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3.10.04 06:42

지난 달 우리 집에 손님이 방문했다. 한 분은 폴란드 바르샤바에, 다른 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 둘이 자매로 70대 중반이다. 할아버지 때부터 연해주에 살다가 중앙 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다. 언니는 폴란드로 유학온 후 남게 되었고, 동생은 카자흐스탄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해 자녀가 살고 있는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집에서는 한국어로 했지만, 학교 생활 등으로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러시아어가 되었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이 분들은 딸아이 요가일래를 칭찬하고, 아주 부러워하고 한편 후회스러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가일래가 아직 어리지만, 아빠와는 늘 한국어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 두 자매는 각기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당시는 러시아어가 최고였으므로 소련에서 살려면 자녀가 러시아어를 잘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자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딸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나?"
"아, 가르치지 않고 그냥 모태에서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한국말만 하고 있어요."
"쓰기도 하고 읽기도 하나?"
"말하기만 하고, 쓰기와 읽기는 완전 초보 단계입니다."
"혹시 책은 없나?"
"딸아이 책장에서 한번 찾아볼게요."

이렇게 한국어 초급 쓰기와 읽기 책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보자 두 자매는 아이처럼 아주 기뻐했다. 그리고 복사를 부탁했다. 집에 가서 자기들도 꼭 공부하고, 아들과 딸은 늦었지만 손자들에게 꼭 공부시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배움의 의욕에 가득 찬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국인은 역시 한국어를 할 줄 알아야 하는구나."라고 느꼈다. 그리고 딸에게 말했다.

"봐, 할머니는 이제라고 열심히 한국어를 공부하겠다고 하는데 너는 쉽게 알았잖아. 아빠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이제부터라도 한국어 읽기와 쓰기에도 좀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
"노력할게."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2.10.11 06:04

소련은 유라시아 북부에 있었던 세계 최초 공산주의 국가으로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소련 헌법상 각 공화국은 소련 연방으로부터 자유롭게 이탈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있었으나 강력한 통제 체제에서는 사실상 이는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1989년 리투아니아 공산당의 소련 공산당 탈퇴가 소련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리투아니아가 독립한 후 소련 시대에 세워졌던 조각상들이 철거되었다. 리투아니아는 이 조각상들을 모아서 소련 조각 박물관을 만들었다. 이 박물관은 리투아니아 남부 지방 그루타스에 있다. 이 안에는 소련 미술관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소련 시대 각 공화국의 민속옷을 입은 인형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다. 


아래 사진으로 소련 시대 15개 공화국의 민속옷 인형을 소개한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벨라루스

러시아

아르메니아

조지아(그루지야)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몰도바

우크라이나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소련도 사라졌고, 각 공화국은 이제 독립국가를 이루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10.01 19:13

폴란드 웹사이트 조몬스터에 50-50년 전 소련시대 러시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예 사진들이 소개되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몇해 전 소련 조각 박물관으로 유명한 그루타스에서 만난 할머니가 떠올랐다.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물론 사회주의체제 선정용 사진일 수도 있겠다. 그루타스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소련시대엔 지금처럼 빈부격차가 거의 없었고, 모두가 평등하게 살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빵이나 감자가 부족해도 노래부르고 춤추며 즐겁게 살았다고 회상했다.


할머니의 눈물 글썽임을 지켜보면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체제와 정부는 진정 없을까라고 자문해보았다. 능력에 따른 빈부차별과 모두가 가난한 평등 중 어느 것이 좋을까? 몇 억하는 비싼 승용차가 지나가는 도로가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는 이가 떠오른다. 적어도 절대적 빈곤은 사라졌음은 좋겠다.

 * 최근글: 현수교 꼭대기 올라가는 겁 없는 러시아 10대들의 까닭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1.01.14 09:40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1년 1월 13일 - 2011년 1월 13일

1월 13일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다. 특히 올해는 20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이날을 맞아 리투아니아 다양한 국가행사를 열었다. 그렇다면 1월 13일은 어떤 날인가?

공산세력권이 점점 약화되고 있던 1990년 리투아니아 최고회의 선거가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치러졌다.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유디스가 141석 중 101석을 차지했고, 란드스베르기스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새로 구성된 최고회의는 소련의 모스크바가 연방탈퇴법을 제정하기 전인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가 독립국가임을 선언했다. 이 선언문은 6명의 폴란드인 위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서명했다.

(오른쪽 사진: 소련군대 무력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묘소)

독립은 선포되었지만, 여전히 소련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소련 KGB가 활동하고 있었다. 최고회의는 리투아니아 내에서 소련 헌법과 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소련은 탈퇴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당시 고르바초프가 탈퇴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가 없었다.

제2차 대전 후 리투아니아에 유입된 러시아인들이 약 30만명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특권 상실, 국적법, 무시하고 배우지 않은 리투아니아 국어 등을 두려워했다. 러시아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에 여전히 남았고, 24만여명 폴란드인 주민들에게 복종하지 말고 자치권을 요구하도록 충동질했다. 두 소수 민족은 반정부 시위를 조직했고, 모스크바에 편지를 보내 리투아니아에 소련체제 재건을 요구했다.

1991년 1월 10일 고르바초프는 소련헌법의 우월성을 인정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리투아니아 최고의회가 이를 거부하자 소련군대가 움직였다. 1월 11일부터 소련군대는 언론회관, 국방부, 경찰학교 등을 점령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소속기관으로 와서 지킬 것을 호소했고, 수천명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국회의사당과 텔레비전 타워를 요새화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리투아니아 국회의사당에 당시 소련군대로부터 국회의사당을 보호한 장벽들이 보관되어 있다.

1월 13일 소련군 특수부대가 탱크를 동원해 텔레비전 타워를 공격했다. 비무장 군중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곤봉을 휘둘렸다. 이 과정에서 14명의 사망자와 6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빌뉴스에서 방송을 내볼 수 없게 되자 리투아니아 정부는 즉각 카우나스(Kaunas) 텔레비전을 활용해 전국으로 방송했다. 아래 동영상은 1991년 1월 13일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은 전세계로부터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슬란드가 최초로 1991년 2월 리투아니아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1991년 8월 19일 모스크바에서는 소련제국 구하기 쿠테타가 일어났다. 3일만에 쿠데타가 진압되었고, 보리스 엘친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1991년 8월 25일 러시아, 9월 2일 미국 등 세계 각국이 리투아니아 독립국가를 인정했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9월 17일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1993년 8월 31일 마지막 소련군대가 리투아니아를 최종적으로 떠났다. 이는 곧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2차 대전의 진정한 종말을 의미한다.

* 최근글: 여자의 몸을 그리면 쉽게 개를 그릴 수 있어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0.03.01 09:22

사용자 삽입 이미지
3월 1일을 즈음해서 늘 한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리투아니아도 오랜 세월 동안 제정 러시아와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소련 시대의 비밀경찰 KGB의 눈을 피해서 금서들을 펴낸 리투아니아인을 여러 해 전에 만났다.

북동유럽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 교외에 살고 있는 비타우타스 안줄리스(79)이다. 그는 1980년 양봉을 하면서 민족주의자 워자스 바제비츄스를 알게 되었고, 이들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과 신앙심을 키우는 종교서적을 펴내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각자 성의 첫 글자를 따서 'ab'라는 비밀인쇄소를 만들어, 1990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에서 독립할 때까지 10여년 동안 철저히 금지된 반체제와 종교 관련 서적들을 몰래 인쇄해 보급했다.

이 비밀인쇄소는 기막히게 숨겨져 있다. 비타우타스는 언덕 비탈에 위치한 온실에 시멘트 구조물로 수조와 묘목판을 만들었다. 이 묘목판 중앙에는 관수용 수도관을 세웠다. 이 수도관을 돌리면 기계가 작동해 수조를 이동시켜서 묘목판과 수조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 틈이 바로 비밀인쇄소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는 2년에 걸쳐 30m 굴을 경사지게 파고 중간 중간에 철문을 세워놓았다. 비밀인쇄소는 지하 7m에 위치해 있다.

비타우타스는 고물 인쇄기 3대를 구해 직접 인쇄기 1대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23개 책제목 138,000부를 찍었다. 가장 위험하고 아끼는 책은 1939-40년 스탈린과 히틀러가 발트 3국을 분할 점령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현재 당시 사용했던 인쇄기와 서적 등을 보존 전시해 방문객들에게 역사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근대 리투아니아 지배 체제로부터 탄압받은 출판 역사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그의 개인 박물관은 이제 리투아니아 국립 비타우타스 전쟁박물관 분원되었다. 당시 비밀경찰 KGB는 어디에서 누가 이런 금지된 서적들을 인쇄하는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비밀인쇄소 입구 앞에서 비타우타스 안줄리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비타우타스(가운데), 비타우스 부인(오른쪽), 그리고 요가일래와 엄마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비타우타스님께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을 선물

일가족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금서를 펴낸 이유를 묻자, 그는 "총보다 인쇄물을 더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인쇄 일을 하는 내가 인쇄했을 뿐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를 만날 때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는 변화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 최근글: 한국 스티커 때문에 폭로협박에 눈물 흘리는 딸아이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9.06.26 12:04

리투아니아에서 가볼만 곳 중 하나가 바로 그루타스 공원이다. 이 공원은 수도 빌뉴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20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숲 속에 위치해 있다. 이 공원은 다름 아닌 소련시대 동상이나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왜 이 한적한 숲 속에 동상들이 총집결해 있을까?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소련시대 레닌, 스탈린, 체제를 상징하는 조각상들은 도심의 명당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1990년 체제가 무너지자 이들은 사람들에 의해 철거되었다. 이후 도시 구석진 곳에 방치된 이 동상들은 점점 커다란 사회적 골치거리가 되어버렸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공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그루타스를 근간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말리나우스카스는 습지와 숲이 시베리아와 흡사한 그루타스로 동상들을 가져와 전시하는 공원 설립을 계획했다. 그의 안이 통과되었다. 소련점령시 36만명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시베리아 등지로 강제거주당했다. 현재의 리투아니아 인구가 340만명이나 이는 엄청난 숫자이다.    

말리나우스카스는 이렇게 시베리아를 연상시키는 이 숲 속에 소련시대 동상들을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고자 했다. 초기에 극렬히 공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전무한 상태라고 공원 관계자가 말했다. 역사교육장 뿐만 아니라 여행 관광지로도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일전에 다녀온 사진을 올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레닌은 늘 도심에서도 최고의 명당 지를 차지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91년 1월 소련군의 무력진압에 항거하는 리투아니아 사람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너진 저 레닌 동상의 그 후 모습은 어떠할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로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짤렸지만, 비교적 온전하게 숲 속에 잘 보존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얼마나 거대할까? 초유스가 두 다리 사이에 들어가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초기 공원 설립을 반대한 대표적인 사람들을 목조각해 전시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루타스 공원 입구 표지판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공원내 식당에서 소련시대 음식도 맛볼 수 있다. 보드카 큰 잔을 단숨에 마시고 청어를 안주 삼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 평균 15만명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 관련글: 누구의 동상이기에 검은 비닐로 덮었을까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9.06.21 14:4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럽 리투아니아는 50여년 동안 소련 점령 통치를 받아왔다. 1990년 독립 선언하고, 1991년 1월 13일 17명의 목숨을 앗은 소련군의 무력진압에 항거한 후 독립국가를 형성했다.

이후 소련 당시의 조각상들이 철거되었다. 이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곳이 그루타스 공원이다.

이 공원에 전시된 조각상 중 하나가 흥미롭다. 소련 당시 이 동상은 리투아니아 제의 2 도시 카우나스 중심가에 위치했다. 이 조각상의 이름은 "청년 공산주의자 4명"이었다. 건장한 청년 4명이 잘 표현되어 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치켜올린 왼팔엔 굳센 힘이 느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하지만 한 친구가 사람들은 이 조각상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술에 만취한 친구를 이끌고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 청년들이라고......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에 따라 조각상의 의미도 이렇게 달라지는구나를 확 느끼는 순간이었다.

* 관련글:
  • 레닌 동상에 검은 비닐을 덮은 까닭
  • 조각난 스탈린 퍼즐 맞추기 하는 여대생들

  •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8.07.16 14: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과거 반세기 동안 소련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때의 리투아니아인들의 풍자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아담과 이브는 소련시민
    - 아담과 이브는 어느 나라 시민이었을까?
    - 틀림없이 소련 시민이다. 그들은 완전히 벌거벗었고, 먹을 것이라고는 사과 하나 밖에 없으면서 낙원 에 살고 있다고 늘 자랑했으니까.

    * 아주 특이한 고질병
    한 사람이 종합병원에 와서 부탁하기를
    - 저는 눈과 귀에 관한 의사가 필요해요.
    - 그러한 만능(萬能) 의사가 여기는 없습니다. 귀는 이비인후과의사가 치료하고, 눈은 안과의사가 치료합니다.
    - 하지만 저는 눈과 귀를 함께 치료하는 의사가 필요해요!
    - 도대체 당신의 병은 무슨 병입니까?
    - 저의 병은 고질병이요: 저는 어떤 사실을 듣고, 다른 사실을 봐요.

    * 공산주의를 먼저 쥐에게 실험
    한 할머니가 크레믈린에 와서 묻기를
    - 누가 공산주의를 발명했는지를 말하세요. 정치가가 아니면 과학자가?
    - 정치가 - 라고 크레믈린이 주저 없이 대답한다.
    - 애석하구먼! 과학자가 만들었으면, 우선 쥐에게 실험을 해보았을 텐데.

    * 무연고는 10년형
    한 수용소에서 간수가 죄에게 묻기를 - 무엇 때문에 여기 왔어?
    - 아무런 이유 없이.
    - 이 나쁜 자식, 너 거짓말하지! 무연고(無緣故)는 10년형을 받는데 너는 15년형을 받았자나.

    * 새벽에 도덕 강의
    새벽 3시에 경찰이 지나가는 행인을 멈추게 하고
    - 어디 가?
    - 경찰 나리, 도덕 강의에 갑니다.
    - 새빨간 거짓말 하기는! 이 늦은 시간에 누가 강의를 한담......
    - 예, 제 집사람이!

    * 시대에 따른 대책
    기차가 궤도를 벗어났다.
    시대에 따른 대책은 다음과 같다.
    레닌 시대: 노동 협력을 조직하고 철로를 수선한다.
    스탈린 시대: 철로담당 철도원을 총살한다.
    흐르시초프 시대: 기차 뒤에 있는 궤도를 철거하여 기차 앞에 놓는다.
    브레주네프 시대: 열차 칸을 흔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마치 기차가 계속 가고 있는 것처럼 하고 역 이름을 계속 알린다.

    * 당을 비웃는 사람에게 고기는 없다
    까마귀가 입에 고기조각을 물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여우가 이것을 보고 나무 밑에 앉아 혼자 말하기를
    - 맑스는 천재였어. 까마귀가 주위를 살펴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 레닌도 천재였어. 까마귀는 계속 침묵하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다.
    - 브레주네프도 천재였어. - 까르, 까르, 까르 - 하고 까마귀가 비웃기 시작하였고, 고기는 땅으로 떨어졌다.
    - 당을 비웃는 사람에게 고기는 없다 - 라는 것을 여우는 확신했다.

    * 사회주의는 이렇게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모임에서 당비서가 말하기를 - 동지 여러분! 사회주의가 전세계를 곧 지배할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의 5분의 1을 차지하고 있고, 1년 후에는 6분의 1, 몇 년 후에는 7분의 1, 그리고 더 후에는 8분의 1. 동지 여러분, 어떤 누구도 사회주의 승리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05.20 07:1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 더 하고자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리투아니아에서도 통한다. 지난 해 그루타스 공원은 설립 당시만큼이나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다름 아닌 저작권 문제 때문였다.

    당시 리투아니아 저작권보호협회는 공원 안 식당에서 틀어주는 소련식 노래뿐만 아니라 공원에서 전시되고 있는 조각상에 대해서도 매년 입장권 판매액의 6%를 저작권료로 낼 것을 요구했다. 이에 공원 쪽은 이미 국가 재산인 것에 대해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섰다.

    소련으로부터 독립 당시 리투아니아 정부는 시내 곳곳에 우뚝 세워져 있던 조각상들을 철거해 쓰레기장이나 황폐한 곳에 버렸다. 어떤 동상들은 머리가 잘려나갔고, 어떤 동상들은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그 무렵 해당 작가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저작권보호협회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공원 설립자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리투아니아 전역을 돌며 방치된 조각품들을 수거해 공원에 복원해놨다.

    공원측은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조각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공원에서 직접 가져갈 것을 제안했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한편 공원은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조각가의 작품을 검은 비닐로 덮어버렸다. 그리고 일부는 공원 입구 밖에 전시해 입장권를 사지 않고도 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공원의 이러한 독특한 대응은 당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어두운 과거를 관광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그루타스 공원은 이미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공원 쪽과 저작권보호협회의 마찰은 법정에서 매듭지어질 테지만, 사회주의 시절의 상품화가 ‘탐욕’이란 자본주의의 폐해로 이어지는 듯해 씁쓸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각품에 대한 저작권 요구가 비등하자, 공원측은 그 작품을 아예 검은 비닐로 덮어버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입장권 판매로 인한 저작권료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일부 작품들을 공원 밖으로 옮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05.19 14:0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전에 그루타스 공원 레닌 동상 곁 리투아니아 여고생들과 새총으로 레닌을 겨낭하는 아이들을 이 블로그에서 소개했다. 오늘은 이어서 스탈린 퍼즐을 맞추는 여대생들을 소개한다. 조각난 자신의 모습을 스탈린이 보았다면... 후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기에 있을 때 독재하지 말고 잘 했으면, 조각은 나지 않았을텐데... 세월무상! 권불십년!

    리투아니아에서 영원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던 옛 소련 체제가 1990년 무너지자, 레닌·스탈린을 비롯해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어제의 지도자’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도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던 이들의 동상과 체제를 상징하는 온갖 조각상은 시민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철거됐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부서져 폐기되기도 했다. 커다란 사회적 골치거리가 되어버렸다.

    조각상들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그대로 옮겨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자는 여론에 더 힘이 실렸다. 이런 취지로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은 세워졌다. 거대한 레닌과 스탈린 동상에서부터 빨치산 대원의 군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루타스 공원은 매년 봄 한 차례 당시 사회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시절 축제’를 연다.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08.05.18 14:14

    일전에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 레닌 동상 곁 리투아니아 여고생들을 블로그에서 소개했다. 오늘은 새총으로 레닌을 대신해 컵을 맞추는 놀이를 소개한다.

    자고로 지도자는 역사의 웃음거리나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고 오래도록 존경받는 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즘은 과거와 달라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워낙 빠르다.

    리투아니아에서 영원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던 옛 소련 체제가 1990년 무너지자, 레닌·스탈린을 비롯해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어제의 지도자’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도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던 이들의 동상과 체제를 상징하는 온갖 조각상은 시민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철거됐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부서져 폐기되기도 했다. 커다란 사회적 골치거리가 되어버렸다.

    조각상들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그대로 옮겨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자는 여론에 더 힘이 실렸다. 이런 취지로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은 세워졌다. 거대한 레닌과 스탈린 동상에서부터 빨치산 대원의 군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루타스 공원은 매년 봄 한 차례 당시 사회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시절 축제’를 연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8.05.17 15:14

    리투아니아에서 영원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던 옛 소련 체제가 1990년 무너지자, 레닌·스탈린을 비롯해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어제의 지도자’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도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던 이들의 동상과 체제를 상징하는 온갖 조각상은 시민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철거됐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부서져 폐기되기도 했다. 커다란 사회적 골치거리가 되어버렸다.

    조각상들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그대로 옮겨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자는 여론에 더 힘이 실렸다. 이런 취지로 리투아니아 ‘그루타스 공원’은 세워졌다. 거대한 레닌과 스탈린 동상에서부터 빨치산 대원의 군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루타스 공원은 매년 봄 대대적인 개장식과 함께 당시 사회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시절 축제’를 연다. 지난 해 축제 때 방문해 찍은 소련 시절 때 복장을 한 리투아니아 여고생들이다. 사진 속 소품이 되어버린 새똥을 맞은 레닌 동상을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