 전등 하나도 다른 두 구와 동일한 것으로 교체한다
3. 전기선을 정리함에 넣는다
4. 다수의 콘센트를 설치한다
5. 스위치를 설치한다 

이렇게 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한 후 작업에 들어갔다. 아침 식사 후 시작해 오후 늦게야 작업이 끝났다. 대충 전기선을 노출해 연결할 경우 1시간도 채 안 걸릴 듯한 작은 공사가 여러 시간에 걸치는 큰 공사가 되어 버렸다.                 

옥외에 있는 배전함에 전기선을 연결하고 있다.
  

이왕 전기선을 설치하는 겸에 옥외등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양방향에 전등을 달고 있다. 



나도 조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기선 쫄대를 벽돌에 고정시키는 일이다. 지금껏 거의 해본 일이 없었던 경험이다. 덩달아 나도 성취감을 맛보았다.


전기선을 정리함에 넣어 아주 깔끔하게 전등 두 구를 달고 있다.


새로 단 전등 두 구가 밤에도 옥외에서 쉽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기존 전기선과 새로운 전기선을 함께 쫄대에 넣어서 철판벽에 고정시켰다.


자투리 판자를 이용해 콘센트를 벽에 고정시켰다.


이날 공사의 결과물로 동일한 전등 세 구가 빛을 발하고 있다.


공사를 다 마친 후 "만세" 주먹을 높이 들고 있다. 처음으로 외국 땅에서 전기공사를 만족스럽게 끝냄으로써 느끼는 기쁨이 우러난다. ㅎㅎㅎ


아뿔사 옥의 티가 나왔다. 바로 스위치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르니 글자가 옆으로 90도 누워져 있는 것이 안 보인 듯... 사실인즉 유럽식 스위치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대부분 스위치 위치가 상하 수직으로 되어 있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본 스위치는 좌우 수평으로 되어 있다. 


뜯어서 한국식으로 스위치를 다시 설치할까 고민하다가 유럽인이 전기공사를 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에 그대로 놓아 두었다. 이날 유럽인 친구가 전기공사를 하는 것을 옆에서 도와 주면서 관찰한 것은 대충대충 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비바람에 전기선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 반듯하게 쫄대를 벽에 고정시키는 등 사전 준비부터 원칙대로 철저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충대충이 없었다. 이날 전기공사는 한국 방문의 보람 있는 추억거리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4.11.06 08:12

늘 살고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잠시라도 머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준다. 그곳에서 같거나 유사한 것을 찾아도 신기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을 찾아도 신기하다. 이번에 우리 가족은 스페인령인 북아프리카 서쪽에 있는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로 여행갔다. 

푸에르테벤추라(Fuerteventura) 섬에서 가장 큰 휴양도시인 코라레호(Corralejo)에 일주일 동안 살았다. 코라레호는 특히 모래언덕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에메랄드색 해변이 으뜸이다.


거주하는 도심에서 이 해변까지는 걸어서 4-5km이다.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할 수 있지만, 나는 새로운 여행지에서는 무조건 걷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추억거리를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이 해변에서 돌아오는 길에 거리 담장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담장마다 한 곳에 네모난 설치물이 궁금증을 자아냈다. 무엇일까? 열려져 있는 설치물에 다가가보니 계량기였다. 수도 계량기와 전기 계량기가 담장 외벽에 설치되어 있었다. 


"우와! 정말 좋은 생각이네!"

종종 수도, 전기, 가스 검침원과 관련한 뉴스를 접하게 된다. 검침원을 사칭해 집안으로 들어가 물건을 훔치거나 기타 몹쓸짓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만약 스페인 푸에르테벤추라 섬에서처럼 계량기를 건물 담장 외벽에 설치해놓는다면 이런 불법행위는 쉽게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검침원이 집안에 주인이 있든 없든 검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에는 전기 계량기는 공용복도에 있고, 가스와 전기 계량기는 집안에 있다. 예전에는 매달 검침원이 집안으로 들어와 검침해 사용료를 부과했다. 하지만 요즘은 거주자가 스스로 검침해 사용료를 은행이나 우체국에서 낸다. 

가끔 검침원이 불시에 찾아와 자기 검침 정확성 여부를 확인한다. 이때에도 우리는 경계심을 놓지 않는다. 자녀가 혼자 있을 때에는 어떤 검침원이 찾아오더라도 절대로 문을 주지 말고 "지금 부모님이 집에 없으니 다음에 오라고 해라"고 신신 당부한다.

코라레호에 산다면 굳이 이렇게 자녀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겠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03.27 06:42

며칠 전부터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딸아이는 26일을 몹시 기다렸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이날 저녁 한 시간 동안 모든 전기를 끄는 날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선생님 말씀은 칼같이 듣는 아이라 그 동안 "우리도 참가해야 돼!"라고 식구들을 세뇌시키듯 했다.

리투아니아는 26일 저녁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전기를 끄는 시간으로 정했다. 10분 전부터 딸아이는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컴퓨터와 전등 끄기를 종용했다. 부엌에 촛불을 켜놓고 식구들을 부엌으로 초대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가할까 궁금해졌다. 우리 집 아파트 건너편에 있는 고층아파트가 눈에 띄었다. 8시 30분 전후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해보았다. 이 고층아파트만을 두고 봤을 때 기대한 만큼 사람들의 호응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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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식구들은 부엌에 모였다. 딸아이는 촛불로 갓 구입한 책을 읽고 있었고, 다른 식구들은 호박씨를 까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렇게 지구촌 사람들과 전기 없는 한 시간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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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아빠는 너처럼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었지."
"그때 정말 전기가 없었어?!" 딸아이는 믿지를 못했다.

* 최근글: 갑자기 뚝 끊어진 듯한 천당지옥행(?) 다리 화제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12.19 07:55

한국 기업인들이 12월 18일 리투아니아 샤울레이와 파네베지스 시청을 방문하는 데 동행했다. 샤울레이는 리투아니아 4대 도시로 인구가 13만명, 파네베지스는 샤울레이 다음으로 큰 도시로 인구가 11만명이다.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에 아침 8시경에 출발했다. 샤울레이는 수도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3년 전 국제 에스페란토 행사가 이 도시에서 열렸다. 당시 시장 초청으로 시청회의실을 방문했고, 다과, 음료수, 커피 등을 푸짐하게 대접받았다.

목적지를 30km 남겨두고 시간이 좀 남아서 도로 옆 식당에 들어갔다. 3년 전을 생각하면서 시청에 가면 적어도 손님한테 커피 정도는 나오겠지라고 기대하면서도 커피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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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울레이 시청사 (사진출처: http://lt.wikipedia.org/)

이렇게 도착한 샤울레이 시청. 시청 입구 1층 내부 복도에는 희미한 자연채광이 전부였다. 3층이 있는 소회의실까지 가는 데 복도와 계단 어디에도 전등이 켜져 있지 않았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사무실이 있다. 그래서 자연채광 말고도 전등불이 켜져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샤울레이 시청 고위관계자와의 만남은 한 시간 정도 지속되었다. 기대했던 커피는 커녕 물 한 잔도 없었다. 도착하기 전 커피를 사서 마시기를 정말 잘했다. 리투아니아는 한국처럼 구멍가게나 편의점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추운 날씨라 난방이 강해 방이나 사무실에 있으면 쉽게 갈증이 느낀다. 건조하기 때문이다.  

이어 샤울레이에서 80km 떨어진 파네베지스에서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이동했다. 이 도시는 좀 다르겠지 기대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복도의 천장에는 전등이 잔뜩 달려있었다. 하지만 모두 꺼져 있었다. 샤울레이 시청 복도보다 더 어두웠다. 일행은 모두 고개를 가우뚱거렸다. 명색이 시청인데 좀 밝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한국에서 논란이 된 어느 호화 시청이 떠올랐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물 한 잔도 없었다. 빨리 끝내고 타는 갈증을 해소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회의 내내 머리 속에 맴돌았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손님이 "뭐 좀 주소!"라고 먼저 부탁하는 것은 실례이다. 주인이 제안해도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답하는 것이 예이다.

방문을 마친 후 고위관계자는 환송하기 위해 복도로 나왔다. 복도가 어둡다는 일행의 수근댐을 알아채린 듯 복도 천장을 가리키면서 한 마디 했다.

"Taupumas!"(타우푸마스, 절약이라는 뜻)

회의탁자에 없는 물, 복도에 꺼져 있는 전등, 이 모두가 결국 국민세금 절약 때문이었다.

* 최근글: '새끼'와 '임마'가 '시키마'로 변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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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