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뉴스에서 열린 노래축제의 떠들썩한 현장… 
통일의 역사를 주제로 민족애 고취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19세기 중반 유럽에 대중 노래부르기 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184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유럽 최초로 노래축제가 열렸는데, 이것이 대규모 아마추어 합창단과 음악단체 합동공연의 효시다. 이 전통은 1935년까지 92년간 지속되었다. 독일에서 1845년, 에스토니아에서 1869년, 라트비아에서 1873년에 각각 대형 노래축제가 처음 열리기 시작했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억압으로 다른 나라보다 늦은 1924년에야 비로소 노래축제를 처음 열었다. 음악·노래·무용 등에 종사한 사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관객들과 함께 하나가 되는 대형 축제를 벌였다. 리투아니아인은 초기부터 노래축제를 통해 민족의식을 자각하고, 민족결속을 다지며, 조국애를 함양하고, 민족문화를 전승하고자 했다. 

리투아니아 민족 노래축제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정신에 기반을 두고 4년마다 여름철에 개최된다. 노래축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리투아니아 민족의 가장 큰 여름행사로 자리매김했다. 올해는 16번째 행사로 6월30일∼7월6일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려 무용인·가수·악사·민속예술인 등 모두 2만8천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공연을 했다. 미국·캐나다·브라질·오스트레일리아·독일·라트비아·폴란드·러시아·우크라이나 등지에서도 리투아니아 노래와 춤을 애호하는 리투아니아인 1천여명이 참가했다. 


사진/ 7000명이 출연한 리투아니아 전통춤 공연 한 장면(왼쪽) [실제 사진 설명은 7000명이 출연한 리투아니아 전통춤 공연 한 장면]. 행사 내내 도심 곳곳에서 즉석 노래와 춤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졌다(오른쪽).


전통의상 패션쇼 인기폭발 

21세기 들어 처음 여는 이 노래축제는 리투아니아 역사와 상호 주제를 결부한 첫 행사였다. 민다우가스 대공은 리투아니아 땅을 통일한 뒤 1253년 7월6일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최초의 왕이자 마지막 왕이었다. 이후 리투아니아는 다시 대공 체제로 수세기를 내려왔다. 이번 노래축제는 그의 왕위 즉위식 750년을 기념하여 그의 동상을 리투아니아 국립박물관 앞 광장에 세웠고, 그의 이름을 딴 다리도 개통했다. 민다우가스 왕은 오늘날 리투아니아 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노래축제는 19세기 리투아니아 민족 전통의상 패션쇼로 시작되었다. 패션쇼는 입장료가 100∼400리타스(약 4만∼16만원)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관람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리투아니아 전통의상은 주로 아마(亞麻)를 이용해 베틀로 짠 천으로 만들었다. 의상 무늬도 바늘로 수를 놓은 것은 드물고 거의 다 베로 짠 것들이었다. 리투아니아 아욱쉬타이티야·제마이티야·주키야·수발키야 지방에서 입은 전통의상 86벌이 선보였다. 이들 네 지방의 전통 복장은 구성은 큰 차이가 없으나 모양은 현저하게 다르다. 비옥한 땅을 가진 수발키야 의상은 고급스럽고 정교하다. 치마에 작은 창 무늬가 새겨져 있고 비교적 엷은 색을 띠고 있다. 아욱쉬타이티야 의상과 제마티야 의상은 리투아니아 표현을 빌리면 ‘주야지차’(천양지차라는 뜻임)다. 전자는 흰 머리수건과 무늬가 적은 치마로, 후자는 붉은 머리수건과 다양한 색의 치마로 특징지어진다. 이날 패션쇼는 특히 출연자들이 무언극 형태로 재미있게 촌극을 해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캉클레스의 아름다운 선율 

또 리투아니아 최고의 뮤지컬로 평가받는 <악마의 신부(新婦)>가 빙기스 공원 야외공연장에서 현대적으로 각색되어 공연되었다. <악마의 신부>는 리투아니아의 고대 민담을 근거로 1974년에 제작된 리투아니아 최대 흥행 영화이자 첫 영화 뮤지컬이다. 이 뮤지컬은 천사가 되었지만 호산나를 노래하는 것을 지겨워한다는 이유로 땅에서 살도록 명령을 받은 장난꾸러기 악마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악마는 풍차 방앗간의 딸과 사랑을 추구하는데,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유쾌하고 비극적인 장면 속에 리투아니아 시골풍경이 모두 담겨 있다. 공연장에 나온 관람객 2만여명은 30여년 전을 회상하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사진/ 자라세이 시에 온 율리야·테레사 쌍둥이 자매(8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빌뉴스 옛 시가지의 넓은 세레이키쉬케이 공원과 게디미나스 성 주변에는 행사기간 중 하루종일 노랫소리와 춤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외에서 온 리투아니아 민속앙상블 250개가 곳곳에 자리잡고 각 지방 민속노래와 춤을 공연했다. 이들 주위에서는 띠를 짜는 등 민속예술 장인들이 솜씨를 뽐냈다. 대부분 민속앙상블은 남녀노소로 이루어졌다. 전통의상을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들이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에서 수세기의 리투아니아 문화가 주변 강대국의 억압 속에서도 고스란히 자손 대대로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고대부터 리투아니아인은 혼자 노래하는 것보다는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들은 남들이 자신들의 노래를 들어주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함께 노래 부르는 것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1579년 세워진 유서 깊은 빌뉴스대학교 정원도 캉클레스의 아름다운 선율과 관람객들의 뜨거운 시선으로 가득 찼다. 이날 70개 음악학교, 5개 음악고등학교, 2개 음악대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이 캉클레스 대연주를 했다. 캉클레스는 현악기로 리투아니아의 민속음악을 특징짓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다. 보리수, 단풍, 떡갈나무 등으로 만들며 0.1∼1mm 굵기의 철사가 현(鉉)을 이루고 있다. 현의 수는 다양하다. 작은 캉클레스의 장중한 합주 소리를 들으니 소수민족의 몸 속에 꿈틀거리는 민족에 대한 높은 자긍심을 헤아릴 수 있었다. 

노을이 아직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여름밤, 4500명이 참가한 노래와 춤 공연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캉클레스를 비롯한 민속악기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춘하추동을 주제로 다양한 춤들이 선보였다. 봄철에 타는 그네가 한국의 단오절을 연상케 해 가슴에 와 닿았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봄철에 그네를 타면서 그해의 성공도를 예측한다. 즉, 자기가 구른 그네의 높이가 그해의 성공도를 말해준다. 여름철 숲 속의 요정들이 치는 나무 방망이 소리는 꼭 한국의 옛 어머니들이 두드리는 빨래 방망이 소리 같아 몹시 정겨웠다. 나막신을 신고 추는 춤도 압권이었다.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이번 노래축제는 과거와는 달리 7일간이나 지속되었다. 마지막 날이 민다우가스가 왕으로 즉위한 지 750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라 의미가 더욱 컸다. 이날 주제도 ‘조국을 위한 왕관’으로 정했다. 이날 오후 많은 국내외 단체들이 마지막 행사인 대합창 축제에 참가하기 위해 대성당 광장에서 빙기스 공원까지 장관을 이루며 거리행진을 해 연도에 나온 많은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서 갈채를 받았다. 이 합창에는 어린이 합창단 220개, 성인 합창단 200개, 오케스트라 71개 등 모두 1만8천명이 참가했다. 웅장한 소리가 늦은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어갔다. 

노래축제를 통해 민족문화의 전통을 면면히 잇고자 하는 리투아니아인의 노래 사랑과 함께 민족애와 조국애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노래축제는 리투아니아 민족 정체성의 최고 문화표현으로 자리잡고 있다. 노래축제의 중요성을 인식한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발트 3국은 최근 유네스코에 이 노래축제를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되면 노래축제는 한층 높은 위상을 정립하고, 국내외로부터 더 많은 문화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69호 2003년 7월 2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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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에선 최근 애견이 사람을 무는 사건 빈발해… 위험한 개의 소유 및 확산 금지 법안도 준비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최근 리투아니아는 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개가 사람을 물어 큰 상처를 입히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애견이 골칫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지난 5월27일 리투아니아의 유일한 항구도시이자 3대 도시인 클라이페다에서 일어났다. 미국산 피트불 테리어가 9개월 된 여자 어린이를 물어 숨지게 한 것이다. 어린이의 부모는 돈을 벌기 위해 지난 3월부터 멀리 노르웨이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곧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비보를 접하게 돼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더구나 어린이를 문 개는 부모가 애지중지하면서 태어날 때부터 6년 동안 기른 개였다. 


사진/ 애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리투아니아 아이들. 최근 개에 물려 9개월 된 여자아이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9개월 된 여자 어린이 숨져 

사고 당일의 모습은 이랬다. 그날 아침 할머니는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먹이고 있었다. 주위에는 개가 거닐고 있었다. 손녀는 무심코 빵 조각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빵조각을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는 순간, 옆에 있던 개가 아이의 목덜미와 머리 뒷부분을 물었다. 할머니가 고함치며 개를 손녀로부터 떼려고 애썼으나 소용이 없었다. 개는 꽉 문 입을 열지 않았다. 부엌문으로 개를 세게 짓누르자 그때서야 손녀를 놓아주었다. 할머니의 애타는 도움 요청에 이웃 주민들이 몰려왔고, 구급차도 도착했다. 하지만 손녀는 이미 거친 숨을 멈춘 뒤였다. 

‘누아라스’ 동물보호센터 직원들도 급히 출동해 개에게 수면제 주사를 놓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뒤 개의 이상증세를 발견할 요량으로 개 보호소에 데려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개는 깨어나지 못했고 다음날 죽은 채 발견되었다. 당사자는 물론 이웃사람들도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사고를 낸 개는 사람들과 다정하게 지냈고 어린이들도 잘 돌봐왔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울 때는 가까이 달려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위로해주기도 했다. 개를 잘 알고 있던 한 이웃사람은 이 기이한 현상을 축적된 우울증과 시기심이 한순간에 폭발한 때문으로 분석했다. 1년 전 자신을 몹시 아껴주던 할아버지가 사망하자 우울해졌고, 이어 할머니가 손녀에게 더 관심을 보이자 시기심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리투아니아에서 피트불 테리어가 사람을 공격해 상처를 입힌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9살짜리 어린이의 다리를 물어 중상을 입힌 적도 있다. 4년 전에는 학교로 가던 10살 어린이를 물어 머리·얼굴·사지 등에 중상을 입혔다. 이 개는 곧이어 18살 아가씨와 그를 구하고자 달려든 아버지를 물었다. 나중에는 자신의 주인까지 물어 결국 동물병원에 실려갔다. 이처럼 최근 개가 사람을 무는 사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자 개 공포심이 리투아니아 전역을 감싸고 있다. 빌뉴스에서는 5살 어린이가 옆집 개에게 심하게 물려 다리뼈가 부러지고 온몸에 상처를 입었다. 얼마 뒤 파네베지스에서는 같은 5살 어린이가 언니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개에게 공격당해 코와 윗입술이 심하게 뜯겼다. 긴급 출동한 의료인들이 뜯겨나간 부분을 찾았으나 허탕을 쳤다. 알고 보니 개가 모든 것을 삼켜버렸던 것이다. 그 개는 그날 저녁 집주인에게 사살당했다. 

개 호텔은 문전성시 

사진/ 리투아니아에서는 재갈이 물려지지 않은 개가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플룽게에서는 한 남자 어린이가 개의 공격을 받아 거의 죽다시피했다. 카우나스에서는 아주 온순한 개가 주인의 78살 어머니 손을 물어 심한 상처를 입혔다. 그는 평소 개에게 자주 밥을 주었고, 개도 그를 잘 따랐다. 사고 당일 개에게 고기 뼈다귀를 주기 위해 가까이 가는 순간, 바람이 세게 불어 뼈다귀가 담긴 봉지가 땅에 떨어졌다. 이것을 주우려는 찰나 개가 손을 문 것이다. 

이처럼 평소 친근한 애견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하는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자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개에 대해 경계심을 넘어 공포심마저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특히 다소 사나운 개를 기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가 언제, 어디서,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부 개주인들은 자신의 애견을 집에서 기르는 것을 포기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클라이페다에 위치한 개 호텔인 ‘누아라스’에는 개를 맡기러 온 사람들이 평소보다 다섯배나 늘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대부분의 개주인들은 그동안 온갖 정성을 쏟아 길러온 개들을 맡기면서 눈물을 흘리며 생이별을 하고 있다고 ‘누아라스’ 관계자는 전했다. 그는 사람들이 실제 이상의 과장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비극적인 사건은 흔히 개보다는 주인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고, 개의 행동은 대개 주인의 행동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2001년 5월 위험한 개의 소유·이동·판매·조련·사육 등에 관한 법을 새로 도입했다. 이 법에 따르면 개 소유자는 관할 관청에 등록해야 하고, 내무부에서 마련하는 교육강좌를 이수해야 하며, 개 등록증과 예방주사 확인증을 항상 소지해야 한다. 특히 위험한 개를 집에서 기르려면 별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등록되지 않은 위험한 개의 소유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사진/ “오랫동안 우리 도시를 더럽히는 것을 그냥 내버려둘 것인가?”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판이 도심 개 배설물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문제는 가령 클라이페다에는 약 3천 마리의 애견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제로 등록되어 관찰을 받는 개는 681마리에 지나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거리에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개라도 광견병 유무를 알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개 관리 비용도 만만치 않다. 개 등록비가 10리타스(약 4천원)이고, 달마다 맞혀야 하는 예방주사비가 5리타스(약 2천원)다.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개주인들은 등록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탓에 클라이페다에서는 평균적으로 연 300여명이 개에 물려 병원치료를 받는다. 

도심은 개 배설물 천지 

일반적으로 개 소유자는 벌금만 물고 극소수 피해자만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의원인 알로이자스 사칼라스는 현재 법안 수정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리투아니아에 위험한 개의 소유 및 확산을 전적으로 금지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재갈을 물리지 않고 맹견을 산책시키는 주인에게 중한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이들은 이렇게 엄격하게 법을 집행해야 개 공격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개 등록비를 독일처럼 개의 위험성 정도에 따라 차등으로 물리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다른 한편 개 배설물 처리도 골칫거리다. 위험한 개를 관리하는 문제와 더불어 개 배설물 처리 문제도 점차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녹지대가 많은 도심에 개주인들이 개똥을 그대로 방치해놓아 도시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보는 사람들에게 심한 불쾌감을 주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의 파리처럼 개 화장실을 따로 두든지, 체코 프라하처럼 개똥 전용 쓰레기통을 설치하지는 못할지라도 개주인들이 책임지고 배설물을 수거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69호 2003년 7월 2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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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고기 먹기 운동’벌이는 리투아니아 사람들… 축제 열어 지역경제에 활력 불어넣기도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우리나라 속담에 무엇인가를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가리켜 “까마귀고기를 먹었나”라는 말이 있다. 정말 까마귀고기를 먹으면 잘 잊어버릴까. 이 속담대로라면 건망증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나 잊으려고 애쓰는 사람 모두에게 까마귀고기가 특효약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든 아니든 주위에 까마귀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러니 이는 “까맣게 잊었다”는 말을 까마귀의 까만색에 빗대어 나온 속담일 것이다. 

민족 서사시에 까마귀 먹었다는 기록도 

사진/ 까마귀 요리법은 수백 가지에 이른다. 가장 쉽고 맛있는 요리법은 끓여서 당근과 함께 오래 달이는 것이다.


리투아니아에서도 까마귀고기를 먹는다는 말은 지금까지 전혀 듣지 못했다. 더욱이 리투아니아 사람들도 까마귀고기 먹는 것을 비정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일부 사람들이 까마귀고기를 즐겨 먹는다는 사실이 언론에 알려져 큰 화젯거리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까마귀고기를 전통적으로 먹어왔다는 사실이 문헌을 통해 밝혀졌다. 

옛 음식풍습인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을 주창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전직 검사출신인 안드류스 구진스카스(45)다. 그는 13년 전 우연히 늙은 사냥꾼으로부터 까마귀를 사냥해 까마귀고기 요리를 장만하는 법을 배웠다. 까마귀고기를 시식해보니 너무 맛이 좋아 이후 계속 먹어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했다. 처음에는 “같이 까마귀고기를 먹었다는 말을 다른 사람, 특히 아내에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차차 까마귀고기에 대한 주위의 편견이 사라졌고, 이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동호회도 결성되었다. 

18세기 후반에 쓰여진 크리스티요나스 도넬라이티스의 리투아니아 민족 서사시 <메타이>(사계)에 왕이 농노에게 까마귀 사냥을 명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역사학자에 의하면 1721년 프리드리히 왕은 농작물 피해를 막기 위해 농노들에게 까마귀 12마리, 참새 12마리를 의무적으로 사냥할 것을 명했다. 귀족들은 이보다 더 많은 양을 사냥해야 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사냥한 것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맛을 보다가 먹게 되었다. 

이는 과거 리투아니아의 성탄절 전야 전통음식 중 하나가 참새고기 갤런틴(고기의 뼈를 뽑고 향미를 넣어 삶아 국물과 같이 응결시킨 찬 음식)이었고, 봄철 방목시기에 주로 먹은 음식이 까마귀고기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겨울철엔 참새 잡기가 쉽고, 봄철엔 까마귀 잡기가 쉽기 때문이다. 옛 소련은 봉건시대에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곤궁해서 까마귀를 먹었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 가르쳤다. 물론 잦은 전쟁과 질병 등으로 가난이 닥쳤을 때 까마귀고기를 먹었겠지만, 이는 <메타이>에 나오는 “시골 곡간에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이 넘쳐났다”라는 기술과 배치된다. 

어쨌든 현대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까마귀고기 먹는 것을 별미로 바라보는 것보다 우선 역겨워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까마귀고기 먹기 동호회의 노력으로 이제 이러한 시각이 점점 사라지고 주민들은 조상들이 즐겨 먹던 음식을 하나둘씩 맛보기 시작한다. 구진스카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한 단계 한 단계 실행해가고 있다. 일단 그는 까마귀에 얽힌 농담, 민담, 사냥 및 요리법 등에 관해 곧 책을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요리 먹으면 여권과 비자 준다 

사진/ 파크뤄위스군 까마귀 축제 참가자들이 ‘HAV(해학·맥주·까마귀) 공화국’ 여권까지 발급받아 공개적으로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까마귀 사냥철은 보통 5월 하순이나 6월 초순이다. 이때가 초봄에 부화된 어린 까마귀들이 둥지에서 나와 나뭇가지에 앉아 비행을 막 배우는 시기다. 구진스카스에 의하면 까마귀는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다섯 생물 중 하나로 다 자라면 잡기가 아주 어렵다. 미리 감지하고 하늘 높이 날아가버리기 때문이다. 바람이 아주 세게 분 뒤 숲 속에 가면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날지 못하는 어린 까마귀를 솔방울 줍듯 주워올 때도 있다. 총을 쏴서 잡기도 하고, 나무를 흔들어 떨어지는 까마귀를 잡기도 한다. 발트해 연안에 있는 큐르슈 지방에서는 그물로 잡기도 한다. 

구진스카스는 까마귀가 농사에 피해를 준다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잡은 까마귀 위 속에 있는 곡식알을 “하나둘” 세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많아 더 이상 셀 수 없었다. “곡식 한알이 빵 하나다”라고 말하면서 그는 농민들이 자신에게 감사의 표시뿐 아니라 총알이라도 지급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도시의 쓰레기더미 위에서 먹이를 찾고 있는 까마귀가 연상돼 까마귀고기가 인체에 해로울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는 어린 까마귀의 위 속 내용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신의 확신을 대신한다. 

까마귀 가죽을 깃털과 함께 그대로 벗겨내는 데는 불과 몇분밖에 안 걸려서 닭요리를 장만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쉽다. 내장을 드러내고 찬물에 식초와 함께 담가놓는다. 구진스카스는 까마귀 요리법을 수백 가지나 알고 있다. 가장 쉽고 맛있는 요리법은 끓여서 당근과 함께 오래 달이는 것이다. 기름에 튀겨도 된다. 그는 “까마귀고기는 맥주 안주로 최고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올해부터 구진스카스는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을 공개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리투아니아 중부 북쪽에 위치한 파크뤄위스군과 손잡고 지난 6월7~8일에 까마귀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에 공무원, 유명인사, 언론종사자, 유지 등 300여명을 초청해 까마귀고기 시식회를 열었다. 특히 ‘바르나스’(까마귀라는 뜻)라는 성을 지닌 사람들도 초청되었다. 이 이색적인 모임을 취재하기 위해 행사장은 국내외의 많은 취재진들로 붐볐다. 

파크뤄위스군은 농업이 주된 사업이었으나 경쟁력을 점점 잃어가자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안으로 이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지역은 리투아니아에서도 해학(Humoras)과 맥주(Alus)로 유명하다. 여기에 까마귀(Varnas)를 덧붙여 매년 여름 ‘HAV공화국’을 선포하고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이다. 요나스 워자파이티스(58) 파크뤄위스 군수는 “이제 농업에는 기대하기 힘드니, 까마귀 축제를 우리 군의 유명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지역경기를 살리고자 한다”고 자신의 구상을 피력했다. 

“어린 까마귀는 최고의 맛” 

사진/ ‘까마귀고기 먹기 운동’ 주창자인 안드류스 구진스카스가 축제를 위해 까마귀를 사냥하고 있다. 

참석자 대부분은 처음 먹어보는 까마귀고기를 닭고기·토끼고기·오리고기 등과 비교하면서 맛이 아주 좋다고 평했다. ‘까마귀’라는 성을 가진 부부는 “처음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에 겁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전혀. 우린 26년간 매일 서로 맛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미 까마귀고기가 맛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고 답해 이 지역 사람들의 해학스러움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비타우타스 유르가이티스(45·수의사)는 “한마디로 우리 선조들이 먹었던 까마귀고기는 완벽한 음식이다. 까마귀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선 정신과의사를 방문해야 할 것이다. 맛은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지만 어린 까마귀고기는 최고다”라고 극찬했다. 

이날 까마귀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HAV공화국 여권을 발급받았고, 먹었음을 증명하는 비자도 받았다. 이제 이들은 더 이상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이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조상들이 먹었던 음식을 먹는 떳떳한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까마귀고기 먹기를 주창하는 구진스카스는 “까마귀고기를 먹는 것에만 그치지 말자. 까마귀는 서로 상대방의 눈을 쪼지 않는 신사의 새다. 우리도 서로 도우면서 화목하게 살아가자”라고 강조한다. 

물론 까마귀 관광상품의 성공 여부에도 큰 관심이 있지만, 이 옛 음식 풍습이 되살아나 머지않은 장래에 까마귀고기가 스스럼없이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날이 올까 사뭇 궁금해진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66호 2003년 7월 2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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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국가들, 유럽연합 가입 묻는 찬반투표 실시… 리투아니아의 진땀 나는 투표 독려 작전 

지난 4월16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동구권과 지중해 주변 10개국의 신규가입을 정식으로 승인했고, 관련국가 수반들은 이 가입조약에 서명했다. 서명은 해당 국가 국민으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유효하게 된다. 2004년 5월1일 가입할 예정인 10개국은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키프로스다. 

과반수 안 되면 무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적 재건과 군사적 위협해소 등을 위해 1952년 6개국(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이 오늘날 유럽연합의 기초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정식으로 발족했다. 1957년 로마조약 체결로 유럽경제공동체와 유럽원자력공동체가 설립되었다. 1973년 영국, 덴마크, 아일랜드가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해 회원국은 9개국으로 확대되었다. 1981년 그리스, 1986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입하여 회원국은 12개국으로, 1995년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이 가입하여 다시 15개국으로 확대되었다. 

요즈음 동구권은 정식 가입을 위한 마지막 단계인 자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국민투표가 나라마다 연이어 이루어지고 있다. 후보국 중 가장 먼저 국민투표를 실시한 국가는 지중해에 있는 몰타였다. 지난 3월8일 투표참여율이 92.5%로 지극히 높았지만 53.5%으로 가까스로 유럽연합 가입에 찬성했다. 3월23일 슬로바키아는 60% 투표참여율에 89.61%가 대대적으로 지지했다. 이어 4월12일 헝가리는 46.5%의 저조한 투표참여율이었지만 83.76%가 찬성했다. 

과반수 미만의 헝가리의 투표참여율은 국민투표를 앞둔 리투아니아에 커다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리투아니아 헌법에 의하면 과반수가 참여하지 않으면 국민투표가 자동으로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 리투아니아 정부기관과 정당, 비정부단체 등 유럽연합 지지자들은 대대적인 홍보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도 “부모님, 저를 위해 투표하세요”라며 학교마다 홍보행사를 개최했고, 거리행진을 하기도 했다. 

5월8일 빌뉴스 대성당 광장에는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는 가수들의 무료 야외 노래공연이 열렸다. 유명가수 안드류스 마몬토바스는 “리투아니아를 유럽연합에 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을 리투아니아에 가입시키자”라고 말해 관람객으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한 관람 시민 마르티나 암브로자이테는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는 반드시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며 가입을 확신했다. 

국민투표 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66.3%가 가입을 지지하고, 13.3%만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투표율만 50%가 넘으면 리투아니아의 가입은 당연시되었다. 투표참가율을 높이기 위해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례적인 조처를 취했다. 투표일을 5월10∼11일 이틀로 정했고, 투표시간을 아침 6시에서 저녁 10까지로 늘렸다. 투표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아쉬 발사바우’(나는 투표했다)라고 쓰인 스티커를 가슴에 달아주었다. 또한 전국으로 방송되는 텔레비전 방송화면 밑에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투표참여율을 표시하게 했다. 

투표하면 음료수·초콜릿 드려요 

유례없는 홍보운동을 편 뒤 5월10일 첫째 투표일의 결과는 리투아니아 전국을 침통하게 했고, 사람들은 좌절감에 빠졌다. 5월8일 노래공연장에 역대 대통령이 모두 나와 투표참여를 촉구할 때 롤란다스 팍사스 대통령의 등장에 휘파람을 불며 냉대하던 모습이 필자에게 떠올랐다. 투표결과 23.02%가 투표에 참여했다. 이는 아주 비관적이었고, 다음날에도 이런 식으로 간다면 이번 국민투표는 무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사태가 예상외로 심각하게 전개되자, 5월10일 밤 팍사스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텔레비전에 나와 “무관심을 버리고 투표하러 오기를 충심으로 부탁한다. 자신과 리투아니아의 미래를 위해 투표하러 오라. 1990년 우리가 최초로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을 때처럼 지금 이웃 나라인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기타 국가들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정부가 가입조약에 서명했지만 최후결정은 바로 여러분 손에 달렸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첫쨋날 저조한 투표참여율에 충격을 받은 리투아니아 대형 유통업체인 빌냐우스 프레키보스 마르케트는 기발한 투표참여 유인책을 마련했다. 전국에 산재한 직영매장인 미니마, 메디아, 막시마, 트마르케트에서 투표에 참여한 사람이 다른 물건과 함께 리투아니아 맥주 500cc 한병, 1.5ℓ 음료수 한병, 세탁세제 한 봉지 혹은 리투아니아 생산 초콜릿 한개를 살 경우 가격에 관계없이 이를 1젠타스(한화 약 4원)에 팔기로 했다. 이 유인책으로 둘째 투표일인 5월11일 각 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텔레비전 화면 자막으로 내보낸 실시간 투표참여율 소식도 유럽연합 지지자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노력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둘쨋날 오전에도 여전히 투표율이 저조하자 텔레비전을 시청하던 올가 체스나우스키에네는 다급하게 전화기를 잡고 아직 투표하지 않은 일가친척, 친구들에게 “미래를 위해” 투표하라고 호소했다. 이날 오후쯤 투표참여율이 거의 50%에 다가서자 사람들의 얼굴에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첫쨋날 투표참여 저조로 무산위기에서 벗어나 밝은 표정으로 제노나스 바이가우스카스 선거관리위원장이 이날 저녁 초반 개표결과 압도적으로 가입을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공식 국민투표 결과는 총 63.3%가 참여해 91.04%가 찬성을 했다. 이 압도적 지지에 팍사스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국민이 시민사회의 시험을 통과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지도자뿐만 아니라 국민도 찬성에 몰표가 나온 것에 몹시 놀라워했다. 

근래 리투아니아인들의 정치 무관심이 점점 높아지자 일부 정치인들은 이번 국민투표가 과반수에 미달되어 무산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90년대 초 국무총리로 역임했고 현재 한국 리투아니아 명예영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알렉산드라스 아비샬라다. 수염을 기르는 그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해 동석한 국회의원에게 국민투표 통과 여부를 놓고 애지중지한 수염깎기 내기를 했다. 국민투표가 유효하게 되자 그는 자신의 예측이 잘못되었음을 받아들였고, 비록 장난스러운 약속이지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개적으로 면도를 했다. 

내기에 진 뒤 수염 깎은 정치인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리투아니아의 이번 국민투표 통과는 비슷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이웃나라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후보국 중 최대 인구국으로 리투아니아처럼 저조한 투표율을 우려하고 있는 폴란드에도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앞으로 국민투표 예정일은 폴란드 6월7∼8일, 체코 6월13∼14일, 에스토니아 9월14일, 라트비아 9월20일 등이다. 키프로스는 아직 국민투표 계획을 세워놓지 않고 있다. 

이들 10개국 모두 국민투표를 통과하면 2004년 유럽연합은 25개 회원국으로 역사상 가장 넓은 확대를 이루게 된다. 지중해와 과거 철의 장막에 속한 옛 공산권 국가들이 대거 가입함으로써 유럽연합은 동서간 화합과 안정 속에 공동번영을 꾀하게 된다. 새로운 시장개척, 고용창출, 자유로운 인력이동 등으로 경제성장이 기대된다. 다른 한편 약소민족 문화와 언어의 사멸위기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민족주권 붕괴에 대한 우려가 더욱 커질 것이다. 어쨌든 확대된 유럽연합이 세계 인류의 평화와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하기를 기대해본다. 

* 사진(상): 이번 국민투표에는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투표장에 왔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찬성표를 던졌다.
* 사진(중): 리투아니아 선거관리위원회는 투표한 사람에게 ‘AS BALSAVAU’(나는 투표했다)라는 스티커를 가슴에 붙여주었다. 이 스티커는 투표한 사람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 사진(하): 5월12일 오전 11시 투표참가율 35.38%를 알리는 텔레비전 뉴스. 밑에 있는 큰 자막은 ‘50%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14.62%가 부족하다’는 의미다.


빌뉴스(리투아니아)=글·사진 최대석 | 자유기고가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60호 2003년 5월 29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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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에서 세계 최초로 열린 ‘미스 여죄수’ 선발대회… 수상자들 “출옥하면 연예인 되겠다” 

지난 11월14일 발트해 3국 중 하나인 리투아니아에 특이한 행사가 열렸다. 행사 장소는 수도 빌뉴스에서 북서쪽으로 150km 떨어진 파네베지스시 중심가에 위치한 교도소였다. 이 교도소는 리투아니아의 유일한 여성 전용 교도소다. 영국의 독일의 , 폴란드의 한국의 한국방송, 문화방송 프랑스의 등 60개 언론·방송사가 취재하는 등 이 행사는 리투아니아 국내외로부터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최초로 열린 교도소 ‘미스 여죄수’ 선발대회였다. 

리투아니아 상업 TV방송사 방송관계자는 10월 중순 아주 특이한 발상을 했다. 여성 재소자를 대상으로 미인대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는 소외되고 절망적인 여성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미소를 배우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아루나스 발린스카스 방송 사회자는 말했다. 

뜻밖의 제안을 받은 케스투티스 슬란차우스카스 교도소장은 이 행사가 자칫하면 사회의 웃음거리가 될 것 같아 주저했지만 기획의 진지성과 상금 등을 보아 받아들었다. 이 교도소에는 여성 재소자 367명이 수감되어 있고, 이들은 주로 봉제 노역을 한다. 방송 관계자와 사법당국 고위 공직자가 교도소를 방문하자 여성 재소자들은 처음엔 혹시나 사면이 있을까 하여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미인대회를 기획한다는 소리에 모두 실망했다. 이 행사가 암울한 감옥생활에 다소 위안을 주고 그들의 남은 인생에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데는 3~4일이 걸렸다. 

참가자격에 키, 몸무게, 결혼 여부, 나이 등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단지 중죄를 짓지 않은 재소자에 한하고, 죄명과 본명을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17살에서 31살까지 모두 39명이 신청했다. 1차 서류심사로 16명을 선발했고, 비공개로 진행된 예선에서 8명을 선발했다. “우리는 그렇게 추한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미인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자신은 감옥에 절대로 갈 일이 없다고 약속하지 말라”라고 나데즈다(19)는 결선 진출 소감을 피력했다. 

여죄수 미인대회 결선은 11월14일 오후 3시에서 6시까지 3시간에 걸쳐 열렸다. 이 행사는 다음날 < LNK >를 통해 리투아니아 전역으로 녹화 방송되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아루나스 발린스카스는 “오늘은 리투아니아, 아니 세계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우리는 이 행사가 세계 최초임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케스투티스 슬란차우스카스 교도소장은 인사말에서 “20년 동안 이곳에서 일을 해왔지만 오늘처럼 특이한 일을 해보기는 처음이다. 교도소는 사회의 선과 악 둘 다 반영한다. 처음으로 우리 교도소는 추한 면이 아니라 아름다운 면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170석이 채 안 되는 교도소 강당은 심사위원, 교도관, 언론·방송사 취재진으로 가득 찼다. 장소가 협소해 여죄수 96명만이 제비뽑기로 참관할 수 있었다. 결선 진출에 실패한 한 재소자는 대회 며칠 전 이미 형이 만료되어 출옥해야 했으나, 본인의 부탁으로 교도소에 남아 이 대회를 참관했다. 이들은 처음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으나, 갈수록 긴장이 풀어졌다. 유명가수들의 막간공연 때마다 함께 노래를 부르고 율동에 맞춰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이날 결선에 참가한 여죄수는 모두 8명이었다. 이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빅토리아(17)는 여러 차례 다른 도시에 심문을 받으러 다니느라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실제로 7명이 경쟁했다. 이들 중 라우라(20)는 4개월 된 아들, 사만타(21)는 1년9개월 된 딸과 함께 교도소에서 생활한다. 참가자들은 3주 동안 노역 대신 하루 4시간씩 무대 걷기, 노래, 연기 등을 지도받았다. 의상은 리투아니아 일류 디자이너가 디자인했고, 분장도 전문가들이 맡아했다. 

장소가 교도소이고 대상이 재소자라는 것만 빼고는 일반적인 미인대회와 크게 다른 바 없었다. 먼저 야회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자기 소개를 했다. 이어 자기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역사적 인물이나 유명인을 묘사하는 연기를 했다. 이날 클레오파트라, 마돈나, 카르멘, 제나(Xena), 타트야나(푸슈킨 시의 주인공), 카우보이 등이 등장했다. 

가죽 재킷과 검은색 수영복, 모피 외투와 흰색 수영복은 사회의 어둠과 밝음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리투아니아 유명가수 기티스 파쉬케비추스와 함께 부르는 노래 시합이 이어졌다. 특히 잉가(31)의 노래솜씨는 대단해 출옥 뒤 파쉬케비추스와 함께 공동 앨범 제작을 꿈꾸고 있다. 마지막으로 결혼식 신부복 시합이 있었다. 

심사위원회는 리투아니아 방송·예술 분야 권위자 다섯명으로 구성됐다. 우선 네티즌 1만여명이 참가해 뽑은 ‘미스 포토’상은 나데즈다가 받았다. 영예의 대상인 ‘미스 진’에는 사만타가 선발되어 왕관과 상금 4000리타스(약 140만원)를 받았다. 상금 2500리타스(약 88만원)의 ‘선’에는 잉가, 상금 1천리타스(35만원)의 ‘미’에는 타트야나가 선발됐다. 나머지는 각각 500리타스(약 18만원)를 받았다. 

이 상금과 왕관은 수상자가 출옥할 때까지 은행에 예치된다. 영구 소유하는 ‘미스 여죄수’의 왕관은 은(銀)에다 비취와 석영으로 장식되어 있다. 광물학자들은 은은 정화를 의미하고, 석영은 악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주고, 비취는 죄수에게 자유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한 대회 관계자는 “이 상금액은 출옥하는 재소자에게 조금이나마 경제적 보탬이 될 것이고, 또한 미인대회 입상으로 얻은 인기로 이들이 쉽게 일자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2년을 더 감옥살이해야 하는 사만타는 출옥하면 사진모델이 되고 싶어한다. 사만타는 “믿기 어려운 이 상이 내 인생을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키길 바란다. 하루빨리 자유를 찾고 싶다. 솔직히 이 왕관보다 자유가 나에겐 더 귀하다”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네티즌 사이에 가장 큰 인기를 얻은 나데즈다는 “2년 뒤 출옥하면 화장술을 배우고 결혼해 아이를 가지고 싶다.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행사를 끝까지 지켜본 케스투티스 슬란차우스카스 교도소장는 아주 만족해했고, 내년에도 미인대회 개최를 허락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번 대회가 성공했으니 반대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사회자이자 이번 행사 핵심기획자인 아루나스 발린스카스는 “이번 행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렸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현재 ‘미스 유럽 여죄수’의 개최에 대한 몇몇 제안을 받아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미인대회를 놓고 네티즌 간에도 열띤 논쟁이 붙었다. “정말 아름다운 여성들이네. 좋은 일로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슬플 뿐. 어떤 죄로 몇년 형을 받아 감옥살이를 하는지를 공개하는 것이 공정한 투표를 위해 필요하다.”(ID xx) “이들의 말이 진솔하기를 믿고 싶다. 이 행사가 이들의 암울한 오늘을 위안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바란다.”(ID Ilona) “가장 아름다운 여죄수는 자신의 아이를 목 졸라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마 나중에는 가장 아름답게 똥을 누는 국회의원 선발대회가 열릴 수도 있겠다.”(ID Monika) “이들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대회를 지켜보는 심정을 방송사는 한번 생각해보았는지 묻고 싶다.”(ID Laura) “이 대회는 인간존엄성을 격하시키는 꼴이다. 방송사는 시청자을 끌기 위해 별짓을 다한다.”(ID Austeja) 

사진(상): 파네베지스 교도소에서 열린 '미스 여죄수' 선발대회. 미스 여죄수 진 사만타(가운데), 선 잉가(오른쪽), 미 타트야나(왼쪽).

사진(하): 가죽 재킷을 걸치고 수영복 심사에 임하는 여죄수들. 이날 의상은 리투아니아 유명 디자이너가 디자인했다.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36호 2002년 11월 28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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