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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0. 10. 15.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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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 때문에 늦게 잠에 들고 일찍 일어난다. 수면 시간이 서너 시간이다. (▲ 요가일래의 집과 학교가 들어가 있는 구글지도)

"오늘도 늦게 잠들텐데 내일 아침 당신이 좀 딸아이 등교하는데 동행하지?"라고 아내의 마음을 떠본다.
"나는 아침 준비해야 되니까, 당신이 같이 가! 올해는 당신이 등교시켜!"라고 답한다.

피곤하지만 가정 평화를 위해 운동 삼아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 요가일래를 학교까지 동행하고 돌아온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나? 안전하게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면 사실 마음이 편하다. 하교 때는 집이 같은 방향에 있는 반 친구들과 함께 오니까 마중가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음악학교다. 집에서 약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며칠 전에는 혼자 집으로 돌아올테니 음악학교까지 오지 말고 집 근처 사거리 신호등에서 기다려라고 말했다. 딸이 집으로 돌아올 길을 같이 음악학교에 있던 아내가 알려주었다.

신호등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보다 딸이 돌아올 길을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보여야 할 딸은 보이지 않고 음악학교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 거리에는 왕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허름한 구석도 군데군데 있다. 이날따라 휴대전화를 집에 놓고 나왔다.

어쩌면 길이 엇갈려 벌써 집에 왔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빠른 걸음으로 집을 향했다. 하지만 혹시 뒤에서 따라올 같아서 자꾸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딸아이는 태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불편한 마음과 안도스러운 마음이 교차되었다. 약속 위반에 화를 내고 싶었지만 무사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이를 누그려뜨렸다.

"어떻게 된 일이니?"
"오다가 길을 바꿨어. 아빠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어."
"약속을 어긴 너도 잘못했고, 전화를 챙기지 않은 아빠도 잘못했네. 다음엔 길을 바꾸지 마라."


그 이후 어느 날 이 새로운 길이 아니라 기존 길을 따라 오라고 했다. 복잡한 사거리를 건너니 딸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만나자마자 딸은 상황을 설명했다.

"아빠, 오늘 길을 바꿨어. 이쪽으로 오는 데 저 앞에서 술취한 남자가 내쪽으로 오는 것을 보았어. 건너쪽을 보니까 아줌마들이 많이 가고 있었어. 그래서 건너쪽으로 갔고, 술취한 남자가 지나가자 다시 이쪽으로 왔어."  
"이야, 정말 잘했다. 다음에도 앞쪽을 잘 살피고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피해서 가! 알았지? 물론 길 건널 때 차를 조심해야겠지."
"아빠, 리투아니아 거리엔 낮에도 술취한 사람이 있는데, 한국엔 술취한 사람이 없어서 좋았어."

벌써 2년 전이었다. 한국을 한 달 동안 방문한 요가일래는 거리에서 술취한 사람을 보지 못한 것을 기억하면서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이런 딸에게 그 자리에서  "밤이 되면 한국에도 술취한 사람이 여기저기에 많아."라고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가 자라고 나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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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창덕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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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X를 타고 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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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