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8.02.18 07:09

만 100년 전 1918년 2월 16일은 
리투아니아 역사에 대단히 중요한 날이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졌던 리투아니아는 
3차 3국 분할로 인해 1795년부터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러시아 제국이 쭉 지배을 해오다가 
1차 대전 중인 1915년 독일 제국이 점령했다. 
독일점령하에 리투아니아 평의회 20명 회원이
1918년 2월 16일 리투아니아 독립을 선언했다. 

참고로 리투아니아는 1919년 9월
대한민국을 정식으로 승인한 국가 중 하나이다.

10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2월 16일 하루 종일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어울러 
축제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특히 어둠이 다가오자
가장 중심가 거리인 게디미나스 거리에는 
모닥불 100개가 불을 밝히고 경축 인파들에게 온기를 전해주었다.
1990-1991년 소련에서 다시 독립할 때 모닥불을 피우고 
목숨을 걸고 국회와 방송탑을 지키던 
용감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을 만나는 듯했다.  


 

많은 건물들은 
리투아니아 국기 색인 노랑 초록 빨강 색깔로 조명 장식이 되었다.
이날은 그야말로 삼색으로 하나된 하루였다.




이날 삼색 조명의 압권은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빌뉴스 대성당 종탑이었다.
   


집 근처 공익광고의 문구가 눈어 확 들어왔다.
리투아니아 재건 독립의 상징적인 인물은 요나스 바스나비츄스의 말이다.

"역사는 당신에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다" 



이 광고를 보니 평창 동계 올림픽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문구의 "역사"는 "통일"로 변했다.

"통일은 당신에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4.02.11 05:15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흔히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언제 클까"일 것이다.

엉엉 울어대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왜 우는지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
일일이 밥을 먹여주어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숟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옷을 챙겨 입혀주어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있을까?"
머리를 빗겨 묶어주어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머리 손질을 할 수 있을까?"
학교 입구까지 손잡고 등교시켜야 하는 아이에게서 "언제 커서 스스로 학교에 갈 수 있을까?"

자녀를 키우면서 접하는 이런 물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씩 저절로 해결된다.
딸아이는 만 12살로 한국으로 치면 곧 초등학교 6학년을 졸업하고, 3월에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다. 리투아니아는 초등학교가 4년제라서 중학교 2년생이다. 
    
최근까지 매주 금요일은 딸아이를 깨워 아침밥을 챙겨 주고 학교에 보내는 일을 맡았다. 늦은 밤까지 일하고 서너 시간 잔 후에 아침 7시에 일어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입에서 절로 나오는 질문이다.

"너는 언제 커서 스스로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가나?"
"아빠도 힘들지? 아직 내가 어리니까 아빠가 도와줘야지."
"빨리 스스로 혼자 아침밥 챙겨 먹고 갈 수 있도록 하면 참 좋겠다."
"그래도 아빠가 깨워주고 아침밥을 준비해주면 좋잖아."

드디어 때가 왔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딸아이는 꼭 3일째 이를 반복했다. 한국에서 돌아온 지 아직 일주일이 채 안 된 지난 목요일 시차병으로 자명종없이 새벽에 일어났다. 일어나니 다섯시였다.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감기에 완쾌된 몸이 아직 아니지만 하루 일을 시작했다.

6시 20분 누군가 방문에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랐다. 딸아이가 교복을 입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환영처럼 보였다. 딸아이는 아침 7시 10분경 깨워야 일어난다.

"네가 웬일이야?"
"아, 이제 혼자 일찍 일어나기로 했어."
"그래? 잘 했다. 씻고, 스스로 아침밥을 준비해봐라."
"알았어."

딸아이 아침밥은 사실 간단하다. 빵 두 조각에 버터를 바르고, 뜨거운 물에 코코아와 우유를 타는 것이다.

* '부모님, 이제 아침 늦게까지 편히 주무세요. 제가 알아서 아침밥 먹고 학교에 가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지난 12년 동안 딸아이는 부모로부터 보살핌을 받았다.  

한국 부모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유럽인 자녀들은 이렇게 일정한 나이에 도달하면 스스로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간다. 큰딸 마르티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혼자 챙겨 먹고 등교했다. 

아, 이렇게 해서 난생 처음 작은딸 요가일래는 2014년 2월 6일 스스로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 먹고 학교로 가기 시작했다. 아내와 나는 자명종을 맞춰놓고 딸아이를 깨우고 아침밥을 챙기는 일에서 마침내 해방된 셈이다. 자고 싶을 때까지 잘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1.01.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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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월 13일 - 2011년 1월 13일

1월 13일은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다. 특히 올해는 20주년을 맞이한 날이다. 이날을 맞아 리투아니아 다양한 국가행사를 열었다. 그렇다면 1월 13일은 어떤 날인가?

공산세력권이 점점 약화되고 있던 1990년 리투아니아 최고회의 선거가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치러졌다. 독립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사유디스가 141석 중 101석을 차지했고, 란드스베르기스가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새로 구성된 최고회의는 소련의 모스크바가 연방탈퇴법을 제정하기 전인 1990년 3월 11일 리투아니아가 독립국가임을 선언했다. 이 선언문은 6명의 폴란드인 위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서명했다.

(오른쪽 사진: 소련군대 무력진압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묘소)

독립은 선포되었지만, 여전히 소련 군대가 주둔해 있었고, 소련 KGB가 활동하고 있었다. 최고회의는 리투아니아 내에서 소련 헌법과 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소련은 탈퇴를 승인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당시 고르바초프가 탈퇴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가 없었다.

제2차 대전 후 리투아니아에 유입된 러시아인들이 약 30만명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특권 상실, 국적법, 무시하고 배우지 않은 리투아니아 국어 등을 두려워했다. 러시아인 공산주의자들은 소련 공산당에 여전히 남았고, 24만여명 폴란드인 주민들에게 복종하지 말고 자치권을 요구하도록 충동질했다. 두 소수 민족은 반정부 시위를 조직했고, 모스크바에 편지를 보내 리투아니아에 소련체제 재건을 요구했다.

1991년 1월 10일 고르바초프는 소련헌법의 우월성을 인정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리투아니아 최고의회가 이를 거부하자 소련군대가 움직였다. 1월 11일부터 소련군대는 언론회관, 국방부, 경찰학교 등을 점령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국민들이 자신들의 소속기관으로 와서 지킬 것을 호소했고, 수천명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국회의사당과 텔레비전 타워를 요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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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국회의사당에 당시 소련군대로부터 국회의사당을 보호한 장벽들이 보관되어 있다.

1월 13일 소련군 특수부대가 탱크를 동원해 텔레비전 타워를 공격했다. 비무장 군중을 향해 총을 발사하고 곤봉을 휘둘렸다. 이 과정에서 14명의 사망자와 6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빌뉴스에서 방송을 내볼 수 없게 되자 리투아니아 정부는 즉각 카우나스(Kaunas) 텔레비전을 활용해 전국으로 방송했다. 아래 동영상은 1991년 1월 13일 당시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피의 일요일 사건은 전세계로부터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슬란드가 최초로 1991년 2월 리투아니아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다. 1991년 8월 19일 모스크바에서는 소련제국 구하기 쿠테타가 일어났다. 3일만에 쿠데타가 진압되었고, 보리스 엘친이 통치하기 시작했다.

1991년 8월 25일 러시아, 9월 2일 미국 등 세계 각국이 리투아니아 독립국가를 인정했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9월 17일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1993년 8월 31일 마지막 소련군대가 리투아니아를 최종적으로 떠났다. 이는 곧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2차 대전의 진정한 종말을 의미한다.

* 최근글: 여자의 몸을 그리면 쉽게 개를 그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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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모음2010.03.07 08:00

현재 대통령이 여성이고, 국회의장이 여성인 나라가 어느 나라일까? 여성이 국회의장이나 대통령이 되거난 혹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는 나라들도 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이에 대해서는 선입관이 없다. 그래서 최고 권좌에 여성을 올리는 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한국은 장관 자리에 여성을 앉히는 데에도 종종 논란이 인다.  

현재 대통령, 국회의장, 국방부 장관이 모두 여성인 나라가 리투아니아이다. 지난 2월 16일은 리투아니아 가 1918년 제정 러시아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이 날 대통령궁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 사열하는 여성 대통령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기념으로 대포를 쏠 법도 한데 총을 쏘았다. 리투아니아 경축일에는 보통 중세시대 대포를 쏘는 데 이 날은 없었다.  


사열에 이어 국기게양식, 그리고 대통령 연설이 이 기념식의 전부였다. 혹시 경기불황으로 기념식의 너무 소박함이 독립의 웅장함을 짓눌러버린 것이 아닐까 해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최근글: 아기 때부터 영어 TV 틀어놓으면 효과 있을까

폴란드 여대생의 유창한 한국어
가장 아름다운 멕시코 여성 10인
가장 아름다운 베트남 여성 9인
가장 아름다운 폴란드 여성 10인
한국에 푹 빠진 리투아니아 여대생
세계 男心 잡은 리투아니아 슈퍼모델들
미국 부통령, 우크라이나 여성들 세계 최고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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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10.03.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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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을 즈음해서 늘 한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이 떠오른다. 리투아니아도 오랜 세월 동안 제정 러시아와 소련의 지배를 받았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소련 시대의 비밀경찰 KGB의 눈을 피해서 금서들을 펴낸 리투아니아인을 여러 해 전에 만났다.

북동유럽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 교외에 살고 있는 비타우타스 안줄리스(79)이다. 그는 1980년 양봉을 하면서 민족주의자 워자스 바제비츄스를 알게 되었고, 이들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과 신앙심을 키우는 종교서적을 펴내기로 뜻을 모았다.

이들은 각자 성의 첫 글자를 따서 'ab'라는 비밀인쇄소를 만들어, 1990년 리투아니아가 소련에서 독립할 때까지 10여년 동안 철저히 금지된 반체제와 종교 관련 서적들을 몰래 인쇄해 보급했다.

이 비밀인쇄소는 기막히게 숨겨져 있다. 비타우타스는 언덕 비탈에 위치한 온실에 시멘트 구조물로 수조와 묘목판을 만들었다. 이 묘목판 중앙에는 관수용 수도관을 세웠다. 이 수도관을 돌리면 기계가 작동해 수조를 이동시켜서 묘목판과 수조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 틈이 바로 비밀인쇄소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는 2년에 걸쳐 30m 굴을 경사지게 파고 중간 중간에 철문을 세워놓았다. 비밀인쇄소는 지하 7m에 위치해 있다.

비타우타스는 고물 인쇄기 3대를 구해 직접 인쇄기 1대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23개 책제목 138,000부를 찍었다. 가장 위험하고 아끼는 책은 1939-40년 스탈린과 히틀러가 발트 3국을 분할 점령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현재 당시 사용했던 인쇄기와 서적 등을 보존 전시해 방문객들에게 역사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근대 리투아니아 지배 체제로부터 탄압받은 출판 역사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그의 개인 박물관은 이제 리투아니아 국립 비타우타스 전쟁박물관 분원되었다. 당시 비밀경찰 KGB는 어디에서 누가 이런 금지된 서적들을 인쇄하는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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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인쇄소 입구 앞에서 비타우타스 안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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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우타스(가운데), 비타우스 부인(오른쪽), 그리고 요가일래와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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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타우타스님께 한국에서 가져온 기념품을 선물

일가족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금서를 펴낸 이유를 묻자, 그는 "총보다 인쇄물을 더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인쇄 일을 하는 내가 인쇄했을 뿐이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를 만날 때마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는 변화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 최근글: 한국 스티커 때문에 폭로협박에 눈물 흘리는 딸아이

Posted by 초유스
기사모음2009.09.0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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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발트의 길"이 20주년을 맞이한 해이다. "발트의 길"은 1989년 8월 23일 당시 발트 3국의 시민 200여만명이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라트비아 수도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이르는 총길이 678km를 인간띠로 연결한 길을 말한다.
(오른쪽 이미지 출처: http://balticway.net/)
 
1939년 8월 23일 독일 외무장관 리벤트롭과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가 각각 히틀러와 스탈린의 명을 받고 독소불가침조약에 서명했다. 몰로토프-리벤트롭 조약으로 불리는 이 조약은 유럽에서의 소련과 독일의 영향권역을 분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비밀조항으로 소련이 발트 3국을 점령하게 된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약 체결 50주년을 맞은 1989년 8월 23일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몰로토프-리벤트롭 조약의 비밀조항 인정과 발트 3국 독립을 요구하는 "발트의 길" 시위를 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발트의 길"은 유럽과 세계 역사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비폭력 평화 시위는 작은 나라 3국의 민족자결성을 높였고,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또한 소련 전역의 민주화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올해 가장 주목 받은 행사는 바로 "발트를 위한 심장박동"으로 이름 지어진 24시간 이어달리기였다. 이 이어달리기는 20년 전 당시 "발트의 길" 궤적을 그대로 따라 19,241명이 참가해서 구간별 이어달리기를 했다. 이들은 평화, 단결, 독립의 "발트의 길" 정신을 계승하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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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8월 23일 발트3국 678km를 200여만명이 인간띠를 이루었다. (사진출처: balticway20.com/)

한편 발트 3국 총리들은 이 날을 맞아 스탈린주의와 나치주의를 비난하는 성명에 서명했다. 이들은 몰로토프-리벤트롭 조약이 소련의 발트 3국 점령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유럽연합이 스탈린주의가 나치주의만큼 인류에 큰 피해를 주었음을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리투아니아 사람들 78%가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사죄해야 한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러시아의 유력 정치인 율리 크비친스키는 몰로토프-리벤트롭 조약은 합법적이기 때문에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폴란드 방문에서 러시아 국무총리 푸틴은 "많은 나라들이 당시에 크든 작든 실수를 했다. 부패한 빵에서 건포도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면서 과거 논쟁을 달가워하지 않고 있다.

리투아니아 외무부 장관 비가우다스 우샤쯔카스는 "우리가 전체주의를 증오하듯이 스탈린주의를 증오한다. 우리는 러시아가 히틀러를 이긴 것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언젠가 러시아가 다른 민족의 시각에서 바라보면서 스탈린주의가 저지른 죄를 평가하는 시간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2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이 "발트의 길"이 유네스코의 "세계기억" 리스트에 등재되어 세계기록유산으로 보호받게 돼서 더 큰 의미를 더했다. 이 "발트의 길"로 발트 3국은 독립을 획득했지만, 러시아의 관계는 아직도 긴장과 갈등 속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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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 방문에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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