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 꼭 필요하지 않으면 외출을 삼간다.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도보산책이고 다른 하나는 식료품 구입이다. 식료품 구입도 최소한이다. 딱히 먹을 것이 없어야 슈퍼마겟에 간다. 영하 15도의 혹한이라 산책하러 나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주로 산책에서 돌아오면서 식료품 가게를 들러곤 한다.
요즈음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은 빙어다. 이 빙어는 바다와 강을 회유한다. 주로 발트해와 내무나스(Nemunas) 강이 만나는 쿠르슈 마려스(Kuršių marios, 쿠로니아 석호, Curonian Lagoon)에서 잡힌다. 현재 시세는 1kg당 7-10유로다. 며칠 전 리투아니아인 아내는 산책길에 빙어를 사왔다. 빙어는 크기가 작지만 밀가루에 묻혀 튀겨놓으면 살이 졸깃졸깃하다.
한편 냉장고에 1년 6개월 전에 한국 손님들이 주고 간 번데기 통조림 세 통이 있었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고 또한 눈에 잘 띄지 않아 이렇게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딱히 먹을 것이 없던 참이라 번데기를 한번 먹어보기로 했다. 아내와 딸이 산책을 나간 사이 혼자 있을 때가 기회다. 말하지 않아도 번데기를 먹는 사람을 잠시나마 비호감으로 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선 양배추, 대파, 양파를 썰었다.
프라이팬에 야채를 먼저 볶은 후 그 위에 통조림 번데기를 붓고 조금 더 볶았다.
약간의 고추장을 넣어 밥을 비볐다.
한 숟가락으로 떠서 먹어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렇게 맛있는 것을 왜 진작 먹지 않았지!"
번데기 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유럽인 아내가 보더니 혐오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으악~~~ 어찌 벌레를 먹을 수 있나?"
"누에가 촉감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비단의 원료가 되는 실을 만들고 바로 이 벌레가 된 거야."
"아무리 그래도 보기만 해도 혐오스럽다. 한동안 당신 보기만 해도 번데기가 떠오르겠다."
부엌문을 닫고 째빨리 나가버린다. 이런 아내에게 단백질 영양분, 혈액순환, 당뇨 등에 좋은 번데기의 효능을 아무리 설명하더라도 그 선입견을 깨부시기가 불가능할 듯하다. 그냥 맛있게 한 그릇을 뚝닥 묵묵히 비우는 것이 상책... ㅎㅎㅎ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지 2주일이 지났다. 처음엔 시차 부적응으로 새벽 3-5시에 일어났다. 이제 평소처럼 7시경에 일어나게 되었다. 며칠 전 부엌에는 불이 훤했다.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7학년(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1학년)생 딸아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부엌문을 똑똑 두드렀다.
"들어와."
접시에는 빵과 소시지가 아니라 사과 두 쪽이 있었다.
"오늘 아침 식사는 사과니?"
"그래. 사과 한 개를 네 쪽으로 짤랐어. 벌써 배가 부르네. 아빠가 한 쪽 먹어라."
"배가 고플텐데. 아니 괜찮아."
"우와, 이제 아빠 딸이 과일로 밥을 먹네. 대단하다. 한번 결심한 바를 이렇게 실행하는 것을 보니 너는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그럼그럼 ㅎㅎㅎ"
딸아이를 키우면서 늘 마음 속 걱정 되는 바가 하나 있었다. 바로 고기를 너무 좋아한다는 것이다. 과자 군것질 대신 간식으로도 고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고기는 훈제고기나 훈제소시지다. 채소와 함께 먹기를 권하지만 채소는 고기맛을 떨어지게 한다고 주장하면서 듣지를 않았다.
구워 먹는 고기 중에는 삼겹살을 가장 좋아한다. 삼겹살을 먹을 때마다 자기도 한국인임을 느끼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처럼 삼겹살을 구워 먹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자녀교육에 있어서 모질 지가 못하다. 육식의 편식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를 억지로 딸아이에게 주입시키고 싶지 않다. '지금은 어리니 육식을 좋아하지만 크면 좀 스스로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위안 삼기로 했다. 종종 소나 돼지 등을 잡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고자 했지만 참혹한 모습을 보기 싫다면서 거부했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딸아이의 식생활이 확 바꿨다.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딸아이에게 일어났다.
1월 23일 한국에서 돌아온 후 그 다음날 가게에서 돌아온 아내가 딸아이 이야기를 했다. 봉지에는 과일만 담겨 있었다.
"내가 고기를 사려고 했는데 딸이 말려서 안 샀어."
"이유가 뭐래?"
"어제 고기를 먹었으니 한 동안 고기를 먹지 말자고 했어."
"고기쟁이가 웬 일이야."
방에서 키위 여러 개를 먹으면서 책을 읽고 있는 딸아이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왜 고기를 덜 먹기로 결심했는데?"
"내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고기 말고 과일에서도 단백질을 얻을 수 있데, 고기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어."
"그래. 그 유튜브 동영상을 아빠에게 한번 보내봐."
아래는 1월 27일 페이스북으로 딸아이가 보낸 영상이다. 고기 섭취를 줄이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기로 결심하게 한 영상이다.
"내가 이 영상에서 나오는 영어를 다 알아들었니?"
"그럼, 그러니까 내가 고기를 덜 먹고 과일을 많이 먹기로 했다."
"아빠, 우리 여름에는 정말 과일만 먹고 살자."
"리투아니아에는 과일이 많지 않아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 과일 많이 먹도록 하자."
딸아이의 식생활 변화를 보면서 인생에서 획기적인 변화는 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임을 새삼 느꼈다. 그 동안 육식의 편식에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변화되길 바라면서 지켜본 것이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앞으로 딸아이에게 즐거이 과일을 사댈 것이다.
며칠 전 구입할 물건 목록을 들고 혼자 상점에 갔다. 그 목록에는 우리 집 애완동물 햄스터가 먹을 해바라기씨도 있었다. 항상 여유롭게 구입하고자는 점이 아내와는 다르다. 설탕 한 봉지를 사오라하면 두 봉지를 산다. 한 봉지를 거의 다 사용했을 무렵 다음 한 봉지를 사오지 않으면 설탕 없이 지내야 할 때가 있다.
최근 설탕이 있는 줄을 알고 차를 다 준비했는데 알고보니 설탕이 없어 그 찻물을 버렸다는 소식을 딸아이는 페이스북에 올렸다.
"봐라, 그러니 항상 물건을 좀 더 여유롭게 미리 사놓아야 한다. 이제 아빠를 닮아라."
"알았어."
그래서 햄스터에게 줄 해바리기씨도 넉넉하게 구입했다.
"햄스터 주려고 이런 엄청난 양을 샀어?" 역시나 아내는 예상대로 꾸지람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나도 좀 먹으려고."
사실 답이 궁색했다. 식구들이 그렇게 해바라기씨를 옆에서 먹어대도 내가 먹지 않는다는 것을 아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는 책망하듯이 즉시 해바라기씨를 수북히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나도 좀 먹으려고"라는 말에 책임져야 하는 의무감으로 한알한알 까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입안에 넣고 씹고 또 씹으니 고소한 맛이 자꾸 유혹한다.
* 햄스터와 내가 먹는 그냥 말린 해바라기씨
1990년 처음으로 동유럽 여러 나라들 방문하면서 공원 의자나 심지어 버스나 기차에서 사람들이 해바라기씨를 먹는 장면이 눈에 띄였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늦은 여름철 즐겨먹었던 해바라기씨였다. 그 후 도심에 살면서 수십년동안 해바라기씨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 우리 집 식구들이 좋아하는 볶은 해바라기씨
해바라기씨는 동유럽의 국민 간식이라 불릴 정도로 여기 사람들이 즐겨먹는다. 여기서 판매되는 해바라기씨는 대부분 헝가리에서 생산된 것이다.
"유럽생활 20년 변한 것 하나" 글에서 차에다 설탕을 타 먹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것 하나는 무엇일까? 부끄럽지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소리 내서 음식을 먹는 것이다.
유럽은 비교적 찬 음식이 많다. 반면 한국은 금방 한 따끈한 밥과 팔팔 끊고 있는 국을 즐겨 먹는다. 찬 음식은 입안에 넣어 입을 닫고 오물오물 큰 소리 내지 않고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뜨거운 음식은 그렇게 쉽게 먹을 수가 없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입을 열고 밥을 먹게 된다.
더욱이 면 종류를 먹을 때 소리 내지 않고 먹기란 정말 힘 든다. 뜨거운 라면을 입안으로 후루룩하면서 먹은 그 맛을 우리 식구 중 누가 알랴?
그래서 한국인들이 모인 자리에 밥을 먹을 때가 가장 편하다. 바로 소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밥을 먹을 수가 있으니까.
식구가 네 명인 우리 집은 모두가 함께 밥을 먹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유 중 하나는 모두가 식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각자 해결한다.
함께 먹는 날이다 보면 가끔 불상사가 일어난다. 조심스럽게 밥을 먹다가 군기가 빠지면 입은 옛 버릇을 찾아 쩝쩝 소리를 낸다.
생각건대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닌데 낮은 소리에도 아주 민감한 다른 식구들은 이내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기분 좋은 날은 모두 ㅎㅎㅎ로 넘긴다.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저기압이면 일은 터지고 만다.
"함께 산다는 것이 뭐야?! 서로 이해하면서 살아야지. 뭐, 소리 좀 내서 먹는 것이 그렇게 거슬려?!"
"여기 살고 있으니, 여기 사람들처럼 먹으면 안 돼?! 20년을 살았으면 좀 바꿔야 되는 것 아니야?!"
이렇게 한바탕하고 나면 밥을 들고 부엌에서 컴퓨터 앞으로 자리이동을 해서 혼자 꾸역꾸역 밥을 먹는다.
유럽인 배우자와 함께 살려면 이런 일 좀은 견더야지...... (다른 분들도 비슷하죠? 아니면 나만 그런가......)
딸아이 요가일래가 하는 말이 떠오른다. "아빠, 나 따라 해봐라 요렇게! 그러면 조용히 먹을 수 있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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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습관이죠. 아무리 뜨거운거 먹어도 그냥 입다물고 먹을수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먹거든요.
저희집에도 뜨거운거라고 소리내서 먹는 가족몇명이있어서 ..저도 정말 약간 아니 많이 스트레스 받았었는데요.
아..가족이라 몇번 짜증내다 안되서 그냥 포기하긴했지만 가끔씩은 속으로 짜증나기도합니다.
한번 입다물고 먹어보세요. 노력해해보셨나요?
저나 다른식구들이 느끼는 뜨거운음식의 혀의 체감온도는 거의 똑같을거라 봅니다.
저는 무진장 뜨거워도 소리 잘안냅니다. 그 소리때문에 제가 유심히 관찰해본결과 입을 열고 먹는거랑 입을 다물고 먹는차이가 있다는걸 알아냈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으면 관찰을 다했을까요?
서로 이해하는 차원에서 한번 몇번만 참고 입다물고 먹어보세요. 어려운일도 아닌거같네요
남편이 밥 먹으면서 소리 내면서 먹는다는걸 최근에 알았네요. 그 동안 익숙해져서 그런건지 크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순간 확 와닿더라구요.
그것땜에 스트레스 꽤 받고, 너무 싫어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절대 모른다는거...
직접적으로 말했더니 자존심 상해하길래
밥 먹을때마다 일부러 남편 들으라고 아이한테
입 꼭 다물고 씹으라고 주의 준답니다.
글쓰신님도 고치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
남자와 만나서 밥 먹을때마다 꼭 유쾌하지 못한 구경을 해야 했습니다. 꼭 혀를 둘러내서 다 뭉개진 밥알과 반찬들의 믹서를 보게 하고... 왜 그렇게 보기 흉하게 입을 벌리고 먹어야 하는지... 그게 친해질수록 그러더군요 첨엔 쿨하게 매너있는 척 하다가... 어휴... 그럼 짜증이 나겠죠.. 제가 먹성이 좋은 털털한 편인데도 말이에요.. 밥먹을때는 가장 편하고 쾌적하게 먹고 싶은게 인간의 본성인데 말이에요. 정말 중요한 에티켓 같아요. 먹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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