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5.04.10 08:47

모처럼 온 식구 4명이 요즘 함께 생활하고 있다. 부활절 휴가로 큰딸이 아직 집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우리 집 식탁에 있었던 일이다. 숟가락이 필요했다. 숟가락통 가까이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부탁했다. 숟가락을 아래와 같이 주었다. 


잠시 후 또 다른 숟가락이 필요했다. 여자 셋 중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자기가 갔다주겠다고 했다. 숟가락을 아래와 주었다. 


"어, 누구는 저렇게 주고 너는 이렇게 주네."
"나는 항상 이렇게 줘."
"한국 사람들처럼 주는 법을 어떻게 알았는데?"
"어릴 때부터 내가 스스로 생각했지. 뭐든지 받는 사람이 더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줘야 한다는 것을..."
"잘 생각했네."
"난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


그렇다. 어린 시절 숟가락 등을 줄 때는 항상 받는 사람이 편하도록 줘야 한다고 가르쳐주시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내 자식은 내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어릴 때부터 알았다고 하니 기특한 생각이 절로 나왔다. 부모된 기쁨을 느낀 순간이었다.

오래 전 한국에서 살 때 생맥주집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지인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생맥주 잔에 술을 붓고 잔을 돌리는 일을 내가 맡았다. 손잡이가 없는 맥주잔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잔 윗부분을 잡고 돌렸다. 그때 옆에 있던 한 어른의 지적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잔을 돌릴 때마다 그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는 부분을 손으로 잡고 주면 안 되지 않느냐라는 것이다. 지당하신 말씀이다. 짧은 한 순간의 가르침이 이렇게 오래도록 각인되어 있다.

주고 받는 예법은 나라마다 다른 경우가 있다. 유럽 리투아니아 사람들과 살면서 겪은 주고 받기 예법을 하나 소개한다. 바로 날카로운 물건 주고 받기다. 

리투아니아인 아내에게 칼이나 가위 등을 달라고 하면 절대로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 거의 던지다시피 옆에 놓아준다. 그리고 내가 직접 이것을 잡아 가져와야 한다.

왜 그럴까?

만약 날카로운 물건을 상대방 손에 직접 쥐어주면 둘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물건을 선물하지도 않는다. 누군가 어쩔 수 없이 칼 등을 선물해야 할 때, 반드시 1원이라도 주고 받는다. 내가 직접 샀다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결혼 생활 초기에 이런 주고 받기를 무례한 행동으로 오해하면서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때론 말싸움할 뻔하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연유를 잊어버리고 칼을 던져주는 리투아니아인 아내의 행동이 눈에 거슬릴 때가 있다. 만약 이때 기분이 안 좋은 상태라면 큰 소리로 꾸짖어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처럼 날카로운 부분은 자기 쪽으로 향하고 손잡이 부분을 상대방에게 주면 얼마나 좋아!'

살다보니 이제는 나 또한 칼이나 가위 등을 한국식으로 손에 쥐어주지 않고 그냥 가까운 곳에 놓아두게 되었다. 오늘따라 "난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해"라는 딸아이의 말이 말에만 그치지 말고 늘 행동으로 식구 모두가 함께 실천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5.02.26 07:31

거의 매년 음력 설날이 되면 우리 집에 행사가 하나 있다. 음력 1월 1일은 한인회장님 댁에서 교민들이 모여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설날이 있는 주의 주말에 유럽 리투아니아 현지인 에스페란토 친구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한다. 보잘 것 없지만 한국 음식을 마련해 함께 식사하면서 동양의 설날을 축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지난 금요일 초대했다. 가급적으로 동양에 어울리는 옷을 입고 온다. 대부분 현지인들은 이날 붉은 색 옷을 입었다. 어떤 이는 인도 여행에서 산 옷을 입었고, 어떤 이는 중국 여행에서 산 옷을 입었다.  


아래는 우리가 마련한 음식의 일부다. 김밥은 원래 내가 만들기로 했으나, 갑자기 감기 기운이 들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13살 딸아이 요가일래가 만들었다. 잡채는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만들었다. 2월 초 우리 집에 온 한국 손님이 요리법을 일러주었다. 아내가 직접 잡채를 혼자 요리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다들 맛있게 먹는 것을 보니 성공한 듯했다. 김치는 아내와 내가 함께 담갔고, 닭고기는 아내가 요리했다. 세 식구가 이렇게 분업하여 설 손님 맞이 음식을 준비했다.     



지금까지는 거실 상에 음식을 전부 놓았는데, 올해는 부엌에 놓고 사람들이 각자 먹고 싶은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거실 상이 좀 빈약해 보였지만, 술이나 음료수, 잔 등을 위한 공간이 있어서 좋았다.



식사를 마친 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상품이 걸린 문제 풀기가 시작되었다. 사전에 예고하지 않은 프로그램이었다. 긴긴 밤을 그냥 덕담과 잡담으로만 보내기에는 아까웠다. 모임이 좀 더 유익하도록 우리 식구들이 의견을 모아 한국에 대한 질문 10가지를 내고 맞추는 사람에게 한국적인 선물을 주기로 결정했다. 비록 여기가 리투아니아이지만, 한국인을 친구로 두고 있으니, 한국에 대해 최소한 몇 가지 정도는 순간적이라도 알게 하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문제를 낼 것인가 참 고민스러웠다. 흥미를 끌어내야 하니 어려운 문제는 피하는 것이 좋고, 한편 꼭 맞히게 하는 것보다 지식을 갖게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문은 아내와 내가 의논해서 만들었고, 파워포인트 파일은 딸아이가 만들었다. 


열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월력에 따르면 1달은 몇 일이고 1년은 몇 일인가?
   아무도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다. 비슷하게 맞춘 사람이 상품을 받았다. 
2. (오늘 우리 집에서 먹은) 김치는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나?  
   가장 많은 재료를 말하는 사람이 상품을 받았다.
3. 세계에 널리 알려진 한국 기업 3개를 언급하고 각 기업은 무엇을 주로 생산하나?
   모두 삼성과 현대를 맞췄지만, LG는 첫 자가 L로 시작한다는 암시로 누가 맞췄다.
4. 한국은 언제 세워졌나?
   아무도 정확하게 몰랐다. 한 사람이 기원전 2000년이라 추측했다. 그가 상품을 받았다. 
   모두들 한국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것에 놀랐다.
5.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무술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6. 언제 한국이 공식적으로 둘로 분단되었나?
   한 사람만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답을 맞혔다.
7. 한국에서 가장 큰 섬이고, 유네스코 자연유산을 가진 섬은?
   정답을 맞혔다.
8. 한국어 철자 이름은?
   아쉽게도 아무도 맞추지 못했다.
9. 언제 한국에서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열렸고, 또 언제 한국이 또 이 대회를 유치하고자 하나?
   열린 대회 년도는 몰랐지만, 유치하고자 하는 대회는 알아맞혔다. 
10.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한 유럽 최초 국가는?
   서유럽 여러 나라들이 제일 먼저 언급되었고, 나중에 범위를 좁혀 동유럽, 발트 3국 중에 있다고 하자        그때서야 답이 나왔다. 답은 리투아니아. [관련글: http://blog.chojus.com/4173]
   한국과 리투아니아 사이에 이런 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에 모두 기뻐했다.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아리랑을 함께 부르면서 한국 관련 질문과 답맞히기는 끝이 났다. 모임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친구들은 "오늘 한국 음식도 맛있었고, 한국에 대해 공부도 잘 했다"면서 좋아했다. 우리 집 세 식구가 협력해 준비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5.02.17 08:40

주말이 지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다. 리투아니아어로 월요일은 'pirmadienis'(첫 째일)이다. 토요일 꽃가게에는 길다란 줄이 이어져 있었다. 대부분 잔치가 토요일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집도 잔치에 다녀왔다. 빌뉴스에서 250km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처남의 생일 잔치였다. 5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날이라 집에서 하지 않고 음식점을 빌렸다. 가족과 가까운 친척, 그리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또한 연주 겸 노래하는 가수도 한 명 불렀다. 


이곳 사람들의 기념적인 생일잔치는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소개한다. 
먼저 저녁 7시에 시작한 잔치는 다음날 새벽 3시에 끝이 났다.
상에는 찬 음식들이 술 안주 겸 놓여 있다. 
따뜻한 음식으로 저녁을 먹고 이어서 축하 건배를 돌아가면서 한다. 
한 사람씩 자리에 일어나 축하 인사를 건배를 제의한다.


술이 조금씩 들어가면서 자리에서 나와 음악에 맞춰 춤 추는 횟수가 잦아진다.
기타 치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사이사이에 노래도 한다(홀로 부르기는 없고 전부 함께 부르기). 
춤추다 지치면 자리에 돌아가 다 함께 잔을 채운 후 건배한다.


혼자 술을 마시지 않고 건배를 제의하면서 같이 마신다.
다른 사람의 잔을 채운 후에 자기 잔에 술을 따른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옆 사람의 잔을 채운 후에 자기 잔에 술을 따르고 건배를 제의한다.

리투아니아인 아내에 앞에 앉은 나이가 더 많은 친척이 술을 따르자 
아내는 잔을 든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 왼손을 그 오른팔을 받쳤다.
그 순간 주위의 시선들은 아내의 이상한 술잔 받기 모습에 집중되었다.


이를 의식한 아내는 웃으면서 곧장 설명에 들어갔다. 
"한국인 남자와 살다보니 내가 이렇게 변했어. ㅎㅎㅎ 한국 사람들은 연장자에게 술을 따르거나 연장자로부터 술잔으로 받을 때 이렇게 해. 내가 이렇게 해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내 마음이 더 편해. 이렇게 하니 연장자에 대한 내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것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좋아."
"우와~ 설명이 멋지네. 한국 속담에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지. ㅎㅎㅎ"

* 좌: 일반적으로 술을 받는 모습, 우: 이날 아내가 자기도 모르게 술을 받는 모습


이렇게 두 문화 속에 살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느 한 문화에 저절로 익숙해질 수 있다. 그 덕분에 주변인들에게 다른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또한 나아가 상호 문화에 대한 이해에 기여하게 된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04.30 09:01

유럽인 아내와 같이 살면서 힘드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요리다. 아내가 밥상을 다 차려놓고 부르면 가서 먹으면 되는 일은 꿈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은 우리 집에서는 지극히 드물다. 이것을 요구했다가는 보따리 싸서 집 나갈 각오를 해야 한다. ㅎㅎㅎ

그러니 자의든 타의든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다. 특히 아내가 오후에 직장에 나가는 날이면 점심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또한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아이 점심까지 챙겨줘야 한다. 어제 냉동실을 살펴보는데 까맣게 잊어버린 콩나물을 발견했다.

* 직접 키워 손질한 콩나물

'잘 됐네. 오늘은 콩나물국이다.'

이렇게 부엌에서 콩나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콩나물 냄새가 냄비뚜껑 사이로 새어나왔다. 이 냄새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딸아이가 자기 방에 나오더니 한마디했다. 

"아빠, 뭐해? 정말 냄새가 지독하다. 숨을 쉴 수가 없어. 토하고 싶어."

그리고 딸아이는 부엌문을 꽝 닫아버렸다. 콜록콜록 기침까지 했다. 냄새가 나는 집에 있기 싫다면서 평소보다 더 일찍 음악학교로 가버렸다. 속으로는 딸아이의 과한 행동을 나무라고 싶었다. 

같은 식구도 이렇게 반응하는대 이웃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하면 콩나물국 끓이기를 결심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사실 직접 힘들게(?) 키워서 냉동실에 넣어둔 콩나물이라 버리기가 아깝다.

아무튼 혼자 콩나물국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문자쪽지가 하나 날아왔다. 딸아이가 보낸 문자였다. 아빠의 음식에 너무 과격한 반응을 일으킨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딸아이의 엉터리 한글을 번역하면 이렇다.
"문을 쾅 때려서 미안해. 냄새가 나빠."

사과할 줄 아는 딸 때문에 남아있는 콩나물은 딸아이가 서너 시간 동안 집에 없을 때 몰래 끓여먹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3.12.30 08:40

긴 크리스마스와 주말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리투아니아는 국민 대다수(77%)가 로마 가톨릭교를 믿는지라 크리스마스 국경일은 3일이다. 24일, 25일, 26일이 쉬는 날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어떻게 이 3일 휴가를 보냈을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휴가를 보낸 가족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집처럼 보냈을 것이다.


24일은 가족과 음식 만들기 
크리스마스 전야 저녁 식사는 그야말로 만찬이다. 이날은 생선을 제외한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다. 만찬 식탁에는 12가지 음식[관련글 읽기]이 올라온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주부 한 명이 일하기에는 힘이 든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도와서 음식을 준비한다. 


온 가족이 식탁에서 기도한 후 미사빵을 나눠먹는다. 이날은 편식하지 않고 12가지 음식을 고르게 먹는다. 식탁에는 혹시 방문할 사람을 위해 빈 의자, 빈 접시와 수저를 마련한다. 식사 후 식탁에 둘러앉아 지난 1년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찬송가도 부른다. 이날은 식사 후에도 식탁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는 집도 있다. 그리고 성당에서 열리는 밤 미사에 참가한다. 

25일은 가족과 함께
25일 성당 미사에도 참가한다. 이날은 가급적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날만큼 우리 가족은 모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공동 놀이를 하기로 했다. 유럽 지도 놀이와 화투 놀이를 했다. 


저녁 무렵이 되자 함께 했던 부엌이나 거실에서 식구들은 자기 방으로 한명씩 사라졌다. 낮에는 "오늘은 함께 놀아야 돼"라고 책망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함께 놀기가 이젠 지루해"에 공감도가 높아져 갔다.

26일은 친구들과 함께
휴가 3일째는 주로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초대에 응해 함께 시간을 보낸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친척 부부 한 쌍과 친구 부부 한 쌍, 그리고 이들의 딸과 남자친구를 초대했다. 어른이 모두 8명이었고, 나라는 4개국(한국, 리투아니아, 이집트, 스페인)이었다. 친척의 남편이 이집트 사람이고, 친구 딸의 남자친구가 스페인 사람이다.


먼저 탁구 놀이로 시작했다. 이어 찬 음식을 먹으면서 맥주나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따뜻한 음식으로는 닭볶음탕을 준비했다. 식탁에서 가장 웃음을 선사한 것은 혀 꼬이게 하는 각 나라말의 문장이었다. 


외국에서 흔히 접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현지인들이 놀이삼아 질문한다.
"너, 이 (리투아니아어) 문장을 따라할 수 있어? 한번 해봐! 해봐!"

잘하든 못하든 외국인의 시도에 현지인의 웃음이 터져나온다. 이런 경우에 가장 좋은 대응책은 이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내가 말하는 (한국어) 문장을 한번 따라해봐!"

혀 꼬이게 하는 문장
이날 모임에 나온 각 나라말 중 혀 꼬이게 하는 문장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순서는 아랍어, 리투아니아어, 스페인어이다. 



제일 나중에 한국어 차례였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놀았던 문장을 소개했다. 
간장 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이고, 된장 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이다. 

이 문장에 모두가 대장대소했다. 이 한국어 문장이 4개 언어 중 가장 따라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낙점되었다. 이런 즐거움과 유쾌함 속에 모처럼 빌뉴스 우리집에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였다. 그야말로 "즐거운 성탄절"이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10.12 06:28

"아빠, 내가 참 착하지?" 
"왜?"
"오늘 학교 갔다와서 텔레비전도 안 보고 컴퓨터도 안하고 계속 공부했잖아."
"그래. 네가 공부 많이 하면 아빠가 정말 기쁘다."
"나도 기뻐지."

한국으로 치면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생이다. 리투아니아는 중학교 1학년생이다. 초등학교 시절과 가장 달라진 것은 숙제가 많다는 점이다. 그런데 창의적인 숙제가 두드러진다.

예를 들면 일전에는 있었던 자연과목 숙제는 지렁이 잡기였다. 친구들과 모여서 지렁이가 살만한 곳을 찾아서 흙과 함께 지렁이 4마리를 잡아왔다. 


최근 미술 숙제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한 15명의 사람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빠, 오늘 리투아니아어 숙제가 뭔지 알아?"
"내가 어떻게 알겠니?"
"자기가 읽은 동화를 친구들 앞에서 소개하는 거야. 그런데 난 한국 동화를 소개하려고 해."
"정말?"
"정말이지. 한국 동화 아주 재미있어. 아빠, 흥부와 놀부, 아니면 해와 달이 된 오빠와 동생, 아니면 까치의 보은을 할까?"
"네가 선택해야지."
"흥부와 놀부는 너무 길다. 까치의 보은이 좋겠다."

* 리투아니아어로 번역된 한국 전래 동화

덤으로 일전에 딸아이가 전해준 소식이다.

"아빠, 오늘 음악 시간에 우리 반 모두가 강남스타일 춤을 췄다."
"어떻게?"
"음악 선생님이 왔는데 아이들이 유튜브에서 강남 스타일을 틀어달라고 소리쳤지."
"강남 스타일 때문에 너도 기분 좋아겠다."
"물론이지."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동화를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려는 것을 보니 딸아이가 다문화 가정 아이로 밝게 자라고 있는 듯해 안심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05.11 14:52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 요가일래는 주로 부엌에 있는 식탁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한다. 어제 스카이프로 학교 반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아빠가 달려왔다.

"아빠, 친구가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해."
"아, 그래? 가르쳐줘."
"그런데 내가 단어 20개를 가르쳐주면 친구 엄마가 선물을 준다고 해."
"무슨 선물?"
"몰라."
"궁금하겠네. 한번 가르쳐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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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으로 돌아가더니 열심히 스카이프로 한국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한글을 100% 정확하게 리투아니아어 철자로 옮겨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친구의 컴퓨터에는 한글이 네모나게 보여졌다.

"아빠, '으'를 어떻게 쓰지?"
"아빠, '어'를 어떻게 쓰지?"
......

이렇게 딸아이가 단어를 가르치는 동안 옆에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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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를 onni라고 쓰는 데 '온니'가 아니고 '언니'라고 말해. 따라해봐," "gojang-i는 '고야기'가 아니고 '고양이'야. g는 거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라고 요가일래는 열심히 설명하면서 가르쳤다.

"맞아. 아주 정확해!"라고 친구를 격려하기도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도 가르쳐줄게."

옆에서 지켜보니 요가일래는 몹시 흥이나 있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언어에 대한 친구 엄마의 관심이 돋보인다. 단지 다문화 아이라는 점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친구나 친구 부모들의 이런 관심이 다문화 아이의 심리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고 생각한다.

현지 친구들도 이렇게 접한 한국어에 비록 순간적인 관심일지라도 장차 자라나서 더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만약 한국 학교 어느 교실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이 베트남 사람인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때 자기 자녀에게 베트남어를 가르쳐주는 아이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하는 한국인 부모가 얼마나 될까?

"너, 학교에서 아빠가 리투아니아 사람이 아니라서 놀림 같은 것을 받니?"
"그런 것 전혀 없어. 내가 여러 나라 말을 할 수 있다고 친구들이 아주 부러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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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0.02.22 08:07

지난 토요일 초등 2학년생인 딸아이 요기일래는 새 노트를 하나 준비했다.

"너 뭐 하려고 새 공책을 준비했는데?"
"친구 빌리야를 위해 한국어 공책을 만들려고."


빌리야는 요가일래가 좋아하는 리투아니아인 친구이다. 요가일래는 이 공책 표지에 "Vilijos Korejietiskas zodynas" (빌리야의 한국어 사전)이라고 썼다. 그리고 아빠에게 한국어로 "빌리야의 것"이라고 써라고 주문했다.

요가일래는 한국어를 말할 줄 알지만 아직 한글을 읽고 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조만간 스스로 읽고 쓰는 데 흥미를 일으키도록 동기부여를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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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정성스럽게 공책에 적고 있는 요가일래

이날 요가일래는 빌리야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단어나 문장을 불렀다. 아빠가 대신 쓰기를 부탁했다. 그리고  요가일래는 이를 리투아니아어 발음대로 옮겨적었고 또 밑에 리투아니아어 뜻을 기재했다. 상단 왼쪽에 02-20 날짜까지 기재했다. 매일 단어나 문장을 써서 가르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놀자, 놀지 말자, 저기 가자, 같이 놀자, 뭐, 잘 있어 등등 아이들이 흔히 쓰는 말이다. 요즘 요가일래는 소녀시대 노래를 즐겨듣고,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그래서 아예 자기 별명을 소녀시대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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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한국어 단어들을 적었고, 요가일래는 리투아니아어 발음과 뜻을 적었다.

친구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줄 생각을 한 딸아이가 기특해서 열심히 도와주려고 한다. 아빠가 쓴 한글을 반복해서 보고 친구에게 가르치다보면 요가일래 스스로가 이를 읽고 쓰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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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주변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다문화 가정을 부러워한다.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언어이다. 자녀가 쉽게 여러 말을 할 수 있는 점이다. 요가일래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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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 모임에서 한국인 한 분이 요가일래를 보더니 물었다.
"따님 한국말 조금 하세요?"

마침 요가일래가 가까이에 오자 아빠가 물었다.
"너 한국사람이니?"
"나 한국사람이야! 왜?"라고 요가일래는 똑똑하게 한국어로 답했다.
(물론 엄마가 "너 리투아니아 사람이니?"라고 물으면 "나 리투아니아 사람이야"라고 답할 것이다.)

종종 노하우를 묻는 사람이 있다. 노하우는 없다. 방법은 딱 하나이다. 모태에서부터 아이와 무조건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여러 말을 섞어서 말하지 말 것을 권한다. (참고글: 다문화 가정의 2세 언어교육은 이렇게)

"그런데 너 왜 빌리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다른 친구들이 못 알아듣도록 하기 위해 비밀어가 필요하니까."


한국어를 비밀어로 사용하려는 의도가 좀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알고 있는 언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줌으로써 그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커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 관련글: 아빠와 딸 사이 비밀어 된 한국어  | 다문화 가정의 2세 언어교육은 이렇게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09.12.14 07:19

리투아니아에는 매 2년마다 "다이누 다이넬레"(Dainų dainelė)라는 텔레비젼 경연 대회가 열린다. 리투아니아 전국에서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노래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참가하는 그야말로 경쟁이 치열한 경연 대회이다. 이 대회는 1974년부터 리투아니아 교육부와 텔레비젼 방송사가 주관하는 행사이다.

먼저 각 학교별로 지역예선에 나갈 참가자를 선발한다. 딸아이는 만 8살로 지난 해부터 2년째 음악학교애에서 노래를 전공하고 있다. 교사들도 이런 권위있는 대회에 자신의 제자가 참가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요가일래는 11월 26일 학교 선발전에서 선발되었다. 그 때 노래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으나 요가일래 엄마는 학교에서 선발되면 지역예선 때 촬영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12월 12일 토요일 지역예선이 열렸다. 방청객 없이 해당 참가자 부모와 네 명의 심사위원들이 참가하는 오디션 형태였다. 이날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각 학교에서 선발된 46명(4세-10세)이 참가했다. 심사위원들은 전국 TV 경연 대회에 나갈 참가자를 뽑는 시간이었다.

이날을 앞두고 우리 가족들은 아빠의 참가 문제를 가지고 가족회의를 열렸다. 아빠가 그냥 가서 촬영하면 되지 무슨 가족회의까지 여는 부산을 떨었을까? 음악학교에서 선발전에서는 모두가 요가일래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것을 알고 또 아빠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엄마가 또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지역 예선의 심사위원들은 외부 전문가들이다. 엄마가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아빠가 오디션 현장에서 나타나서 리투아니아 사람 아님을 심사위원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과연 요가일래에게 덕이 될까? 아니면 해가 될까?

심사위원들이 요가일래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특출한 재능이 있다고 판단하면 별문제이겠지만,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비슷할 경우에는 외부적인 요인이 선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엄마의 판단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외국인에 대한 성향을 모르기 때문에 노출시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엄마와 언니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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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전국 TV 노래 경연 대회 지역예선 오디션에서 노래하는 요가일래

특히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아시아인을 보면 A, B, C민족 중 하나로 여긴다. A민족을 무조건 좋아하는 성향이 있고, C민족을 무조건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심사위원 정도라면 외적 요인으로 점수를 메겨서는 안되겠지만 이들도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이 동등한 수준이라면 부모가 리투아니아 사람인 학생을 뽑을까? 아니면 다문화 가정의 학생을 뽑을까?......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리투아니아 사람을 선호할 것 같다.

엄마는 웃으개 소리로 캠코더에 "한국, Korea"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아빠도 오디션 현장에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아쉽지만, 이날 오디션에는 아빠가 참가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 아빠가 리투아니아 사람이다면 전혀 논의조차 할 필요가 없는 사항인데, 아빠가 리투아니아 사람이 아닌 한국인이다보니 가족조차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문제가 된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속한 인종, 민족, 피부, 사상 등에 구애받지 않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이기고 지고를 생각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것이 최고다"라고 오디션 받으러 가는 요가일래에게 말했다. 이제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였다. 먼저 엄마에게 캠코더 사용법을 일러주는 것이다. 다음은 요가일래가 오디션을 보는 순간 집에서 기도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시작 몇 분 전 전화했다. 그리고 아빠가 기도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여태껏 흐린 날씨였는데 해가 쨍쨍 났다.

집으로 돌아온 요가일래는 아빠에게 나즈막하게 말했다.
"아빠, 내가 이길 거야. 웬지 알아? 해가 나왔으니까." (요가일래 이름 뜻은 빛나고 아름다운 해가 온다)


이 날 적어도 아빠가 아쉬움 속에 아빠의 민족을 노출시키지 않았으니 심사위원들이 공정하게 평가했으리라 믿는다. 여기서 선발되면 광역예선에 나가고, 이를 통과하면 TV 노래경연에 나간다. 지역예선 최종 선발 결과는 오는 19일 토요일에 나온다. 어떤 결과가 나올까 궁금하다.

* 최근글: 종이로 눈결정체 만드는 8살 딸아이
                국적 때문 우승해도 우승 못한 한국인 피겨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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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09.05.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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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금요일 엄마는 일찍 음악학교로 갔다. 바로 음악학교가 개교 40주년을 맞는 기념일이다. 부탁을 받고 기념공연 행사를 촬영하러 가게 되었다. 7살 딸아이를 혼자 집에 둘 수가 없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집에 같이 살면서도 딸아이와 대화할 시간은 엄마와 언니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세 모녀가 있는 날이면 아빠는 일한다는 핑계도 있지만 소외감을 느낄 때도 자주 있다. 더군다나 딸아이와 아빠는 늘 한국말로 한다.

딸아이와 단 둘이 집에 있어도 대화하는 시간은 사실 그렇게 많지가 않다. 딸아이는 TV 보기, 인터넷, 그림 그리기 등 여러 놀이를 혼자서 하고, 아빠는 늘상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밖에서 단 둘이서 걸을 때는 무척 많은 말을 하게 된다. 어제도 걸어가면서 딸아이는 온갖 일을 다 말했다. 그 중에서 재미있는 말을 적어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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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학교에서 친구와 둘이서 말을 했는데
지나가는 큰 학생(고학년생)들이 우리 말을 엿들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어떻게 꼬마들이 어른처럼 말을 할 수가 있냐라고 말했다."

"하늘에 왜 비가 오는 지 알아? 바로 구름이 울기 때문이야."

"아빠, 우리가 이렇게 한국말을 하고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깜짝 놀랄 것이야.
웬지 알아? 어떻게 우리가 다른 나라말을 잘 할 수 있지라고 아주 궁금해할 거야.
아빠, 내가 아빠하고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렇게 한국말을 하고 가면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니까."

* 관련글: 다문화가정의 2세 언어교육은 이렇게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