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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1.15 애지중지하던 딸의 컵을 깬 후 펼친 공방전 2
요가일래2012. 11. 15. 07:23

어제 새벽에야 잠들기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아침 8시경 전화가 왔다. 급한 방송 녹음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잠잔 시간은 3시간이었다. 그래서 낮에 잠깐 자기 위해 자명종 시계를 오후 4시 30분에 맞추어놓았다.

시계 소리에 일어났다. 하지만 비몽사몽이었다. 밖은 어두웠다. 시계 소리를 멈추게 한 후 누워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런데 아파트 현관문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이런 이른 아침에 누가 우리 집을 방문했나?'

침대 옆을 보니 같이 잘 것 같은 아내가 없었다. '벌써 일어나 초등학교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려고 부엌에서 있을 시간이구나.'(사실 이 시각 아내는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다). 아내가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누워있었다. 그래도 초인종 소리가 계속 났다. 

'할 수 없이 내가 열어야겠다.'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현관문으로 갔다. 안경도 끼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설마 나쁜 사람이겠나......'

현관문 가운데 있는 작은 유리 구멍으로 확인도 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에 깜짝 놀랐다. 손님이 아니라 바로 딸아이였다. 책가방이 없었다.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인데 왜 돌아왔니? 뭘 잊어버려서 돌아왔니? 책가방은?"
"지금 돌아왔잖아."
"지금이 아침이잖아!"

벽시계를 쳐다보니 4시 50분이었다. 새벽이 아니라 오후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밖을 보니 어두워서 낮이 아니라 이른 아침으로 착각한 것이었다. 

'세상에 벌써 이런 착각을 하는 나이에 도달하다니!'

여기까진 좋았다. 

곧장 부엌으로 갔다. 점심 때 먹고 물에 담궈놓은 물컵과 접시 등이 싱크대에는 놓여있었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설거지가 안 된 부엌을 보면 빈둥빈둥 놀고 잠만 자는 남편이라 잔소리할 거야. ㅎㅎㅎ'

아직 잠결이라 손가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싱크대에 있는 컵을 들어서 그릇찬장에 올릴 때 컵이 찬장에 맞닿자 그만 싱크대로 떨어졌다. 하필 이 컵이 초등학교 딸아이가 애지중지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컵은 멀쩡했지만, 컵 손잡이가 두 조각 났다.


이때 부엌 식탁에서 숙제를 막 시작하던 딸아이는 이것을 보자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이 컵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같은 반 학생 이름이 모두 적혀있는 소중한 기념물이다.

"이 컵이 얼마나 중요한데. 흐흑흑~~~"
"알아. 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조심했어야지."
"잠결이라서 미안해."
"이젠 아빠를 싫어할 거야."

"물건이 아빠보다 더 중요해?"
"물건이 더 중요해."
"사람은 실수할 수 있잖아. 너도 그릇을 깬 적이 있잖아."
"없어."

"네가 어렸을 때 여러 번 깨었지."
"하지만 자라서는 깨지 않았잖아."
"물건은 깨어질 수 있어. 세상에 모든 것은 끝이 있어. 사람도 늙으면 없어지잖아. 아빠도 마찬가지야."
"그래도 이젠 컵을 사용할 수 없잖아."

"깨어진 손잡이를 접착제로 붙이면 될 거야."
"그래도 흠집이 보이잖아."
"네 얼굴에도 흉터가 있잖아."
"그래도 컵이 중요해."
"알았다. 아빠가 덜 중요하니까 앞으론 아빠에게 부탁할 일을 물건에게 부탁해." 

이렇게 언쟁 아닌 언쟁을 하고 부엌을 나왔다. 계속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딸아이는 아빠에게로 달려와 끌어안았다.

"아빠, 미안해."
"아빠가 잘못했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물건보다 더 중요해. 깨어진 물건 하나 때문에 아빠를 싫어한다는 것은 너무 한 거야. 아빠든 딸이든 근본적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있는 것이야."
"알았어."

이후 딸아이는 평상심을 찾았는지 유쾌하게 숙제도 하고 이방 저방을 돌아다녔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