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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모음2008. 9. 30. 05:56

아래 글은 1996년 어느 가을날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일은 고금을 막론하고, 또 일어날 수 있으니 혹 있을 부다페스트 여행자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폴란드에 거주하면서 부다페스트에 가면 우선 내가 머무르는 날을 계산하여 대중교통표를 반드시 산다. 이 표는 한달, 일주일, 3일, 하루치 등으로 판다. 3일 이상 머무르면 일주일표를 사고, 10일 이상이면 머무르면 한달표를 산다. 이 표만 있으면 버스, 지하철, 전차 등 모든 시내 대중교통수단(물론 택시는 제외)을 무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번에도(1996년 가을) 나는 1년 전에 일주일표가 500포린트(헝가리 화폐단위)이었는데 물가상승을 고려하여 700포린트라고 적어져 있는 표를 일주일표라고 생각하고 샀다.

학교 일을 마치고, "영웅광장" 근처에 있는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의 근무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간도 있고 해서 지하철 1호선을 탔다. 이 지하철은 19세기에 지어졌으며, 부다페스트의 명물 중 하나이다. 몇 정거장을 지나는 데 느닷없이 검표원이 나에게 표를 보여 달라고 한다. 나는 일주일표를 갖고 있으니,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표를 보여주었다. 아니, 그런데 이 표는 어제까지 유효한 3일표라 한다. 나는 사정을 말했지만, 꼼짝없이 벌금을 물어야 했다. 내가 헝가리의 물가상승을 너무 낮게 평가하였고, 그리고 자세히 확인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은 우리나라처럼 운전사를 통해서 요금을 직접 내지 않고, 어느 문이든지 타서 산 표를 천공기나 승차시간을 찍는 기계를 이용하여 유효화시켜야 한다. 검표원에 걸리지 않으면, 공짜로 탈 수 있겠지 하고 탔다가는 이렇게 낭패를 당하는 수가 많다. 특히 관광 철에 검표원들이 벌금을 부과하는 장면들을 여기저기 볼 수 있다. 이들 검표원들의 주된 대상은 바로 피부색이 다른 동양인들이다. 벌금은 1회 승차요금보다 수십 배하므로 조심해서 미리 표를 사는 것이 최고의 묘방이다.

기분도 좋지 않아 대사관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무조건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서서히 어둠이 오고 가로등도 하나 둘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인적도 그리 많지 않다. 이 길은 여름이 되면 관광객이 무척이나 많이 다니는 곳이다. 바로 "영웅광장"에서 오페라극장으로 이르는 길이다. 이런 곳에서는 완전히 당했다. 여러 해 동안 유럽에서 생활하면서 말로는 자주 들었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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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다페스트 영웅광장 (사진출처: budapest-tourist-guide.com)

한 50대 정도로 보이는 사람이 앞에서 나에게 다가와 자기 지갑을 보여주면서 영어로 환전을 하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자기 지갑을 보여주는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이러한 순간 앞쪽에서 검은 코트를 걸치고 손에는 무전기(사실 나중에 자세히 보니 핸드폰이었음)를 들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건장한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능숙한 영어로 "경제담당 특수경찰"이라고 소개하고 신분증까지 내밀면서 "여권검사"하려고 하니 여권을 보여 달라 했다.

내 옆에 있는 50대 남자는 순순히 여권을 제시했다.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분위기상 내 여권을 내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들은 친절하게 불법적으로 환전을 하지 말 것을 충고하면서 나를 안심시켰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이었다. 그들이 내 여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구석진 곳으로 나와 그 남자를 데리고 갔고, 그 남자는 얌전히 자기 지갑을 보여주었고, 그들은 여기저기 뒤지면서 위폐를 찾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지갑을 보여 달라고 했다.

직감적으로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구나 생각했다. 나는 어두운 곳에서는 보여줄 수 없다고 우기고, 더 밝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다시 한 번 경찰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들은 계속 친절한 척하면서도 위협적인 말을 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 마음을 거슬리지 않고, 지금 그들 손에 있는 내 여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갑을 손에 꼭 잡고 1달러짜리가 10개 정도가 있는 부분을 보여주면서 돈이 없다고 했다.

그들 중 한 명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얘기하는 가운데 다른 한 명이 내 지갑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지갑에서 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로소 그들은 여권을 돌려주었고, 다시 한 번 나에게 길거리에서 환전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돌아오는 길에 이들에게 당하지 않았다고 나는 회심의 미소까지 지었다.

집에 돌아와 지갑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1달러 사이에 끼워져 있는 100달러 지폐가 없어졌다. 다행히 그들은 100길드(네덜란드 화폐단위) 지폐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 돈으로 무사히 폴란드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느낀 것처럼 그들 셋은 결국 혼자 다니는 외국인들의 지갑을 지능적으로 터는 사기꾼이었다. 고향 같이 늘 푸근한 부다페스트에서 이런 일을 당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동유럽 어느 곳에서도 암시장에서 환전할 필요가 없다. 시내 곳곳에서는 합법화된 사설환전소가 많다. 여러 곳을 다녀보고 가장 좋은 환율을 제시하는 곳에서 바꾸는 것이 현명하다. 길거리에서 경찰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여권 검색하는 일은 나에겐 지난 4년 동안 딱 한 번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날 가짜 경찰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특히 으슥한 밤거리에서 있었다면 십중팔구로 이들은 외국 관광객(특히 동양인)들을 노리는 가짜 경찰들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들을 경계해야 하고, 저녁이나 밤에는 혼자 다니는 것을 피해야 한다.

* 관련글: 건물 1층이 3층에 위치한 부다페스트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