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월이 되면 꼭 에스페란토로 번역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노래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간절했다. 그래서 마음 다지고 수요일 오후부터 번역하고 악보 작업을 했다. 

노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이다. 먼저 이 노래의 탄생에 대한 동영상을 소개한다. 



번역할 가사는 위키백과에 나와 있는 것으로 작곡가가 2008년 백기완 원작 시구를 최대한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 소리치는 끝 없는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아래는 국제어 에스페란토 번역본이다.

Marŝo por la amato

Ne zorgu ni pri nomo, pri amo, pri glor' 
tra nia tuta vivo - varma ĵurparol'.

Sen spuro foras anoj, nur flirtas la flag';
vi do ne ŝanceliĝu ĝis la nova tag'.  
 
Kvankam tempo pasas plu, scias ĉiam mond'.
Vekiĝinte krias ni - la senfina son'.

Jam antaŭiras ni, sekvu vivulo nin.
Jam antaŭiras ni, sekvu vivulo nin.

 

올해따라 더욱 목이 메이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겠지...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1.02.01 06:03

현재 세계 각국의 누리꾼들은 "전쟁이 아니라 트위트(tweet)를"이라는 이집트 대통령에 보내는 청원서에 온라인 서명하고 전개하고 있다.

최근 튀니지는 민주화 시민 혁명으로 23년 독재 통치를 종식시켰고, 대통령은 가족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이 튀니지의 민주화 물결은 이집트로 번져 날로 격화되고 있다.

이집트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30년간 통치에 항의하고 그의 퇴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 시위 과정에서 사망 희생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집트 당국은 기자와 사진기자들을 구금하고 구타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독립 신문사 두 개의 웹사이트를 폐쇄했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포함한 인터넷 사회교제망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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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세계 누리꾼들은 언론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고 국민들에게 언론자유를 허용할 것을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보내는 청원서에 서명하고 있다. 4만명 목표에 2월 1일 0시 현재 시각 서명자는 2만 5천명을 넘어섰다.

* 청원서 서명하러 가기: http://www.thepetitionsite.com/1/tweets-not-war/

아내의 친척 중 한 사람의 남편이 이집트 사람이다. 그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살고 있다. "현재의 이집트 상황은 1990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과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상황과 똑 같다."라고 평했다.

* 관련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를 카메라에 담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1.01.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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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13일 - 2011년 1월 13일

1월 13일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다. 특히 올해는 20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이날을 맞아 리투아니아 다양한 국가행사를 열었다. 그렇다면 1월 13일은 어떤 날인가?

공산세력권이 점점 약화되고 있던 1990년 리투아니아 최고회의 선거가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치러졌다.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유디스가 141석 중 101석을 차지했고, 란드스베르기스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새로 구성된 최고회의는 소련의 모스크바가 연방탈퇴법을 제정하기 전인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가 독립국가임을 선언했다. 이 선언문은 6명의 폴란드인 위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서명했다.

(오른쪽 사진: 소련군대 무력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묘소)

독립은 선포되었지만, 여전히 소련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소련 KGB가 활동하고 있었다. 최고회의는 리투아니아 내에서 소련 헌법과 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소련은 탈퇴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당시 고르바초프가 탈퇴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가 없었다.

제2차 대전 후 리투아니아에 유입된 러시아인들이 약 30만명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특권 상실, 국적법, 무시하고 배우지 않은 리투아니아 국어 등을 두려워했다. 러시아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에 여전히 남았고, 24만여명 폴란드인 주민들에게 복종하지 말고 자치권을 요구하도록 충동질했다. 두 소수 민족은 반정부 시위를 조직했고, 모스크바에 편지를 보내 리투아니아에 소련체제 재건을 요구했다.

1991년 1월 10일 고르바초프는 소련헌법의 우월성을 인정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리투아니아 최고의회가 이를 거부하자 소련군대가 움직였다. 1월 11일부터 소련군대는 언론회관, 국방부, 경찰학교 등을 점령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소속기관으로 와서 지킬 것을 호소했고, 수천명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국회의사당과 텔레비전 타워를 요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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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국회의사당에 당시 소련군대로부터 국회의사당을 보호한 장벽들이 보관되어 있다.

1월 13일 소련군 특수부대가 탱크를 동원해 텔레비전 타워를 공격했다. 비무장 군중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곤봉을 휘둘렸다. 이 과정에서 14명의 사망자와 6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빌뉴스에서 방송을 내볼 수 없게 되자 리투아니아 정부는 즉각 카우나스(Kaunas) 텔레비전을 활용해 전국으로 방송했다. 아래 동영상은 1991년 1월 13일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은 전세계로부터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슬란드가 최초로 1991년 2월 리투아니아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1991년 8월 19일 모스크바에서는 소련제국 구하기 쿠테타가 일어났다. 3일만에 쿠데타가 진압되었고, 보리스 엘친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1991년 8월 25일 러시아, 9월 2일 미국 등 세계 각국이 리투아니아 독립국가를 인정했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9월 17일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1993년 8월 31일 마지막 소련군대가 리투아니아를 최종적으로 떠났다. 이는 곧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2차 대전의 진정한 종말을 의미한다.

* 최근글: 여자의 몸을 그리면 쉽게 개를 그릴 수 있어
              
Posted by 초유스
영상모음2010.05.19 15:58

16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행사에 개그맨 노정렬씨의 발언이 한나라당 조전혁 국회의원에 대해 모욕과 욕설에 가까운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조 의원은 “관련자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관련기사 연결).  

관련기사에 따르면 “명예훼손 걱정할 거 없다. 명예훼손이라는 것은 훼손될 명예가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거지 훼손될 명예가 없는 개나 짐승 소는 물건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명예훼손이 안 된다”고 개그맨 노정렬씨가 말했다. 조 의원을 ‘짐승’에 비유한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하자 과거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의 동영상이 떠올랐다. 이 동영상은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여의도극단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빗대 성적 비하와 욕설이 난무한 공연을 담고 있다. 노정렬씨는 직업이 개그맨이지만, 이들은 국회의원이다.


아래는 보면 볼 수록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 분의 동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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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10.29 17:07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입법권자는 국민의 구속을 받고, 국민의 뜻에 부합하기 위해 합의를 도출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므로 합의없는 결정은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에 위배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민주당 등이 낸 "방송법 등에 대한 심의·의결권을 침해당했다"는 사건과 관련해 일사부재의원칙을 위배한 방송법 수정안 및 대리투표가 자행된 신문법 수정안의 가결 선포행위는 위법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렇게 결정된 미디어법이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절차는 위법인데 가결은 합법이다.

국민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중대한 국가사안을 결정할 때마다 한국 국회는 단상점거, 회의실 문폐쇄, 주먹다짐, 욕설난무 등으로 그 동안 열심히 한국의 존재를 세계에 널리 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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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신문에 게재된 미디어법 처리과정의 한국 국회
 

국회에 이어 헌법재판소는 "절차는 위법인데 가결은 합법이다"로 한국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헌재재판소가 스스로 상식으로 보편된 민주주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 절차가 위법해도 집권여당이 가결하면 이는 민주공화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 이것이 민주일까? 독재일까?

대한민국 최고의 법전문가로 구성된 헌법재판소가 민주와 독재를 구별하지 못하니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웃음거리가 안 될 수가 없다.

민주주의의 꽃과 핵심은 바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최선의 결과를 창출하는 합의과정에 있다. 그런데 이 합의과정이 위법인데 어떻게 그 결정이 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는 헌법 제1조를 사수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스스로의 책무를 망각한 결정이다. 이번 결정으로 헌법재판소는 현재의 대한민국 민주주의 위기를 만천하에 폭로한 꼴이 된 셈이다.

* 관련글: 한국 국회, LT 최대신문 1면에 등장
               미친 국회 다시 한국 먹칠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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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