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첫면2015.01.07 09:32

이제 중학생 1학년인 딸은 성능 좋은 컴퓨터에 대한 욕심이 없다. 작은 노트북을 사용하기에 화면이 큰 컴퓨터를 사주겠다고 해도 그냥 만족해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미국에서 인턴생활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얻은 언니가 맥으로 갈아탔다. 그래서 화면이 15.7인치 노트북을 물려받게 되었다.

한번 컴퓨터를 손봐주려고 마음 먹었으나 실행하지 못했다. 그 동안 인터넷을 하는데 화면 여기저기에서 자꾸 광고가 뜬다고 몇 차례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참을 수 있을 정도겠지 생각하고 차일피일을 미루었다. 그사이 딸아이 부탁도 잠잠해졌다. 그런데 새해에 또 다시 부탁했다. 새해 첫날의 부탁이라 순간적으로 바쁜 일이 있었지만 손을 봐주기로 했다. 

같이 제어판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았다. 공짜 프로그램들을 사용하는 댓가로 광고를 뜰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몇몇 프로그램을 지워도 효과가 없었다. 한 두 개 프로그램을 더 지우니 이제 인터넷을 하는 중에 화면에 광고가 사라졌다. 딸아이의 감탄사가 지어졌다.
 
"아빠는 정말 사람이 아니야!!!"
"그럼, 뭔데?"
"하늘에서 온 천재야!!!"

꼴랑 컴퓨터를 좀 손봐줬더니 이렇게 딸에게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그동안 광고로 열을 얼마나 받았으면 이런 칭찬을 다 할까... 딸의 부탁을 내 일이 아니라 무심하게 대한 것에 미안해 칭찬에 하하 웃지를 못했다. 진짝에 해결해줄 것을 말이야....

* 광고창 괴롭힘 없이 인터넷을 즐기고 있는 딸아이


"어디 또 아빠가 컴퓨터 손봐줄까?"
"아니. 오늘 아빠 힘들었잖아. 이제 나를 위해 고생하지마!!!"

아빠가 고작 30여분 손봤는데 엄청나게 고생한 것으로 이해하는 딸아이... 

"너를 위한 것이라면 힘든 일도 힘들지 않지... "
'괜찮아. 이제 제일 안 좋은 것을 해결해줬잖아."


다음날 딸아이는 밀가루와 달걀을 엄마와 함께 가서 구입해 혼자서 집에서 직접 빵과자를 구웠다.



이렇게 맛있는 빵과자가 완성되었다. 촛불까지 켜놓고 아빠를 불렸다.


"이거 어제 컴퓨터 손봐준 것에 대한 선물이야."

"정말? 답례가 너무 값지다!!!"



컴퓨터 손봐줬다고 "아빠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렇게 보송보송한 빵과자까지 선물로 받다니 참 못난 아빠가 딸 가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이 요 경우가 아닐까 ㅋㅋㅋ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10.02 22:57

럽연합의 북동 변방국인 리투아니아에서도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 대학생들이 적지 않다. 한때 리투아니아 한인회 추석 명절에 초대된 이들의 숫자가 30여명이나 되었다. 지금도 집 주변에 있는 대형상점에 물건을 사려고 가면 한국말을 하는 아시아인을 종종 만난다. 이들은 다름 아닌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들이다.






우리 집에도 대학생 딸아이가 있다. 마르티나는 영국 에딘버러에서 공부하고 있다. 한국인 교환학생들을 떠올리면서 마르티나에게 언제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공부하러 가나라고 묻곤 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중동 국가, 한국, 미국에 있는 대학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여러 고민 끝에 한국은 이미 몇 차례 다녀왔기 때문에 미국을 선택했다. 올해 1월 초부터 수업이 시작되는 지라 비교적 따뜻한 미국 남부지방 뉴올리언스에 있는 대학교를 선택했다. 

한 두 주는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스웨덴에서 온 교환학생과 단짝이 되어 재미난 생활을 이어갔다. 유럽에서 누릴 수 없는 그런 삶을 겪었다. 개인용 비행기로 타고간 마이애미 해변에서 일광욕하기, 백만장자의 결혼식에서 유명 영화인과 춤추기, 지인이 총격에으로 중상을 입은 일, NBA 사무실에서 인턴쉽......

우리 부부가 마르티나에게 지출하는 미국 대학 생활비는 영국보다 2배나 더 많았다. 하지만 딸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는데 이를 반대할 부모가 어디에 있을까?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가운데 좋은 소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2달 동안 세인트루이스에 위치한 마스터카드(MasterCard)사에서 인턴쉽 자리를 얻었다. 마스트카드가 제공하는 두 달치 생활비와 월급이 기대보다 훨씬 높았다. 주변 친구들이 몹시 부러워했다. 


* 마르티나는 이번 여름 미국 마스터카드사 IT 부문, 유일한 유럽인 대학생 인턴쉽으로 일했다.  

 

이에 대한 마르티나와 친구와의 대화가 인상적이라 소개한다.
"난 아직 인턴쉽 자리를 구하지 못했어. 어떻게 넌 그렇게 좋고 큰 회사에 인턴쉽 자리를 얻게 되었나?"
"얼마나 많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니?"
"20개가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어."
"그러니까 아직 자리를 못구했지."
"그러면 너는 도대체 몇 군데 넣었니?"
"될 때까지 넣었지. 한 500개 회사에 넣었지."

교환학생을 마치고 마스터카드사에 인턴쉽을 가기 전까지 한 달간 공백이 생겼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미국으로 가자니 항공료가 들고 해서 마르티나는 이 기간 동안 가보지 못한 미국의 서부도시를 스웨덴 친구와 여행하고자 했다. 문제는 여행경비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마르티나 생활비는 우리 집 가계비에서 매달 2배가 더 나갔다. 


* 마르티나 금문교에서


아내와 상의했다.
"우리가 여행경비를 다 지불할 형편이 못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르티나에게 어느 정도 절제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그냥 지원하는 것보다 여행경비를 빌려주는 형식이 좋겠다."
"나중에 일정부분 탕감을 해주더라도 빌려주는 것에 나도 동의한다."

이렇게 3자가 합의했다. 한 달 동안 마르티나가 지출한 여행경비는 모두 3500달러였다. 인턴쉽 수입으로 다 갚고도 충분히 남았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마르티나가 기꺼이 갚을 것을 약속했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오면 정말 갚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 마르티나가 갚은 여행경비 중 일부


8월 중순 마르티나가 빌뉴스 집으로 돌아왔다. 두툼한 지갑에서 돈을 꺼내서 갚으려는 순간이었다. 흔쾌한 표정이 아니였다. 누구나 빌릴 때는 애걸볼걸하지만, 갚을 때는 생돈을 물어주는 것 같아 속이 쓰린다. 이런 표정을 보는 부모 입장도 별로다. 그래서 천달러 탕감해주었다. 실은 마르티나가 사온 선물을 가격으로 치면 약 천달러였다. ㅎㅎㅎ

여행경비를 돌려받으면서 우리 부부는 흡족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조건 다 준다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18세 이상 성인이 되면 스스로 경제적 능력도 키워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 뜻에 잘 따라준 마르티나가 고맙다."
"언니의 경우를 거울 삼아 요가일래도 앞으로 잘 따라하겠지."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03.14 09:07

근래에 들어와 학교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초등학교 6학년생 딸아이의 하교 시간이 늦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교에 남아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속 놓아두다가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아내가 수요일 저녁에 한마디했다.

"앞으로는 음악학교에 가지 않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한 시간 정도 늦게 돌아오는 것을 허락한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노는 것도 정말 중요해. 엄마가 이해해줘야지."
"그래도 안 돼. 숙제도 해야 되고, 음악학교에도 가야 되고."

아내의 결정이 쉽게 이해된다. 자녀들이 학교에 남아서 놀다보면 무슨 일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더욱이 사춘기에 점점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목요일이었다. 어머니의 결정을 하루도 안 돼서 잊어버렸는지 딸아이가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후 3시까지 돌아와야 했다. 딸아이는 3시 조금 후에 돌아오겠다는 문자쪽지를 보냈다. 그런데 시침은 점점 4시로 향해는데 딸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또 걱정이 되어서 쪽지를 보냈다. 


답은 이렇다:

내가 빨리 올게. 혼내지마. 친구를 혼내줬어. 엄마한데 내가 그렇게 늦게 왔는거 말하지마.


보통 한국 아이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어머니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정다감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무한한 사랑 그 자체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깥 양반 아버지는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회초리를 들고 훈계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른다. 

어제 목요일 한국어 수업시간에 리투아니아 대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무서워했나? 어머니를 무서워했나?"

한결같은 대답은 "어머니를 무서워했다."였다. 

"대체로 유럽 아이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무서워할까?"
"그럴 것이다."
"왜 그럴까?"
"그냥 대대로 ㅎㅎㅎ."

유럽 아이들이 부모가 혼내는 방법 중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바로 허리띠로 엉덩이 맞기다.

자, 왜 딸아이는 목요일 늦었을까? 
친구를 혼내주느라 늦었다고 했다. 여기서 혼내주다는 설득하다가 맞는 표현이다. 학교에서 딸아이가 근래 서로 친하게 지내는 아이가 딸(A)을 포함해서 셋(A, B, C)이다. 그런데 B가 C에게 삐져서 사이가 좋지 않다. B는 딸에게 더 이상 C와 같이 놀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딸아이는 수업이 다 끝난 후 학교에 남아서 B를 설득했다.

"결과는?"
"친구(B)가 조금 좋아졌어. 내일 학교에 가서 더 말해야 돼. 그런데 내가 오늘 늦었으니 내일(금요일)은 내가 놀지 않고 수업 끝나고 바로 집에 올게."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면 일주일에 두 번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키는 것이다."

딸아이의 부탁대로 어제 늦게 온 것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았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11.06 06:51

어제 11월 5일 딸아이가 만 12살이 되었다. 같은 띠를 만나는 뜻깊은 생일이라 다른 해와는 좀 다르게 축하해주고 싶었다. 가까운 친구들뿐만 아니라 같은 도시에 사는 일가 친척도 초대하기로 했다. 보통 생일 행사는 선물과 친구 초대였다. 


딸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아내는 역할 분담을 제안했다. 나는 12개의 풍선을 불어서 거실에 주렁주렁 매다는 것이었다. 공기를 넣는 도구가 있어서 힘은 덜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 학교에 돌아온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저 풍선 누가 매달었어?"
"내가."
"정말 고개 아파겠다."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들면서 풍선 12개를 매다는 일이 딸아이에겐 아주 어려운 일로 비쳐졌다. 바닥에서 풍선을 실로 묶어서 걸기만 했는데 말이다. 진실은 말하지 않았다. ㅎㅎㅎ 

자, 그럼 아내의 일은 무엇이었을까?

딸아이의 침대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딸아이가 가지고 놀았던 인형들을 모두 올려놓았다. 딸아이는 자기가 애주중지 사용하던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인형들을 상자 세 개에 다 담아놓았다. 


아내는 딸아이가 이제 12살이 되었으니 앞으로는 더 더욱 인형하고 놀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상자에서 인형 모두를 꺼내 전시했다. 마치 인형들이 그 동안 놀아준 데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는 동시에 생일을 축하케했다. 앞에는 긴 풍선을 놓았다. 풍선에는 한국어. 리투아니아어, 영어, 에스페란토 4개 언어로 "생일 축하해요"라고 썼다. 


학교에서 돌아와 자기 방에 들어온 딸아이의 반응은 그야말로 환상적었다. 엄마의 깜짝 축하에 기분이 최고였다. 

풍선을 불어 매달고, 미역국을 끓이고, 여러 음식을 요리하고, 손님들을 접대하는 데 하루 종일을 보냈다. 특히 아내의 인형 축하 발상은 최고였다. 인형들이 축하하면서 "이젠 어린 시절은 안녕!"이라는 암시를 하는 듯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딸아이는 행복한 생일을 보냈을 것이라 믿는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04.03 05:44

최근 인터넷에서 4컷짜리 만화를 접했다. 짧은 내용이지만 가슴에 와 닿아 소개한다. [출처 source link


아빠! 아들아, 지금은 안 돼 
아버지! 아들아, 지금은 안 돼 
아버님! 아들안, 지금은 안 돼 
아들아! 노인 양반, 지금은 안 돼

바쁘다는 핑계로 자녀와 놀아주지 않는 결과는 참담하다. 아빠하고 놀고 싶어하는 초등학생 딸에게 "지금은 안 돼"라고 종종 말하는 내 자신을 반성해보았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장모님댁으로 갔다. 계절로는 봄에 접어들었지만, 바깥에는 하얀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씨였다. 

차일피일 미루었던 발톱 손톱 깎기를 했다. 그런데 딸아이 손톱과 발톱도 깎아야 할 때였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주로 아빠가 깎아주었다. 그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해주면 웬지 아프게 하는 것 같아 딸아이는 거부해왔다. 

"옛날 생각해서 아빠가 한번 깎아줄게."
"알았어. 하지만 딱 손톱 하나만!"
"안 아프지?"
"그래."
"아빠가 다 깎아줄까?"
"좋아."

"발톱은 누가 깎았니?"
"내가 얼마 전에."
"별로 안 예쁘게 깎았네."
"사람들이 안 보잖아."
"보이지 않는 곳도 예뻐야지."


딸아이 발톱, 손톱 10개를 깎아주었으니 그 품삯으로 아빠 말을 잘 기억해주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11.19 10:31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는 잠들기 전 종종 묻는다. 특히 주말이면 더 잦다.
 
"아빠, 나 오늘 엄마하고 자도 돼?"
"엄마한테 물어봐."

"엄마, 나 오늘 엄마하고 자도 돼?"
"아빠한테 물어봐."

"아빠, 엄마가 말했는데 아빠가 결정하래."
"왜 엄마하고 자야 돼?"
"앞으로 내가 엄마하고 자는 날이 아빠가 엄마하고 자는 날보다 적으니까."
"어떻게?"
"나도 언니처럼 외국에 가서 공부하고, 또 결혼하면 엄마하고 자는 날이 없잖아."

"아빠보다 엄마하고 자는 날이 적다"라는 말에 그만 양보했다.

"그래 오늘만 엄마하고 자."
"알았어."

말이 오늘만이지......  그런 날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반적으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녀를 아기침대에서 재운다. 아기침대는 부모 침대 바로 옆에 둔다. 여유로운 방이 있을 경우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는 다른 방에 재운다.

물론 엄격한 부모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자기 방에서 혼자 자게 하고, 밤중에 깨어 울 때도 혼자 울다가 다시 잠들게 한다. 이는 아이의 자율과 독립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우리 집의 경우 위와는 다르다. 아이가 자기 방에서 혼자 울고 다시 잠들게 할 정도로 부모 둘 다 강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적어도 어렸을 때에는 부모와 함께 자면서 그 정을 느끼게 하는 것이 따로 재워 독립심을 키워주는 것보다 더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출산해서 얼마 동안에는 아기침대에 재웠다.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재웠다. 유치원에 다닐 때에는 따로 방을 주지 않고 부모 침대 옆에 어린이용 침대를 놓았다. 

* 만 다섯 살에 다른 방에서 혼자 자기 시도, 실패

물론 몇 차례 혼자 자고 싶다고 해서 다른 방에서 재우기를 시도해보았다. 만 다섯 살 무렵 어느 날 혼자 자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혹시나 자다가 침대에 떨어질까 걱정되어 온갖 조치를 취한 후 재웠다. 그런데 밤중에 일어나 울면서 부모 침대로 돌아왔다. 

* 일곱 살 무렵 온돌방에서 혼자 자기 시도, 실패

일곱 살 무렵 한국 여행을 하면서 혼자 온돌방에 자겠다고 우겼다. 결과는 뻔했다. 자다가 무서워서 더 이상 혼자 잘 수 없다고 해서 언니와 같은 방을 사용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부터는 혼자 방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 그런 지 지금도 부모 침대에서 자겠다고 한다. 이제는 세 사람이 자기에는 침대가 좁으니 아빠가 양보할 수밖에...... 

그렇다면 리투아니아 부모들은 부모하고 자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어떻게 설득할까? 며칠 전에야 아내가 이야기 했다. [관련글: 쥐가 줄 돈에 유치빼기 아픔을 잊는다]

'부모하고 같이 자면 네 이빨이 다 빠져! 이빨 빠지면 보기가 흉하지? 어서 네 방에 가서 자!'

"당신 이 이야기를 왜 이제 와서 해?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 했어야지."
"맞다."
"지금 이빨 다 빠진다고 이야기하면 안 믿지. 부모하고 안 자도 이빨은 다 빠지잖아."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2.09.24 06:01

여행을 떠날 때마다 고민꺼리 중 하나가 선물이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하나쯤 기념이 될만한 것을 선물로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최근 페이스북으로 통해 알려진 10장의 사진으로 구성된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이 누리꾼들 사이에 화제이다. 바로 세계여행중에 찍은 사진이다. 런던, 파리, 예루살렘 등 세계 각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세상에 저를 보내주셔서 아버님과 어머님께 감사합니다." 여행중에 이렇게 깜짝 사진 선물을 만들어 부모에게 준 아들이 대견스럽다. 박수 짝짝짝~~~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01.14 06:54

연초를 맞아 12일 저녁 리투아니아 현지인 에스페란토 사용자들과 모임이 있었다. 한 겨울인데 굵은 비가 쭈룩쭈룩 내렸다. 두꺼운 옷만 아니였다면 쉽게 여름으로 착각시킬 날씨였다.

갈까 말까 망설였다. 정말 모처럼 만나고 또한 모임 활성화를 위해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달갑지 날씨에도 가기로 아내와 같이 결정했다. 일반적인 모임이 다 그렇듯이 각자 마실 술과 먹을 음식을 가져왔다. 둘러앉은 책상 위에 놓으니 제법 먹고 마실 만한 양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어둡고 비내리는 밤 혼자 집에 있는 초등학교 4학년생 딸아이 요가일래가 간간히 떠올랐다. 그래서 아내는 불안하지 않고 잘 있는지 문자쪽지를 보냈다.

 
딸애: "숙제하고 있어."
아내: "(숙제가) 어려우면 연필로 해" (즉 아내가 돌아와 정답이면 연필 위에 만년필로 쓸 수 있도록)
딸애: "그렇게 하고 있어. 어렵지 않지만 (연필로 쓰고 있어). (내 걱정 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올 때 조심만 해. 아주 심하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있어."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가 이 문자쪽지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요가일래가 마치 우리 부모인 것처럼 쪽지를 보냈어."
"정말이네. 우리가 요가일래의 부모인지 아니면 요가일래의 자식인지 헷갈리네."

옛날 같으면 무서워서 혼자 집에 있고 싶지 않다고 생떼를 부렸을 법하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밤에 외출한 부모가 돌아올 때 조심하라고 문자쪽지까지 보낼 정도로 훌쩍 커버린 것 같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03.19 09:1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드디어 아빠로서의 의무 하나가 이번주에 끝이 났다. 홀가분하지만 웬지 끈 하나가 끊어진 것 같아 허전하기도 하다. 지난 3년 동안 거의 매일 행해오던 의무였다. 바로 딸아이 등교시키기다.
(오른쪽 사진: "학교 혼자 잘 다녀올게")

딸아이는 2008년 9월 1일 초등학교에 입학해 현재 3학년 2학기에 다니고 있다. 기약없이 지속될 것 같았는데 마침내 딸아이는 이번주 목요일부터 혼자 등교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800미터이다. 번잡한 사거리가 하나 있고, 큰 거리를 따라 가면 된다. 군데군데 신호등이 없는 사잇길이 있어 걱정스럽다. 갑자기 과속으로 튀어나오는 차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학년과 2학년일 때는 엄마와 번갈아가면서 등교를 시켰다. 물론 주된 당번은 아빠였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새벽에 잠들면 방문에 "don't disturb"를 붙여놓는다. 이런 날은 엄마가 데리고 가는 날이다. 2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하교 때 학교에 가서 데리고 와야 했다.

3학년이 되자 엄마는 등교시키기 일을 일체 아빠에게 미루었다. 적어도 집안 일 중 전적인 책임을 지고 해야 하는 일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또한 등교시키고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분이니 하루 운동량에 충분히 보탬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지난해 9월부터 매일 딸아이를 등교시키게 되었다.  

좀 더 일찍 혼자 등교할 수도 있었지만, 겨울철 어두운 아침 때문에 미루어졌다. 요즈음은 아침 7시면 사방이 훤하다. 그 동안 "30분이나 1시간만 더 잤으면 하루가 다 개운할 것인데"라며 진하게 아쉬워한 날들이 많았다. 딸아이 때문에 수업 받지 않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이제 졸업을 하게 된 셈이다. 학교까지 동행하는 의무는 벗었지만 여전히 작은 과제가 남아있다. 사거리를 건널 때까지 침실 창문을 통해 딸아이의 동선을 살피는 것이다. 녹음이 짙게 들면 이 일은 절로 할 수 없게 된다.
확대

등교시키기가 귀찮아 짜증이 났을 때 "도대체 너는 언제 혼자 학교 갈 수 있나?"를 묻곤했다. 그 언제가 바로 이번주였다. 이렇게 우리 집은 "역사적인 날"을 맞이했다. 늦은 듯하지만 자력을 얻어가는 딸의 모습이 흐뭇하다. 혼자 학교에 등교하고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스스로 자랑스러운 듯했다.

"봐, 나 이렇게 혼자 학교에 잘 가고 올 수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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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04.20 07:35

어느 날 딸아이가 아빠 왼손 등을 보더니 물었다.
"아빠도 문신했어?"
"이잉~ 문신이라니?"
"여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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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긴 약간 푸른 빛 문신(?)은 손등에서 손바닥까지 쭉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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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상처를 치료한 것이야."
"아빠, 어떻게 아팠는지 설명해줘. 정말 궁금해."

몇 년도인지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35년전쯤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겨울 어느 날이었다. 농한기에 아버님은 뒷방에서 볏짚으로 새끼를 꼬았다. 이 새키틀 돌아가는 소리는 천을 다듬는 방망이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어린 시절의 대표적인 추억 소리이다.

3살 아래인 동생과 함께 새끼틀 기어 이빨로 즐겨놀았다. 즉 엄지와 검지로 솜을 잡고 돌아가는 새끼틀 기어 이빨에 얹으면 돌아가는 기어 이빨로 느끼는 촉감이 좋았다. 위험하다고 말리는 아버님의 말을 듣지 않고 그만 검지손가락이 맞물려있는 두 개의 기어 사이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뼈가 훤하게 보일 정도로 상처가 깊었다. 시골이라 어디 치료해줄 의사가 없었다. 더군다나 밤이었다. 낫에 베인 작은 상처는 그냥 손으로 꼭 잡고 있으면 시간이 지나고 지혈이 되었다. 그런데 이때 입은 상처는 너무나 크고 깊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당시 부모님의 황당스러운 응급처치법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너무나 간단했다.
   1. 부엌으로 달려간다
   2. 솥밑에 붙여있는 그을음을 숟가락으로 긁어낸다
   3. 그 그을음을 상처 부위에 골고루 뿌린다
   4. 내 코를 푼다
   5. 그 끈적한 콧물로 그을음을 덮는다
   6. 천으로 칭칭 감는다 - 이상 치료 끝

병원이 있는 도시에 살았다면 전혀 다른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그을음과 콧물로 치료를 받은 후 그 다음 날 바로 줄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혹시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이렇게 치료를 받아본 사람들이 있는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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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종종 주위 사람 중 보기가 흉하니 수술로 제거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어린 시절 엽기적인(?) 응급처치였지만 왼손 중지를 바라볼 때마다 부모님의 따뜻한 보살핌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을 고이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04.01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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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부터 리투아니아 거리는 학생들의 부활절 방학으로 한산하다. 3월 30일(화요일) 큰 딸 마르티나가 만 18세 성인이 되었다. 일가 친척들은 일요일에 모며 축하를 해주었다. 그래도 태어나서 성인을 맞는 생일이니 마르티나는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밤새도록 생일잔치를 하고자 했다.

"월요일 저녁 친구들을 초대해 잔치를 하려고 하니 부모님은 외박해주세요."
"이잉~~ 방도 많은 데 한 구석에 있으면 안 되나?"
"다른 친구 부모들도 다 외박을 하는데...... 설겆이와 집청소도 말끔히 해놓을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내는 "만 16세 생일잔치 때 우리가 집을 비웠는데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음식을 준비해놓고 외박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의견을 내었다. 옆에 있던 작은 딸 요가일래는 모처럼 다른 곳에서 잠을 잔다라는 말에 박수치며 환호를 했다.

그런데 어디에서 외박하지?

이런 일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아내에게 호텔에서 하룻밤을 자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내는 호텔 하루 숙박비가 생일잔치 비용보다 더 비싸다고 손사래를 치며 반대했다. 리투아니아는 숙박료에도 부가가치세가 적용된다. 21%이다. 즉 일일 순수 숙박료가 10만이면 부가가치세 2만 1천원을 합쳐 고객이 내야 하는 비용은 12만 1천원이다.

그렇다면 누가 집에서 잘 것인지는 아내가 해결하라고 했다. 마침 출산으로 병원에 있는 머물고 있는 친척이 있었다. 월요일 아침에 방문해 태어난 아기도 볼겸 사정 이야기를 했다. 친척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교외에 있는 자신의 단독주택 열쇠를 선듯 내주었다. 이렇게 아내의 절약정신 덕분에 호텔 방 하나가 아니라 호텔의 독채 아파트를 빌린 셈이었다.

월요일 오후 친척 방문을 마친 후 아내는 딸의 생일잔치를 위해 부지런히 음식을 준비했다. 닭고기를 오븐에서 요리를 하면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이날만큼은 마르티나도 많이 도와주었다. 친구들이 오기 전에 집을 나서는 것보다 생일선물 전달식에는 참가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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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북을 생일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마르티나

저녁 6시경 15명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친구들은 돈을 모아 선물을 사는 데 보탰다. 우리 부부는 마르티나 남자친구와 은밀하게 생일선물에 대해 상의했다. 마르티나는 데스크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침대에서도 편하게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노트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싶어했다. 한 차례 노트북 구입 때문에 우리와 갈등을 빚었다. 모아놓은 자기 용돈으로 구입하겠다는 것을 낭비라는 이름으로 우리 부부가 반대했다.


그래도 성인이 되는 해인데 괜찮은 선물을 해야 하고, 그렇다면 원했던 노트북을 사주기로 했다. 영국에서 유학중인 마르티나 남자친구는 우리 부부가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친구들이 십시일반으로 약간의 돈을 모아 보태는 것을 제안했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 비용을 우리 부부가 지불하고 영국에서 노트북을 사가지고 왔다.

이렇게 모인 친구들은 18-20세로 모두 16명이었다. 식탁에는 김치와 밥이 빠지지 않았다. 생일축하 노래와 선물 증정을 마치고 우리 부부와 작은 딸 요가일래는 집을 빠져나왔다. 마르티나는 초콜릿을 들고 이웃집을 방문해 이날 밤 소란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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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잔치에 모인 마르티나 친구들. 한 친구가 젓가락질을 배우고 있다.

다음 날 낮에 집으로 돌아오니 마치 생일잔치가 없었는 듯 모두가 정리되어 있었다. 그릇이며 잔 등이 깨끗하게 씻어져 있었고, 쓰레기도 치워져 있었다. 빈 술병이 몇 개나 될까 궁금했는 데 흔적도 없었다. 믿고 집을 비워주기로 한 결정에 스스로 만족했다.

* 최근글: 유럽에선 이렇게 부활절 달걀을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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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01.2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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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4일 월요일을 일본은 성년의 날 공휴일로 만들 정도로 성대하게 치뤘다. 하지만 유럽의 경우는 특별히 법으로 성년의 날로 정한 나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년의식도 없다. 리투아니아 경우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 일반적인 생일잔치처럼 치룬다. 리투아니아는 만 18세가 되면 성년이 된다.

이제 2달 후 고등학교 2학년생 큰 딸 마르티나가 성년이 된다.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대학생 남자친구를 두고 있다. 지난 성탄절에 만나서 둘이서 마르티나의 성년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최근 엄마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성년을 맞는 생일은 영국 런던에서 남자친구와 보낼 것이라고 한다. 부모와 아무런 상의없이 성년계획을 세우다니 뿔이 났다. 그래서 가족이 모두 들어라는 뜻으로 큰 소리로 한 마디했다.
(위 사진: 성년의식을 행하는 일본인들; 출처: http://yeeta.com/_The_Best_Ads_of_Autumn_2009-4)

"18세 생일은 부모의 보호아래 행해지는 마지막 생일이다. 낳고 키워준 부모가 자식이 잘 자라서 마침내 성년이 되어서 둥지를 떠나는 아주 의미있는 생일이다. 이 생일을 부모없이 그것도 외국에서 보낸다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다."

마르티나가 15세 전후 친구들과 어울러 밤 늦게 들어오고 부모 말을 잘 안들었을 때가 있었다. 이런 대회가 종종 오고갔다.

"왜 부모를 말을 안 듣니?"
"난 친구 말을 더 신뢰한다."
"낳고 키워준 부모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내 인생은 내 것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마!"
"재워주고, 먹어주고, 학교보냈더니 기껏 한다는 말이 그것이니?"
"혼자 내 버려둬. 여긴 내 방이니까 문 닫고 나가주었으면 좋겠어."


부모 속이 천불나게 할만한 말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화가 치밀어도 한 방 때릴 수는 없었다. 이때 늘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말이 있었다.
"그래. 알았다. 하지만 만 18세가 될 때까지는 부모의 양육책임하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 18세 성인이 되면 모든 것을 네가 알아서 마음대로 해라."

이런 갈등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르티나가 곧 18세 성년을 맞는다. 성년이 되면 가장 좋은 것이 부모 동의나 제재없이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법적인 의미이다. 앞으로는 "나도 이제 성인이다. 간섭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들을 것 같다.

얼마 후 자기 방에서 나온 마르티나는 이렇게 말했다.
"18세 성년이 되는 생일은 가족하고 보낸다. 그리고 그날 내가 성인이 되었으니 영국 런던에서 남자친구하고 그 다음주를 보내기로 하겠다."
"영국 여행경비는?"
"부모가 성년식 선물로 주면 안 될까?!"
"이잉~~~~ 뭐라고????"


요즘 마르티나는 바쁘다. 일주일에 두 번 테니스를 배우러 다닌다. 운전면허 학습장에 다니고, 수학 과외도 받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남자친구가 다니고 있는 대학교에 유학가는 것이 목표이다. 학비와 생활비도 자기가 벌겠다고 한다. 이렇게 독립심 강한 성인의 모습이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기를 바란다.

* 최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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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09.10.21 08:07

리투아니아 초등학교의 숙제나 과제를 보면 아이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가족이 합심해서 하는 것도 종종 있다. 어제 한 과제물이 후자의 경우이다. 일년 농사 수확물이나 가을 상징물 등을 이용해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 모두 무엇을 만들까 여러 날을 고민했다. 여러 생각 끝에 딸아이 요가일래가 좋아하는 수박, 아빠가 좋아하는 애호박, 엄마가 즐겨먹는 감자 등을 이용해 거북이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필요한 재료를 구입해서 어젯밤 세 식구가 모여 함께 거북이를 만들어보았다. 과정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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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은 아니였지만, 가족이 다 함께 만든 (약간) 거북이를 닮은 작품을 보고 흐뭇해 한 요가일래에게 부모와 가족의 소중함을 상기시켜 주었다.

* 관련글: 그림으로 그린 7살 딸아이의 하루 일과
* 최근글: 아내의 제자들이 방문해 전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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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09.10.15 08:01

초유스 블로그의 주요 등장인물 중 한 사람인 요가일래는 늘 귀엽다는 댓글을 독차지하고 있다. 이 귀여운 요가일래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는 때가 있다. 바로 어젯밤이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직장에 돌아와 저녁 뉴스를 본 엄마는 요가일래 학습을 지도했다. 침실 방에서 한 동안 조용하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엄마의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부부 중 일방이 자녀에게 화를 낼 때, 우리 집은 일단 다른 한 쪽이 무관심과 무반응의 자세를 취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궁금했지만 참았다.
 
얼마 후 요가일래가 아빠 방으로 와서 울쩍이면서 아빠 품에 안겼다. 잠시 침묵이 흘렸다.
"무슨 일이니?"
"내가 모른다고 엄마가 화났어."
"사람은 모를 수도 있고, 화낼 수도 있지."

다소 화가 풀린 엄마에게 요가일래와 함께 갔다.
"한 시간 동안 목이 아파라 설명했는데 우박과 눈을 설명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아이에게 윽박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은 좋지 않지."
"그럼, 당신이 한번 가르쳐봐!"
"아뭏든 그거 하나 설명 못한다고 아이를 주눅들게 하지마!"
"내일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확인할 텐데. 모르면 부끄럽잖아!"
"윽박 질러 가르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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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박을 줍고 있는 리투아니아인 친구 사울류스

딸아이 학습지도 방식으로 부부싸움 일보 직전에 요가일래와 함께 방으로 왔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우박 동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시도해보았다. 눈이 왜 생기고, 우박이 왜 생길까? 눈은 무엇이고, 우박은 무엇인가? 눈과 우박은 무엇이 다른가? 자료를 보지 않고 가지고 있는 과학지식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초등학교 2학년이 모른다고 화를 내서야......

"요가일래, 내일 선생님이 모른다고 나무라면 이렇게 대답해봐.
선생님, 어려워서 아직 다 몰라요. 알 때까지 공부하겠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요가일래에게 몰라도 되니 마지막으로 눈과 우박에 대한 책설명을 한 번 읽어보자고 했다. 다 읽은 요가일래는 "아빠, 엄마에게 가서 내가 조금 더 알았다고 말해줘."라고 말했다. 책의 설명을 보니 정말 어려웠다. 전문서적 같다. 엄마도 나중에 미안해 했다.

딸아이에게 지금 이 순간 모른다고 창피감이나 자괴감을 느끼지 말도록 가르쳐 주고 싶다. 그 대신 모르니까 알고자 하는 호기심을 심어주고 싶다. 부모나 선생이 모른다고 아이에게 화를 내면 그 화로 인해 아이가 호기심을 상실할까 걱정스럽다.

학생의 모름과 선생이나 부모의 화냄이 연속된다면 학교로 가는 어린 학생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 관련글: "선생님, 한 번만 더 말해 줄 수 있어요?"
               시험 전 요점 정리 메일 보내는 선생님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