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일래2017. 3. 2. 08:10

지난 토요일 아내가 근무하는 음악학교가 주관하는 리투아니아 전국 음악 경연대회가 열렸다.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 60명이 참가했다. 요가일래도 참가했다. 보통 전공 선생님들이 반주를 하는데 이 대회에서는 학생들이 반주를 한다. 감기가 다 낫지 않았음에도 참가해 노래를 불러야 할 상황이었다. 요가일래 순서가 끝나자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와 대화를 나눴다. 



1. 나쁜 음식 안 사려고 돈을 안 가지고 다녀
"우리 큰 가게에 가서 과일이라도 살까?"
"그래."
"그런데 아빠가 지갑을 집에 놓고 왔다. 너 혹시 돈 있나?"
"없지."
"가방 속 지갑에 돈이 정말 없나?"
"없어."
"그래도 약간의 돈을 비상금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안 돼."
"왜?"
"배고프면 학교에서 나쁜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있으니까."

'돈이 있거나 없거나 사먹고 싶은 마음을 아예 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좋겠다'라고 일러주고 싶었으나 나쁜 음식을 사먹지 않으려는 딸아이의 방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침묵으로 답했다.

2. 등수에 신경쓰지 않아
"이번 경연대회에 1등, 2등, 3등이 있나?"
"아마 있을 거야. 그런데 난 신경쓰지 않아."
"왜?"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 맞다. 등수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부담없이 노래 부르는 것에 만족하면 좋지."


3. 한번 울어봤는데 정말 돼
"아빠, 요즘 한국 드라마 보는데 나도 배우가 될 수 있을까 한번 실험해봤어."
"어떻게?"
"그냥 한번 울어봤는데 정말 내가 울었어."
"배우가 되려면 감정표현과 감정조절이 중요하지. 그런데 너 생물학자가 된다고 했잖아."
"와, 꿈이 또 바꿨다. 이제 내 계획은 배우가 되는 것이다. ㅎㅎㅎ"
"지금 한국 드라마 보니까 그런 생각하지 또 자라면 변화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계획을 세웠으니 노력해야지."

모처럼 딸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누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짧은 듯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3. 12. 9. 07:42

블로그를 통해 익히 알려졌듯이 딸아이 요가일래는 음악학교에서 노래를 전공하고 있다.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으면 대답은 한결 같이 "가수"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노래 연습에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고 있다. 

"왜 열심히 안 하니?"
"나 변성기야."

변성기라는 말에 선생님도 우리도 크게 재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학교이니 노래 경연 대회가 있기 마련이다. 남들보다는 좀 나은 성적을 원하면서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다.


2년마다 리투아니아에는 가장 권위있는 전국 학생 노래 경연 대회(다이누 다이넬레, Dainų dainelė, 직역하면 '노래 중 한 곡')가 개최된다. 2012년 이어 2014년 봄에 열린다. 이번 12월에는 이 대회 본선 진출자를 뽑기 위해서 두 차례 경연이 열렸다. 
1단계: 학내 경선
2단계: 시별 경선
3단계: 도별 경선
4단계: 전국 경선 (TV 생중계)
5단계: 최종입상자 공연 (국립 오페라 극장) 

즉 학내 경선과 시별 경선이 끝났다. 12월 7일 시별 경선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요가일래도 참가했다. 11살부터 14살까지 연령대에 속한다. 막 12살이 된 터라 나이가 더 많은 학생들과 겨루기에는 사실 버겹다. 목소리가 약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본선까지는 마이크 없이 노래해야 한다. 

세 곡을 준비했다. 리투아니아 노래 1곡, 한국 노래 1곡, 스웨덴 영어 노래 1곡. 경연 규정은 가급적 리투아니아어 노래를 추천한다. 이번에는 워낙 참가자가 많아서 3곡에서 2곡으로 줄었다. 요가일래는 한국 노래 반달, 스웨덴 랩소디를 선택했다. 

들어보니 무난하게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대회장 밖으로 나온 딸아이는 표정이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심사위원들이 내가 노래하는 데 모두 미소를 띄었어. 나 또 노래를 부르고 싶어. 나 이길거야."
"그래. 자신감이 중요하지. 노래를 잘 부르니까 좋잖아. 앞으로 더 열심히 연습해라."

하지만 속으로 걱정이 앞섰다. 혹시나 이번 단계에서 떨어지면 딸아이가 받을 충격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늘 잘 했다. 하지만 경쟁이 너무 심하고, 또 네가 변성기고, 노래도 리투아니아어가 아니고 한국어와 영어이니까 안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일요일 늦은 저녁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요가일래가 2단계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서 3단계에 오르게 되었다"라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내가 합격한 것이 반달 노래 때문일까? 스웨덴 랩소디 때문일까?"
"만약 반달이라면 3단계에서 표정이 더 풍부하게 노래를 해야겠다."


이렇게 말한 후 요가일래는 유튜브를 통해 이선희가 부르는 반달 노래에 따라 열심히 표정과 손짓을 연습했다. 한편 요가일래는 오는 금요일 학교 전체 연말 연주회에서 한복을 입고 반달 노래를 부른다. 이번 결과로 무엇보다도 노래를 더 잘해야겠다라는 동기를 다지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2. 3. 3. 08:16

"한국 동요 노을 리투아니아 전국 대회 본선행" 글에서 요가일래(10살)가 유럽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TV 노래 경연 대회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시 심사위원단은 한국 노래 노을을 본선 노래로 지정했지만,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한 후 리투아니아 노래 "Boruž,boružėle"(무당벌레)를 최종적으로 지정해주었다. 아쉬웠지만,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노래 대회이니 시청자들에게 전혀 생소한 한국어 노래보다는 리투아니아어 노래가 더 적합할 것이라는 점에는 충분히 이해된다.

노을 노래면 색동 한복이 딱 어울릴 것 같아서 때 마침 지인을 통해서 색동 한복을 구했다. 하지만 최종 지정곡이 바뀌자 의상이 이젠 제일 고민이었다. "어떤 드레스를 무대복으로 입혀야 하나?"를 두고 아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인들의 조언을 얻어서 선택할 수 있도록 유럽식 드레스를 서너 벌 준비했다.

경연일을 며칠 앞두고 친척 한 사람이 리투아니아에서 아주 유명한 의상 디자이너의 조언을 얻어보자고 제안했다. 어떻게 사례할 지가 걱정이었지만,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TV 출연 꿈을 이룬 딸에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해자고 마음 먹었다. 아내는 드레스와 한복을 함께 가져갔다. 두 시간 후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고민거리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뭐라고 조언했나?"
"한복이 최고다고 했어."
"왜 그렇게 생각해?"
"'본선에 올라온 참가자들은 큰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실력은 다 엇비슷하다. 뭔가 독특한 것으로 시청자와 심사위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요가일래에게는 한복이 적격이다.'라고 말했어. 요가일래에게 '너의 무당벌레는 한복을 통해서 한국에서 리투아니아로 온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심어주었어."
"우와~ 정말 대단한 디자이너네."


이렇게 해서 비록 리투아니아 노래를 부르지만 한복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 2월 26일 방송 촬영(3월 3일 현지 시각 오후 2시 방영)에서 요가일래가 노래를 다 부르고 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 데 사회자가 달려와 대본없이 즉흥 인터뷰를 했다.

"여기 무당벌레를 아무리 찾아봐도 나비만 보이네요. 입고 있는 이 아름다운 옷에 대해 말해주세요."
"이 치마는 한국의 전통 치마입니다."
"한국에 대해 전혀 몰라요. 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한국은 멋진 나라예요. 리투아니아보다 더 따뜻하고, 아주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매년 한국에 가요."
"언제 저도 초대해주세요."
"물론이지요."
"약속은 약속입니다. 감사합니다." 


* TV 방송 스튜디오에서 촬영

이렇게 한복 덕분에 인터뷰를 통해서 리투아니아 전국에 한복과 한국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2월 25일부터 매주 토요일 생방송으로 5월 중순까지 본선 TV 노래 경연 대회가 열린다. 심사위원들은 매회 참가자를 평가해 최종적으로 입상자를 선발한다. 이들은 리투아니아 오페라 대극장에서 최종 노래 공연을 한다. 이 공연에는 심사위원들이 뽑은 참가자들과 리투아니아 국내외 누리꾼들로부터 가장 많은 투표를 얻은 사람 1명이 참가한다.

* 결과: 아쉽게도 요가일래는 이번 행사에 최종 입상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2년 후에 다시 열린 행사에 또 도전해야겠지요. 그 동안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초유스
요가일래2011. 6. 14. 08:08

최근 K팝의 파리 공연이 성황리에 마쳐졌다.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을 강타했다"고 들떠 있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표 일간지인 르몽드는 “음악을 수출품으로 만든 제작사가 길러낸 소년·소녀가수들이 긍정적이며 역동적인 국가 이미지를 팔 수 있다고 여기는 한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아이돌의 교육기간 중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 수단도 동원된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고 노래에 관심있는 딸아이의 "성형수술 때문에 가수가 안될래"라는 옛날 말이 떠올랐다. 6월 12일 딸아이가 참가하는 "국제 음악 경연 대회"가 열렸다. 처음 참가하는 국제 대회라 큰 기대를 하고 가보았다. 고등학생까지만 참가할 수 있고, 피아노 부문과 노래 부문으로 나눠져 있었다.

행사 안내 책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명색이 국제 대회인데 딸아이가 참가하는 노래부문 카테고리 A(2001년 6월 11일 이후 출생)에는 참가자가 고작 2명뿐이었다. 하지만 나이대가 올라갈수록 참가자는 더 많았다. 

궁금해서 리투아니아인이자 음악을 전공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데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다. 이유는 자라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다듬으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그 목소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답이 왜 참가자가 적은 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참가자는 연달아 노래를 세 곡 불렀다. 한 곡도 아니고 세 곡을 부르는 것이 9살 딸아이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목감기 기운으로 목안이 따끔거리는 증세를 겪고 있었다. 노래를 다 마치고 밖으로 나온 딸아이는 그만 눈물을 흘렸다. 세번 째 노래에서 단어를 두 군데 섞어서 기대한 만큼 잘 부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만, 심사위원들 중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도 있으니까. 못해도 2등은 할 수 있잖아."

경연대회 결과는 6월 13일 오전에 나왔다. 행사장에 가있던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가일래가 3등을 했어!"
"참가자가 2명뿐인데 어떻게 3등을 했지? 좀 황당하지 않나?"
"1등과 2등은 선정되지 않았고, 3등이 최고야."

행사 안내책자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까닭은 이 경연대회의 등수는 상대평가가 아니고 절대점수로 매겨지기 때문이다.

▲ 상장에 서명한 사람들: 리투아니아 이탈리아 대사, 이탈리아 리투아니아 대사, 리투아니아 음악연극 대학교 총장, 빌뉴스 음악전문학교장....

▲ 처음으로 국제 대회에서 참가해 노래를 부르는 9살 요가일래
 

아내는 대회 규모나 등수가 문제가 아니라 딸아이에게 다양한 무대 체험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점 때문에 이 대회에 참가시켰다고 한다. 금색 상패를 목에 걸고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는 몹시 기뻐했다.

"아빠, 이게 진짜 금이야?"
"글세..."
"이게 진짜 금이다고 했다면 내가 노래를 더 잘 불렀을텐데......"
"앞으로 열심히 노래해봐. 이것보다 엄청나게 더 큰 진짜 금도 받을 수 있어."
"알았어."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