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4. 3. 4. 07:12

인구 3백만명이 사는 리투아니아에 한국 교민은 10여명이다. 그런데 교민수보다 한국에서 오는 교환학생수가 이제는 더 많다. 학기마다 약간 차이는 있지만 빌뉴스에 30-50여명의 교환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종종 명절에 교민들과 교환학생들이 한인회 초청으로 만난다. 일전에 몇몇 교환학생들과 시내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리투아니아에 온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 김치를 먹어보지 못했다는 학생이 있었다. 그래서 지난주 금요일 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 우리 집을 방문한 경희대학교 교환학생들 (좌로부터 지연, 보라, 혜빈 지원 학생)

사실 집으로 한국 손님을 초대하는 일은 좀 민감하다. 나와 딸은 대환영이지만, 리투아니아인 아내가 부담스러워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미각이 뛰어난 한국 사람들에게 자신있게 음식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분의 꾀를 내야 했다. 우리 집엔 한국에서 보내준 잡채용 당면이 있다. 잡채는 딸아이가 무척 좋아한다. 아내는 한 두 번 시도해보았지만 호응을 얻지 못하자 더 이상 잡채 요리를 하지 않고 있다. 

"우리 집에 와서 잡채를 맛있게 해주면 좋겠다."라고 학생들에게 제안했다.
"우와~, 정말요? 당연히 가야죠."라고 하면서 이들은 덥석 받아들였다.    

이날 집으로 돌아와 "한국 교환학생들이 와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잡채를 해줄 거야. 괜찮지?"라고 아내에게 말하자 "나도 좀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니 좋아."라고 답했다. 

잡채요리에 필요한 버섯, 피망, 시금치 등 재료를 아내와 함께 구입해놓고 교환학생들을 기다렸다. 미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는 큰딸과 비슷한 나이를 가진 학생들이라 아내도 기쁘게 이들을 맞이했다.

우리 집 부엌은 일시에 교환학생 4명에다가 아내 그리고 딸아이 요가일래까지 합쳐 6명의 요리인들로 북쩍거렸다. 그런데 이들 곁에는 스마트폰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으로 검색한 잡채요리법 때문이었다. 능숙한 가정주부처럼 만드는 잡채요리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한 수 배워보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아내는 약간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금요일 저녁식사를 준비한 6명의 요리인

"요즘 요리법 일일히 익힐 필요 없어. 인터넷 검색하면 쫙 나와. 한국 학생들 집에서 직접 요리해볼 기회가 많지 않아. 사실 우리 큰딸도 몇 가지를 제외하면 요리하지 못하잖아."
"하기야 그래."   
"다 같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잖아. 어느 한 사람이 고생해서 바치는 맛있는 음식보다 다 같이 어울러서 만든 덜 맛있는 음식이 난 더 좋아." 

* 주요리 잡채

이렇게 한 시간 반을 거쳐 잡채, 된장국, 호박전 등이 완성되었다. 한인회 회장(김유명)도 초대했다. 잡채를 먹어본 딸아이의 맛평가가 이날 교환학생 초대가 의미있었음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아빠,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잡채 중 제일 맛있어."
"그래? 아빠가 언니들 정말 잘 초대했지?"
"맞아. 언니들이 또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딸아이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잡채를 먹었다.    


한 학기 동안 머무는 교환학생수가 교민수를 훌쩍 넘어섰다. 이제는 교민들보다 교환학생들이 주변 리투아니아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심는 데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친다. 있는 동안 공부도 하면서 리투아니아 현지를 이해하고, 한국을 알리는 데 힘닿는 대로 기여해주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4. 1. 3. 08:35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영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큰딸 마르티나에게도 드디어 교환학생의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 나라를 두고 고민하다가 미국을 선택했다. 미국내에 있는 여러 대학교를 두고 또 고민하다가 루이지애나 주도 뉴올리언스에 있는 대학교를 선택했다. 이유 중 하나가 겨울에도 따뜻한 날씨이다.

대학교측에서 1월 3일 열리는 첫 교환학생 모임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가장 적합한 비행노선을 찾다보니 공교롭게도 출국일자가 12월 31일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일에 가족이 헤어져야
보통 한 해의 마지막날과 새해의 첫날은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보낸다. 바로 이날 식구들이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아내가 달가워하지 않았다. 비록 성인이지만, 딸아이 혼자 낯선 뉴욕 땅에서 송구영신해야 하는 것이 아내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중간 기착지인 뉴욕 공항에 마르티나가 도착할 무렵 아내는 페이스북(facebook), 바이버(viper), 스카이프(skype) 등을 켜놓고 첫 소식이 오길 학수고대했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뉴욕에서 하룻밤을 자야 했다. 

12월 중순에 마르티나는 뉴욕에서 하루 묵어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이 없냐고 페이스북에 공개적으로 물었다. 이 쪽지가 올라가자마자 친구의 친구가 댓글을 달았다. 그는 뉴욕에 사는데 기꺼이 자기 집으로 초대해 재워줄 뿐만 아니라 1월 1일 뉴욕 시내 안내까지 해주겠다고 했다. 막상 선뜻 도와준다고 하나 생면부지인 사람이라 걱정이 좀 되었다. 

친구의 친구 덕분에 타임스퀘어에서 새해맞이
뉴욕 공항에 잘 도착했고, 맨하탄에서 친구의 친구까지 제시간에 만났다. 이들은 2014년 새해를 뉴욕 맨하탄 타임스퀘어에서 맞이했다. 약속한 대로 1월 1일 이 새로운 리투아니아인 친구 덕분에 뉴욕 관광을 즐겼다. 한 친구를 잘 둔 덕분에 이렇게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1월 2일 이른 아침 마르티나는 뉴욕을 떠나 뉴올리언스를 향했다. 도착할 무렵 아내는 또 다시 소식을 기다렸다. 그런데 공항 웹사이트에서 비행기가 연착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유가 궁금한 나머지 아내는 여러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마르티나가 탄 비행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기막힌 사이트를 찾아냈다.


flightradar24.com에서 하늘길을 내려다본다
flightradar24.com은 현재 시각 하늘에서 날고 있는 모든 비행기의 이동모습을 한 눈에 보여준다. 해당 비행기 아이콘을 누르면 이 비행기와 비행노선에 대한 정보가 뜨고 이동경로가 나타난다. 아내는 내내 비행기 이동경로를 지켜보면서 안전하게 도착하길 바랬다. 마치 아내가 딸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가고 있는 심정이었다.


참으로 놀랍다. 이렇게 지상에서 비행기의 하늘길을 내려다볼 수 있다니 말이다!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이야!"라는 세상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당연히 즐겨찾기에 넣었다. 앞으로 공항에 손님을 영접하러 나갈 때 이 사이트를 이용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11. 9. 13. 07:52

추석이다. 9월 12일은 월요일이다.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날이다. 한국에는 중요한 명절이지만, 리투아니아에서는 평범한 월요일에 불과하다. 특히 이날 아내는 저녁 7시까지 학교에서 일해야 한다. 한국 교민들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이 6시 30분이다. 모임에 늦을 수 밖에 없다.

초등학교 4학년생 딸 요가일래는 6시에 발레 수업을 마친다. 5시 30분경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일었다. 곧 이어 상상을 초월하는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없이 간 딸아이를 데리려 가야 했다. 가는 길에 천둥과 번개가 바로 코 앞까지 온 듯했다. 

▲ 몇일 전 우박이 내렸을 때 찍은 동영상. 어제는 이 우박보다 훨씬 더 큰 양의 폭우가 내렸다.
 
 
6시 발레 교실을 찾아가자 집으로 어떻게 돌아갈까 걱정하던 딸아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그렇게 기뻐했다. "아빠, 사랑해!!"라고 외치면서 학생들 사이로 달려왔다. 밖으로 나오니 천둥과 번개는 잠잠해졌으나, 비는 더욱 거세졌다. 도로와 거리가 온통 개울이 된 듯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물이 무릎까지 오기도 했다. 딸아이를 엎고 건너야 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데 우리가 추석 모임에 가야 하나?"
"아빠, 가야지. 한국 사람들이 다 모이잖아."
"하지만 비가 정말 무섭게 내린다."
"그칠 거야."

우산이 어느 정도 막아주었지만, 둘 다 바지와 신발이 흠뻑 젖었다. 그런데 6시 30분이 넘자 하늘이 감쪽같이 개기 시작했다. 햇볕이 보이기도 했다. 세상에 이것이 천지개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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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저녁 음식의 일부
 

우리 식구는 저녁식사가 열리는 한인회장님댁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공간이 부족해 신발이 2층으로 쌓여있었다. 늘 그렇듯이 맛있는 음식이 코와 눈, 그리고 입을 즐겁게 했다.

▲ 일부가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신발은 이날 모임의 규모를 말해준다.

이번 추석은 이제까지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한인 모임 중 최대 규모였다. 교민 30명과 교환 학생 30명, 모두 60명이 모였다. 빌뉴스뿐만 아니라 카우나스에서도 교환 학생들이 왔다. 거실과 방에는 시장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일부의 무리가 빠져나간 후지만 모임을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캠코더를 꺼냈다.  


▲ 한국에서 리투아니아로 온 교환 학생들
 

교민과 학생들이 서로 통성명을 나누면서 화기애애한 추석 저녁을 보냈다. 어찌 보름달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 이국땅에서 모처럼 만난 한인들의 온정으로 느끼는 기쁨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해가 갈 수록 늘어나는 한국인 교환 학생들 덕분에 빌뉴스의 추석은 더욱 젊어지고 활기찬 듯하다.

* 최근글: 유럽 식탁에 바퀴벌레 튀김 음식이 등장할까 

Posted by 초유스
사진모음2009. 10. 4. 06:30

10월 3일 한국보다 여섯 시간 늦게 추석이 도래한 리투아니아 빌뉴스!
현지 시각으로 오후 1시에 한인들이 한인회장댁에 모이기로 했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딸아이 요가일래와 한참 동안 실랑이를 했다.
 
"오늘은 한국에서 제일 큰 명절이야. 한국 사람들이 다 모이는 날이니 꼭 가자."
"아니. 언니가 안 가면 나도 안 갈 거야."
"언니는 숙제도 해야 하고, 집청소도 해야 하고, 그리고 지금 목이 아파잖아!"
"그래도 난 언니가 안 가면 나도 안 갈 거야."

고집을 부리는 요가일래에게 해결사 엄마가 끼어들었다.
"네가 안 가면 나도 안 걸 거야. 아빠 혼자 가면 좋겠니?!"

결국 딸아이는 울음을 훌쩍이면서 따라 나섰고, 모임에 늦고 말았다.
현관문에 들어가니 평소 모임 때보다 훨씬 많은 신발들이 입구를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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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들어가보니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다. 모두 이번 학기에 빌뉴스와 카우나스에 교환학생으로 와 있거나 유학온 학생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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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처음 온 낯선 곳에서 한국음식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할 텐데 교민들이 푸짐하게 마련한 한국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먼저 이들은 노래로 풍성한 추석상에 답례했다. 또한 기존 교민들도 노래로 이들을 환영했다. 역시 한국 사람들은 혼자라도 기죽지 않고 노래를 잘 한다고 음악 전공인 아내가 귀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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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들의 화합과 친목을 위해 늘 애쓰시는 김유명 리투아니아 한인회장님이 추석 맞이 덕담을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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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겠다고 떼를 썼던 딸아이 요가일래는 막상 도착하자 또래 한국인 아이들과 즐겁게 잘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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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이렇게 한국에서 보낸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 렌즈 줌성능이 약해서 아쉬웠지만, 달보면서 소원을 비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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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009년 추석은 지나갔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더 많은 교환학생들이 찾아온 것이 수확이다. 한국 대학생들이 이곳에 와서 비로 짧은 시간이지만 공부하는 것이 한국과 리투아니아 양국간 상호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