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10.05.18 06:17

방송촬영을 갈 때는 리투아니아인 아내와 늘 함께 간다. 특히 아내는 인터뷰할 때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똑바로 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답하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빠뜨릴 수 있는 중요한 그림을 알려준다. 한 장면을 찍고 있는 데 다른 곳에서 더 좋은 그림이 될 만한 상황을 본 아내는 카메라를 빨리 돌려라고 말해준다. 현지인이기 때문에 현지인과 격의없이 자연스럽게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제일 큰 장점이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방송촬영에는 아내가 함께 가지 못했다. 먼저 우리집 식구 모두 지난 주 내내 감기, 기침, 고열 등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내도 기침을 심하게 했고, 아픈 아이들을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촬영 장소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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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골동품 시장. 매주 토요일 열린다.

집 근처 전망 좋은 곳에 과거 노동자 회관이었던 건물이 있다. 이 건물과 주위에 매주 토요일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 산책할 때 가끔 둘러본다. 리투아니아 골동품 시장을 취재하기 위해 촬영해야 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시장으로 갔다. 아침 8시인데도 벌써 제법 사람들이 모였다.

우선 언덕 위에서 부감 그림을 잡았다. 그리고 점점 가까이 가면서 촬영했다. 만약을 위해 "press" 카드를 보이도록 목에 걸었다. 그런데 삼각대와 카메라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무표정으로 빤히 쳐다보거나 고개를 돌렸다. 삭막한 분위기가 점점 느껴졌다. 뒤에서 "카메라로 찍지마!"라는 소리가 들렸다.

앞에서 덩치가 큰 사람이 다가오더니 "여기 파파라치 있네!"라고 소리쳤다. 이어 그는 지인인 듯한 사람에게 "야, 너를 찍고 있어!"라고 알려주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괜찮아."라고 답했고, 먼저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일본에서 왔나?"
"한국에서."
"아, 한국! 부산에 가봤지."
"언제?"
"5년 전에."
"무슨 일로?"
"내가 러시아 배 선원이었지. 두 달 머물렀어. 한국 정말 좋았어."

이때다 싶어 이 사람을 집중적으로 찍었다. 파는 물건, 손님과 거래 장면 등등. 하지만 주위 분위기는 참으로 냉랭했다. 꼭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건물 안으로 고개를 내밀고 들여다보니 더 큰 골동품 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림이 훨씬 좋았다. 출입문턱을 넘어 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를 빡빡 깎은 덩치 큰 사람이 다가왔다. 러시아어로 외쳤다.
"어디서 온 놈이야? 여긴 촬영 금지야. 당장 나가!" (분위기상으로 번역했다)
또 다른 곳에서 덩치 큰 사람이 "나가라!"라고 외쳤다. 금방이라도 밀칠 듯이 다가왔다.
키가 작은 동양인 한 사람이 무거운 삼각대와 카메라를 들고 온 것이 그들에게 이상한 것 같았다. 낌새를 보니 그냥 순순히 나가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 같아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좀 떨어진 곳에 정신을 가다듬을 겸 도시 전경을 촬영했다.

그래도 몇 컷을 더 찍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옛날 농기구나 가구, 철물 등이 즐비한 곳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한 사람이 전화를 걸고 말하는 내용이 들렸다.
"여기 건물 입구에 카메라가 찍고 있어."
건물 안에 있는 누군가에 촬영을 하고 있다라는 정보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덩치 큰 사람이 오기 전에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런데 나오는 길목에 점잖게 나이든 사람이 또 뭐라고 한 소리했다.
"카메라 들고 뭐해? 찍지마!"라고 조롱하듯이 말했다. 주위 사람들은 히히 웃어댔다.
그들은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었으나 군중들 속 우군이 없는 이방인 혼자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것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날따라 그 동안 늘 촬영일에 함께 한 아내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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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리투아니아 '가족의 날' 행사를 촬영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대체로 방송 카메라 앞에 경계심이나 부끄러움을 탄다. 자신의 견해를 표현하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인터뷰하기가 참 어렵다. 하지만 유럽에서 십여년 동안 방송촬영하면서 이렇게 냉소적이고 위협적인 분위기는 처음으로 겪었다.

"왜 골동품장수들은 그렇게 비협조적이었을까?"라고 현지인 친구에게 물었다.
"혹시 불법적인 골동품이라도 있어서 그럴까?"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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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생활얘기2009.11.22 06:32

집 근처에 있는 한 광장에는 매주 토요일 골동품 시장이 열린다. 날씨가 좋은 여름철엔 아침 산책길에 종종 들러곤 한다. 굳이 무엇을 사고자 하는 것보다는 어떤 옛 물건들이 있나 궁금하다. 고서, 동전, 기념뱃지, 은수저, 차주전차, 가구, 농기구 등등 다양하다. 어제 낮 바로 이 골동품 시장에 있다면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시간 있으면 우리 집에 들러서 차라도 마시고 갈 것을 권했다.

"골동품에 관심 있어 갔니?"
"돈이 부족해 뭐 좀 팔아보려고."
"뭔데?"
"은숟가락."


그는 가방에서 은숟가락 두 개를 꺼내 보여주었다. 하나는 차숟가락, 다른 하나는 국숟가락이었다. 가격이 궁금했다. 적정가격은 차숟가락은 50리타스(2만5천원), 국숟가락은 100리타스(5만원)라고 했다.

"자네 같은 외국인이 오면 가격은 2-3배로 뛴다."
"그러니 내가 골동품 시장을 가지를 않는다. 불황인데 골동품 가격도 떨어지지 않았나?"
"세계 어디든지 언제라도 은은 은이다." (불황에 관계없이 은은 은값을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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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골동품 시장

왜 골동품을 간직하지 않고 팔려고 하느냐라는 물음이 이어졌다. 그는 두 직장을 동시에 다니고 있다. 하나는 부동산 중개업소이고, 다른 하나는 보험회사이다. 부동산 매매 수수료가 수입인데 불황으로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버려 거래가 사라진 상태이다. 그러니 수입이 없다. 보험회사에서는 적은 기본금에 실적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두 달 동안 실적이 없으면 이 기본금마저도 받지를 못한다. 실직자는 늘어나고, 월급은 자꾸만 줄어든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모두가 직장을 가진 소련시대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그때는 길거리에서 검문해서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 곧 일자리를 주는 시대였다. 적어도 걱정 없이 먹을 빵은 있었다. 먹을 것을 찾아서 이 쓰레기통 저 쓰레기통을 전전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부자는 없었지만, 우리 같은 평민들은 모두가 비슷한 월급에 비슷비슷하게 마음 편하게 살았다.  

"그렇다면 공산당에 표를 찍을 거니?"
"과거의 좋은 것은 버리지 말고 그대로 이어가자는 것이다."


자유와 경쟁이 주를 이루는 오늘날 자본주의 시대에 모두가 직장과 기본적인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았던 소련 시대의 요소를 함께 구현하는 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인가? 돈이 부족해 은숟가락을 팔아야 하는 친구에게 어제는 따뜻한 차를 대접했지만, 다음 번에 오면 따뜻한 밥을 대접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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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