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 해당되는 글 54건

  1. 2019.12.01 몰타 여행 - 몰타에도 한국 당근 샐러드가 있다니
  2. 2019.11.28 몰타 여행 - 세인트폴만 해변 산책로에 국기 벤치들
  3. 2019.11.26 몰타 여행 - 므디나 해돋이 투어는 황홀함 그 자체다 (2)
  4. 2019.11.26 몰타 여행 - 말라버린 꽃줄기도 운치로운 블루라군 코미노
  5. 2019.11.25 몰타 여행 - LOVE 조각상이 거꾸로 세워진 이유는? (2)
  6. 2019.11.20 몰타 모스타 원형 성당에 왜 거대한 폭탄이 있을까
  7. 2019.11.19 몰타 골든만 일대는 3욕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
  8. 2019.11.15 몰타 뽀빠이 마을에서 뽀빠이 흉내를 내보니
  9. 2019.11.14 몰타 거리 산책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다 (2)
  10. 2019.11.04 몰타에서 만난 달팽이 나무에 나를 반조해 본다
  11. 2019.04.01 숲에서 만난 군계일학 - 분홍 노루귀꽃
  12. 2018.11.01 금발녀, 웬일로 차 대시보드를 다 뜯어냈을까 (3)
  13. 2018.03.09 호주 - 모래 해변 걸으니 유럽 하얀 눈길을 걷는 듯 (2)
  14. 2017.03.22 한국어 수업 후 생일축하 노래에 숨은 진짜 이유가 (1)
  15. 2017.03.09 세계 여성의 날에 아내에게 복분자 묘목 선물
  16. 2016.12.23 페이스북 메신저 My Day 기능으로 멍청이 된 하루 (1)
  17. 2016.11.26 마요르카 - 아기자기 아름다운 해변이 곳곳에
  18. 2016.11.25 마요르카 - 얇은 비취 바다, 넓은 하얀 해변 알쿠디아
  19. 2016.11.25 마요르카 - 계단 365개 밟아야 닿는 포옌사 성당
  20. 2016.11.25 마요르카 - 10km 도보 이유는 한국인이라서 (2)
  21. 2015.12.29 딸의 감동 선물 - 한 달에 열 가지 좋은 일 할게요 (1)
  22. 2015.11.04 고구려 무용총 춤과 닮았다는 조지아 전통춤
  23. 2015.06.08 아버지 날에 받은 쪽지에 피곤함이 사르르 녹아
  24. 2015.04.13 배부르다는 외국인 처남에 알고보니 속았구나 (7)
  25. 2015.03.09 란자로테 - 검은 용암동굴에 감춰진 비취색 오아시스
  26. 2015.03.02 옆방에 있는 딸아이를 SNS로 설득시키다 (2)
  27. 2015.01.02 딸아이의 소박한 새해 포부에 잠시 뭉클해져 (4)
  28. 2014.11.21 화산재 웅덩이에 숨어 있는 희귀한 포도밭 (5)
  29. 2014.10.17 사춘기 딸이 꼽은 세계 8번째 불가사의 (3)
  30. 2014.06.26 실과 바늘로 자녀의 수와 성별을 점친다 (1)
가족여행2019. 12. 1. 03:44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몰타 여행 마지막 날 일출을 맞으면서 므디나를 둘려본 멋진 경험을 간직한 채 우리 가족은 202번 버스를 타고 우선 짐을 보관할 수 세인트줄리언스(Saint Julian's)으로 이동한다.

음료수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기 위해 우선 세인트줄리언스 밸유 슈파마켓(Valyou 위치는 여기)으로 들어간다. 이쪽저쪽 판매대를 둘러보는데 익숙한 샐러드가 눈에 들어온다. 당근을 얇게 채을 썰어 만든 샐러드다.   


이 샐러드의 이름이 "한국 당근"이다. 이 음식은 소련 시대 고려인들이 한국 김치 맛을 내기 위해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 먹은 데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소련의 한 구성원이었던 발트 3국 슈파마켓에서는 지금도 "한국 당근"을 쉽게 볼 수 있다. 싱싱한 샐러드로 팔기도 하고 유리병에 보존해 팔기도 한다.   

보통 당근을 채썰어 후 카르다몸(cardamom), 설탕, 마늘, 식용육, 식초 등으로 버무려서 만든다. 이미 숙소를 떠난 여행 마지막 날이라 아쉽다. 몰타에서 파는 "한국 당근" 샐러드를 맛 볼 수 있는 기회는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가격은 얼마일까? 350그램에 3.67유로로 약 4700원이다.


깨끗한 넓은 세인트줄리언스 해변 산책로를 따라 짐보관소로 향한다.


비행기 출발시간이 저녁 7시이라 우리는 짐을 보관하고 슬리마(슬리에마 Sliema)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짐보관소의 위치(구글 지도)는 세인트줄리언스만 호텔 1층에 있다.  


51 Censu Tabone Street라고 표기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된다.


무인 짐보관소다.


짐을 보관 후 홀가분한 우리는 이미 둘러본 해변 산책로 대신 골목길을 선택해 슬리마 쇼핑 지역 쪽으로 이동한다. 건축자재는 보통 누런빛 석회석이라 거리 분위기가 아주 단조롭다. 하지만 발코니와 현관문의 색깔은 집집마다 개성적인 색깔로 칠해져 있다.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인데 악기 상점이 하나 있다. 해외여행지에서 향토색이 짙은 악기를 사는 것이 아내의 취미다. 점원이 첫눈에 우리가 리투아니아에서 온 사람인 줄 알아보고 리투아니아어로 말을 건다. 아니, 어떻게 이를 수가!!!
"어떻게 리투아니아 사람이 이곳 몰타에서 악기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나요?"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이 몰타 사람이라서요."
"여기 여름철에 살기는 어때요?"
"너무 더워요."
"그러면 겨울철에는요?"
"중앙난방시설이 없어서 추워요."
"제일 여행하기 좋은 때는요?"
"9월에서 10월 중순까지가 좋은 듯해요."   


이번 몰타 여행에서 내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전선이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리투아니아 빌뉴스는 전선이나 통신선 등이 지하에 묻혀 있다. 그래서 도심에 전봇대가 없다. 몰타는 전선 등이 창문 위나 발코니 밑에 있는 벽에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걸어서 거리 구경을 하면서 쇼핑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Tower Road 위구글 지도)에 이른다.


아내와 딸이 쇼핑을 하는 동안 늘 그렇듯이 밖에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순식간에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곧 엄청난 비가 쏟아질 듯하다.  


다행히 쇼핑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 식당이 있을 때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식당 출입문에 떨어진 빗물이 유리를 바깥 풍경을 몽환적으로 만든다.   


하지만 살짝 열린 출입문 사이로 보이는 거리는 그야말로 급류가 흐르는 개울로 변해 있다. 우산도 없는데 저 비를 맞았더라면 한순간에 흠뻑 젖었을 것이다.    



폭우는 차츰 그친다. 우리는 슬리마에서 세인트줄리언스로 가서 짐을 찾아 인근에서 공항행 TD2 버스를 타고 몰타 국제공항에 도착한다.   


라이언에어 비행기로 3시간 20분만에 빌뉴스에 도착한다. 이렇게 우리 가족은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 여행을 다녀왔다. 몰타에서 9일을 머무는 동안 많은 곳을 둘러보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여러 곳이 있다. 그래서 다음을 기약해본다. 몰타 가족여행기(15편)를 쓰면서 자꾸만 비취색 아름다운 지중해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 동안 읽으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5편입니다. 
초유스 가족 몰타 여행기 1편 | 2편 | 3편 | 4편 | 5편 | 6편 | 7편 | 8편 | 9 | 10편 | 11편 | 12편 | 13편 | 14편 | 15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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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28. 18:35

10월 하순 9일 동안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자유여행인지라 숙소를 어디로 할 것인지 고민이다. 몰타는 관광업이 2018년 국민총생산에서 차치하는 비중이 27.1%이다. 2018년 섬나라 몰타를 방문한 관광객 수는 260만명이다. 이는 전체 인구의 다섯 배가 넘는 수이다. 몰타 전체를 통해 곳곳에 숙박시설이 갖쳐져 있다. 

7명이 8박을 지낼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한다. 첫날 숙박지는 쉽게 정했다. 다음날 호주에서 오는 큰딸을 맞이해야 하므로 공항 인근 키로코프(Kirkop)에서 묵었다[관련글: 몰타 호텔에 큐알코드로 입실하다]. 그 다음날부터는 가족여행을 마칠 때까지 한 곳에 있는다.

우리가 숙소를 선택할 때 고려한 사항이다.
1.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는 곳
2. 바다가 보일 것
3. 해수욕장 및 관광명소가 곳에 가까울 것
4. 7명이 지낼 수 있도록 방이 3개 이상일 것  
5. 가격이 좋은 곳

이렇게 해서 구한 숙소는 에어비앤비 아파트다. 위치는 세인트폴만(Saint Paul's Bay) 해변에 위치해 있다. 세인트폴만은 몰타에서 기독교가 시작된 곳이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사도 바울(폴 Paul) 일행이 이스라엘 카이사리아(Caesarea)에서 로마로 향하다가 난파를 당해 도착한 세인트폴섬이 바로 이 만에 있다. 

이런 이유로 몰타에서는 매년 2월 10일 성바울 난파축제가 열린다. 세이트폴만 해안선을 따라 부지바(Buġibba) 등 여러 마을이 한 도시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바다, 하얀 혹은 누런 건물, 하얀 구름, 비취색 바다가 한 편의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이룬다.


우리는 세인트폴만에 속해 있는 셈시야만(Xemxija Bay) 남쪽 해안에 묵는다.  


해안 아파트라 길이 가파르다. 


우리가 묵은 숙소를 참고 삼아 소개한다.
침실 1


침실 2


침실 3


욕실이 두 개이고 욕조와 더불어 샤워실도 마련되어 있다. 


거실


부엌


몰타는 전원 꽂개집(콘센트) 형대가 다르다. 미처 변환 꽂개집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숙소에 하나가 준비되어 있다.


발코니 두 개가 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세인트폴만이다. 청록색이 군데군데 바다에 수놓여 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야경이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해안이다. 돌로 가득 차 있다. 숙소 지하주차장에서 나가 쉽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관리인이 쓰레기 버리기에 주의를 준다. 플라스틱, 종이, 깡통 등 재활용 쓰레기는 회색 봉투(가게에서 구입)에 넣어야 하고 유리는 따로 버려야 한다. 쓰레기 수거 시간은 혼합쓰레기는 월요일-토요일 7시부터, 회색 봉투는 화요일과 금요일에만 10시부터, 유리 수거는 매달 첫 째주 금요일 7시부터다. 수거 시작 1시간 전에 주차장 문 앞에 내놓는다.  


쓰레기 봉투들이 문 앞에서 청소차를 기다리고 있다.   


셈시야만(Xemxija Bay) 해변도로에서 바로보는 세인트폴만이다.


셈시야만 해변 산책로 야자수 사이에 놓여 있는 벤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벤치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기로 칠해져 있다.


붉은색 바탕에 파란색 십자가 그리고 흰색선 - 노르웨이 국기다.


파랑색 노랑색 빨강색 루마니아 국기가 보인다.


노랑색 초록색 빨강색 리투아니아 국기다.


국적이 리투아니아라 리투아니아 국기 벤치에 앉아본다. 대한민국 국기를 찾아보았으나 아쉽게도 없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4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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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26. 18:05

10월 하순 9일 동안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 마지막 날 호주에서 온 큰딸은 비행기 출발시간이 아침 9시고 우리는 저녁 7시이다. 숙소 체크아웃 마감시간이 오전 10시다. 그래서 일단 큰딸이 공항 가는 택시를 같이 타고 나온다. 

공항까지 가서 큰딸을 배웅한 후 여행가방을 짐보관서에 맡기고 도시을 구경하러 나올지 아니면 중간에 먼저 내려서 므디나(Mdina)를 구경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진다. 몰타는 일광절약시간제(10월 마지막 일요일 1시간이 앞으로 당겨진다)를 실시하고 있다. 아침 6시 택시 안에서 여명을 만난다.   


달리는 택시 앞유리를 통해 여명이 점점 더 강렬한 색채로 유혹한다. 급기야 택시가 언덕 위 므디나 옆을 지나갈 때 운전사에게 내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택시에서 큰딸과 급하게 작별한 후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일출광경을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걷는다. 언제 이런 황홀한 일출광경을 보았던가?         


새들도 일어나 해맞이 축가를 부르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지평선 바로 위 짙은 먹구름 사이에 해가 나올 정도로 작은 구멍 하나가 뻥 뚫여 있다.   


그리고 찰나 후 그 구멍 사이로 빨갛게 익은 동그란 홍시 같은 해가 쏙 얼굴을 내민다.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눈에서 온몸으로 퍼진다.


이른 아침이라 므디나 도심으로 가는 거리에는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다. 므디나는 몰타섬 내륙 중앙에 위치해 있다. 면적이 0.9평방킬로미터고 인구가 200여명이지만 한때 몰타의 수도였다. 해발 185미터로 몰타섬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점에 있어서 섬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형성된 이 도시는 고대 로마를 거쳐 870년부터 아랍이 지배한다. 이때 지금의 이름 므디나(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뜻)를 받는다. 그 이후 1091년 노르만 왕조, 1282년 스페인 아라곤 왕조, 1530년 요한 기사단, 1798년 프랑스, 1800년 영국의 지배를 차례로 받게 된다. 수도가 발레타로 옮겨진 후 므디나는 "조용한 도시"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노르만과 바로크 건축이 잘 혼합되어 있고 또한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므디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므디나로 들어가는 입구다. 방어용 해자 위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여행가방 끌고 고대와 중세 도시 므디나 안으로 들어간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른쪽에 형벌도구가 보인다. 지하감옥으로 안내한다.    

좁은 골목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므디나가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설계된 도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뒤에서 밀고 오는 관광객들이 없으니 우리는 수백년 된 건물들을 만지면서까지 찬찬히 살펴보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군데군데 보이는 현관문 앞 화분들은 누런색 석회석 벽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지루함을 잠시 잊게 해준다.   


현관문 앞 화초 정원이다.


성문 입구 반대편에 있는 또 다른 출입문 그리스인 문(Greeks Gate)을 통해 밖으로 나가본다. 석벽에 막혀 더 이상 뻗을 수 없게 되자 나뭇가지가 자신을 굽혀 위로 올라간다. 순수추단 (順水推丹)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물은 뭔가에 부딪히면 돌아서 흐르는 속성이 있다. 순수추단 (順水推丹)은 물길에 따라 노를 저어라라는 뜻이다.


벤치, 창문 그리고 부겐빌레아 두 그루가 사진을 찍어라고 마치 설정을 해놓은 듯하다.



쇠창살 너머에 보이는 창문보(커튼)의 십자가에서 요한 기사단 시대가 엿보인다.
 

성벽 건물을 따라 만난 작은 광장(위치는 여기)이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광장에서 건물 벽을 가득 메워 담쟁이처럼 벽에 붙어서 올라가는 부겐빌레아가 감탄을 자아낸다.


아침이라 아직 식당 문이 닫혀 있다. 배달된 빵이 문 손잡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설마 배고픈 우리를 위해 내놓은 것은 아니겠지... ㅎㅎㅎ 아침커피 마시면 딱 좋을 시간인데 아쉽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니 아침안개가 걷히는 저 멀리 발레타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관광객이 전혀 없는 고요한 거리를 따라 발걸음을 유명하다는 바울 대성당 쪽으로 향한다. 


바울 대성당은 12세기에 세워졌고 1693년 시칠리아 지진으로 심하게 손상되었다. 몰타의 바로크 건축가 로렌조 가파(Lorenzo Gafà 1639–1703)의 설계에 의해 1696-1705년 다시 지어졌다. 이 대성당은 가파의 대걸작으로 손꼽힌다. 대성당 앞 광장에는 채소상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바울 대성당 정문 위에 있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문장은 지금껏 몰타에 있는 여러 성당에서 보았다. 붉은 색은 그리스도의 열정, 백마는 사도 요한의 백마 탄 그리스도, 달은 어둠 속 빛, 노란 장미는 동정녀 마리아를 뜻한다. 라틴어 좌우명 Fidelix Et Verax는 충실하고 진실함을 뜻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는 몰타 찰스 시클루나(Charles Scicluna) 대주교의 문장이다.


이른 시간이라 대성당 입장이 불가하다. 그런데 공사를 하는 인부들의 출입을 위해 문이 살짝 열려 있기에 들어가 본다. 북유럽 바로크 성당에 익숙해진 내 눈은 이 대성당의 화려함과 장엄함에 놀라 그저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다.     


바닥 대리석에도 각양각색의 문장들이 새겨져 있다. 아직 성당 개방시간이 아니라서 찬찬히 둘러볼 수 없음이 못내 아쉽다.  



광장을 벗어나자 수녀들이 나오는 성당이 눈에 띈다. 사방이 석회석 건물뿐이다.  


가톨릭 가르멜회 성모영보 성당이다. 이 성당 또한 화려한 바르크 조각상과 그림으로 장식 되어 있다. 1695년 완공되었다. 1693년 지진으로 바울 대성당이 크게 파괴되자 대성당 기능을 잠시 하기도 했다.


성모영보(동정녀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을 뜻함)을 묘사하는 천장 그림이 압권이다.


므디나의 중심거리엔 여전히 행인들이 안 보인다. 


이제 2시간(6시 20분 - 8시 20분) 동안 므디나 산책을 마치고 모녀가 성문 밖으로 나가고 있다.


공항 가는 택시 안에서까지 망설이던 므디나 투어를 이렇게 마친다. 정말 오랜만에 맞이하는 일출광경은 황활함 그 자체다. 특히 높은 언덕이 거의 없고 보통 구름에 가려 일출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북유럽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참으로 환성적이고 신비로운 광경을 느끼게 한다.

이른 아침 시간대라 관광객이나 행인이 전무한 고대와 중세 도시 므디나 골목길을 우리가 통째로 전세를 얻어서 산책을 한 듯하다. 앞으로 낯선 관광지에 가면 이렇게 일출과 더불어 아침 일찍 둘러볼 기회를 많이 가지는 것에 우리 가족은 서로 공감을 한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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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진 여행기 잘 보고 갑니다^^
    동화속에나 나올 법한 마을이 너무 예뻐요^^

    2019.11.26 23:1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다시 가고 싶은 므디나입니다. 정말 우뚝 솟은 언덕 위 동화 속 도시입니다.

      2019.11.27 00:05 신고 [ ADDR : EDIT/ DEL ]

가족여행2019. 11. 26. 00:53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종여행을 다녀왔다. 숙소가 몰타섬 세인트폴만에 있다. 하루 시간을 내어서 고조(Gozo)섬과 코미노(Comino)섬을 다녀오려고 했다. 그런덴 몰타섬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여행기간 10일도 부족하다. 

가족여행을 마치기 하루 전에야 블루라군으로 아주 유명하다는 코미노섬을 택한다. 다행히 이날은 아침부터 아주 쾌청하다. 여기서 내려서 오른쪽으로 쭉 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고조섬행 선착장에서도 배가 운행되고 있다. 비취색이 얼룩져 있는 저 푸른색 바다 너머가 바로 코미노섬이다. 사람이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다면 저 산책하는 한 쌍처럼 걸어가고 싶다.       


왕복 승선권이 1인당 13유로다. 약 5km 거리를 왕복 이동하는 비용으로는 너무 과하다. 식구가 네 명이니 더 더욱 비싸다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ㅎㅎㅎ  


20-30명이 탈 수 있는 배는 만석이 되어 엄청난 속도로 물살을 거세게 가르면서 코미노섬을 향한다. 섬 주변 절벽에 이르자 배는 속도를 늦추기 시작한다.


높은 절벽은 몰아치는 파도에 못 이겨 제 살을 내어주어 뻥 뚫린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바닷물은 검푸른 옷을 벗고 눈부실 정도로 빛나는 비취색 옷을 입고 있다. 


사람들은 이 절경에 감탄하면서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 순간 왕복 승선권 13유로가 비싸다는 생각이 싹 가버린다. 와, 승선권이 아깝지가 않구나!!!    


절벽 절경 여러 곳을 안내한 후 배는 다시 속력을 낸다. 마지막 절벽을 돌아서 선착장으로 향하자 바닷물 색깔이 믿을 수 없을 만큼 확연히 다르다.         


선착장에 도착하자 시선을 사로잡는 안내판이 있다. 바로 내리쬐는 햇볕을 가리기 위한 해변양산과 해변의자를 임대하는 안내판이다. 공식 최대 가격이 각각 5유로다.   

  
안내편을 지나면서 해변의자가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좌우를 둘러봐도 해변은 모래가 아니라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해변수건을 깔 수 있는 공간을 찾기도 힘들다. 약간 평평한 바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해변의자는 참 요긴하겠다. 아, 그래서 장사가 되는구나!   


선착장 좁은 모래해변에는 벌써 앉을 자리가 없다. 수정처럼 저 맑은 물에 나도 몸을 담그면 수정처럼 깨끗해질 듯한 기분이 든다. 


밝은 비취색빛을 발하면서 찰랑거리는 코미노섬 블루라군의 진면목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낀다. 아직 주인을 못 만난 해변의자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다.   



이날은 10월 마지막일이다. 여전히 블루라군에는 수상안전요원들이 배치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훌러덩 옷 벗고 물감 풀어놓은 듯한 저 잔잔한 바닷물로 첨벙 뛰어들고 싶다. 꿈 속에 와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얕아 보이지만 나중에 수영하러 들어가니 해변을 조금만 벗어나도 바닥에 내 발이 닿지 않는다. 


하얀 구름 밑에 있는 곳이 고조섬이다. 같은 바닷물인데도 물 깊이와 바닥 내용물에 따라 어떻게 저렇게 신비롭게 색이 달라질 수 있는 지에 새삼스럽게 놀란다.  


우리는 수영 대신 먼저 언덕 산책을 하기로 한다. 


해안을 따라 산책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절경에 눈이 팔려 자칫 실족하면 큰 일이 나기 때문이다. 특히 해안 절벽 바위 위로 함부로 올라가는 가서도 안 된다. 오랜 풍화 작용으로 어떤 바위는 약해서 쉽게 부서지거나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해안 절벽을 벗어나 언덕 위로 향한다. 사방천지에 돌덩이뿐이라 교목들이 자랄 수가 없겠다. 덤불 식물들이 돌덩이를 덮고 있다.   


돌덩이 사이로 야생화가 피어오르고 있다. 가냘픈 꽃의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롭구나!


풍화로 흙이 된 자리에 여기저기 또 다른 생명이 돋아나고 있다. 새싹을 밟지 않도록 발밑을 살피면서 조심조심 걷는다.


다 말라버린 꽃줄기가 아직 남아 있다. 어떤 아름다운 꽃이 저 말라버린 꽃잎에 피어 있었을까...


말라버린 꽃줄기를 비집고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짙은 녹색 잎이 벌써 제법 솟아나 있다. 


말라버린 꽃줄기도 파란 하늘과 어울려 운치롭구나!   



바위 위에 낀 오렌지색 둥근 이끼도 신기하다.    


드디어 높지 않는 언덕 정상에 올랐다.  


주위에 부탁할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가족 사진을 찍어본다. 


이제 저 아래 블루라군으로 향한다.


비취색 블루라군에 들어가 우리 가족도 잊지 못 할 추억거리를 만든다.


선착장에 탑승객을 기다리는 배에도 "호루스의 눈"이 장식되어 있다[관련글: 몰타 고기잡이 배에 그려진 눈 한 쌍의 의미는].


오후 골든만 여정으로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블루라군을 이제 뒤로 하고 떠난다.


다시 검푸른 파도를 타고 몰타섬으로 돌아온다.


2시간 머문 코미노섬이지만 블루라군의 비취색 아름다움과 척박함 속에서 솟아나는 초록색 새싹의 생명력은 오래오래 생생하게 기억에 남을 것이다. 다시 간다면 하루 종일 저 섬에서 놀고 싶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2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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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25. 15:56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드디어 몰타의 수도 발레타(Valletta)로 가는 날이 왔다. 이날은 처조카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침 식사 후 공항으로 출발하는 시간에 맞춰 우리 가족은 버스를 타고 발레타로 향한다. 비가 그치자 하늘에 뜬 무지개가 우릴 전송한다. 


발레타는 1565년 오스만 제국 군대와 몰타 기사단 사이에 벌어진 공방전에서 승리한 몰타 기사단 총단장(Grand Master) 장 파리조 드 라 발레트(Jean Parisot de La Valette)의 명령에 의해 1566년 세워진 도시다. 도시명은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면적이 0.8평방킬로미터이고 인구가 6천여명으로 발레타는 유럽연합에서 가장 작은 수도다.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과 이탈리아의 공습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지만 도심에는 몰타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과 관련된 건축물,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등 건축 양식이 즐비하다. 발레타는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는 버스 정류장 사리야(Sarrija)에서 내려 사자 분수를 지나 크루즈 정박항이 있는 워터프론트(Valletta Waterfront) 쪽으로 이동한다. 파란 하늘에 파란색을 칠한 발코니와 창문덮개가 시선을 끈다.  


평온하기 그지 없는 바다에 엄청난 규모의 크루즈 여러 대가 여기저기 정박되어 있다. 역시 몰타는 관광이다. 몰타 전체 인구가 50만명인데 2018년 이 섬나라 몰타를 방문한 관광객수는 260만명이다. 2018년 국민총생산에서 관광이 27.1%를 차지했다. 2028년에는 33%를 계획하고 있다니 한마디로 몰타는 정말 관광으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정원을 지나 이제 발레타 도심으로 향한다. 오전인데도 관광객을 실은 마차들이 연이어서 달린다. 
"우리도 저거 타고 둘러볼까?"
"아니." 가족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반대한다.
"왜? 타고 구경하면 편하잖아?"
"땀 흘리는 말을 좀 봐! 사람이 편하기 위해 말을 고생시키는 것은 우리 가족한테는 안 맞아."
"그래. 우리는 발로 걸으면서 찬찬히 둘러보자."  


발레타 도성 입구 광장에 1959년 세워진 청동 분수가 있다. 고려청자의 비취색을 떠올리게 한다. 이 트리톤 분수(Tritons' fountain)는 몰타에서 근대주의 양식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다. 트리톤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그의 아내 암피트리테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습이다.     




발레타 도심 입구다. 거대한 성벽 두께뿐만 아니라 바둑판처럼 곧게 뻗어 있는 거리를 통해 발레타가 침략에 대비해 만든 계획도시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왕립 오페라 극장의 흔적이 보인다. 1866년 완공된 이 극장은 1942년 공습을 받아 훼손되어 철거되었다. 현재는 오페라 극장의 기둥 및 테라스 등 일부만 남아 있고 이 자리에 퍄짜 테아트루 랼(Pjazza Teatru Rjal) 극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 극장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쭉 가면 어퍼바라카(Upper Barrakka) 정원이 나온다. 


관광객들이 오전인데도 입구 반대편에서 마치 밀물처럼 밀려오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우릴 유혹한다. 


성 요한 대성당에 도달한다. 입장료가 10유로인데도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줄이 너무 길다. 16세기 지어진 이 성당은 17세기 바로크 양식 내부 장식으로 유명하다. 성당 앞 오른쪽에 있는 흉상이 눈길을 끈다. 

발레타의 수호성인인 비오 5세 로마 가톨릭 교황(Pope Pius V, 1504-1572 재위 1566-1572)이다. 그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를 교회 박사로 선포하고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반종교개혁과 라틴식 로마 전례를 표준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또한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맞서 가톨릭 국가들이 신성 동맹을 맺도록 했다. 특히 몰타의 요새 성벽을 건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발레타의 중심에 있는 성 조지 광장이다. 그 많던 관광객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텅빈 광장만이 우릴 맞이한다.   


우리도 중앙 거리인 리퍼블릭(Republic) 거리를 벗어나 오른쪽 좁은 골목을 따라 로어바라카(Lower Barrakka) 쪽으로 향한다. 여기도 누런색 석회석 건물들이 보는 사람들이 숨 막힐 정도로 따닥따닥 붙어 있다. 하지만 이 좁은 골목에 집집마다 주황빛 현관등이나 가로등 조명이 비치는 밤 풍경도 참으로 볼만 하겠다. 숙소가 세인트폴만에 있어서 야경을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건물과는 달리 발코니와 현관문은 개성이 넘친다. 비취색 치마를 입은 요가일래가 같은 색의 건물벽을 보고 좋아한다. 나도 내 옷과 같은 색의 현관문 앞에서 자세를 취해 본다. 


순간포착이다.
할머니 한 분이 3층 창문에서 줄을 이용해 쓰레기를 내리고 있다. 그런데 바닥에 내려진 쓰레기 봉투에서 줄이 빠지지 않는다. 이를 보자마자 요가일래가 얼른 달려가 줄을 빼내 준다. 몰타는 현관문마다 쓰레기가 놓여 있다. 요일따라 버리는 쓰레기 내용물이 다르다. 거동이 불편한 연세 드신 분들이 이렇게 줄을 이용해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추모의 종이다. 세인트크리스토퍼 보루(바스티온 Bastion)에 세워져 있다. 세계 2차 대전 몰타 공반전(1940-1943) 중 희생당한 몰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몰타는 지중해 군사 요충지다. 추축국(독일과 이탈리아)의 포위, 공격 및 폭격에도 연합국이 승리한 전투다. 당시 군인과 시민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 수만 채가 파괴되었다. 


이 종은 1992년 몰타의 조지 십자장 수상 50주년을 맞아 엘리자베스 2세가 제막했다. 추모의 종 옆에 있는 거대한 청동 와상은 희생자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청동 기념물 하단 동판에는 영국 시인 로렌스 비니언(Laurence Binyon 1869-1943)의 "추락한 자를 위하여"(For the Fallen)의 싯구가 적혀 있다. "At the going down of the sun and in the morning we will remember them"(해가 질 때 그리고 아침에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조석으로 누구를 기억하는가를 잠시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곳은 지중해와 세인트엘모 요새, 리카솔리 요새, 세인트안젤로 요새 등을 두루 구경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자리다. 도로 너머에 로어바라카(Lower Barrakka) 정원이 보인다.


이 정원은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여러 화초들이 잘 가꾸어져 있다. 가운데 신고전주의 양식의 기념물이 솟아 있다. 1810년 지어진 알렉산더 볼(Alexander Ball 1757-1809) 기념물이다. 그는 몰타가 영국 지배를 받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군인이자 외교관이고 초대 몰타 지도자이다.



이탈리아 화가이자 조각가인 우고 아타르디(Ugo Attardi 1923-2006)의 조각품 에네아(Enea)가 세워져 있다. 마치 자기 나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나뭇가지로 가린 듯하다... ㅎㅎㅎ  


정원 테라스다. 벽에는 기념판 두 개가 붙어 있다. 하나는 1956년 헝가리 혁명의 영웅들과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968년 프라하의 봄 4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의 통일을 기념하는 판이 언젠가 저 벽에 걸릴 날이 온다면 참으로 좋으리라...    


올리브 나무다. 우리가 지금 지중해에 있음을 가장 확연히 느끼게 해 준다.


로어바라카 정원에서도 여기저기 좋은 전망을 즐길 수 있다. 크루즈 오른쪽에 어퍼바라카 정원이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저기까지 되돌아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우리는 세인트엘모만(St. Elmo Bay) 쪽 성벽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바다 건너 슬리에마(슬리마 Sliema)가 보인다. 발레타와 가까워 호텔,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가게 그리고 쇼핑몰 등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우리 집 여자 세 명은 이구동성으로 저기가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아주 좋아하는 곳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안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발레타에서 배로 이동한다. 배타는 곳의 위치는 여기다. 7일짜리 교통카드가 통하지 않아서 따로 1.5유로 승차권을 구입한다. 


발레타가 시야에서 점점 넓어진다. 저 솟아 있는 탑 두 개가 들어간 모습이 발레타의 대표적인 지표(랜드마크 landmark 地標)다. 뽀족한 탑은 영국 애들레이드(Adelaide) 왕비가 1839년 세운 영국 성공회 바울 성당이고 둥근 탑은 1570년 지어진 가톨릭 가르멜 산의 성모 성당이다.



슬리에마로 넘어오자 우리는 꼬르륵 소리가 진동하는 배를 달래기 위해 식당부터 찾아 나선다. 음식 하나와 음료수 혹은 맥주나 포도주 한 잔을 1인당 10유로로 점심을 제곻하는 트라토리아 카르디니(Trattoria Cardini) 식당을 선택한다. 식당 위치는 여기다. 식구 모두 각자 다르게 시킨 음식에 대만족이다. 음식 맛만큼이나 남자 종업원이 잘 생기고 친절하다고 두 딸이 설렌다.


이 주변에는 모래사장 해변이 없다.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깎여 평평하게 다듬어진 석회석 위에서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일광욕이나 해수욕 뒤 모래알을 털어낼 필요가 없어서 좋겠다. 


슬리에마에서 세인트줄리언스(산질리안 St. Juliana's)까지 해변따라 산책로가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넓직하고 깨끗하다. 의자에 앉아 쉬거나 일광욕을 하거나 아침 저녁에 달리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지붕 위 고양이 한 마리가 세인트줄리언스만(St. Julian's Bay)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엑사일스만(엑사일스 베이 Exiles Bay)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해수욕과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세인트율리언스다. 발루타만(발루타 베이 Balluta Bay)은 비취색 바다가 유난히 돋보인다.   


대문자 러브(LOVE) 조각상으로 유명한 스피놀라만(스피놀라 베이 Spinola Bay)이다. 그런데 글자가 거꾸로 세워져 있다. 여기도 사랑은 자물쇠다. 아기자기한 스피놀라만 등을 가진 세인트율리언스가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장소임을 쉽게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저 거꾸로 된 글자가 맑고 잔잔한 비취색 바닷물에 반사된다면 똑바로 보이겠다. 도대체 무슨 의도일까? 뒤엉키고 본말전도된 마음이 아니라 깨끗하고 추호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사랑을 봐야만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을 전하는 것일까...       


그렇게 화창한 날씨였다. 그런데 갑자기 저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와 여전히 햇빛이 비추고 요트와 배가 둥둥 떠있는 스피놀라만에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바로 옆에 피자가게가 있다. 점심으로 배가 부르지 않았더러면 한 조각 먹고 싶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골든만 일몰 구경을 위해 다시 나간다. 그런데 골든만 쪽 하늘은 짙은 비구름이 보루(바스티온 bastion)를 형성해 진을 치고 있다.  


결국 숙소 바로 앞 바다에서 부모는 수영놀이를 하고 작은딸은 모델놀이를 한다.


이날은 식구들이 식탁에 모여 스마트폰을 내려 놓고 하루 여행을 각각 정리해 본다. 
큰딸: 발레타 거리의 인도가 너무 좁았다. 점심 식당 종업원이 참 친절했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폐가가 수두룩했다. 중심가를 제외하곤 건물들이 웬지 빈약해 보였다.
작은딸: 사람들의 표정과 주변의 경관을 볼 수 있는 버스 이동이 좋았다. 추모의 종에서 내려다 보이는 잔잔한 바다가 참 좋았다. 
아버지: 관광객으로 넘치는 발레타에 가니 정말 우리가 여행하고 있구나를 느꼈다. 3층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방법이 인상적이었다. 배 타고 슬리에마로 이동해 해변로를 산책한 것이 좋았다.
어머니: 발레타에 가본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1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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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너무 재밋게 보고가요 몰타 여행기 11편다 읽었어요~ㅎㅎ제가 몰타에서 살다와서 오랫만에 기억 떠올리면서 읽었던거 같아요~~근데 10년전에 갔었으나 변한건 없는거 같아요ㅎㅎ시간이 멈쳐버린도시니까요ㅎㅎ파쳐빌 근처에서 살던 곳이라서 더욱 정감이 가는포스트에요~~

    2019.11.23 08:3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몰타에 또 가고 싶어요. 10일 여행했는데 안 가본 곳이 아직 많아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19.11.23 16:39 신고 [ ADDR : EDIT/ DEL ]

가족여행2019. 11. 20. 06:08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에서 비를 맞은 후 점심 무렵에 숙소로 돌아온다. 비 덕분에 숙소에서 점심을 해먹게 된다. 오후가 되자 조금씩 날씨가 맑아진다.   

아직 빗물이 남아 있는 발코니에 날아든 개미가 허위적거린다. 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저 개미들을 어찌할꼬? 부엌으로 가서 라면 젓가락을 가져와 건져 주니 날아간다.



점심 후 원형 성당으로 유명한 인근 모스타(Mosta)로 향한다. 몰타섬 북서부 내륙에 위치한 모스타는 인구 2만명 도시다. 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중심가에서 벗어난 버스 정류장에서 미리 내린다. 도로도 좁고 인도도 좁다. 가로수도 없는 거리에서 더욱 돋보이는 건물 한 채가 눈에 확 띈다. 2층 창문과 지붕에 화초가 무성히 자라고 있다.


도심에 있는 원형 성당 앞 작은 공원이다. 몇 해 전 영국 런던에서 본 것과 같은 붉은색 공중전화 부스는 몰타와 영국과의 관계를 쉽게 떠올리게 한다. 몰타는 1800년에서 1964년까지 영국 지배를 받았고 지금도 영연방에 속해 있다.  


그 유명하다는 로마 가톨릭교 원형 성당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아 더욱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다. 정식 이름은 성모 승천 성당(Basilica of the Assumption of Our Lady)이다. 모스타 로툰다(Rotunda of Mosta) 혹은 모스타 돔(Mosta Dome)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당은 유럽에서 로마 베드로 성당과 런던 바울 성당에 이어서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둥근 천장(돔)을 가지고 있다. 성당 규모를 살펴보면 외부 지름이 54.86미터, 정면에서 후면까지 길이가 74.37미터, 벽두께가 8.28미터, 바닥에서 천장 전등까지 높이가 56.38미터다. 


모스타 인구가 늘자 1833년부터 새로운 성당을 짓게 되었다. 기존 성당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둘레에 이 원형 성당을 지은 것이 참으로 특이하다. 28년에 걸쳐 새로운 성당이 완공될 무렵 1860년 기존 성당을 철거했다. 로마 가톨릭교에서 아주 중요한 세계성체대회가 1913년 이곳에서 열렸다.       


성당 앞에는 낯익은 동상이 보인다. 천국의 열쇠를 잡고 있는 베드로(왼쪽)와 책과 (부서져 일부만 남은) 검을 잡고 있는 바울(오른쪽)이다. 


성당 정면 벽에는 사도 네 명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설명하자면 가죽을 벗기는 칼을 잡고 있는 바르톨로메오, 긴 곤봉을 잡고 있는 야고보(소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라틴 십자가(아래쪽이 위쪽에 비해 길쭉한 장축형 십자가)을 잡고 있는 필립보 그리고 어린 천사를 옆에 두고 있는 마태오다. 


성당 앞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 작은딸이 자기 용돈으로 가족 네 명 입장권(1인당 2유로)을 구입해 들어오라고 한다. 아주 넓은 성당 안에 때마침 장례 미사가 열리고 있다. 우리도 조용히 앉아 기도에 동참한다. 장례식 끝무렵 팝송 "You raise me up"이 울려펴진다. 



첫째는 넓은 공간에 감탄한다. 둘째는 하늘색 벽과 벽화에 감탄한다. 그리고 셋째는 금색 무늬를 한 둥근 천장에 감탄한다. 성당 내부에 지붕을 받쳐 주는 기둥이 전무하다. 천장 내부 지름이 35.97미터다. 외부 높이는 59.74미터이고 내부 높이는 성당 외부 지름과 같은 54.86미터다.


1유로를 넣고 촛불을 켜고 기도한다.


의자 여섯 개를 일렬로 함께 묶여 놓았다. 미사 중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막을 수 있어서 좋을 듯하다.


성당 가운데 제단이 보인다. 


이 제단 그림은 성모가 승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1678년 몰타의 바로크 화가 스테파노 에라르디(Stefano Erardi 1630-1716)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대가 인상적이다. 강대 혹은 설교단은 설교 등을 위해 만들어진 단이다. 보통 성당 중앙칸 벽면에 붙어 있거나 가까이에 있다. 그런데 여기는 원형 성당이라서 그런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조개 껍질에 물을 담아 세례하는 모습이다. 이 조각상을 보고 있으니 기독교에서 조개 껍질이 세례를 상징한다는 말이 쉽게 기억된다.  


성당 안에 왜 머리에 뿔이 두 개 달린 조각상이 있을까? 미켈란젤로의 모세 조각품이 떠오른다. 뿔 달린 모세다. 미켈란제로는 성경에 근거해 뿔을 넣어 조각했는데 이는 히브리어의 '빛을 뿜다, 광채가 나다'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성모승천상은 1868년 처음 조각되었고 1947년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성당 내부 관람 중 안내표시판은 자꾸 폭탄 박물관을 가르킨다. 성당에 웬 폭탄 박물관이 있을까? 궁금증이 생긴다. 내용인즉 이렇다. 몰타는 군사적 요충지다. 제2차 대전에서 몰타 공방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영국이 포함된 연합국 군대와 독일과 이탈리아가 포함된 추축국 군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42년 4월 9일 16시 40분 독일 전투기들이 폭탄을 투하했다. 


폭탄 3개가 성당으로 떨어졌다. 이 중 500kg 폭탄 한 개가 천장을 뚫고 성당 가운데 바닥으로 떨어졌다. 당시 성당 안에서는 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저녁 미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폭탄은 폭발하지 않았다. 성당 옆에 떨어진 폭탄 두 개도 불발탄으로 남았다. "1942년 4월 9일 폭탄 기적"이 일어났다. 성당에 있던 사람들 중 사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 불발탄은 해체되고 몰타섬 서해안 바다에 버려졌다. 현재 전시되어 있는 폭탄은 복제품이다. 


아직 날이 밝기에 모스타 도심 거리를 돌아다녀 본다. 역시 여기도 누런색 석회석 건물이 대부분이다. 


건물벽 주로 현관문 옆에 붙어 있는 성물(聖物)은 경건함을 자아낸다[관련글:  몰타 거리 산책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끼다].


왕복 각각 1차선이다. 도로변 인도에 자리잡은 주유소 풍경이 몹시 낯설다. 어느 나라에서는 안전상 이유로 허가를 받을 수 없을 텐데 말이다. 도시공간 구조상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시간이 지나니 배가 출출하다. 아내는 몰타에 와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를 먹어보자고 한다. 바로 파스티찌(pastizzi)다. 


모스타 제과점에서 1개당 50센트다. 치즈나 으깬 고기나 완두콩 등이 안에 들어 있다. 나는 완두콩 파스티찌를 고른다. 바삭바삭하고 아주 고소하다. 이렇게 맛있는 것을 식구당 하나씩만 사 준 아내가 약간 원망스러워진다. 이거 먹으러 다시 몰타에 가보고 싶은 충동심이 일어난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10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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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19. 15:45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몰타에서 10일 동안 체류하면서 세 번 다녀온 곳이 있다. 바로 황금빛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골든만(골든베이 Golden Bay) 일대다. 이곳에 처음으로 간 날은 여행 5일째다. 그런데 아침부터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 여행 중 그것도 해외여행 중 만나는 폭우는 늘 반갑지가 않다.


첫 번째 방문 - 황금색 모래사장 골든만 Golden Bay
다행히 11시경 우리 숙소가 있는 세인트폴만 쪽은 날씨가 개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골든만 쪽은 여전히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해가 반짝이는 쪽이 뒤로 점점 멀어지니 앞에는 푸른 채소밭 시골 모습이 나타난다. 곧 이어 골든만에 도착한다. 눈앞에 펼쳐친 해변은 밝은 진흙색 멜리하 해변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몰타에서는 아주 폭이 넓은 황금빛 모래사장이다. 아, 왜 여기를 골든만이라고 부르는 지를 단번에 알게 된다.   


이렇게 흐린 날에도 바다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햇빛이 비치는 저 모래사장과 바닷물은 얼마나 아름다울 지 머리 속에 쉽게 그려진다. 


해수욕을 하고자 하는 일행을 모래사장에 남겨 두고 작은딸 요가일래와 둘이서 절벽 너머의 풍경이 궁굼해서 올라가보기로 한다. 도중에 서로 사진을 찍어 준다.


이 척박한 절벽에 향신료로 사용되는 고수를 만나니 신기하다.


골든만 왼쪽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망루다. 1637년 세워진 아인투피하(아이 투피에하 Għajn Tuffieħa Tower 발음 ayn too-fee-ha)이다. 아인투피하는 몰타어로 '사과눈'이라는 뜻이다. 망루를 기점으로 오른쪽은 골든만(골든 베이)이고 왼쪽은 아인투피하만(아이 투피에하 베이 Għajn Tuffieħa Bay)이다. 


이 망루에서 왼쪽으로 내려다 보면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아인투피하만이다. 물이 얕은 해변이 길쭉하게 쭉 뻗어 있다.


뻥 뚫린 바위 사이로 파도 한 줄 없는 바다가 보인다. 깊이에 따라 달라지는 바닷물의 색깔이 매혹적이다. 당장이라도 내려가 유유자적(悠悠自適 ) 수영하고 싶다.    



그런데 우려했듯이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행이 있는 골든만 해수욕장으로 돌아온다. 저쪽에서 먹구름이 다가오는 속도처럼 해수욕장에 모인 사람들도 돌아간다. 우리 가족은 골든만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 식당에서 자리를 잡는다.     


식구가 여럿이니 뭘 먹을 지를 놓고 늘 신경전이다. 두 명이 피자 하나를 시킨다. 종업원이 가져 오는 피자를 보니 혼자서도 다 먹을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막상 둘이서 먹어도 남는다.


술은 그다지 먹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 몰타 여행에서 맛본 몰타 맥주 시스크(Cisk)는 내 입맛에 딱 맞다. 알콜이 4.2%인 시스크 큰 잔 하나가 2.5유로다.  


다른 식구들은 몰타산 포도주를 주문한다. 포도 품종 쉬라즈(shiraz, 프랑스에서는 시라)로 만든 포도주다. Pjazza Regina Valletta 750ml 한 병이 11유로다. 쉬라즈 포도주는 단내가 나면서 색깔과 향이 진하다.


점심 식사 중 비가 그친다. 망루 너머에 또 다른 아름다운 해변이 있다고 말하자 아내와 큰딸이 꼭 가보자고 한다. 저만치 있는 먹구름이 곧 닥쳐올 비를 예보하는데도 말이다. 


비구름이 몰려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풍화되고 있는 황토색 바위 위에 앉아서 사진 놀이를 한다. 뒷배경이 어떠하기에....


뒷배경은 아인투피하만(Għajn Tuffieħa Bay) 해수욕장이다. 리비라 해수욕장(리비에라 Riviera Beach)이라 불리기도 한다. 접근성으로 인해 골든만 해수욕장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뜸하다. 아래 사진 오른쪽 산등성이 너머에 살짝 보이는 바다도 궁금하다.    


예상은 했지만 한순간에 바다 쪽에서 강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걸음아 나 살려라 식으로 골든만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달린다. 굵은 비가 주럭주럭 쏟아지는 정류장에서 30여분을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관련글: 몰타에서 버스타기 이야기]. 공유택시를 부르려고 하는 찰나에 버스가 온다. 숙소까지 오는 데 20여분이 걸린다. 그 사이에 구름이 걷히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저녁 노을이다. 저 노을을 골든만 황금색 모래사장에서 봤어야 했는데... 아쉽고 아쉽다. 날씨가 얄밉고 얄밉구나... ㅎㅎㅎ


두 번째 방문 - 비취색 아인투피하만과 즈네이나만 Għajn Tuffieħa Bay & Ġnejna Bay
다음날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다. 골든만 맞은편에 있는 아인투피하만 해수욕장에 가보고자 9시에 숙소를 나선다. 버스에서 내려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오른쪽은 햇빛이 쨍쨍 비추고 왼쪽 하늘 저쪽은 먹구름이 진을 치고 있다. 아쉽게도 반짝이는 해는 곧 먹구름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에 닿기 위해서는 계단 200개를 밟고 내려가야 한다. 초록색 산 경사, 평평한 바윗덩어리, 황금색 모래사장과 비취색 바다가 신비감을 자아내는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저쪽 바위산 끝자락은 호랑이띠 내 눈에는 호랑이로 보인다. 고개를 들고 누워 있는 호랑이 형상이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ㅎㅎㅎ 


해수욕장 옆에 있는 커피숍 싱기타(Singita)의 환영안내판 문구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당신은 지금 손대지 않은 자연이 있는 순수하고 천연적인 땅으로 들어가고 있어요. 
바다가 당신을 자유롭게 하게 하세요.
행복을 호흡하세요. 
자유를 호흡하세요.
당신 마음 외에 아무것도 여기에 남겨 두지 마세요. 


아직 비가 오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다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10월 하순 하늘이 흐려도 수영하기엔 바닷물이 차지가 않다. 바닷물은 짜다. 하지만 해수욕 후 수건으로 몸만 닦고 옷을 입어도 짠내를 느끼지 못 한다.


비가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커피숍으로 이동해 비를 피해 본다. 히지만 지붕은 대나무로 차양막은 줄로 듬성듬성 엮어져 있다. 빗방울이 틈새로 떨어지고 바람에 날려 들어온다. 

     
비가 조금 그치자 나는 홀로 저 언덕 너머에 있는 세 번째 만인 즈네이나만(Ġnejna [dʒˈnɛjna] Bay)을 구경하기 위해 해변을 따라간다. 그런데 여긴 점토가 해변 절벽을 이룬다. 마른 날이면 기어 올라가 지름길로 갈 수 있을텐데 말이다. 


해변따라 이어지는 점토 절벽이다.  


찰흙이 달라붙은 신발이 무거워 힘겹게 언덕 위로 올라간다. 왼쪽에 골든만 호텔과 아인투피하만이 보인다. 


아래가 바로 즈네이나만을 이루는 점토 절벽이다. 이 만은 온통 점토로 둘러싸여 있다.


바취색 바다에 조금씩 퍼져가는 하얀색의 정체는 무엇일까?  


바로 비가 골을 만들어 점토를 쓸고 가서 만들어내는 색깔이다. 얼핏보면 하얀 구름이 바닷물에 투영된 듯하다. 바람이 억세게 분다. 사방천지에 혼자다. 저 가파른 찰흙 미끄럼틀로 발을 헛딛을까해서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제 신발은 천근만근이 되어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다. 미끄러져 손을 땅바닥에 대자 마치 페이트통 안으로 손을 닿은 듯하다. 손에도 찰흙이 듬뿍 묻는다.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으로 내려오니 굵은 비가 쏟아진다. 모래사장에 놀던 아이들도 비를 피해 어디론가 벌써 떠났다.


굵은 비에 커피숍 지붕은 속수무책이다.


결국 우리 가족은 이날 변화무쌍하는 날씨의 피해자가 된다. 숙소로 돌아오는 공유택시에서 덜덜 떨면서 그래도 아름다운 아인투피하만에서 해수욕을 한 것에 모두들 즐겨워한다. 200계단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계단 전체를 볼 필요가 없다. 그냥 첫 발을 내딛어라."  


세 번째 방문 - 황금빛 일몰 골든만 / 골든 베이 
몰타섬에 와서 골든만 일몰을 보지 않으면 참으로 아쉬울 듯하다. 기회가 왔다. 몰타 여행 마지막 전날 하루 종일 맑은 날이다. 오전에는 코미노섬을 다녀오고 해질 무렵 골든만을 다시 찾는다. 조금 쌀쌀한 날씨인데도 일광욕과 해수욕을 번갈아 즐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일몰 직전이다. 황금빛 모래사장이 일몰 햇빛을 받아 더 진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골든만 저쪽으로 해가 떨어진다. 황금빛 모래사장에서 바라본 일몰은 다음날 므디나에서 맞이한 일출과 더불어 몰타 가족여행의 백미 중 하나다.  



일몰과 작별하자 하늘에는 어느새 달이 밤길을 밝혀 준다. 달 아래 있는 작은 별이 궁금하다. 페이스북 친구이자 천문학자에 의하면 이 별은 이날 달에 아주 가까이에 위치한 목성이다.


이렇게 세 번 방문을 통해 몰타에서 경관이 아주 빼어난 곳을 둘러 보았다. 골든만, 아인투피하만 그리고 즈네이나만은 한 묶음이다. 3욕 즉 해수욕과 일광욕 그리고 도보욕(하이킹 또는 트레킹)을 한꺼번에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가볼만한 곳이다. 



먼저 도보욕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은 리비라 버스정류장(Riviera Stop 구글지도 위치)에서 내린다. 앞으로 쭉 가서 계단으로 내려가지 말고 먼저 산길을 따라 즈네이나만으로 간다. 이곳에서 점토 절벽과 해변을 구경한 후 아인투피하 해수욕장으로 온다. 이어서 절벽 위 길을 따라 골드만 해수욕장을 구경한다. 가기 전에 꼭 담력을 키우기 바란다. 절벽이 그야말로 아찔하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9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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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15. 05:53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3일째 되는 날이다. 아침부터 화창하고 영상 23도 날씨다. 식구 모두가 일광욕과 해수욕을 좋아해서 몰타 가족여행의 첫 행선지로 멜리하만(멜리에하만 Mellieha Bay, 아디라만 Għadira Bay) 해변(구글 위치)으로 정한다. 



몰타의 해안은 주로 험준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멜리에하만에는 넓은 모래해변이 있다. 


이 해변은 몰타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기 있는 해변 중 하나다. 10월 하순인데도 모래해변에는 여전히 양산(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멀리까지 바닷물이 얕고 잔잔하다. 


바닷물이 수정처럼 깨끗하다.


가족이 함께 하기에 정말 좋은 해변이다. 10월 하순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여름철 성수기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을 지 쉽게 상상이 된다.



구름선을 따라가면 저 언덕에 멜리에하 성당이 우뚝 솟아 있다. 바위 사이에 자란 식물 줄기에는 달팽이 천지다[관련글: 몰타에서 만난 달팽이 나무에 나를 반조해 본다]. 낮은 바위로 모래해변이 세 군데로 나눠져 있다. 


멜리하만 해변을 따라 산책하면서 마음에 드는 모래사장 하나를 골라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일광욕과 해수욕을 번갈아 두 세 시간을 하자 배가 고프다. 수영복 차림이라 해변 음식점으로 향한다. 차림표 속 음식 사진은 군침을 자아낸다. 생각만큼 비싸지가 않다. 4-8유로다. 생선감자튀김을 주문한다.


생선 한 마리가 나오길 기대했는데... 아뿔싸 생선살을 으깨서 기름에 잔뜩 튀긴 음식이 나온다. 한편 아래는 딸아이가 주문한 새우튀김이다.    


해수욕을 한 후 우리는 하나를 더 방문하기로 한다. 마침 인근에 뽀바이 마을이 있다. 거리는 약 2킬로미터다. 도보로는 약 25분이 걸린다. 101번 버스가 간다. 버스를 타고 갈까 아니면 걸어서 갈까? 식구마다 의견이 다르다. 버스가 자주 없을 뿐만 아니라 버스가 제시각에 오는 경우가 우리에게 한 번도 없었다.    



걸어 가자는 두 딸의 주장에 따라 인도가 따로 없는 좁은 도로를 따라 뽀빠이 마을로 향한다. 돌담이 정겹다. 돌담 주위에 선인장, 포도나무, 석류나무, 호두나무 등이 자란다. 선인장을 제외하고는 어릴 때 한국 시골 우리 집 뒷밭에 자라는 나무들이다.   


밭 전체가 채소로 푸르다. 무슨 채소인지 단번에 알아보니 식구들이 놀란다.  


바로 내가 좋아하는 채소 가지다.  


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우리만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도보로 이동하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듯하다. 뽀빠이 마을 입장권을 파는 건물이다. 입장권 성인 11-17유로, 어린이와 연금수령자는 9-12유로다.   


이 뽀빠이 마을은 1980년 개봉한 미국의 드라마 영화 <뽀빠이>의 촬영 세트장이다. 시금치를 먹으면 강해지는 뽀빠이... 바로 만화 캐릭터 뽀빠이를 주제로 조성된 놀이공원이다.    


보는 이를 포근하게 감싸는 듯한 비취색 만(灣)과 누런 절벽 아래 자리 잡은 뽀빠이 마을은 그 풍경만으로도 동화 속 마을임을 쉽게 느끼게 한다.  


나도 뽀빠이 흉내를 내본다. 이 기념 사진을 본 페이스북 친구들이 도대체 시금치 몇 단을 먹었는 지를 묻는다. ㅎㅎㅎ  



절벽을 따라 조심조심 걸으면서 반대편에서 뽀빠이 마을을 즐겨 본다.   


늦은 오후이고 이제 졸라대는 어린이가 식구 중에 없어서 우리 가족은 이렇게 몰타의 유명한 관광명소 뽀빠이 마을을 눈에 새겨 보았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7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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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9. 11. 14. 18:10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지에서는 가능한이면 걸어다닌다. 특히 숙소가 있는 동네 한 바퀴 돌기를 아주 좋아한다. 

몰타 도심의 거리는 대체로 차도도 인도도 폭이 좁다. 거리 쪽으로 정원이 먼저 나 있는 주택이나 아파트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건물들이 일렬로 따닥따닥 붙어 있다. 건축 재료는 모래빛 석회암이 주를 이룬다. 반복되는 누런색 건물들이 단조롭다. 집집마다 현관문 옆에는 쓰레기 봉투가 청소차를 기다리고 있다.


몰타 기사단(성 요한 기사단)의 깃발이 타일로 건물 벽에 붙어 있다. 바로 밑에는 우편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 성심(sacred heart 성스러운 마음)


현관등 밑에 건물 번호와 성가정(holy family)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현관등이 성스러운 가정을 더욱 포근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듯하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 아베 마리아(Ave Maria). 라틴어 아베는 문안드리다, 인사하다, 공경하다, 찬미하다, 성스럽다, 고귀하다 등의 뜻이다.


건물 번호 밑에 거주자의 이름이 예쁜 타일에 쓰여 있다.


조그마한 성물 밑에 거주자의 이름이 쓰여 있는 타일이다. "성모님, 저희 로우르데스 가정을 보살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듯하다. 


파란색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슬리에마(Sliema)에 있는 거리다. 대체로 누런 석회석 건물 일색이다.


하지만 발코니와 현관문 그리고 창문 덮개는 초록색, 파란색, 붉은색 등 다양하다. 


모스타(Mosta)의 한 거리다. 좁은 인도에 자라는 지중해꽃 부겐빌레아다. 분홍색 꽃이 단색 석회석 건물들 사이에 더욱 돋보인다.


몰타 섬 중앙에 위치한 므디나(Mdina)의 구시가지에 있는 작은 광장이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광장에서 건물 벽을 가득 메워 담쟁이처럼 벽에 붙어서 올라가는 부겐빌레아가 감탄을 자아낸다.  



석조 건물의 초록색 문이 인상적이다. 마치 몰타에 부족한 녹색 정원을 대신하는 듯하다.  


현관문 옆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성물이 그리고 그 밑에는 문패가 붙어 있다.


현관등이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이를 밝혀 주고 있다.


화환으로 장식된 예수 도자기 성물이 벽에 붙어 있다.


가브리엘 대천사와 성모 마리아 도자기 성물이 붙어 있다.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비둘기 등으로 상징)에 의해 처녀의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할 것이라고 알려 준다. 이것(라틴어 Annunciatio)을 성모영보, 성모희보, 수태고지라고 한다. 그 밑에는 안눈치아타(Annunziata)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이름은 딸만 있는 가정에 다음 태어날 아기가 사내이길 바라면서 종종 아기에게 주는 이름이다.  


므디나 구시가지 작은 광장에서 만난 집의 현관 앞이다. 양쪽 벽을 따라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짙은 녹색 현관문 오른쪽에 작은 현관등이 보인다. 그 밑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성물이 있다. 등불이 이들을 비추는 듯하기도 하고 이들의 사랑과 자애로움이 등불을 밝히는 듯하기도 하다.


누런 석회색 건물 일색인 몰타 도시의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쉽게 지루할 수 있겠다. 다행히 현관문에 붙어 있는 종교적 성물(聖物)과 다양한 문패 등을 살펴 보면서 산책하니 몰타의 색다른 맛을 체험할 수 있었다. 교황이 거주하는 바티칸을 제외하고 가장 가톨릭적인 나라로 흔히 몰타를 꼽는다. 몰타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이 말이 그저 나온 말이 아님을 쉽게 실감할 수 있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6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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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중해 몰타로 가족여행을 다녀오셨군요! 아직 저는 지중해는 가본 적이 없는데,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ㅎㅎ
    좋아요와 구독 누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19.11.14 17: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가족여행2019. 11. 4. 06:50

10월 하순 지중해 몰타(말타, Malta)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기억에 남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달팽이다. 모래빛 석회석의 담벼락으로 올라가 아직 자신의 점액으로 붙여 있는 달팽이다.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또 달팽이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마치 담벼락 색으로 변신을 한 듯하다. 느림의 미학 상징 중 하나인 달팽이는 말라 죽을 수도 있는데도 왜 이렇게 담벼락 위로 올라가는 것일까...


어느 날 몰타에서 가장 긴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멜리하만(멜리에하 베이 Mellieha Bay)을 다녀왔다. 가족이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기는 동안 나는 해변을 따라 산책에 나섰다.


말라 버린 식물 줄기에 달팽이가 떼를 지어 붙어 있다. 혹시 저 달팽이들의 습격으로 꽃과 줄기가 시든 것이 아닐까...   


연두색 새잎이 자라고 있다. 저 잎은 무사할까....


바로 옆에는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달팽이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다. 달팽이 나무로 이름 지어도 될 듯하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자기 몸에 지닌 점액질만 믿고 위로 위로 느리게 올라가다가 영양분이나 수분이 부족해 말라 죽은 달팽이들이다. 저 달팽이처럼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지 않을까...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순간이다. 사실은 뜨거운 지열을 피해 달팽이들이 위로 올라간 것이다.


이상은 초유스 몰타 가족여행기 3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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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9. 4. 1. 06:44

어느새 북유럽 리투아니아 빌뉴스도 날씨 타고 날아온 봄향기가 서서히 풍기가 있다. 영하의 날씨가 엊그제 같은데 주말 낮온도가 영상 10-15도 였다. 가족이 인근 숲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숲 입구 양지 바른 곳에는 역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전령사가 우리를 맞이 하고 있었다. 


이곳의 봄전령사는 바로 노루귀꽃이다. 며칠 전 동네 큰가게 앞 거리에서 사람들이 노루귀꽃 다발을 팔고 있었다. 살까말까 망설이다 곧 숲으로 우리가 가서 데리고 오면 될텐데 생각하면서 발길을 돌렸다.

이렇게 숲으로 오니 사방에 낙엽을 뚫고 올라온 보라색 노루귀꽃이 햇볕을 향해 피어나 있었다. 아내와 딸아이는 낙엽을 사뿐히 즈려 밟으면서 전령사를 집으로 모셔오기 위해 꺾고 있었다. 


이날 만난 노루귀꽃은 거의 전부가 보라색 계통이었다.


그런데 낙엽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분홍색 노루귀꽃이 신선을 끌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린 분홍색 노루귀꽃이 신기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 되다니...


분홍색 노루귀꽃 두 송이가 사이좋게 나란히 군계일학으로 색바랜 낙엽을 뒷배경으로 곱게 피어나 있다. 


이날 숲에서 만난 분홍색 노루귀꽃은 희소해서 차마 집으로 모셔올 마음을 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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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8. 11. 1. 22:05

시드니에 살고 있는 딸아이로부터 최근 페이스북 메신저로 사진 한 장을 받고 우리 부부는 깜짝 놀랐다. 바로 자동차 대시보드를 다 뜯어낸 사진이다. 대체 무슨 일로?


사연인 즉 카이트서핑(아래 사진)을 하려 가는 길에 목걸이를 자동차 대시보드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목에 거는 것을 잊어버리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도중에 급하게 좌회전을 하는 순간에 목걸이가 대시보드 작은 구멍 사이로 빠져 버렸다. 


소중한 금목걸이라 반드시 찾아야 했다. 처음에는 정비소에 가서 도움을 얻어보고자 했으나 그 비용이 만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뜯어내기라 쉽지 않았지만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결국 대시보드를 다 뜯어내 버렸다. 다행히 목걸이를 찾았다. 


평소 쉽고 편한한 해결책을 더 선호하는 성격이라 몹시 힘들었지만 난생 처음 직접 대시보드까지 뜯어서 귀중품을 찾게 되니 스스로 대견함을 느꼈다고 한다.

언젠가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집에서 타온 커피를 마셨다. 그때 커피 보온병을 자동차 짐칸 위에 올려 놓았다. 종이컵에 커피를 따라서 맛있게 마시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그만 차를 몰고 이동했다. 아뿔싸 한참 후에야 짐칸 위 보온병이 떠올랐다.

누구나 한 두 번쯤 차를 몰면서 쉽게 겪는 일이다. 그런데 살아가는 해가 많아질 수록 이런 일이 더 잦으니… 매사에 챙기는 일을 자꾸 훈련해 습관화를 해야겠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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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헐.. 대단하네요. 한국에서는 보기힘든 장면이로군요

    2018.11.01 23:5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2. 저걸 직접 했다니... 매력있습니다. ^^

    2018.11.02 16: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ㅋㅋㅋ나같으면 찾는걸 포기했을듯하네요

    2018.11.02 19:3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가족여행2018. 3. 9. 08:19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지리적으로 북유럽에 속하는 리투아니아에는 혹한이 거의 없었다. 평창 올림픽의 추위 소식은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했다. 그런데 2월 하순으로 접어들자 밤 기온이 영하 20도 내외로 떨어졌다. 혹한의 연속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주초부터 날씨가 조금씩 포근해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기온이 영하인지라 쌓인 눈은 녹지 않고 있다. 최근 여러 날 또 다시 눈이 내렸다. 아래 영상은 눈을 밟으면서 강의하러 빌뉴스대학교로 가는 모습이다. 




듣기만 해도 정겹다. 이 소리를 듣자니 1월 초순 가족여행을 다녀온 남반구 호주의 해변 하나가 떠올랐다.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의 저비스(Jervis) 만에 있는 해변이다.


이 일대는 아담한 높이에 거의 수직으로 깎인 절벽따라 하얀 모래 해변이 펼쳐져 있다. 밀물이 오면 잠겨버리는 모래 해변을 따라 우리 가족이 산책하고 있다. 

  


숙소 안내 간판에 하얀 모래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들어갈 정도로 저비스 만의 하이암스 해변(Hyams beach)은 아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이 모래는 세계 기록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하얀색을 띠고 있는 모래로 기네스북에 올라와 있다. 



이날 아쉽게도 날씨가 흐리고 싸늘해서 그런지 해변 풍경은 관광 안내 책자의 설명에는 크게 미치지 못 했고 또한 첫눈에 마주친 모래 색깔도 감탄을 자아내지 못 했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보니  모래가 드디어 자기 본색을 드러냈다. 하얗고 하얀 모래 색을 사진에 담아보았다. 쨍쨍한 햇볕이 없어 아쉬웠지만 기네스 기록에 이끌려서 온 보람은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날아와 바로 내 앞에서 멈췄다.

자기 몸통과 모래 중 과연 어느 것이 더 하얀 지를 나에게 물어보는 듯했다.


답은 물을 필요가 없는 듯하다. 

유유상종하니 근주자적하고 근묵자흑이로다!!! 



아, 날씨가 쾌청했더라면 참 좋았을 법한 장면인데... 내내 아쉬웠다.



북반구 북유럽에서 남반구 호주에 언제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하면서 

한 컷을 부탁하는 딸아이 요가일래... 



모래 해변 바로 옆인데도 무인도 원시림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하이암스 해변에서 받은 가장 깊은 인상은 
하얀 모래색이 아니라 바로 이 모래밭을 밟고 가면서 들리는 소리였다. 
마치 북유럽 겨울 눈밭을 피해 온 우리 가족에게 들려주는 새해 선물 소리 같았다. 
그래서 에스토니아 라헤마 습지공원 널판자 오솔길 눈을 밟고 가는 영상과
하이암스 해변 모래를 밟고 가는 영상을 함께 만들어보았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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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휴가를 멀리 다녀오셨네요.^^ 날씨가 맑았다면 정말 근사한 곳이었을텐데..
    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2018.03.09 15:41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연말과 연초에 다녀왔습니다. 멀어서 중간 기착지로 베이징과 상해를 택했어요. 덕분에 중국도 살짝 보고 왔어요.

      2018.03.09 17:56 신고 [ ADDR : EDIT/ DEL ]

요가일래2017. 3. 22. 08:07

한 해에 생일을 세 번 맞는다. 첫 번째는 여권상 생일이고 두 번째는 여권상 생일의 음력일이고 세 번째는 여권상 생일의 양력일이다. 한국 사람이 아니고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올해는 살아온 세월의 첫 번째 숫자와 두 번째 숫자가 같다. 유럽인들이 크게 생일을 챙기는 기념일이다. 1월부터 아내는 종종 어떻게 생일을 보낼 것인지 물었다. 생일 챙기기에 무관심하자 무조건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다시피 했다.   

1. 일가 친척을 초대해서 식사 하기
2. 가족 해외여행 하기

어느 하나도 선택하지 않았다. 첫 번째 생일에는 다음 생일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했고, 두 번째 생일에는 또 다음 생일도 있으니 그냥 넘어가자 했고, 세 번째 생일에는 내년 생일도 있으니 넘어가자라고 했다. 생일을 거의 챙기지를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은 가장의 생일인지라 뭔가로 기념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두 개 중 하나인 아주 오래 된 17인치 모니터가 지난 해 고장이 나서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주로 번역 작업을 하는 데 세로로 돌리기(비봇 pivot) 기능이 있는 24인치 모니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기념으로 이것을 사고 싶었다. 새로운 전자제품 구입에 인색한 아내도 선뜻 동의했다. 마음 변하기 전에 바로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해버렸다.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현관문에서 불렸다.
"아버지, 아버지, 우리 아버지"
"어서 와. 왜?"
"빨리 여기 와봐."
딸아이는 노란 꽃 세 송이로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 주말에 올 새 모니터(화면 속 사진)와 딸아의 노란 색 꽃선물


어제 화요일 저녁 대학교에서 한국어 수업이 있었다. 앞 강의가 아직 끝나지 않아 학생들이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서로 대화하더니 내가 나타나자 조용해졌다.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생신이 언제예요?"
"생일?! 난 생일이 없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생일을 물었다.   
 
1시간 반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은 재빨리 강의실을 빠져나가는데 어제는 달랐다. 모두가 자리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나더니 한 학생이 또 물었다.

"선생님, 오늘이 생신이시죠?"
"아니, 어떻게 내 생일을 다 알았지?"라는 되물음에 학생들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신 축하합니다. 생신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고마움을 전하면서 자꾸 의문이 생겼다. 페이스북에 적힌 생일은 벌써 지났는데 어떻게 학생들이 알았을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식구들에게 깜짝 기쁨을 알렸다.

"학생들이 어떻게 내 생일을 알고 생일축하 노래를 한국어로 불러주었어."
"아빠, 사실은..."
"뭔데? 말해봐."
"아빠 학생들 중 하나가 우리 반 친구의 친구인데 내가 우리 반 친구에게 부탁했다. 자기 친구에게 오늘 우리 아빠 생신인데 학생들이 축하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다라고 했어."
"뭐라고? 네가 다 연출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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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이 좋아! 네요

    2017.03.22 13:4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생활얘기2017. 3. 9. 08:15

북유럽 리투아니아에도 조금씩 봄이 가가오고 있다. 며칠 전 아파트 뜰에 하얀 꽃을 보았다. 갈란투스(galanthus), 스노우드롭(snowdrop), 설강화(雪降花) 혹은 눈송이꽃으로 불린다. 국제어 에스페란토의 이 꽃 이름이 재미있다. Neĝborulo (네즈보룰로)인데 번역하면 "눈을 뚫는 것"이다. 눈을 뚫고 봄이 옴을 알리는 꽃이다. 


지금이 바로 봄이 오는 문턱이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 꽃가게의 일년 대목 중 하나가 3월 8일이다. 이날은 1975년 유엔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한 날이다. 이날 여성들은 가정이나 직장이나 남성들로부터 꽃선물을 받는 날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온 딸아이도 튤립 꽃 한 송이를 들고 왔다. 

"너도 꽃선물 받았네!"
"두 번째 수업이 끝나고 우리 반 남자들이 꽃집에 가서 꽃을 사서 선물 주었어."
"아빠도 꽃을 선물해야 하는데 꽃사기가 싫어."
"꽃이 빨리 시드니까 그렇지?"
"맞아. 순간적인 기쁨을 위해 살아있는 꽃을 꺾는다는 것도 마음이 들지 않아."
"그러면 나는 꽃이 필요없으니까 아빠가 오늘 엄마한테 안마해줘라."

화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집에 늘 있기 때문에 일부러 꽃을 사러 가게까지 가는 것은 사실 귀찮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를 해야 우리 집 두 여성이 좋아할 것 같았다. "남들은 다 하는 데 당신만은 안 해준다"라는 소리를 듣기가 싫고, 또한 이왕 이곳에 사니 이곳 문화에 같이 호흡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큰가게(슈파마켓) 앞에는 임시 꽃시장이 펼쳐져 있어서 많은 남성들이 꽃을 고르고 있었다. 나는 큰가게에 들어가 꺾인 꽃 대신에 어떤 선물을 살까 찾아보았다. 아내가 좋아하는 꼬냑 판매대를 둘어보았다. 꽃은 며칠이 지나면 시들지만 꼬냑은 한 잔씩 먹으니 더 오래 갈 수가 있겠다.

한참 고민 끝에 술 대신 식물을 사기로 했다.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이제 봄철이라 과일과 채소 판매대가 있는 곳에 복분자 묘목이었다. 마침 집에 큰 화분이 하나 있으니 그곳에 저 묘목을 심어 여름철 발코니에서 기른다면 붉은 딸기가 주렁주렁 열릴 것 같았다. 


딸아이를 위해서 향기가 짙은 히아신스를 선택했다. 꽃이 다 피어있는 것보다는 곧 피게 될 것을 샀다.
  

직장에 돌아와 묘목 선물을 받은 아내는 장모에게 방금 꽃 선물을 받았다고 기뻐했다. 이렇게 이곳 남성의 의무 중 하나를 이행하게 되었다. 


늦은 여름날 발코니에 복분자 딸기가 정말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가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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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6. 12. 23. 09:24

오랜만에 호주에 살고 있는 큰딸에게 메신저 동영상 쪽지를 늦은 밤에 보냈다. 잠자기 전 침대에서 얼굴만 찍어 보냈다. 아침에 학교에 간 작은딸이 빗발치게 메신저 쪽지를 보내왔다.

"아빠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상을 올렸나? 빨리 지워라! 내 친구들이 다 보고 있단 말이야!"

자다가 날벼락 맞는 상황이었다. 호주 큰딸에게만 보냈는데 어떻게 리투아니아 빌뉴스 학교에 가 있는 작은딸 친구까지 이 동영상을 볼 수 있단 말인가!!!!

페이스북을 사용한 지 올해 꼭 만10년째다. 하지만 따로 앱을 받아 사용해야 하는 메신저는 불호감이다. 그래서 휴대전화로는 메신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모처럼 한번 사용했는데 이런 황당한 상황이 일어나게 될 줄이야... 

이유는 메신저에 추가된 새로운 기능을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큰딸에게만 보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동영상이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 등으로 서로 얽혀있는 페이스북에서 결국 불특정 다수도 볼 수 있게 되어버렸다. 

아빠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나자 작은딸이 깜짝 놀라 "빨리 동영상을 지워라!"고 성화를 부렸다. 작은 휴대전화기 창을 뚫어지게 보면서 여기저기 가보았지만 지울 수 있는 곳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작은딸에게 페이스북 계정을 알려주고 지울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번 더 바보가 된 셈이다.   

왜 둘만의 대화에서 보낸 동영상이 공개되었을까?
작은딸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다. 이유는 새로운 기능 My Day다. 메신저 앱을 설치하면 자동으로 공개설정이 된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동영상을 찍어 My Day 기능의 공개를 모른 채로 받는 사람만 선택해 보냈던 것이다. 앞으로는 반드시 My Day 공개를 비공개로 전환한 후에 보내야겠다.


그러면 아차하는 순간에 My Day에 공개된 것을 어떻게 지우나?
먼저 메신저 초기 화면 제일 위에 My Day에 나타난 동영상이나 사진을 선택한다.


제일 하단에 수직으로 점 세 개를 누른다. 


그러면 하단 오른쪽에 창이 뜬다. Delete를 누르면 된다.


이렇게 어제 오전 내내 큰딸, 작은딸, 아내로부터 나의 신중하지 못한 메신저 동영상 쪽지 사용으로 바보멍청이로 취급받았다.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내 동영상 얼굴"이 이들에게 감당되지 못한 듯하다. 내가 봐도 완전 할아버지 상이다. 영상 각도로 인해 안경이 얼굴보다 훨씬 커보였다. 

이 한바탕 덕분에 메신저 My Day 기능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수확이다. 그리고 전화기에서 메시저 앱을 아예 지워버렸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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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뜻밖의 민낯이셨군요.ㅎㅎ
    페북앱들은 워낙 배터리랑 메모리를 많이 잡아먹기로 유명해서 저는 웹으로만 접속하고 있어서 저런 게 있는지도 잘 몰랐네요.^^

    2016.12.23 11: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가족여행2016. 11. 26. 05:30


아기자기 아름다운 해변이 곳곳에
알쿠디아에서 3박을 체류한 후 이제 마요르카의 수도 팔마(Palma)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곧 바로 고속도로를 따라 팔마로 돌아갈 수 있지만, 이왕 온 김에 남동쪽도 가보기로 했다. 많이 봐야 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해야 했다. 선택한 도로는 산타마르갈리다(Santa Margalida) - 페트라(Petra) - 마나코르(Manacor) - 펠라니츠(Felanitx) - 칼라도르(Cala d'Or)였다. 

* 구글 지도에서 보듯이 하얀색이 점령한 칼라도르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모래 해변으로 유명한 칼라도르는 마요르카의 초기 관광휴양지 중 하나이다. 작고 예쁘장한 지중해식 하연색 빌라와 호텔이 즐비하다. 이날 우리가 찾은 해변은 칼라도르 해변(Palya Cala d'Or)이다. 비취색 바닷물, 초록색 소나무, 하얀색 건물들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파아란 하늘 - 이 모두가 인상깊게 다가왔다.  

* 비취색 바닷물, 초록색 소나무, 하얀색 건물들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진 파아란 하늘

이날 해변에서 만난 사람은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세 쌍이었다. 한 쌍은 고운 모래 해변에 누워 책을 읽고 다른 한 쌍은 일광욕을 하고 나머지 한 쌍은 해변 계단에 쉬고 있었다. 그야말로 한가로움 그 자체였다. 바쁜 일상에서 이런 삶을 짧게라도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 세상 잊은 한가로움이어라~~~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펠라니츠와 캄포스를 거쳐 Ma-19 도로를 따라 렌트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3박 4일 동안 무사히 함께 한 렌트카를 돌려주었다. 무료 서틀버스를 이용해 공항 시내버스 정류장을 도착했다. 팔마 시내까지 버스요금은 1인당 5유로다. 추가요금 없이 한 번 환승으로 3박을 머무를 장소로 이동했다.

숙박료보다 보증금이 더 비싸
팔마 서쪽에 있는 칼라마요르(Cala Major)다. 부킹닷컴으로 예약한 거실 하나, 방 하나 아파트다. 3박 숙박료보다 보증금이 더 비싸다. 만약의 흠집이나 파손 발생 시를 위한 안전장치다. 혹시 여러 핑계로 이 돈을 돌려받지 못 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주인이 보는 앞에서 벽이나 가구 등 집안 구석구석을 사진을 찍었다.

* 3박 머문 칼라도르 아파트 입구와 선인장

잠시 쉰 후 우리는 칼라마요르 해변으로 나섰다. 담벼락에 익어가는 감이 어린 시절 고향의 감나무을 떠올리게 했다. 리투아니아로 돌아가면 스페인산 단감을 많이 사먹을 기대감으로 발걸음을 해변으로 향했다.

* 마요르카에서 만난 감나무

칼라마요르 해변 또한 아기자기했다. 11월 초순에도 이렇게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니...  

* 11월 초순 칼라마요르 해변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겼다

해변에서 우연히 리투아니아 사람을 만났다. 정년 퇴임한 사람인데 칼라마요르에서 작은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해 관광객들에게 숙박을 제공하고 있다. 수입을 물으니 나쁘지는 않다고 한다. 우리도 마요르카로?! 그러기에는 우린 아직 퇴직이 멀었다. ㅎㅎㅎ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7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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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6. 11. 25. 22:27


우리 가족이 마요르카를 여행한 날짜는 10월 29일에서 11월 5일까지다. 마요르카를 가족여행지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혹시나 날씨가 좋아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조금이라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다. 마요르카는 연중 맑은 날이 평균 300일이다. 관광철 성수기는 4월에서 9월까지다. 관광객 인파를 피하고 숙박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10월이 좋은 때다. 주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해변가 식당이나 상점들은 10월에서 다음해 봄까지 문을 닫는다. 

* 11월에 벌써 해변가 식당이나 상점은 이렇게 닫혀 있다  

* 호텔 수영장 역시 비수기라 사람이 없다


10월 낮 온도가 23-25도, 밤 온도가 10도이고 11월 낮 온도가 18도, 밤 온도가 6도이다. 10월 날씨가 11월 초순까지 지속되면 우리의 기대는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결정한 휴양도시가 알쿠디아(Alcudia)였다. 북부 마요르카의 주요 관광지로 해수욕장이 14km나 뻗어 있다. 가족휴양지로 유명하다.     

* 딸아이 생일을 맞아 온 가족여행


알쿠디아는 기원전 123년 로마가 점령했다. 서지중해에서의 로마 세력이 약화되자 해적, 반달족, 무어인의 공격을 받았다. 1229년 아라곤 왕국의 하이메(제임스) 1세가 아랍 세력 무어인을 물리치고 이 지역을 지배했다. 그의 손자 하이메 2세가 1298년 이곳에 성당, 묘지, 광장 등을 지으면서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오늘날 구도시는 14세기 지어진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알쿠디아에서 3박을 머무는 동안 날씨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낮 온도가 25도 내외로 햇볕이 쨍쨍한 점심 무렵까지 우리는 해변에서 일광욕과 해수욕을 즐겼다. 거대한 말굽 해변은 고운 모래로 가득 차 있다. 고요하고 얇고 깨끗한 비취색 바다가 멀리까지 나아간다. 

* 잔잔한 바다

* 14km 해변 일부

* 얇은 바다

* 비취색 바다


이런 모습을 직접 와서 보니 알쿠디아 해변이 가족 휴가지로 많은 인기가 있음에 쉽게 공감했다. 모래와 바다를 밟으면서 해변을 따라 그냥 쉬임 없이 두 시간을 걸어 보았다.


알쿠디아 해변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다. 일출 시각 7시 15분, 호텔에서 해변까지 200미터. 6시 45분에 수상안전요원 망루대에 올라 일출을 기다렸다.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어느 지점에서 정확하게 해가 얼굴을 내밀 지를 쉽게 알 수 없었다.

* 저 여명 속에 과연 어느 지점에서 해가 뜰까? 


잠시 후 비행기 한 대 지나가고 흔적을 남겼다. 하얀 선이 있는 곳에서 해가 뜰 것이라 예상하고 카메라 방향을 고정시켰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글거리면서 검붉게 떠오르는 일출이 아니라 고요히 보는 이를 관조시키는 일출이었다. 이제 알쿠디아라고 하면 얇은 비취 바다, 넓은 하얀 해변 그리고 고요한 일출이 떠오른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6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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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6. 11. 25. 22:26

 
다음 행선지는 포옌사(Pollença)였다. 해적의 습격을 피하기 위해 해변에서 6km 떨어진 곳에 카탈루냐인들이 13세기에 세운 도시이다. 포옌사의 으뜸 볼거리는 "천사들의 모후" 성당이다. 작은 다리는 건너 도시에 진입하자마자 자리가 보이기에 주차시켰다. 산정상에 있다는 성당을 찾아 좁고 거리를 따라 무조건 위로 올라갔다. 돌집벽을 따라 피오르는 꽃이 한층 더 아름답게 보였다.

* 돌집벽을 올라타고 자라는 식물

조금 더 가니 낯설은 장면이 눈에 띄였다. 돌집 창문에 꽃화분이 놓여있고 그 밑에는 쓰레기 봉투가 매달려 있다. 냄새가 팍팍 나는 쓰레기는 아니였지만 염정불이 청탁불이(染淨不二 淸濁不二 분별이 끊어진 자리에서 보면 더럽고 깨꿋한 것이 둘이 아니다)라는 말을 떠울리게 했다.

* 染淨不二 淸濁不二

난데없이 비들기 떼가 포옌사 하늘 위에 나타나 여러 차례 빙빙 돌면서 군무를 펼쳤다. 군계일학! 무리 중에 분홍빛이 선명한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분홍색 비둘기는 사진으로 보았지만 날개 밑만이 분홍색인 비둘기는 처음 이날 보았다.

* 날개 밑이 분홍색인 비둘기

다시 길을 따라 가니 계단으로 된 칼바리(Calvari) 거리가 나왔다. 계단이 모두 365개이고 마지막 계단 위에 작은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13세기 성전기사단이 세웠다. 

계단 365개를 밟아야 닿는 포옌사 성당
우리가 닿은 곳은 전체 계단수 중간 정도였다. 365개 계단을 다 밟으며 올라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 듯해서 제일 밑으로 혼자 내려갔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 성당 안까지 들어갔다. 가족이 모여 잠시 각자 기도를 했다.

* 계단 365개를 밟고 올라가면 꼭대기에 "천사들의 모후" 성당이 있다


성당 마당에서는 포옌사뿐만 아니라 포르트데포옌사와 알쿠디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 성당에서 내려 보이는 포옌사 시가지

밑으로 내려와 로마 다리를 찾았다. 1403년 이전까지 이 다리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일부 사람들은 마요르카를 지배(123 BC - 425 AD)한 로마인들이 세운 다리라 믿고 있다. 로마인들이 세웠든 안 세웠든 이 다리는 19세기까지 이 지역 강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 

* 로마 다리 

밭에는 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주인이 보이면 하나 부탁해 맛을 보고 싶었다.
 
* 싱싱한 귤 먹고 싶어~~~

마요르카 여행을 다 마칠 무렵 가족이 가장 인상적이고 다시 오고 싶은 곳이 어딘냐하고 서로 물었다. 365계단을 밟고 올라가서 기도한 성당이라고 답했다. 경건하고 성스럽고 시야가 탁 트인 아담한 포옌사 성당이 내 기억에 인상깊게 남아있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5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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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2016. 11. 25. 22:25

11월 초순에 가족여행 떠나는 이유
거의 매년 11월 초순경 비교적 따뜻한 나라에서 가족여행을 한다. 11월 1일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다. 이날은 모든 성인을 기리고 이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축일이다. 11월 2일은 모든 영혼의 날, 망자의 날 혹은 위령의 날이다. 이 세상을 떠난 망자의 묘지를 방문하고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날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 두 날을 따로 보지 않고 보통 "벨리네스"(영혼들)라 부른다. 고대부터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음식을 마련해서 망자를 기리는 가을 축제(Ilgės 사모)를 행해왔다. 수확을 마친 후인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순까지 조상들을 위해 빵을 굽고 양이나 닭 등 고기 음식을 마련해 먹으면서 술마시고 노래하고 놀았다. 망자의 영혼을 위해 식탁 혹은 긴의자 아래나 집 구석에 음식을 던지고 음료수나 과자를 뿌리곤 했다. 

* 마요르카에서 여름 날씨는 즐기는 동안 리투아니아에는 눈이 내렸다

11월 1일 기점으로 학교는 일주일 방학이다. 대개 이때쯤 날씨는 겨울로 확연히 접어든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 눈이 오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긴 겨울을 잘 버티기 위해 이때 남쪽으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또한 여름철 성수기가 지나서 여행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여행지 찾기는 아내가 맡아서 한다. 결정에 미치는 중요한 두 요인은 비행기 표값과 해수욕 가능여부다. 나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도보산책보다 해수욕과 일광욕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7박 가족여행지는 마요르카
대서양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와 지중해 발레아레스 제도의 마요르카(Mallorca)가 후보지였다. 전자는 해수욕 가능성이 높은 반면에 비행기 표값이 비싸고, 후자는 그 반대이다. 저가 비행기를 찾는데 자주 사용하는 사이트는 https://www.skyscanner.net/이다. 가족이 움직이므로 비행기 표값의 무게가 더 나간다. 그래서 후자인 마요르카를 선택했다. 해수욕 가능성 여부는 하늘 기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마요르카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를 현지인에게 물으니 6월과 9월이라고 한다. 7월과 8월은 날씨도 덥고 여행객도 엄청나다고 한다. 인구 90여만 명의 섬에 한 해 관광객이 약 천만여명이다. 주로 독일인과 영국인들이 온다. 우스개소리로 마요르카를 독일연방의 17번째 주라고 할 정도이다. 

올해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떠나는 마지막 직항 비행기(Ryanair) 표를 1인당 30유에 구입했다. 마요르카에서는 직항이 없어 영국 런던 공항에서 갈아타서 오는 비행기(Easy Jet + Ryanair) 표를 1인당 90유로에 구입했다. 합쳐서 1인당 항공료는 120유로였다. 숙소는 부킹닷컴으로 잡았다. 첫 날은 호텔, 첫 3박은 휴양지 호텔 아파트(거실 1 + 방 1), 마지막 3박은 아파트(거실 1 + 방 1)로 1박당 숙박 비용은 60-90유로였다.

공항 택시 승차장과 이불이 인상적
밤 1시에 팔마데마요르카(Palma de Mallorca) 공항에 도착했다. 2014년 2310만 여명을 수용한 공항이라 하지만 밤에는 텅비어 있었다. 숙소는 공항 근처인 플라야데팔마(Play de Palma)에 있는 로스칵투스(Los Cactus) 호텔이었다. 대중교통이 끊어진 시간이라 택시를 타야 했다. 택시 승차장이 인상적이었다. 줄을 선 자리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아니라 승차장 오른쪽에 공간이 있어 택시들이 이곳으로 들어가 손님을 맞이한다. 리투아니아 빌뉴스 공항의 택시 승차장과는 달랐다. 타려는 승객과 빠져나가려는 택시 모두에게 편안한 동선이다.



침대 3개 방을 예약했는데 막상 호텔에 와보니 침대 2개인 방 하나만이었다. 원래 침대 2개 방에 침대 하나를 더 넣으려고 했는데 미리 준비하지를 못했다고 했다. 호텔 측 자신의 실수로 인한 불이행으로 추가 요금을 받지 않고 방 하나를 더 주었다. 방에 들어가니 우리가 생각하는 이불이 없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사시사철 같은 이불을 사용한다. 11월인데도 얇은 침대덮개로 보이는 천 하나가 이불이다. 자기 전에는 추울 것 같았는데 막상 자니 추워서 잠에서 깨지는 않았다.
 
* 하얀색이 이불
  
두 끼 먹어도 배부름
아침식사가 포함 되었다. 보통 아침식사와 저녁식사를 한 묶음으로 할인 가격에 호텔이 판다. 하루에 세 끼를 먹는지라 처음엔 두 끼 식사가 걱정 되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두 끼 식사가 쉽게 가능했다. 9시경에 아침식사를 든든하게 하니 오후 내내 배가 고프지 않았다. 중간에 음류수나 과자를 한 두 차례 먹으니 저녁 6시까지도 신기하게 배꼽시계가 난리를 피우지 않았다. 아, 이래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지인들이 하루 두 끼만 먹어도 된다라고 했구나! 

마요르카 11월 평균 기온은 14도다. 하지만 첫 날부터 입고온 겨울옷은 전부 가방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7일 동안 낮 기온이 25도 내외였다. 이번 가족여행에서 날씨는 참 복받았다. 첫 날(10월 30일) 아침식사를 한 후 렌트카를 받으러 가야 할 시간 11시까지 가족이 모두 해변을 산책하기로 했다. 해변으로 나아가니 낚시하는 사람, 일광욕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짧은 옷을 입고 산책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루 전만 해도 외투, 장갑, 모자 등을 입고 다녔는데 여기는 완전 딴 세상이었다. 들떤 기분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 플라야데팔마 길고 넓은 해변

마요르카에 선뜻 동의한 이유
아내가 가족여행지로 마요르카를 추천하는 데에 선뜻 동의한 이유 중 하나가 한국 애국가다. 애국가를 1935년에 작곡한 안익태 (1906-1965) 선생이 팔마데마요르카(Palma de Mallorca)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1946년 이곳에서 와서 팔마데마요르카 교향악단을 창단 지휘하면서 1965년 돌아갈 때까지 20년 동안 살았다. 마요르카 문화 생활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팔마 시당국은 칸파스틸라(Can Pastilla) 구역의 한 거리를 "안익태 거리"(Carrer d'Eaktai Ahn)라 명명했다. 그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서는 도심에 위치한 거리(Passieg del Bom 8)에 "소리의 그림자"라는 기념탑을 2006년에 세웠다.

* 왕복 10km 거리

구글 검색을 하니 안익태 거리가 근처에 있었다. 왕복 거리가 약 10km. 도보 소요 시간은 2시간이다. 빠른 걸음으로 갔다오더라도 호텔 체크아웃할 시간을 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왕 마요르카에 왔으니 이 거리를 산책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처음엔 가족 모두가 가기로 했으나 쉬기 위해 여행왔는데 모두가 경보 맹훈련을 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아내 왈: "한국인인 당신 혼자 갔다와. 늦으면 우리가 체크아웃을 하고 밖에서 기다릴게"
딸애 왈: "우리는 아빠가 찍어온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면 되지."

애국가를 부르니 힘들지 않아
등과 이마에 땀이 흐를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했다. 연이어 비행기가 하늘을 솟아오르는 모습이 갈수록 가까워졌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안익태 거리에 아주 가까운 곳에 공항이 있었다. 이 거리의 끝자락은 바닷가이다. 거리명패가 눈에 확 들어왔다. 누군가 COREANO라고 써놓았다. 이 거리 길이는 약 400미터다. 해변가에서 들어가는 일방통행의 조용한 주택가 거리다. 

* 안익태 거리 명패와 동영상

이 거리 18에 위치한 단독주택이 돋보였다. 담장에는 무궁화꽃이 피어있고 한국어와 카탈루냐어어로 "안익태 거리"라는 거리명패가 붙여져 있다.

* 안익태 거리 18

이집저집 마당에는 무궁화꽃이 여전히 피어있고 레몬이 점점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이 거리 전체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애국가를 흥얼거리니 10km 거리가 힘들지 않았다.

* 뭐 눈에는 뭐밖에 보지 않듯이 지중해로 들어가는 시내가 엉성하지만 한반도를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마요르카 가족여행 첫 날은 한국인인 나에게 의미있는 날이 되었다. 
이상은 초유스 마요르카 가족여행기 1편입니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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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멋있으세요.
    '애국가를 부르니 힘들지 않아..^^'

    2016.11.18 15:12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요가일래2015. 12. 29. 08:49

12월의 상징어 중 하나가 선물이다.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어린 아이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용돈으로 특히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한다. 이 선물을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놓거나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 식사 후 서로 교환한다. 

한편 아직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은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부탁하는 편지를 써서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놓는다. 그리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선물유무를 확인한다. 우리 부부는 여러 해 전부터 따로 선물을 교환하지 않고 가족 전체를 위해 평소에는 비싸서 사기가 부담스러운 생활용품 등을 구입해 왔다.

하지만 두 딸과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다. 올해 딸아이로부터 무슨 선물을 받을까 궁금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생이니 그동안 모아놓은 용돈도 꽤 된다.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식사에 12가지 음식을 먹은 후 딸아이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조그마한 종이곽이었다. 누런 상자종이를 버리지 않고 재활용해 색종이를 그 위에 붙였다. 


과연 저 안에 무슨 선물이 들어있을까?
열어보니 이렇게 써여 있다.
   "사랑하는 부모님,
    모든 것에 감사 드리고, 계신다는 것에 감사 드립니다.
    행운, 건강, 사랑을 기원합니다. 
    우리는 두 분을 정말 정말 사랑합니다."



있을 법 선물 물건은 없고, 누런 종이에 색종이를 붙인 것만이 10장 있었다.
세상에 이런 선물도 다 있네라면서 하나하나 꺼내보려는 순간 딸아이가 안 된다고 했다.

"여기 10장이 있는데 한 달 동안 한 번에 딱 한 장만 빼야 된다."
"그러면 뭐가 있는데?"
"일단 하나만 빼봐."


이렇게 빼낸 것이 아래와 같다.

     "무엇이든지 부탁하십시오. (제가 들어드리겠어요)"


돈 한 푼 쓰지 않고, 폐품을 재활용하고, 선물 기대감을 한 달 동안 지속시키고, 더우기 10가지 선행까지 하겠다고 하니 이보다 더 한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 설사 딸바보 소리 들어도 귀가 즐거울 수밖에 없겠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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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리

    이제 요가일래 이야기가 더는 안 올라오네요 ㅎㅎ
    육아일기 읽는거 같고 딸이 너무 착하고 예뻐서 저까지 훈훈했는데
    많이 아쉽네요.

    2016.11.02 02:37 [ ADDR : EDIT/ DEL : REPLY ]

영상모음2015. 11. 4. 10:54

조지아 전통춤 공연단이 빌뉴스에서 공연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지아는 그루지아, 그루지야로 불리어졌던 나라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이루는 캅가스 산맥 남쪽과 흑해 동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이다.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 혹은 러시아-조지아 전쟁으로 세계적 이목을 끌었던 나라이다.   

공연 소식을 접하자 인터넷에서 읽은 기사가 떠올랐다. 조지아 전통춤이 바로 고구려 무용총 벽에 그려진 춤동작과 닮았다는 것이다. 춤뿐만이 아니라 '아리 아라리 아랄로오오'가 반복되는 민요도 있다고 했다. 

궁금증이 더해졌다. 마침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큰딸도 집에 있었다. 절약해둔 용돈으로 표 다섯 장을 구입했다. 1장 가격은 2만2천원이다. 

입고 나온 복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오래 세월 동안 유럽 등의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어느 복장에서는 마치 고구려인들이 춤을 추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였다.


곡예, 무술, 발레가 잘 어울려져 있었다. 발레신발을 신지 않고서도 힘든 발레 동작을 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칼과 방패를 들고 전투하는 춤은 실제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날 공연을 스마트폰에 담아보았다.
 
 

숱한 외세의 침력을 겪은 조지아 민족의 강렬한 기백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공연이었다. 위 선관람자의 영감 덕분에 나 또한 고구려의 전사들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달콤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럽인 아내는 "남녀가 함께 춤을 추는 데 서로 손 잡는 모습이 한 번도 없더라"라는 소감에 "혹시 남녀칠세부동석의 유교 문화가 그 옛날 조지아에도 전해지지 않았을까..."라고 답해보았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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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5. 6. 8. 07:48

벌써 일주일째 집을 떠나 이 도시 저 도시로 돌아다니고 있다. 관광안내사 일을 하면서 올해 들어 이번이 가장 좋은 날씨다. 아직 비도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고, 낮 온도는 15도-25도로 쾌적하다. 하지만 하루에 보통 만 5천보를 걸어다니면서 관광지를 안내하고 있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나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고 싶다.

* 라트비아 리가의 검은 머리 전당과 베드로 성당


* 라트비아 리가의 아르누보 양식 건축물


* 에스토니아 타르투 일몰과 요한 성당


어제는 이런 피로감이 딸아이가 보낸 쪽지로 사르르 녹았다. 6월 첫 번째 일요일은 아버지 날이다. 한국은 어버이날로 같은 날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은혜를 되새기지만, 유럽의 많은 나라는 따로 정해져 있다. 어머니날은 5월 첫 번째 일요일이다. 어머니 날은 모두가 기억하고 기념하지만, 아버지 날은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 날은 잊고 산다. 

인터넷이 되는 라트비아 리가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페이스북에 접속해보니 딸아이 요가일래가 보낸 쪽지가 있었다. 


로마자를 쓴 한국어를 한글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 아빠 날이다... 우리랑 같이 있어서 고마워.. 제일 제일 사랑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같이 있어서"라는 말이 감정을 뭉클하게 했다. 건강, 행복, 부, 소원성취 등 수많은 축하의 단어들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같이 있어서"라는 이 표현이 최상으로 다가왔다. 

'그래,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같이 있다! 맞아.'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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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얘기2015. 4. 13. 08:12

거의 평생 고정된 직업은 없지만 하고 있는 일과 해야 할이 왜 그렇게 많은 지...
일요일, 아내와 작은딸은 연극 보러 연극장으로 가고 집에 없었다. 책상 위 종이쪽지엔 이날 해야 할이 쭉 적혀 있었다.
                 신문 고정란 기사 5개 작성
                 화분 불갈이
                 법문 번역
                 불경 번역
                 리투아니아 에스페란토 협회 누리집 수정...

컴퓨터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 낮 2시경 아내와 딸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현관문에서 누군가 번호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올 시간이 아닌데 누가 왔나... 잠시 후 처남이 올라왔다.

"아이구, 처남이 웬 일이야?"
"일요일이라 집에 있으니 답답해서 탁구 한번 치러 왔다."

아파트 내 방에는 탁구대가 있다. 여러 해 전 탁구 동아리에 참가하던 딸아이가 졸라서 사놓았다. 그 후 함께 칠 사람이 없어서 그냥 탁구대 혼차 놀고 있다. 큰딸이 명절에 영국에서 집에 와 있을 때 함께 시합을 벌이는 것이 고작이다. 



겉으로는 처남을 반갑게 맞았지만, 속으로는 '아, 오늘 계획 이렇게 날아가는구나!' 아쉬움이 감돌았다. 이렇게 예고 없이 오다니... 그런데 나중에 전화를 보니 처남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소리를 꺼놓았기 때문에 듣지를 못했다. 처남은 벌써 아내와 통화했다고 했다.

하던 일을 멈추기가 그래서 졸업 논문을 쓰고 있는 큰딸에게 처남하고 잠시 탁구치라고 했다. 그래도 손님인데 얼마 후 일을 멈추고 탁구를 함께 쳤다. 두 사람 실력은 비슷하지만, 처남은 힘이 좋고, 또한 승부욕이 강하다. 2대 1로 한국이 졌다. 아침도 먹지 않아서 탁구 치고 나니 배가 몹시 고팠다.


"라면 끓어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처남도 같이 먹을래?"
"아니 됐어. 집 나올 때 먹고 나왔어. 곧 집에 갈거야."
"그래도 나와 같이 밥 먹자."
"아니 됐어."
"정말?"
"정말이라니까."
"정말 안 먹겠다는거지?"
"그래. 정말이야. 나 밖에서 담배 피우고 올게."

이렇게 해서 라면 하나만 끓이게 되었다. 그 사이 큰딸은 연극장에 있는 엄마와 문자를 주고 받았다. 아내는 냉장고에 있는 편육(리투아니아어 Šaltiena, 직역하면 냉고기, 아스픽, Aspic)을 처남에게 주라고 했다.

* 리투아니아 편육 image source link


이 쏼티에나는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돼지고기를 푹 삶아 식힌 후 단묵(젤리)화시킨 음식이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장모님이 직접 만들어 이번 부활절에 주신 음식이다. 난 구미가 당기지 않아서 먹어본 적이 거의 없다.

처남은 한 사발을 빵과 함께 다 먹어치웠다. 
속으로 '배불러 안 먹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다 먹어다니... 아, 또 속았구나!'

처남이 가고 난 후 아내가 돌아왔다. 
처남 얘기를 했더니 "나도 그 편육을 정말 먹고 싶은데. 좀 남겨놓지 않고서"라면서 아내가 아쉬워 했다.

"내가 여러 번 묻고 또 물었는데도 처남이 안 먹겠다고 했어. 그런데 나중에 그 편육 한 사발을 혼자 다 먹어버렸다."
"당신도 벌써 알잖아.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얼마나 체면을 차리는 지."
"처남이라 체면 차리지 않고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할 사람이라 믿었지. 앞으로는 그냥 묻지 말고 무조건 많이 해서 같이 먹어야겠다." ㅎㅎㅎ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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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댓글입니다

    2015.04.14 06:37 [ ADDR : EDIT/ DEL : REPLY ]
  2. 흥미롭네요 리투아니아는 한국보다 더 음식앞에서 사양을 하는 문화인가봐요~

    2015.04.15 00:2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홍여사

    가족간에도 체면을 차려야하다니... 너무 어렵네요.

    2015.04.17 16:29 [ ADDR : EDIT/ DEL : REPLY ]
  4. 고구려

    체면 차리는건 한국하고 똑같네여
    사람사는건 비슷한듯
    동유럽은 한국하고 비슷한 성향이 있는듯
    개인주의 끝을 달리는 서유럽 북유럽하고 다르게
    남유럽만해도 가족문화라 한국하고 비슷한데

    2015.11.12 19:00 [ ADDR : EDIT/ DEL : REPLY ]
  5. 너무 한국과 비슷해서 더 정이 가는 나라입니다 ㅎㅎㅎ

    2016.01.09 13:36 [ ADDR : EDIT/ DEL : REPLY ]

가족여행2015. 3. 9. 22:42

한국에서는 여행하기 힘든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란자로테 섬에 다녀온 초유스 가족여행 이야기이다. 란자로테에서 또 하나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바로 화산동굴에 만들어 놓은 환상적인 지하 공원 - 하메오스 델 아구아(Jameos del Agua)이다.


먼저 란자로테 관광개발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스페인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세자르 만리케(Cesar Manrique, 1919-1992)이다. 그는 란자로테 아레시페(Arrecife)에서 태어났다. 스페인 내전(1936-1939) 때 프랑코 편에 서서 지원군으로 싸웠다. 페네리페 라라구나대학교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다가 중도에 그만두고 마드리드로 가서 예술학교를 마쳤다. 1964-1966년 미국 뉴욕에서 예술 활동을 했고, 그해 란자로테로 돌아왔다. 그가 고향에 돌아와서 만든 첫 예술 작품이 하메오스 델 아구아(1966년)이다. 


약 4천년 전 코로나(Corona) 화산 분출로 인해 그 일대에 녹색동굴(Cueya de los Verdes)이 형성되었다. 이 용암동굴은 해수면 위로 6킬로미터 뻗어있고, 바다 가까이 쪽에서 해수면 아래로 1.5킬로미터 이어져 있다. 해수면 아래 동굴(대서양터널로 불림)에 위치한 곳이 하메오스 델 아구아이다. 이 대서양터널은 세계에서 가장 긴 바닷속 용암동굴이다. 

하메오(jameo)는 원주민 언어로 동굴 속 큰 열림(구멍)을 뜻한다. 이는 화산가스 압력 증강으로 동굴 천장이 붕괴되어 형성된 것이다. 즉 노천동굴인 셈이다. 이곳에는 이런 열림이 3개 있다.  

만리케가 이곳을 개발하고자 할 때 그의 계획을 미친 짓이라 사람들이 비난했다. 이런 천장에 구멍 뚫린 용암동굴에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라면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연과 예술을 잘 조화하고 융합시켜 독특한 문화 공간을 창출해내었다. 

좁은 입구를 통해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마치 중세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어두컴컴한 부분을 통과하면 서서히 뚫린 천장에서 밝은 빛이 들어온다. 동굴 건너편에는 거꾸로 자라고 있는 듯한 야자수가 눈에 확 들어온다.  


동굴을 지나 뒤돌아보면 그야말로 명경호수가 펼쳐져 있다. 바위 틈 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 형성한 자연호수이다. 물이 고요하고 맑다. 물밑이 훤해 손을 집어 넣어 바닥을 만지고 싶다. 그러다가 몸의 균형을 잃어 빠지게 되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물 깊이가 6-7미터나 되기 때문이다. 이 바다호수는 란자로테에서만 발견되는 고유종 하메이토스(jameitos)로 불리는 장님동굴게(blind albino cave crab)의 서식지이다. 이 게는 하메오스 델 아구아의 상징물이다. 


안으로 들어간 용암 밑에는 자연스럽게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또한 용암 사이나 용암 위에는 온갖 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다. 마치 동굴이 아니라 식물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람 중 최고의 압권은 야자수 그림자가 드러워져 있는 오아시스다. 파아란 가을 하늘이 땅 속에 떨어져 있는 느낌을 준다. 금방이라도 뛰어들어 하늘과 땅이 하나된 환상적인 공간을 만끽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사방이 거무스름한 용암 색상으로 인해 비취색은 더욱더 그 빛을 발휘한다.  


이 오아시스를 지나면 600석 규모의 동굴 연주회장이 나온다. 1987년에 개관되었다. 화요일과 토요일에 연주회가 열린다. 



지하에서 위로 올라오면 잘 가꾸어진 정원과 화산박물관이 마련되어 있다. 이날 용암 위에 뿌리를 뻗고 잘 자라오르고 있는 야자수 또한 정말 대단해 보인다.   



이날 관람한 하메오스 델 아구아 모습을 영상에 담아보았다.




이 하메오스 델 아구아를 세사르 만리케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트 클럽"이라고 했고, 헐리우드 영화배우 리타 헤이워드(Rita Hayworth)는 "세계 8번째 불가사의"라고 했다. 이날 아내와 함께 관람을 하면서 푸른 초원과 산림이 전무한 이 화산섬의 용암동굴에 이런 절경을 만들어 놓은 예술가에 감탄하고 찬탄했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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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일래2015. 3. 2. 07:24

같은 집 안에서 바로 옆방에 있는 아내나 딸아이에게도 말 대신에 SNS을 통해 대화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각자 방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으니 굳이 가서 말하는 것보다 페이스북이나 스카이페로 원하는 사항을 말하는 것이 더 편하다. 특히 감기로 독방을 쓰고 있는 요즈음은 그 빈도가 더하다. 


* 2007년 6살부터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 딸아이는 벌써 이렇게 커버렸네요. ㅎㅎㅎ


토요일 감기 증상이 되살아나려고 하는 아내가 딸에게 함께 자자고 제안하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래서 페이스북을 통해 딸과 문자 대화를 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13살 딸아이는 아직 한글로 써는 것이 능숙하지 못해 한국어를 발음나는 대로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다. 그래서 붉은 글씨로 이를 옮겨놓았다. 


21 hours ago
뭐 하니?
ebay
이베이
hohoho
호호호
grigu gagcon
그리고 개콘 (봐)
appann
아빤?
오늘 혼자 자라. 엄마가 또 아플라한다.
아빠는 인터넷 하고 있지.
gnde apaciorom anapadziana
건데 (엄마가) 아빠처럼 안 아프잖아
nega honca dziagi ciom isanhe
내가 혼자 자기 처음 이상해
그래도 혼자 자라.
감기 걸리면 안 된다.
nega gamgidro sipo
내가 감기 들고 싶어
아악악 안 돼°°°°°
건강이 최고야....
mola mola
몰라 몰라
알아야지... 아뭏든 건강이 최고야... 아빠 기침 하는 소리 들어봤지? 정말 안 좋아...
madza.......
맞아
ne....... honcia dzalkejo.......
예.... 혼자 잘게요.
만세!!! 아빠 말을 들어서 고마워~~~
ani, apaga nahante gariociodziuoso gomawojo.
아니, 아빠가 나한테 
가르쳐줘서 고마워

Chat conversation end


마지막 딸아이의 말이 인상적이라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아빠 말을 들어서 고맙다고 하니 딸아이는 자기한테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이처럼 서로가 고마운 존재임을 알게 된다면 개인이든 가정이든 평화롭고 화목하겠지...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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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베이에서 아이쇼핑하나 봅니다. ^^ 따님 대답은 자주 지혜로운 면이 많아서 볼때마다 흐뭇합니다. 그나저나 감기가 빨리 지나가야 할텐데요. 저희 가족도 지난달에 휩쓸고 가서 2-3주 고생했습니다. 예년보다 따듯해서 바이러스가 활개치는거 같아요. 일주일 시작입니다. 3월 첫째주 즐겁게 뛰어 보아요. !!

    2015.03.02 09:44 [ ADDR : EDIT/ DEL : REPLY ]
  2.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말과 행동을 하는 따님으로 키우셨나요? 너무 사랑스럽고 제가 다 사랑스러워요.

    2015.03.02 12:48 [ ADDR : EDIT/ DEL : REPLY ]

요가일래2015. 1. 2. 08:43

지금껏 25여년을 유럽에 살면서 가장 조용하게 새해를 보냈다. 보통 친구들이나 친척들을 초대하거나 초대 받아서 새해의 0시 0분 0초를 환호 속에 맞이했다. 그런데 이번 새해엔 그야말로 밖에 잠시 나가 폭죽 속에 새해를 맞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아래 영상은 2014년 새해를 폭죽 속에 맞이한 영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꼭 번역을 마쳐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어서 송구영신의 시각을 잊으면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더 큰 이유는 자고 나면 새날이요, 지난 시각은 헌날이라는 원칙에 너무나 충실해 세월흐름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상황을 이해해준 가족 덕분에 새해맞이 시각에도 '놀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2014년의 마지막 저녁이니 아내가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썼다. 식사하면서 딸아이가 주도해 잠시 동안 우리집 2014년 10대 대사를 꼽아보았다.


1. 언니가 미국에서 공부

2. 요가일래가 TV 노래 경연 출전

3. 카나리아 란자로테-푸에르테벤추라 가족 여행

4. 할머니 순조로운 수술

5. 어머니 학교 공연 성황

6. 요가일래 실팔찌 취미

7. 리투아니아 유로 도입

8. 아버지 단체관광 직접 조직

9. 요가일래 수학 공부 우수

10. 요가일래 그림그리기 재미


딸이 주도하다보니 우리 집 10대 뉴스의 반을 차지했다. ㅎㅎㅎ

수학이 어려워 그 동안 힘들어했는데 2014년에는 수학이 재미있다고 아주 좋아했다. 실팔찌 만들기와 미술이 새로운 취미로 자리 잡았다. 내년에는 어떤 10대 뉴스가 우리 집 연말 식탁에 오를까...


며칠 전 딸아이는 유리병을 포장을 하고 있었다.

"뭐하니?"
"지금 유리병을 포장하고 있지?"
"왜?"
"내 새해 포부야."
"새해 포부가 뭔데?"
"새해에 좋은 일이 생기면 적어서 이 안에 집어넣으려고."
"왜 그렇게 하는데?"
"나중에 얼마나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려고."
"그래 맞다. 좋은 일을 잊어버리기 전에 적는 것도 참 좋겠다."

* 2015년 딸아이의 좋은 일 쪽지통


좋은 일을 챙기는 것이 딸아이의 새해 포부란다. 선악을 별로 챙기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내 자신을 돌아보니 잠시 뭉클해졌다.
   
"그런데 말이야. 좋은 일만 챙기지 말고 좋지 않은 일을 위한 통도 하나 만들어놓으면 어떨까?"
"좋은 일로만 충분해."
"좋은 일 수와 좋지 않은 일 수를 나중에 서로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새해는 하나만 할거야."

과연 얼마나 새해 포부에 충실할지는 모르겠지만, 저 통 안에 좋은 일 쪽지가 가득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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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 좋은일로 저 통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2015.01.02 10:0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2015.01.02 10:15 신고 [ ADDR : EDIT/ DEL ]
  2. 멋진 아이디어네요.
    따님께 따라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봐주세요. ^^

    2015.01.08 11:27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아이구 지금 저는 한국이라 시차로 딸에게 물어볼 수는 없지만 당연히 답은 "예" 일 것입니다...

      2015.01.09 08:02 신고 [ ADDR : EDIT/ DEL ]

다음첫면2014. 11. 21. 10:14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란자로테 섬에 있는 포도밭은 세계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특이하다. 이 섬에서 포도밭으로 유명한 지역이 게리아(La Geria)이다. 사방 천지가 숲이 하나도 없고 온통 화산암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런 곳에 포도밭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유럽 여러 나라에서 직접 본 포도밭과는 전혀 다르게 생겼다. 포도밭이 포도밭다워야 하는 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정말 희귀했다. 지구가 아니라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사진출처 image source link


여기엔 필히 어떤 까닭이 있고, 이런 포도밭을 일궈낸 주민들의 지혜가 숨어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기에 서론이 이처럼 거창할까... ㅎㅎㅎ


포도나무가 웅덩이 속에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웅덩이에서 나오지 못하게 화산암으로 돌벽을 만들어 놓은 듯했다. 저지대뿐만 아니라 가파른 경사에도 계단식으로 포도밭이 거대한 장관으로 눈 앞에 펼쳐졌다. 



1730년에서 1736년까지 화산 분출로 인해 화산재가 이 지역의 비옥한 농토를 뒤덮었다. 시간이 지난 사람들은 이 재앙이 안겨준 혜택을 알게 되었다. 바로 천연 미네랄이 풍부한 화산재였다. 


18세기-19세기 이들은 화산재 층을 파내어 웅덩이를 만들어 그 밑에 포도나무 등을 재배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여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지역의 포도밭 웅덩이는 지름이 약 5-8미터, 깊이가 2-3미터이다. 한 웅덩이에 보통 포도나무 2그루가 심어져 있다.   



란자로데는 1년에 비가 오는 날이 고작 18일이다. 건조해서 농사짓기에 적합하지 않다. 농업에 절대로 필요한 것이 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물을 해결할까

이 점에서 화산재의 기능이 돋보인다. 구멍이 많은 입자로 되어 있는 화산재는 빗물과 이슬을 신속하게 밑으로 통과시키고, 뜨거운 햇빛이 비치는 낮에 수분 증발을 막아준다. 


그런데 왜 돌벽을 세웠을까?

란자로테는 무역풍이 상존한다. 반달 모양인 반원 돌벽은 특히 꽃봉우리를 맺은 포도나무를 강풍으로부터 보호해준다. 



포도나무 주종은 말바시아(Malvasia)와 무스카텔(Muscatel)이다. 포도수확은 유럽에서 가장 빠른 시기인 7월말이다. 수확은 모두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한다. 수확량은 헥타르당 1,500kg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낮지만, 1그루당 25kg 포도가 생산된다. 19세기말부터 시작된 게리아 포도농원들은 연 포도주 30만병을 생산하고 있다.   



이 특이한 포도밭을 비롯해 란자로테 섬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극한 자연환경 속에서 체념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이날 스위트 포도주를 시음해보니 꿀을 많이 부운 듯이 무진장 달았다. 당도가 최고라는 안내자의 말이 떠올랐다. 이 대신에 세미스위트 한 병을 샀다. 호텔로 돌아와 대추야자수 옆에서 저녁노을을 즐기면서 가족과 함께 마시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었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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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릭

    이용약관위배로 관리자 삭제된 댓글입니다.

    2014.11.21 11:47 [ ADDR : EDIT/ DEL : REPLY ]
  2. 멋있네요..

    2014.11.21 12:0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화산재 속에서 자라나서 맛도 독특할 것 같군요ㅎ

    2014.11.21 14:48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4. 비밀댓글입니다

    2015.11.09 09:27 [ ADDR : EDIT/ DEL : REPLY ]
    • 안녕하세요. 윗글에 사진출처를 밝힌 사진만 제가 찍지 않았고, 나머지는 전부 직촬입니다.

      2015.11.09 20:45 신고 [ ADDR : EDIT/ DEL ]

요가일래2014. 10. 17. 05:12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내었지만 도저히 사량으로 이해할 수 없는 기적적인  건축물을 흔히 불가사의라 부른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7대 불가사의가 있다.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대피라미드, 바빌론 공중 정원, 알렉산드리아 등대, 에페소스 아르테미스 신전, 마우솔로스 영묘, 올림피아 제우스 상, 로도스 거상이다. 

*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세의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스톤헨지, 콜로세움, 카타콤베, 만리장성, 영곡탑, 하기야 소피아, 피사탑이다. 2007년 새로운 세계 7대 기적이 발표되었다. 이는 마추픽추, 리우데자네이루 예수상, 치첸이트사 마야 유적지, 만리장성, 타지마할, 요르단 페트라, 로마 콜로세움이다. 


근래 들어 사춘기에 막 접어든 딸아이는 8번째 불가사의 기적을 말한다. 무엇일까? 학교에서 혹은 밖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면 요가일래가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오~~~ 8번째 기적!!!"

"딸아, 네가 말하는 8번째 기적은 도대체 뭐지?"

"아빠, 궁금하지?"

"당연하지. 뭔데?"

"바로 집이야!!!"

"이잉~~~"



"어떻게 집이 기적이 될 수 있니?"
"집은 정말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오고 싶은 기적 같은 곳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참 좋네. 그래 이 기적 같은 집에서 기적 같은 가족으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자."
"아빠,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이 정말 기적이다. 그렇지?"
"넓고 넓은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 중 이렇게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것은 네 말대로 기적이다."

학교 수업에 지쳐 돌아온 집에서 마음껏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또한 가족이 함께 하니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존재가 집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가 이렇게 생각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딸아이의 이런 생각이 오래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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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예쁜 생각입니다

    2014.10.22 13:12 [ ADDR : EDIT/ DEL : REPLY ]
  2. 요가가 벌써 중학생이라니..애들은 정말 빨리 크네요.

    2014.11.21 21:46 [ ADDR : EDIT/ DEL : REPLY ]

생활얘기2014. 6. 26. 08:02

일년 중 해가 가장 긴 하지가 6월 23일이다. 리투아니아는 이를 "이슬 축제" 또는 "요한 축제"라 부른다. 그리고 다음날인 24일은 국경일이다. 사람들은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가서 자지 않고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지는 해를 보내고 떠오르는 해를 맞이한다.

* 하지 일몰

올해는 브라질 월드컵으로 인해 야외로 나가지 않고 친척들이 저녁 무렵 모여서 밤 늦게까지 축구 경기를 시청했다. 다음 경기를 기다리면서 옛부터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해오던 점치기 하나를 경험하게 되었다.

목적은 미래의 자녀수 맞추기이다. 수뿐만 아니라 성별까지도 점으로 알 수 있다.
준비물은 30cm 정도의 실을 꿴 바늘이 전부이다. 


점치기 방법은 이렇다.
1. 점을 보는 사람은 왼손 바닥을 하늘을 향한다. 엄지와  검지를 떨어지게 한다.
2. 점을 치는 사람은 실을 잡고 바늘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여러 번 상하로 움직인다.
3. 바늘이 닫지 않도록 하면서 손바닥 위에 바늘을 놓는다. 이때 실을 잡은 손가락은 움직이면 안 된다. 


점치기 결과는 이렇다
1. 첫 번째로 바늘이 직선으로 움직이면 첫 아이가 남자다.
2. 두 번째로 바늘이 둥글게 움직이면 둘째 아이가 여자다.
3. 세 번째로 바늘이 움직이지 않으면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다.

1. 점친 결과: 딸이 둘


2. 점친 결과: 아들 둘


3. 점친 결과: 장남, 차남, 막내 딸


그런데 이날 점을 본 세 사람이 위 동영상에서 보듯이 실제와 완전히 일치해서 놀라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세째로 딸을 가지고 싶어하는 친척은 "이건 믿지 않아!"라고 이 점치기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남편이 점을 보니 세째가 딸로 나왔다. 

"누구와야? 안 돼!!!"
"우리 둘 중 한 사람만이라도 맞으면 되지 뭐......"

이날 모두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 리투아니아식 점치기를 기억했다고 기회에 따라 재미 삼아 한번 사용해봄이 어떨까......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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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재미있는 풍습이네요.
    왠지 우리나라에서 수맥 보는 거랑 비슷하기도 하고요ㅎㅎ

    2014.06.25 23:5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