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3. 2. 14. 07:16

일전에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초딩 딸아이는 우리 부부를 부엌에 갇아놓고 자기 방으로 갔다. 

"나를 따라오면 안돼. 꼭 여기 있어야 돼."
"왜?"
"그냥."

자기 방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종이로 포장된 물건을 가지고 왔다.

"엄마 아빠 결혼을 축하해."
"뭔데?"
"종이를 뜯어봐."

종이 속에는 아래와 서양란이 곱게 피어있었다.

"고마워. 그런데 이것을 몰래 사서 보관하느라 힘들었겠다."
"아니." 
 

그 동안 딸아이는 대부분 자기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선물을 주었다. 자기 용돈에서 꽃을 사서 결혼기념일 선물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신의 존재를 있게 한 부모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서양란까지 선물하다니 이젠 제법 자랐음을 뜻하는 것 같아 흐뭇했다.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11. 12. 1. 08:42

이번 한국 방문에서 서울 남산을 수년만에 다시 방문했다. 그 동안 인터넷을 통해 보았지만, 엄청난 양의 자물쇠를 처음으로 직접 보게 되었다. 이 촘촘히 붙은 자물쇠를 보니 서울 천지에는 짝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만 같았다.

▲ 서울 남산 자물쇠들
 

유럽 도시에도 이와 같은 자물쇠를 흔히 볼 수 있다. 주로 장소는 다리 난간이다. 연인들의 사랑증표라기 보다는 신랑신부의 백년회로를 기약하는 뜻이 담겨있다. 결혼식을 마치면 신랑신부는 곧장 다리로 향한다. 신랑은 신부를 안아서 다리를 끝까지 건넌다.
 
유럽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이 의식은 결합을 의미한다. 신랑신부가 이 다리를 건너면서 양쪽 강변, 즉 둘 나아가 두 집안을 결합시킨다. 흐르는 물은 성공과 행복을 가져다 준다. 또한 신부를 안고 다리를 건너는 것은 평생 동안 아내를 듬직하게 책임지겠다는 뜻도 담겨있다. 그 다음 자물쇠를 난간에 채우고 멀리 강물로 던진다. 꼭꼭 잠긴 자물쇠처럼 맺은 사랑이 풀리지 말 것을 기원한다.

▲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다리 자물쇠들
▲ 라트비아 수도 리가의 다리 자물쇠들
▲ 칼리닌그라드(쾨히스베르크), 쾨테가 산책하던 다리 난간에도 자물쇠가 채워져있다. 
 

남산 자물쇠는 유럽 사람들이 결혼일에 잠그는 다리 자물쇠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왜냐하면 결혼식을 재빨리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야 할 사람이 남산까지 와서 자물쇠를 잠글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녀가 사랑을 맺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자물쇠를 잠그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 여겨진다.

아뭏든 그 많은 남산 자물쇠 중 가장 눈길을 끄는 자물쇠가 있었다. 바로 "정기휴일"을 단 자물쇠였다. 이것을 보자 돌아가신 은사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분은 매년 결혼기념일에 가족사진 찍기를 철칙으로 여기고 살았다. 처음엔 부부 둘만, 점점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녀도, 손자녀도 사진 속에 등장했다.


어떤 결심으로 "정기휴일"를 달았는지는 모르지만 매년 이 기념일을 무조건 정기휴일로 정해서 연인, 부부, 가족의 사랑과 정을 돈독히 하는 것도 참 좋은 생각이 아닐까......  

* 최근글: 오늘만 같아라, 결혼 필사 반대 이유는?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0. 2. 3. 08:19

북동유럽에 위치한 리투아니아의 이번 겨울은 혹한과 폭설으로 상징된다. 지난 해 12월 하순부터 근 한 달간 영하 20도의 혹한이 이어졌다. 그리고 모처럼 날씨가 풀려서 영하 5도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혹한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폭설이 내렸다. 15년만에 가장 많이 눈이 내린 겨울로 기록되었다.

요즈음 큰 도로에는 제설염 등으로 비교적 차가 다니기 쉽지만, 그렇지 않은 도로에는 눈을 헤쳐나오기가 힘든다. 2월 2일은 결혼기념일이다. 아무리 살림이 어렵더라고 이날만큼은 가족이나 친척들과 함께 분위기 있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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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통행 도로가에 세워진 자동차를 내려다 보면서 과연 저 쌓인 눈을 헤쳐 주차공간을 벗어나 차로 궤도로 접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눈 핑계로 그냥 집에서 보낼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결정했으니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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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또한 바퀴를 덮어버린 눈도 치웠다. 무사히 차가 빠져나가기를 기대했지만 바퀴는 헛돌았다. 눈 밑에는 얼음이 얼어있었다. 낑낑대면서 차를 밀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겨우 앞바퀴 하나가 차로 궤도에 걸쳤지만 뒷바퀴는 계속 헛돌았다. 이젠 더 큰 일이었다. 다른 차의 통행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행인 한 사람이 도왔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다섯 명이 밀자 그때서야 차를 차선에 이동시킬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랜 시간을 낑낑거리는 데 보냈을 것이다. 대체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남의 일에 무관심하다. 이날 눈 속 곤경에 빠졌을 때 기꺼이 도와준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2009년 1월 브라질 여행을 하면서 먹은 브라질 음식이 참 맛있었다. 그래서 결혼기념일에 친척 부부를 초대해서 리투아니아에서 유일한 브라질 식당에서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부부에게 전화했다. 그랬더니 차가 눈을 헤쳐나오지 못해 참석할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 우리 부부만 브라질 식당에서 분위기를 잡기엔 폭설 후유증 때문에 이미 흥이 토막나버렸다. 그래서 얼마 전 개업한 켄터키 치킨을 사서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념일 저녁을 보내기로 방향 전환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주차를 무사히 할 수 있도록 기원했다. 도로가 주차공간에는 빈자리가 여기저기 있었지만 눈이 수북히 쌓여있어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아파트 마당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자동차 통행로에서 후진을 하는 데 또 얼음 때문에 후륜구동 뒷바퀴가 헛돌았다. 이때 한 남자가 자기 차에서 삽을 꺼내 들고 왔다. 삽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 마지막 순간까지 기념일을 망쳐야 하나!!!!" 어두운 저녁이라 행인도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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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모래적재함도 없었다. 이때 아내는 트렁크에서 도움될 만한 것을 찾았다. 작업복이었다. 작업복을 뒷바퀴 밑으로 넣으니 후진이 되었다. 아내의 순간적인 재치로 그렇게 힘들었던 것이 시원하게 해결되었다. 출발할 때 왜 작업복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켄터키 치킨과 포도주를 앞에 놓고 식구 한 사람씩 가정 평화, 가족 건강, 모두에게 감사를 위해 기도를 올렸다. 브라질 식당에 비해서는 너무 조찰한 결혼기념일 식탁이었다. 이날은 폭설 후유증으로 생고생했지만 무사히 차를 주차시켰다는 안도감이 으뜸이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사지의 근육통이 이날 폭설 후유증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결혼기념일을 한층 더 운치있게 해줄 수 있는 눈이 기대를 망쳐놓은 폭설이 된 것이 아쉽다. 내년에는 멋진 기념일을 기대해본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