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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1. 5. 23. 08:10

일전에 리투아니아 친구가 방문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 호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장모를 할매 혹은 엄마라 부르는 데 너는 너의 장모를 뭐라고 부러니?"
"장모 이름을 불러." (즉 장모 이름이 '크리스티나'면 '크리스티나'라고 부른다.)
"좀 예의에 벗어나는 듯한테 왜 이름을 부르니? 장모가 기분 나빠하지 않아?"
"요즘 장모와 사이가 안좋아서 그렇게 불러."
"그럼, 장모는 너를 '사위'라 부르니 아니면 너 이름을 부르니?"
"장모도 내 이름을 불러." (장모가 사위를 사위라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 부르는 일은 흔하다) 

그가 자신의 장모를 이름으로 부른다는 말에 리투아니아 아내의 올케가 떠올랐다. 한때 처남댁은 장모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장모를 이름으로 불렀다. 리투아니아어도 장모, 시어머니, 사위, 며느리 등에 합당하는 단어가 있다. 하지만 장모나 시어머니를 편하게 어머니(엄마)로 부른다.

얼마 전 딸아이의 남자친구가 집으로 왔다. 함께 탁구를 쳤다. 대학에서 농구선수로 활약하고 있지만, 탁구는 잘 치지 못했다.

"누가 이겼어?"라고 딸아이가 그에게 물었다.
"대석이가 이겼어."라고 그가 답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나이 차이와는 별다른 관계없이 조금 아는 사이라도 편하게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다. 적어도 딸아이 친구에게는 "대석이가"가 아니라 "너의 아빠" 혹은 "아저씨" 정도로 불려졌으면 좋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연인간 호칭들을 담은 광고지의 일부 
 

일가친척도 마찬가지다. 조모와 부모를 제외하고는 이모, 고모, 삼촌, 외삼촌 다 할 것 없이 서로 이름으로 불린다. 형, 동생, 누나, 언니도 다 이름으로 불린다. 그래서 리투아니아 정착 초기에 아내쪽 친척이 모이면 어떤 친척관계가 있는지 자주 물어보곤 했다.

유럽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각자 이름을 분명하게 밝힌다. 악수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나중에 상대방을 부를 경우를 대비해서 만나는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유럽에서 20년을 살아도 가끔 나이 차이가 엄청 나는 사람으로부터 이름으로 불려질 때 솔직히 말해 기분이 나쁘다. 적어도 어린 친척들로부터는 아저씨, 이모부, 고모부 등으로 불려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호칭을 사용하면서 가족관계를 좀 더 돈독하게 했으면 좋겠다.

작은 딸 요가일래는 큰 딸 마르티나에게 항상 "언니"라 부른다. 대체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언니라도 "마르티나"라 부른다. 아내는 이를 한국어 영향이라 말한다. 처음부터 요가일래에게 "언니를 '마르티나'라 부르지 말고 '언니'라 불러야 돼"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가끔 아내가 이름으로 부를 때 귀에 거슬리고 남남처럼 느껴진다고 내가 투덜대곤 한다. 이럴 때 아내는 한마디 한다. "당신 아직도 유럽인 안되었어?!"

* 관련글: 동식물 이름으로 연인을 불러요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