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7. 3. 22. 08:07

한 해에 생일을 세 번 맞는다. 첫 번째는 여권상 생일이고 두 번째는 여권상 생일의 음력일이고 세 번째는 여권상 생일의 양력일이다. 한국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올해는 살아온 세월의 첫 번째 숫자와 두 번째 숫자가 같다. 유럽인들이 크게 생일을 챙기는 기념일이다. 1월부터 아내는 종종 어떻게 생일을 보낼 것인지 물었다. 생일 챙기기에 무관심하자 무조건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다시피 했다.   

1. 일가 친척을 초대해서 식사 하기
2. 가족 해외여행 하기

어느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첫 번째 생일에는 다음 생일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했고, 두 번째 생일에는 또 다음 생일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했고, 세 번째 생일에는 내년 생일도 있으니 넘어가자라고 했다. 생일을 거의 챙기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은 가장의 생일인지라 뭔가로 기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두 개 중 하나인 아주 오래 된 17인치 모니터가 지난 해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주로 번역 작업을 하는 데 세로로 돌리기(비봇 pivot) 기능이 있는 24인치 모니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기념으로 이것을 사고 싶었다. 새로운 전자제품 구입에 인색한 아내도 선뜻 동의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바로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해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현관문에서 불렸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어서 와. 왜?"
"빨리 여기 와봐."
딸아이는 노란 꽃 세 송이로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 주말에 올 새 모니터(화면 속 사진)와 딸아의 노란 색 꽃선물


어제 화요일 저녁 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이 있었다. 앞 강의가 아직 끝나지 않아 학생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서로 대화하더니 내가 나타나자 조용해졌다.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생신이 언제예요?"
"생일?! 난 생일이 없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생일을 물었다.   
 
1시간 반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재빨리 강의실을 빠져나가는데 어제는 달랐다. 모두가 자리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나더니 한 학생이 또 물었다.

"선생님, 오늘이 생신이시죠?"
"아니, 어떻게 내 생일을 다 알았지?"라는 되물음에 학생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고마움을 전하면서 자꾸 의문이 생겼다. 페이스북에 적힌 생일은 벌써 지났는데 어떻게 학생들이 알았을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구들에게 깜짝 기쁨을 알렸다.

"학생들이 어떻게 내 생일을 알고 생일축하 노래를 한국어로 불러주었어."
"아빠, 사실은..."
"뭔데? 말해봐."
"아빠 학생들 중 하나가 우리 반 친구의 친구인데 내가 우리 반 친구에게 부탁했다. 자기 친구에게 오늘 우리 아빠 생신인데 학생들이 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라고 했어."
"뭐라고? 네가 다 연출한 거야!"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8. 22. 08:03

유럽 여러 나라의 도심을 거니는 동안 한자를 문신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전에 교육 도시로 유명한 에스토니아 타르투(Tartu) 구시가지를 산책했다. 

시청광장 양쪽으로 신고전주의식 건물이 들어서 있고, 가운데에는 바로크식 시청 건물이 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상징물이 있어 기념 사진 찍기에도 좋다. 
  

이 앞으로 한 금발여인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등에 새겨진 문신의 한자가 눈길을 끌었다. 무슨 의미일까 확대해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愛吉錢 幸福
사랑, 길함, 금전이 행복이다

얼마 전 딸아이와 한 대화가 떠올랐다. 장모님 칠순 생신을 맞아 돈봉투를 챙기면서 딸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나중에 아빠가 70살이 되면 봉투에 돈을 얼마나 넣을 줄래?"
"난 돈을 주지 않을 거야!"
"왜?"
"난 돈이 아빠나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럼 무슨 선물을 줄래?"
"아직 내가 생각할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있어."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3. 7. 06:38

일전에 여권상 생일[관련글 보기]을 맞아 사람들로부터 축하를 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빌뉴스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로부터 풍선에 그려진 케익도 받았다. 그때 여러 선물에 취해 축하엽서를 열어보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교과서 속에 끼어져 있던 엽서를 어제서야 열어보았다. 한마디로 깜짝 놀랐다. 
만년필로 반듯하게 써진 한국어 문장이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인으로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예쁘게 잘 썼다. 


컴퓨터 글쓰기에 익숙해진 지 오래라 이렇게 직접 손으로 쓴 글을 보면 더욱 정감이 간다. 열심히(?) 가르쳐주신 선생님에게 드리는 축하엽서라 틀리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

이들 학생들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빌뉴스대학교에서 지금까지 약 50시간 정도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어를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3. 22. 07:03

21일 학교에서 돌아온 초등학생 딸아이는 부엌에 있는 켬퓨터로 페이스북 소식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빠 방으로 와서 물었다.

"아빠 페이스북에 왜 생일 축하 쪽지 하나도 없어?"

21일이 생일이다. 페이스북 친구가 현재 1191명이다. 이 정도 숫자라면 생일날 페이스북은 생일 축하 쪽지나 카드로 도배될 수 있다(2월 16일 실제 그랬다). 이에 딸아이는 아빠 페이스북에 생일 축하 쪽지 하나도 없는 것이 이상해 질문을 했던 것이다.

"아빠는 벌써 2월 16일에 엄청 많이 받았어."
"그래도 오늘이 진짜 아빠 생일이잖아."

딸아이는 부엌으로 돌아갔다. 얼마 후 내 페이스북에 딸아이의 쪽지가 보였다. 어디서 찾았는지 태극기가 배경인 생일 축하 카드가 함께 있었다. 정확히 맞는 설명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유까지 설명했다. 


어렸을 때 딸아이는 늘 그림을 그려서 아빠의 생일을 축하했지만, 이젠 이렇게 페이스북의 쪽지로 축하한다. 아래는 4년전 딸아이가 해준 생일 축하 그림이다. 


언젠가 한 해에 세 번이나 생일 축하을 받은 적이 있다. 태어난 음력일이 적힌 여권상 생일날, 음력 생일날, 그리고 태어난 해의 양력 생일날였다. 몇 해전 가족들이 혼란스러우니 셋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결론은 양력 생일날인 3월 21일이다. 

"저녁에 어디 가서 식구끼리 외식하자!"라고 아내가 제안했다.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의 마치고 돌아오면 피곤할 거야. 그냥 평일처럼 생일을 보내자. 더욱이 어제 끓인 미역국을 오늘 낮에 먹었으니 충분하지 뭐."라고 답했다.

강의 후 집으로 돌아와 내 책상에 와보니 깜짝 선물이 놓여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케익에서 딸기냄새가 퍼져나왔다. 그래도 가장(家長) 생일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아내와 딸이 몰래 구입해서 올려놓았다. 


잠시 후 현관문에서 누군가 우리 집 비밀 코드를 누르는 소리가 났다. 극소수 친척만 알고 있다. 가깝게 지내는 친척 가족이 찾아왔다. 조용히 보내고자 한 생일이 이렇게 뜻하지 않게 손님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페친 천명에 생일 쪽지 하나 받지 못한 불쌍한(?) 아빠에게 태극기 생일 쪽지를 재빨리 보낸 딸아이의 이날 반응이 돋보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2. 6. 24. 08:02

일전에 한 리투아니아인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 탁자 위해 놓여있는 엽서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딸이 아버지 생신에 보낸 축하 카드라고 했다. 그런데 가운데 뚫려 있는 구멍으로 보이는 그림에 의하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버지 생신에는 적합하지 않는 듯한 축하 카드로 보였다. 대체 무슨 내용을 전하려고 이런 카드를 선물했을까 궁금했다. 첫 면을 넘겨보았다.


내용인즉 "이 생신 축하 카드가 확실히 놀라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건배해요!"

 
엉덩이가 얼굴 부위로 반전하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에게 상상과 웃음을 주는 딸의 카드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 8. 7. 16:39

지난 8월 1일 모처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250km 떨어진 도시에 살고 있는 장모님을 방문했다. 폴란드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장에서 이날 곧장 장모님 도시로 향했다. 장모님은 7월 28일 65세를 맞이했다. 우리 부부가 이 에스페란토 행사때문에 참가못할 것 같아 8월 1일로 연기했다.
 
보통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5와 10이 되는 해에 생일잔치를 크게 연다. 이날도 온 일가친척이 다 참가했다. 이번 생신잔치의 한 특징은 바로 장모님이 참나무 다섯 그루를 심는 것이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고대부터 참나무를 성스럽고 기가 강한 나무로 여긴다. 생신을 맞아 참나무를 심는 일을 주창한 장모님이 이날따라 아주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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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가친척들이 물통을 들고 숲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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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나무를 정성스럽게 심고 있는 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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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참나무 주변에 보호대를 설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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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어놓은 참나무 곁에서 기념촬영하시는 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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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작업을 했으니 뒷풀이는 관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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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 들판, 파란 하늘, 하얀 구름, 그리고 사람들의 한가로움이 매력적이다.

이날 장모님이 다섯 그루를 심은 까닭은 다섯 명의 기념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다(1. 리투아니아 1000년 역사; 2. 장모님의 65세; 3. 처제의 35세; 4. 처조카의 25세; 5. 요가일래의 세례식). 이 다섯 그루 참나무가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기원한다.

* 관련글: 유럽인 장모의 사위 대접 음식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