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페란토'에 해당되는 글 99건

  1. 2013.10.16 한국인들 스마트폰으로 국제 대회 생중계
  2. 2013.07.14 한국시: 한용운 - 알 수 없어요 - 에스페란토 번역
  3. 2013.07.03 한국시: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 에스페란토 번역
  4. 2013.05.10 한국시: 최남선 - 해에게서 소년에게 - 에스페란토 번역
  5. 2013.04.29 에스페란토 한국노래 - 18: 애국가 Korea himno (3)
  6. 2013.02.06 Unua ĝemeliĝo de ĉina kaj korea lernejoj
  7. 2013.02.06 Internacia Esperanto-Renkontiĝo de Meditado
  8. 2012.12.19 원불교 종법사 신년법문 2013 - 에스페란토 번역본
  9. 2012.11.26 에스페란토 한국노래 - 17: 동요 "반달"
  10. 2012.11.08 에스페란토 한국노래 - 16 강남스타일
  11. 2012.04.15 원불교 종법사 대각개교절 법문 2012 - 에스페란토 번역본
  12. 2011.12.24 원불교 종법사 신년법문 2012 - 에스페란토 번역본
  13. 2011.09.29 에스페란토 청년 공동세미나 30주년에 부쳐 (1)
  14. 2010.01.17 배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 (10)
  15. 2009.12.25 원불교 종법사 신년법문 2010 - 에스페란토 번역본
  16. 2009.10.08 블로거, 노벨상 수상자를 인터뷰하다 (6)
  17. 2009.06.02 10년 연금절약으로 식당에 초대한 교수 (1)
  18. 2009.01.12 원불교 종법사 신년법문 - 에스페란토 번역본
  19. 2008.11.05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2)
  20. 2008.10.07 LA CIRKLO n-ro 11 - 원불교에스페란토회 기관지 제11호
  21. 2008.10.07 LA CIRKLO n-ro 10 - 원불교에스페란토회 기관지 제10호
  22. 2008.09.29 에스페란토 한국노래 - 12: 고향의 봄
  23. 2008.08.11 에스페란토로 원불교 선을 배우다 (4)
  24. 2008.07.05 21C 세계 평화의 언어 에스페란토 (8)
  25. 2008.06.05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 (1)
  26. 2008.05.30 통역 없는 세계 언론인 대회
  27. 2007.12.31 Novjara mesaĝo de la ĉefmajstro en 2008
  28. 2007.12.12 에스페란토 한국노래 - 10: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29. 2007.12.11 에스페란토 한국노래 - 9: 조용필의 "친구여"
  30. 2007.12.10 에스페란토 한국노래 - 8: 키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
에스페란토2013.10.16 07:26

10월 12일부터 15일까지 일본 도쿄에서 국제 대회가 열렸다. 일본 에스페란토인들이 해마다 개최하는 에스페란토 대회가 올해 100주년을 맞이했다. 대회 참가자 규모는 약 1000명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이 여전히 심각한데도 외국에서 40명이 참가했다. 이 중 한국 참가자는 9명이다. 

*에스페란토란
1887년 폴란드의 안과의사 자멘호프가 창안한 국제공용어. 변음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배우기가 매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에스페란티스토', '에스페란토인'라고 부른다)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할 것을 추구하고 있다. 현재 120여개 국가에서 수백만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초기에 처음 소개되어 현재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원광대, 경희대 등에 강좌가 개설돼 있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에스페란토문화원 등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유럽에 살고 있지만, 일본에 에스페란토인 친구나 지인들이 적지 않다. 가까운 한국에 살고 있다면 꼭 참가하고 싶은 대회이다. 보통 대회가 끝나면 에스페란토 잡지를 통해서 글이나 사진으로 일본 에스페란토 대회 소식을 접한다. 이젠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눈부신 발전을 이룬 정보기술 덕분이다. 한국 참가자들이 스마트폰을 활용해 대회를 생중계하기로 했다. 카카오톡에 대회 그룹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소식을 알려주었다. 때론 문자로, 때론 영상으로, 때론 음성으로 말이다. 일본 도쿄 국제 대회장에 몸만 없을 뿐이지 마치 내가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 사진출처: 카카오톡 [토쿄-100a JK] Katoka grupo

6시간 시차로 인해 아침에 일어나면 수십 개의 새로운 소식이 내 기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가자 개인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개회식, 일본 헌법 9조 분과모임, 베트남 참가자 음식 소개, 일본 다도 시연, 아시아 에스페란토 활동 분과모임, 에스페란토 웅변 경연 등 대회 내용을 생생히 알게 되었다.

컴퓨터로 문서작성이 편해졌고, 
인터넷으로 수많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스마트폰으로 어디서든지 이렇게 생중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인들의 극성스러운(?) 스마트폰 활용을 통해 일본에서 열린 국제 대회를 유럽에서 현장감있게 즐길 수 있었다. 스마트폰 덕분에 참으로 상상하기 힘든 세상의 발전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느껴보았다. 이번 한국인들의 국제 대회 스마트폰 생중계를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역시 한국이야!"라고 감탄했다.

다음 주에는 한국 에스페란토 대회가 인천에서 열린다. 스마트폰으로 지켜볼 이 대회가 벌써 기대된다.

Posted by 초유스

아래는 국제어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한용운의 시 <알 수 없어요>이다.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 垂直의 波紋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처서 옛 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Nescieble

Verkis HAN Yongwoon kaj tradukis CHOE Taesok.

Kies piedspuro estas sterkulifolio defalanta en silento, 
estigante vertikalan ondon en aero eĉ sen vento?

Kies vizaĝo estas ĉielo blua pretervidiĝanta tra la fendo de timiga nigra nubo 
forpelata de la okcidenta vento post la teda longa pluvo?   

Kies spiraĵo estas nekonata aromo, el verda musko sur arbo profunda sen floro, 
tanĝanta kvietan ĉielon super antikva pagodo?

Kies kanto estas meandra rivereto fluanta delikate el nekonata fonto, 
sonigante noĉitan randon de ŝtono?

Kies poemo estas vespera ruĝo bele ornamanta la subiran sunon, 
surtretante la senliman maron per kiellotusfloraj kalkanoj 
kaj tuŝante senfinan ĉielon per kieljadaj manoj?

Post la brulo resta cindro reiĝas oleo. 
Kies nokton gardanta febla lampofajro ja estas mia brula koro nescianta pri ĉeso?

Posted by 초유스

요즘 국제어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에게 한국 현대시를 알리기 위해 시번역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이다. 이 시를 번역하는 데 yousim.co.kr의 <만해 시에 대한 단상>을 참고했다. 특히 <나는 나룻배(2,3), 당신은 행인(3.2)>의 율격적 구조에 대한 지적은 번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과연 에스페란토에서는 이러한 율격적 특징을 표현할 수 있을까? 힘들어 보였지만,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래는 짧은 이 시를 놓고 하루 종일 고치고 또 고친 결과물이다. 영어와 에스페란토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비교해볼 수 있도록 먼저 영어 번역본(김재현 교수와 Ronald Hatch)을 소개한다.  

The Ferryboat and the Traveller

I am a ferryboat. A traveller, you tread on me
with muddy shoes. I take you aboard to cross the river.
With you held in my arms, I go across the currents,
deep, shallow, or rapid.
If you do not turn up, I wait from dawn to dusk,
despite the wind, rain or snow.
Yet once you're crossed the river, you do not look back to me.
But I believe you will return one day.
I am a ferryboat. You are a traveller.

나룻배와 행인
Boato kaj iranto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Estas mi boat’,
vi estas irant’.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Vi forte kun kotaj ŝuoj min piedpremas.
Vin mi en brakoj premas kaj mi iras trans akvon.
Se mi en brakoj premas vin, transiras mi ĉu torenton, ĉu profundon, ĉu malprofundon.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Se vi ankoraŭ do ne alvenas, mi jen en venta blovo, jen sub pluv’ aŭ neĝo de nokto ĝis tago sopire atendadas vin. 
Se vi nur akvon transiras, vi foriras eĉ sen returne rigardeti al mi. 
Sed tamen mi scias ja nur tion, ke vi alvenos iam ajn.
Mi, vin sopire ĝisatendante, fariĝas kaduka tagon post tago.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Estas mi boat’,
vi estas irant’

20년 전에 이 시를 처음 번역했을 때에는 이런 율격적 구조를 알지 못하고 그저 뜻을 어떻게 잘 전달할 것인지만 중요시여겼다. 20년 전 번역본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1994년 번역본 2013년 번역본
Mi estas boato.
Vi estas pasanto.

Vi min per la kotaj piedoj surtretas.
Vin ĉirkaŭprenante trans akvon mi iras.
Se mi jam vin prenas ĉirkaŭe,
mi iras trans akvon profundan, rapidan
aŭ malprofundetan.

Se vi ne alvenas,
de nokto ĝis tago mi vin do atendas
eĉ en la ventblovo, neĝado kaj pluvo.
Post kiam trans akvon vi iras,
sen al mi rigardi vi tuje foriras.
Sed scias mi nur, ke vi venos en ia ajn tempo.
Vin mi atendante fariĝas kaduka en ĉiu momento.

Mi estas boato.
Vi estas pasanto.

Estas mi boat’,
vi estas irant’.

Vi forte kun kotaj ŝuoj min piedpremas.
Vin mi en brakoj premas kaj mi iras trans akvon.
Se mi en brakoj premas vin, transiras mi ĉu torenton, ĉu profundon, ĉu malprofundon.

Se vi ankoraŭ do ne alvenas, mi jen en venta blovo, jen sub pluv’ aŭ neĝo de nokto ĝis tago sopire atendadas vin.
Se vi nur akvon transiras, vi foriras eĉ sen returne rigardeti al mi.
Sed tamen mi scias ja nur tion, ke vi alvenos iam ajn.
Mi, vin sopire ĝisatendante, fariĝas kaduka tagon post tago.

Estas mi boat’,
vi estas irant’.


Posted by 초유스

모두들 한 번쯤은 읽어보았을 중 하나가 바로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이다. 1908년 <소년>지에 발표된 시로 한국 문학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전 시간의 정형성에 벗어난 한국 최초의 신체시로 평가 받고 있다. 구시대의 잔재를 부수고 새로운 문물의 시대를 열망하는 작가의 뜻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어 시 번역은 어렵고 어렵다.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 기관지> 관계자의 부탁을 받아서 앞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시들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하는 일을 틈틈이 하게 되었다. 첫 번째 작품이 <해에게서 소년에게>이다.

뜻 전달에도 충실하고, 또한 한국어 원문이 가지고 있는 율격적 구조(3.3.5조의 3음보; 4.3.4.5조의 4음보, 4.3.4.4.3조나 그 변조의 5음보)를 에스페란토 번역문에서도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았다(혹시 번역에 관심 있는 분을 위해 에스페란토 번역문의 각연마다 율격적 구조를 괄호로 기재해 놓았다).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De maro al knabo
                                                                                                       Aŭtoro: CHOE Namseon 
                                                                                                        Traduko: CHOE Taesok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泰山)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Ĉo……lsok ĉo……lsok ĉok ŝŭa……a*.
Mi batas, disrompas kaj fordetruas. (3,3,5)
Alta monto kiel Taj**, roko kiel la tuta domo, (4,3,4,5)
kio do ĉi tio, kio ĉi tio? (3,3,5)
Demandante tondre, ĉu la fortegon mian scias vi aŭ ne, (4,3,4,4,3) 
mi batas, disrompas kaj fordetruas. (3,3,5)
Ĉo….lsok ĉo……lsok ĉok tjurrung kŭak.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者)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Ĉo……lsok ĉo……lsok ĉok ŝŭa……a.
Mi tute ne havas timon pri ajno. (3,3,5)
Kiu havas plej grandajn forton kaj regpotencon sur tero, (4,3,4,5)
ne povas moviĝi eĉ li antaŭ mi. (3,3,5)
Sian forton ne povas al mi uzi eĉ la aĵo plej granda. (4,3,4,4,3)
Ja al mi, ja al mi, ĝuste antaŭ mi. (3,3,5)
Ĉo….lsok ĉo……lsok ĉok tjurrung kŭak.

3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者)가
지금(只今)까지 있거든 통지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秦始皇)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亦是)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Ĉo……lsok ĉo……lsok ĉok ŝŭa……a.
Se ulo neriverencinta al mi (3,3,5)
ĝis nun estas ankoraŭ, anonciĝu kaj alrigardu. (4,3,4,5)
Qin Shi Huang***, Napaljun****, ĉu li estas vi? (3,3,5)
Kiu, kiu, kiu do? Submetiĝos certe ankaŭ vi al mi. (4,3,4,4,3)
Se estas konkurul’ kun mi, tuj venu. (3,3,5)
Ĉo….lsok ĉo……lsok ĉok tjurrung kŭak.

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고만 산(山)모를 의지(依支)하거나
좁쌀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르면서 나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者),
이리 좀 오나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Ĉo……lsok ĉo……lsok ĉok ŝŭa……a.
Kiu kun apogo sur montangulet’, (3,3,5)
aŭ kun milegrajno da insulo kaj manplato da ter’ (4,3,4,5)
ene de l’ loko sin ŝajnigas grava (3,3,5)
kaj fiere sin sola konsideras tre sankta, (4,3,4,4,3)
venu li ĉi tien kaj min rigardu. (3,3,5)
Ĉo….lsok ĉo……lsok ĉok tjurrung kŭak.

5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너르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是非),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저따위 세상(世上)에 저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Ĉo……lsok ĉo……lsok ĉok ŝŭa……a.
Jen estas unu por mia parulo — (3,3,5)
tiu blua ĉiel’ pro granda, longa kaj vasta kovro. (4,3,4,5)
Ĝi estas sendube sama kiel ni. (3,3,5)
Disputeto, batalo, ĉiuspeca malpuraĵo ne estas (4,3,4,4,3 변조의 5음보)
samkiel tiu hom’ en tiu mondo.(3,3,5) 
Ĉo….lsok ĉo……lsok ĉok tjurrung kŭak.

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世上)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中)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膽)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才弄)처럼 귀(貴)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少年輩) 입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소년, 1908. 11>

Ĉo……lsok ĉo……lsok ĉok ŝŭa……a.
Malamas mi tiujn mondon kaj homon, (3,3,5)
tamen estas el ili sola aĵo aminda por mi: (4,3,4,5)
kuraĝa kaj pura knabaro juna (3,3,5)
belkondute tre ĉarme venas kaj sin premas sur mian sinon. (4,3,4,4,3)
Tuj venu, kaj kisos mi vin, knabaron. (3,3,5)
Ĉo….lsok ĉo……lsok ĉok tjurrung kŭak.
<Knabo, 1908.11>

* Korea onomatopeo, imitanta plaŭdon.
** Monto troviĝanta en la ĉina provinco Shandong.
*** Fondinto de la ĉina dinastio Qin. 
**** Napoleono.

인공어로 알려진 에스페란토가 과연 문학어로서 제대로 그 기능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원문의 뜻도 그대로 살리고, 율격적 구조까지도 나타낼 수 있다고 한다면 에스페란토는 문학어로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된다.

Posted by 초유스

지난 토요일 처외삼촌 가족이 모처럼 우리 집을 방문했다. 이유는 곧 있을 중요한 학교 음악회 공연 연습 때문이다. 처외삼촌 가족 4명과 우리 가족 2명이 함께 한 조를 구성해 참가한다. 처외삼촌 가족은 아코디언(처외삼촌), 플루트(딸), 기타(아들), 캉클레(처외숙모)를 연주하고, 우리 가족은 기타(아내)와 노래(딸 요가일래)가 맡았다. 

* 이날 두 가족이 모여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아코디언 연습을 하고 있던 처외삼촌이 갑자기 내 방으로 와서 "한국 애국가"를 아코디언으로 연주해보게 악보를 좀 보여달라고 했다.

언젠가 애국가를 에스페란토로 번역할 때 악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컴퓨터에서 악보를 찾아보았다. 보니까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때가 바로 딱 13년 전인 2000년 5월 22일이었다. 먼저 애국가 한국어 가사와 영어 번역본(출처)을 소개한다. 

애국가 가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 세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 영어 번역본
Until the East Sea's waves are dry, 
(and) Mt. Baekdusan worn away,
God watch o'er our land forever! Our Korea manse! 

Like that Mt. Namsan armored pine, standing on duty still, 
wind or frost, unchanging ever, be our resolute will. 

In autumn's, arching evening sky, crystal, and cloudless blue, 
Be the radiant moon our spirit, steadfast, single, and true. 

With such a will, (and) such a spirit, loyalty, heart and hand, 
Let us love, come grief, come gladness, this, our beloved land!

Refrain:
Rose of Sharon, thousand miles of range and river land! 
Guarded by her people, ever may Korea stand!

13년 전 에스페란토 번역본을 살펴보았다. 당시 최선을 다해 번역했겠지만, 지금 와서 보니 미흡한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당시 악보에 있는 쉼표(,)를 무시한 것이 제일 큰 실수였다. 즉 악보에 "백두산이"와 "마르고" 사이에 쉼표(,)가 있다. 이 쉼표를 기준으로 각각 두 마디에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분리돼야 한다. 또한 당시 압운(각운)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가사를 포함한 에스페란토 시에서 운은 아주 중요하다.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나름대로 잘 한다는 사람으로서 애국가를 제대로 번역해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만사를 뒤로 미루고 이날 오후부터 밤 늦게까지 애국가를 다시 번역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아래는 13년 전과 지금의 번역본이다.    

Korea Nacia Himno (2000년 5월 22일)
Ĝis sekos Donghe kaj disfrotos sin Bekdusan,
Dio helpas kaj protektas. Vivu! nia patri’!

Ke pinoj kvazaŭ kirasitaj nun en Namsan
ne ŝanĝiĝas de veteroj, estas nia spirit’.

Sen nubo altas la ĉiel’ vasta en aŭtun’,
brila luno estas nia koro kun plensincer’. 

Ni amu tutfidele kun ĉi spirit’ kaj kor’
nian karan landon en feliĉo kaj en sufer’.

[Rekantaĵo]
De hibiskoj plenas bela trimillia land’!
Ni koreoj gardu la eternon de Koreland'.
Korea Nacia Himno (2013년 5월 22일)
Ĝis akvo de Donghe sekos, Bekdusan viŝos sin,
Dio helpas kaj protektas; vivu! nia patri’! 

Ja kiel sur monto Namsan la kirasita pin’
neŝanĝiĝo malgraŭ prujno estas nia spirit’.

La aŭtunĉielo vastas kaj altas sen nubar’;
brila luno, nia koro kun sindona lojal’.

Do amu ni tutfidele kun ĉi spirit’ kaj kor’
nian propran karan landon en sufero kaj ĝoj’.

[Rekantaĵo]
Kun hibiska trimillio belnatura land’!
Ni, koreoj, Koreion gardu por la ĉiam’.

1. Donghe: la Orienta Maro inter Koreio kaj Japanio.
2. Bekdu: nomo de la plej alta monto (2774 metrojn) en Koreio.
3. Namsan: monto troviĝanta en Seulo.
4. Hibisko: korea nacia floro floranta tutlande de la frua somero ĝis la malfrua aŭtuno.
5. Lio: korea mezurunuo de longo. Unu lio estas ĉirkaŭ 400 metroj. Trimillio estas la tuta longo de Koreio de la sudo ĝis la nordo.


이번 번역본에서 어려움은 '바람 서리'이다. 한정된 음표수로 인해 둘 다를 넣지 못하고, 하나만 선택해야 했다. '바람 서리'는 풍우상설(風雨霜雪: 바람, 비, 서리, 눈)의 준말로 여겨진다. 소나무는 풍우상설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항상 그 푸름을 간직한다. 낙엽은 가을이고, 가을에는 서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 서리를 선택했다. 

또 다른 어려움은 첫 소절이다. 첫 번째 음과 두 번째 음의 높이와 길이를 보면 꼭 못갖춘마디의 시작과 같다. 번역 가사에도 강약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첫 번째가 강박자이지만, 실제로는 두 번째가 더 강하게 보인다고 음악을 전공하는 지인들이 조언해주었다.

아무튼 13년 전보다는 더 만족스럽다. 하지만 10년 뒤에 보면, 고치고 싶은 부분이 또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번역은 얼핏 쉬워 보이지만, 창작만큼이나 어렵다. 특히 시나 노래 번역은 훨씬 더 많은 공력이 필요하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3.02.06 18:47

이 글은 국제어 에스페란토로 쓴 중국 내몽고 티안쟈빙 고등학교와 경남 원경 고등학교의 자매결연 소식을 담고 있습니다.
 
Internacia Esperanto-Renkontiĝo de Meditado

Ofte internacie ĝemeliĝas urboj, universitatoj, asocioj, kluboj kaj similaj. Tia fenomeno ne mankas ankaŭ en Esperantujo. Tamen unuafoje en Koreio okazis ĝemeliĝo de du lernejoj pere de Esperanto.

El la du lernejoj unu estas la supermezlernejo Tianjiabing de Baotou en Interna Mongolio, aŭtonoma regiono de la Ĉina Popola Respubliko kaj la alia estas la supermezlernejo Wonkyung de Kyungsangnamdo en la Korea Respubliko. 

Ĉefaj motoroj de la ĝemeliĝo estis LIU Baoguo (Ĉinio) kaj HAN Sook-hee (Koreio), kiuj instruas Esperanton en sia respektiva lernejo. Ili konatiĝis unue per retbabilejo kaj priparolis eventualan ĝemeliĝon, renkontiĝinte en la en la 45a Konferenco de ILEI en Kunming, Ĉinio. Ili evoluigis la aferon. Okaze de la 3a ILEI-Seminario de Orienta Azio (ISOA) la delegacio de la ĉina lernejo vizitis Koreion.

En la 24a de januaro 2013 MA Xin, vicdirektoro de la ĉina lernejo kaj PARK Young Hoon, direktoro de la korea lernejo, subskribis la oficialan ĝemeliĝan interkonsenton en la sporta halo de la supermezlernejo Wonkyung. La ĝemeliĝan ceremonion ĉeestis ne nur ambaŭlandaj esperantistoj, sed ankaŭ 130 geinstruistoj de la 10 alternativaj lernejoj, kiuj apartenas al la eklezio de ŭonbulismo. Gratulparolis GONG Xiaofeng, prezidanto de la Ĉina Ligo de Esperantistaj Instruistoj kaj estrarano de ILEI.

Do, Esperanto ludis gravan rolon por ĝemeligi la du lernejojn. Ambaŭ lernejoj konsentis regulajn vizitojn kaj interŝanĝojn.

raportas CHOE Taesok


* Ĉiuj fotoj: HAN Sook-hee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3.02.06 14:41

이 글은 국제어 에스페란토로 작성한 '원불교 에스페란토 국제선방'에 관한 것입니다.
 
Internacia Esperanto-Renkontiĝo de Meditado

En Iksan, Koreio, okazis de la 18a ĝis la 21a de januaro 2013 la 8a Internacia Esperanto-Renkontiĝo de Meditado (IERM). 

Organizis ĝin la Esperantista Asocio de Ŭonbulismo (EAŬ) sub la aŭspicioj de la Internacia Fako de Ŭonbulismo, koredevena religio. Ĉeestis 38 esperantistoj el Ĉinio, Hungario, Japanio, Koreio, Litovio kaj Novzelando. Ĉi-foje rimarkinda estis nombro de la partoprenantoj el la kontinenta Ĉinio. Ili estis 7 el kvin provincoj.

Ĉiutage antaŭ matenmanĝo okazis fizika ekzercado kaj sidmedito sub la gvido de la ŭonbulana pastro AVDEJEV Miĥail kaj ĉiuvespere antaŭ enlitiĝo ĉeestantoj 108-foje riverencis kun pento, preĝo, danko kaj bondeziro.

Dum la renkontiĝo prelegis OH Soonmo (Kontrolmetodoj de atento kaj senatento), Makoto Shiotani (Oomoto kaj Esperanto), MÁRKUS Gábor (Interna harmonio kaj ekstera paco), ŬON Ikson (Ŭonbulismo), LIM Tong Hyeok (Esperanto-similaj lingvoj), Simone Robert (Montgoriloj kaj travivaĵoj en Ugando), kaj LEE Youkyoung (Kulturo de la regno Baekje). Apartan atenton kaptis la prelego de MÁRKUS Gábor, kiu iniciatis sidmediton kaj riverencadon en Budapeŝto post sia partopreno en la 7a IERM en 2012.

Interesa estis spertado de korea kulturo. CHO Myung-ja prezentis la korean tradician ludon ‘jutnori’ kaj ĉiuj ludis en gaja kaj venkema etoso. HAN Sook-hee montris kiel kuiri la korean manĝaĵon ‘tokmanduguk’ kaj ĉiuj kune faris pastbuletojn kaj sate vespermanĝis la komune kuiritan supon. Koreaj junuloj instruis dancon de la pasintjare tutmonde populariĝinta korea kanto ‘Oppan Gangnam-stilo’.  HUĜIMOTO Hideko ceremonie regalis partoprenantojn per japana teo.

Oni ne nur meditis, sed ankaŭ ekskursis. La renkontiĝejo situas en la tereno de la centra sidejo de ŭonbulismo, en kiu troviĝas diversaj religiaj konstruaĵoj. Perpieda ekskurso tra la tereno donis la ŝancon pli konatiĝi kun ŭonbulismo kaj ĝia historio. Dum la duontaga ekskurso oni ĝuis neĝkovritan belegan pejzaĝon en kaj ĉirkaŭ la budhana templo Nesosa. Sekve oni admiris la nekutiman klifon Ĉesokgang konsistantan el sedimenta rokaĵo, kies rokaj tavoloj estas surmetitaj unu sur la alia kvazaŭ kuŝantaj libroj. Post la ekskurso tre bongustis loka rizokaĉo kun konkuloj en la vespera bankedo.

Per la renkontiĝo esperantistoj kaj ekleziuloj interŝanĝis bonajn impresojn respektive pri ŭonbulismo kaj Esperanto. Partoprenantoj vizitis la ĉefmajstron Gjongsan, la ekleziestron de ŭonbulismo, kaj li substrekis, ke ŭonbulanoj kaj esperantistoj kunlabore konstruu pacan kaj esperplenan mondon. Partoprenantoj vizitis ankaŭ la eksan ĉefmajstron Ĝŭasan, kiu fervore pledas por Esperanto ekde la 1980-aj jaroj. Li opiniis, ke se la neŭtrala, facile lernebla kaj pacocela Esperanto iĝos la dua lingvo por ĉiuj nacioj, tio estos la plej granda bonfaro al la homaro, kaj inspiris al la ĉeestantaj esperantistoj kuraĝon kaj strebon. En la dimanĉa darmkunveno MÁRKUS Gábor rakontis al pluraj centoj da ŭonbulanaj ekleziuloj, ke pere de Esperanto li konatiĝis kun ŭonbulismo kaj danke al Esperanto povis prezenti ŭonbulismon en la hungara katolika gazeto. Tio sendube vekis ĉe ili favoron al Esperanto.

La 9a IERM okazos de a 17a ĝis la 20a de januaro 2014 en Iksan. La Esperantista Asocio de Ŭonbulismo planas organizi similan aranĝon de meditado en Eŭropo okaze de la 100a Universala Kongreso de Esperanto. Interesiĝantoj turniĝu al LEE Jungkee (esperanto@saluton.net).

Raportas CHOE Taesok
▲ Post la solena inaŭguro la ĉeestantoj memorfotiĝas.

▲ Prelegas MARKUS Gabor el Hungario.

▲ Esperantistoj vizitis la ĉefmajstron Gjongsan, la ekleziestron de ŭonbulismo.

▲ Perpieda ekskurso tra la tereno de la centra sidejo de ŭonbulismo

▲ Ĉiuj preparas pastbuletojn por la korea manĝaĵo 'tokmanduguk'.

▲ Esperantistoj vizitis la eksan ĉefmajstron Ĝŭasan, kiu estas konata kiel fervora pledanto por Esperanto.

▲ Majstro Ĝŭasan, la eksa ekleziestro de ŭonbulismo

▲ Ekskurso en la templo Nesosa.

▲ Ekskurso en la klifo Ĉesokgang

▲ Oni ludas la korean tradician ludon 'jutnori. 

Ĉiuj fotoj: JEON Dae-bong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2.12.19 06:59

Novjara mesaĝo de la ĉefmajstro de ŭonbulismo   

Mondon plenan de bonkoreco!

Jam eklumiĝis la nova jaro esperplena.  Mi elkore preĝas, ke la estonteco de la tuta kredantaro, la tuta popolo kaj la tuta homaro estu plena de la bonfaro kaj lumo de la darmkorpa budho, la kvar bonfaroj. 

La pasinta jaro estis la turnopunkta jaro, en kiu enlande kaj eksterlande formiĝis novaj gvidantaroj por konstrui veran civilizon en nova epoko.  Ankaŭ nia eklezio nove elektis mastrojn de kredo, altrusimo kaj meritado kaj vigle ekpaŝis al la centjara jubileo de ŭonbulismo.  Tamen en la nuna mondo estas montoj da urĝe solvendaj taskoj.  Sekiĝis bonkoreco en homa menso, profundiĝis breĉoj inter sociklasoj kaj serioze damaĝiĝis naturmedio en la terglobo, kaj tio alportas enormajn katastrofojn.

Ĉi tiaj problemoj ne estas sub respondeco de unu aŭ du gvidantoj, sed estas taskoj solvendaj per saĝo kaj decidemo de ni ĉiuj.  Jen mi proponas kelkajn praktikajn rimedojn por solvi ilin.  

Unue, ni kultivu virtecon origine havatan.

Ni ĉiuj havas virtan kompaton en la menso.  Ĝi nomiĝas virteco kaj estas la fundamenta kampo de feliĉo, kiun ni ĉiuj persone havas.  Tamen ĉi tiu virteco sekiĝas pro kruela konkurenco kaj egoismo.  Plie, materialoj estas abundaj pro scienca evoluo, sed plimalgrandiĝas feliĉo.    

Necesas al ni la saĝo kaj kuraĝo por trovi kaj kultivi virtecon, kiun ni mem havas.  Por tio ni devas liberiĝi de troa deziro kaj haltigi menson nur eksteren kurantan.  Ni devas konformigi nin al la origina naturo de nia interno, por ke virteco elmontriĝu spontane.  Ni devas trovi la fonton de bonfaro, kiu estas ene de ni, kaj fariĝi mastroj de riĉa kompato.  Tiukaze, ni fariĝos la enkarniĝo de kompato, posedos bonfaron kaj ĉiam ĝuos paradizan vivon.

Due, ni vastigu varman bonkorecon.

Supozeble, popola vivo estos pli malfacila en ĉi tiu jaro.  Ju pli malfacila estas la mondo, des pli necesas bonkoreco, kiu varme malsekigas sekan menson de homoj.  Homoj estas bonkoraj al siaj proksimuloj.  Se ni pli kaj pli vastigos la barilon, la tereno de paradiza mondo vastiĝos.    

Ankaŭ la fundamento de moralo, kiun ni de longe gravigas, estas kontrui mondon plenan de bonkoreco.  Ju pli malbonkora estas la mondo, des pli ni devas prizorgi mizerajn najbarojn, dividi suferojn kun ili kaj esperigi ilin.  Cedante unu paŝon, ni varme kaj malseke volvu sekajn mensojn de najbaroj kaj fariĝu mastroj, kiuj konstruas mondon plenan de varmkoreco.   
 
Trie, ni atingu sukceson per kunlaboro.

Sennombraj vivuloj kaj senlimaj estaĵoj ekzistas sub kunlaboro.  Ĉiuj ne povas vivi unu sen la alia, tial eblas senti la principon, ke doni estas ĝuste ricevi kaj ricevi estas ĝuste doni.  Ni devas mem plene kompreni la principon de reciproka dono-ricevo kaj krei rilaton de reciproka vivigo.  Do nun estas la tempo, kiam necesas la spirito de granda kunlaboro por kunfortigi la centron de familio, socio aŭ ŝtato.

Ni alvenas al tre grava tempopunkto por profunde kontempli ne nur rilatojn inter homoj, sed ankaŭ rilatojn inter homoj kaj naturo.  Ni alfrontas enormajn katastrofojn tial, ĉar ni traktis naturon, kiu estas la fonto de la vivo, kiel evoluigan objekton sub homcentrismo.  Ni devas ŝanĝi tian rilaton kun naturo al tiu de reciproka vivigo kaj al tiu de bonfaro.  Ne nur iu sola, sed ankaŭ ni ĉiuj kune konstruu la mondon de sukcesa kunlaboro.       

Novjaran matenon en la 98a ŭonbulana jaro (2013)
Gjongsan,
ĉefmajstro de ŭonbulismo

Posted by 초유스

윤극영 선생님이 작사 작곡한 동요 반달은 한국인들이 아주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다. 초등학교 5학년생인 딸아이는 리투아니아 음악학교에서 이 노래를 요즘 배우고 있다. 


이번 주말 이 노래를 에스페란토로 한번 번역해보았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나무 토끼 한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Sur ĉiela laktovoj' en la blanka ŝip'
estas unu leporet‘ kaj cercidifil‘.
Malgraŭ manko de remil‘ kaj de la mastar‘
iras vi, glate iras al okcidenta land'.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Iros vi trans laktovoj' al la nuba land'.
Kien sekve iros vi post la nuba land'?
Kiu lumas per ekbril' de la malproksim', 
stelo lumturo estas. La vojon trovu vi.

17_halfmoon_duonluno.pdf



Posted by 초유스

지난 일요일 우리 집에 한국어 수업을 받으러 리투아니아 고등학생 두 명이 왔다. 휴식 시간에 대화를 나누던 중 강남스타일 이야기가 나왔다.

"학교에서도 강남스타일이 유명해요?"
"물론이죠. 쉬는 시간에 학교 방송이 자주 틀어줘요. 많은 학생들이 교실이나 복도에서 말춤을 춰요."
"강남스타일 내용은 알고 있나요?"
"당연히 모르죠. 그저 sexy lady만 알죠."

월요일 저녁 빌뉴스대학교가 개설한 에스페란토 강의에 초대받아 참가했다. 현지인 에스페란토 교수가 외국인 에스페란티스토을 초대해 대학생들에게 에스페란토의 실용성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다. 강단에서 대학생들을 상대로 에스페란토로 말하는 동안 학생들 표정이 초겨울이라서 그런지 밝지가 않았다.

"다들 강남스타일 노래를 들어보셨나요?" 
"예~~~~~~~~"

강남스타일 한마디에 갑자기 강의실에 생기가 돌았다.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가 사는 한국 서울에서 왔습니다. 강남은 서울의 한 구이지요."

* 스페인 그란카니라아 플라야델잉글레스 해변에서 말춤 추는 마르티나와 요가일래

1990년대초 유럽 사람들에게 자기소개할 때 "서울 올림픽의 나라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강남스타일의 나라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소개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에스페란토는 1887년 발표된 인공어로 현재 120여개국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글 번역기는 64번째 언어로 에스페란토를 추가했고, 위키백과에는 17만개 에스페란토 기사가 작성되어 있다. 이 기사량은 세계 각국 언어 중 27위이다.
[관련단체: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서울에스페란토문화원, lernu.net]  

에스페란토 강의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조그마한 다짐을 해보았다. 명색이 국제어 에스페란토가 전공인데 강남스타일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해 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아래 번역본이다.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
커피 한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 있는 여자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그런 반전 있는 여자

나는 사나이
낮에는 너만큼 따사로운 그런 사나이
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
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그래 바로 너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

Hey, sexy lady,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 
Hey, sexy lady,  옵 옵 옵 옵
Eh eh eh eh eh eh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웬만한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나는 사나이
점잖아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사나이
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사나이 
그런 사나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hey 그래 바로 너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그래 너 그래 바로 너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볼까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
강남스타일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

Hey, sexy lady,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 
Hej, sexy lady,  옵 옵 옵 옵
Eh eh eh eh eh eh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Baby baby 나는 뭘 좀 아는 놈 
You know what I’m saying
오빤 강남스타일
Eh eh eh eh eh eh

Hey, sexy lady,  옵 옵 옵 옵
오빤 강남스타일 
Hej, sexy lady,  옵 옵 옵 옵
Eh eh eh eh eh eh
오빤 강남스타일 

Opan Gangnam-stil' (Mi kun Gangnam-stil'), 
Gangnam-stil'  

Tage tre agrable milda kaj humana ino
Scianta ĝui tason da kafo eleganta ino
Ĉe l' veno de la nokto koro-varmiĝanta ino
Do kun tia malo ino

Mi ja estas vir'
En tago, tiom milda, kiom vi estas, tia vir' 
Eĉ antaŭ malvarmiĝo kafon tuj eltrinkanta vir'
Ĉe l' veno de la nokto koroeksplodanta  vir'
Tiuspeca vir'

Belaspekta kaj amindega
Jes vi, hej, jes ĝuste vi, hej
Belaspekta kaj amindega
Jes vi, hej, jes ĝuste vi, hej
Ĉu ni iru de la nuno ĝis la fin'?  

Opan Gangnam-stil'
Gangnam-stil', op op op op 
Opan Gangnam-stil'
Gangnam-stil', op op op op
Opan Gangnam-stil'.

Hej, seksa ino, op op op op
Opan Gangnam-stil'
Hej, seksa ino, op op op op
Ej ej ej ej ej ej


Ĉastaspekta, sed dum ludo tre ludema ino
La harojn en la ĝusta tempo malliganta ino
Kovrinta sin, sed ol sen vesto pli seksveka ino
Do kun tia senso ino 

Mi ja estas vir'
Ĝentilaspekta, sed dum ludo tre ludema vir'
En la ĝusta tempo absolute freneziĝanta vir'
Kun ideoj multe pli malglataj ol muskoloj vir'
Tiuspeca vir'

Belaspekta kaj amindega
Jes vi, hej, jes ĝuste vi, hej
Belaspekta kaj amindega
Jes vi, hej, jes ĝuste vi, hej
Ĉu ni iru de la nuno ĝis la fin'?  

Opan Gangnam-stil' 
Gangnam-stil', op op op op
Opan Gangnam-stil'
Gangnam-stil', op op op op
Opan Gangnam-stil'.

Hej, seksa ino, op op op op
Opan Gangnam-stil'
Hej, seksa ino, op op op op
Ej ej ej ej ej ej

Jen kurhom', jen super li flughom'
Bebo, bebo, mi do ioscia hom'
Jen kurhom', jen super li flughom'
Bebo, bebo, mi do ioscia hom'
Scias vi pri l' dir'
Opan Gangnam-stil'
Ej ej ej ej ej ej

Hej, seksa ino, op op op op
Opan Gangnam-stil',
Hej, seksa ino, op op op op
Ej ej ej ej ej ej
Opan Gangnam-stil'

'오빤'도 번역하고자 했으나, '옵 옵 옵 옵 오빠'으로 이어지는 연결을 없애는 것이 아쉬워 그대로 살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보에 에스페란토 가사가 최대한 일치하도록 번역했다. 참고로 강남스타일 가사가 다른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되었을까 궁금한 사람을 위해: 러시아어, 영어 1 2
에스페란토 가사 악보 ->

gangnamstyle_psy.pdf


노래 번역에 적지 않은 공력을 쏟았다. 세계가 춤추는 강남스타일 가사를 이제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쉽게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 도움되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2.04.15 19:39

Vojo al mensa paradizo 

Sotesano, nova budho de nova epoko, iluminiĝis pri la vero de unu cirklo, je kiu la universo estas plena, kaj klarigis la grandan vojon de unu cirklo, kiu savos ĉiujn vivulojn.  Tial hodiaŭ la tago de granda iluminiĝo kaj eklezia fondo estas la tago de granda saĝo kaj la tago de granda bonfaro.

 La homaro ankoraŭ ne liberiĝis de militoj, malsanoj kaj malriĉoj.  Eĉ materia civilizo, kiu alportis al ni oportunaĵojn, male fariĝis jugo kaj malliberigas ĉiujn vivulojn.   

Nia vivo do senfine vagas tra labirintoj kaj ni, vivuloj fariĝas vojperdintoj kaj ĉagreniĝas flosante sur sufermaro.  Trankvile rigardu al la maro de vivo, en kiu ondoj senĉese fluas.  Tie ondoj de sufero kaj ondoj de plezuro kruciĝas kaj estigas ventojn kaj ondojn, en kio ni vivas baraktante.  Onoj de sufero kaj plezuro, kiuj skuas nian vivon, komenciĝas de la nescio pri la vero, de karma malhelpo kaŭzita en la pasintaj vivoj kaj de troa koriklinio al posedo.

Ĉiuj budhoj kaj sanktuloj de la tri tempoj jam instruis al ni kiel eskapi el la ventoj kaj ondoj de sufero kaj plezuro, sed vere malmultaj estas vivuloj, kiuj eskapas el la reto de sufero.  Tio plie bedaŭrigas sanktulojn.  Okaze de la hodiaŭa tago de granda iluminiĝo kaj eklezia fondo, mi ŝatus paroli pri vojo al mensa paradizo, kiun ni, eskapante el la sufermaro de metempsiko, povas atingi per la granda vojo de unu cirklo, kiun Sotesano klarigis. 

 

Unue, ni devas traelporti la nunan suferon.

Neniu rezulto en la mondo estas sen kaŭzo.  Ni devas klare scii, ke la nun havataj ekonomia malriĉo, ĉagreno pro homa rialto kaj fizika malsano aŭ malforto, ĉi ĉiuj suferoj estas rezultoj, kiujn ni konscie aŭ senkonscie kaŭzis de la pasinteco.

Tial, se ni scias, ke la nuna sufero estas la ŝuldo, je kiu ni devas esti nepre kvitaj, kaj estas la malluma tunelo, kiun ni devas trairi por atingi luman mondon, la vojo de sufero povas fariĝi kurtvojo al plezuro.  Ne konsideru malfacila la vojon de ‘sen doloro, sen gajno’.  Se ni kun pacienco kaj atendo serĉas la kaŭzon de sufero kaj kun fido kaj kuraĝo fidele penas, nepre la sufero ŝanĝiĝos al plezuro.

 

Due, ni devas klopodi fari la nun ĝuatan plezuron eterna plezuro.

Ĉio en la mondo ŝanĝiĝas.  Nun ni estas plenaj je plezuro, sed iam ajn sufero povas veni al ni.  Tial anstataŭ esti ebriaj de plezuro, ni kontrolu nin kaj dividu feliĉon kun najbaroj.  Ni bezonas saĝon kaj kuraĝon por tiamaniere akumuli plezuron eterne kaj pligrandigi ĝin.   

Ĝenerale, se homoj troviĝas en plezuraj cirkonstancoj, ili ebriiĝas de la plezuro kaj senkonscie iĝas fieraj kaj maldiligentaj kaj faras tian stultaĵon, ke ili detruas la akumulitan plezuron.  Ni do iluminiĝu pri la principo de karmo kaj pleje penu, por ke la nuna plezuro fariĝu eterna plezuro kaj senlime vasta plezuro.

 

Trie, ni devas kreskigi la darman forton trancendi suferon kaj plezuron.

La fundamenta kaŭzo de sufero kaj plezuro naskiĝas de mensa funkcio.  Se homo trankvilas eĉ pri la nunaj suferaj cirkonstancoj kaj havas esperon por morgaŭ, li estas homo, kiu ŝanĝas suferon al plezuro kaj havas luman estontecon.  Tamen, se homo, eĉ ĝuante la nunan plezuron, malkontentas kaj plendas pro la nepovado plenigi sian deziron, la plezuro ja kaŭzas suferon.

Tial ni devas bone trejniĝi al la darmo de mensuzo, kiu estas la ĉefa el ĉiuj darmoj.  Ni devas havi menson de superulo, kiu, kvankam suferante, ne plendas al la mondo kaj aliaj homoj, nek al la vero.  Ni devas, kvankam plezurante, kultivi la menson transcendi plezuron, kaj kreskigi la darman forton ruli plezuron.  Plie ni devas fariĝi mastro de la paradizo en memnaturo, kiu transcendas suferon kaj plezuron, kaj granda sinkultivanto, kiu ĝuas mensan plezuron kiel budho.  

       

Nun nia eklezio prepariĝas por sia centjara jubileo kaj ĉiuj kredantoj faras ĉian penon por ‘granda albudha ofero por disvastigo de ŭonbulismo’ kaj por ‘celebro de persona spirita atingo’.  En ĉi tiu tempo, se multaj el ni fariĝos budhoj kaj bodisatvoj, kiuj klare iluminiĝas pri vojo al mensa paradizo kaj ĝuas grandan mensan plezuron, tio estos granda ĝojo de la eklezio kaj estos la mondo de bonfaro, kiun la nova budho Sotesano deziris.

Mi deziras, ke tra la senlima tempo ni ĉiuj kutimiĝu al pravaj suferoj kaj plezuroj per darmo kaj eterne ĝuu ilin.   

 

La 28an de aprilo de la 97a ŭonbulana jaro

Gjongsan

Ĉefmajstro de ŭonbulismo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1.12.24 18:30

Novjara mesaĝo:
 
Vojo de gvidanto

 

Jam eklumiĝis la esperplena nova jaro, la 97a ŭonbulana jaro.  Mi tutkore preĝas, ke kun la tuta kredantaro, la tuta popolo kaj la tuta homaro estu la grandaj protekto kaj bonfaro de la darmkorpa budho, la kvar bonfaroj.    

Mi petas, ke plu en la nova jaro perfekte plenumiĝu ‘granda albudha ofero por disvastigo de ŭonbulismo’ kaj ‘celebro de persona spirita atingo’, kaj ĉiuj kredantoj unuanimiĝu por la centjara jubileo de ŭonbulismo.
Ĉi-jare nove elektiĝos gvidantoj de nia eklezio, nia lando kaj gravaj landoj de la mondo.  La mondo ŝanĝiĝas al la komunumo de tergloba vilaĝo kaj do la rolo de gvidanto, kiu kondukas ĉi tiun epokon, fariĝas pli grava ol iam antaŭe.
Tamen ja ne eblas havigi al si lertecon kaj kapablon de gvidanto en mallonga tempo. Ĉiuj laikaj kaj pastraj kredantoj en sia pozicio devas klopodi havigi al si la karakteron kaj virton de gvidanto sur la bazo de ‘Ĉefaj punktoj preparendaj por gvidanto’, kiun Sotesano klarigis en La Fundamenta Instruo.

Unue, gvidanto havu saĝokulon.
Sotesano diris, ke gvidanto pli multe sciu ol gvidato.  Gvidanto devas percepti la sentojn kaj ŝanĝojn, kiujn la popolo deziras, kaj havi kapablon kaj saĝokulon por kunigi la saĝojn de la popolo kaj orienti la popolon.  Ankaŭ en la scia kaj informa socio gvidanto devas vaste akiri diversajn informojn kaj analize distingi iliajn verecon de falseco.  Kaj necesas saĝo por fari ĝustan decidon surbaze de tio.  Do, se la saĝo de gvidanto alfrontas la realon kaj estos malfermita al la estonteco, ĉiuj homoj trankviliĝos kaj la mondo paciĝos.            
Plie, la mondo fariĝos senlime vasta paradizo, se ĉiu gvidanto bazos sin sur la instruoj de sanktuloj, kiuj estas saĝtorĉo por la homaro, profunde studos iliajn dirojn, iluminiĝos pri la funkcia principo de la universo kaj ekvidos la ŝanĝon de la monda popolo.

Sekve, gavidanto havu ardan publikbonan spiriton.
Gvidanto ne estas homo, kiu zorgas pri siaj personaj bono kaj sekureco.  Gvidanto estas homo, kiu en avano direktas sian organizaĵon aŭ grupon kaj havas misian senton por krei publikan bonon, publikan celon, publikan ordon kaj publikan feliĉon.  Tial gvidanto devas esti fervora por dediĉi ĉiujn siajn kapablojn. 
Gvidanto devas atenti kaj atenti, por ke li ne perdu la ekvilibron de publika bono, tirate de persona bono aŭ reprezentante bonon de sia ĉirkaŭmedio nek damaĝu publikan bonon, tro persistante en sia gusto aŭ sia valornormo.    
Gvidanto de luma epoko povas fariĝi vera mastro de publika bono kaj granda mastro de la mondo, nur kiam li ĉefigas publikan bonon, forgesas sin kaj gvidas kun la normo, ke oni metas publikan intereson antaŭ persona intereso kaj laboras juste kaj malegoisme.

Fine, gvidanto devas montri sinceran fidindecon.
Gvidanto kaj gvidato povas diferenci per penso, kutimo kaj celo.  Estas tute klare, ke devas esti fidindeco por unuigi malsamajn homojn, strebi al komuna bono kaj garantii popolan feliĉon.
Fidindeco de gvidanto iom post iom formiĝas depende de tio, kiom lia parolo koincidas kun lia ago, kiom li estas honesta kaj morala, kiom li amas la popolon kaj kiom li poluris sian personecon per tolero kaj modero.  Tial gvidanto devas kultivi personecon bazitan sur moraleco, kaj nur tiam li povos akiri de la popolo fidindecon.
Estas dirite, ke la popola menso estas ĝuste la ĉiela menso.  Kiam gvidanto gardos fidindecon kiel sian vivon, nia socio fariĝos pli honesta kaj nature la ĉiela menso direktiĝos al la gvidanto.

Gvidanto estas la fajra lumo de espero en la popola socio de kunvivo.  Ĉiuj vivuloj kune iras laŭ la fajra lumo.  Tial la saĝokulo de gvidanto fariĝas kilometroŝtono, publikbona spirito malfermas pli vastan vojon, kaj la kun fidindeco irata vojo donas kuraĝon por trabati malfacilojn.  Do ni ĉiuj devas havi ĉi tiujn tri virtojn.  

Novjaran matenon en la 97a ŭonbulana jaro
Gjongsan,
ĉefmajstro de ŭonbulismo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1.09.29 17:38

아래글은 "에스페란토 청년 공동세미나 30주년"에 보내는 에스페란토로 된 축하문입니다.

Salutmesaĝo:

Mi kore gratulas la tridekjariĝon de la Komuna Seminario (KS) kaj dankas la ĝisnun sinsekvintajn junajn esperantistojn, sen kies agado ne eblus la hodiaŭa atingo de la KS, kiu seninterrompe okazis jaron post jaro.  Estas tute hazarda koincido, ke ĉi-jare tridekjara estas ankaŭ mia esperantista vivo.  Do por mi estas duobla plezuro gratuli la jubilean KS-on.

En la unua KS en Koreio mi ne partoprenis kaj nur iom memoras pri la tria KS en Cheonan.  Tamen mi bone memoras pri la 5a KS, kiu okazis en la ĉefsidejo de ŭonbulismo en Iksan.  Tiam min pleje impresis tio, ke 
junuloj kaj koreaj kaj japanaj gaje dancadis laŭ korea tradicia kamparana muziko. 

La 8a KS en 1989 donis al mi signifan motivon por alidirekti mian vivon.  La KS okazis en la junulara gastejo Ĉigasaki en Japanio.  Notinde estas, ke en tiu jaro la korea registaro permesis al siaj civitanoj libere vojaĝi eksterlanden.  Tio heplis al multaj koreaj junuloj partopreni en la KS kaj la nombro de la sesdek koreaj ĉeestantoj estas ĝis nun la plej granda por la KS-oj okazintaj ekster Koreio. 

La tiam ĝuita viva Esperantujo forte impresis min kaj mi decidis pli studi kaj spertiĝi en Eŭropo, kie pli viglas la Esperanto-movado.  Fine mi kreis mian esperantistan familion kaj loĝas en Litovio, en kies pasinta grandduklando naskiĝis la ideo de Zamenhof por krei la neŭtralan internacian lingvon Esperanto.  La KS ŝanĝis mian vivon kaj mi restas ĉiam dankema pro tio.   

Supozeble, la KS estas tia ne nur al mi, sed ankaŭ al multaj aliaj.  Ja per la KS junuloj konvinkiĝas pri la viveco de Esperanto, komunikiĝas en egala sento kun malsamlingvanoj kaj spertas internacian organizadon.  Mi deziras, ke la KS plu prosperu kaj inspiru junulojn.  Vi karaj ĝuu la jubilean KS-on kaj anime mi ĉeestos ĝin.  

CHOE Taesok, prezidinto de KEJ (1989-1990); chtaesok@hanmail.net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10.01.17 09:55

배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가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일 것이다. 아무리 배워도 힘든 것이 외국어이다. 지금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 리투아니아어는 초유스에겐 정말 어렵다. 단어도 쉽게 외워지지도 않고, 정확한 발음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이럴 때 아내의 잔소리는 높아진다. 다행히 옆에 있는 요가일래는 "그래도 아빠는 한국말과 에스페란토를 잘 하잖아!"라고 원군이 되어준다. 90년대초 폴란드어를 좀 배워서 말했다. 슬라브어에 속하는 폴란드어 지식 덕분에 체코, 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지를 여행할 때 초보수준이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게 현지인들과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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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여름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천명이 모여서 세계대회를 개최한다.

언젠가 잠시 한국에 갔을 때 지인의 친구 A의 친구 B가 우크라이나에서 왔다. 지인의 친구 A는 러시아인이고 이들은 에스페란토로 잘 통했다. 그 친구 A의 친구 B가 한국에 가자 A는 자신의 한국인 친구인 초유스의 지인을 소개했다. 그런데 B는 에스페란토도, 영어도 할 수가 없었다. 지인과 B는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때 구원투수는 초유스의 폴란드어였다. 이렇게 배우지 않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외국어라면 손짓 발짓을 보태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을 이를 수 있다. 

지난 1월 11일 영국 BBC 1 TV의 "The One Show" 프로그램이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소개했다. 이 리포트에서 에스페란토에 전혀 지식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에스페란토 문장을 말해주었더니 이들이 쉽게 이해를 했다. 이들은 영어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의 지식으로 쉽게 에스페란토를 이해했던 것이다.  



이때 이해력을 실험한 에스페란토 문장은 다음과 같다.
              Mia filo havas hamstron.
              La hamstro nomiĝas Fred.

              Mia patro havas hundon.
              La hundo nomiĝas Roxy.


지금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유럽언어에 익숙하다면 이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배우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간 의사소통은 참 쉬울 것이다.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1859-1917)는 오랜 기간 동안 리투아니아 대공국 땅이었고 지금은 폴란드 땅에 있는 비알리스토크에서 태어났다. 당시 비알리스토크는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자멘호프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해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했다.

에스페란토는 변음과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가 나고, 품사어미와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배우기가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언어가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쉽게 외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에게 에스페란토를 권하고 싶다.

* 최근글: 딸아이의 첫 눈썹 메이크업에 웃음 절로
* 관련글:
영어 홍수 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에스페란토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9.12.25 06:32

Novjara mesaĝo:
 
Ni renaskiĝu per la menso de la sanktuloj

 

Jam lumiĝas la nova jaro 2010, la 95a ŭonbulana jaro.

Mi tutkore preĝas, ke la tuta ŭonbulanaro, la tuta popolo kaj la tuta homaro estu plene sub la gardo kaj bonfaro de la darmkorpa budho.

En la pasinta jaro multaj homoj maltrankviliĝis kaj suferis pro la monda financa krizo kaj la nova influenca epidemio. Estis feliĉe, ke tia sufero fariĝis averto pri materiala deziro kaj egoismo kaj donis la ŝancon por rekoni la valoron de vivo.

Mian koron premis pligrandiĝantaj konfliktoj pro la manko de komunikiĝo kaj kompreno en ĉiuj sociaj kampoj, sed mi trovis esperon, vidante ke sociaj gvidantoj kaj ĉiuj popolanoj revekiĝas pri moralo kaj zorgas pri sociaj konfliktoj.      

En la eklezio ni kun granda atingo kolektis saĝojn por la centjara jubileo de ŭonbulismo. Ĉiuj gepastroj kaj gelaikoj kunlaboris kaj grande altigis la eklezian statuson en ĉiuj kampoj de edifado, edukado kaj karitato. Naskiĝis pluraj honortitolitoj – debongdo kaj dehobop kaj tio plifirmigis la aspekton de nia eklezio.

Tamen pli kaj pli detruiĝas homara moraleco pro la kateno de materio kaj la kadukiĝo de spirita civilizo en la mondo. Ĉie plu daŭras ĉiaj krizoj kaj konfliktoj.

Sekve nia socio urĝe bezonas la revivigon kaj praktikon de moralo. Ĝuste ĉi tiu revivigo de moralo estas la celo de la spirita disvolvo iniciatita de Sotesano, estas la angulŝtono de danko kaj reciproka helpo kaj estas la bazo de paradiza mondo.     

En la nova jaro ni devas praktiki la menson de la sanktuloj, inkluzive de Sotesano kaj aliaj sekvaj majstroj, kiuj deziris konstrui paradizan mondon. 

 

Unue, ni ĉiumomente rigardu al la menso origine malplena.

Sotesano diris: “Strebu posedi senforman malplenan darmmondon. Ĝongsano diris: “Regu vin, la familion kaj la landon per malplena menso kaj harmoniiĝu kun ĉiuj samideanoj kaj kunvivuloj per malplena menso.”   

Nia menso estas origine malplena kaj ĝi estas perfekta kaj kompleta, justa kaj malegoisma sen alkroĉiĝo al ajna situacio. Kiu bone utiligas malplenan menson, tiu povas posedi malplenan darmmondon, bone regi sin, la familion kaj la landon, kaj harmoniiĝi kun ĉiuj samideanoj kaj kunvivuloj. Tiu ĉi homo estas ĝuste sanktulo libera de bono kaj malbono kaj de profito kaj malprofito.

Tial ni ĉiuj longe daŭrigu nian studon por gardi kaj utiligi nian menson origine malplenan. Tiamaniere ni akiru la forton de la menso kaj prenu ĝin kiel la movan forton de granda mastrumado. Kaj ni pleje strebu al tio, ke ankaŭ aliaj homoj faru liberan kaj grandan mastrumadon.

 

Due, ni fariĝu mastroj ie ajn, kion ajn ni faras.

Ĉiu ajn homo sola estas la honorato. Kvankam multaj trezoroj estas en la mondo, ili estas senvaloraj, se mi ne rekonas ilian valoron. Mi estas la plej nobla ekzistulo neŝanĝebla kontraŭ io ajn. Ni do fariĝu veraj mastroj, kiuj, serĉinte la noblan memon, vivas la suverenan vivon.  

Vera mastro estas tiu homo, kiu scipovas respondeci pri sia vivo. Li estas tiu homo, kiu entuziasme plenumas siajn devojn kaj respondecojn. Li estas tiu homo, kiu en ajna situacio ne kulpigas aliajn homojn, nek plendas al ili, sed kapablas korekti la medion ĉirkaŭ si. Li ne kateniĝas de profito kaj malprofito antaŭ siaj okuloj, sed agas, vidante vaste kaj malproksimen, kaj konsideras la tri mondojn en la dek direktoj kiel sian hejmon. 

Ankaŭ vera mastro neniam pensas pri sia mastreco, kaj tial li servas gaston kiel mastron. Tiel li fariĝas pli granda mastro. Ĉie la mondo nun atendas grandan mastron. Ni ĉiuj renaskiĝu kiel vera mastro sen ajna limo kaj faru grandan dankon. Ni havu la menson de la sanktuloj, per kiu ni povas fari ĉiujn niajn ĉirkaŭulojn veraj mastroj de la mondo.

 

Trie, ni produktu bonfarojn, kio ajn ni faras.

Dum la tuta vivo homo faras multajn laborojn kaj vivas jen ĝoje, jen malĝoje pro iliaj rezultoj. Kontento pri laboro estas tiel granda valoraĵo neŝanĝebla kontraŭ io ajn.

Sotesano diris: “Vivulo ŝajnas fari nur sian laboron inteligente, sed fine li malprofitas. Budho kaj bodisatvo ŝajnas fari nur aliulan laboron stulte, sed fine ili profitas.”

Tio instruas, ke kiam ni faras iun laboron, ni senĉese elfontigu bonfarojn per la laboro, tiel ke la mondo estu plena de bonfaroj.

Se la fonto de bonfaroj sekiĝos, la socio fariĝos malsana kaj la mondo fariĝos ondoplena sufermaro. Male, se ĉiu homo produktos bonfarojn, ne nur li estos feliĉa, sed ankaŭ la familio, la socio, la lando kaj la mondo fariĝos senlime vasta paradizo.

Ni ĉiuj klopodu, por ke nia propra laboro donu helpon al ĉiuj aliaj homoj, kaj por ke ne nur la rezulto de la laboro, sed ankaŭ ĝia procezo konformiĝu al homa justeco. Tiel ni renaskiĝu per la vivo de la sanktuloj, kiuj produktas bonfarojn.

Sotesano diris: “Gravas transdoni penike kaj buŝe mian darmon al la sekvaj generacioj, sed pli gravas ne ĉesigi la aŭtoritaton de ĉi tiu darmo eterne en la estonteco, ĝin praktikante korpe kaj spertante mense. Tiam via merito ne mezureblos.”

Sekvante ĉi tiujn vortojn, en la nova jaro ni serĉu la originan menson, mastriĝu iam ajn kaj ie ajn kaj fariĝu sanktuloj konstruantaj bonfarplenan mondon. 

 

Novjaran matenon en la 95a ŭonbulana jaro

Gjongsan,

ĉefmajstro de ŭonbulismo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9.10.08 08:12

지난 여름 폴란드 비알리스토크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를 취재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의 방에서 서울로 보낼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잠깐 쉬는 동안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때 백발의 한 노인이 거북이 가듯이 느릿느릿 휠체어를 밀고 앞으로 가고 있었다. 모습을 보니 에스페란토 대회 개막식에서 소개된 라인하트 젤튼 교수 부부였다. 그의 아내는 몸이 불편해 휠체어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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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 참가한 젤튼 교수 부부 (가운데 검은색 양복이 젤튼 교수)

젤튼 교수는 게임이론 연구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 공동 수상자(Reinhard Selten, John Harsanyi, John Nash)이다. 게임이론은 경제학, 생물학, 정치학, 컴퓨터공학 등에 활용되는 응용수학의 한 분야이다. 이는 한 개인의 의사결정에서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선택에 의존적인 전략적 상황에서의 행동을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젤튼 교수 부부는 청년시절부터 에스페란토 운동을 활발히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다음날 에스페란토 대회가 열리고 있는 비알리스토크 공과대학교 휴게실에서 이 부부를 보게 되었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혼자 의자에 앉아 있는 젤튼 교수에게 다가가서 몇 가지 질문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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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스: 언제 어떻게 에스페란토를 배웠나?
젤   튼: 기억으로는 1946년 혹은 1947년에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 독일에서는 책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책에서 에스페란토의 16가지 기본문법을 복사해서 혼자 공부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는 데에는 2-3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른쪽 사진 인터뷰에 답변하는 젤튼 교수)

초유스: 60년 이상 에스페란토 활동을 해왔다. 무엇이 그렇게 오랫동안 에스페란티스토로 남아있게 했나?
젤   튼: 프랑크푸르트에서 대학을 다닐 때 에스페란토 클럽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 1959년 결혼했다. 우리는 에스페란티스토 부부이다. 에스페란토 창안자 자멘호프가 추구하고자 한 인류 형제애와 평등, 평화 정신에 공감한다. 특히 에스페란토를 통해 많은 외국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같은 직업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아주 흥미로웠다.

초유스: 에스페란토가 학문활동에 도움을 주었는가?
젤   튼: 직접적 도움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로 된 자료를 읽고 정보를 얻었다. 학문 연구에 전념한 인생의 중반기에는 적극적으로 에스페란토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꾸준히 에스페란토 잡지를 구독해서 읽었다.

초유스: 2007년 유럽의회에서 유럽연합 회원국 국민들이 제1 언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 에스페란토냐?
젤   튼: 제1 언어가 아니고 제1 외국어다. 제1 언어는 해당국의 모국어이고, 제1 외국어로 에스페란토를 배울 것을 권했다. 유럽연합의 경제통합은 기대보다도 훨씬 빨리 이루어졌다. 하지만 진정한 통합은 유럽인들 자신이 유럽인이라고 느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국어를 제외한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필요하다. 어느 언어도 다른 언어에 비해 우월성을 지녀서는 안 된다. 그 언어는 배우기가 쉬워야 하고, 또한 어느 민족에도 속하지 않아야 한다. 그 조건을 갖춘 언어가 바로 에스페란토이기 때문이다.

초유스: 에스페란토의 미래는 어떠한가?
젤   튼: 에스페란토가 지니고 있는 장점 때문에 에스페란토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장점 중 하나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다른 언어들을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에스페란토를 배우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이 더 쉽다는 실험결과도 나왔다. 어느 정도 수준까지 에스페란토를 쉽게 배우고, 이렇게 습득한 언어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언어들을 배우는 것이 수월하다. 에스페란티스토들 중에는 3-5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요즈음 한 해 동안 연구과 활동으로 세계와 인류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있다. "노벨상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젤튼 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9.06.02 09:29

어제 한 통의 편지를 받게 되었다. 바로 브라질의 한 에스페란티스토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무리 자연의 이치라고 하지만 나이가 한 살 한 살 더 먹어갈수록 주위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하나 하나 곁을 떠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올해 여든살인 이 브라질 지인은 UN 직원, 시인, 대학교수, 에스페란토 학술원 회원, 번역가, 교육자, 사전편찬자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일을 했다.
 
지난 해 12월 31일 브라질 리오데자이네로 여행 때 처음 이 분을 만났다. 당시 머물고 있는 지인 집으로 이날 직접 찾아와 한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포르투갈어-에스페란토 사전 편찬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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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지 않은 체구에 넘치는 웃음과 힘찬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여든의 나이에 저렇게 건강하고 정열적으로 살 수 있을까 놀랍기도 하고 몹시 부러웠다. 저 나이에도 저렇게 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는 다음날 (1월 1일) 점심식사로 초대했다.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부담스러웠지만 그의 호의를 거절할 수도 없었다. 우선 그가 단골로 가는 중국식당으로 갔으나 새해라 문을 닫았다. 한참 동안 찾아간 곳이 일본식당이었다.


"당신들을 초대하기 위해 내가 지난 10년 동안 연금을 절약해놓았으니, 오늘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시켜라"라고 하던 그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식사 내내 그의 농담과 일화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영상은 음식이 나오기 전 젊은 시절의 여러 가지 일화를 에스페란토로 들려주는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 관련글: 브라질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9.01.12 21:17

Novjara mesaĝo

Ni kune revivigu moralon

Jam venis la nova jaro, la 94a ŭonbulana jaro (2009). Mi tutkore deziras, ke la bonfaro kaj lumo de la darmkorpa budho, la kvar bonfaroj, estu kun ĉiuj vivuloj, la tuta homaro, la popolo kaj la tuta ŭonbulanaro.

Pasintjare la eklezio ekhavis la ŝancon por pli vigle disvolviĝi per la projekto “albudha ofero de disvastigo”. Ni decidiĝis finplenumi la centjaran jubileon per niaj sennombraj oferoj kaj havis signifoplenan jaron, en kiu ni komencis krei novan historion de la eklezio.

Ni ĉiuj kun pleja voto kaj pleja penado partoprenu en la centjara jubileo kaj faru la jubileon historia momento, en kiu la tuta homaro disvolvos sian spiriton danke al la instruo de la nova budho Sotesano, klare komprenos pri la gravaj kvar bonfaroj, kiujn elmontris la nova budho Sotesano, kaj sekve faros grandan rekompencon.

Nun la homaro kaj nia popolo travivas multegajn suferojn. En la mondo ne ĉesas tertremoj, nutraĵa problemo, petrolpreza malstabileco, energia problemo kaj tiel plu. Al multaj landoj nun disvastiĝas financa krizo komencita en Usono. En Koreio grandiĝas maltrankvilo pro konflikto inter konservuloj kaj progresuloj, norda-suda problemo, ekonomia regreso kaj tiel plu.

Se pensi pri kialoj de ĉi ĉiuj malfaciloj, la esenca kialo estas ne manko de naturhavaĵoj, nek manko de materialoj, nek manko de scioj, sed nur manko de moralo. Pro tio malhonestaj juĝoj, egoismaj deziroj kaj materialismaj pensoj pligrandigas suferojn de homoj ĉie en la socio.
 
En ĉi tiu situacio ĉiu individuo, ĉiu lando kaj la mondo pentu kaj iru laŭ la vojo revivigi  moralon. Ĉi tiu jaro do estu difinita kiel jaro de la revivigo de moralo kaj ni pleje strebu al tio. 

1. Ni revivigu la originan menson.
Antaŭ ĉio, ni devas per trankviligo de menso trovi kaj gardi la originan menson, kiu estas entenata en la interno de homo. La kerno de la revivigo de moralo estas trovi kaj respekti la instruiston, la originan menson, kiu gvidas nin.
La origina menso ekzistas egale en ĉies menso kaj ĝi estas la plej kara juvelo kaj la fonto de moralo. Forgesi ĉi tiun originan menson estas la komenco de sufero.     
Ordinaraj homoj vivas kun maltrankvilo, deziro kaj plezuro, tial ili forgesas la originan menson. Ni, studantoj, ĉiam trankviligu menson kaj forigu densan nubon de la kvin deziroj por bone aŭskulti la okultan sonon de la origina menso kaj laŭtigi la sonon. Fine ni fariĝu morala homo, kiu ĉiam sekvas instruon de la origina menso.

2. Ni vivu honeste.
Estas la vero, ke ni tiom ricevas feliĉon kaj kapablon, kiom ni ŝvite klopodas. Kion ajn ni faras ie ajn, ni mensogu nek al ni mem, nek al aliaj homoj, nek al la vero. Ja honeste ni devas vivi. Honesto estas niaj havaĵo, forto kaj armilo. Malpravaj profito kaj potenco estas kiel flosanta nubo kaj momenta vento kaj estas la komenco de malfeliĉo. Nur tio akirita per honesto estas eterna juvelo, kiun neniu povas forrabi. 

3. Ni respektu principon.
Estas regulo kaj principo, kiujn devas observi familio, socio kaj ŝtato. Ĉi tiu principo estu establita per publika diskuto kaj estu instruata, por ke ĉiu ajn respektu ĝin.
Principo estas la fundamento de socia ordo kaj la apogstango de kunekzistado, kaj ĝi estas kiel moktako. Malobservanto de ĉi tiu principo estas publika malamiko. Kiam la principo detruiĝas, la mondo iĝas plena de nekredo kaj konflikto.
Nur se socia moralo estas firme establita sur ĉi tiu principo, la mondo iĝas sana kaj justa.

4. Ni devas bone vivi kun najbaroj.
En la mondo estas nenio, kio ekzistas sola. Ĉio estas interligita. Mi ekzistas, ĉar vi ekzistas; vi ekzistas, ĉar mi ekzistas. Ŝtatoj havas landlimojn, sed ĉiuj aĵoj de la mondo ne havas landlimojn. Do ili turniĝadas, ne fiksite al iu. Vi kaj mi, socio kaj socio, ŝtato kaj ŝtato estas origine interligitaj per unu menso, unu energio kaj unu vero. Kiu volas vivi bone nur sola kaj akiri nur sian profiton, tiu fine estos forlasita kaj ne povos stariĝi sola kaj eterne ne povas sukcesi.
Estas dirite, ke ju pli dividiĝas feliĉo, des pli ĝi grandiĝas, kaj ju pli dividiĝas sufero, des pli malgrandiĝas. Ni devas dividi la frukton de feliĉo kun najbaroj kaj tiam ĉiuj fariĝas feliĉaj. Ĝuste tiu feliĉo estas eterna kaj vivigas ĉiujn. La tuta homaro devas konstrui la mondon de komuna vivo kaj komuna prospero.

Jam pli frue Sotesano antaŭdiris: “En la estonteco malfermiĝos vere civiliza mondo, en kiu moralo kaj scienco bone harmonios. Koreio havas tian grandan fortunon, ke fiŝo ŝanĝiĝos al drako, kaj ĝi fariĝos la gepatra lando de moralo kaj la gvida lando de spirito kaj estros la mondon.” Kredante ĉi tiujn vortojn eldiritajn per liaj klarvidaj okuloj, ni kun kuraĝo kaj fido venku hodiaŭajn krizojn kaj lumigu la torĉon de la revivigo de moralo kaj antaŭeniru al esperplena morgaŭo.

Novjaran matenon en la 94a ŭonbulana jaro
Gjongsan,
ĉefmajstro de ŭonbulismo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11.05 06:19

최근 시골 고향에서 고기계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퇴임 기계학 교수를 취재하려 다녀왔다. 만남 인사를 마친 후 그의 첫 물음은 리투아니아인 아내와 집에서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언어가 무엇인가였다. 모국어가 서로 다른 부부에게 제일 궁금한 중 하나가 "저들은 부부 사이, 자녀와 부모 사이 도대체 무슨 언어로 의사소통할까?"이다.  

의사소통 언어가 “에스페란토”라 답하니 "아직도 에스페란토가 살아있냐?"며 놀라워했다.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지만, 오래 전 에스페란토를 알던 사람들 중에도 에스페란토가 벌써 죽은 언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에스페란토는 우리 집 공용어로 매일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와 같은 에스페란토 맺어진 다문화가정이 세계 도처에 있다.

집에 돌아와서 편지를 확인하니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국의 젊은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이 누리망에 퍼져 있는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에 한국어 자막처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선봉에 서서 한국어보다 영어를 강화시키고, 부모들이 영어 발음을 위해 자녀에게 혀 수술까지 시키는 사회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에스페란토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언어이다. 변음과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와 강조음 등이 규칙적이어서 익히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언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것을 지향한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제1차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어몰입교육이 판치는 한국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한번 에스페란토를 배워보고자 하는 사람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7-5881; 010-3340-5936)에 문의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한편 http://lernu.net/에서 직접 배울 수도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원광대 등에 에스페란토 강좌가 정식으로 개설돼 있다. 한국어 자막이 되어 있는 아래 에스페란토 안내 동영상(E@I www.ikso.net 제작)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에스페란토를 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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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우리 집 탁자에 체코, 스위스, 스웨덴, 폴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리투아니아,
          한국에서 온 8명 친구들이 의사소통 장애 없이 에스페란토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1편: 에스페란토는 모든 것에 적합한 언어이다

2편: 에스페란토는 많은 특색을 가진 언어이다

3편: 에스페란토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언어이다

4편: 에스페란토는 배울 수 있고, 배울만한 언어이다

5편: 에스페란토는 다양한 운동을 지닌 언어이다

6편: 에스페란토는 미래의 언어이다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10.07 02:29

원불교에스페란토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LA CIRKLO"
제11호입니다. pdf 파일입니다.
 
Jen estas la 11a numero de
"LA CIRKLO" de la organo de
la Esperantista Asocio de Ŭonbulismo.
La numero estis eldonita en
la unua de oktobro 2008.

Bonan legadon!

- La redaktoro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10.07 02:06

원불교에스페란토회에서
발간하는 기관지 "LA CIRKLO"
제10호입니다. pdf 파일입니다.
 
Jen estas la 10a numero de
"LA CIRKLO" de la organo de
la Esperantista Asocio de Ŭonbulismo.
La numero estis eldonita en
la unua de julio 2008.

Bonan legadon!

- La redaktoro


Posted by 초유스

한국인의 애창곡 중 하나인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의 고향의 봄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것입니다.

고향의 봄 / 
Printempo de la hejmloko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 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 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 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Estis mia hejma lok' en floranta mont'.
Floris azale', persiko, ankaŭ abrikot'.
Ĝi do estis florpalaco kun diverskolor'.
Sopiregas pri la tempo mi kun karmemor'.
 
Plenis mia hejma lok' de birdar' kaj flor'.
Blovis milde verdan kampon vento el malnord'.
Dancis tie plorsaliko ĉe l' rivera bord'.
Sopiregas pri la tempo mi kun karmemor'.

12_hejmlokprontempo_korea.pdf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08.11 07:45

원불교 교정원 국제부(부장 김상호)가 후원하고 원불교에스페란토회(회장 영산 김상익 교무)가 주관하는 외국인과 한국인 에스페란토 사용자를 위한 국제선방이 원불교 선에 대한 체득과 더불어 여러 민족을 하나로 엮는 등 호평을 받고 있다.

국제선방은 원기 85년부터 열린 대표적인 외국인을 위한 원불교 행사이다. 올해로 아홉째에 이른 국제선방은 지난 8월 6일-10일 서울 봉도청소년수련원에서 열렸다. 중국 6명, 리투아니아 6명, 네덜란드 2명, 일본 1명, 한국인 35명 모두 50명이 5일간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원기 91년부터 처음 실시한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을 위한 국제선방이 성공적으로 마치자 원기 92년에도 열렸다. 특히 올해는 선객 모집과 행사 주관 등 그동안 축적된 역량을 발휘해 원불교에스페란토회가 도맡아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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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종로에 있는 은덕문화원에서 참가자들 기념 촬영

5개국에서 모인 에스페란토 하나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폭염 속에서도 공기가 맑고 상대적으로 덜 더운 우이동 봉도수련원에서 6일 오후 결제식을 올렸다. 이들은 첫날 결제식에서 “선과 종교연합”이라는 주제로 김상호 국제부장의 강연을 들었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가 표현을 다를지라도 선이라는 방법으로 도달한 마음의 본질을 찾아 깨닫고 회복해 인류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서로 협력하자”라는 뜻에 깊은 동감을 이루었다.

이어서 매일 아침 6시에 기상해 좌선과 요가를 했다. 특히 까치소리, 매미소리, 물소리, 선풍기 소리가 어울리는 가운데 참가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원불교의 좌선법에 스며들도록 했다. 저녁은 염불을 통해 원불교인의 하루 마감을 체험했다. 아침 좌선과 저녁 염불 모두 참가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원불교 신앙과 수행 등 “원불교 소개”를 비롯해 “원불교 무시선법”, “선체조” 등 강연을 통해서 원불교를 접할 수 있게 했다. “원만이 만들기”를 통해 모두 원만이를 직접 만들어보면서 일상생활 속에 원불교의 마음공부에 대한 이해를 심었다. 즉석 원만이 만들기 국제대회를 개최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충만 되었다. 원불교 성가 번역을 통한 “에스페란토 노래 번역”과 “에스페란토 회화 공부” 등을 통해 에스페란토 지식 넓히기도 꾀했다.
 
한편 “한국의 조류”, “한국의 놀이 - 윳놀이”, “한국의 요리 - 팥죽과 팥국수” 등 한국을 알리고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반죽부터 팥죽 옹심이와 칼국수 사리를 함께 만들면서 직접 식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8일 반나절 서울 시내 관광에 이어서 은덕문화원에서 중곡교당 교도회장 내외분 (목산 이종선, 현타원 박현만) 초청 저녁 만찬이 열렸다. 이때 이선종 서울교구장은 환영사에서 “미래의 세계 공통어가 될 에스페란토로 원불교의 사생일신 가르침을 남 먼저 직접 실천하는 여러분들이야말로 선구자다”라고 격려했다.   

유럽 리투아니아에서 온 알프레다스 마루쉬카(54)씨는 “원불교 교법과 원불교인의 생활모습을 직접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에스페란토와 원불교로 세계가 한 집안이고 인류가 한 가족으로 살아가는 원불교 에스페란토 사용자들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정현주(48)씨는 “이번 국제선방은 지금껏 참가한 에스페란토 행사 중 가장 알찬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다음 국제선방에 외국인 친구들과 꼭 다시 참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세 차례 국제어 에스페란토로 진행된 국제선방은 국내외에 에스페란토로 통한 원불교 알기의 장으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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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즉석 '원만이' 만들기 국제대회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07.0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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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4일 평소 존경하던 분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1997년 한국에서 이 분을 인터뷰한 기사를 소개해 이 분의 뜻이 세상에 좀 더 알려주기를 바라면서 올려봅니다. 늘 미소를 띤 이 분은 오래 오래 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특별인터뷰 이종영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 

이종영 박사는 1932년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하여 청구대학을 나와 경북대학교, 하와이대학교, 하바드대학교 대학원을 수학하고, 미국 센튜리대학교에서 경영학박사, 일본 코베대학교에서 상학박사를 취득하였다. 18년간 유엔 식량농업기구에서 근무하였고, 경북대학교 교수.경영대학원장, 한국 마케팅 학회장, 한국 에스페란토 협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중국 남경경제대학, 연변대학 명예교수, 재단법인 한국 산업경제개발 이사장, 그리고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중국상업정책사연구", "마케팅과 후진국의 경제발전", "기업윤리 - 이론과 실제", "마케팅의 과제와 전망", "Marketing Improvement in Developing Countries" 등이 있다.
편집자 주


◎ 원불교《정전》이 1988년 에스페란토판으로 번역되고, 아울러《대종경》이 번역되어 현재 마지막 교정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원불교 좌산 종법사는 지난 95년 한국 종교인으로서는 최초로 종교 NGOs 초청으로 유엔에서 「세계공동체 건설과 종교의 역할」이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시면서 세계 일가(家)를 이루기 위해 에스페란토를 세계 공통어로 설정하자고 주장하셨습니다. 그 동안 《원광》은 이러한 중요한 에스페란토를 독자들에게 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습니다만, 오늘 이렇게 세계 에스페란토 운동을 이끌어 가시는 회장을 모시고 에스페란토 운동에 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먼저 에스페란토는 어떠한 언어이며, 어떠한 배경 속에 태어났으며,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원불교의 좌산 종법사님을 2년전에 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친근감 속에 한국과 세계의 당면 과제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세계 공통어」에 대한 말씀은 기억에 생생합니다.
에스페란토의 탄생은 기본적으로 세계 인류가 하나의 형제·자매라는 것을 전제하기에 아마 원불교가 인류에 공헌하고자 하는 이상과 통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터뷰를 통해 좋은 만남의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제 생각에 인간들이 상호 의사소통 능력을 상실하고, 건설중이던 바벨 탑이 무너진 이후부터 인류는 하나의 공통어를 갈망해 왔다고 봅니다. 에스페란토의 창안자 자멘호프(Zamenhof) 박사가 살았던 폴란드의 비얄리스토크는 유대인·폴란드인·독일인·러시아인 등 다국적·다인종 지역으로 언제나 「언어」때문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언어로 야기되는 각종 분쟁을 지켜보면서 결국 에스페란토를 창안하게 되는데, 몇 가지 추구하는 이상이 있습니다. 곧「1민족 2언어」주의입니다.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사용하고 외국인과는 공통어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 인류가 지구촌 공동체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에 그 공통어의 필요성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것에 대응하는 반면, 언어 강대국으로 부터 약소민족의 언어권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유럽연합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9개국을 회원으로 가진 유럽연합이 회의를 하는데 33명의 통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금년 1월부터 회원국이 15개국으로 늘어났고 공통어 또한 11개로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언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연합의 공통어를 불어·영어·독일어·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5개 국어로 제한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는데 이 또한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20세기 초, 불란서어는 외교어, 독일어는 의학용어, 영어는 상업용어로 많은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2차대전 이 후에는 세계의 양극화에 따라 자유진영은 미국의 영어가, 공산진영은 러시아어가 강요되다시피 사용되었습니다. 현재는 소련이 붕괴되자 영어의 영향력이 큽니다.
그런데 문제는 강대국의 언어가 소수의 약소민족어 (한국·일본·이태리 등 언어적으로 약소국)에 대한 태도입니다. 언어는 민족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민족어를 상실하면 민족 그 자체가 위협받습니다. 일제시대에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언어말살의 뼈아픈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에스페란토는「세계화」시대에 국제적인 언어의 교량 (의사소통, 외국어 학습, 외국어 번역, 출판물)역할과 민족의 융화를 돕고 약소민족의 언어권을 보호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에스페란토에 내재해 있는 사상은 인류인(人類人)주의를 목적으로 탄생된 평화의 언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인류가 사랑의 기초위에 평등·중립·정의·우애를 촉진하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통해 교류하자는 것입니다.

◎ 오늘날 가계살림을 휘청거리게 하는 사교육비중 많은 부분이 외국어 공부, 특히 영어 과외공부에 들어갑니다. 요즈음 취직을 위한 어학공부로 대학생들 휴학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으며, 많은 수가 외국에 가서 어학연수를 받는다고까지 합니다. 이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필요한 어학 능력을 습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며, 특히 세계화시대에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금 우리나라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세계 공통어로 지향하는 에스페란토는 이러한 현실적 과제를 극복하는데 과연 얼마나 쉬우며, 인간이 만든 인공어로서 자연어에 비해 어느 정도 표현의 한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 「세계 공통어」라는 표현에는 사실 우려점도 없지 않습니다. 각종 각색의 인종과 풍속이 총 집합된 지구촌 인류가 하나의 언어로써 대화를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논의되는 에스페란토가 세계 공통어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국제 공통어는 다음의 몇 가지가 전제된다고 봅니다.
첫째,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무엇보다 중립어 (中立語)라야 합니다. 철저히「언어 제국주의」라는 비판을 듣지 않아야 합니다. 강대국의 언어적 침투는 곧 언어적 약소국가의 문화 파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한 특정 민족어는 국제 공통어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중립적인 국제 공통어는 민족어 (母國語)의「보조어」라야 합니다. 민족의 융화를 돕는 민족 나름대로의 언어를 유지·발전시키면서 대외적인 통상이나 교류에서 국제 공통어를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1민족 2언어주의를 내세운 것입니다.
둘째, 문법이 간결하고 규칙적이며 발음이 쉬워야 합니다. 곧 배워서 사용하기에 편리해야 합니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에 설명을 덧붙인다면, 「자연어」라는 것은 말이 생긴 이후에 체계화 시킨 것이기 때문에 문법이 매우 복잡한 반면, 에스페란토는 모든 자연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취하여 만든 「인공어」이기에 문법상 배우고 사용하기가 용이하다는 것입니다. 즉 1음 1자, 1자 1음 주의를 원칙으로 변음과 묵음이 없으며,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5모음제(A·E·I·O·U) 언어입니다.
셋째, 언어적 기능이 충분해야 합니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이나 표현을 어려움없이 나타낼 수 있고, 철학·문학·예술·경제·과학 등 각 분야에 걸쳐서 충분히 표현 가능한 언어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에스페란토가 이 세가지를 갖추고 있느냐의 질문을 하겠지요. 저는 그렇다고 봅니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 박사가 1987년, 창안할 당시「유럽」의 국제적 여건을 바탕하였지만 지금은 거듭 발전하여 동양적 언어의 요소 (예, 굴절어 등)를 내포하고 있기에 이 세가지 요건을 구비한 언어라고 확신합니다.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의 특정 언어에 편중하지 않은 인공어이기에 중립적이고, 문법이 전문 16개조로 되어 규칙적이고 간결하며, 단어를 합성할 수 있고 표현이 자연어와 가까워 배우기가 매우 쉽습니다. 그 실예로 1984∼5년, 이탈리아 Rocca 소학교의 9∼11세 아동들을 대상으로 학습시킨 불란서어와 에스페란토의 결과인데, 160시간의 학습 후 어학능력이 불란서어는 35%, 에스페란토는 80%였다는 것입니다.
에스페란토로 번역된 종교경전이나 문학 작품도 엄청납니다. 원작 문학작품만도 6,000여종이며, 15개국의 문학선집이 번역 되었습니다. 또한《기독교성경》(1926년 번역),《코란》(1968년), 이집트의《파피루스》, 중국의 사서(四書)등 동·서양의 수 많은 경서가 번역되었습니다.《원불교교전》도 번역이 끝나 최종 검토중에 있다는 희소식 또한 에스페란토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에스페란토의 언어적 한계를 말씀하셨는데, 모든 언어가 생명력을 갖고 변화·발전한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다만 전 세계에서 외국어를 번역하는 자동번역기 개발 프로그램에 관련시켜 설명 드리겠습니다. 예컨대 자동번역기에서 6개 국어를 상호 번역하려면 30개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필요하지만 에스페란토를「교량어」로 사용할 경우에는 12개의 번역 프로그램 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언어 분산 번역 프로그램. DLT : Distribuita Lingvo-Tradukado).
에스페란토는 각 나라의 민족어를 번역하는데 아주 용이한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각 민족어가 갖는 한계를 보완하여 공통점을 찾은 언어이기에 교량어로서 매우 훌륭하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조금더 설명하죠.《원불교 교전》을 영어로 재 번역하여 출판직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수많은 입장이 없을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런데 이《원불교 교전》을 먼저 에스페란토로 번역하여 영어·독일어·러시아어·프랑스어 등으로 번역하면 보다 원전에 가깝게 번역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에스페란토는 모든 민족어가 가질 수 있는 언어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여 만들어진「인공어」입니다. 약 200∼300여 종류의 민족어로 각종 출판물이 번역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에스페란토는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는데 어떤 언어보다 과학적이고 용이하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그리고 국내에 어느 정도로 보급되어 있으며, 주로 어떤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까?
◎ 이러한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그때마다 110년이 된 에스페란토의 역사를 어떻게 잘 소개할까 걱정을 했었는데 또 이 질문을 받게 되었군요.
에스페란토는 1887년, 자멘호프 박사에 의해 창안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 왔습니다. 1908년 세계 에스페란토 결성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120여국 약 2백만∼3백만명 정도의 사용자가 있습니다(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회원). 75개국에 대표 2천명, 60여개국에 국가 지부, 50여개국에 전문가, 200여개에 달하는 각종 신문·방송·출판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특히 51개국에서 2천 여종의 교과서가 발행되었고, 32개국 700여개 학교에서 에스페란토를 교육하고 있으며,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엘테대학교에서는 석·박사과정을 두어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약 2천 여명의 회원에 6개지부가 있으며, 청년회·대학생연합회·기독교 연맹·원불교 에스페란토회 등으로 구성·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의 에스페란토 보급은 처음 1900년대에 《임꺽정》을 쓴 홍명희씨로부터인데 이미 1920년대에 《감자(Batato)》, 《붉은산(Rug^a (Monto)》등을 번역하여 외국의 에스페란토지(誌)에 소개하였습니다. 장혁주의 소설《쫓겨가는 사람들(La Forplelataj Homoj)》, 이태준의 《분노(Indigno)》등 수 없는 작품이 번역되어 소개되었습니다. 특히 일간지<동아일보>,<조선일보>등에서는 에스페란토 지상강좌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은 에스페란토 창안 1백주년(1887∼1987) 기념으로 이재현의 원작수필을 비롯 한국의 수필, 소설, 민화를 번역한《한국의 수필·소설 및 민화》(Koreaj Eseoj, Noveloj kaj Popolrakontoj)가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습니다.
세계에 널리 보급·발전시키고 있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사실「여론의 선도자」들입니다. 곧 그 나라나 지역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기에 역사가 지날수록 더욱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원불교에 대하여 매우 놀라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바로「세계화」의 노력입니다. 한국에서도 어느 기성종교에 못지않게 각 방면에서 모범적인 활동을 하는 반면, 경전을 영어·에스페란토·독일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싱할리즈어 등으로 번역하여 보급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놀라고 찬사를 보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한가지 에스페란토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덧붙인다면 원불교의 세계화를 도울 수 있는 에스페란토를 「교무」양성과정(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영산원불교대학교 과정)에서 학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교양선택(제 2외국어) 과목 정도로 수강의 기회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계가 점차 개방되어 공통어 사용은 사실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원불교 교무님들이 국제사회에서 활동하시려면 물론 영어를 익혀야 되겠지만 그 보다 훨씬 쉽고, 더욱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에스페란토를 익혔으면 합니다.

◎ 저도 여러차례 국제대회에 참관하면서 언어 장벽없이 제 가슴에 담은 모든 것을 상대방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언어가 서로 다른 수천명이 모여 통역과 번역이 없는 대회가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러한 대회를 치루는데 남다른 감회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고, 이러한 대회는 주로 어떻게 진행됩니까?
◎ 세계대회는 에스페란토의「실용성」을 확인시켜 주는 가장 큰 행사입니다. 곧 수많은 국제회의가 언어의 장벽 때문에 행사비의 약 30%∼50% 가량을 통역비로 사용하는데 전혀 통역없이 세계대회를 치른다는 기적같은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대회는 매년 7월 하순경에 약 1주일정도의 일정으로 약 60개국에서 2,000∼3,000명 정도가 참가합니다. 이 세계대회 때에는 주로 이사회, 총회, 강연회, 대학강의를 비롯, 연극, 음악 등의 전문단체 총회, 친교, 문화행사 등을 하는데 믿기 어려울 정도로 통역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에스페란토 세계대회는 개방화를 추구하여 에스페란토를 모르는 사람도 참가하게 합니다. 대외적으로 통역없이 국제 대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죠. 유럽대회, 북미대회, 아프리카대회, 아세아대회 등의 지역대회도 매년 열리며, 한국에서도 금년은「경주」에서 열릴 예정인데, 어느 국제기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통역 없는 대회가 열릴 것입니다.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전 인류의 민족적인 차별을 없애려고 했고, 대화와 교류를 통한 진정한 우애를 존중했으며, 강대국의 특권이나 불의를 부정하고 인류가 공존하는 평화의 언어를 세상에 탄생시켰습니다. 이것은 이러한 대회에서 모두에게 확인됩니다. 종교의 홍보를 위해 참가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본의 「오도모토」라는 종교에서는 세계대회가 열릴 때마다 참가하여 홍보를 해왔습니다. 원불교에서도 가능하다면 이러한 대회에 참가하여 홍보기회를 삼았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대회는 에스페란토를 사용(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문이 활짝 열려있습니다.

◎ 에스페란토에는 창안자 자멘호프 박사가 추구해온 인류애, 형제애, 세계평화가 내재되어 있어 종교단체들이 쉽게 이를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원불교에서도 1980년 서울 종로교당 청년회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세계 종교계에서의 에스페란토 운동은 어떠합니까?
◎ 이 질문의 대답에 앞서 자멘호프 박사가 자란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폴란드의 비얄리스토크를 다시한번 상기해 보겠습니다. 첫번째 질문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비얄리스토크는 주민의 40%가 유대인으로서 상점이나 뒷골목에서 유대어를 사용했고, 20%는 주로 노동자인 폴란드인이 폴란드어를, 25%는 주로 독일인이 독일어를, 그리고 적은 숫자인 러시아인은 관리나 군인 등 지배계급으로서 공용 표준어라는「러시아어」를 사용하며 온갖 독재를 자행했던 곳입니다.
사실 자멘호프 박사는 에스페란토를 통해「민족간의 평화」를 갈망한 것이지「공통어를 이용한 의사소통」의 목적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인본주의자였고 적극적으로「에스페란토」라는 언어로써 그 방법을 찾았습니다.
1878년 12월 5일, 에스페란토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비얄리스토크의 부모님집에 찾아온 친구들과 함께 부른 노래 가사에도 나타납니다.
「민족간 증오심이여!
없어져라. 없어져라.
이제는 인류가 한가족으로
뭉쳐야 할 그 때가 왔도다」
그러나 처음에는 에스페란토 회원들조차 공통어 에스페란토의 효율성은 인정하면서도 어떤 「사상」이나 「정신」으로 확산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자멘호프 박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 유명한 인류인주의(人類人 homaranismo)를 구체화 시키기에 이릅니다. 곧 에스페란토의 내적사상이라 할 수 있는 인류애·형제애·세계 평화를 담은「인류인주의 선언문 12개항」입니다.
이제 질문하신 자멘호프 박사의 종교에 관련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가지 근거보다 우선 인류인주의 선언문에 나타난 그의 평화적인 종교관을 소개하겠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류인주의 선언문에는 신(神)에 대한 해석부터 차이가 옵니다.
「신(神)은 세상을 지배하는 가장 강한 신비로운 힘을 말하는데 그 본질은 각자가 자유로이 해석할 수 있다. ····신에 대한 나의(개인적인) 생각을, 신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밝혔으며 종교의 기본원칙에 대하여「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대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행해야 하며, 항상 당신의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고 했습니다.
신에 대한『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자멘호프는 무엇보다「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종교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또한「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나의 종교에 반하지 않는 한, 각 종교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중립적인 방식으로 행사를 해야한다」그리고「종교의 주된 목적이 인간을 형제로 만드는데 있지만. ··· 나의 도시에 모든 사람에게 중립적인 사원(temple)을 세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중립적 사원에서는 각기 다른 종교나 철학적 제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다같이 느끼지만, 각기 다른 이름으로 표현하는 위대한 힘(forto)을 서로 다같이 섬기도록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중립적인 종교사원과 의식, 그리고 표현이 다른 절대적 진리에 대하여 상호 존중하자는 자멘호프 박사의 종교적 입장은 이와같이 언제나 형제애, 평등, 세계평화 (정의)의 기초위에서 타 종교와의 대화를 유도하고 있습니다.
자멘호프 박사는 언제나 사랑·관용·이해의 종교 행동원칙을 정해놓고「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고 했으며「파괴는 비록 건설을 목적으로 할지라도 결코 안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세계 각 종교에 있어서 에스페란토의 영향은 첫째, 주요경전의 번역입니다. 《기독교 성경》을 비롯해 수 많은 불경과 주석서가 에스페란토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세계 천주교 에스페란토 연맹을 결성하여 천주교 주요 서적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것은 오래전부터 였고, 바티칸 에스페란토 방송이나 교황의 부활절·성탄절 메시지 등 에스페란토를 적극 보급·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바하이교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세계 공통어로 채택하기 위해 UN에 공식 요청한 종교의 하나이며, 일본의 오오모토교, 이슬람교 등 많은 종교가 에스페란토를 보급·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오오모토교는 세계대회 때마다 엄청난 교단적 참가(100명 이상)와 함께「하나의 신, 하나의 세계, 하나의 언어」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대표적 종교입니다.
원불교에서도 한국 에스페란토회가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지난 《원광》창간 48돌 기념 <종교경전 및 주석서 전시회>때 각 종교경전 및 주석서 23권을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창시자 자멘호프 박사의 인류인주의 입니다. 어느나라, 어떠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에스페란토가 보다 많이 보급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에스페란토가 보급됨으로써 미치는 영향입니다. 바로 평등·사랑·형제애·정의·중립의 이상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 회장께서는 근 20년간 유엔 식량농업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오랜 행정경험을 갖고 있으며, 지난 95년부터 세계 에스페란토 협회장으로 있으면서 유엔, 유네스코, 유럽의회 등을 수차례 방문하여 국제기구 언어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 에스페란토의 공용어 채택과 소수언어 보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계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로 심각하며, 에스페란토가 이들 국제기구의 공통어로 채택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 과연 국제기구에서 국제 공통어가 필요한가.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모두가「반드시」필요하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정은 이를 담당한「정치가」가 해야 합니다. 그런데 결정은 합리적 결정보다 정치적인 결정을 하려고 합니다. 정치적인 결정? 곧 자국의 이해 득실을 따지는 국가외교상의 기술이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에스페란토의 국제 공통어 채택에 대한 지지와 격려는 오래 전부터 입니다. 그 예로 1920년대에 이미 국제연맹총회에서 논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강대국이었던 프랑스의 반대로 부결되었죠. 1924년, 만국우편엽합(IPU)에서의 통신용 언어 채택에서 에스페란토가 선정되었고, 1954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에스페란토 교육 권장의 결의를 하는 등 수 없는 논의는 지금까지 계속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가능성은 어느 정도 보입니다. 1996년 프라하에서 개최된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때에 UN, EU, 유네스코 대표 및 학자들이 참가하여 아주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특히 1997년 UN 경제사회 이사회에서「국제보조어」문제가 중요한 안건으로 논의되도록 노력했던 점을 볼 때 희망이 있습니다. 1997년 5월 UN 경제사회이사회 소속 비정부 기구 (700여개)를 회원으로 「국제 보조어를 위한 비정부기구 연대」가 결성되었는데 이러한 움직임이 발전하면 언젠가 에스페란토가 국제 공통어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1998년, 제네바에서 UN 인권문제고등판무관의 지원으로 「인권 문제의 언어적 측면」에 관한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만국 인권선언 50주년 기념)인데, 이것은 국제 사회에서 에스페란토의 중요성이 인정받은 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유렵연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하죠. 현재 11개국의 언어가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유럽연합은 의회 위원수가 627명입니다. 그런데 회의 및 행사에서 사용되는 경비의 50% 정도가 언어 (통역) 때문이라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어떤 한 위원이 연설을 한다고 할 때 11개국어로 동시 통역하지 않고는 의사가 전달되지 않는 분위기를 짐작하시겠습니까? 의원 사무실 문패마다 11개국어로 표시하고 있는「언어」의 한계에서 에스페란토의 필요성은 절실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움도 많이 있습니다. 유럽연합이 실현 되느냐 못되느냐가 언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사실상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 등 몇몇 강대국들의 언어 기득권 때문에 현실적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모든 회원들의 언어는 평등하다」라는 기본 원칙을 앞세우기에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 사실 유엔, 유네스코, 유럽의회 등 이러한 공인된 국제기구의 결정이 에스페란토 보급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세계로 더욱 구체화되는 21세기에서의 에스페란토운동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 우리나라에서 요사이 부쩍 국제화·세계화를 부르짖는데 여기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민족 문화입니다. 다양한 민족문화 특히 언어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에스페란토를 세계에 널리 보급·발전시키는 목적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는 세계가 하나의 평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대화와 만남의 중립적인 공통어가 절실하다는 것이며, 둘째는 소수 약소민족의 언어 보호 및 여기에 따른 인권의 문제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많은 설명이 있었으므로 생략하고 「인권」보호에 대해선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지구상의「피난민」이 대략 1천 6백만명 정도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언어로 인한 인권의 피해가 말할 수 없을 정도라면 믿겠습니까? 사실 우리 한국인들은 어느 정도「영어」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회의, 사업, 관광 등에서 그렇게 불편함없이 사용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면「영어」가 세계의 공통어 입니까? 유럽만해도 영어만으로는 도저히 통하지 않는 나라가 수 없이 많습니다.
국가적으로 온갖 분쟁과 혼란, 그 속에서의 빈곤, 질병, 무지의 약소국가가 겪는 고통 가운데「언어」때문에 생기는 고통이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경이 수 없이 무너지고 그때마다 지도자와 법이 바뀌는 상황에서 「언어」는 때때로 최악에는 파괴와 죽음을 부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어권이 보장되어야 인권이 보장된다는 측면입니다.
내년에 UN에서 만국인권선언 50주년 기념으로「인권문제의 언어적 측면」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에스페란토가 국제 사회에서 반드시 공통어로 채택되었으면 합니다.
세계 에스페란토협회에서는 새 언어질서를 위한 캠페인 2,000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먼저 대외적으로 UN에서 언어문제를 토의하도록 계속적인 건의와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유네스코에서「언어 교육을 통한 세계 평화운동」 을, 유럽연합(EU)에서는 국제 보조어로서 에스페란토가 채택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 유명인들을 중심으로「에스페란토의 벗」을, 각 운동단체, 친목단체 등과도 활발한 교류를 하여 이제는 세계 곳곳에 수 많은 전문단체, 특성 단체가 더욱 활발히 활동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무엇보다 에스페란토가 그 사회의 질적 향상과 유대강화에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두어 국제회의, 친선, 관광, 교육, 특히 인터넷이나 출판을 통해 발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발전적인 과제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한국어와 얼마나 특성상 가깝고 외국어를 학습하는데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언어 교육학적 효과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어야 하겠으며 둘째, 에스페란토협회의 운영적 자립 셋째, 에스페란토의 위상이 높아져 교육, 방송 및 기타 언론 매체를 통해 보급·발전되는 것 넷째, 에스페란토가 한국의 대내외 외교에 큰 역할을 하는 것 등 홍보·활동에서 한걸음 발전하여 효율성과 우수성에서 인정받는 언어가 되었으면 합니다.
에스페란토가 국제 공통어로 채택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사실 어쩌면 유토피아 같은 꿈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에스페란토가 반드시 국제사회에서 큰 역할이 있다는 확신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예를들어 점차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가 될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인데, 가장 문제가 되는 언어! 특히 민족어 내지 민족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절실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상점의 간판을 한번 보십시오. 영어를 비롯해 국적을 알 수 없는 언어가 난무합니다. 이것이 세계화 입니까? 우리나라는 한문이 들어오면서부터 많은 민족어가 사라졌고, 일제 식민지하에서는 제도적으로 말살되었으며, 지금은「영어」를 비롯, 수 많은 외국어에 의해 민족어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에스페란토는 거듭 강조하지만 약소민족의 소수 언어를 위해서도 반드시 보급·발전되어야 합니다. 가능한 국제 공통어가 되었으면 하지만 국제 보조어의 하나로서 활용되었으면 합니다.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한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중국정부는 매주 열리는 외교부 정례기자회견문등을 그동안 영어로 번역 배포해오던 것을 지난 해 9월부터 이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중국은 위대한 나라이며 위대한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하필 영어로 번역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에서입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태도 때문에 각국의 언론사 기자나 외교관들이 매우 어려운 처지라고 하는데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영어 독점주의? 영어가 사실 많은 국가에 있어서 공통어 내지 그 대우를 받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진다는 것 아닙니까? 민족어를 보호하겠다는 이러한 태도는 중국만이 아닐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나라가 소위「언어식민지」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입니다.

◎ 에스페란토운동을 하시면서 보람과 힘들었던 때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 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해방 직후 헌 책방에서 우연히 에스페란토를 만나게 된 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날까지 에스페란토의 한 사람이 되었는데,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이라면 무엇보다 세계대회 때 입니다.
세계대회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7일간의 독립국가」라고 할까요. 어떠한 통역도 없이 전혀 의사소통에 막힘도 없이 진행되는 일정 하나 하나를 통해 인류가 진정한 형제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약 3천여명의 참가자들은 국적·인종·언어·종교·연령 등에 전혀 구애없이 오직 에스페란토라는 공통어로 하나가 됩니다.
영어가 국제어라는 선입감을 벗어나자고 할때 어떤 분은 영어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UN기구에서 18년간 근무하면서 소위「영어」덕을 톡톡히 본 사람입니다. 영어의 장·단점을 잘 알고, 영어의 영향력을 알기 때문에 에스페란토를 권장하는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에스페란토 세계대회 때 15명이 한 조가 되어 문화답사를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에스페란토만 사용했기에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조차 이야기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우연히 국적을 묻게 되고 각자의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11개국에서 모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에스페란토는 진정 사랑이 담긴 언어라고 생각하며 세계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급·발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언어가 죽어가는 경우는 어떠한 상태일 때를 말합니까. 전문용어로 사용하지 못할 때 입니다. 한국어도 죽어가는 언어에 속한다고 봅니다. 점차 전문연구 부문에서 사용정도가 줄고 또 평가절하를 받고 있습니다. 한 예로 공과대학 교수들의 연구물들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영어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어로 표현이 어렵고 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이죠. 이것은 그 동안 민족어의 방패 역할을 할 공통어가 없기 때문이며, 정치·경제적인 자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후진국의 경우, 특히 아프리카의 원주민 언어들은 개방과 경제적 발전이라는 이유로 지금 사멸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인터넷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현재 8개국에 있는 세계 에스페란토협회의 임원들과 전자우편을 통하여 의사교환을 하면서 협회를 운영하고 있는데, 영어를 몰라도 전혀 언어의 장벽이 없습니다.

◎ 천주교인으로 평소 종교에 대한 생각과 원불교에 대해 아시는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 종교인은 대체로 열심히 믿는 사람과 열심히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봅니다. 사실 저는 열심히 다니는 사람에 속한다고 봅니다.
원불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일원상(一圓相)을 보면서 자멘호프 박사가 신에 대하여「우주를 지배하는 신비로운 힘」으로 표현한 내용과 통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교세확장 보다는 사회의 공익과 복지, 때로는 불의에 대해 대단한 용기를 가진 종교라고 알고 있습니다.
평소 저는 에스페란토에 대하여 사랑이 있는 언어, 인간의 마음을 열어주는 언어라고 생각해 왔으며, 세계 평화를 위해 그「수단」으로 충분한 언어라고 자부해 왔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류의 공통된 이상은 평화이겠지요? 이 근원적인 목적에 종교이든, 그것이 언어이든 같을 것입니다. 원불교 또한 이 근원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종교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라 생각하지만····.
세계는 다양한 언어, 종교, 사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립과 반목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래의 창안자들이 목적한 일이라고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아마 원불교를 개교하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것을 아시고 그 방법을「종교」로, 자멘호프 박사는「언어」로 해결하려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이 글은 원불교 기관지인 "월간 원광" 1997년 9월호에 16쪽에 걸쳐 실렸습니다.
* 대담: 최보광(대석) / 원불교 교서정역위원회
* 정 리: 오 선 명 본지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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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글: 서로 말이 다른 8명이 무슨 말로 대화할까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06.05 04:18

일전에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세계 언론인 대회”에서 매일 대회신문을 만드느라 여러 나라에서 온 몇 해만에 만나는 정겨운 옛 친구들과 대화할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다. 마침 대회 마지막일 저녁 국회의장 만찬이 일찍 끝나 집으로 초대해 밤늦게까지 술잔을 부딪쳤다.

탁자에 둘러보니 모두 8개 민족 즉 폴란드, 스위스, 체코, 핀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한국과 리투아니아 사람이 앉아있었다. 이날 8개 민족이 아무런 언어장벽 없이 대화를 즐겼다. 자신의 지난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기도 하고 참석하지 못한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묻기도 했다.

이렇게 모국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이날 모여 어느 특정 민족어가 아닌 중립적인 언어로 심리적 부담감 없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이 언어가 에스페란토이다.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가 1887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언어’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얄리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프랑스 북부 볼로뉴에서 열린 세계 에스페란토 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어몰입교육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는 힘들겠지만, 혹시 한번 에스페란토를 배워보고자 하는 분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7-5881; 010-3340-5936)에 문의하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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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왼쪽부터: 페트르 (체코), 아네트 (스위스), 칼레 (핀란드), 로만 (폴란드)
아래 왼쪽부터: 룹쵸 (불가리아), 이쉬트반 (헝가리), 비다 (리투아니아), 정상섭 (한국)

* 이 글은 주간지 "시사in" [42호] 2008년 07월 01일 게재됨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366

* 스스로 쌓은 6살 요가일래의 영어 내공 어때요?

http://www.kniivila.net/2008/lingvoj-prestighaj-kaj-malprestighaj/ 
(핀란드 친구가 쓴 글: 에스페란토)

* 관련글: 통역 없는 세상 꿈 이루는 에스페란토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8.05.30 14:25

혹시 동시통역이나 번역이 필요 없는 국제회의를 상상해 봤는가. 모든 민족이 대등한 입장에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세상을 꿈꿔본 적이 있는가.
5월 29일 현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세계 언론인 대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대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37개국에서 200여명의 언론인이 참석했다.
그러나 회의 진행을 위한 동시통역은 없다. 각국 언어로 번역된 유인물도 준비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참석자 모두 오랜 친구이기나 한 듯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고, 강연과 만찬 등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 때문이다.
한국 대표로 참가한 정상섭 기자(부산일보)는 중국의 리진후아, 영국의 도널드 가스펠, 오스트레일리아의 프림퐁 바두, 리투아니아의 게디미나스 데게시스 씨와 자연스럽게 얘기를 주고받는다. 주제도 중국의 최근 지진 참사에서부터 북유럽의 변덕스런 날씨에 이르기까지 아무 거리낌이 없다.
 에스페란토 세계에는 국적이 없다.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일정으로 열리고 있는 이번 세계 언론인 대회 기간 중 매일 발행되는 4쪽짜리 공식 소식지의 편집자는 리투아니아 사람이 아니라 바로 필자다.
빌뉴스에 살고 있는 필자는 에스페란토를 통해 지금의 리투아니아인 아내를 만났다. 우리 집의 공용어는 에스페란토며, 아내와의 대화는 거의 전적으로 에스페란토로 이뤄진다.
에스페란토라는 이름을 알거나, ‘세계 언어 평등’이라는 이상에 공감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 유용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북동유럽의 작은 국가 리투아니아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세계 언론인 대회와 필자의 사례는 그 의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리투아니아는 지난 2005년 제90회 세계에스페란토 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번에는 참가 경비와 숙식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해 가며 세계 언론인 대회를 빌뉴스에 유치하는 열정을 보였다.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27개국을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EU(유럽연합)에서 언어 단일화 추진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에스페란토가 가장 유력한 공용어 후보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든 학교 수업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이른바 ‘영어 몰입교육’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우리나라와 영어를 대체할 중립적 세계 공용어의 채택을 준비하는 리투아니아 가운데 과연 어느 나라가 더 실용적일까?

*에스페란토란
1887년 폴란드의 안과의사 자멘호프가 창안한 국제공용어. 변음 묵음 등이 없어 적힌 대로 소리 내고, 품사어미 악센트 등이 규칙적이어서 익히기 쉽다.
에스페란토 사용자(그들끼리는 에스페란티스토라고 부른다)들은 ‘1민족 2언어 주의’에 입각해 같은 민족끼리는 모국어를, 다른 민족과는 에스페란토를 사용한다. 현재 120여개 국가에서 5천여만명이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에는 1900년대 초기에 처음 소개됐으며, 김억 홍명희 등은 에스페란토로 쓴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산악인 엄홍길, 소설가 김훈, 조류학자 윤무부 등이 에스페란토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원광대 등에 강좌가 개설돼 있다.
한국에스페란토협회, 에스페란토문화원 등에서 온라인으로 쉽게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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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후기: 5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간 일정으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세계 에스페란토 언론인 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리투아니아 에스페란토협회 소속으로 참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부산일보에서 정상섭 기자가 참석했습니다. 이번 대회는 리투아니아 정부 초청으로 열렸으며, 총리와 국회의장, 빌뉴스 시장이 만찬을 주재하는 등 리투아니아 정부로서는 상당히 정성을 들인 국제회의입니다.
'1민족 2언어주의'를 주창하며 세계 언어 평등권을 일궈 나가는 에스페란토를 한국의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참고로 대회 소식지가 4번 나왔으며, 소식지 취재와 제작, 편집은 저하고 정 기자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회가 끝난 후 대회 관련 소식을 편편 올릴 계획입니다. 에스페란토로 된 대회 누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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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에스페란토 언론인 대회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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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회 중 국회의장, 국무총리, 빌뉴스 시장 만찬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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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대회 강연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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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대표로 참가한 부산일보 정상섭 기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중국, 영국 등 참가자
 

Posted by 초유스
에스페란토2007.12.31 13:23

원불교 종법사 신년법문 (2008) | Novjara mesaĝo

Ni konstruu paradizan mondon per spirita disvolvo

Venis jam la nova jaro esperplena. Mi elkore bondeziras, ke la bonfaro kaj lumo de la darmkorpa budho, la kvar bonfaroj, estu kun ĉiuj vivuloj, la tuta homaro, la popolo kaj la ŭonbulanaj familioj.
Pasintjare la tergloba vilaĝo travivis multajn suferojn pro diversaj disputoj kaj militoj inkluzive naturajn katastrofojn. Tamen la monda energio moviĝas al la epoko de reciproka helpo kaj paco kaj do, ekzemple, establiĝas paca sistemo inter Suda kaj Norda Koreioj. Mi esperas, ke la tuta homaro kontribuos al paca kunekzisto inter la popoloj kaj inter la ŝtatoj.

Proklaminte, ke “Jam progresas materio, ni disvolvu la spiriton”, Sotesano malfermis la novan eklezion de ŭonbulismo por konstrui la vere civilizan mondon de la homaro per spirita disvolvo.
Nia tasko do estas bonuzi materian civilizon por la feliĉo kaj paco de la homaro kaj konstrui paradizan mondon, en kiu la tuta vivularo kunvivas harmonie.

Hodiaŭ, renkonte al la nova jaro, mi ŝatus diri pri la tri vojoj de spirita disvolvo por konstrui ĉi tiun paradizan mondon.

Unue, ni kultivu spiritan memstarforton.
Ajna homo havas senmakule puran menson kaj perfektan spiriton. Ni devas trovi ĉi tiujn puran menson kaj perfektan spiriton kaj kreskigi spiritan memstarforton.
Nuntempe pro materiaj abundo kaj plezuro la homaro perdis sian spiritan forton kaj vivas suferan vivon en la stato, ke la vosto svingas la hundon. Por forlasi la marĉon de malfeliĉo, en kiu ni estas tirataj de ĉiaj avidoj, afliktoj kaj iluzioj, ni devas kultivi spiritan memstarforton, por ke ni laŭvole bonuzu nian menson.
Kultivi spiritan memstarforton ja estas enteni perfektan spiriton, koncentri menson kaj praktiki mediton. Ĝuste tio estas vivi paradizan vivon. Vivo devas esti veka kaj perfekta per senĉesa mensostudo. Nur tiam, ĝi povas esti la vivo de budho kaj bodisatvo.

Due, ni kultivu saĝon bonuzi materian civilizon.
La nuna tergloba vilaĝo estas en krizo pro naturaj katastrofoj, ekosistemaj perturboj, neglekto de la vivo, kaj tiel plu. Ĉi tiuj multaj problemoj de nia homaro devenas de la blinda serĉado de materia civilizo.
Por venki la krizon ni ja devas kultivi saĝon bonuzi materian civilizon. Ĉiu unuopulo devas utiligi korpon per spirito kaj uzi materian valoron kiel ilon surbaze de morala valoro. Ĉiu gvidanto kaj ĉiu sciencisto devas distingi laboron farendan por la naturo disde tiu farenda por homo kaj grande klopodi, por ke scienco estu por la vera feliĉo de la homaro, kaj por ke evoluigo alportu realan feliĉon al homoj.
 
Trie, ni ĉefrolu por realigi pacon.
Nun individuoj kaj ŝtatoj alte taksas nur ekonomian valoron kaj oni egoisme vivas, strebante nur al materiaj riĉo kaj abundo. Rezulte, serioziĝas diferencoj inter riĉuloj kaj malriĉuloj kaj multiĝas diversaj konfliktoj, tiel ke la homaro mem faras sian tragedian historion de malharmonio kaj batalo. Por venki konfliktojn kaj militojn ni devas nepre praktiki altruisman mahajanan agon. Nur tiam, venas vera paco.
Se ni donas feliĉon al aliuloj, ni fine ricevas feliĉon; se ni donas damaĝon al aliuloj, damaĝo nepre revenas al ni. Sciante ĉi tiun karman principon, ni pli konsideru kaj prizorgu suferajn najbarojn kaj malfortajn ŝtatojn kaj realigu pacan mondon. Eĉ kiam ni renkontas la plej malfacilan homon, ni trovu ĉe li ion lernindan kaj ion utilan kaj per reciproka danko pacu unu la alian. Ni praktiku la mezan vojon per reciproka profito kaj ĉefrolu por realigi reciprokan helpon kaj pacon.

Okaze de la nova jaro, ni ĉiuj strebu al ĉi tiuj tri aferoj de spirita disvolvo, konstruu paradizan mondon kaj larĝe malfermu la feliĉopordon de la homaro per disvastigo de Sotesana instruo.

Novjaran matenon en la 93a ŭonbulana jaro
Gjongsan,
ĉefmajstro de ŭonbulismo

Posted by 초유스

한국인의 애창곡 중 하나인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제가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것입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  
Revenu al haveno Busan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내 형제여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가고파 목이 메어 부르던 이 거리는
그리워서 헤매이던 긴 긴 날의 꿈이었지
언제나 말이 없는 저 물결들도
부딪쳐 슬퍼하며 가는 길을 막았었지
돌아왔다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Kun florar' Dongbek Insul' printempiĝas nun,
sed ĉe la kaj' sen mia frat' ploras nur mevar' kun la malgaj' .
De Oruk al forira ĉiu pramoŝip'
mi vokas ĝis raŭkiĝo, tamen ne respondas ja vi.
Al la haven' revenu vi, ho frato kun mia sopir'!

Pro irvol' al strato ĉi raŭke vokis mi,
kaj granda rev' do estis ĝi dum longega tag' pro la sopir'.  
Eĉ ĉiam silentantaj ondoj tiuj ĉi,
batante kun malĝojo, baris vojon de mia ir'.
Al la haven' revenis mi, ho frato kun mia sopir'!

Posted by 초유스

한국인의 애창곡 중 하나인 조용필의 "친구여"를 제가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것입니다.

친구여 /  
Ho amiko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옛일 생각이 날 때마다 우리 잃어버린 정 찾아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조용히 눈을 감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추억은 구름 따라 흐르고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La rev’ dormas en la ĉielo, la memor’ fluas laŭ la nubaro.
Ho amik’, kien do iris for vi, ho amik’, sopirat'!

Ĉe pens' pri komuna paseo, por ke ni ree havu kunsenton,
ĉu en sonĝ' renkontiĝu ni ĉiam? Fermas sin la okular'.

Portis jam kune ni tempon de ĝoj’ kaj de amar'. 
Kie estas vere la promeso, kiun ni animfirme faris kun la rev’?

La rev’ dormas en la ĉielo, la memor’ fluas laŭ la nubaro.
Ho amik’, kien do iris for vi, ho amik’, sopirat'!

Posted by 초유스

한국인의 애창곡 중 하나인 키보이스의 "바닷가의 추억"을 제가 에스페란토로 번역한 것입니다.

바닷가 추억 /
Ĉemara memoro

바닷가에 모래알처럼
수많은 사람중에 만난 그사람
파도위에 물거품처럼
왔다가 사라져간 못잊을 그대여

저하늘 끝까지 저바다 끝까지
단둘이 가자던 파란꿈은 사라지고
바람이 불면 행여나 그님인가
살며시 돌아서면 쓸슬한 파도소리

Kiel sabler' ĉe la bordo de mar’,
en amas’ de la homar' vin renkontis mi.
Kiel la ŝaŭm’ sur la ondo de mar’,
venis vi, iris for vi. Ne forgesas vin mi.

Ĝis la fin’ de ĉiel’, ĝis la fin’ de la mar’
iru kune ni du, sed ĉesis la blua sonĝar'.
Ventas kun arom', eble venas kara vi.
Kiam jen min turnas mi, nur soleca onda son',
nur soleca onda son', nur soleca onda son'.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