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에 해당되는 글 78건

  1. 2020.03.15 렌트카로 푸에르테벤투라를 일주하다
  2. 2020.03.13 중절모 닮은 로보스 섬을 도보로 일주하다
  3. 2019.12.01 몰타 여행 - 몰타에도 한국 당근 샐러드가 있다니
  4. 2019.11.28 몰타 여행 - 세인트폴만 해변 산책로에 국기 벤치들
  5. 2019.11.26 몰타 여행 - 므디나 해돋이 투어는 황홀함 그 자체다 2
  6. 2019.11.26 몰타 여행 - 말라버린 꽃줄기도 운치로운 블루라군 코미노
  7. 2019.11.25 몰타 여행 - LOVE 조각상이 거꾸로 세워진 이유는? 2
  8. 2019.11.22 몰타 여행 - 사진 촬영에 까다로운 딸에게 제발 영상 찍자 9
  9. 2019.11.20 몰타 모스타 원형 성당에 왜 거대한 폭탄이 있을까
  10. 2019.11.19 몰타 골든만 일대는 3욕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
  11. 2019.11.18 몰타 해변 벽에는 배들이 촘촘히 매달려 있다
  12. 2019.11.15 몰타 뽀빠이 마을에서 뽀빠이 흉내를 내보니
  13. 2019.11.14 몰타 거리 산책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다 2
  14. 2019.11.11 몰타 고기잡이 배에 그려진 눈 한 쌍의 의미는...
  15. 2019.11.08 몰타 여행에서 버스 이용시 알아두면 좋은 거
  16. 2019.11.06 몰타 호텔에 큐알코드로 입실하다
  17. 2019.11.04 몰타에서 만난 달팽이 나무에 나를 반조해 본다
  18. 2018.03.09 호주 - 모래 해변 걸으니 유럽 하얀 눈길을 걷는 듯 2
  19. 2018.02.06 호주 - 신발장 앞 하늘소 조형물의 용도에 우와~~~
  20. 2018.02.02 호주 - 옆집과 경계 짓는 담장이 계단식 채소밭~~~
  21. 2018.01.29 호주 본다이 비치 구경에 취해 범칙금이 22만원 헉~ 2
  22. 2018.01.19 현금 자동 인출기에서 뽑은 중국 위안이 위조지폐라니 1
  23. 2016.11.28 마요르카 - 가우디의 손길을 보지 못한 팔마 대성당 1
  24. 2016.11.26 마요르카 - 아기자기 아름다운 해변이 곳곳에
  25. 2016.11.25 마요르카 - 머리 위에 식물이 자라는 아르타
  26. 2016.11.25 마요르카 - 얇은 비취 바다, 넓은 하얀 해변 알쿠디아
  27. 2016.11.25 마요르카 - 계단 365개 밟아야 닿는 포옌사 성당
  28. 2016.11.25 마요르카 - 포르멘토르 등대까진 탄성과 지옥 길
  29. 2016.11.25 마요르카 - 트라문타나는 유일한 유네스코 유산지
  30. 2016.11.25 마요르카 - 아픔에도 왕성히 작곡한 쇼팽의 발데모사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중 하나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를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계절이 10월 하순이다. 이맘때인데도 여기는 북유럽의 여름 날씨보다 훨씬 더 따뜻하다. 여전히 해수욕을 할 수 정도다. 섬북단 코랄레호(Corralejo)에 머물면서 주로 인근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래 지도는 푸에르테벤투라에서 잠수체험을 할 수 있는 대표적인 25개 장소이다.

 

 

하루는 렌트카로 푸에르테벤투라 섬을 일주해보기로 했다. 렌트카 사무실에 걸려 있는 카나리아 제도 지도가 눈에 확 들어온다. 라팔마, 테네리페, 라고메라, 엘이에로, 그란카나리아, 푸에르테벤투라, 란사로테다. 여러 해를 거쳐 이 일곱 개 섬을 다 다녀오려고 한다. 지금껏 세 개 섬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해마다 1천만명 이상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카나리아 제도에서 렌트카 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물론 임박해서 하거나 당일에 하면 비용이 부담스럽다. 여행을 결정함과 동시에 렌트카 예약을 해놓는 것이 유리하다.

 

자, 코랄레호를 떠나 이제 남쪽으로 내려간다. 라올리바(La Oliva)를 지나서 가다보면 오른쪽에 봉우리 하나가 우뚝 솟아나 있다. 틴다야(Tindaya) 산이다. 해발 401미터이고 평원에서는 225미터다. 이 산은 300여개의 발모양 고대 암석조각이 있어서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원주민들은 이 산을 신성시했다. 

 

틴디야를 막 벗어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산기슭 외딴 곳에 금색 동상이 보인다. 산색깔과 흡사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동상의 주인공은 미겔 데 우나무노(Miguel de Unamuno, 1864-1936)다. 스페인의 작가이자 철학자로 20세기 스페인 문학과 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여러 작품들(사랑과 교육, 안개, 아벨 산체스 등)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그는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Miguel Primo de Rivera, 1870-1930) 독재에 항거하다가 1924년 살라망카대학교(Salmanca Univ.) 총장직에서 해임되고 푸에르테벤투라로 추방되어 1930년까지 거주했다.  

 
이제 차는 서서히 완만한 길을 따라 올라가더니 어느 순간에 구불구불하고 가파른 산길로 접어든다. 이날 제일 먼저 도착한 전망대는 테구(Tegu) 산 정상에 있는 모로벨로사(Mirador Morro Velosa)다. 란사로테 출신 스페인의 유명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세사르 만리케(César Manrique, 1919-1992)가 설계한 이 전망대는 주차장, 정원, 커피숍, 전시관을 두루 갖추고 있다. 휴관일에는 진입로가 막힌다. 휴관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이 경우 FV-30 도로 거인상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약 1.3km 거리를 걸어서 올라가면 된다.  
 

 

작은 전시관을 둘러본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급경사의 비탈길을 올라올 때 받은 긴장감을 통유리벽 넘어 펼쳐진 전경을 바라보면서 한순간에 떨쳐 버린다. 확 트인 이국적인 전경에 미소가 절로 나온다.

 

 

해발 650미터에 잡리잡고 있는 모로벨로사 전망대는 푸에르테벤투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로 여겨진다. 맑은 날에는 엘코틸로(El Cotillo), 틴다야 산, 코랄레호 사막 그리고 란사로테 섬까지 훤하게 다 보인다.  
 

 
테구 산 위에서 내려다 본 또 다른 전망대(Mirador Corrales de Guize)다. 해발 600미터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는 베탄쿠리아(Betancuria)가 보이고 북쪽으로는 코랄레호 사막과 엘코틸로가 보인다. 
 

 

이 전망대의 압권은 높이가 4.5미터인 두 거인상이다. 기세(Guize)와 아요세(Ayoze)다. 1402년 노르만인들(스칸디나비아에서 유래된 민족)이 이 섬을 침략했을 때 기세는 섬 북부를 다스리는 왕이고 아요세는 섬 남부를 다스리는 왕이었다. 침략자들의 우세한 무력에 얼마 안 가서 이들은 항복하고 각각 루이스(Luis)와 알폰소(Alfonso)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들이 서 있는 자리가 당시 남북 왕국의 경계선으로 주장되고 있다.   

 

청동상의 손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믿음 때문일까 땅을 향한 오른손 중지가 벌써 황금색으로 변해 있다. 활짝 편 손으로 행운을 수직으로 곧장 내려주소서...

이 전망대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남쪽으로 3킬로미터로 가면 베탄쿠리아가 나온다. 1404년 노르만 원정대의 장 베텐코트(Jean de Béthencourt, 1362–1425)가 이 도시를 세웠다. 현재 인구가 약 800명밖에 안 되지만 한때 카나리아 제도 왕국(1404-1448)의 최초 수도(1404-1425)였고 1863년까지 푸에르테벤투라의 수도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 분지에 위치해 있는 모습에서 왜 여기가 수도로 정해졌는지가 쉽게 이해된다. 자연적 방어를 갖춘 내륙과 비옥한 계곡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차례 해적들의 공격을 받았다.  

 

 

1410년 세워진 푸에르테벤투라 최초의 성당이다. 프랑스 고딕식이다. 1593년 해적의 공격으로 파괴된 후 복원되었다. 종탑은 원형 그대로다.     

 
조그만 시골 동네 같은 역사적 도시 베탄쿠리아를 뒤로 하고 이제는 오르막 산길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간간히 바람개비 같은 풍차가 눈에 띈다. 물을 퍼올리는 양수기 역할을 한다.

 
산 중턱에 전망대가 나온다. 해발 338미터에 있는 라스페니타스(Las Peñitas) 전망대다. 우뚝 솟은 봉우리는 해발 526미터인 라무다(La Muda)다.       
 
 

아래로 내려다 보니 이 섬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져 있다. 초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사막에 만나는 오아시스 같다. 지하로 흐르는 물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 1900년대 두 차례에 걸쳐 댐이 만들어졌다. 이날은 황토물이 고여 있다.

저수지를 보고 있는데 전망대 난간 밑에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처음에는 한두 마리만 시야에 들어오더니 차츰차츰 바위와 움직이는 것의 색깔이 구별되자 엄청난 숫자로 여기저기에서 몰려온다. 

 

사하라, 모르코, 카나리아 제도 등에 분포되어 있는 바르바리땅다람쥐(Barbary ground squirrel)다. 아열대 또는 열대 지역의 건조 관목, 온대 초원 혹은 암반 지대에 서식하고 있다. 몸은 회갈색이나 적갈색을 띠고 꼬리는 검은색과 회색이다. 등에는 흰색 줄무늬가 있다. 굴 속에서 집단으로 모여 산다. 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내문이 있음에도 사람들은 땅콩이나 해바라기씨 등 먹이를 준다. 이에 익숙해진 다람쥐들이 우리가 나타나자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안내문에 충실한 우리가 너무 야속하겠지...

고개를 향해 올라가니 정상에 또 다른 전망대가 우릴 맞이한다. 해발 426미터에 있는 리스코델라스페냐스(Mirador del Risco de las Peñas) 전망대다. 여기가 행정구역의 경계를 이룬다.  

 

산중턱 흰색 점선이 우리가 조금 전 올라온 도로다. 이 전망대 주위에도 엄청난 수의 다람쥐가 노닐고 있다.  

 
벼랑길 같은 가파란 산도로를 자전거로 타고 오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저 멀리 높이 솟아 있는 세 봉우리 산이 보인다. 해발 690미터인 카르돈(Cardón) 산이다.

 
저 꼭대기에 한번 올라가고 싶다. 행여나 저기를 등산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여기 카르돈 등산 관련 안내 사이트를 알린다.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한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풍경을 지니고 있는 산악지대를 벗어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남부 지방의 휴양지 코스타칼마(Costa Calma)다. 이름 그대로 "고요한 해변"이다. 한디아(Jandía) 반도의 시작점이다. 1970년대 관광휴양지로 개발되었다.  

 

유럽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해수욕장 중 하나인 소타벤토(Sotavento) 해수욕장이 코스타칼마 바로 옆에 있다. 특히 썰물 때 드러나는 황금빛 폭넓은 모래사장과 얕고 큼직한 석호가 소타벤토의 명성을 여실히 입증해 준다. 해수욕장은 남북으로 9킬로미터 뻗어 있고 해변 언덕은 주로 모래사막이다. 우리는

여기에 차를 세워놓고

해변으로 내려갔다.  

 
이 해수욕장이 무엇으로 유명한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바로 서핑이다. 윈드서핑과 카이트서핑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경기뿐만 아니라 연습하는 데에도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서핑은 하지 못하니 대서양 바다에서 해수욕을 즐겨본다. 10월 하순 늦은 오후라 바닷물이 다소 차다.    

 

저녁 노을이 서서히 북동쪽 하늘을 장식하려고 할 때 즈음 우리는 코랄레호 숙소로 돌아오기 위해 FV-2 도로를 탄다.   

 

이날 일정에는 돌아오는 길에 아프리카 대륙 모로코에 제일 가까운 곳인

엔탈라다 등대

(Faro de la Entallada) 구경이 있었다. 시간이 부족해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섬의 북부 끝에서 남부까지 두루 둘러보았다. "좀 더 아침 일찍 출발했더라면 돌아오는 길에도 여러 명소를 볼 수 있었을 텐데"라고 식구 모두 무척 아쉬워했다. 푸에르테벤투라 일주를 강력 추천하고 싶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13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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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7개 주요 섬으로 이루어진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는 1479년부터 스페인에 속해 있다. 아프리카 모르코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약 100 km 떨어져 있다. 인구가 215만명인데 해마다 1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주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영국, 독일 등 북쪽에 위치한 나라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카나리아 제도를 이루는 7개 주요 섬 중 하나인 푸에르테벤투라(Fuerteventura) 섬에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우리는 이 섬의 최북단에 위치한 휴양도시가 코랄레호(Corralejo)에서 묵었다. 동쪽 근교에 광활한 사막과 11 km의 부드러운 모래 해변이 있어 많은 휴양객들이 찾아온다. 또한 란사로테(Lanzarote) 섬으로 가는 항구다.           

일광욕과 해수욕에 푹 빠진 식구들은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코랄레호 해변에서 바라보이는 작은 섬이 늘 궁금하다. 머무는 동안 혼자라도 꼭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호수 같이 잔잔한 아침 바다에서 낚시하는 배 넘어 보이는 섬이 바로 로보스(isla de lobos) 섬이다. 6000-8000년 전에 형성된 화산섬이다. 코랄레호에서 2 km 거리에 있다. 섬 이름은 Lobos는 늑대라는 뜻이다. 여기서 늑대는 바다늑대 즉 지중해에 서식하고 있는 몽크물범, 수도사물범을 말한다.

로보스 섬에 우뚝 솟아 있는 산이 칼데라(Caldera) 산이다. 해발 127 m다.  얼핏 보니 그 형상이 중절모를 닮은 듯하다. 저 꼭대기에 빨리 올라가 사방을 두루 구경하고 싶다.

코랄레호 선착장에서 낮 시간에만 관광객을 위해서 

여객선

이 운영되고 있다. 하루 4-5편이 있다. 섬에서의 야영은 금지되어 있다. 코랄레호 출발 시각은 10:00, 11:00, 13:00, 14:00, 15:30이고 로보스에서 돌아오는 시각은 11:15, 14:15, 16:00, 17:00이다. 소요시간은 15분이고 왕복운임은 성인 16유로, 어린이(4-11) 8.50유로다. 선착장에서 로보스로 향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봤다.

로보스 선착장에서 내리니 주변에는 많은 요트들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다. 바닷속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다. 

섬으로 들어가자 흉상 하나가 나를 맞이한다. 호세피나 플라(Josefina Pla, 1903-1999)다. 1903년 로보스에서 태어난 파라과이 여류작가다. 인권과 남녀평등을 옹호하는 작품 활동으로 많은 상을 수상했다. 2003년 탄생 백주년을 맞아 이곳에 흉상이 세워졌다.      

방문객 안내소 앞에 몽크물범 두 마리가 누워서 쉬고 있다. 지중해 연안에만 서식하고 있는 이 물범은 모피 빛깔이 목 부위에서 달라지는 것이 마치 중세시대 유럽 수도사가 쓰는 고깔을 닮아서 몽크물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한때 이 섬에서 대량으로 서식하던 몽크물범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사라졌다. 요즘은 이따금 보인다. 사진 속 두 마리는 조각상이다.    

면적이 약 5 평방킬로미터인 로보스 섬 전체가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식물군과 동물군(특히 조류)을 보호하기 위해 표시된 길로만 사람들이 다닐 수 있다. 칼데라 산정상까지 도보 소요시간은 49분이다.    

평평한 산정상으로 그 형상이 확연히 모자를 닮아 보인다. 

입구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자 비취색 석호가 눈앞에 펼쳐진다. 백사장이 있는 콘차 해수욕장(Playa de la Concha)이다. 군데군데 사람들이 일광욕이나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같이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이 솔찬히 많았다. 그런데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져 자취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무인도에서 혼자된 느낌이다. 멀리 한 가족을 발견하자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하다. 혹시 목적지가 같을까...

낮은 언덕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바람 한점 없다.  

드디어 산어귀에 도착했다. 해발 127 m 높이다. 등선미가 완만해 보인다. 하지만 올라가보니 가파른 구간도 여러 곳에 있다. 뭐니해도 오른쪽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장난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숲이 울창하게 우거지고 색색의 야생화가 향기를 뿜어내는 산에서의 등산보다는 훨씬 힘든다.

멀리서 보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돌산으로 보이지만 직접 와서 보니 돌조각으로 뒤덮인 산에 여러 다육 식물(건조 기후나 모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잎이나 줄기 또는 뿌리에 물을 저장해 자라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작은 섬에 130개 이상의 다양한 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마침내 산정상에 도착했다. 아무도 없는 이곳에 갈매기 한 마리가 나를 반기는 듯하다.

이내 갈매기는 "나를 따라 내려와!"를 외치듯 산비탈 아래로 날아간다.  

칼데라 산의 서쪽 가파른 비탈이다. 그 아래에 아주 작은 만이 형성되어 있다. 근접성이 쉽지가 않다. 검은 자갈 대신에 하얀 모래가 해변을 장식하고 있다면 누군가 저기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을 법하다.  

이 비탈은 다양한 종류의 갈매기들의 집단 서식지이다. 

칼데라 산정상으로 올가가는 장면과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봤다. 

127 m 산정상 표지석이다. 

밭처럼 가꾸어진 곳이 로보스 섬의 염전이다.

로보스 섬의 콘차 해수욕장이다.

바다 건너 보이는 광활한 사막과 기다란 해수욕장이 푸에르테벤투라의 대표적 관광명소다.

바다와 하늘의 다양한 파란색이 홀로 뙤약볕에 힘겹게 오른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경관에 산상소원을 빌지 않을 수 없다.

바다 건너편이 묵고 있는 코랄레호다.

이 순간 요트를 타는 것이 더 재미있을까?산정상에서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를 천천히 가로지른 요트를 구경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까?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엄청 강하다. 나무가 없으니 사진으로 이 강풍을 찍을 수가 없다. 하지만 돌벽이 이를 차단해 주고 있다.

돌틈 사이로 바다 건너 란사로테 섬이 보인다. 

란사로테는 카네리아 제도를 이루는 또 하나의 주요한 섬다.

로보스 북동 극점에 여전히 활동중인 등대가 있다. 1865년 세워졌다. 1960년대 자동화가 된 후 마지막 등대지기와 그의 가족이 이 섬을 떠났다. 현재 이 섬에는 상주하는 사람은 없다. 

내친 김에 푼토 마르티노(Punto Martino) 등대까지 가본다. 로보스 선착장에서 여기까지는 3.5 km 거리다.

로보스의 동쪽 부분은 식물이 비교적 많이 자라고 있다. 마치 습지에 온 듯하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사하라와 카나리아 제도까지 분포되어 있는 관목인 유포르비아(euphorbia balsamifera)다. 이 관목은 이웃 섬 란사로테의 식물 상징물이다. 2 m에서 5 m까지 자란다.

테트라에나 포타네시이(tetraena fontanesii)다. 마크로네시아와 북서 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다. 팔마 섬을 제외한 모든 카나리아 제도에서 서식하고 있다. 생김새와 색깔이 특이하다. 햇볕에 노출되는 것에 따라 녹색에서부터 황색까지 다양한 색을 띠고 있다. 잎은 만지면 톡 터질 듯한 원통형이다.    

여기저기 낮은 오름이 즐비하다. 푸른 잔디 옷을 입고 있었더라면 경주의 신라 고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  

바위 덩어리의 형상이 코알라나 아기곰을 떠올리게 한다.

한없이 아늑하고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금빛 모래사장에서 독서하면서 일광욕하다가 이따금 연한 비취색 바다에서 해수욕을 하다보면 세상사 모든 근심이 저절로 사라지겠다. 아쉽게도 코랄레호로 돌아갈 배을 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로보스 섬이 속해 있는 행정구역이 강풍을 뜻하는 푸에르테벤추라다. 그래서 그런지 낮은 건물 모습이 쉽게 이해가 된다.   

4시간 동안 약 15 km를 거의 쉴 틈 없이 로보스 섬을 둘러본 후 선착장으로 돌아왔다. 몸은 몹시 지쳤지만 섬 전체를 도보로 일주하니 마음이 아주 뿌듯하다. 황량한 돌산, 모래색 산책로, 땅색과 크게 구별되지 않는 식물을 보고온 후라서 그런지 비취색 바다와 파란색 하늘이 더욱 돋보인다.    

코랄레호나 인근에서 여러 날 휴양하려는 사람들에게 로보스를 한번 방문하길 권한다. 가급적 첫 배를 타고 와서 섬 도보 일주를 한 후 석호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것이 좋겠다. 반드시 물과 간식거리를 든든히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은 초유스의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가족

여행기 11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란사로테와 푸에르테벤투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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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2. 1. 03:44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몰타 여행 마지막 날 일출을 맞으면서 므디나를 둘려본 멋진 경험을 간직한 채 우리 가족은 202번 버스를 타고 우선 짐을 보관할 수 세인트줄리언스(Saint Julian's)으로 이동한다.

음료수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기 위해 우선 세인트줄리언스 밸유 슈파마켓(Valyou 위치는 여기)으로 들어간다. 이쪽저쪽 판매대를 둘러보는데 익숙한 샐러드가 눈에 들어온다. 당근을 얇게 채을 썰어 만든 샐러드다.   


이 샐러드의 이름이 "한국 당근"이다. 이 음식은 소련 시대 고려인들이 한국 김치 맛을 내기 위해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 먹은 데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소련의 한 구성원이었던 발트 3국 슈파마켓에서는 지금도 "한국 당근"을 쉽게 볼 수 있다. 싱싱한 샐러드로 팔기도 하고 유리병에 보존해 팔기도 한다.   

보통 당근을 채썰어 후 카르다몸(cardamom), 설탕, 마늘, 식용육, 식초 등으로 버무려서 만든다. 이미 숙소를 떠난 여행 마지막 날이라 아쉽다. 몰타에서 파는 "한국 당근" 샐러드를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가격은 얼마일까? 350그램에 3.67유로로 약 4700원이다.


깨끗한 넓은 세인트줄리언스 해변 산책로를 따라 짐보관소로 향한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저녁 7시이라 우리는 짐을 보관하고 슬리마(슬리에마 Sliema)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짐보관소의 위치(구글 지도)는 세인트줄리언스만 호텔 1층에 있다.  


51 Censu Tabone Street라고 표기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무인 짐보관소다.


짐을 보관 후 홀가분한 우리는 이미 둘러본 해변 산책로 대신 골목길을 선택해 슬리마 쇼핑 지역 쪽으로 이동한다. 건축자재는 보통 누런빛 석회석이라 거리 분위기가 아주 단조롭다. 하지만 발코니와 현관문의 색깔은 집집마다 개성적인 색깔로 칠해져 있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인데 악기 상점이 하나 있다. 해외여행지에서 향토색이 짙은 악기를 사는 것이 아내의 취미다. 점원이 첫눈에 우리가 리투아니아에서 온 사람인 줄 알아보고 리투아니아어로 말을 건다. 아니, 어떻게 이를 수가!!!
"어떻게 리투아니아 사람이 이곳 몰타에서 악기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이 몰타 사람이라서요."
"여기 여름철에 살기는 어때요?"
"너무 더워요."
"그러면 겨울철에는요?"
"중앙난방시설이 없어서 추워요."
"제일 여행하기 좋은 때는요?"
"9월에서 10월 중순까지가 좋은 듯해요."   


이번 몰타 여행에서 내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전선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는 전선이나 통신선 등이 지하에 묻혀 있다. 그래서 도심에 전봇대가 없다. 몰타는 전선 등이 창문 위나 발코니 밑에 있는 벽에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걸어서 거리 구경을 하면서 쇼핑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Tower Road 위구글 지도)에 이른다.


아내와 딸이 쇼핑을 하는 동안 늘 그렇듯이 밖에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곧 엄청난 비가 쏟아질 듯하다.  


다행히 쇼핑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식당이 있을 때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식당 출입문에 떨어진 빗물이 유리를 바깥 풍경을 몽환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살짝 열린 출입문 사이로 보이는 거리는 그야말로 급류가 흐르는 개울로 변해 있다. 우산도 없는데 저 비를 맞았더라면 한순간에 흠뻑 젖었을 것이다.    



폭우는 차츰 그친다. 우리는 슬리마에서 세인트줄리언스로 가서 짐을 찾아 인근에서 공항행 TD2 버스를 타고 몰타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라이언에어 비행기로 3시간 20분만에 빌뉴스에 도착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 여행을 다녀왔다. 몰타에서 9일을 머무는 동안 많은 곳을 둘러보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여러 곳이 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해본다. 몰타 가족여행기(15편)를 쓰면서 자꾸만 비취색 아름다운 지중해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 동안 읽으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5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몰타 여행기 1편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 8편 | 9 | 10편 | 11편 | 12편 | 13편 | 14편 | 15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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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28. 18:35

10월 하순 9일 동안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자유여행인지라 숙소를 어디로 할 것인지 고민이다. 몰타는 관광업이 2018년 국민총생산에서 차치하는 비중이 27.1%이다. 2018년 섬나라 몰타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260만명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다섯 배가 넘는 수이다. 몰타 전체를 통해 곳곳에 숙박시설이 갖쳐져 있다. 

7명이 8박을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첫날 숙박지는 쉽게 정했다. 다음날 호주에서 오는 큰딸을 맞이해야 하므로 공항 인근 키로코프(Kirkop)에서 묵었다[관련글: 몰타 호텔에 큐알코드로 입실하다]. 그 다음날부터는 가족여행을 마칠 때까지 한 곳에 있는다.

우리가 숙소를 선택할 때 고려한 사항이다.
1.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곳
2. 바다가 보일 것
3. 해수욕장 및 관광명소가 곳에 가까울 것
4. 7명이 지낼 수 있도록 방이 3개 이상일 것  
5. 가격이 좋은 곳

이렇게 해서 구한 숙소는 에어비앤비 아파트다. 위치는 세인트폴만(Saint Paul's Bay) 해변에 위치해 있다. 세인트폴만은 몰타에서 기독교가 시작된 곳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 바울(폴 Paul) 일행이 이스라엘 카이사리아(Caesarea)에서 로마로 향하다가 난파를 당해 도착한 세인트폴섬이 바로 이 만에 있다. 

이런 이유로 몰타에서는 매년 2월 10일 성바울 난파축제가 열린다. 세이트폴만 해안선을 따라 부지바(Buġibba) 등 여러 마을이 한 도시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 하얀 혹은 누런 건물, 하얀 구름, 비취색 바다가 한 편의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이룬다.


우리는 세인트폴만에 속해 있는 셈시야만(Xemxija Bay) 남쪽 해안에 묵는다.  


해안 아파트라 길이 가파르다. 


우리가 묵은 숙소를 참고 삼아 소개한다.
침실 1


침실 2


침실 3


욕실이 두 개이고 욕조와 더불어 샤워실도 마련되어 있다. 


거실


부엌


몰타는 전원 꽂개집(콘센트) 형대가 다르다. 미처 변환 꽂개집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숙소에 하나가 준비되어 있다.


발코니 두 개가 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세인트폴만이다. 청록색이 군데군데 바다에 수놓여 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야경이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해안이다. 돌로 가득 차 있다. 숙소 지하주차장에서 나가 쉽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관리인이 쓰레기 버리기에 주의를 준다. 플라스틱, 종이, 깡통 등 재활용 쓰레기는 회색 봉투(가게에서 구입)에 넣어야 하고 유리는 따로 버려야 한다. 쓰레기 수거 시간은 혼합쓰레기는 월요일-토요일 7시부터, 회색 봉투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10시부터, 유리 수거는 매달 첫 째주 금요일 7시부터다. 수거 시작 1시간 전에 주차장 문 앞에 내놓는다.  


쓰레기 봉투들이 문 앞에서 청소차를 기다리고 있다.   


셈시야만(Xemxija Bay) 해변도로에서 바로보는 세인트폴만이다.


셈시야만 해변 산책로 야자수 사이에 놓여 있는 벤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벤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로 칠해져 있다.


붉은색 바탕에 파란색 십자가 그리고 흰색선 - 노르웨이 국기다.


파랑색 노랑색 빨강색 루마니아 국기가 보인다.


노랑색 초록색 빨강색 리투아니아 국기다.


국적이 리투아니아라 리투아니아 국기 벤치에 앉아본다. 대한민국 국기를 찾아보았으나 아쉽게도 없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4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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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26. 18:05

10월 하순 9일 동안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마지막 날 호주에서 온 큰딸은 비행기 출발시간이 아침 9시고 우리는 저녁 7시이다. 숙소 체크아웃 마감시간이 오전 10시다. 그래서 일단 큰딸이 공항 가는 택시를 같이 타고 나온다. 

공항까지 가서 큰딸을 배웅한 후 여행가방을 짐보관서에 맡기고 도시을 구경하러 나올지 아니면 중간에 먼저 내려서 므디나(Mdina)를 구경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몰타는 일광절약시간제(10월 마지막 일요일 1시간이 앞으로 당겨진다)를 실시하고 있다. 아침 6시 택시 안에서 여명을 만난다.   


달리는 택시 앞유리를 통해 여명이 점점 더 강렬한 색채로 유혹한다. 급기야 택시가 언덕 위 므디나 옆을 지나갈 때 운전사에게 내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택시에서 큰딸과 급하게 작별한 후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일출광경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걷는다. 언제 이런 황홀한 일출광경을 보았던가?         


새들도 일어나 해맞이 축가를 부르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지평선 바로 위 짙은 먹구름 사이에 해가 나올 정도로 작은 구멍 하나가 뻥 뚫여 있다.   


그리고 찰나 후 그 구멍 사이로 빨갛게 익은 동그란 홍시 같은 해가 쏙 얼굴을 내민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눈에서 온몸으로 퍼진다.


이른 아침이라 므디나 도심으로 가는 거리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므디나는 몰타섬 내륙 중앙에 위치해 있다. 면적이 0.9평방킬로미터고 인구가 200여명이지만 한때 몰타의 수도였다. 해발 185미터로 몰타섬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점에 있어서 섬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형성된 이 도시는 고대 로마를 거쳐 870년부터 아랍이 지배한다. 이때 지금의 이름 므디나(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뜻)를 받는다. 그 이후 1091년 노르만 왕조, 1282년 스페인 아라곤 왕조, 1530년 요한 기사단, 1798년 프랑스, 1800년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게 된다. 수도가 발레타로 옮겨진 후 므디나는 "조용한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노르만과 바로크 건축이 잘 혼합되어 있고 또한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므디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므디나로 들어가는 입구다. 방어용 해자 위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여행가방 끌고 고대와 중세 도시 므디나 안으로 들어간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형벌도구가 보인다. 지하감옥으로 안내한다.    

좁은 골목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므디나가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설계된 도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뒤에서 밀고 오는 관광객들이 없으니 우리는 수백년 된 건물들을 만지면서까지 찬찬히 살펴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현관문 앞 화분들은 누런색 석회석 벽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현관문 앞 화초 정원이다.


성문 입구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출입문 그리스인 문(Greeks Gate)을 통해 밖으로 나가본다. 석벽에 막혀 더 이상 뻗을 수 없게 되자 나뭇가지가 자신을 굽혀 위로 올라간다. 순수추단 (順水推丹)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물은 뭔가에 부딪히면 돌아서 흐르는 속성이 있다. 순수추단 (順水推丹)은 물길에 따라 노를 저어라라는 뜻이다.


벤치, 창문 그리고 부겐빌레아 두 그루가 사진을 찍어라고 마치 설정을 해놓은 듯하다.



쇠창살 너머에 보이는 창문보(커튼)의 십자가에서 요한 기사단 시대가 엿보인다.
 

성벽 건물을 따라 만난 작은 광장(위치는 여기)이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광장에서 건물 벽을 가득 메워 담쟁이처럼 벽에 붙어서 올라가는 부겐빌레아가 감탄을 자아낸다.


아침이라 아직 식당 문이 닫혀 있다. 배달된 빵이 문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설마 배고픈 우리를 위해 내놓은 것은 아니겠지... ㅎㅎㅎ 아침커피 마시면 딱 좋을 시간인데 아쉽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니 아침안개가 걷히는 저 멀리 발레타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관광객이 전혀 없는 고요한 거리를 따라 발걸음을 유명하다는 바울 대성당 쪽으로 향한다. 


바울 대성당은 12세기에 세워졌고 1693년 시칠리아 지진으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몰타의 바로크 건축가 로렌조 가파(Lorenzo Gafà 1639–1703)의 설계에 의해 1696-1705년 다시 지어졌다. 이 대성당은 가파의 대걸작으로 손꼽힌다. 대성당 앞 광장에는 채소상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바울 대성당 정문 위에 있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문장은 지금껏 몰타에 있는 여러 성당에서 보았다.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열정, 백마는 사도 요한의 백마 탄 그리스도, 달은 어둠 속 빛, 노란 장미는 동정녀 마리아를 뜻한다. 라틴어 좌우명 Fidelix Et Verax는 충실하고 진실함을 뜻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는 몰타 찰스 시클루나(Charles Scicluna) 대주교의 문장이다.


이른 시간이라 대성당 입장이 불가하다. 그런데 공사를 하는 인부들의 출입을 위해 문이 살짝 열려 있기에 들어가 본다. 북유럽 바로크 성당에 익숙해진 내 눈은 이 대성당의 화려함과 장엄함에 놀라 그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바닥 대리석에도 각양각색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아직 성당 개방시간이 아니라서 찬찬히 둘러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광장을 벗어나자 수녀들이 나오는 성당이 눈에 띈다. 사방이 석회석 건물뿐이다.  


가톨릭 가르멜회 성모영보 성당이다. 이 성당 또한 화려한 바르크 조각상과 그림으로 장식 되어 있다. 1695년 완공되었다. 1693년 지진으로 바울 대성당이 크게 파괴되자 대성당 기능을 잠시 하기도 했다.


성모영보(동정녀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뜻함)을 묘사하는 천장 그림이 압권이다.


므디나의 중심거리엔 여전히 행인들이 안 보인다. 


이제 2시간(6시 20분 - 8시 20분) 동안 므디나 산책을 마치고 모녀가 성문 밖으로 나가고 있다.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까지 망설이던 므디나 투어를 이렇게 마친다.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일출광경은 황활함 그 자체다. 특히 높은 언덕이 거의 없고 보통 구름에 가려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북유럽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환성적이고 신비로운 광경을 느끼게 한다.

이른 아침 시간대라 관광객이나 행인이 전무한 고대와 중세 도시 므디나 골목길을 우리가 통째로 전세를 얻어서 산책을 한 듯하다. 앞으로 낯선 관광지에 가면 이렇게 일출과 더불어 아침 일찍 둘러볼 기회를 많이 가지는 것에 우리 가족은 서로 공감을 한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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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26. 00:53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종여행을 다녀왔다. 숙소가 몰타섬 세인트폴만에 있다. 하루 시간을 내어서 고조(Gozo)섬과 코미노(Comino)섬을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덴 몰타섬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여행기간 10일도 부족하다. 

가족여행을 마치기 하루 전에야 블루라군으로 아주 유명하다는 코미노섬을 택한다. 다행히 이날은 아침부터 아주 쾌청하다. 여기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쭉 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고조섬행 선착장에서도 배가 운행되고 있다. 비취색이 얼룩져 있는 저 푸른색 바다 너머가 바로 코미노섬이다. 사람이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다면 저 산책하는 한 쌍처럼 걸어가고 싶다.       


왕복 승선권이 1인당 13유로다. 약 5km 거리를 왕복 이동하는 비용으로는 너무 과하다. 식구가 네 명이니 더 더욱 비싸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ㅎㅎㅎ  


20-30명이 탈 수 있는 배는 만석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물살을 거세게 가르면서 코미노섬을 향한다. 섬 주변 절벽에 이르자 배는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높은 절벽은 몰아치는 파도에 못 이겨 제 살을 내어주어 뻥 뚫린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바닷물은 검푸른 옷을 벗고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비취색 옷을 입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절경에 감탄하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 순간 왕복 승선권 13유로가 비싸다는 생각이 싹 가버린다. 와, 승선권이 아깝지가 않구나!!!    


절벽 절경 여러 곳을 안내한 후 배는 다시 속력을 낸다. 마지막 절벽을 돌아서 선착장으로 향하자 바닷물 색깔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확연히 다르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시선을 사로잡는 안내판이 있다. 바로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기 위한 해변양산과 해변의자를 임대하는 안내판이다. 공식 최대 가격이 각각 5유로다.   

  
안내편을 지나면서 해변의자가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좌우를 둘러봐도 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해변수건을 깔 수 있는 공간을 찾기도 힘들다. 약간 평평한 바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해변의자는 참 요긴하겠다. 아, 그래서 장사가 되는구나!   


선착장 좁은 모래해변에는 벌써 앉을 자리가 없다. 수정처럼 저 맑은 물에 나도 몸을 담그면 수정처럼 깨끗해질 듯한 기분이 든다. 


밝은 비취색빛을 발하면서 찰랑거리는 코미노섬 블루라군의 진면목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낀다. 아직 주인을 못 만난 해변의자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   



이날은 10월 마지막일이다. 여전히 블루라군에는 수상안전요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훌러덩 옷 벗고 물감 풀어놓은 듯한 저 잔잔한 바닷물로 첨벙 뛰어들고 싶다. 꿈 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얕아 보이지만 나중에 수영하러 들어가니 해변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닥에 내 발이 닿지 않는다. 


하얀 구름 밑에 있는 곳이 고조섬이다. 같은 바닷물인데도 물 깊이와 바닥 내용물에 따라 어떻게 저렇게 신비롭게 색이 달라질 수 있는 지에 새삼스럽게 놀란다.  


우리는 수영 대신 먼저 언덕 산책을 하기로 한다. 


해안을 따라 산책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절경에 눈이 팔려 자칫 실족하면 큰 일이 나기 때문이다. 특히 해안 절벽 바위 위로 함부로 올라가는 가서도 안 된다. 오랜 풍화 작용으로 어떤 바위는 약해서 쉽게 부서지거나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안 절벽을 벗어나 언덕 위로 향한다. 사방천지에 돌덩이뿐이라 교목들이 자랄 수가 없겠다. 덤불 식물들이 돌덩이를 덮고 있다.   


돌덩이 사이로 야생화가 피어오르고 있다. 가냘픈 꽃의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롭구나!


풍화로 흙이 된 자리에 여기저기 또 다른 생명이 돋아나고 있다. 새싹을 밟지 않도록 발밑을 살피면서 조심조심 걷는다.


다 말라버린 꽃줄기가 아직 남아 있다. 어떤 아름다운 꽃이 저 말라버린 꽃잎에 피어 있었을까...


말라버린 꽃줄기를 비집고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짙은 녹색 잎이 벌써 제법 솟아나 있다. 


말라버린 꽃줄기도 파란 하늘과 어울려 운치롭구나!   



바위 위에 낀 오렌지색 둥근 이끼도 신기하다.    


드디어 높지 않는 언덕 정상에 올랐다.  


주위에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가족 사진을 찍어본다. 


이제 저 아래 블루라군으로 향한다.


비취색 블루라군에 들어가 우리 가족도 잊지 못 할 추억거리를 만든다.


선착장에 탑승객을 기다리는 배에도 "호루스의 눈"이 장식되어 있다[관련글: 몰타 고기잡이 배에 그려진 눈 한 쌍의 의미는].


오후 골든만 여정으로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블루라군을 이제 뒤로 하고 떠난다.


다시 검푸른 파도를 타고 몰타섬으로 돌아온다.


2시간 머문 코미노섬이지만 블루라군의 비취색 아름다움과 척박함 속에서 솟아나는 초록색 새싹의 생명력은 오래오래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다시 간다면 하루 종일 저 섬에서 놀고 싶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2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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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25. 15:56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드디어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ta)로 가는 날이 왔다. 이날은 처조카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 식사 후 공항으로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 우리 가족은 버스를 타고 발레타로 향한다. 비가 그치자 하늘에 뜬 무지개가 우릴 전송한다. 


발레타는 1565년 오스만 제국 군대와 몰타 기사단 사이에 벌어진 공방전에서 승리한 몰타 기사단 총단장(Grand Master) 장 파리조 드 라 발레트(Jean Parisot de La Valette)의 명령에 의해 1566년 세워진 도시다. 도시명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면적이 0.8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가 6천여명으로 발레타는 유럽연합에서 가장 작은 수도다.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과 이탈리아의 공습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지만 도심에는 몰타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과 관련된 건축물,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등 건축 양식이 즐비하다. 발레타는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 사리야(Sarrija)에서 내려 사자 분수를 지나 크루즈 정박항이 있는 워터프론트(Valletta Waterfront) 쪽으로 이동한다. 파란 하늘에 파란색을 칠한 발코니와 창문덮개가 시선을 끈다.  


평온하기 그지 없는 바다에 엄청난 규모의 크루즈 여러 대가 여기저기 정박되어 있다. 역시 몰타는 관광이다. 몰타 전체 인구가 50만명인데 2018년 이 섬나라 몰타를 방문한 관광객수는 260만명이다. 2018년 국민총생산에서 관광이 27.1%를 차지했다. 2028년에는 33%를 계획하고 있다니 한마디로 몰타는 정말 관광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정원을 지나 이제 발레타 도심으로 향한다. 오전인데도 관광객을 실은 마차들이 연이어서 달린다. 
"우리도 저거 타고 둘러볼까?"
"아니." 가족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반대한다.
"왜? 타고 구경하면 편하잖아?"
"땀 흘리는 말을 좀 봐! 사람이 편하기 위해 말을 고생시키는 것은 우리 가족한테는 안 맞아."
"그래. 우리는 발로 걸으면서 찬찬히 둘러보자."  


발레타 도성 입구 광장에 1959년 세워진 청동 분수가 있다.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떠올리게 한다. 이 트리톤 분수(Tritons' fountain)는 몰타에서 근대주의 양식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트리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아내 암피트리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이다.     




발레타 도심 입구다. 거대한 성벽 두께뿐만 아니라 바둑판처럼 곧게 뻗어 있는 거리를 통해 발레타가 침략에 대비해 만든 계획도시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왕립 오페라 극장의 흔적이 보인다. 1866년 완공된 이 극장은 1942년 공습을 받아 훼손되어 철거되었다. 현재는 오페라 극장의 기둥 및 테라스 등 일부만 남아 있고 이 자리에 퍄짜 테아트루 랼(Pjazza Teatru Rjal) 극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 극장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쭉 가면 어퍼바라카(Upper Barrakka) 정원이 나온다. 


관광객들이 오전인데도 입구 반대편에서 마치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우릴 유혹한다. 


성 요한 대성당에 도달한다. 입장료가 10유로인데도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줄이 너무 길다. 16세기 지어진 이 성당은 17세기 바로크 양식 내부 장식으로 유명하다. 성당 앞 오른쪽에 있는 흉상이 눈길을 끈다. 

발레타의 수호성인인 비오 5세 로마 가톨릭 교황(Pope Pius V, 1504-1572 재위 1566-1572)이다. 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교회 박사로 선포하고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반종교개혁과 라틴식 로마 전례를 표준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맞서 가톨릭 국가들이 신성 동맹을 맺도록 했다. 특히 몰타의 요새 성벽을 건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발레타의 중심에 있는 성 조지 광장이다. 그 많던 관광객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텅빈 광장만이 우릴 맞이한다.   


우리도 중앙 거리인 리퍼블릭(Republic) 거리를 벗어나 오른쪽 좁은 골목을 따라 로어바라카(Lower Barrakka) 쪽으로 향한다. 여기도 누런색 석회석 건물들이 보는 사람들이 숨 막힐 정도로 따닥따닥 붙어 있다. 하지만 이 좁은 골목에 집집마다 주황빛 현관등이나 가로등 조명이 비치는 밤 풍경도 참으로 볼만 하겠다. 숙소가 세인트폴만에 있어서 야경을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건물과는 달리 발코니와 현관문은 개성이 넘친다. 비취색 치마를 입은 요가일래가 같은 색의 건물벽을 보고 좋아한다. 나도 내 옷과 같은 색의 현관문 앞에서 자세를 취해 본다. 


순간포착이다.
할머니 한 분이 3층 창문에서 줄을 이용해 쓰레기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바닥에 내려진 쓰레기 봉투에서 줄이 빠지지 않는다. 이를 보자마자 요가일래가 얼른 달려가 줄을 빼내 준다. 몰타는 현관문마다 쓰레기가 놓여 있다. 요일따라 버리는 쓰레기 내용물이 다르다. 거동이 불편한 연세 드신 분들이 이렇게 줄을 이용해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추모의 종이다. 세인트크리스토퍼 보루(바스티온 Bastion)에 세워져 있다. 세계 2차 대전 몰타 공반전(1940-1943) 중 희생당한 몰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몰타는 지중해 군사 요충지다. 추축국(독일과 이탈리아)의 포위, 공격 및 폭격에도 연합국이 승리한 전투다. 당시 군인과 시민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 수만 채가 파괴되었다. 


이 종은 1992년 몰타의 조지 십자장 수상 50주년을 맞아 엘리자베스 2세가 제막했다. 추모의 종 옆에 있는 거대한 청동 와상은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청동 기념물 하단 동판에는 영국 시인 로렌스 비니언(Laurence Binyon 1869-1943)의 "추락한 자를 위하여"(For the Fallen)의 싯구가 적혀 있다.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해가 질 때 그리고 아침에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조석으로 누구를 기억하는가를 잠시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곳은 지중해와 세인트엘모 요새, 리카솔리 요새, 세인트안젤로 요새 등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자리다. 도로 너머에 로어바라카(Lower Barrakka) 정원이 보인다.


이 정원은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여러 화초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가운데 신고전주의 양식의 기념물이 솟아 있다. 1810년 지어진 알렉산더 볼(Alexander Ball 1757-1809) 기념물이다. 그는 몰타가 영국 지배를 받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군인이자 외교관이고 초대 몰타 지도자이다.



이탈리아 화가이자 조각가인 우고 아타르디(Ugo Attardi 1923-2006)의 조각품 에네아(Enea)가 세워져 있다. 마치 자기 나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나뭇가지로 가린 듯하다... ㅎㅎㅎ  


정원 테라스다. 벽에는 기념판 두 개가 붙어 있다. 하나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영웅들과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68년 프라하의 봄 4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의 통일을 기념하는 판이 언젠가 저 벽에 걸릴 날이 온다면 참으로 좋으리라...    


올리브 나무다. 우리가 지금 지중해에 있음을 가장 확연히 느끼게 해 준다.


로어바라카 정원에서도 여기저기 좋은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크루즈 오른쪽에 어퍼바라카 정원이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저기까지 되돌아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는 세인트엘모만(St. Elmo Bay) 쪽 성벽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바다 건너 슬리에마(슬리마 Sliema)가 보인다. 발레타와 가까워 호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가게 그리고 쇼핑몰 등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우리 집 여자 세 명은 이구동성으로 저기가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아주 좋아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안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발레타에서 배로 이동한다. 배타는 곳의 위치는 여기다. 7일짜리 교통카드가 통하지 않아서 따로 1.5유로 승차권을 구입한다. 


발레타가 시야에서 점점 넓어진다. 저 솟아 있는 탑 두 개가 들어간 모습이 발레타의 대표적인 지표(랜드마크 landmark 地標)다. 뽀족한 탑은 영국 애들레이드(Adelaide) 왕비가 1839년 세운 영국 성공회 바울 성당이고 둥근 탑은 1570년 지어진 가톨릭 가르멜 산의 성모 성당이다.



슬리에마로 넘어오자 우리는 꼬르륵 소리가 진동하는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부터 찾아 나선다. 음식 하나와 음료수 혹은 맥주나 포도주 한 잔을 1인당 10유로로 점심을 제곻하는 트라토리아 카르디니(Trattoria Cardini) 식당을 선택한다. 식당 위치는 여기다. 식구 모두 각자 다르게 시킨 음식에 대만족이다. 음식 맛만큼이나 남자 종업원이 잘 생기고 친절하다고 두 딸이 설렌다.


이 주변에는 모래사장 해변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깎여 평평하게 다듬어진 석회석 위에서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일광욕이나 해수욕 뒤 모래알을 털어낼 필요가 없어서 좋겠다. 


슬리에마에서 세인트줄리언스(산질리안 St. Juliana's)까지 해변따라 산책로가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넓직하고 깨끗하다. 의자에 앉아 쉬거나 일광욕을 하거나 아침 저녁에 달리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지붕 위 고양이 한 마리가 세인트줄리언스만(St. Julian's Bay)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엑사일스만(엑사일스 베이 Exiles Bay)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세인트율리언스다. 발루타만(발루타 베이 Balluta Bay)은 비취색 바다가 유난히 돋보인다.   


대문자 러브(LOVE) 조각상으로 유명한 스피놀라만(스피놀라 베이 Spinola Bay)이다. 그런데 글자가 거꾸로 세워져 있다. 여기도 사랑은 자물쇠다. 아기자기한 스피놀라만 등을 가진 세인트율리언스가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장소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저 거꾸로 된 글자가 맑고 잔잔한 비취색 바닷물에 반사된다면 똑바로 보이겠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뒤엉키고 본말전도된 마음이 아니라 깨끗하고 추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을 봐야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는 것일까...       


그렇게 화창한 날씨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와 여전히 햇빛이 비추고 요트와 배가 둥둥 떠있는 스피놀라만에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바로 옆에 피자가게가 있다. 점심으로 배가 부르지 않았더러면 한 조각 먹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골든만 일몰 구경을 위해 다시 나간다. 그런데 골든만 쪽 하늘은 짙은 비구름이 보루(바스티온 bastion)를 형성해 진을 치고 있다.  


결국 숙소 바로 앞 바다에서 부모는 수영놀이를 하고 작은딸은 모델놀이를 한다.


이날은 식구들이 식탁에 모여 스마트폰을 내려 놓고 하루 여행을 각각 정리해 본다. 
큰딸: 발레타 거리의 인도가 너무 좁았다. 점심 식당 종업원이 참 친절했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폐가가 수두룩했다. 중심가를 제외하곤 건물들이 웬지 빈약해 보였다.
작은딸: 사람들의 표정과 주변의 경관을 볼 수 있는 버스 이동이 좋았다. 추모의 종에서 내려다 보이는 잔잔한 바다가 참 좋았다. 
아버지: 관광객으로 넘치는 발레타에 가니 정말 우리가 여행하고 있구나를 느꼈다. 3층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배 타고 슬리에마로 이동해 해변로를 산책한 것이 좋았다.
어머니: 발레타에 가본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1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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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22. 14:35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 가족여행 찍사는 나였다. 그때는 무게가 좀 나가는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이제는 아이들도 다 자랐고 식구 모두가 카메라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 찍어 주거나 찍히는 횟수보다 찍는 횟수가 훨씬 더 많다. 가족이 여행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식구 각자가 출사하러 온 듯하다. 그래도 기념으로 사진 한 두 장을 남겨야 하기에 종종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아래 사진과 영상은 삼성 갤럭시 7으로 촬영].

할 키르코프(Hal Kirkop) 공원에서


발레타(Valletta) 버스 정거장에서


발레타 중심가 거리에서 우연히 벽과 치마가 같은 연두색이다.


발레타 2차 대전 포위 기념물에서


세인트 폴스 베이 숙소 바로 앞 바다 


몰타 여행의 백미 중 하나인 코미노 섬에 있는 블루 라군이다.


요가일래는 사진 찍는 각도까지 알려 주고 자기가 찍힌 사진을 그 자리에서 확인한다. 자기 취향이 있어서 이제는 사진으로 만족시켜 주기가 힘들다. 그래서 부탁하면 요즈음은 연사로 찍어 준다. 한 번은 한 장소에서 수 백 장을 찍어 주기도 했다. 필름 카메라 시대였다면 인화 비용도 상당했으리라... 디지털 카메라 시대라서 다행이다.

"연사 찍기 힘드니 제발 이젠 영상으로 찍자."
"그래 알았어. 한번 해봐."



"어떻게 너는 자세도 그렇게 다양하나?"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사진을 많이 많이 찍어 줘서 그렇게 됐지."



"아빠를 그렇게 기억해 줘서 고마워"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4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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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20. 06:08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에서 비를 맞은 후 점심 무렵에 숙소로 돌아온다. 비 덕분에 숙소에서 점심을 해먹게 된다. 오후가 되자 조금씩 날씨가 맑아진다.   

아직 빗물이 남아 있는 발코니에 날아든 개미가 허위적거린다. 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저 개미들을 어찌할꼬? 부엌으로 가서 라면 젓가락을 가져와 건져 주니 날아간다.



점심 후 원형 성당으로 유명한 인근 모스타(Mosta)로 향한다. 몰타섬 북서부 내륙에 위치한 모스타는 인구 2만명 도시다.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중심가에서 벗어난 버스 정류장에서 미리 내린다. 도로도 좁고 인도도 좁다. 가로수도 없는 거리에서 더욱 돋보이는 건물 한 채가 눈에 확 띈다. 2층 창문과 지붕에 화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도심에 있는 원형 성당 앞 작은 공원이다. 몇 해 전 영국 런던에서 본 것과 같은 붉은색 공중전화 부스는 몰타와 영국과의 관계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몰타는 1800년에서 1964년까지 영국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영연방에 속해 있다.  


그 유명하다는 로마 가톨릭교 원형 성당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더욱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정식 이름은 성모 승천 성당(Basilica of the Assumption of Our Lady)이다. 모스타 로툰다(Rotunda of Mosta) 혹은 모스타 돔(Mosta Dome)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당은 유럽에서 로마 베드로 성당과 런던 바울 성당에 이어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둥근 천장(돔)을 가지고 있다. 성당 규모를 살펴보면 외부 지름이 54.86미터, 정면에서 후면까지 길이가 74.37미터, 벽두께가 8.28미터, 바닥에서 천장 전등까지 높이가 56.38미터다. 


모스타 인구가 늘자 1833년부터 새로운 성당을 짓게 되었다. 기존 성당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둘레에 이 원형 성당을 지은 것이 참으로 특이하다. 28년에 걸쳐 새로운 성당이 완공될 무렵 1860년 기존 성당을 철거했다. 로마 가톨릭교에서 아주 중요한 세계성체대회가 1913년 이곳에서 열렸다.       


성당 앞에는 낯익은 동상이 보인다. 천국의 열쇠를 잡고 있는 베드로(왼쪽)와 책과 (부서져 일부만 남은) 검을 잡고 있는 바울(오른쪽)이다. 


성당 정면 벽에는 사도 네 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설명하자면 가죽을 벗기는 칼을 잡고 있는 바르톨로메오, 긴 곤봉을 잡고 있는 야고보(소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라틴 십자가(아래쪽이 위쪽에 비해 길쭉한 장축형 십자가)을 잡고 있는 필립보 그리고 어린 천사를 옆에 두고 있는 마태오다. 


성당 앞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 작은딸이 자기 용돈으로 가족 네 명 입장권(1인당 2유로)을 구입해 들어오라고 한다. 아주 넓은 성당 안에 때마침 장례 미사가 열리고 있다. 우리도 조용히 앉아 기도에 동참한다. 장례식 끝무렵 팝송 "You raise me up"이 울려펴진다. 



첫째는 넓은 공간에 감탄한다. 둘째는 하늘색 벽과 벽화에 감탄한다. 그리고 셋째는 금색 무늬를 한 둥근 천장에 감탄한다. 성당 내부에 지붕을 받쳐 주는 기둥이 전무하다. 천장 내부 지름이 35.97미터다. 외부 높이는 59.74미터이고 내부 높이는 성당 외부 지름과 같은 54.86미터다.


1유로를 넣고 촛불을 켜고 기도한다.


의자 여섯 개를 일렬로 함께 묶여 놓았다. 미사 중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막을 수 있어서 좋을 듯하다.


성당 가운데 제단이 보인다. 


이 제단 그림은 성모가 승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1678년 몰타의 바로크 화가 스테파노 에라르디(Stefano Erardi 1630-1716)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대가 인상적이다. 강대 혹은 설교단은 설교 등을 위해 만들어진 단이다. 보통 성당 중앙칸 벽면에 붙어 있거나 가까이에 있다. 그런데 여기는 원형 성당이라서 그런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조개 껍질에 물을 담아 세례하는 모습이다. 이 조각상을 보고 있으니 기독교에서 조개 껍질이 세례를 상징한다는 말이 쉽게 기억된다.  


성당 안에 왜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조각상이 있을까? 미켈란젤로의 모세 조각품이 떠오른다. 뿔 달린 모세다. 미켈란제로는 성경에 근거해 뿔을 넣어 조각했는데 이는 히브리어의 '빛을 뿜다, 광채가 나다'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성모승천상은 1868년 처음 조각되었고 1947년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성당 내부 관람 중 안내표시판은 자꾸 폭탄 박물관을 가르킨다. 성당에 웬 폭탄 박물관이 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내용인즉 이렇다. 몰타는 군사적 요충지다. 제2차 대전에서 몰타 공방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이 포함된 연합국 군대와 독일과 이탈리아가 포함된 추축국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42년 4월 9일 16시 40분 독일 전투기들이 폭탄을 투하했다. 


폭탄 3개가 성당으로 떨어졌다. 이 중 500kg 폭탄 한 개가 천장을 뚫고 성당 가운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시 성당 안에서는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저녁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폭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성당 옆에 떨어진 폭탄 두 개도 불발탄으로 남았다. "1942년 4월 9일 폭탄 기적"이 일어났다. 성당에 있던 사람들 중 사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 불발탄은 해체되고 몰타섬 서해안 바다에 버려졌다. 현재 전시되어 있는 폭탄은 복제품이다. 


아직 날이 밝기에 모스타 도심 거리를 돌아다녀 본다. 역시 여기도 누런색 석회석 건물이 대부분이다. 


건물벽 주로 현관문 옆에 붙어 있는 성물(聖物)은 경건함을 자아낸다[관련글:  몰타 거리 산책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다].


왕복 각각 1차선이다. 도로변 인도에 자리잡은 주유소 풍경이 몹시 낯설다. 어느 나라에서는 안전상 이유로 허가를 받을 수 없을 텐데 말이다. 도시공간 구조상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 지나니 배가 출출하다. 아내는 몰타에 와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를 먹어보자고 한다. 바로 파스티찌(pastizzi)다. 


모스타 제과점에서 1개당 50센트다. 치즈나 으깬 고기나 완두콩 등이 안에 들어 있다. 나는 완두콩 파스티찌를 고른다. 바삭바삭하고 아주 고소하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식구당 하나씩만 사 준 아내가 약간 원망스러워진다. 이거 먹으러 다시 몰타에 가보고 싶은 충동심이 일어난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0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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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19. 15:45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몰타에서 10일 동안 체류하면서 세 번 다녀온 곳이 있다. 바로 황금빛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골든만(골든베이 Golden Bay) 일대다. 이곳에 처음으로 간 날은 여행 5일째다. 그런데 아침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 여행 중 그것도 해외여행 중 만나는 폭우는 늘 반갑지가 않다.


첫 번째 방문 - 황금색 모래사장 골든만 Golden Bay
다행히 11시경 우리 숙소가 있는 세인트폴만 쪽은 날씨가 개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골든만 쪽은 여전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해가 반짝이는 쪽이 뒤로 점점 멀어지니 앞에는 푸른 채소밭 시골 모습이 나타난다. 곧 이어 골든만에 도착한다. 눈앞에 펼쳐친 해변은 밝은 진흙색 멜리하 해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몰타에서는 아주 폭이 넓은 황금빛 모래사장이다. 아, 왜 여기를 골든만이라고 부르는 지를 단번에 알게 된다.   


이렇게 흐린 날에도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햇빛이 비치는 저 모래사장과 바닷물은 얼마나 아름다울 지 머리 속에 쉽게 그려진다. 


해수욕을 하고자 하는 일행을 모래사장에 남겨 두고 작은딸 요가일래와 둘이서 절벽 너머의 풍경이 궁굼해서 올라가보기로 한다. 도중에 서로 사진을 찍어 준다.


이 척박한 절벽에 향신료로 사용되는 고수를 만나니 신기하다.


골든만 왼쪽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망루다. 1637년 세워진 아인투피하(아이 투피에하 Għajn Tuffieħa Tower 발음 ayn too-fee-ha)이다. 아인투피하는 몰타어로 '사과눈'이라는 뜻이다. 망루를 기점으로 오른쪽은 골든만(골든 베이)이고 왼쪽은 아인투피하만(아이 투피에하 베이 Għajn Tuffieħa Bay)이다. 


이 망루에서 왼쪽으로 내려다 보면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아인투피하만이다. 물이 얕은 해변이 길쭉하게 쭉 뻗어 있다.


뻥 뚫린 바위 사이로 파도 한 줄 없는 바다가 보인다.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바닷물의 색깔이 매혹적이다. 당장이라도 내려가 유유자적(悠悠自適 ) 수영하고 싶다.    



그런데 우려했듯이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행이 있는 골든만 해수욕장으로 돌아온다. 저쪽에서 먹구름이 다가오는 속도처럼 해수욕장에 모인 사람들도 돌아간다. 우리 가족은 골든만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식당에서 자리를 잡는다.     


식구가 여럿이니 뭘 먹을 지를 놓고 늘 신경전이다. 두 명이 피자 하나를 시킨다. 종업원이 가져 오는 피자를 보니 혼자서도 다 먹을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막상 둘이서 먹어도 남는다.


술은 그다지 먹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몰타 여행에서 맛본 몰타 맥주 시스크(Cisk)는 내 입맛에 딱 맞다. 알콜이 4.2%인 시스크 큰 잔 하나가 2.5유로다.  


다른 식구들은 몰타산 포도주를 주문한다. 포도 품종 쉬라즈(shiraz, 프랑스에서는 시라)로 만든 포도주다. Pjazza Regina Valletta 750ml 한 병이 11유로다. 쉬라즈 포도주는 단내가 나면서 색깔과 향이 진하다.


점심 식사 중 비가 그친다. 망루 너머에 또 다른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고 말하자 아내와 큰딸이 꼭 가보자고 한다. 저만치 있는 먹구름이 곧 닥쳐올 비를 예보하는데도 말이다.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풍화되고 있는 황토색 바위 위에 앉아서 사진 놀이를 한다. 뒷배경이 어떠하기에....


뒷배경은 아인투피하만(Għajn Tuffieħa Bay) 해수욕장이다. 리비라 해수욕장(리비에라 Riviera Beach)이라 불리기도 한다. 접근성으로 인해 골든만 해수욕장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뜸하다. 아래 사진 오른쪽 산등성이 너머에 살짝 보이는 바다도 궁금하다.    


예상은 했지만 한순간에 바다 쪽에서 강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걸음아 나 살려라 식으로 골든만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린다. 굵은 비가 주럭주럭 쏟아지는 정류장에서 30여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관련글: 몰타에서 버스타기 이야기]. 공유택시를 부르려고 하는 찰나에 버스가 온다. 숙소까지 오는 데 20여분이 걸린다. 그 사이에 구름이 걷히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이다. 저 노을을 골든만 황금색 모래사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아쉽고 아쉽다. 날씨가 얄밉고 얄밉구나... ㅎㅎㅎ


두 번째 방문 - 비취색 아인투피하만과 즈네이나만 Għajn Tuffieħa Bay & Ġnejna Bay
다음날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다. 골든만 맞은편에 있는 아인투피하만 해수욕장에 가보고자 9시에 숙소를 나선다. 버스에서 내려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오른쪽은 햇빛이 쨍쨍 비추고 왼쪽 하늘 저쪽은 먹구름이 진을 치고 있다. 아쉽게도 반짝이는 해는 곧 먹구름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에 닿기 위해서는 계단 200개를 밟고 내려가야 한다. 초록색 산 경사, 평평한 바윗덩어리, 황금색 모래사장과 비취색 바다가 신비감을 자아내는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저쪽 바위산 끝자락은 호랑이띠 내 눈에는 호랑이로 보인다. 고개를 들고 누워 있는 호랑이 형상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ㅎㅎㅎ 


해수욕장 옆에 있는 커피숍 싱기타(Singita)의 환영안내판 문구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당신은 지금 손대지 않은 자연이 있는 순수하고 천연적인 땅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바다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게 하세요.
행복을 호흡하세요. 
자유를 호흡하세요.
당신 마음 외에 아무것도 여기에 남겨 두지 마세요. 


아직 비가 오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다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10월 하순 하늘이 흐려도 수영하기엔 바닷물이 차지가 않다. 바닷물은 짜다. 하지만 해수욕 후 수건으로 몸만 닦고 옷을 입어도 짠내를 느끼지 못 한다.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커피숍으로 이동해 비를 피해 본다. 히지만 지붕은 대나무로 차양막은 줄로 듬성듬성 엮어져 있다. 빗방울이 틈새로 떨어지고 바람에 날려 들어온다. 

     
비가 조금 그치자 나는 홀로 저 언덕 너머에 있는 세 번째 만인 즈네이나만(Ġnejna [dʒˈnɛjna] Bay)을 구경하기 위해 해변을 따라간다. 그런데 여긴 점토가 해변 절벽을 이룬다. 마른 날이면 기어 올라가 지름길로 갈 수 있을텐데 말이다. 


해변따라 이어지는 점토 절벽이다.  


찰흙이 달라붙은 신발이 무거워 힘겹게 언덕 위로 올라간다. 왼쪽에 골든만 호텔과 아인투피하만이 보인다. 


아래가 바로 즈네이나만을 이루는 점토 절벽이다. 이 만은 온통 점토로 둘러싸여 있다.


바취색 바다에 조금씩 퍼져가는 하얀색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비가 골을 만들어 점토를 쓸고 가서 만들어내는 색깔이다. 얼핏보면 하얀 구름이 바닷물에 투영된 듯하다. 바람이 억세게 분다. 사방천지에 혼자다. 저 가파른 찰흙 미끄럼틀로 발을 헛딛을까해서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제 신발은 천근만근이 되어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다. 미끄러져 손을 땅바닥에 대자 마치 페이트통 안으로 손을 닿은 듯하다. 손에도 찰흙이 듬뿍 묻는다.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으로 내려오니 굵은 비가 쏟아진다. 모래사장에 놀던 아이들도 비를 피해 어디론가 벌써 떠났다.


굵은 비에 커피숍 지붕은 속수무책이다.


결국 우리 가족은 이날 변화무쌍하는 날씨의 피해자가 된다. 숙소로 돌아오는 공유택시에서 덜덜 떨면서 그래도 아름다운 아인투피하만에서 해수욕을 한 것에 모두들 즐겨워한다. 200계단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계단 전체를 볼 필요가 없다. 그냥 첫 발을 내딛어라."  


세 번째 방문 - 황금빛 일몰 골든만 / 골든 베이 
몰타섬에 와서 골든만 일몰을 보지 않으면 참으로 아쉬울 듯하다. 기회가 왔다. 몰타 여행 마지막 전날 하루 종일 맑은 날이다. 오전에는 코미노섬을 다녀오고 해질 무렵 골든만을 다시 찾는다. 조금 쌀쌀한 날씨인데도 일광욕과 해수욕을 번갈아 즐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일몰 직전이다. 황금빛 모래사장이 일몰 햇빛을 받아 더 진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골든만 저쪽으로 해가 떨어진다. 황금빛 모래사장에서 바라본 일몰은 다음날 므디나에서 맞이한 일출과 더불어 몰타 가족여행의 백미 중 하나다.  



일몰과 작별하자 하늘에는 어느새 달이 밤길을 밝혀 준다. 달 아래 있는 작은 별이 궁금하다. 페이스북 친구이자 천문학자에 의하면 이 별은 이날 달에 아주 가까이에 위치한 목성이다.


이렇게 세 번 방문을 통해 몰타에서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을 둘러 보았다. 골든만, 아인투피하만 그리고 즈네이나만은 한 묶음이다. 3욕 즉 해수욕과 일광욕 그리고 도보욕(하이킹 또는 트레킹)을 한꺼번에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가볼만한 곳이다. 



먼저 도보욕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은 리비라 버스정류장(Riviera Stop 구글지도 위치)에서 내린다. 앞으로 쭉 가서 계단으로 내려가지 말고 먼저 산길을 따라 즈네이나만으로 간다. 이곳에서 점토 절벽과 해변을 구경한 후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으로 온다. 이어서 절벽 위 길을 따라 골드만 해수욕장을 구경한다. 가기 전에 꼭 담력을 키우기 바란다. 절벽이 그야말로 아찔하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9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몰타 여행기 1편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 8편 | 9 | 10편 | 11편 | 12편 | 13편 | 14편 | 15편 |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18. 22:41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 가족여행 넷째날이다. 이번 가족여행지로 몰타를 선택한 이유는 그래도 여전히 햇빛이 강하고 해수욕도 가능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몰타에 와 보니 하루에도 날씨 변화가 심하다. 아침부터 하늘에는 구름이 끼어 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날 해수욕은 힘들겠다.  


가족은 첫날 저녁 잠간 일부만 산책한 부지바(Buġibba)를 다녀오기로 한다. 그날 달이 휘영찬란한 밤이었다. 그런데 하늘 저쪽 먹구름 사이로 소리 없는 번개가 연신 번쩍거렸다. 마치 하늘이 불꽃놀이를 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날 다시 부지바를 아래 동선으로 돌아본다. 부지바는 몰타섬 북쪽 세인트폴만(세인트 폴 베이, Saint Paul's Bay)에 자리잡고 있는 유명한 관광휴양지다. 호텔, 레스토랑, 술집, 나이트클럽 등이 즐비하다. 



우선 우리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인도를 따라 간다. 몰타는 이런 인도가 흔하다. 보행할 때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비가 온 후 물웅덩이를 더욱 주의해야 한다. 차가 튀기는 물벼락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런 단색 건물들이 주를 이루는 몰타의 거리를 산책하다보면 현관문 옆에 장식된 타일 문패와 도자기 작품이 이색적이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관련글: 몰타 거리 산책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다]. 부지바를 향해 걸어가는 데 한 건물의 자투리땅 장식이 내 시선을 잡아당긴다. 


바로 이 자루리땅에 고인이 된 지 벌써 50년이 넘게 지난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를 추모하는 제단이 꾸며져 있다.


해변도로 옆에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저 앞에는 비를 뿌릴 듯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반대편 하늘은 정반대다. 화창하다. 금방이라도 바닷물로 풍덩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어진다.


왼쪽 하얀색 건물들이 있는 곳이 바로 부지바다.


해변이라면 흔히 모래사장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깎여평평해진 석회석 해변이다.  


새로운 곳에 왔으니 새로운 인물도 알고 가야겠다. 산책로에서 만난 조각상의 인물은 마르키자 안나 부게야(Markiza Anna Bugeja, 1830-1916)다. 그녀는 이 지역과 가톨릭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기부했다.    


위그나코트탑(Wignacourt tower)이다. 이 탑은 1610년 몰타섬에서는 최초로 세워진 망루다. 1715년 포대(砲臺)가 추가로 설치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이다. 이 탑은 몰타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망루다. 왜냐하면 이 탑보다 5년 전에 세워진 고조섬 가르제스탑(Garzes tower)이 1848년 철거되었기 때문이다.  


가운데 보이는 섬이 바로 세인트폴섬(산파울섬 Saint Paul's Island)이다. 사도 바울(파울로스) 일행이 로마로 향하다가 난파를 당해 도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 만을 세인트폴만이라 부른다.


산책로에 비가 온 흔적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요트들이 훨씬 더 많이 정박되어 있겠지...


이날 만난 풍경 중 압권은 바로 벽에 매달려 있는 어선이다. 



바다에는 요트가 정박해 있고 해변 벽에는 작은 배들이 수직으로 촘촘히 매달려 쉬고 있다. 마치 긴 끈에 매달아 놓은 물고기들을 연상시킨다[관련글: 몰타 고기잡이 배에 그려진 눈 한 쌍의 의미는].


돌을 파서 만든 염전이다.   


부지바 중심가 거리다. 쭉 위로 뻗어 있는 야자수가 일품이다.


부지마 중심 광장이다. 10월 하순이라 한산하다.


부지마 끝자락에 자리잡은 몰타국립수족관이다. 바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 몰타에서 유일한 수족관이다. 
"수족관에 갇혀 버린 물고기를 구경할래 아니면 바다에서 자유롭게 노니는 물고기를 상상할래?"
가족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상상하자"로 답한다.    


카페 델마르다. 야외 수영장이 바다와 이어져 있는 듯하다.


우리의 도보 산책은 해변을 따라 쭉 이어진다.


큰 규모의 살리나(Salina) 염전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해변을 따라 부지바를 쭉 도보로 둘러 보았다. 저 멀리 언덕 위에 점처럼 므디나의 구시가지가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저기를 또 가봐야지...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8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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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15. 05:53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3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부터 화창하고 영상 23도 날씨다. 식구 모두가 일광욕과 해수욕을 좋아해서 몰타 가족여행의 첫 행선지로 멜리하만(멜리에하만 Mellieha Bay, 아디라만 Għadira Bay) 해변(구글 위치)으로 정한다. 



몰타의 해안은 주로 험준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멜리에하만에는 넓은 모래해변이 있다. 


이 해변은 몰타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해변 중 하나다. 10월 하순인데도 모래해변에는 여전히 양산(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멀리까지 바닷물이 얕고 잔잔하다. 


바닷물이 수정처럼 깨끗하다.


가족이 함께 하기에 정말 좋은 해변이다. 10월 하순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여름철 성수기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을 지 쉽게 상상이 된다.



구름선을 따라가면 저 언덕에 멜리에하 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바위 사이에 자란 식물 줄기에는 달팽이 천지다[관련글: 몰타에서 만난 달팽이 나무에 나를 반조해 본다]. 낮은 바위로 모래해변이 세 군데로 나눠져 있다. 


멜리하만 해변을 따라 산책하면서 마음에 드는 모래사장 하나를 골라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일광욕과 해수욕을 번갈아 두 세 시간을 하자 배가 고프다. 수영복 차림이라 해변 음식점으로 향한다. 차림표 속 음식 사진은 군침을 자아낸다. 생각만큼 비싸지가 않다. 4-8유로다. 생선감자튀김을 주문한다.


생선 한 마리가 나오길 기대했는데... 아뿔싸 생선살을 으깨서 기름에 잔뜩 튀긴 음식이 나온다. 한편 아래는 딸아이가 주문한 새우튀김이다.    


해수욕을 한 후 우리는 하나를 더 방문하기로 한다. 마침 인근에 뽀바이 마을이 있다. 거리는 약 2킬로미터다. 도보로는 약 25분이 걸린다. 101번 버스가 간다. 버스를 타고 갈까 아니면 걸어서 갈까? 식구마다 의견이 다르다. 버스가 자주 없을 뿐만 아니라 버스가 제시각에 오는 경우가 우리에게 한 번도 없었다.    



걸어 가자는 두 딸의 주장에 따라 인도가 따로 없는 좁은 도로를 따라 뽀빠이 마을로 향한다. 돌담이 정겹다. 돌담 주위에 선인장, 포도나무, 석류나무, 호두나무 등이 자란다. 선인장을 제외하고는 어릴 때 한국 시골 우리 집 뒷밭에 자라는 나무들이다.   


밭 전체가 채소로 푸르다. 무슨 채소인지 단번에 알아보니 식구들이 놀란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채소 가지다.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우리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듯하다. 뽀빠이 마을 입장권을 파는 건물이다. 입장권 성인 11-17유로, 어린이와 연금수령자는 9-12유로다.   


이 뽀빠이 마을은 1980년 개봉한 미국의 드라마 영화 <뽀빠이>의 촬영 세트장이다. 시금치를 먹으면 강해지는 뽀빠이... 바로 만화 캐릭터 뽀빠이를 주제로 조성된 놀이공원이다.    


보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비취색 만(灣)과 누런 절벽 아래 자리 잡은 뽀빠이 마을은 그 풍경만으로도 동화 속 마을임을 쉽게 느끼게 한다.  


나도 뽀빠이 흉내를 내본다. 이 기념 사진을 본 페이스북 친구들이 도대체 시금치 몇 단을 먹었는 지를 묻는다. ㅎㅎㅎ  



절벽을 따라 조심조심 걸으면서 반대편에서 뽀빠이 마을을 즐겨 본다.   


늦은 오후이고 이제 졸라대는 어린이가 식구 중에 없어서 우리 가족은 이렇게 몰타의 유명한 관광명소 뽀빠이 마을을 눈에 새겨 보았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7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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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14. 18:10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에서는 가능한이면 걸어다닌다. 특히 숙소가 있는 동네 한 바퀴 돌기를 아주 좋아한다. 

몰타 도심의 거리는 대체로 차도도 인도도 폭이 좁다. 거리 쪽으로 정원이 먼저 나 있는 주택이나 아파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이 일렬로 따닥따닥 붙어 있다. 건축 재료는 모래빛 석회암이 주를 이룬다. 반복되는 누런색 건물들이 단조롭다. 집집마다 현관문 옆에는 쓰레기 봉투가 청소차를 기다리고 있다.


몰타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의 깃발이 타일로 건물 벽에 붙어 있다. 바로 밑에는 우편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 성심(sacred heart 성스러운 마음)


현관등 밑에 건물 번호와 성가정(holy family)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현관등이 성스러운 가정을 더욱 포근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듯하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 아베 마리아(Ave Maria). 라틴어 아베는 문안드리다, 인사하다, 공경하다, 찬미하다, 성스럽다, 고귀하다 등의 뜻이다.


건물 번호 밑에 거주자의 이름이 예쁜 타일에 쓰여 있다.


조그마한 성물 밑에 거주자의 이름이 쓰여 있는 타일이다. "성모님, 저희 로우르데스 가정을 보살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듯하다. 


파란색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슬리에마(Sliema)에 있는 거리다. 대체로 누런 석회석 건물 일색이다.


하지만 발코니와 현관문 그리고 창문 덮개는 초록색, 파란색, 붉은색 등 다양하다. 


모스타(Mosta)의 한 거리다. 좁은 인도에 자라는 지중해꽃 부겐빌레아다. 분홍색 꽃이 단색 석회석 건물들 사이에 더욱 돋보인다.


몰타 섬 중앙에 위치한 므디나(Mdina)의 구시가지에 있는 작은 광장이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광장에서 건물 벽을 가득 메워 담쟁이처럼 벽에 붙어서 올라가는 부겐빌레아가 감탄을 자아낸다.  



석조 건물의 초록색 문이 인상적이다. 마치 몰타에 부족한 녹색 정원을 대신하는 듯하다.  


현관문 옆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성물이 그리고 그 밑에는 문패가 붙어 있다.


현관등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이를 밝혀 주고 있다.


화환으로 장식된 예수 도자기 성물이 벽에 붙어 있다.


가브리엘 대천사와 성모 마리아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비둘기 등으로 상징)에 의해 처녀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려 준다. 이것(라틴어 Annunciatio)을 성모영보, 성모희보, 수태고지라고 한다. 그 밑에는 안눈치아타(Annunziata)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이름은 딸만 있는 가정에 다음 태어날 아기가 사내이길 바라면서 종종 아기에게 주는 이름이다.  


므디나 구시가지 작은 광장에서 만난 집의 현관 앞이다. 양쪽 벽을 따라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짙은 녹색 현관문 오른쪽에 작은 현관등이 보인다. 그 밑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성물이 있다. 등불이 이들을 비추는 듯하기도 하고 이들의 사랑과 자애로움이 등불을 밝히는 듯하기도 하다.


누런 석회색 건물 일색인 몰타 도시의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쉽게 지루할 수 있겠다. 다행히 현관문에 붙어 있는 종교적 성물(聖物)과 다양한 문패 등을 살펴 보면서 산책하니 몰타의 색다른 맛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교황이 거주하는 바티칸을 제외하고 가장 가톨릭적인 나라로 흔히 몰타를 꼽는다. 몰타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이 말이 그저 나온 말이 아님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6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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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11. 04:24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세인트 폴 베이(Saint Paul's Bay)에 배들이 정박해 있다. 특히 알록다록 여러 색으로 칠해진 배들이 눈길을 끈다. 이는 몰타의 전통 고기잡이 배인 루쭈(luzzu)다.


이 어선들은 보통 노란색, 붉은색, 초록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밝게 칠해져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눈에 띈다. 하나 같이 뱃머리에 눈 한 쌍이 그려져 있다. 무슨 의미일까?


사람 눈으로도 보이고 물고기로도 보인다. 보는 사람의 상상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겠다.


몰타 가족여행 전에 미리 몰타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한 아내가 루쭈 앞에 장식되어 있는 눈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이는 고대 그리스와 이집트 사람들의 풍습에서 유래된다. 이 눈은 '호루스의 눈'(고대 이집트의 신격화된 파라오의 왕권을 보호하는 상징) 혹은 '오시리스의 눈'(고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신으로서 풍요를 상징 또는 부활과 재생을 의미)와 관련이 있다. 이 눈은 바다에 있는 동안 어부들을 보호해 준다. 


루쭈는 흔히 몰타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진다. 루쭈가 많이 정박해 있는 어항은 마르사실로크(Marsaxlokk)다. 몰타 섬 남동부에 위치해 있다. 이번 여행에서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혹시 비닷솟 물고기들이 이 눈 한 쌍을 가진 배를 물고기로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배가 앞으로 나아가면 동료 물고기가 오는 줄 알고 바닷속 물고기들이 이를 환영하러 다가오다가 그만 그물에 걸려드는 것이 아닐까... ㅎㅎㅎ


고기잡이를 나가는 몰타의 어부들이 호루스의 보호를 받아 무사하고 오시리스의 도움을 받아 만선을 이루고자 하는 바람이 이런 장식을 만들었을 것이다. 저 폴 베이를 지나 고기잡기 나간 어부들이 다 이 눈의 위력을 얻기를 바라본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5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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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9. 11. 8. 06:18

몰타 가족여행 이틀째다. 첫 날 숙소가 있는 할 키르코프(Hal Kirkop)에서 여행 마지막까지 7일 동안 머무를 세인트 폴스 베이(Saint Paul's Bay) 숙소까지 가야 한다. 이번 여행계획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이 교통수단이다. 차량을 임대할까?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7명이고 이 중 한 명이 아기다. 돌아가는 날짜가 조금씩 다르다. 운전대 위치도 다르다. 몰타는 영국처럼 주행방향이 좌측이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 보니 대중교통이 적합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우리는 7일 동안 무제한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교통카드(Tallinja Card Explore)를 1인당 21유로에 구입했다. 이 카드는 몰타와 고조 섬 둘 다 유효하다. 처음 승차해 유효화시킨 날부터 7일 동안이다. 우리는 동네 편의점에서 구입했다. 운전사한테 현금으로 승차권을 구입할 수도 있다. 겨울철 1.5유로, 여름철(6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 2유로, 야간 3유로다. 이 현금 승차권으로 2시간 이내에 무제한으로 환승도 할 수 있다.     


첫 번째 버스로 몰타 수도인 발레타의 봄비(Bombi) 버스 정거장에 도달해 환승을 기다리고 있다. 대기소 옆에 일련로 늘어선 광고대가 눈길을 끈다. 단순한 광고용일까...


접이식 의자다. 좌판 양쪽에 광고가 붙어 있다. 광고 없는 플라스틱 접이식 의자를 버스 정거장에서 지금껏 종종 보았지만 이렇게 광고까지 붙어 있는 정거장 접이식 의자는 처음 보는 듯하다.



정거장간 거리가 짧고 급브레이크 잦아
목적지까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정거장간 거리가 짧아서 버스가 자주 선다. 좋은 점도 있다. 어쩌다 시차 부적응으로 졸다가 한 두 정거장을 더 지나서 내려도 걸어서 되돌오는 데 크게 불편하지가 않다. 도로 폭이 대체로 좁다. 또한 보도 폭이 아주 좁은 곳이 많다. 어떤 곳은 지나가는 차에 부딛힐까봐 겁이 날 정도다. 운전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아야 하는 경우가 잦다(멀미를 쉽게 하는 사람은 미리 이를 숙지하는 것이 좋겠다).


버스 시간표는 무시가 상책
이런 이유로 버스 정거장에 붙여져 있는 버스 시간표는 무용지물로 보인다. 7일 동안 버스를 타면서 제시각에 도착한 버스는 한 대도 없었다. 처음에는 시간표를 믿어보려고 했지만 시간표가 소용없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버스 시간표를 아예 안 믿는 것이 좋겠다. 


반드시 손을 흔들어 버스를 세워야 
다가오는 버스가 정거장에 서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정거장에서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뻔히 있는데도 그냥 지나가 버린다. 왜 이러지? 우리가 사는 빌뉴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교통문화다. 반대편 쪽 정거장에도 사람들이 기다린다.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세우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이 버스는 서지 않고 그냥 휙 지나가 버린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버스가 만석이고 내리는 사람이 없으면 서지 않고 지나가 버린다. 사람이 많이 타고 있고 내릴 사람이 없고 또한 바로 뒤에 따라오는 버스에 사람이 적은 경우도 지나가 버린다. 하지만 합당한 이유가 없는 듯한데도 지나가 버리는 버스를 여러 번 만났다.    



공유택시 앱도 준비해야 
길이 굽이굽이 돌거나 내리막길 오르막길이 연이어져 있어서 뒤에 버스가 오는지를 쉽게 볼 수가 없다. 버스를 하도 기다리다가 지쳐서 공유택시를 부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몰타에서는 에스토니아에 기반을 둔 공유택시 볼트(Bolt)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편 비상시 버스 유리창 깨는 방법이 특이하다. 보통 유리창 옆에 조그마한 망치가 붙어 있다. 그런데 이번 몰타에서 본 것은 망치가 아니라 붉은 단추다. 비상시 노란색 봉인을 틀어서 깨고 붉은 단추를 치면 유리창이 깨진다.    


정차 단추를 눌러야
모든 정거장에 버스가 서지 않는다. 내릴 정거장 직전에 버스 안에 여기저기 붙어 있는 붉은 단추를 눌러 운전사에게 정차 신호를 반드시 보내야 한다. 내 정거장에 서 주겠지 하다가 내릴 정거장을 놓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공항이동시 시간 주의해야
출국시 버스로 공항으로 이동할 때는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 한다. 우리가 머문 곳에서 공항까지 가는 버스가 1시간에 한 대였다. 버스를 놓치거나 만석이라 버스가 정거장에 서지 않으면 1시간을 더 초초하게 기다려야 한다. 

몰타는 차량 주행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특히 횡단보도를 건널 때 조심해야 한다. 도로를 건널 때 항상 오른쪽을 먼저 살펴 봐야 한다. 참고로 이번 몰타 여행에서 이동노선이나 버스정보를 유익하게 준 앱이 바로 Moovit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2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몰타 여행기 1편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 8편 | 9 | 10편 | 11편 | 12편 | 13편 | 14편 | 15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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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6. 17:16

유럽 리투아니아는 국경일(영혼의 날 - 돌아간 조상을 숭배하는 날)인 11월 1일을 기점으로 학교가 일주일 방학에 들어간다. 보통 이맘 때부터 흐리고 추운 날씨가 대세다. 리투아니아어로 11월은 lapkritis다. 이는 떨어지는 나뭇잎을 뜻한다. 

우리 가족은 거의 매년 햇볕이 부족한 긴긴 겨울철을 잘 견디기 위해 이맘 때 따뜻한 나라로 가족여행을 간다. 행선지 결정은 아내 몫이다. 봄부터 아내는 여행지와 더불어 저가 항공권과 괜찮은 숙박 시설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지중해 키프로스와 몰타 중 고민하다가 몰타를 여행지로 정했다. 이유를 물으니 첫째 해수욕도 여전히 가능하고, 둘째 호주 큰 딸과 영국 조카 가족이 더 싼 비행기표로 올 수 있고, 셋째 공용어 중 하나가 영어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막상 가족여행을 떠날 때쯤 리투아니아는 기록적인 날씨로 여름날 같은 10월 날씨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족여행 안 가도 될 텐데... 10월 24일 오후 라이언에어 비행기를 탔다. 직항이다. 왕복 비행기표가 1인당 180유로다. 빌뉴스 공항에서 몰타 공항까지 소요 시간은 3시간 20분이다.

지중해 몰타로 접어들자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 있다. 금방이라고 폭우가 쏟아질 듯하다.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 노을을 볼 수 있는 찰나인데 참으로 아쉽다. 저런 먹구름은 우리가 머무는 8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나타나고 사라졌다(10월 중하순 몰타 여행을 하고자 하는 분들은 참고하세요). 


몰타는 쉥겐조약(국경통과 간소화 조약) 가입국으로 비행기에 내려서 버스로 이동한 후 출입국 심사없이 우리는 곧장 밖으로 나왔다.  


첫날 숙소는 공항 출입국장 반대편 쪽에 있는 할 키르코프(Hal Kirkop)에 위치해 있다. 다음날 아침 호주에서 큰 딸을 맞이해야 하므로 공항 인근으로 정했다. 도보로 20분 걸리는 거리다. 성 레오나르두스(Leonardus) 성당 바로 옆이다. 리투아니아 성당들은 대부분 붉은 벽돌로 지어졌는데 이곳은 모래색 석회석이다.  


하루만 묵을 숙소다. 석회석으로 지어진 호텔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며칠 전 호텔이 전자우편으로 호텔 출입을 할 수 있는 큐알코드를 보내왔다. 늦은 밤도 아닌데 설마 호텔 접수대에 종업원이 없을까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녁 8시경 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초인종도 없다. 어떻게 들어가지... 출입문 옆에 전자 기기 하나가 붙어 있다. 방법을 숙지하고 있던 아내는 전자편지에서 내려 받은 큐알코드를 찍는다. 그러자 전자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난다.       


이렇게 큐알코드로 호텔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니 종업원도 접수대도 정말 없다. 방문 옆에도 큐알코드를 읽는 기기가 붙어 있다.   


깔끔하다. 그런데 방바닥이 낯설다. 리투아니아는 목재 바닥이 대부분인데 몰타는 타일이다. 여기가 더운 곳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인용 침대가 둘이다.


침대 너머 오른쪽에 옷장이 보인다. 다른 침대 옆에도 넉넉한 옷장이 있는데 저기 텔레비전 옆에 굳이 옷장이 또 필요할까...
 

문을 열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옷장으로 위장된 부엌이다!!! 간단하게 요기할 거리를 만들 수도 있겠다.


몰타의 전원 꽂개집(콘센트) 형태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미처 변환 꽂개집을 준비하지 못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동그란 구멍이 두 개가 있는데 여기는 네모난 구멍이 세 개가 있다. 


서로 다른 꽂개(플러그)다. 


다행이 약간 변형된 꽂개집 덕분에 걱정 없이 충전할 수 있다.


아주 작은 규모의 호텔이다. 방이 총 6개다. 우리 가족만 투숙한 듯하다. 어떻게 유지가 될까... 그런데 나중에 아침 식사하는 것을 보니 방이 모두 다 손님으로 채워져 있다.


준비된 아침 식사 양과 종류를 보니 참으로 소박하다.


빵을 구우려고 전원을 넣어도 작동이 되지 않는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주인인지 직원인지 현지인 한 사람이 식당으로 와서 벽에 붙어 있는 꽂개집 왼쪽에 있는 개폐기(스위치)를 작동시켜 준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을 때 굳이 꽂개를 뽑을 필요가 없이 그저 전원 개폐기만 닫으면 된다. 


아침 식사 후 찍은 호텔 정면이다. 모래색 석회석 건물과 남색 나무 창문이 이국적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  


호텔 바로 옆 성당이다. 하나면 충분할 텐데 왜 벽시계가 두 개나 있을까? 옆에 있던 요가일래가 답을 준다. 이것이 바로 몰타 특징들 중 하나다. 두 개의 종탑 아래 각각 시계를 걸어 놓는다. 오른쪽 시계만이 정확한 시간을 주민들에게 표시한다. 틀린 시간을 표시하는 다른 시계는 악령을 혼동시켜서 미사를 방해하지 못하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우와~~~ 고마워~~~   


모처럼 다 함께 모였으니 가족 사진 한 장을 남긴다.


다른 숙소 입실 시간이 오후 1시라 아침에 마실 구경에 나선다. 온통 누렇고 누렇다.


공사현장이다. 벽이나 바닥이 다 누런 흙으로 보이지만 다 밝은 모래색 석회석이다.


감자가 자라고 있다. 흙 반 돌 반이다.


올리브가 익어 가고 있다. 


"와, 아몬드다!" 
식구들은 믿지를 않았다. 요가일래는 열매 하나를 집으로 가져 와서 깨서 먹어 보더니 그제서야 식구들은 내 말을 믿게 되었다. 30여년 전 헝가리 유학 시절 현지인 포도밭에 내가 심어 놓은 아몬드 나무는 지금도 잘 자라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무궁화속의 꽃인 부상화다.


장미꽃도 여전히 피어 있다.


동네 작은 공원이다. 깨끗한 무료 화장실이 신기하다. 채소와 과일도 자라고 있다. 


수박이다. 이제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철로 접어드는데 저 수박이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 가족은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지중해 몰타에서 첫날을 보냈다. 가장 신기한 것은 최첨단 큐알코드 입실이다. 아침 식사를 도와주던 친절한 현지인에게 물어보았다.

"이 방법이 몰타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나?"
"다른 호텔들이 사용하는 지는 모르겠다."
"어떤 좋은 점이 있나?"

"종업원을 두지 않아도 된다. 상주할 필요도 없다. 아침 준비와 청소 정리만 하면 자유롭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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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4. 06:50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말타, Malta)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기억에 남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달팽이다. 모래빛 석회석의 담벼락으로 올라가 아직 자신의 점액으로 붙여 있는 달팽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또 달팽이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마치 담벼락 색으로 변신을 한 듯하다. 느림의 미학 상징 중 하나인 달팽이는 말라 죽을 수도 있는데도 왜 이렇게 담벼락 위로 올라가는 것일까...


어느 날 몰타에서 가장 긴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멜리하만(멜리에하 베이 Mellieha Bay)을 다녀왔다. 가족이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동안 나는 해변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말라 버린 식물 줄기에 달팽이가 떼를 지어 붙어 있다. 혹시 저 달팽이들의 습격으로 꽃과 줄기가 시든 것이 아닐까...   


연두색 새잎이 자라고 있다. 저 잎은 무사할까....


바로 옆에는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달팽이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달팽이 나무로 이름 지어도 될 듯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자기 몸에 지닌 점액질만 믿고 위로 위로 느리게 올라가다가 영양분이나 수분이 부족해 말라 죽은 달팽이들이다. 저 달팽이처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지 않을까...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순간이다. 사실은 뜨거운 지열을 피해 달팽이들이 위로 올라간 것이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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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8. 3. 9. 08:19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지리적으로 북유럽에 속하는 리투아니아에는 혹한이 거의 없었다. 평창 올림픽의 추위 소식은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했다. 그런데 2월 하순으로 접어들자 밤 기온이 영하 20도 내외로 떨어졌다. 혹한의 연속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초부터 날씨가 조금씩 포근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온이 영하인지라 쌓인 눈은 녹지 않고 있다. 최근 여러 날 또 다시 눈이 내렸다. 아래 영상은 눈을 밟으면서 강의하러 빌뉴스대학교로 가는 모습이다. 




듣기만 해도 정겹다. 이 소리를 듣자니 1월 초순 가족여행을 다녀온 남반구 호주의 해변 하나가 떠올랐다.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의 저비스(Jervis) 만에 있는 해변이다.


이 일대는 아담한 높이에 거의 수직으로 깎인 절벽따라 하얀 모래 해변이 펼쳐져 있다. 밀물이 오면 잠겨버리는 모래 해변을 따라 우리 가족이 산책하고 있다. 

  


숙소 안내 간판에 하얀 모래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들어갈 정도로 저비스 만의 하이암스 해변(Hyams beach)은 아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이 모래는 세계 기록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하얀색을 띠고 있는 모래로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다. 



이날 아쉽게도 날씨가 흐리고 싸늘해서 그런지 해변 풍경은 관광 안내 책자의 설명에는 크게 미치지 못 했고 또한 첫눈에 마주친 모래 색깔도 감탄을 자아내지 못 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보니  모래가 드디어 자기 본색을 드러냈다. 하얗고 하얀 모래 색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쨍쨍한 햇볕이 없어 아쉬웠지만 기네스 기록에 이끌려서 온 보람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와 바로 내 앞에서 멈췄다.

자기 몸통과 모래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하얀 지를 나에게 물어보는 듯했다.


답은 물을 필요가 없는 듯하다. 

유유상종하니 근주자적하고 근묵자흑이로다!!! 



아, 날씨가 쾌청했더라면 참 좋았을 법한 장면인데... 내내 아쉬웠다.



북반구 북유럽에서 남반구 호주에 언제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하면서 

한 컷을 부탁하는 딸아이 요가일래... 



모래 해변 바로 옆인데도 무인도 원시림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하이암스 해변에서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은 
하얀 모래색이 아니라 바로 이 모래밭을 밟고 가면서 들리는 소리였다. 
마치 북유럽 겨울 눈밭을 피해 온 우리 가족에게 들려주는 새해 선물 소리 같았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라헤마 습지공원 널판자 오솔길 눈을 밟고 가는 영상과
하이암스 해변 모래를 밟고 가는 영상을 함께 만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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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8. 2. 6. 05:57

이번 호주 시드니 가족여행에서 현지의 초대를 받아 잠깐 그의 집을 방문했다. 



현관문 신발장 앞 하늘소가 시선을 끌었다. 

멀리서 얼핏보면 바닥에 잠시 멈추고 있는 거대한 곤충처럼 보였다.



가까이에 가면 바로 철로 된 조형물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하늘소의 용도는 무엇일까?



현지인에게 물으니 직접 그 용도를 보여주었다.



바로 키가 큰 그가 쉽게 신발을 벗기 위해서 이것을 사용하고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바닥에 설치하기가 어렵겠다. 만약 주택에 산다면 현관 입구에 하늘소 한 마리를 설치해놓으면 신발을 벗는데 참으로 편리하겠다. ㅎㅎㅎ


* 초유스 가족여행기: 호주 본다이 비치 구경에 취해 범칙금이 22만원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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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8. 2. 2. 06:45

호주 3주 가족여행을 하는 동안 주로 시드니에 머물면서 근교를 둘러보았다. 2박 3일 동안 기네스 세계 기록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하얀 모래를 자랑하는 하이암스 비치가 있는 저비스 만을 둘러보기로 했다. 애어비앤비(Airbnb)를 통해 나우라( Nowra)에 숙소를 잡았다. 

2층 단독주택이었다. 2층은 주인이 사용하고 1층이 여행객 숙소였다. 넓은 거실 공간 끝에 2인용 침대 하나와 1인용 침대 2개가 마련되어 있었다. 간단하게 음식을 해먹을 수 있었다. 


이 집에서 우리 가족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담장이었다. 옆집과 경계를 짓는 담장을 계단식 채소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옥수수, 호박, 가지, 토마토, 상추, 붉은 사탕무우, 순무, 딸기, 고추 등 





바로 옆집은 막대기 울타리인데 이 집은 낮은 계단식 담장에 채소와 화초를 가꾸고 있었다. 텃밭이나 주말농장을 따로 가질 필요 없이 이렇게 담장을 채소밭으로 활용하다니... 한번 따라해볼만한 좋은 생각이다.

* 초유스 가족여행기: 호주 본다이 비치 구경에 취해 범칙금이 22만원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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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8. 1. 29. 07:03

북반구 유럽 빌뉴스 겨울 날씨를 피해 남반구 호주 시드니 여름 날씨에서 연말과 새해를 가족과 함께 보냈다. 해변에서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는 우리 식구들이 제일 먼저 찾은 해수욕장은 바로 본다이 비치(Bondi Beach)였다.  


본다이 비치는 시드니 중요 관광명소 중 하나다. 호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자 세계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해수욕장이다. 잔디밭과 모래밭 그리고 비취색 바다가 잘 어울려져 있다. 선호에 따라 잔디, 모래, 바다에서 제각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린 시절 한국 시골에 흔히 보았던 아주까리(피마자, 파마주) 식물을 이곳 남반구 호주 시드니 본다이 비치에서 만나게 되다니...



해변명 본다이(Bondi, Boondi)는 원주민어로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라는 의미이다. 1 km미터 길쭉하게 펼쳐진 모래사장 양쪽 끝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일광욕나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렇게 요가욕을 즐기는 사람도 볼 수 있다.  



본다이 비치는 서핑으로도 유명하다. 남태평양과 맞닿아 있어 높은 파도가 자주 일고 있다. 서핑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라 한다. 바위 위에서 누군가의 서핑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언젠가 다시 좀 더 긴 기간을 시드니에 머무를 날이 온다면 한번 서핑을 배워서 본다이 비치에서 해보고 싶은 충동이 불현듯 일어난다. 




본다이 비치 바로 옆에 있는 유명한 아이스버그(Icebergs) 클럽이다. 유료 수영장을 겸하고 있다. 파도가 높아서 바다에서 수영하기 주저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평온하게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이 수영장은 바닷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이 비치 여기저기를 신나게 구경하고 해수욕까지 즐긴 후 차가 주차된 곳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차에 반갑지 않은 딱지가 붙여져 있었다. 


무료주차 허용시간을 단지 10분을 초과했을 뿐인데 딱지를 붙이다니...

우리 가족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범칙금 액수다.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주차위반 범칙금이 257AUD (호주 달러)!!!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22만원이다. 

한번 하소연해보려고 해도 주차단속원은 전혀 눈에 띄지가 않았다. 엄청 속상했지만 식구 네 명이 입장료를 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본다이 비치를 구경한 셈으로 치자고 했다. 그리고 이틀 동안 식사를 좀 부실하게 하자고 하면서 빠른 기분 전환을 꽤했다.  


정말 비싼 수업료를 내고 좋은 경험을 했다. 이후부터 3주간 교통법규 준수를 철저히 해서 더 이상 범칙금을 낼만한 행위를 전혀 하지 않게 되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8. 1. 19. 04:45

연말과 새해를 맞아 북반구 유럽에서 남반구 호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여름을 나고 또한 시드니에 살고 있는 딸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비행 시간이 많고 식구가 3명이니 항공비용도 수월찮았다. 그래서 빠르게 가는 방법 대신에 느리게 가는 방법을 택했다. 경유국으로 중국을 택했다.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빌뉴스-코펜하겐-베이징-시드니 항공 노선을 이용했다. 우리 부부는 이미 중국을 다녀왔지만 딸아이에게 중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베이징에는 에스페란토 친구들이 있었다. 

* 베이징 자금성


코펜하겐 혹은 베이징 공항에서 중국 화폐로 환전하려고 했으나 환율이 실제보다 좋지 않아서 환전을 포기했다. 베이징 시내 은행에서 환전할 때까지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지불해야 할 곳이 베이징 공항 수화물 보관서였다. 현금 혹은 위쳇이나 알리페이로 결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명색이 국제 공항 수화물 보관소인데 신용카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다. 모바일 결제의 일상화에 신용카드가 쓸모없는 현장을 체험하게 되었다.  



마중 나온 에스페란토 친구의 도움으로 현금으로 지불했다. 베이징 에스페란토 친구들이 이날 저녁 식사에 우리 가족을 초대했다. 중국에서 일하는 일본 친구도 자리를 같이 했다. 


식사 중 수화물 보관소에서 겪었던 신용카드 무용지물을 이야기했더니 일본인 친구가 지갑에서 100 위안짜리 두 장을 꺼내 들었다. 



"이 중 하나가 베이징 시내 은행 현금 자동 인출기에서 뽑은 지폐다. 그런데 나중에 은행에 갔더니 이 돈이 위조지폐라 했다."

"우와, 은행 현금 자동 인출기에서 위조지폐가 나오다니!"

"중국인 친구가 자동 인출기에서 뽑았으니 다시 자동 입금기로 입금하라고 했지만 기념으로 가지고 있기로 했다."  


어두운 곳이라면 어느 돈이 진짜고 어느 돈이 가짜인지 육안으로 구별하기가 쉽지 않을 듯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다. 일단 선명도에서 차이가 난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다섯 개로 되어 있는 네모칸에 숫자가 쉽게 드러나지 않아야 진짜다. 복사하면서 그 숫자가 비친 것이 가짜다. 사진에서 위에 있는 지폐가 진짜고 아래는 있는 지폐가 가짜다. 그의 설명은 집으로 돌아올 때 방문한 상해에서 도움이 되었다.    



은행 현금 자동 인출기에서 뽑은 돈 중에서도 위조 화폐가 있다니 "역시 중국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이징에서 사용할 위안을 중국 친구와 사적으로 환전을 하게 되었다. 호주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베이징이 아니라 상해를 경유했다. 


* 상해 난징루


필요한 현금을 중국은행에서 환전할까 아니면 현금 자동 인출기에서 뽑을까 잠시 고민했다. 

"좀 걸어가야 하지만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이 좋으니 가자!"

"추운데 그냥 여기서 인출기에서 뽑자!"

"그러다가 일본인 친구처럼 위조지폐가 나오면 어떻게 해?"

"운에 맡기자."


결국 현금 인출기에서 뽑았다. 베이징에서 일본 친구가 설명해준 대로 네모칸에 숫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해보았다. 다행히 모두 보이지 않았다. 아, 이런 불안 때문에도 중국이 현금 대신 모바일 결제를 선호하는구나...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6. 11. 28. 04:10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9편에 이은 마지막 10편이다.

숙소에서 벨베르 성까지 그리고 산정상에 있는 이 성에서 도심 대성당까지 걸어가니 서서히 다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팔마에서 꼭 봐야 한다는 대성당이 있기에 가야 했다. 항구에 정박된 요트와 물 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보면서 한 걸음씩 나아갔다. 

* 팔마의 대표적 상징 라세우 대성당(우)과 알무다이나 왕궁(좌)


노랗게 익어가는 대추야자 열매에 이국적 정취가 물씬 풍겼다. 북동유럽 리투아니아 가게에서 말린 대추야자 열매를 자주 사서 먹는다. 말랑말랑하고 꿀맛처럼 달콤한 대추야자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나무를 지중해 해변에서 직접 만나니 정말 낯선 지역에 여행을 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 대추야자 열매


터벅터벅 걷다보니 대성당이 코앞에 나타났다. 일단 식후경 음후경 (食後景 飮後景)이라 대성당과 항구 사이에 있는 공원에서 잠시 쉬었다.   

* 작은 맥주 한 잔 4.5유로


산타마리아(라세우 La Seu라고도 한다) 대성당은 로마시대 도시 요새 안이자 아랍 무어인의 모스크 자리에 세워졌다. 마요르카를 정복한 아라곤 왕 하이메 1세가 1229년에 짓기 시작한 이 성당은 1601년에 완공되었다. 마요르카 왕가 무덤이기도 하다. 여러 건축 양식이 복합되어 있지만 주된 양식은 고딕이다. 


* 팔마 대성당 본당 높이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

 


대서양 해변에 있는 길이 121미터, 본당 높이 44미터, 폭 55미터인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성당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은 19세기 중반 지진으로 훼손되었는데 아르누보 건축의 거장인 안토니 가우디가 1901년에서 1914년까지 복원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성가대 자리를 중앙에서 옮겨 제단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고 제단 덮개(캐노피 canopy)를 설계 조각했고 스테인글라스를 통한 자연채광으로 성당 내부를 밝게 했다. 


* 팔마 대성당 


아쉽게도 이날 대성당 내부가 닫혀 있어 가우디 작품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맞은편에는 알무다이나 왕궁이 있다. 이슬람 요새에 13세기 말엽에 세워진 왕궁으로 현재 스페인 왕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다. 일부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 알무다이나 왕궁 - 지금도 스페인 국왕의 거소
 
도심 성벽따라 한참을 걸은 후에야 닿은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하면서 하루 일정을 마쳤다. 만보기는 이날 도보거리를 20킬로미터로 표시했다.

* 성벽에 피어나는 꽃  


다음날은 한적한 이예테스(Illetes) 해변에서 이번 마요르카 가족여행을 마감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서로 물어보았다.


* 이예테스 해변


"아직 가볼 곳이 많은데..."
"알쿠디아 해수욕장에는 다시 오고 싶어."
"아몬드 나무에 꽃이 활짝 피는 봄에 한번 오고 싶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마지막 10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6. 11. 26. 05:30


아기자기 아름다운 해변이 곳곳에
알쿠디아에서 3박을 체류한 후 이제 마요르카의 수도 팔마(Palma)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곧 바로 고속도로를 따라 팔마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왕 온 김에 남동쪽도 가보기로 했다. 많이 봐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선택한 도로는 산타마르갈리다(Santa Margalida) - 페트라(Petra) - 마나코르(Manacor) - 펠라니츠(Felanitx) - 칼라도르(Cala d'Or)였다. 

* 구글 지도에서 보듯이 하얀색이 점령한 칼라도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칼라도르는 마요르카의 초기 관광휴양지 중 하나이다. 작고 예쁘장한 지중해식 하연색 빌라와 호텔이 즐비하다. 이날 우리가 찾은 해변은 칼라도르 해변(Palya Cala d'Or)이다. 비취색 바닷물, 초록색 소나무, 하얀색 건물들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파아란 하늘 - 이 모두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 비취색 바닷물, 초록색 소나무, 하얀색 건물들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파아란 하늘

이날 해변에서 만난 사람은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세 쌍이었다. 한 쌍은 고운 모래 해변에 누워 책을 읽고 다른 한 쌍은 일광욕을 하고 나머지 한 쌍은 해변 계단에 쉬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가로움 그 자체였다. 바쁜 일상에서 이런 삶을 짧게라도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 세상 잊은 한가로움이어라~~~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펠라니츠와 캄포스를 거쳐 Ma-19 도로를 따라 렌트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3박 4일 동안 무사히 함께 한 렌트카를 돌려주었다. 무료 서틀버스를 이용해 공항 시내버스 정류장을 도착했다. 팔마 시내까지 버스요금은 1인당 5유로다. 추가요금 없이 한 번 환승으로 3박을 머무를 장소로 이동했다.


숙박료보다 보증금이 더 비싸
팔마 서쪽에 있는 칼라마요르(Cala Major)다.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거실 하나, 방 하나 아파트다. 3박 숙박료보다 보증금이 더 비싸다. 만약의 흠집이나 파손 발생 시를 위한 안전장치다. 혹시 여러 핑계로 이 돈을 돌려받지 못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주인이 보는 앞에서 벽이나 가구 등 집안 구석구석을 사진을 찍었다.

* 3박 머문 칼라도르 아파트 입구와 선인장

잠시 쉰 후 우리는 칼라마요르 해변으로 나섰다. 담벼락에 익어가는 감이 어린 시절 고향의 감나무을 떠올리게 했다. 리투아니아로 돌아가면 스페인산 단감을 많이 사먹을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해변으로 향했다.

* 마요르카에서 만난 감나무
칼라마요르 해변 또한 아기자기했다. 11월 초순에도 이렇게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니...  

* 11월 초순 칼라마요르 해변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겼다

해변에서 우연히 리투아니아 사람을 만났다. 정년 퇴임한 사람인데 칼라마요르에서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관광객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있다. 수입을 물으니 나쁘지는 않다고 한다. 우리도 마요르카로?! 그러기에는 우린 아직 퇴직이 멀었다. ㅎㅎㅎ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8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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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6. 11. 25. 22:28


알쿠디아에 머무는 동안 주변 관광명소를 찾아서 이젠 동쪽으로 이동했다. 카프데포르멘토르로 가는 구불구불한 뱀길에 대한 공포감이 아직 생생히 남아있어서 평탄한 도로를 선택했다. 먼저 35km 떨어져 있는 아르타(Artà)를 방문했다. 

* 아르타 요새
아라곤 왕국의 하이메 1세(1208-1276)가 1230년 이 지역의 마지막 이슬람 거점을 무너뜨린 산정상(Sant Salvador, 해발 182m)에 있는 요새에서 머물렀다. 모스크 자리에 1248년 가톨릭 성당이 세워졌고 현재의 성당은 1832년 르네상스 모델로 지어졌다. 이 성당에는 하이메 1세가 가져온 것으로 알려진 로마네스크식 마리아 목조각상이 모셔져 있다. 

* 마요르카를 정복한 하이메 1세와 무어인

멀리서도 보이는 산정상 요새를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아르타 시청 근처 좁은 일방통행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언덕을 향해 올라갔다. 도중에 얼굴 머리 위에 장식으로 자라는 식물이 우리 가족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했다. 

* 얼굴 모양 도자기 화분에 식물이 자란다
잠시 올라가면 1573년 후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예수의 변모" 성당이 나온다. 여기에서 180개 계단을 올라가면 요새다. 들어가자마자 마당에 우물이 보인다. 해발 182미터 산정상에 우물이 있다니... 과연 저 우물의 깊이는 어느 정도나 될까... 

* 쇠창살 무늬와 산정상에 있는 우물
요새는 9개의 탑과 1미터 두께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벽난간을 따라 쭉 가면서 사방을 구경할 수 있다. 해발 500미터에 이르는 레반트(Llevant) 산맥이 펼쳐진 가운데 아르타 시가지를 제외한 곳은 아몬드나 올리브 농원 등이다. 멀리 지중해도 보인다. 요새 안에는 레스토랑도 있다.  
     
* 저 멀리 지중해가 보인다
* 산 아래 아몬드 농원
* "예수의 변모" 성당과 아르타 시가지
내려오는 길에 계단 옆 시멘트 벽에서 카멜레온 고양이를 만났다. 털색이 시멘트의 회색을 닮아 순간 깜짝 놀랐다.

"어, 여기 카멜레온 고양이!"


다음 행선지는 카프데페라(Capdepera). 아르타에서 동쪽으로 8km 떨어진 마을이다. 1300년 하이메 2세가 해안과 해상로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성이 남아 있다. 해발 162미터에 위치해 있다. 

* 성 입구에 있는 카프데페라 지도

좁은 골몰길을 따라 올라가니 아쉽게도 박물관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 골목길에 만난 풍경

성 밖에 바다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경치를 보고 혹시나 성벽을 따라 돌아가면 주차장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로 다소 험한 길을 걸었다. 그런데 삼면을 다 돌고 마지막 면을 돌려고 보니 길이 막혀있었다. 

아뿔싸...  바위와 덤불로 가득 한 길로 되돌아가야 했다. 아까운 시간 30분을 낭비하게 되었다. 이것이 이날 가장 어릭석은 짓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 험난한 성벽길, 인상적 나들이

푼타데카프데페라(Punta de Capdepera) 등대에서 산을 넘어가는 일몰을 구경하면서 이날 하루 일정을 마쳤다.

* 마요르카 동쪽 해안 등대에서 맞이한 일몰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7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6. 11. 25. 22:27


우리 가족이 마요르카를 여행한 날짜는 10월 29일에서 11월 5일까지다. 마요르카를 가족여행지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혹시나 날씨가 좋아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마요르카는 연중 맑은 날이 평균 300일이다. 관광철 성수기는 4월에서 9월까지다. 관광객 인파를 피하고 숙박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10월이 좋은 때다.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해변가 식당이나 상점들은 10월에서 다음해 봄까지 문을 닫는다. 

* 11월에 벌써 해변가 식당이나 상점은 이렇게 닫혀 있다  

* 호텔 수영장 역시 비수기라 사람이 없다


10월 낮 온도가 23-25도, 밤 온도가 10도이고 11월 낮 온도가 18도, 밤 온도가 6도이다. 10월 날씨가 11월 초순까지 지속되면 우리의 기대는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결정한 휴양도시가 알쿠디아(Alcudia)였다. 북부 마요르카의 주요 관광지로 해수욕장이 14km나 뻗어 있다. 가족휴양지로 유명하다.     

* 딸아이 생일을 맞아 온 가족여행


알쿠디아는 기원전 123년 로마가 점령했다. 서지중해에서의 로마 세력이 약화되자 해적, 반달족, 무어인의 공격을 받았다. 1229년 아라곤 왕국의 하이메(제임스) 1세가 아랍 세력 무어인을 물리치고 이 지역을 지배했다. 그의 손자 하이메 2세가 1298년 이곳에 성당, 묘지, 광장 등을 지으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오늘날 구도시는 14세기 지어진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알쿠디아에서 3박을 머무는 동안 날씨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낮 온도가 25도 내외로 햇볕이 쨍쨍한 점심 무렵까지 우리는 해변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겼다. 거대한 말굽 해변은 고운 모래로 가득 차 있다. 고요하고 얇고 깨끗한 비취색 바다가 멀리까지 나아간다. 

* 잔잔한 바다

* 14km 해변 일부

* 얕은 바다

* 비취색 바다


이런 모습을 직접 와서 보니 알쿠디아 해변이 가족 휴가지로 많은 인기가 있음에 쉽게 공감했다. 모래와 바다를 밟으면서 해변을 따라 그냥 쉬임 없이 두 시간을 걸어 보았다.



알쿠디아 해변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일출 시각 7시 15분, 호텔에서 해변까지 200미터. 6시 45분에 수상안전요원 망루대에 올라 일출을 기다렸다.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어느 지점에서 정확하게 해가 얼굴을 내밀 지를 쉽게 알 수 없었다.

* 저 여명 속에 과연 어느 지점에서 해가 뜰까? 


잠시 후 비행기 한 대 지나가고 흔적을 남겼다. 하얀 선이 있는 곳에서 해가 뜰 것이라 예상하고 카메라 방향을 고정시켰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글거리면서 검붉게 떠오르는 일출이 아니라 고요히 보는 이를 관조시키는 일출이었다. 이제 알쿠디아라고 하면 얇은 비취 바다, 넓은 하얀 해변 그리고 고요한 일출이 떠오른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6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6. 11. 25. 22:26

 
다음 행선지는 포옌사(Pollença)였다. 해적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해변에서 6km 떨어진 곳에 카탈루냐인들이 13세기에 세운 도시이다. 포옌사의 으뜸 볼거리는 "천사들의 모후" 성당이다. 작은 다리는 건너 도시에 진입하자마자 자리가 보이기에 주차시켰다. 산정상에 있다는 성당을 찾아 좁고 거리를 따라 무조건 위로 올라갔다. 돌집벽을 따라 피오르는 꽃이 한층 더 아름답게 보였다.

* 돌집벽을 올라타고 자라는 식물

조금 더 가니 낯설은 장면이 눈에 띄였다. 돌집 창문에 꽃화분이 놓여있고 그 밑에는 쓰레기 봉투가 매달려 있다. 냄새가 팍팍 나는 쓰레기는 아니였지만 염정불이 청탁불이(染淨不二 淸濁不二 분별이 끊어진 자리에서 보면 더럽고 깨꿋한 것이 둘이 아니다)라는 말을 떠울리게 했다.

* 染淨不二 淸濁不二

난데없이 비들기 떼가 포옌사 하늘 위에 나타나 여러 차례 빙빙 돌면서 군무를 펼쳤다. 군계일학! 무리 중에 분홍빛이 선명한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분홍색 비둘기는 사진으로 보았지만 날개 밑만이 분홍색인 비둘기는 처음 이날 보았다.

* 날개 밑이 분홍색인 비둘기

다시 길을 따라 가니 계단으로 된 칼바리(Calvari) 거리가 나왔다. 계단이 모두 365개이고 마지막 계단 위에 작은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13세기 성전기사단이 세웠다. 


계단 365개를 밟아야 닿는 포옌사 성당
우리가 닿은 곳은 전체 계단수 중간 정도였다. 365개 계단을 다 밟으며 올라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해서 제일 밑으로 혼자 내려갔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 성당 안까지 들어갔다. 가족이 모여 잠시 각자 기도를 했다.

* 계단 365개를 밟고 올라가면 꼭대기에 "천사들의 모후" 성당이 있다


성당 마당에서는 포옌사뿐만 아니라 포르트데포옌사와 알쿠디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 성당에서 내려 보이는 포옌사 시가지

밑으로 내려와 로마 다리를 찾았다. 1403년 이전까지 이 다리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일부 사람들은 마요르카를 지배(123 BC - 425 AD)한 로마인들이 세운 다리라 믿고 있다. 로마인들이 세웠든 안 세웠든 이 다리는 19세기까지 이 지역 강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 

* 로마 다리 

밭에는 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주인이 보이면 하나 부탁해 맛을 보고 싶었다.
 
* 싱싱한 귤 먹고 싶어~~~

마요르카 여행을 다 마칠 무렵 가족이 가장 인상적이고 다시 오고 싶은 곳이 어딘냐하고 서로 물었다. 365계단을 밟고 올라가서 기도한 성당이라고 답했다. 경건하고 성스럽고 시야가 탁 트인 아담한 포옌사 성당이 내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5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6. 11. 25. 22:26


해안 절벽 절경이 일품인 콜로메르 전망대 
알쿠디아(Alcudia)에 머물면서 가장 먼저 가볼만한 명소를 알아보니 단연 카프데포르멘토르(카프 데 포르멘토르, Cap de Formentor)였다. 포르멘토르 반도의 동쪽 극점이자 마요르카 섬의 북쪽 극점이다. 호텔에서 거리는 38km이고 소요시간은 1시간이다.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다. 

* 왼쪽 작은 섬의 이름을 따서 이 전망대를 콜로메르(Colomer)라 부른다

포르트데포옌사(Port de Pollença)를 지나자 도로는 구불구불해지고 산으로 올라갔다. 약 5km 후 차들이 빽빽히 주차된 주차장이 나타났다. 네비게이션에 의하면 아직 최종 목적지가 아니였지만, 워낙 사람들이 붐벼서 볼거리가 있을 듯했다. 인터넷에서 카프데포르멘토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사진의 전망이 그대로 나타났다. 숨막힐 정도의 절벽 절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 사진 찍으려는 딸아이를 찰칵~

이곳은 콜로메르 전망대(Mirador es Colomer)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콜로메르라는 아주 작은 섬의 이름에서 붙여졌다. 해발 200m 절벽에 마련된 전망대에는 기념탑 하나가 세워져 있다. 1930년대 포르트데포옌사에서 카프데포르멘토로까지 이르는 도로를 건설한 이탈리아인 도로기술자 안토니노 파리에티 콜(Antonino Parietti Coll, 1899-1979)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전망대에는 보호벽이 잘 설치되어 있지만 특히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 마음을 머무는 동안 내내 두려움과 공포감이 짓눌렸다. 지중해로 뻗어내리는 바위산의 해안절벽, 바다 위에 유유자적하는 카누와 요트, 호숫물처럼 평온한 발 아래 바다 등은 잠시나마 마음 졸임을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전망대 반대편 산 정상(해발 380m)에는 망루(Talaia d'Albercutx)가 보인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지중해에서 해적들이 활개칠 때 세워진 망루이다. 해적 출몰 등 위급한 소식을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 섬의 수도인 팔마(Palma)까지 전해 군대 지원을 요청한 통신수단 봉수대였다. 좁은 길이지만 차로 가까이까지 갈 수 있다.  
  
* 정상에 보이는 망루는 한때 봉수대 역할도


카프데포르멘토르에 이르는 길은 탄성과 지옥 길
이 전망대가 끝이라 생각하는 아내를 꼬득여 카프데포르멘토르 등대까지 가자고 우겼다. 보기에는 어려운 길이 아닐 것 같았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도로는 좌우로 격렬하게 몸통을 휘젖으면서 도망치는 뱀처럼 꾸불꾸불해지고 마치 절벽이 우리를 앞에서 삼킬 듯했다. 경치를 즐길 여유도 없이 언제나 이 길이 끝날까하는 바램뿐이었다. 절경이 절벽으로 우리에겐 그 빛을 잃었다. 

* 뱀길과 절벽은 공포 속으로 우릴 몰아넣었다

그야말로 지옥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셈이었다. 즐겨워 하는 가족여행이 곧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만 같은 공포심에 떨어야 하다니... 여러 번 되돌아가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여기까지 온 것이 아까워서 포기할 수도 없었다. 군데군데 갈색 염소가 눈에 띄였다. 유유히 절벽을 거닐고 있는 모습이 참 얄밑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 공포의 전율 속에 도달해 절경 감상을 댓가로 받았다

이렇게 도착한 종착지 카프데포르멘토르는 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 날씨는 아닌데 방금 내린 운전사의 옷이 땀으로 젖어있었다. 우리만 겁쟁이이가 아니였구나하고 위안 삼아서 상상해보았다. 이제는 트라문타나 산맥의 가파름과 지중해의 잔잔함을 다시 한번 감상할 때였다. 

* 칼라피구에라(Cala Figuera)

되돌아갈 길이 또 걱정이었지만 길이 낯익어 견딜만 했다. 도로변 전망 지점에서 바다의 비취색이 요트의 하얀색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는 칼라피구에라(Cala Figuera)에 탄성을 질러보는 짧은 여유로움을 가졌다. 한마디로 카프데포르멘토르에 이르는 길은 탄성과 지옥 길 그 차제였다. 그래도 다시 가라고 하면 가보고 싶은 길이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4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6. 11. 25. 22:26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2편에 이은 3편입니다. 

트라문타나 산맥은 마요르카 유일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지
쇼팽이 3개월 체류했던 발데모사를 뒤로 하고 우리 가족은 잠시 평평한 분지 도로를 따라 포르트데소예르(포르트데솔레르, Port de Soller) 항구로 향했다. 해변으로 다가가자 구불구불한 도로에 왼쪽은 낭떠러지이고 오른쪽은 절벽인 길이 자주 나타났다. 언제 반대편 차선에서 불쑥 차가 나타날 지 알 수가 없었다.  

* 동쪽에서 산맥을 넘어 서쪽에서 바라보니 산 정상엔 비구름이 모이고 있다

경사가 심한 비탈진 산악지대에 다양한 식물군들이 자라고 있고 또한 곳곳에 사람들이 개간을 해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랐다. 아, 이래서 트라문타나 산맥이 자연보호지이자 201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이 되었구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용수 시설망을 구축해놓고 오랜 세월 동안 계단식 농사를 짓고 있다. 도로변 절벽밭에 자라는 수백년 올리브나무가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 바위산에 일궈낸 계단식 농사

트라문타나 산맥에서 가장 높은 정상은 푸이그마요르(Puig Major)로 1445m이다. 남서쪽 해안에서 북서쪽 해안까지 약 90km에 걸쳐 뻗어 있고, 면적은 1,067km2이다. 기후는 섬의 나머지 지역보다 더 습하다. 이곳의 연 강유량이 1,505mm이고 나머지 지역은 400mm이다. 이 산맥이 마요르카 기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문학인과 예술인이 즐겨 찾는 데이아
작은 산봉우리까지 집들이 모여 있는 한 시골 마을이 나타났다. 뭔가 있을 것 같았다.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먼저 도로변 밭에 있는 레몬이 시선을 끌었다. 눈길을 해안 반대편으로 돌리니 거대한 산과 우뚝 솟아 있는 지중해 편백나무(mediterranean cypress)가 우리를 압도했다.

* 비온 후 쑥쑥 자라는 죽순을 닮은 우뚝 솟은 지중해 편백나무

이 마을이 데이아(Deià)다. 발데모사에서 16km 떨어져 있고 차로 약 30분 걸린다. 700여명이 사는 이 마을은 문학인과 예술인 주민들로 유명하다. 산봉우리에서 앞으로는 지중해가 내려다 보이고 뒤로는 레몬, 오렌지, 올리브 나무 등이 절벽에서 자라는 목가적인 풍경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 도로가 레몬과 산봉우리 마을 데이아가 걸음을 먿추게 했다

영국인 작가 로버트 그레이버스(Robert Graves, 1895-1985)는 1929년에 이 마을에서 들어와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가 살던 집은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그의 무덤은 성당 뜰 편백나무 아래에 있다. 나카라과인 작가 클라리벨 알레그리아(Claribel Alegria)가 살고 있다. 


폴란드 출신 모델 안나 루빅이 2011년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영국 음반사 버진 레코드의 리처드 브랜슨은 이곳에 저택을 가지고 있다. 많은 스타 예술인들이 즐겨찾는 마을이다. 11월 초순인데도 마을 중심가는 교통 체증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과 차로 붐볐다. 주변에 카페와 식당이 즐비하지만 시간이 없어 그냥 지나갔다. 



전차가 다니는 아름다운 말굽 해변 
다시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다음 행선지 포르트데소예르로 떠났다. 내륙인 소예르(Soller)에 다가오자 구름도 쉬어가는 듯 높은 바위산 줄기가 우리를 감탄케 했다. 산이 거의 없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게 이런 풍경은 상상할 수도 없다. 

* 거대한 바위산 줄기 - 리투아니아 사람들에겐 상상할 수 없는 풍경

여기서 5km 떨어진 포르트데소예르는 산으로 둘러싸인 만에 자리잡은 항구도시다. 중심가에 있는 공용 유료주차장(1시간에 1유로)에 차를 세워두고 가까이에 있는 해변으로 곧장 갔다. 말굽처럼 생긴 해변은 모래로 채워져 있고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다. 늦은 오후라 쌀쌀했지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 말굽처럼 생긴 포르트데소예르 해변

잠시 후 해변을 따라 전차가 오고 있었다. 이런 작은 휴양도시에 전차가 다니다니 다소 의아했다. 이 전차는 인근 소예르까지 주로 관광객을 태운다. 소예르에서 팔마까지는 기차로 연결되어 있다. 팔마에서 기차와 전차를 타고 이 해변까지 올 수 있다. 혹시 관련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안내 사이트: http://www.mallorca-now.com/palma-soller-train.html



일몰 1시간 전이었다. 이날의 최종 행선지 알쿠디아(Alcudia)로 가는 길은 둘이다. 하나는 터널(통행료 5유로)을 통과해 고속도로고, 다른 하나는 산악도로다. 둘 다 거리는 비슷하지만 소요시간은 전자가 50여분이고 후자가 1시간 30분이다. 산악도로 사정이 빈약할 수 있고, 또한 어둠 속 급경사의 구불구불한 도로가 제일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네이게이션이 골탕 먹였다
이제 3박을 체류할 알쿠디아(Alcudia)는 어둠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목적지 도착의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사이직(Sygic) 네비게이션이 골탕 먹였다. 정확한 주소를 찍고 찾아왔지만 호텔이 없는 곳이었다. 주위는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관광 성수기가 지난 지라 도로변에는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두 번이나 같은 지점을 빙빙 돌아다녔다. 결국 인근 호텔에 가서 물으니 100m 앞으로 가면 있다고 했다. 가보니 호텔이 없었다. 황당하고 당황했다. 

그래도 가장인지라 이리저리 불빛따라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나섰다. 도로 건너편 렌트카 사무실이 열려 있었다. 다행히 직원이 친절에게 응해주었다. 거리는 1500m이고 첫 번째 주유소가 나올 때까지 무조건 쭉 가라고 했다. 아, 누구는 100m라 하고 누구는 1500m라 하고... 렌트카 직원이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이날 얻은 교훈은 1) 알고는 있지만 내비게이션을 절대 맹신하지 말고 호텔 위치는 반드시 종이로도 가지고 갈 것, 2) 낯선 곳에서의 호텔 투숙은 반드시 일몰 전으로 할 것이다.

* 우리가 묵은 호텔 아파트 모습 - 식구 서너 명 가족여행에 딱 좋음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알쿠디아 아이보리 호텔(Ivory hotel)을 힘들게 찾아왔다. 거실, 방 하나, 욕실, 주방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를 갖춘 아파트다. 이 시기 하루 숙박료는 80유로다. 깔끔하고 전망 좋은 호텔 아파트에 여장을 푸니 하루가 피로가 확 풀리는 듯했다. 

* 딸아이가 챙겨온 라면 덕분에 꿀맛 저녁식사

대부분 식당들은 비수기를 맞아서 이미 문을 닫았다. 내년 봄에 다시 문을 연다. 가져온 라면을 끓여 김치 대신 짭짤한 올리브와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3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가족여행2016. 11. 25. 22:26


담장 위 피마자가 향수를 불러일으키네 
호텔에서 렌트카 회사까지 택시탈까, 걸어갈까 우리 가족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구글 지도를 검색하니 거리는 2km이고 도보 소요시간은 30분이다. 새로운 곳에서는 빠른 여행보다는 느린 여행이 더 좋다는데 모두 동의했다. 걸어가면서 담장에서 스며나오는 꽃향기도 마시고, 이국적인 식물도 구경하고... 저가비행기를 타니 여행가방도 끌만 하기 때문이다. 

* 30분 도보를 선택한 우리 가족

어린 시절 한국에서 뜰에서 많이 보고 자란 분홍빛 분꽃, 기름을 짜서 등불을 밝히는 아주까리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피마자는 낯이 익어서 신기했다. 무거운 바나나 묶음을 받치느라 힘들어 축 느려진 듯한 바나나꽃은 이국적이라 신기했다. 

* 피자마(상)는 낯이 익어서 신기하고 바나나꽃(하)는 이국적이라 신기했다

구글 지도를 따라 이런 저런 구경을 하고 가는데 주택가 거리를 벗어나자 도로는 보행하기가 위험했다. 고속도로로 갈린 이쪽과 저쪽 지역 사람들 중 도보 이용자가 있을 법한데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 했다. 우리가 외국 도로사정을 모르고 불법 도보하는 듯했다. 저 앞에서 경찰차가 올 때 괜히 가슴이 두근두근... ㅎㅎㅎ 경찰차는 그냥 지나갔다. 차량 통행이 잠시 뜸할 때 "하나, 둘, 셋! 뛰자"라고 외치면서 달리는데 웃음이 나왔다.

렌트카 인수시 꼼꼼하게 사진 찍어놓아야
이번에 이용한 렌트카 사이트는 http://www.doyouspain.com/였다. 하루 렌트 비용은 종합보험료를 다 포함해서 30유로였다. 인터넷에서 한 달 전에 예약한 승용차는 오펠 코르사(Opel Corsa)였다. 현장에 가보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차는 시에트롱 C4(Citroën_C4)였다. 산알도로도 이용할 것이라 가급적이면 더 작은 차를 선택했는데 기대에 어긋났다. 코르사 길이 3.62m x 폭 1.53m x 높이 1.36m이고 C4는 길이 4.58m x 폭 1.76m x 높이 1.45m이다. 

* 렌트카에 작은 흠이라도 사진을 찍고 있다

사무실에 서류 작업을 다 마치니 직원이 승용차의 현재상태 점검표를 건네주고 차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지금껏 여러 나라에서 렌트를 했는데 보통 직원이 차까지 동행해서 함께 차 상태를 확인하는데 이곳에는 렌트하는 사람이 혼자 차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표에 기재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사무실에 가서 점검표를 보여주고 서명을 받아야 한다. 아주 작은 흠이라도 꼼꼼하게 기재하고 사진을 찍어놓아야 나중에 시비거리가 생길 경우 유리하다. 우리는 새똥이며 뒷좌석 음료수 흔적까지도 사진 찍어놓았다.  

쇼팽과 상드가 머문 곳으로 유명한 발데모사 수도원
자, 이제부터 차를 몰고 본격적으로 마요르카 여행에 나섰다. 첫 도시는 발데모사(Valldemossa)다. 평평한 지대인 팔마(Palma)를 벗어나자 서서히 산이 가까워지고 오르막길과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졌다. 도로 폭이 생각보다 훨씬 좁았다. 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지나갈 때 운전석 뒷거울이 서로 부딪힐 것 같았고, 또는 조수석 뒷거울이 도로변 바위에 부딪힐 것 같았다.

* 트라문타나 산맥 안에 포근히 안겨있는 듯한 발데모사

트라문타나(Tramuntana) 산맥의 해발 400미터 중턱에 자리잡은 발데모사가 얼마나 유명한 지는 좁은 도로 좌우에 가득 세워둔 차들이 쉽게 말해주고 있었다. 중심가 도로나 주차장에 차를 세울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약간 벗어나 곳에 다행히 자리를 찾아 사람들 물결에 흘러나갔다. 목적지는 카르투시오회 수도원이다. 처음에는 마요르카 제임스 2세 왕(1243-1311)의 거소로 지어졌고 1399년부터 1835년부터 카르투시오회 수사들이 거주했다. 지금은 성당, 박물관, 도서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뭐니해도 이 수도원은 연인관계였던 폴란드 작곡가 프레데릭 쇼팽과 프랑스 여류작가 조르쥬 상드가 1838년 12월 20일부터 1839년 2월 13일까지 3개월 함께 머문 곳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건강이 좋지 않은 15살 상드 아들과 쇼팽의 요양을 위해 1838년 11월 8일 팔마데마요르카로 오게 되었다. 그런데 쇼팽과 상드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자 가톨릭 신앙이 깊은 현지인들은 이들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고 이들이 주거지를 찾는 것을 어렵게 했다. 그래서 이들은 당시 버려져 있던 이 수도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 파노라마로 찍은 수도원 건물 내 쇼팽 박물관 입구

병 악화에도 쇼팽은 이곳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
해상과 세관통과의 어려움도 불구하고 쇼팽이 애용하던 플라이엘(Pleyel) 피아노가 파리에서 이 수도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 피아노를 치면서 쇼팽은 빗방울 전주곡(Plelude Op. 28)발라드 2번(Ballade No. 2, Op. 38)폴로네즈(Polonaises Op. 40)스케로초 3번(Scherzo No. 3, Op. 39)를 작곡했다. 이곳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그의 병은 점점 악화되었다. 그를 왕진한 첫 번째 의사는 그가 죽었다고 하고, 두 번째 의사는 그가 죽어가고 있다고 하고, 세 번째 의사는 그가 곧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마요르카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관세를 피하기 위해 아끼던 피아노를 현지 프랑스인에게 팔았다. 

* 수도원 4호실에 위치한 쇼팽 박물관


쇼팽과 상드와 그녀의 두 아이가 세를 내고 거주했던 수도원 4호실은 현재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당시 쇼팽이 사용했던 플라이엘 피아노, 악보, 쇼팽 흉상 등 쇼팽과 상드와 관련된 것들이 전시되어 있다. 수도원에 막 도착하니 박물관 직원이 문을 닫으려고 했다.
"10분 후에 문을 닫아요."
"그래도 꼭 보고 싶어요."

* 쇼팽이 사용했던 플라이엘 피아노(좌)와 전시물(우)

쇼팽의 폴란드 생가를 서너 차례 방문한 적이 있던 나로서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꼭 박물관에 들어가고 싶었다. 4유로를 내고 수도원의 긴 복도를 따라 4호실로 들었다. 수도원이라는 말에 폐쇄된 장소가 먼저 떠오르지만 입구 반대편에는 녹음이 짙은 정원이 있다. 여기서 바라보면 좌우 봉우리 사이로 저 멀리 팔마와 지중해가 눈에 들어온다. "폐쇄 속에서 이렇게 세상과 통하구나"라는 강한 느낌을 받는 순간이었다.

* 녹음 사이로 저 멀리 팔마가 눈에 들어온다

싱싱한 감, 귤, 무화과에 침이 절로 꿀꺽
수도원 앞 광장에는 남녀들이 쌍을 지어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수도원 앞 작은 공원을 산책한 후 골목길을 따라 전망대에 이르렀다. 사방으로 둘러싼 산의 중턱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주로 과일이나 열매 농사다. 올리브, 아몬드, 귤, 레몬 등등... 현관문 돌벽에는 성인들의 모습을 담은 타일이 붙어져 있거나 꽃이 피어있는 화분이 붙여져 있다. 거리 입구엔 수백 년이나 되는 거대한 기둥을 지닌 올리브 나무가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 돌벽에 붙어져 있는 성인 모습을 담은 타일(상)과 꽃화분(하)

딸아이는 바르셀로나에 살고 있는 카탈루냐 에스페란토 친구과 열심히 인터넷 대화로 정보를 얻도 있었다. 무슨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무슨 과자가 좋다든지...

세워둔 차로 돌아가는 길에 작은 규모의 노천시장이 아직 열려 있었다. 감, 귤, 무화과, 포도 등이 발길을 잡았다. 이 모두 리투아니아에서는 자라지 않는다. 귤과 무화과를 샀다. 맛은 현지에서 직접 생산된 것이라 리투아니아에서 사서 먹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요르카에서 귤을 먹은 후 리투아니아로 돌아와 한 동안 귤을 사서 먹을 수가 없었다. 

* 현지에 직접 생산된 귤과 무화과를 먹으니 정말 달고 맛있었다

발데모사를 떠나 우리 가족은 남서에서 북동으로 이어져 마요르카 섬의 북쪽 지형 뼈대를 구축하고 있는 트라문타나 산맥을 넘어 서쪽 해변으로 향했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2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