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잡지 기고글/한겨레21'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11.11.30 음주 운전 차량몰수?
  2. 2011.11.30 리투아니아 9월1일 술 판매 금지
  3. 2011.11.30 소련 동상의 ‘자본주의식’ 재구성
  4. 2011.11.30 지방선거, 노동당의 몰락
  5. 2011.11.30 우리 그냥 화장하게 해주세요
  6. 2011.11.30 햄버거는 ‘메사이니스’예요
  7. 2011.11.30 바벨탑 이전의 기적을 보라
  8. 2011.11.30 리투아니아의 환전은 계속
  9. 2011.11.30 통역 없는 세상을 꿈꾸자
  10. 2011.11.30 해롱거리는 나무판자
  11. 2011.11.30 유럽의 중심, 그때 그때 달라요
  12. 2011.11.30 두두둥~ 봄아 썩 나와라!
  13. 2011.11.30 러시아에 가면 배신, 배반이야
  14. 2011.11.30 샴페인병 할아버지, 대단해요~
  15. 2011.11.30 영원하라, 월척의 추억이여
  16. 2011.11.30 리투아니아 속의 일본
  17. 2011.11.29 “내 밥은 ‘모래’ 예요”
  18. 2011.11.29 “자전거 술집에서 맥주 한잔을”
  19. 2011.11.29 파란만장 대통령의 승리
  20. 2011.11.29 KGB가 몰랐던 비밀인쇄소
  21. 2011.11.29 삶은 호수 위를 흐른다
  22. 2011.11.29 핀란드 농부, 휴가비에 룰루랄라
  23. 2011.11.29 28인용 ‘유로킥보드’ 출현!
  24. 2011.11.29 “나는 냄비만 모은다”
  25. 2011.11.29 '에스페란토’로 항일을 노래하다
  26. 2011.11.29 생맥주와 턱수염의 괴력!
  27. 2011.11.29 교도소 미인대회가 남긴 대박
  28. 2011.11.29 늑대사냥꾼 “늑대와 춤을”
  29. 2011.11.29 하루종일 ‘삽질’하는 여인
  30. 2011.11.29 아파트를 탈출한 ‘타잔’

벌금단속 강화된 개정안 등 유럽 교통사고 사망률 최고라는 불명예를 벗기 위한 노력들 

▣ 빌뉴스(리투아니아)=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ds@esperanto.lt 

발트해의 동쪽에 연해 있는 리투아니아는 2004년 유럽연합 회원국으로 가입됐다. 발트3국 중 가장 큰 나라인 리투아니아는 인구가 340만 명이고, 면적은 6만5천㎢로 한반도 면적의 4분의 1이다. 인구밀도는 1㎢당 53명에 불과하다. 한국(남한)의 인구밀도는 474명이다. 

“교통사고가 국가 안전을 위협” 

2007년 1월 기준 리투아니아의 고속도로는 1750km다. 국도(4948km)와 지방도(1만4627km)를 합한 전체 도로 길이는 2만1325km다. 인구가 적고 땅이 넓어 도로가 한산할 것 같으나, 현재 리투아니아는 ‘도로 위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유럽연합 27개국 중 리투아니아는 교통사고 사망률이 가장 높다. 지난 2006년 리투아니아에선 모두 6658건의 교통사고가 났다. 8334명이 다치고 760명이 사망했다.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통계에서 리투아니아는 유럽에서 최악이다.


△ △ 지난 10월1일 리투아니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열린 교통사고 사망자 추모 집회에는 교통사고로 찌그러진 차량 14대로 만든 ‘추모탑’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올해 들어선 상황이 더욱 나쁘다. 지난 8월 말 현재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06년보다 4.2% 증가했고, 무면허 운전도 52%나 늘었다. 또 보행자 124명이 차에 치어 목숨을 잃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지난 17년 동안 리투아니아 도로에선 약 1만4천 명이 사망했다. 이 수는 리투아니아 한 중소도시의 인구와 맞먹는다. 2001~2006년 유럽연합 평균 교통사고 사망율은 22.2%가 감소했지만, 리투아니아는 되레 사망률이 7.6% 늘어났다. 리투아니아 교통사고의 주된 원인은 음주운전, 무면허 운전, 속도위반, 안전띠 미착용, 보행안전 소홀이다. 사망 사고를 낸 운전사 3명 중 1명은 음주 또는 무면허 운전을 한다. 일부에서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낸 사람의 차를 몰수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행법상 리투아니아에선 무인 카메라에 운전자의 얼굴과 자동차의 번호판이 모두 찍혀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 단속과 벌금이 한층 더 가혹해질 예정이다. 내년 3월까지 사고빈도가 높은 지역에 속도위반 무인감시카메라 150여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또 현재 경미한 음주운전의 경우 벌금 1천~1500리타스(약 38만~57만원)나 면허증 압수 처벌을 받지만, 개정 법률안에선 벌금 1천~1500리타스를 부과함과 동시에 1년에서 1년 반까지 면허증을 압수하기로 했다. 

음주 사고로 부상자를 낸 경우에도 현행은 벌금 2천~3천리타스(약 76만~114만원) 또는 2~3년 면허증 압수에 불과하지만, 개정안은 벌금을 4천~5천리타스(약 152만~190만원)로 올리는 한편 추가로 15~30일 구류와 함께 3~5년 면허증을 압수할 수 있도록 했다. 더군다나 무면허 운전인 경우 벌금은 현행 3천~5천리타스(약 114만원~190만원)에서 5천~5500리타스(약 190만~209만원)로 올리는 것은 물론 자동차 몰수나, 10~20일까지 구류형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전무했던 도로 안전 교육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유치원과 학교에선 안전 교육

최근 리투아니아에는 주요도로 군데군데 형광색 대형 광고판이 설치됐다. 안전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해당 도로에서 지금까지 일어난 교통사고와 사망자 수를 큼직하게 써 놓았다. 또 학교 앞이나 교통 사고 다발 지역에도 이전보다 훨씬 큰 크기의 형광색 교통안전표시판을 설치해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005년 현재 리투아니아의 승용차 보유대수는 모두 145만7954대로, 이는 인구 1천 명당 427대 꼴이다. 리투아니아 자동차 10대 중 7대는 연식이 15년 이상 된 오래된 차들이다보니, 교통사고 발생시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안전성 높은 새 차 보급을 위해 차 구입 때 부가가치세를 면제하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에서 교통사고는 이미 ‘국가적 비극’이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683호 11월 1일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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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9월1일 술 판매 금지… 표면상은 건조한 날, 10명 중 4명은 “미리 사둔 것 마셨다” 

▣ 빌뉴스(리투아니아)=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알코올 통제법에 따라 오늘은 술을 팔지 않습니다.” 

상점마다 안내문이 내걸렸다. 지난 9월1일은 리투아니아의 ‘지식과 학문의 날’이다. 이날은 리투아니아의 모든 학교가 약 3개월이라는 긴 방학을 끝내고 개학하는 날이다. 올해는 휴일인 토요일과 겹쳤음에도 각급 학교가 일제히 문을 열어 기존 학생들과 신입생을 맞아들였다. 학교로 가는 길은 여름 내내 썰렁한 채로 남아 있었는데, 이날부터 붐비는 학생들로 활기를 되찾았다. 


△ ‘오늘은 술을 팔지 않습니다.’ 지난 9월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주류 판매점은 일제히 공지문을 내걸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가톨릭 국가가 이슬람 국가로? 

학생들은 부푼 마음으로 꽃송이나 꽃다발을 들고 학교로 향한다. 교사와 학생들은 개학식을 마치고 삼삼오오 무리지어 지난 방학 생활을 대해 이야기꽃을 피운다. 입학식을 마친 가족들은 식당 등에서 식사를 한다. 새 학년이 시작되는 이런 기쁜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샴페인을 비롯한 술이다. 급격히 증가한 청소년들의 음주를 증명하듯 대낮부터 휘청거리는 이들을 이날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표면상 술이 없는 아주 건조한 날이 됐다. 지난 8월 중순 리투아니아 국회가 알코올 통제법을 수정해 9월1일을 ‘술 판매 금지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1년 중 적어도 하루만이라도 술 판매를 금지해 음주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의도다. 이에 앞서 지난해 리투아니아 4대 도시인 샤울랴이 시정부는 리투아니아 사상 최초로 가판대, 주유소, 대형 상점 등에서 이날 술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리투아니아 국회는 이보다 더 강도 높게 이날 알코올이 들어간 모든 술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다. 상점과 식당은 물론 열차의 식당칸, 심지어 호텔의 미니바에서조차 술 판매가 금지됐다. 이날 이런 상황을 모르고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자 한 외국인들은 가톨릭 국가로 알려진 리투아니아가 마치 이슬람 국가로 변한 듯한 착각이 들었을 법하다. 

주말인 이날 술이 빠질 수 없는 결혼식 피로연 등 다양한 기념잔치로 대목인 요식업계와 호텔업계의 불만이 높았다. 이들 중 일부는 술값을 음식값으로 둔갑시켜 계산하거나 9월2일 영수증을 청구하는 방법으로 법망을 피해보려고 했지만, 대부분은 이날을 ‘우유나 음료수의 날’로 이름하고 법을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은 술 소비가 많은 새해 첫날 등을 제외하고 이날을 술 판매 금지일로 정해 ‘학생=술’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킨 것에 못마땅해했다. 의료 종사자들은 이 금지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매년 이날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만취로 인해 응급실로 실려오기 때문이다. 

“살 수 없어서 마시지 않았다” 고작 4% 

비공식 통계에 따르면 리투아니아는 헝가리에 이어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로 나타났다. 2006년 리투아니아 국민 1인당 11ℓ, 그리고 15살 이상 1인당 13.2ℓ의 순 알코올을 소비했다. 같은 해 술로 인한 사망자는 1484명이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955건에 달했다. 최근 한 달 동안 10회 이상 술을 마신 15~16살 청소년은 1995년 3.7%에서 2003년 17.5%로 무려 5배 증가했다. 미성년자들에게 술 판매는 금지돼 있지만, 이들의 음주가 큰 사회문제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리투아니아 국회의 이번 주류 판매 금지 조치에 대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델피’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36%가 찬성한 반면 59%가 반대하고 기권이 5%로 나타났다. 

그럼 이번 조치가 리투아니아 국민의 음주행동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주류 판매 금지의 날 이후 실시된 각종 조사를 보면, 응답자 10명 중 4명꼴로 “미리 술을 사서 이날 마셨다”고 답했다. 반면 “술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의 4%에 불과했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679호 10월 5일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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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골칫덩이였던 ‘옛 소련 동상들’로 꾸민 그루타스 공원, 
이제는 저작권 소송에까지 휘말려


▣ 빌뉴스(리투아니아)=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옛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인 에스토니아는 최근까지 과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최근 에스토니아 정부가 수도 탈린 중심가에 있는 소련군 청동상 철거와 이전을 결정하자, 러시아계 주민들이 집단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부의 움직임에 반발한 러시아계 주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폭력시위까지 벌일 정도였다. 반면 똑같이 소련에 속했다 독립한 리투아니아는 지난 1991년 독립을 전후로 옛 소련의 흔적을 없애자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반소련 물결이 거셌던 그때 이미 옛 소련을 떠올릴 만한 동상을 모두 철거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옛 소련 시절의 ‘암울한 과거’는 리투아니아에서 화려한 관광상품으로 부활했다. 그루타스 공원에 전시된 사회주의 시절의 조각상 앞에서 전통복장을 한 공연단이 당시 유행했던 노래와 춤을 선보이고 있다. 

지긋지긋한 점령 벗어난 리투아니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돼 있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시내를 처음 둘러보는 여행자들은 썰렁하게 비어 있는 공원이나 광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우가 많다. 작은 조각상이나 동상이라도 하나 있을 법한 자리마다 텅 빈 채로 남아 있는 탓이다. 이런 공간에는 십중팔구 16년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나 옛 소련 체제의 위용을 드러내는 조각상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그렇다면 철거된 동상과 조각상들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그 해답은 지독히 ‘자본주의식’이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를 채택해 소련 시절의 낙후된 경제를 발전시키고, ‘선진국가’ 건설을 위해 빠른 속도로 변화의 길을 걸어왔다. 소련의 무력진압에 대항해 지금의 국회의사당을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콘크리트 방어벽과 철조망, 옛 국가보안위원회(KGB) 건물 외벽에 새긴 소련 점령 당시의 희생자 명단, 그리고 그 건물 옆에 세운 높지 않은 희생자 추모탑 등이 없다면 옛 소련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었다. 이젠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오늘의 리투아니아가 있기까지는 엄청난 역사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리투아니아가 유럽 역사 연대기에 처음 등장한 때는 1009년. 14세기 말엽 리투아니아는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가 되었다. 1385년 리투아니아는 폴란드의 제안을 받아 리투아니아 통치자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왕이 되고, 리투아니아는 대공국이 됨으로써 폴란드와 함께 연방을 형성했다. 1795년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가 주도한 3국 분할 때 러시아와 프러시아에 점령된 뒤 세계지도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립했지만, 2차 대전을 계기로 이번엔 소련에 점령됐다. 소련 지배 동안 30만여 명이 죽거나 시베리아로 강제 추방될 정도로 박해가 심했다. 이 기간에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떠난 이들만 40만여 명에 이른다. 미하일 고로바초프의 집권 뒤 시작된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개혁·개방) 정책으로 소련 연방이 느슨해지면서, 리투아니아에선 1989년부터 소연방 탈퇴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0년 마침내 독립을 선언했다. 몇 세기 동안 러시아 점령으로 억눌린 민족감정이 폭발했고, 소련군의 무력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내건 ‘용맹심’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9월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됐다.

△ 전시된 조각작품에 대한 저작권 요구가 비등하자, 그루타스 공원 쪽은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조각가의 작품을 아예 검은 비닐로 덮어버렸다. 

영원한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이던 옛 소련 체제가 무너지자, 레닌·스탈린을 비롯해 역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등 ‘어제의 지도자’들은 ‘사악한 점령자’나 동족을 핍박한 ‘매국노’로 전락했다. 도심의 중요한 자리에 세워졌던 이들의 동상과 체제를 상징하는 온갖 조각상은 시민과 정부에 의해 하나하나 철거됐다. 이런 상징물 가운데 상당수는 여러 해 동안 교외의 구석진 곳에 방치됐고, 일부는 부서져 폐기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조각품들은 리투아니아 정부의 골칫거리가 됐다. 급기야 1998년 리투아니아 정부는 옛 소련 시절의 대표적 조각상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에 관한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하기에 이른다. 

‘아이디어 공모전’에 공원 조성 제안 

당시 공모전에서 단연 눈길을 끈 아이디어는 ‘비즈니스맨’이 제시했다. 리투아니아 남부지방의 사업가인 빌류마스 말리나우스카스는 동상과 조각상을 수거해 자신이 소유한 숲에 역사교육용 공원을 설립하겠다는 제안을 내놨다. 이 숲은 수도 빌뉴스에서 남서쪽으로 120km 떨어진 작은 마을 그루타스에 위치해 있다. 옛 소련 당시 수십만 명을 희생시킨 사람들과 체제를 다시 돌아보게 할 수 없다는 반대 여론도 드셌지만, 조각상들을 파괴하거나 없애는 대신 광장에서 숲 속으로 그대로 옮겨 보존해 후손들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역사 교훈의 장으로 삼자는 여론에 더 힘이 실렸다. 지난 2001년 문을 연 ‘그루타스 공원-옛 소련 조각박물관’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공원 들머리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세워져 있는 낡은 열차 한 칸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리투아니아 거주자들을 시베리아로 짐짝처럼 옮겼던 바로 그 화물열차의 일부이다. 왼쪽엔 100여m에 이르는 길쭉한 벽보판이 세워져 있다. 그동안 언론에 게재된 각종 기사들이 빽빽하게 붙여져 있다. 들어가는 길이 철로 폭을 연상케 해 흡사 녹슨 기차를 타고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공원 둘레에 쳐진 높은 철조망과 군데군데 있는 경비초소를 보며 옛 소련 시절의 강제수용소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그루타스 공원의 면적은 6만여 평으로, 모두 46명의 작가가 만든 작품 84점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대한 레닌과 스탈린 동상에서부터 빨치산 대원의 군상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대의 걸출한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으로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에도 공원 내 문화회관에선 옛 소련 시절 빛바랜 도서와 각종 선전벽보를 볼 수 있다. 역사박물관엔 마르크스와 레닌 흉상, 역대 공산당 서기장의 사진을 비롯해 동상 건립과 조각상을 옮겨올 당시의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미술전시관엔 옛 소련 시절 체제 미화와 우상 숭배 열풍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려 있다. 공원 설립에 열렬히 반대했던 저명인사들의 목조각상들도 눈길을 끈다. 또 공원 음식점에선 소련 시절에 주로 먹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지난 4월28일 공원 개장일에 맞춰 열린 ‘사회주의 시절 축제’에서 관객들이 소비에트 혁명을 이끈 레닌처럼 분장한 배우의 연기를 관람하고 있다.

그루타스 공원은 매년 봄 대대적인 개장식과 함께 당시 사회상을 체험할 수 있는 ‘사회주의 시절 축제’를 열곤 한다. 올해 개장식은 1천여 명의 방문객이 운집한 가운데 지난 4월28일 성대하게 열렸다. 레닌으로 분장한 한 배우가 “이제 곧 공산주의가 승리할 것입니다. 만세!”라고 우렁차게 외치자 사람들이 함성과 박수로 답했다. 이어 당시 유행한 노래 공연이 벌어졌다. 공연장 옆에선 소비에트 시절 권력을 상징하는 볼가 등의 자동차 전시회가 열렸다. 숲 속 여기저기 동상 주변에선 배우들이 즉흥극과 노래, 연주로 방문객을 즐겁게 했다. ‘장난’인 줄 알면서도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윽박지르는 경찰은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구두와 목 짧은 양말을 신고 춤을 추는 아가씨들, 스탈린 퍼즐 맞추기를 하는 여대생들, 레닌 동상 앞에서 새총으로 깡통 맞히기를 하는 아이들, 젖소가 사라졌다고 외치고 다니는 젖짜는 여자들, 애인이 군에 입대한 뒤 남자를 꾀는 여인들, 잔디밭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군인들, ‘하나! 둘! 셋!’ 북을 치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있는 청소년 공산주의자들, 고기 살점이 들어간 보리죽을 먹으면서 군에 갈 만하다고 답하는 아줌마…. 암울한 과거를 맘껏 풍자하는 날이었다. 

“지금과 달리 그때는 사람들 사이에 정이 많았다. 빵과 감자가 부족해도 모두가 노래하고 춤추고 즐겁게 살았다. 백만장자도 없었고 하나같이 평등했다.” 집단농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방문객 율리야가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뜬금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또 다른 방문객 리기타는 “지나간 50년의 세월이 좋았든 나빴든 그것은 우리 역사이고, 그 역사에서 우린 벗어날 수 없다”며 “우리 아이들이 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역사를 이곳에 전시된 조각상과 기록물을 통해 되새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입장료에 사진과 동영상 촬영료를 합치면 우리 돈으로 1만여원이 드는데도, 공원을 방문하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리투아니아에서도 통한다. 최근 그루타스 공원은 설립 당시만큼이나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다름 아닌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리투아니아 저작권보호협회는 공원 안 식당에서 틀어주는 소련식 노래와 행진곡에 대한 저작권료 지불을 요구했다. 공원 쪽은 그동안 저작권료를 지불해오다가, 얼마 전부터 저작권료를 내야 하는 곡은 틀지 않고 있다. 올해 들어 저작권보호협회는 노래뿐만 아니라 공원에서 전시되는 조각상에 대해서도 매년 입장권 판매액의 6%를 저작권료로 낼 것을 요구했다. 이에 공원 쪽은 이미 국가 재산인 것에 대해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제 와서 저작권 주장하는 것은 모순” 

독립 당시 리투아니아 정부는 시내 곳곳에 우뚝 세워져 있던 조각상들을 철거해 쓰레기장이나 황폐한 곳에 버렸다. 어떤 동상들은 머리가 잘려나갔고, 어떤 동상들은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그 무렵 해당 작가들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저작권보호협회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빌류마스 말리나우스카스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리투아니아 전역을 돌며 방치된 조각품들을 수거해 공원에 복원해놨다. 그는 “이제 와서 조각가들이 저작권보호협회를 통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공원과 협회 사이에 법정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공원 쪽은 조각가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공원에서 직접 가져갈 것을 제안했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고 있다. 말리나우스카스는 저작권료를 요구하는 조각가의 작품을 검은 비닐로 덮어놓았다. 이 조각상들 앞에 모금함을 놓고 보고 싶은 관람객이 직접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방안도 생각해봤단다. 

어두운 과거를 관광상품화하는 데 성공한 그루타스 공원은 이미 리투아니아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공원 쪽과 저작권보호협회의 마찰은 법정에서 매듭지어질 테지만, 사회주의 시절의 상품화가 ‘탐욕’이란 자본주의의 폐해로 이어지는 듯해 씁쓸하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660호 5월 18일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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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최대 정당이었으나 득표율·의석 수 6위… 탄핵된 팍사스 대통령은 부활 

▣ 빌뉴스=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북동유럽 발트해에 접해 있는 리투아니아는 발트 3국 중 하나다.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가 1989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유럽 대륙의 지리적 중심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20km 지점에 있다.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뒤 처음으로 지난 2월25일 리투아니아에서 지방선거가 실시됐다. 전국 60개 선거구에서 총 1550석을 뽑는 이번 선거에는 27개 정당이 참가했다. 유권자 270만여 명 가운데 투표에 참여한 이들은 전체의 36.5%였다. 지난 2002년 지방선거 투표율에 비해 약 13%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 2월25일 치러진 리투아니아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부활에 성공한 팍사스 롤란다스 전 대통령. 그는 권력남용 등의 혐의로 지난 2004년 탄핵됐지만, 이번 선거에서 질서정의당을 이끌고 전국 3위의 득표율을 올렸다.(사진/ REUTERS/ NEWSIS)

국회의원 안드류스 쿠빌류스가 이끄는 보수당인 조국연합이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2위는 전 국무총리 브라자우스카스가 이끄는 사회민주당, 3위는 탄핵된 대통령 롤란다스 팍사스의 질서정의당, 4위는 빌뉴스 시장 아르투라스 주오카스의 자유중도연합이 각각 차지했다. 하지만 의석 수로는 302석을 차지한 사회민주당이 1위, 256석을 차지한 조국연합이 2위, 182석을 차지한 자유중도연합이 3위, 181석을 차지한 질서정의당이 4위를 했다. 해당 선거구에서 4% 이상의 지지를 받은 정당만이 의석을 배분받는 지방선거법 규정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선 20개 정당이 의석을 배분받았다. 

투표 방식을 소개하면, 유권자는 먼저 정당 하나를 선택하고, 그 정당의 다수 후보자 중 선호하는 순서에 따라 5명을 기재한다. 의석 수를 배분받을 수 있는 정당은 다득표 후보자 순서로 의회 진출자를 가린다. 또 해당 지방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나 연합 정당이 자치단체의 장을 선출한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최다 의석을 차지한 노동당의 몰락이다. 노동당은 이번 선거에서 전국 득표율과 의석 수에서 각각 6위를 했다. 지난 2003년 가을 좌파 성향의 노동당을 창립하고 총재를 맡았던 러시아 출신 사업가 빅토르 우스파스키흐는 탈세 등의 혐의를 받자 장례식 참석을 핑게로 지난해 5월 러시아로 간 뒤 귀국하지 않고 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뒤 면책특권을 활용해 화려한 귀국을 꾀하려 했으나 이제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팍사스 롤란다스의 부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04년 대통령 선서 위반, 국가기밀 누설, 권력 남용 등으로 대통령직에서 탄핵된 그는 질서정의당을 이끌고 전국 득표율 3위, 의석 수 4위를 차지했다. 더욱이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선 그의 정당이 최고 득표율과 가장 많은 의석 수를 얻었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이변은 빌뉴스에서 일어났다. 총 51석 중 14석을 차지해 최다 의석을 확보한 질서정의당도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조국연합 10석, 자유중도연합 9석, 사회민주당 6석, 폴란드선거운동 6석, 자유운동 4석, 러시아연합 2석으로 배분되어 적어도 서너 개 정당이 연합해야 겨우 과반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들이 서로 정치적 앙숙 관계라 연정을 위한 합의를 이루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럴수록 최종합의 도출이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리투아니아 지방선거엔 정당이 아주 중요하다. 무소속으로는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리투아니아 현행 선거법은 오직 등록된 정당만이 지방선거 후보자를 등록시킬 수 있다. 이에 근거해 리투아니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선거에서 몇몇 개인과 비정치단체의 후보 등록을 거부했다. 이에 불복한 한 출마 예정자가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월9일 리투아니아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보장된 정당 결합 자유권은 정당에 가입할 권리, 정당 활동에 참가할 권리뿐만 아니라 어떠한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을 권리와 탈당할 권리까지도 포함한다”며, 무소속 후보들의 지방선거 출마 금지는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소는 “(임박한) 선거를 취소하거나 연기한다면 유권자나 지방정부의 안정과 행정체제에 대한 피해가 클 것”이라는 이유로 이번 선거를 기존 법에 따라 실시하도록 했다. 리투아니아에서 무소속 후보가 없는 마지막 선거였던 셈이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650호 2007년 3월 9일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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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성묘를 연상시키는 고대 추모 풍습에 부는 변화의 바람 …국민들 다수 화장에 찬성하지만 관련 법안은 가톨릭 눈치만 봐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도처에 있는 단풍나무 이파리가 햇살을 받아 더욱 다양한 색을 발했다. 지난 10월31일 다른 해와 달리 따뜻한 날씨 속 묘지 방문을 기대하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보니 창밖에 눈이 펑펑 날리고, 부엌 창가에 달린 온도계 바늘은 영하로 내려가 있었다.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해마다 11월1일 날씨는 십중팔구 이렇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죽은 사람 영혼들이 날아오기 때문에 이날 늘 바람이 분다고 말한다. 

예리한 물건은 숨기고 화덕 재는 감춰라 

11월1일은 가톨릭 인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리투아니아에서 ‘모든 성인의 날’이라 불리는 국가 공휴일이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이날과 2일을 구별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벨리네스’라 부른다. ‘벨레’는 영혼, ‘벨리네스’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날’을 뜻한다. 죽은 사람 영혼을 추모하는 이 풍습은 고대로부터 내려왔는데, 죽은 이들의 영혼이 특정 시점에 사후 세계를 떠나 가족을 방문하러 돌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리투아니아에선 매년 11월1일 먼저 간 영혼들이 사후 세계를 떠나 가족을 방문하러 온다고 믿는 풍습이 있다. 죽은 이들의 영혼이 어둠 속에서 헤매지 않도록 이날은 무덤가에 촛불을 밝힌다.

전통적으로 한 해의 수확을 마친 뒤부터 시작해 10월 한 달 내내, 그리고 11월 첫 주에 절정에 이른다. ‘벨리네스’ 풍습은 14세기 말 기독교가 전래된 뒤 기독교적 의미가 추가되긴 했지만,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을 기해 리투아니아인들은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조상뿐만 아니라 친척, 친구 그리고 유명 인사 무덤을 방문한다. 우리의 추석 성묘를 연상케 한다. 우리가 ‘벌초’를 하는 것처럼, 무덤 화단에 흩어진 낙엽을 줍고 시든 화초를 뽑고 새것을 심는다. 대개 꽃이 활짝 핀 국화를 심는데, 이 때문에 살아 있는 사람에겐 국화꽃을 선물하지 않는다. 또 무덤에 바칠 꽃송이는 반드시 짝수로 하고, 죽은 사람 영혼이 어둠 속에 헤매지 않도록 촛불을 밝히는 풍습도 있다. ‘성묘’에 나선 이들은 긴 시간 말없이 촛불을 응시하며, 죽은 이의 선행과 일생을 되돌아보며 기도를 하곤 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타오르는 촛불로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룬다. 

20세기 초까지도 리투아니아인들은 11월1일 밤 죽은 사람 영혼이 들어오도록 창문과 문을 활짝 열어놓는 풍습이 있었다. 또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해 침대를 마련하고 사우나실에 불도 넣었다. 영혼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개를 개집에 가두기도 했고, 영혼을 젖게 하지 않도록 물을 뿌리지 않았다. 영혼에 상처를 입힐까봐 예리한 물건들은 숨겼고, 영혼의 눈에 들어갈까봐 화덕에서 재를 꺼내지 않았다. 밤에 집에서 나가거나 가축을 밖에 내놓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믿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들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곤 고요함 밤에 들리는 바람 소리,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나무나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 물이 튀기는 소리를 영혼이 오는 징표라 여겼다. 

우리가 제사 음식을 마련하듯, 리투아니에서도 이날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살아 있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으로 믿는다. 묘지에서 돌아와 모든 가족들은 목욕재계를 한다. 그리고 고기, 곡물, 달걀 등으로 일곱 가지 서로 다른 음식을 요리해 창문과 문이 활짝 열린 방에 식탁에 올려놓는다. 아무도 앉지 않은 식탁 구석 자리엔 죽은 사람을 위해 음식 모둠을 마련해둔다. 식사를 하기에 앞서 모든 사람이 그 구석 자리에 “영혼이시여, 이 잔은 당신의 것”이라고 말하면서 술을 뿌리기도 한다. 

화장하면 미사도 집전하지 않아 

이어 영혼을 집으로 초대하고, 가족 건강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 뒤 침묵 속에 식사를 한다. 밥을 먹는 동안 음식이 바닥으로 떨어지면, 초대받지 못한 영혼을 위해 그대로 놓아둔다. 음식은 밤새도록 식탁에 놓아뒀다가 다음날 걸인들에게 나눠준다. 걸인들을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영혼들 사이의 매개체로 믿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음식을 무덤으로 가져가 놓아뒀다고 한다. 이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은 ‘음부세계’에서 보낸 사람으로 여겨 극진히 환대하고 접대하는 풍습도 있다. 

옛 방식의 추모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리투아니아에서도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화장과 매장을 둘러싼 논쟁이 점차 가열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엔 부장품과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있기 했지만, 14세기 가톨릭이 도입되기 전까지 리투아니아에선 주검을 불태운 뒤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묻는 게 일반적 장묘문화였다. 하지만 육신 부활에 대한 강한 종교적 믿음에 바탕한 가톨릭이 전파되면서 리투아니아에선 화장 풍습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리투아니아 가톨릭계는 1950년대까지 화장한 주검에 대해선 미사조차 집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 지난 11월1일 리투아니아인들이 ‘벨리네스’를 맞아 가족 단위로 공동묘지를 찾고 있다.

유럽연합 회원국 평균 화장률은 40~50%에 이르며, 영국과 스웨덴은 각각 사망자의 70%와 80%를 화장한다. 리투아니아의 이웃나라인 라트비아와 폴란드,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지에서도 주검을 화장하는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리투아니아에선 한 해 사망자 4만여 명 가운데 화장하는 주검은 고작 300여 구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이들 주검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있는 화장장을 이용해야 하는 처지다. 현행 리투아니아 민법과 묘지관리규칙엔 화장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는 탓이다. 

리투아니아의 묘지는 모두 시나 군에서 관리하는 국립이다. 보통 공동묘지는 시내 안팎의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묘는 봉분이 아니고 평분인데, 대개 무덤 위엔 각종 꽃이나 식물을 심어 아름다운 화단을 꾸며놓았다. 특히 최근엔 부유층이 늘면서 묘비석이 점점 더 웅장해지고, 어떤 이들은 아예 거대한 대리석으로 무덤을 덮어놓는 등 묘지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기존 묘지에 새로운 무덤 자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몇 해 전부터 화장장과 납골당 건설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왔다. 

응답자 57% “화장하고 싶다” 

여론도 바뀌고 있다. 최근 현지 인터넷 뉴스 포털 ‘델피’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57%가 죽은 뒤 자기 주검을 화장하고 싶다고 답했다. 지난 2002년 실시한 비슷한 조사에서 ‘화장을 원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10% 남짓에 불과했다. 화장제도가 도입된다 해도 죽은 이들을 추모하고, 그 넋을 기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리투아니아의 아름다운 풍습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다. 지난 2003년 정부가 제출한 화장 관련 법안을 국회는 가톨릭계를 의식해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국회의 행태를 두고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가톨릭교 전래 이전 시대를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 이 글은 한겨레 21 제 635호 11월 21일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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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폴란드의 지배에서도 자국어를 지켜온 리투아니아인들의 자부심…국가위원회에서 러시아어 잔재 청산과 외래어의 토착화 작업을 맡아 해 

▣ 빌뉴스=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1990년 유럽 여행을 하던 중 리투아니아를 처음 방문했다. 당시 옛 소련에 속해 있었음에도 리투아니아인들이 일상에서 러시아어 대신 자국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은 리투아니아어의 오래된 역사에서 비롯된다. 

산스크리트어와 라틴어의 흔적이… 

프랑스의 언어학자 메예(1866~1936)는 “고대 인도유럽인들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알고 싶으면, 리투아니아에 가서 촌부들의 말을 들어보라”라고 말한 바 있다. “리투아니아의 촌부가 인도 카슈미르의 촌부를 만나면 통역 없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말도 전해지고 있다. 


△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리투아니아에선 국가적 차원에서 러시아어 잔재 청산작업을 벌이고 있다.(사진/ REUTERS/ NEWSIS/ PAWEL KOPCZYNSKI)

리투아니아어가 고대 인도인의 산스크리트어와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투아니아어가 고대 인도유럽어에 가장 가까운 언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실제로 단어와 문장 구성에 산스크리트와 공통점과 유사점을 지니고 있는 리투아니아어는 많은 언어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산스크리트어 외에도 리투아니아어엔 라틴어의 요소도 남아 있다. 리투아니아를 최초로 건설한 사람은 네로 황제의 폭정을 피해 로마에서 탈출한 귀족이라는 설이 전해오고 있는 만큼 라틴어와의 연관성도 많다. 

리투아니아어 철자는 32개로 구성돼 있고, 이 중 모음이 12개, 자음이 20개이다. 동사는 남성과 여성에 따라, 그리고 단수와 복수에 따라 어미가 변화한다. 명사는 남성과 여성이 있다. 재밌는 것은 음양으로 구별하면 한국인들에게 강인함을 뜻하는 해는 남성이, 포근함을 뜻하는 달은 여성이 되어야겠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은 온 생명의 근원인 해를 여성으로 보고, 달을 남성으로 본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은즉 남성들은 밤에만 살짝 와서 놀다가 가버리는 달과 같기 때문이란다. 

리투아니아어는 명사와 형용사가 단수냐 복수냐에 따라 어미가 각각 다르다. 인칭과 시제에 따라 동사 어미가 복잡하게 달라진다. 강세에 따라 단어의 뜻이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전혀 다른 표현의 통속어가 많다. “동거하다”의 통속어는 “헌 천을 함께 놓다”이고, “왜 화내니?”의 통속어는 “왜 거품이 되어가니?”, “(매로, 손으로) 맞을래?”의 통속어는 “전등에 맞을래?”이다. 리투아니아어의 이중부정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이다. 남성들이 독한 술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명사가 여성형이고, 여성들이 포도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명사가 남성형이기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다. 

리투아니아어의 ‘순수성’을 보존하는 일은 ‘리투아니아어 국가위원회’가 맡아 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방송 아나운서와 언론매체 기자들의 언어를 심사하고 교정하는 한편 리투아니아어 문장 구조를 망쳐놓은 러시아어 잔재를 청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외래어를 리투아니아어로 바꾸는 작업도 도맡는다. 이를테면 초기에 프린트기를 ‘프린테리스’, 스폰서를 ‘스폰소류스’로 사용했지만, 지금은 순수 리투아니아어인 ‘스파우스딘투바스’, ‘레메야스’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맥도널드에서 파는 햄버거라는 단어는 ‘고기가 들어간 빵’이란 뜻인 ‘메사이니스’라는 리투아니아어 단어로 이미 바뀌었다. 

거품이 되어가는 건 화난 증거? 

리투아니아인들은 오랫동안 폴란드의 영향과 러시아(소련)의 지배를 받아왔음에도 자기 민족어를 지켜온 것에 대단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유럽연합 가입 뒤 러시아어 대신 거세게 밀려오는 영어의 영향력을 리투아니아어가 어떻게 헤쳐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630호 2006년 10월 1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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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만나게 해주고 우리집의 제1공용어인 ‘인공언어’ 에스페란토 …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국적을 초월해 ‘사람과 사람’으로 만난다 

▣ 빌뉴스=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살루톤! 미 트레 조야스 렌콘티 빈.”(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대학 1학년 때인 1981년 원불교 교당에서 에스페란토를 처음 접했으니 벌써 25년째다.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에스페란토는 현재 우리 집의 ‘제1공용어’다. 5살 난 딸은 부모의 에스페란토 대화를 듣고 자라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에스페란토로 말할 수 있다. 


△ ‘서로 다른 민족이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자리.’ 지난해 제1차 대회 개최후 100주년을 맞아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 대회 모습.

어떤 사람들은 에스페란토가 이미 ‘죽은 언어’라고 말하지만, 우리 집에선 한국어와 리투아니아어와 함께 매일 살아 숨쉬는 언어다. 

쉽게 배우는 중립적인 공통어 

잘 알려진 대로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인공언어’다. ‘에스페란토’란 이름은 1887년 발표한 국제어 문법 제1서에 등장한 자멘호프의 필명(에스페란토는 희망하는 사람이란 뜻)에서 유래됐다. 

자멘호프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들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고, 민족 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자멘호프가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여러 언어들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이유다. 

에스페란토는 라틴 글자로 표기하고, 철자는 28자이다. 모음이 5개, 자음이 21개, 반모음과 반자음이 각각 1개씩이다. 주격과 대격이 분명해 비교적 어순이 자유롭다. 접두사와 접미사가 발달해 하나의 어근에서 많은 단어들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에스페란토는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성이 없다. 또 규칙적으로 동사가 변화하고, 동사의 인칭 변화도 없다. 명사와 형용사는 주격과 대격을 가진다. 수는 단수와 복수가 있고, 형용사의 복수형이 존재한다. 

에스페란토의 어휘 대부분은 유럽 언어에서 왔지만, 최근에 생긴 어휘는 비유럽어권에서 온 것도 있다. 한국어의 ‘김치’와 ‘막걸리’도 이미 에스페란토 어휘로 뿌리내려졌다. 주된 어원은 라틴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다. 다국어주의에 의해 대부분의 어휘는 다양한 언어의 공통적인 부분에서 가져왔다. 발음 체계는 슬라브어의 영향을 받았다. 

에스페란토를 공식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아직 없다. 여러 차례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낸 험프리 톰킨 박사는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는 여러분이 추정하는 것보다는 많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은 매년 1주일간 열리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 참가해 이른바 ‘에스페란토 나라’를 만끽하고 있다.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회의에선 늘 통역과 번역이 수반되지만, 수천 명이 모이는 이 대회에선 모든 회의와 공연, 강연 등이 오로지 에스페란토 하나만으로 이뤄진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기적’이라고 말한다. 

어휘 뿌리는 다양한 언어의 공통 부분 

“지금 처음으로 수천 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1905년 프랑스 북부 볼로뉴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행한 자멘호프의 연설은 한 세기가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630호 2006년 10월 1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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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률 0.1% 미달로 유로존 가입 무산… ‘엄격한 잣대’ 시범케이스설도

▣ 빌뉴스=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은 경제공동체와 아울러 단일통화 도입을 위해 노력해왔다.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으로 단일통화 도입이 확정됐고, 1995년에는 단일통화 이름이 ‘유로’로 결정됐다. 유로가 정식 화폐로 도입된 것은 1999년. 그리고 마침내 2002년부터 유럽연합 회원국 중 12개국에서 자국 화폐 대신 유로가 일상생활에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지난 5월16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2004년 유럽연합에 가입한 10개국 가운데 가장 먼저 ‘유로존’ 가입을 신청한 슬로베니아와 리투아니아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슬로베니아는 모든 유로존 가입 조건을 통과해 받아들여졌고, 리투아니아는 조건 미달로 거부됐다. 이로써 리투아니아 국민들이 기대했던 ‘2007년 유로 도입’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무역이 전체 교역량의 65%에 이르는 리투아니아로선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 “너무한 거 아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물가상승률이 기준치보다 0.1% 높다는 이유로 리투아니아의 ‘유로존’ 진입을 허용하지 않았다.(사진/ AP PHOTO/ BOB EDME)

주변의 현지인 친구들이 쏟아내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유럽 각지로 여행 다니기를 좋아하는 빌마는 “귀찮게 유로화 환전을 계속해야 한다”고 푸념했다. 직업상 독일과 은행 거래가 많은 이리나는 “이체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유로존’ 가입을 예상하고 3년 전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부동산을 구입한 비다도 안절부절이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3배로 뛰었지만, 유로 도입이 불가능해지면서 부동산 시장이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리투아니아는 환율 안정성과 재정적자 및 국가채무 규모, 장기 국채 금리 등 모든 자격 조건에서 합격했지만, 물가상승률 때문에 발목을 잡혔다. 유로존에 가입하려면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규정한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가입 후보국의 물가상승률이 유럽연합 회원국 중 물가상승률이 가장 낮은 세 나라의 평균에서 1.5%를 더한 것보다 낮아야 한다. 발다스 아담쿠스 대통령은 “성장하는 경제와 세계적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제반 여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정책으로 물가 상승을 초래하고 말았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이번에 기준이 된 세 나라는 핀란드·스웨덴·폴란드로 조약 규정에 따라 계산된 물가상승률 기준치는 2.6%였다. 리투아니아의 물가상승률은 2.7%로, 기준치에서 0.1%를 넘어섰을 뿐이다. 더구나 핀란드를 제외한 나머지 두 나라는 유适맙?속해 있지도 않으며, 유로존 나라를 기준으로 하면 물가상승률 기준치가 3%에 이른다. 리투아니아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신규 회원국의 물가 부문에 대해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유로존이 시작된 1999년 그리스도 물가상승률 기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룩셈부르크·스페인 등의 현 물가상승률도 기준치를 상회하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연합 7개국은 국가채무 규모 기준치를 넘겼다. 또 독일·포르투갈 등은 예산적자 기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여기에 리투아니아의 현 물가상승률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러시아와 맺은 가스 장기 수입계약이 끝나면서 지난 1월부터 가스 수입 가격이 40%나 인상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 탓에 유로존 가입 좌절에 대한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친미적 색채 때문에 거부됐다”는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분석’은 이른바 ‘시범 케이스’설이다.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큰 폴란드·헝가리·체코 등 유로존 가입을 기다리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위한 ‘선례’로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리투아니아를 골랐다는 것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결정을 두고 현지 언론에서 “정치적 노림수가 뭐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듯싶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612호 2006년 6월 6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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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100년 맞은 세계에스페란토대회
중립적인 공통어에 영어 우월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이 있다네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지난 7월23일에서 30일까지 62개국에서 2344명이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 모여 제90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에서도 33명이 참가해 2007년 세계에스페란토청년대회 유치를 위한 물밑 작업을 했다. 이번 세계대회는 리투아니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제대회로 기록됐다.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는 회의에선 늘 통역과 번역이 수반되지만, 이 대회에선 모든 회의와 공연, 강연 등이 오로지 에스페란토 하나만으로 이루어졌다.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기적이라 칭하기도 한다. 

한국 2007년 청년대회 물밑 작업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다. 그가 태어난 옛 리투아니아 대공국령인 지금의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그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빌뉴스 대회는 1905년 세계에스페란토대회가 프랑스 해변도시 볼로뉴에서 최초로 열린 지 100년을 맞이한 기념비적 대회였다. 세계대회는 그동안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열리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 매년 나라를 돌아가며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문화간 대화 100년’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특히 리투아니아인, 폴란드인, 루테니아인, 유대인, 카라이마인 등 수많은 문화와 언어가 수세기에 걸쳐 공존한 빌뉴스에서 열려 더욱 의미를 더했다. 

에스페란토가 정말 언어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세계대회는 이런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가장 큰 통로 역할을 한다. 불가리아의 농부, 인도의 맹인, 브라질의 대학교수, 리투아니아의 앳된 소녀, 영국의 구순 할아버지, 독일의 노벨상 수상자 등 다양한 나이와 직업의 사람들이 모여 통역 없이 진행된 개막식을 지켜보고 있으니, 공통어야말로 인류를 하나 되게 하는 유일한 수단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에스페란토 창안자의 손자이자 에스페란티스토인 루이스 자멘호프는 대회 개막식에서 한 세기가 지났지만 민족간 반목과 혐오감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고, 강한 민족의 언어는 약한 민족의 언어를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면서 100년 전 제1차 세계에스페란토대회에서 행한 할아버지의 연설문 한 대목을 낭독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 1905년 프랑스 볼로뉴 대회 이후 세계에스페란토 대회는 100년째다. 이 대회는 리투아니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국제대회였다.

“지금 처음으로 수천년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 프랑스의 작은 해변 도시에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 다른 민족인 우리는 낯선 사람으로 만난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자기 언어를 강요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형제로 모였다. 오늘 영국인과 프랑스인, 폴란드인과 러시아인이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 

발다스 아담쿠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제1차 대회가 열린 지 100년이 되는 해에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대회가 열린 것에 대단히 기쁘다. 특히 리투아니아는 자멘호프가 에스페란토 최초의 책을 저술하고, 세계 사람들을 결속할 희망을 키운 나라다. 항상 다양한 민족들이 평화롭게 산 리투아니아는 인류의 통일을 이루고자 한 자멘호프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에스페란티스토 공동체는 다양한 민족간 연대의 완벽한 본보기다”라고 축하했다. 

마쓰우라 고이치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이 대회에 보낸 메시지에서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에스페란토는 세계 도처에서 언어가 서로 다른 사람들간의 대화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언어다. 모든 이들에게 개방된 문화간 대화의 제안은 공통어와 관련된 국제간 동의를 이루는 꿈으로 향하게 한다.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목적을 지닌 에스페란토야말로 문화와 언어를 연결시키는 독특한 도구다”라고 말하면서, 서로 다른 문화 정체성을 지닌 사람과 단체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세계대회 참여하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 

일주일간 지속된 대회는 대회 주제의 심도 있는 논의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로 가득 차 있었다. 대회대학 프로그램에서는 세계 각국의 유수한 대학의 교수들이 나와 천문학, 인문학, 언어학, 문학, 수학, 정보학, 민속학 등 다방면에 걸쳐 강의를 했다. 작가, 방송인, 기자, 법률인, 철도인, 교직자, 자연치료사, 채식주의자, 고양이애호가, 과학자, 동성연애자, 무국적주의자 등 많은 에스페란토 단체들이 회의를 가졌다. 특히 에스페란토 작가협회는 국제펜클럽에 정식으로 등록돼 있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학술 및 회의 프로그램 외에도 ‘민족의 밤’을 통해 참가자들은 대회 개최국가인 리투아니아의 민속복장, 민요, 민속춤, 민속음악 등을 접할 수 있었고, 악기 연주회, 노래 및 연극 공연 등 여러 문화행사가 마련됐다. 다양한 관광행사도 열렸다. 예술을 좋아하는 대회 참가자들이 직접 자신의 재능을 선보이는 ‘국제 예술의 밤’도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한국인 참가자 최윤희씨의 한국춤 공연은 관객들의 많은 갈채를 받았다. 

자멘호프는 이슬람교이든, 유대교인이든, 기독교이든 모두가 신의 아들임을 역설하면서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다. 가톨릭교, 개신교, 바하이교, 불교, 오오모토교, 원불교, 정령교의 에스페란티스토들이 분과모임을 개최했다. 특히 한국에서 발생한 원불교는 1980년 에스페란토를 도입해 교서를 꾸준히 에스페란토로 번역해왔고, 교립 원광대학교에 에스페란토를 교양강좌로 개설하는 등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펴왔다. 원불교 에스페란토 운동 25주년을 맞아 이번에 처음으로 분과모임을 열어 원불교 활동을 소개해 참가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대회기간 중엔 종교 행사도 많이 열렸다. 1980년에 에스페란토를 도입해 적극적인 활동을 펴온 한국 원불교 분과모임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94년 게임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독일의 젤텐 박사는 “나는 젊은 시절 에스페란토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엘리자베트와 결혼을 했으며, 국제어 에스페란토는 지금도 우리의 삶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부산에서 온 정현주씨는 “에스페란토를 한 지 이제 5년이 되었다. 언어적 열등감 없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어 너무 좋다. 일년간 열심히 집안일을 하고, 세계대회에 참가하는 재미로 살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50년 동안 에스페란토 운동을 열성적으로 하고 세계대회를 무려 20번이나 참가한 세르비아의 시골 할아버지 몸칠로 크르스치는 “나는 시골에 살고 있지만 일본, 독일, 브라질, 토고 등에 사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늘 세계와 함께 숨쉬고 있다”라고 말했다. 리투아니아에서 온 고등학생 인드레 필레츠키테는 “엄마에게서 에스페란토를 배웠다. 에스페란토는 외워야 할 많은 예외를 가진 복잡한 문법을 지니고 있지 않아서 좋다”라고 말했다. 

세계에스페란토청년회 사무총장인 알렉스 카다르 페트로는 “우리 청년회에서는 에스페란토 사용자들의 여행을 돕고자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는 사람들의 주소목록을 담고 있는 ‘파스포르타 세르보’ 책을 해마다 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젊은이들이 피상적으로 여행을 하는 대신 현지인과 함께 어울리면서 더 심도 있게 여행하는 데 기여한다”라고 말했다. 

공식언어만 20개인 유럽연합의 대안 

전세계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은 고전음악이나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과 유사하다. 여러 차례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을 지낸 함프리 톰킨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에스페란토 사용자 수는 여러분들이 추정하는 것보다 많고,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는 적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세계에스페란토협회장인 레나토 코르세티 박사는 “최근 들어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영어의 우월적 지위에서 파생된 언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인터넷 보급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정치·경제·통화 분야에서 완전한 통합을 이뤄가는 유럽연합은 여전히 언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욱이 2004년 10개국이 추가돼 공식언어만 20개가 된다. 이에 따른 통역사와 번역사의 충원 및 예산 등 중대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에 지배적인 언어인 영어를 공식언어로 채택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지만, 각국의 이해관계로 합의를 이끌기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안이 바로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다. 에스페란토가 유럽연합의 언어로, 나아가 세계 인류의 공통언어가 되어 말이 같은 자국민간에 모국어를 사용해 이를 보호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한편 말이 다른 민족간에 에스페란토를 사용해 상호이해와 평화를 이루는 날이 언제 올지 사뭇 기대된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72호 2005년 8월 16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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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출리스] 해롱거리는 나무판자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전문위원 chtaesok@hanmail.net 

<한겨레21> 제508호(2004년 5월3일치)에도 이미 소개된 적이 있는 에드문다스 바이출리스(46)씨. 리투아니아의 라트비아 접경지대의 소도시 자가레에 사는 그는 여전히 버리는 냄비를 모으고 있다. 자신의 목조 가옥 지붕과 벽에는 점점 더 냄비가 불어나고 있다. 그의 집은 이제 이 지방의 명물이다. 

그런데 별난 취미에만 빠져 있을 것 같던 바이출리스씨가 근래에 정치·사회 문제를 자신의 독특한 행위예술로 끌어오고 있다. 지난해 국회의원 선거 유세장에 그는 주검을 넣는 관을 등에 메고 나타냈다. 그리고 올해는 뒷걸음질로 자가레의 주요 거리를 걸어다녔다. 그의 가장 최근 작품은 군청 소재지 중심가에 세운 목조각품. 목조각품에는 주소가 쓰인 여덟개의 나무판자가 달려 있다. 매달린 나무판자는 바람이 불 때면 이리저리 흔들린다. 이 조각품이 이정표처럼 보이는지 지나가던 행인들이 갈 길을 묻듯이 다가간다. 

이 여덟개의 주소는 밀주를 제조해 판매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이 주소는 어디서 얻었을까. 밀주 파는 곳이라면, 당연히 술 취한 사람이 가장 잘 알 것. 너무 취해 해롱거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는 술 취한 사람들에게 어디서 술을 샀느냐고 물어 이 주소를 얻었고, 맥주 반ℓ 값을 치렀다. 어떻게 알았는지 조각품을 세운 지 몇분 뒤 경찰이 들이닥쳐서는 교통 혼란을 초래한다며 철거 명령을 내렸다. 

바이출리스는 “대낮에도 길거리에서 술 취한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리투아니아 전체가 취해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밀주 제조와 판매는 경찰 등 공권력의 비호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밀주에 관해서라면 마피아들과는 맞장이라도 떠보겠는데 공권력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를 모르겠다”며 이 작품을 구상하고 만든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이런 반밀주 행위예술에 대해 그를 “정의감에 불타는 사람”이라고 찬사하는 사람도 있고,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있다. “당장 정신과 치료를 받아라. 의료보험이 유료가 되기 전에”라는 험담을 퍼붓기도 했다. 바이출리스씨의 다음 예술작품은 무얼까.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67호 2005년 7월 12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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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유럽의 중심, 그때 그때 달라요

빌뉴스 인근 마을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리투아니아…계산방법·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달라 논란

▣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유럽의 중심은 어디일까. 2004년 유럽연합이 확장되기 이전 15개 나라의 지리적 중심은 벨기에 비로인발이었고, 25개 나라로 확장된 지금의 중심은 독일 클라인마이슈아이트에 위치하고 있다. 앞으로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점점 늘어날수록 그 지리적 중심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유럽의 중심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 리투아니아, 폴란드,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등 중부 유럽에 자리잡은 나라들은 제각기 자국 영토 내에 유럽의 지리적 중심이 위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는 리투아니아의 경우만 살펴봐도 쉽게 이해가 된다. 유럽의 지리적 중심으로 지정된 일대의 땅값이 치솟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찾아오는 관광객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대개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의 조사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다. 

‘유럽의 중심 방문기념증’도 발급 

1989년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 과학자들은 북쪽으로 노르웨이의 북극섬인 스피츠베르겐섬, 남쪽으로 스페인에 속한 대서양의 카나리아제도, 동쪽으로 러시아의 우랄산맥, 서쪽으로 포르투갈의 아조레스제도를 기준으로 유럽의 지리적 중심을 산출했다. 이렇게 해서 밝혀진 유럽의 지리적 중심은 북위 54도 54분, 동경 25도 19분에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바로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북쪽으로 26km 떨어진 푸르누시케이 마을이다. 

△ 유럽 중심에 자리잡은 기념탑. 12개의 금색별은 초기 유럽연합의 회원국 수를 말한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기준점으로 아이슬란드와 대서양 서남부 포르투갈령인 마데이라를 포함한 반면 러시아 북쪽에 있는 노보야 세믈리야와 지중해의 말타를 포함하지 않았다. 전문가에 따르면 말타의 포함 여부가 중심 지점의 위치를 100m 정도 위치변경을 가져온다. 카나리아, 아조레스, 마데이라 등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속하지만, 프랑스 과학자들은 이를 유럽 대륙에 포함시켰다. 

옛 소련에서 갓 독립한 리투아니아 국회는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의 발표를 근거로 1992년 유럽의 지리적 중심으로 산출된 자리를 리투아니아의 중요한 역사 사적지로 지정했다. 그리고 2004년 5월1일 리투아니아의 유럽연합 정식 가입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기념물을 조성하고 대리석 광장을 만들었다. 리투아니아와 유럽을 잇는 것을 상징하는 금색별 12개의 관을 쓴 흰 대리석 기둥을 세웠고, 정확한 중심 지점에는 9t에 이르는 둥근 바위 위에 철판으로 유럽의 중심을 표시했다. 또 관광안내소를 설치해 방문객들을 안내하는 것 외에도 ‘유럽의 중심 방문기념증’을 발급하고 있다. 이를 위해 리투아니아 정부는 지금까지 한국 돈으로 6억원에 이르는 국가 예산을 지출하는 등 이를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개발 활용하고 있다. 

한편 이 유럽의 중심 지점 인근에 위치한 동쪽 소나무 숲 속에는 유럽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는 1987년 리투아니아 조각가 긴타라스 카로사스가 빌뉴스 인근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장소를 마련했는데 유럽의 지리적 중심이 발표되자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그는 1991년 이곳에 자신의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유럽중앙박물관인 이 조각공원을 탄생시켰다. 그 뒤 유럽연합 회원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유명 조각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이곳에 기증해왔다. 현재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을 비롯해 27개국에서 모두 90점의 작품을 기증해 숲 속 노천에 전시돼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럽의 중심 방문을 더욱 의미 있게 해준다.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주장 엇갈려 

최근 이 유럽의 중심 지점을 놓고 리투아니아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1990년 리투아니아 지리협회는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로부터 유럽의 중심이 리투아니아에 위치한다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연구소의 연구 결과에 기뻐한 나머지, 리투아니아 학자들은 북위와 동경을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하는 것을 간과했다. 그래서 북위 54도 54분, 동경 25도 19분 삼각형 일대에 구릉지대와 호수로 둘러싸여 경관이 수려한 푸르누시케이 마을을 유럽의 중심으로 표시했고, 리투아니아 정부는 이곳을 사적지로 지정했다.


△ 유럽의 중심 인근에 조성된 유럽공원의 조형물.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유럽 각 도시의 거리를 적은 돌들이 놓여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국립지리연구소는 리투아니아 지리협회에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한 유럽의 중심 지점을 알려주었다. 이에 따르면 북위 54도 50분 45초, 동경 25도 19분 13초인데 기존에 유럽의 중심으로 알려진 곳에서 동쪽으로 6~7km 이동한 자리에 있다. 이곳은 유서 깊은 수도 빌뉴스에서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이 지점은 밭으로 사유지고, 더군다나 자연경관도 수려하지 않아 리투아니아 정부와 학계 등에서 새로운 중심 지점 설정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유럽 대륙의 지리적 중심을 최초로 측정한 사람은 폴란드 왕립 천문학자이자 지도학자인 쉬몬 안토니 소비에크라이스키이다. 그는 1775년 폴란드 북동 지방에 있는 수호볼라 마을이 유럽의 정확한 지리적 중심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는 유럽 대륙의 동서남북 극점을 산출하고 선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중심을 판명했다. 독일 뉴알벤류트에는 나폴레옹 1세가 유럽의 중심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지는 돌이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887년 당시 이 제국에 속해 있던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라키프 마을에 유럽의 중심을 표시한 거대한 지석을 세웠다. 한편 이 지석에 새겨진 마모된 라틴어 해석엔 아직 이견이 있다. 제국의 영토 변방을 조사하기 위해 지정한 삼각측량의 한 지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다. 이어 1900년대 초기 독일인들은 지도분석을 통해 오스트리아 측량이 정확하지 않다는 결론을 짓고, 독일의 드레스덴이 유럽의 중심이라 밝혔다. 나치 독일은 이 주장을 이용해 독일이 ‘유럽의 심장’이라 선언했고, 독일이 유럽을 통치할 숙명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유럽의 중심 방문기념증에 기록하고 확인 날인을 하는 모습.

정확한 산출지점 찾기가 가능한가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뒤 소련 과학자들은 독일인들의 주장이 허구임을 폭로했고, 우크라이나의 라키프가 유럽의 중심임을 재천명했다. 이후 이 작은 마을에 표지석이 다시 세워졌고,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한 대대적인 운동이 벌어졌다. 근래에 와서는 폴란드가 유럽 대륙의 지리적 4대 극점에서 북위와 동경의 조합으로 분석한 바에 따라 유럽의 중심은 수도 바르샤바에서 북서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중세 도시 토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크렘니차에도 유럽의 중심이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처럼 유럽 대륙의 진정한 지리적 중심 위치에 대해서는 아직 확고한 동의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기준점, 측량방법, 계산방법,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유럽의 중심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권위 있는 연구소의 결정이 어떤 강제적 법적 효력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주장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다. 유럽의 지리적 중심은 상징적인 의미를 강하게 지니고 있으므로 초단위로 정확하게 산출된 새로운 지점으로 기념광장을 옮기는 것에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주제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번 유럽의 지리적 중심을 찾아나서볼 만하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51호 2005년 3월 22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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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두두둥~ 봄아 썩 나와라!

리투아니아의 민속축제 ‘우즈가베네스’ 풍경… 배불리 먹고 밤새 놀면서 봄을 재촉하다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ojus.com 

2월 초순 사순절 시작을 앞두고 세계 도처에서 사육제가 열렸다. 

북유럽 발트해 동쪽 연안에 접해 있는 가톨릭 교도가 많은 리투아니아에서도 예외 없이 전국 각지에서 사육제가 열렸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사육제와 유사하나 리투아니아의 행사는 혹독한 겨울을 쫓아내고 봄을 맞이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이날을 ‘우즈가베네스’라 명명한다. 이는 ‘금식을 시작하기 전 기쁘게 많이 먹는 것’을 의미한다. 이날은 국경일은 아니지만 리투아니아인들이 즐기는 가장 중요한 민속축제 중 하나이다. 금식 계절인 사순절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고 유쾌하게 보내는 날이다. 부활절이 양력이 아니라 월력에 따라 정해지므로 이 축제는 해마다 날짜를 달리한다. 이 축제는 부활절 7주 전 마지막 날인 화요일에 열린다. 보통 양력 2월5일과 3월8일 사이에 있다. 올해는 2월8일에 열렸다. 이 행사는 일·월·화요일 사흘간 행해지고 화요일에 그 절정을 이룬다. 

배가 부르도록 12번 식사? 

기독교적 행사지만 리투아니아의 우즈가베네스는 봄을 맞이하고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하던 기독교화되기 이전의 고대 풍습 요소들이 들어 있다. 전통 종교의 봄맞이 대동놀이가 기독교의 ‘참회 화요일’ 의식과 융화되어 가장 행렬 등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해내려 오고 있다. 19세기까지도 우즈가베네스에는 미신과 주술 등이 널리 알려졌다. 우즈가베네스에는 푸짐한 음식뿐만 아니라 익살, 해학, 미신, 점보기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날 등장한 고대부터 널리 먹었던 음식인 슈피니스가 눈길을 끌었다. 이는 돼지의 발이나 꼬리 혹은 머리에다 완두콩, 콩, 옥수수, 감자 등을 섞어서 기름기 있게 요리한 음식이다. 이 음식을 먹던 중 꼬리를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그해 가장 먼저 결혼한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음식은 밀가루, 우유, 달걀을 섞어서 만든 부침개인 블리나이다. 이는 색깔이 노랗고 모양이 둥글어 태양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이날 이 부침개를 가능한 한 많이 먹어 쨍쨍한 해가 빨리 봄을 가져오기를 기원한다. 이날은 하루 종일 배가 부르도록 가능한 한 12번 식사를 한다. 이렇게 해야 일년 내내 배가 부르게 지낼 수 있다. 

△ 여러 가지 옷으로 분장을 하고 마을 전체를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것이 이 민속축제의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날 쉴 새 없이 이웃이나 친구, 친척들을 방문해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보낸다. 이렇게 돌아다녀야 풍년이 된다. 온 눈밭을 썰매나 판자를 타고 다닌다. 눈밭에 뒹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두 풍년을 약속한다. 아가씨들을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도록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대마가 크게 자란다. 최대한의 높이로 그네를 탄다. 이 또한 대마의 풍년을 기원한다. 이날 실로 천을 짜면 벌레들이 배추밭을 헤집고 다닌다. 숫돌로 낫이나 칼을 갈면 여름에 폭풍이 와서 지방을 날려버린다. 이런 믿음 때문에 이날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먹고 노는 데 푹 빠진다. 

우즈가베네스에 빠질 수 없는 것은 온 마을을 소란스럽게 돌아다니는 가장 행렬이다. 여러 가지 옷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마을 전체를 무리지어 돌아다닌다. 이들은 유대인, 집시, 걸인, 천사, 악마, 저승사자, 의사, 마녀 등으로 옷을 입는다. 한편 얼굴에는 말, 염소, 황새 등 동물이나 각양각색의 기이한 탈을 쓴다. 남자는 여장을 하고, 여자는 남장을 하기도 한다. 옛날 성직자를 제외한 마을 공동체의 모든 사회계층이 함께 이 축제에 참가했다. 돌아다니면서, 때때로 발을 쿵쿵 구른다. 이는 겨울 내내 잠들었던 땅을 깨워 농사철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늙은 여성 ‘모레’ 인형 태우기 

이날 중요한 등장인물은 홀쭉이를 상징하는 카나피니스(대마인, 삼베옷을 입은 이)와 뚱뚱보를 상징하는 라슈니니스(비계인, 소시지를 온 몸에 두른 이)다. 이들은 가장 행렬 중 서로 싸움질을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리투아니아 민속에 유대인과 집시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상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때부터다. 한편 이날은 다양한 인형들을 만들어 담이나 나무 위에 걸어놓는다. 이날 대표적인 인형은 겨울과 봄의 싸움을 상징하는 늙은 여성 모레이다. 이 모레는 오른손에 빗자루, 왼손에 도리깨를 들고 있다. 이는 지난해 수확물에 계속 도리깨질을 해야 할지, 아니면 봄맞이 대청소 비질을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했음을 의미한다. 해가 질 무렵 사람들은 이 거대한 모레 인형 주위에 모여 모레를 불태운다. 이는 겨울을 쫓아내고 봄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이렇게 이들은 모레를 태운 자리에 장작불을 피워놓고 다음날 새벽 첫닭이 울 때까지 노래와 춤과 음식으로 축제를 만끽한다. 

△ 겨울과 봄의 싸움을 상징하는 인형 ‘모레’. 리투아니아인들은 ‘모레’를 불태우면서 겨울을 쫓는다. 

이날 점을 치는 일도 빠지지 않은 풍습이다. 한 예로 접시 세개를 준비한다. 흙으로 가득 채운 접시, 반지를 올려놓은 접시, 그리고 루타(순결을 상징하는 식물)로 만든 화관을 올려놓은 접시다. 눈을 감은 아가씨가 이 세 접시 중 하나를 선택한다. 반지 접시를 잡으면 부활절 뒤에 곧 시집을 가고, 화관 접시를 잡으면 노처녀로 남게 되고, 흙 접시를 잡으면 부활절 뒤 곧 죽는다. 

우즈가베네스는 지금도 어린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축제이다. 이날 점심식사로 집에서 만든 부침개를 싸간다. 그리고 학교 운동장이나 공터에서 “겨울아, 겨울아, 썩 꺼져!”를 외치면서 모레 인형을 불태우고 가져온 부침개를 나눠먹는다. 학교가 파하자마자 분장을 하고 탈을 쓰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구걸한다. 그냥 구걸하지 않고 나름대로 촌극을 연출한다. 사람들은 한해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부침개나 사탕, 과일, 돈을 이들에게 기꺼이 보시한다. 

룸쉬쉬케스 민속촌, 거대한 부침개 선보여 

리투아니아에서 우즈가베네스 축제로 가장 유명한 곳은 수도 빌뉴스에서 서쪽으로 70km 떨어진 룸쉬쉬케스 민속촌이다. 호수로 둘러싸인 소나무숲 속에 여러 개의 구릉지에 지방별 전통 가옥을 지어놓고 선조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매서운 영하 10도의 날씨임에도 행사장에서 수km, 심지어 인근 고속도로변까지 차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이 운집해 이 행사가 리투아니아인들에게 지니는 의미를 한눈에 엿볼 수 있었다. 

△ 축제의 백미는 거대한 부침개를 만드는 것이다. 지름 90cm 크기의 블리나이를 만드는 장면.

전통가옥 마당마다 민속가무단이 자리를 잡고 방문객들에게 춤과 노래와 놀이로 유쾌한 시간을 이끌었다. 널판자 끌고 빨리 돌기, 막대기 타고 빨리 돌기, 남녀가 짝을 이루어 톱질 빨리 하기, 짚낭으로 상대방을 땅에 떨어뜨리기 등 다양한 전통놀이들이 여기저기서 펼쳐졌다. 이날 행사의 백미는 최대 규모의 블리나이를 만드는 것이었다. 숯불에 지름 1.5m의 프라이팬을 올려서 지름 90cm의 블리나이를 만들어 이 부분에서 리투아니아 최고 기록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밀가루 2kg, 물 1.5ℓ, 달걀 30개로 부침개를 만들었다. 이를 지켜본 관객들은 거대한 부침개를 고루 맛볼 수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우즈가베네스는 비록 음식과 놀이에서는 다르지만, 봄이 오는 문턱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신명나게 대동놀이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농사의 풍년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월대보름을 연상케 한다. 부침개를 얻으러 아파트를 방문하는 리투아니아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 오곡밥을 얻으러 동네를 돌아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찰밥을 많이 먹을수록 좋다고 하듯이 여기 사람들도 12차례나 먹어야 일년 내내 배고프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이 서로 유사하다. 전통를 사랑하고 지키는 리투아니아인들의 신명난 축제를 가까이에서 느낀 좋은 하루였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48호 2005년 3월 1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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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세계] 러시아에 가면 배신, 배반이야

리투아니아 대통령의 소련 승전기념식 참석 여부 논란…점령기의 박해 기억을 잊지 말자는 의견도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http://chojus.com 

요즘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화두는 ‘5월9일’이다. 

이날은 ‘위대한 조국 전쟁’으로 부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의 날로서 옛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최대 경축일이다.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대전에서 소련군은 1945년 5월9일 체코 수도 프라하에 입성함으로써 독일군이 점령했던 유럽 지역 대부분이 연합국의 손에 들어온다. 스탈린은 승전을 선언하는 특별연설을 했고, 이날은 소련시대 가장 큰 국경일로 자리잡았다. 러시아는 오는 5월9일 ‘승리의 날’ 60돌을 맞아 사상 최대 규모의 기념행사를 치를 예정이다. 러시아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물론 유럽연합 회원국 25개국 정상을 비롯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등 세계 55개국 정상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특히 남북한 정상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이 기간 중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점쳐지는 등 이 기념행사는 벌써부터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종전 뒤 붉은 군대가 36만명 살해 

유럽연합 회원국이자 옛 소련연방에 속했던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정상도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초청을 받은 이들 정상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들 3국 정상은 초기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에 공동 대응을 모색했으나, 최근 러시아인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는 라트비아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대통령은 초청에 응해 기념식에 참가를 위해 모스크바로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발다스 아담쿠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여전히 국내외 여론을 주시하면서 장고를 거듭하고 있다. 리투아니아 역사를 조금만 이해한다면 왜 쉽게 모스크바 기념식에 갈 수 없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1945년 스탈린의 승전 선언으로 연합국과 독일간 전쟁은 끝났지만, 리투아니아에는 해방군으로 가장해 들어온 점령군 소련의 붉은 군대에 저항하는 크고 작은 빨치산 전투가 195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스탈린이 선언한 2차 대전 승전으로 리투아니아는 완전히 독립국가 지위를 상실하고 소련에 점령되었기 때문이다. 1940년 소련의 붉은 군대가 리투아니아를 점령한 이후 36만명이 살해당했고, 48만명이 시베리아로 강제로 쫓겨났다. 한편 1990년 리투아니아가 소련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소련은 리투아니아에 석유 공급을 중단하는 등 경제봉쇄를 가해 경제적 공황을 초래했다. 1991년 1월 소련군은 리투아니아 반소련 항쟁세력을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14명을 살해하기도 했다. 


△ 리투아니아의 아담쿠스 대통령(왼쪽)과 파울라우스카스 국회의장. 러시아의 승진기념식에 참석하기 전에 점령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국제적으로 성대하게 치러질 이번 러시아의 60주년 승전기념식에는 러시아 군대 퍼레이드뿐 아니라 2차 대전 승리의 주역인 스탈린 동상이 화려하게 제막될 예정이다. 스탈린이야말로 수많은 리투아니아 국민들을 살해하고 강제로 추방한 장본인이다. 비록 각국 정상들과 함께한 자리일지라도 스탈린 동상 제막식에 서 있거나 헌화하는 리투아니아 대통령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것이 리투아니아 국민들의 일반적인 정서다.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1990년 공산 체제가 무너지자, 도처에 있던 레닌, 스탈린의 동상을 깨부수지 않고, 이를 시베리아와 자연환경이 유사한 리투아니아 남부지방 그루타스 공원에 모아 소련 점령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았다. 

아르투라스 파울라우스카스 리투아니아 국회의장은 최근 리투아니아 국영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5월9일 행사에 스탈린 동상 제막식이 있는 것이 사실이면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가서는 안 된다”면서 “리투아니아를 점령하고 수많은 리투아니아 국민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의 동상 제막식에 참가하는 것은 살육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5월9일은 리투아니아엔 경축일이 아니며, 이날부터 반세기의 소련 점령이 시작됐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라트비아 대통령 “가서 우리 견해 알리자” 

아담쿠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와 상호 우호선린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리투아니아가 유럽연합과 나토 회원국이 된 새로운 상황에서 리투아니아가 취하는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중 하나”라고 전제하고, “5월9일이 나치 전체주의에 대한 승리 기념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2차 대전의 종말은 반세기 동안 지속된 리투아니아 점령을 수반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 소련군 무장진압으로 사망한 희생자들의 묘지.

소련 점령 전후로 리투아니아 국민 수십만명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현재 미국에는 리투아니아 전체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약 70만명의 리투아니아인이 살고 있다. 발다스 아담쿠스 대통령이 일정한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 미국 리투아니아 교민사회는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승전 60주년 기념식 초청에 응해 모스크바에 가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만약 간다면 이는 소련 지배로 인해 고통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줄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리투아니아 유명 정치평론가 림비다스 발타트카는 자신의 일간지 <례투보스 리타스>에 쓴 칼럼에서 5월9일 리투아니아가 국가적으로 소련 점령 시대의 사망자와 유배자를 위한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열어 자연스럽게 리투아니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초청에 응할 수 없음을 알릴 것을 제안했다. 

한편 발트 3국 가운데 가장 먼저 초청에 응하기로 결정한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라트비아 대통령은 에스토니아 신문인 <에스티 파에발레흐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가지 않으면, 각국 정상들이 나치 전체주의에 대한 승리를 축하하는 대열에서 빠지게 된다. 이스라엘이 이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서 어떠한 전체주의든 인류의 적임을 표방하는 데 참가할 것이다. 붉은 군대가 라트비아를 해방시켰다는 기존 구소련식 견해에 반해 우리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그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은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 대통령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유럽연합과 나토기구 가입 등 중요한 외교정책에서 공조를 취해온 발트 3국 정상간 결속과 협력에 균열이 생길 우려가 있다. 

‘5월9일’ 초청 관련 누리망 기사들엔 수백개의 댓글이 올라오는 등 누리꾼들도 열띤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누리꾼은 “러시아인들이 다른 견해를 피력할 기회를 줄 리 만무하다. 가지 않음으로써 다른 견해로 인해 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효과적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누리꾼은 “이제 라트비아 대통령은 흰 까마귀가 되었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라트비아도 이제 리투아니아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현재 멕시코 휴양도시에서 겨울 휴가를 보내고 있는 발다스 아담쿠스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한 누리꾼은 “만약 모스크바로 간다면, (휴가에서)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낫다”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공산체제가 무너지자 도처에 있던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을 모아 놓은 그루타스 공원.

실용외교인가 명분인가 

러시아 초청으로 서방 각국의 정상들이 모여 붉은 광장에서 전체주의에 대한 승리를 경축하는 것에 무게를 더 두느냐, 아니면 소련의 승전일이 곧 리투아니아에 대한 소련의 점령 시작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무게를 더 두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진다. 과거의 시대적 아픔을 극복하고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정상외교의 기회를 십분 활용하는 실용적 측면을 강조할 것인가, 아니면 5월9일은 러시아의 국경일이지만 리투아니아의 피점령일임을 강조해 명분적 측면을 강조할 것인가. 과연 아담쿠스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을 내릴지 자못 궁금해진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47호 2005년 2월 22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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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스] 샴페인병 할아버지, 대단해요~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리투아니아 북부의 작은 도시 파스발리스 옆에 있는 발라켈레이 마을에는 ‘기인’으로 알려진 노인이 살고 있다. 그는 청년 수준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샴페인병을 부지런히 모으고 있는 페트라스 마야우스카스(67)이다. 그의 집안 풍경의 압권은 넓은 마당 곳곳에 언덕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수많은 샴페인병들이다. 그는 3만개가 넘는 샴페인병을 7년째 모으고 있다. 정년퇴직을 한 뒤 생긴 버릇이다. 그는 일주일에 두 차례 쓰레기장를 찾아 샴페인병, 맥주병, 코낙병을 주워온다. 운이 좋은 날엔 100개까지 주워온 적도 있다. 특히 새해 첫 며칠은 샴페인병을 수백개나 손쉽게 가져온다. 각종 연말연시 파티에서 쏟아져나온 것들이다. 

왜 병들을 모으냐고 물었다. 그는 “샴페인병은 단단하다. 이 병들을 건축자재로 활용해 여기에 건강센터를 지을 계획이다. 다른 병들을 잘게 부숴 시멘트와 섞고, 또 사이사이에 샴페인병을 넣으면 건물이 매우 독창적으로 보일 것”이라고 답한다. 그는 마당 한구석에 샴페인병으로 지은 수영장을 보여준다. 사실 그는 그다지 건강한 생활을 누리지 못했다. 지금은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페트라스는 38살 때 이미 자신의 노쇠함을 느꼈고, 관절 이상을 비롯한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10여년 동안 요양소에 머물러야 했다. 이때 함께 요양을 하던 한 여성을 통해 그가 갖고 있던 건강 생활 관련 책들을 탐독했다. 이때 책에서 얻은 건강 지식을 토대로 자기에 맞게 규칙을 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우선 그는 매달 10일간 단식을 했다. 31번째 단식을 하던 달, 그간 그를 괴롭히던 모든 병에서 해방됐다. 그는 이 변화의 기적을 꾸준히 규칙을 실행한 덕분이라 믿었다. 육식은 전혀 하지 않고, 매일 당근즙과 염소우유를 마시고 콩 25g을 먹는다. 당연히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리고 거의 매일 인류평화와 자신의 건강을 위한 기도, 맨손체조, 냉수욕을 한다. 10km 달리기도 빠뜨릴 수 없다. 페트라스는 걸을 때마다 주문처럼 “가난하지만 건강한 것이, 부유하지만 병든 것보다 훨씬 좋다”고 중얼거린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아무리 갖은 노력을 다 해도 마음속에 증오, 질투, 적개심 등을 없애지 않고서는 결코 건강을 얻을 수 없어요.”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43호 2005년 1월 18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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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빈스카스] 영원하라, 월척의 추억이여

▣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강, 호수, 숲이 많은 리투아니아는 예로부터 사냥과 낚시가 널리 행해졌다. 특히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운 겨울철엔 숲 속 사냥과 얼음 낚시가 흔하다. 사냥꾼들은 보통 자신이 직접 잡은 짐승의 털가죽이나 머리와 뿔 등을 박제해 집안의 장식물로 활용한다. 이에 반해 낚시꾼들은 자신이 낚은 월척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념물로 간직한다. 


  
하지만 리투아니아 남부 도시 알리투스에 살고 있는 프라나스 쿨빈스카스 (76)는 자신이 잡은 월척들을 남다르게 보존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호숫가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낚시를 즐겨해왔다. 결혼한 뒤에는 가족과 함께 휴일에는 낚시를 했다. 30여년 전 어느 날 그는 잡아온 곤돌메기를 아내에게 요리를 부탁했다. 하지만 그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물고기 박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두고 두고 기념할 만큼 큰 물고기를 그냥 요리를 해먹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보다 사슴 머리처럼 박제를 해놓으면 좋은 장식품도 되고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동물 박제를 해본 경험이 풍부한 터였다. 그 뒤로 그는 자신이 낚시로 잡은 커다란 물고기의 머리를 박제해왔다. 박제품에는 물고기의 길이, 무게, 잡은 장소 등이 일일이 기록돼 있다. 그가 잡은 최고 월척은 76cm, 19.6kg의 곤돌메기다. 

물고기 머리를 원형대로 보존하고 아가미를 최대한 벌린 상태로 박제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의 박제 솜씨는 뛰어나 박제 경연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외 전시회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그의 박제 솜씨는 널리 소문이 나 리투아니아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물고기 머리 박제를 부탁한다. 그가 만든 물고기 머리 박제품 4점을 새 자동차 한대 값으로 사겠다는 한 독일인의 제안을 거절할 만큼 자신의 박제품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는 비록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반지하의 작업실을 깔끔히 정리한 뒤 물고기 머리 박제 개인박물관을 차려놓았다. “찾아오는 손님들이나 단체로 견학을 온 학생들에게 낚시와 박제에 대한 오랜 경험을 이야기할 때가 가장 즐겁고 신나는 날이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36호 2004년 12월 2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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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누사스] 리투아니아 속의 일본

▣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리투아니아 주재 일본 영사로 있던 지우네 스기하라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통과사증을 발급해 수천명의 유대인 목숨을 구한 영웅이다. 리투아니아는 스기하라의 인류애적 행동에 깊은 감명과 경의를 표시하고, 빌뉴스의 한 거리를 ‘지우네 스기하라’로 이름지었다. 그가 살았던 옛 일본영사관는 스기하라 기념관으로 바꿔 운영되고 있다. 2000년 그의 탄생 100주년에는 빌뉴스에 일본 벚나무 공원이 만들어졌다. 이때 일본에서 가져온 벚나무 몇 그루가 리투아니아 북서지방 텔쉐이시에 있는 한 개인의 정원에도 심어져 화제를 뿌렸다. 





















이 정원의 주인은 리투아니아인 알프레다스 요누사스 (64)이다. 그는 수십년 전부터 일본의 건축·예술·문화·전통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심지어 자기 집을 일본식으로 꾸며놓았다. 그의 250평 정원은 온통 일본 것으로 만들어져 있어 마치 일본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리투아니아의 일본’이라 부른다. 그의 2층 단독주택 안에도 일본 냄새가 물씬하다. 1층엔 그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호박 세공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엔 일본과 관련한 것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책, 잡지 그리고 사진 등을 보고 직접 그렸거나 만들었다. 그의 직업은 보석세공이다. 주로 호박이나 쇠로 작업을 한다. 지금까지 16차례 개인 작품전시회를 가졌다. 일본에 대해 이처럼 깊은 관심을 쏟는 이유를 묻자, 그는 “1964년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미지의 일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내가 태어난 나라만 잘 알 것이 아니라 다른 어느 한 나라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에 대한 공부를 해왔다”고 답했다. 

그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내원에 있는 석등을 보여주면서 “이것은 한국 책에서 보고 만든 한국 석등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청하면서 한국을 먼저 알았더라면 한국을 소재로 정원을 꾸몄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고 외부의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그저 스스로 좋아서 수십년 동안 남의 나라를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애를 쓰고 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32호 2004년 11월 4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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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트빌례네] “내 밥은 ‘모래’ 예요”

▣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리투아니아 북서부 텔쉐이 지방, 농가가 드문드문 있는 곰말레이 마을에 상상하기도 힘든 먹을거리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이 살고 있다. 바로 스타니슬라바 몬스트빌례네(56). 그가 먹는 것은 다름 아닌 생모래이다. 남편, 아들과 함께 젖소와 가축을 키우면서 살고 있는 그가 모래를 주식으로 삼은 지가 벌써 6년째. 일주일에 먹는 모래량은 약 30kg이다. 모래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그는 집 근처 소나무 숲 길가에 있는 커다란 통에 모래를 가득 채취해놓고 생각날 때마다 먹는다. 젖소의 젖을 짜기 위해 풀밭에 갈 때도 보자기에 모래를 싸서 가져간다. 이웃 사람들은 그가 주위에 있는 모래를 다 먹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농담을 한다. 그가 즐겨 먹는 모래가 있는 곳은 모래굴로 변했다. 

몬스트빌례네는 “나에겐 모래가 초콜릿이나 이국적인 과일보다 더 맛있다. 가장 맛있는 모래는 모래알이 작거나 점토가 섞인 모래이다. 모래에 섞인 조그마한 돌멩이, 나무나 풀뿌리는 양념으로 생각하고 그대로 씹어먹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래를 씹으면 침이 절로 많이 나와 물이 따로 필요없다고 한다. 모래 이외에 그가 먹는 음식은 국, 빵, 채소와 과일이다. 모래를 먹기 시작한 뒤부터는 고기를 일절 먹지 않는다. 고기를 먹으면 두통이 생기기 때문이다. 모래를 먹는데도 신체기능에 아무런 장애가 생기지 않고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에 대해 아무도 속시원한 답을 해주지 않아 그도 몹시 답답하단다. 

모래를 주식으로 삼기 전 그는 뇌종양, 고혈압, 소화불량, 현기증, 복통 등에 무척 시달렸다. 급기야 병원에 입원까지 했으나 호전되지 않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힘겨운 몸을 이끌고 집 옆 숲 속을 산책하는데 길가에 있는 모래가 참 아름다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이젠 입 안에 군침이 돌더니 한번 먹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먹어보니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없던 기운까지 솟아났다. 이후 한동안 모래만 먹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동안 앓고 있던 병이 모두 나았다. 그는 인터뷰 중에도 내내 모래를 양손에 움켜쥐고 쉴 새 없이 먹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29호 2004년 10월 14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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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류스 부드리스] “자전거 술집에서 맥주 한잔을”

▣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보통 사람들은 일정한 공간에 있는 술집에서 의자에 앉거나 서서 맥주를 마신다. 이런 고정된 일상의 술집에서 벗어나 이동하면서 도시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고, 숲 속의 길을 즐기면서 술을 마실 순 없을까? 속설에 따르면 특히 맥주를 마시면 뱃살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살찌는 걱정을 하지 않고 맥주를 마음껏 마실 순 없을까? 

이러한 환상적인 착안을 실현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 카우나스 교외도시인 카르멜라바에 살고 있는 다류스 부드리스(36)이다. 그는 ‘순록 사냥꾼’이라는 술집을 겸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손재주가 뛰어나 자신의 음식점을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 그의 음식점 내부는 식당 이름에 걸맞게 순록의 뿔 등을 이용한 장식물들이 만들어져 전시되어 있다. “난 잠시도 손을 놀리지 않고는 앉아 있기가 힘이 든다. 지난해 겨울 손님이 없어 한가할 때 가끔 맥주를 마시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웃집 아저씨를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술집을 구상하게 됐다.” 다류스는 이색 자전거 술집을 만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먼저 자동차 바퀴 4개를 달고, 그 양쪽에 각각 자전거 페달 5개를 설치했다. 그 위에 자신의 음식점 실내 분위기에 맞춰 원목으로 의자와 탁자를 만들었다. 중간에는 운전사와 종업원이 탈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맨 앞에는 엔진 대신 맥주통을 놓았다. 식당 여종업원이 이 맥주통 위에 올라가 이동하는 동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페달이 모두 10개지만, 약 20명이 앉을 수 있다. 10명이 페달을 밟으면서 가고 싶은 대로 이동할 수 있다. 이동 속도는 시속 약 6km. 10여명이 함께 자전거도 타면서 맥주도 마실 수 있는 이 술집이 세상에 알려지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곧 리투아니아의 명물이 되었다. 

“이 자전거 호프를 정식 술집으로 등록해 영업을 하고 싶다. 하지만 술집으로 등록을 하기 위해선 고정된 주소가 있어야 하는데 움직이는 기구인지라 주소가 없는 게 문제”라고 다류스는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그래서 현재 음식점에 딸린 것으로 손님들에게 임대해주고 있다. 젊은이들의 생일잔치나 결혼식 전 피로연 장소로 쓰이고 있다. 기발한 착상과 제작으로 자신의 음식점 홍보를 극대화한 다류스는 요즘 더 빠르고 가벼운 새로운 이동 자전거 술집을 구상하고 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25호 2004년 9월 9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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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다스 아담쿠스] 파란만장 대통령의 승리

▣ 빌뉴스=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유럽컵 축구대회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던 지난 6월27일, 리투아니아에서는 대선이 열렸다. 이날 개표 상황은 시종 긴장감과 역전을 거듭하면서 이변을 속출한 유럽컵 축구만큼이나 파란만장했다. 결국 대선은 52.40%를 얻은 발다스 아담쿠스(77) 후보자가 이겼다. 

처음으로 탄핵된 롤란다스 팍사스 전 대통령의 후임을 뽑기 위한 선거는 6월13일 5명의 후보가 나왔으나 아무도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해 다수 득표자인 아담쿠스(30.85%)와 프룬스키에네(21.35%) 두 사람이 나선 결선 투표였다. 개표 초기 상대방 후보가 10%를 넘는 표 차이로 앞서자 아담쿠스 선거 진영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이번에도 지난 2003년 1월 대통령 결선투표 결과가 반복될 것 같은 우려감에서다. 당시 아담쿠스는 35.06%를 얻어 1위를 했지만, 결선투표에서 55%를 얻은 롤란다스 팍사스에게 패했다.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 외교에 진력하고 우익 진영을 비롯한 대부분 후보자의 지지를 받은 아담쿠스 현직 대통령의 재선이 낙관시됐지만, ‘변화와 질서’를 외친 40대의 젊은 팍사스에게 고배를 마셨다. 

70대 후반의 고령이라고 믿기 어려운 열정으로 네 차례의 선거에 나선 그는 1년6개월 만에 다시 대통령 자리에 돌아왔다. 1926년 카우나스에서 태어나 2차대전 중엔 리투아니아 독립운동에 참가했고, 1949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 시카고 자동차 부품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1970년 미국 연방환경처에서 27년간 일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원으로 리투아니아 교민사회를 이끌면서 권익 옹호는 물론 소련의 리투아니아 점령에 반대하는 각종 시위를 주도했다. 

그는 또 스포츠광이다. 고령임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젊은 날부터 운동으로 다져온 몸 덕분이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열린 1993년 대선에서 스타시스 로조라이티스 대통령 후보 선거본부장을 맡으면서 국내 정치에 몸담았다. 1997년 리투아니아로 영구 귀국한 그는 1년도 채 안 돼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됐다. 가장 짧은 거주 기간 안에 대통령이 되어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리투아니아를 하루속히 경제적으로 부강시켜 서유럽 국가에서 3D산업 하청지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일이 과제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18호 2004년 7월 22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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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우타스 안줄리스] KGB가 몰랐던 비밀인쇄소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과거 무시무시했던 옛 소련의 비밀경찰 KGB의 눈을 피해 금서들을 펴낸 비타우타스 안줄리스(74). 그는 1980년 양봉을 하면서 민족주의자 워자스 바제비추스를 알게 되고, 이들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서적과 신앙심을 키우는 종교서적을 펴내기로 뜻을 모았다. 각자 성의 첫 글자를 따서 ‘ab’라는 비밀인쇄소를 만들어, 1990년 리투아니아가 옛 소련에서 독립할 때까지 10여년 동안 철저히 금지된 반체제와 종교 관련 서적들을 몰래 인쇄해 보급했다. 

이 비밀인쇄소는 기막히게 숨겨져 있다. 비타우타스는 언덕 비탈에 위치한 온실에 시멘트 구조물로 수조와 묘목판을 만들고 묘목판 중앙에는 관수용 수도관을 세웠다. 이 수도관을 돌리면 기계가 작동해 수조를 이동시켜서 묘목판과 수조 사이에 틈이 생긴다. 이 틈이 바로 비밀인쇄소로 들어가는 문이다. 그는 수개월에 걸쳐 은밀히 길이 30m의 굴을 경사지게 파고 중간중간에 철문을 세워놓았다. 비밀인쇄소 바로 위가 부엌이고, 부엌과 인쇄소에 벨을 설치해 외부와 의사소통할 수 있게 했다. 마치 첩보영화를 보는 듯했다. 

난공불락의 지하 요새 같은 비밀인쇄소의 내부는 인쇄에 필요한 활자와 활자판을 보관한 방과 인쇄기가 있는 방으로 되어 있다. 비타우타스는 고물 인쇄기 3대를 구해 직접 인쇄기 1대를 만들어 10년 동안 수만권의 책을 펴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책은 1939~40년 스탈린과 히틀러가 발트해 3국을 분할 점령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현재 당시 사용했던 인쇄기와 서적 등을 잘 보존 전시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역사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집 3층 넓은 방엔 리투아니아의 근대와 현대의 지배 체제로부터 탄압받은 출판 역사에 관한 많은 자료를 전시해놓았다. 

당시 비밀경찰 KGB는 어디에서 누가 이런 금지된 서적들을 인쇄하는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일가족 몰살의 위험을 무릅쓰고 금서를 펴낸 이유를 묻자, 그는 “언론출판 자유를 통해 역사의 진실과 정의는 어느 시대라도 밝혀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소련 점령 초기 지하 간행물을 발간하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나 또한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 일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15호 2004년 7월 1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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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영의 천국’ 리투아니아의 호수 여행… 숲과 산새와 잔잔한 물소리의 환상적인 조화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리투아니아는 야영의 천국이다. 최근 리투아니아 북동부에 자리잡은 아욱쉬타이티야 국립공원에 현지인들과 함께 2박3일 야영을 다녀왔다. 유럽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리투아니아는 평야, 구릉 등으로 이뤄져 산이 거의 없다. 가장 높은 산이 고작 294m이다. 산이라기보다는 그저 큰 언덕이다. 하지만 강과 호수가 도처에 흩어져 있다. 길이가 10km 넘는 강과 시내가 758개, 면적이 0.5ha를 넘는 호수가 2830개에 이른다. 특히 아욱쉬타이티야 국립공원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강이나 시내 또는 개천 등으로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 호수와 호수를 이으며 유유히 흐르는 시냇가의 울창한 숲 속엔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이 끊임없이 들린다.

이 호수 저 호수로 옮겨다니며… 

울창한 숲을 함께 지닌 이 지역은 리투아니아를 ‘호수의 나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여름철 이 지역은 해수욕장 못지않게 삼림욕과 호수욕을 즐기면서 야영하는 사람들로 몹시 붐빈다. 산악지대의 계곡에서는 아찔하고 격렬한 래프팅을 할 수 없지만 노를 저으며 이 호수 저 호수로 옮겨다니면서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 야영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 5일 근무를 마치고 주말을 이용해 뱃놀이 야영을 즐기는 직장 동호회도 많다. 기업의 단합대회 장소로도 활용된다. 

이번에 함께한 동아리는 언어가 다른 민족간 상호 이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에스페란토를 쓰는 사람들의 모임 ‘유네쪼’다. 이런 행사는 해마다 치러지는데 올해가 38번째이다. 참가자들은 30~40대로 국회의원, 펀드매니저, 번역사, 교사, 건축설계사 등이다. 보통 이곳의 야영지는 문명의 세계와 거리가 멀다. 식당이나 가게가 몇km나 떨어져 있다. 따라서 먹을거리들은 미리 준비해야 한다. 2박3일을 호수와 숲 속에서 지내려면 개인 준비물이 여간 무겁지 않다. 초여름이라 리투아니아 숲엔 낮에도 모기가 극성을 부린다. 어디서 사람 냄새를 맡았는지 순식간에 모기떼가 몰려와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끝없이 공격해온다. 밤 10시가 넘어도 서쪽 하늘은 어두워질 줄 모른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이들의 그윽한 노랫소리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내리 비치는 달빛과 어울려 영혼 깊숙이 와 닿았다. 

다음날 아침 실개천으로 서로 이어져 있는 호수의 두 섬 안으로 빠져 들어가니 아주 작은 또 다른 호수가 나타난다. 군데군데 쓰러진 나무로 인해 어렵게 실개천을 따라 아담하고 잔잔한 호수에 들어오니 꼭 어머니 뱃속에 들어온 듯 평화롭다. 생일을 맞은 참가자들을 위한 즉석 축하연이 벌어지기도 했다. 배를 서로 묶어 둥글게 만든 뒤 축하와 선물을 받고 간식을 먹는다. 야생화 화관을 비롯해 즉석에서 생각해낸 기발한 선물들이었다. 어떤 이는 카메라 필름통을 선물로 주면서 나중에 열어보라고 말한다. 그 안에는 알사탕이 들어 있다. 어떤 이는 놀려주기 위해 밑에 살짝 구멍을 내놓은 캔맥주를 주기도 한다. 야영 행사의 절정은 바로 새내기 신고식이다. 기존 참가자들은 첫 참가자들에게 여러 짓궂은 과제를 주고, 과제를 잘 마치면 호수의 물을 머리 위에 듬뿍 뿌리는 것으로 끝난다. 

리투아니아인들의 주말이 부럽다 

이렇게 2박3일 동안 호수 11개와 시내 및 개천 8개를 통과했다. 잔잔한 호수, 풍랑 이는 호수, 기다란 호수, 작은 호수 등 다양하다. 잔잔하고 긴 호수를 건널 때에는 하모니카와 기타가 단조로운 철썩 소리를 대신해 귀를 즐겁게 해준다. 좁고 물살이 센 시내에는 여기저기 겨울에 덮인 눈을 이기지 못해 넘어진 전나무나 비버가 갉아 넘어뜨린 나무들이 가로놓여 있다. 이를 헤치고 지날 때면 등에 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된다. 하지만 고요한 시냇물을 따라 떠내려가면서 듣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모든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준다. 청둥오리가 앞서 날면서 길을 안내해주는 듯했고, 우아한 백조도 다가와 환영해주는 듯했다. 달이 둥실 떠 있는 하늘 아래 언덕 위에 홀로 우뚝 선 성스러운 참나무에 모두 손을 대고 각자의 소원을 빌 땐 신비감마저 들었다. 주말이나 휴가철이면 일손을 놓고 호수나 숲을 찾아 자연과 밀착해 살아가는 리투아니아인들의 삶이 몹시도 부러웠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14호 2004년 6월 24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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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니 카우피넨] 핀란드 농부, 휴가비에 룰루랄라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핀란드 농부는 휴가비까지 지원받는다.” 

핀란드인 농민인 온니 카우피넨(50)은 첨단 선진 농민의 빛과 그늘을 잘 보여준다. 얼마 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농업박람회에 참석한 그에 따르면 핀란드 정부는 농부의 연간 휴가 25일을 전액 지원한다. 정부는 또 고용된 인부의 연간 125시간의 노동시간 비용을 농부와 반반씩 나눠 부담한다. 즉, 그가 휴가를 보낼 때 그를 대신해 농사일을 할 인부에게 정부가 임금을 지급하는 셈이다. 그 인부도 관청에서 알선한다. 이런 정부 지원 덕에 해마다 느긋하게 해외여행을 즐긴다. 

정부 지원이 있어 좋긴 하지만 성가신 신고 의무도 많다. 젖소 수뿐만 아니라 이들의 신상변동과 관련해서도 일일이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가령 젖소 새끼가 태어난 뒤 4일, 젖소가 병이 든 뒤 10일 안에 신고해야 한다. 제때 신고하지 않으면 벌금 350유로를 물어야 한다. 아내가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는 바람에 경황이 없어 제때 신고를 못했더니 800유로를 물어야 했다. 심지어 경작하는 곡물과 규모도 낱낱이 신고해야 한다. 가끔 관청에서 위성사진을 찍어 실지 경작규모를 확인하기 위해 농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500km 떨어진 그의 농장은 45ha 초원과 45ha 숲으로 이뤄져 있다. 그는 혼자 이 넓은 농장을 단지 네대의 트랙터로 경작한다. 그는 젖소 50마리를 길러 우유와 고기를 파는 한편, 사료용 귀리와 보리 등도 경작한다. “내가 젖을 짜는 것이 아니고 젖소들이 스스로 자기 젖을 짠다”는 그는 길이 든 젖소는 젖이 일정량이 되면 착유 로봇에 다가가 스스로 젖을 짠다고 말한다. 그는 “기계화와 전산화 덕분에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일을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요즘 걱정은 최근 동유럽 등 10개국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따른 치열해질 농업 경쟁의 거센 파고다. 핀란드는 1995년 EU 가입 전에는 쇠고기 1kg에 4유로를 받았으나 지금은 1유로밖에 못 받는다. 그래도 휴가비까지 지원받는 핀란드 농민들은 농산물 개방 압력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 농민들에겐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12호 2004년 6월 10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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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르다스 노메이카] 28인용 ‘유로킥보드’ 출현!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유럽연합이 킥보드에 올라탔다.” 



리투아니아는 1990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지 14년 만인 5월1일 유럽연합 회원국가가 됐다. 알기르다스 노메이카는 이런 중요한 역사적 전환기에 리투아니아 어린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킥보드를 만들었다. 길이가 무려 9.9m, 폭이 1.53m이다. 이 초대형 킥보드에 유럽연합을 상징하는 색을 칠하고 ‘유로킥보드’라 이름지었다. 노메이카는 폴크스바겐 딱정벌레차를 우선 반으로 잘라 앞과 뒷부분을 6m 철골로 이었다. 이 철골 위에 승객 24명이 서서 탈 수 있는 입석을 만들었다. 승객들이 한쪽 발로 땅을 차면 킥보드가 앞으로 나아간다. 운전자를 위한 자리와 앉아 가는 승객을 위해 세 자리가 더 마련돼 있다. 그는 “승객과 운전자를 위한 25자리는 유럽연합 회원국 25국을 상징하고, 여분으로 만든 좌석 3자리는 앞으로 가입할 3개국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파란색으로 칠한 앞부분엔 유럽연합 깃발의 별들을 장식했고, 뒷부분엔 유럽연합 모든 국가들의 국기를 세웠다. 2.5t의 무게를 견디도록 철골 구조로 설계했고, 원래 차 모습으로 복원되도록 아주 쉽게 조립할 수 있다. 최고 시속은 약 28km지만, 속도는 승객 24명이 얼마나 잘 호흡을 맞추면서 땅을 차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곧 유럽연합 회원국간 얼마나 잘 협력하느냐에 따라 그 성공이 결정됨을 의미한다. 

그는 많은 차들 가운데 장난감처럼 아름답게 보이는 이 유로킥보드를 운전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한다. 킥보드 무게는 700kg에 달한다. 누군가의 발이 행여 실수로 킥보드 밑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매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킥보드를 한번 운전하고 나면 며칠간 팔이 아플 정도다. 그는 “이 킥보드는 엔진이 24기통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 초대형 물건 만들기를 좋아한다. 2003년에 부활절 계란 3만3천개로 길이 10.4x10.4m, 높이 6.5m 크기로 세계 최고의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지난 4월에는 리투아니아에서 가장 큰 1305.72㎡의 국기를 제작했다. 이제 노메이카는 유로킥보드가 세계 기네스북에 오를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11호 2004년 6월 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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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출리스] “나는 냄비만 모은다”

빌뉴스=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라트비아와 접경지대에 있는 리투아니아 소도시 자가레시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낡은 냄비들이 빽빽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이색적인 가옥이 눈에 확 들어온다. 이 가옥의 주인은 에드문다스 바이출리스(45)이다. 그는 7년 전부터 알루미늄 냄비를 모아 자신의 목조가옥 외벽과 지붕에 붙이는 별난 취미를 갖고 있다. 

그는 “어느날 집에 있는 더 이상 쓸모없는 알루미늄 냄비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벽에 걸어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말한다. 그 뒤 냄비가 생기는 족족 벽에 못질을 해 붙였다. 이 기괴한 모습에 주위 사람들이 구경을 오고 또 자신들의 냄비를 기증하거나 팔기도 한다. 

그의 가옥은 수백 개의 크고 작은 다양한 냄비들이 걸려 있는 탓에 ‘옥외 냄비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초라한 목조가옥이 이젠 이 지방의 관광명소로 변했다. 걸려 있는 냄비의 개수를 묻자 그는 “나도 모른다. 수집가는 수집된 물품의 개수를 헤아리지 않는다”고 답했다. 적으면 실망해서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고, 많으면 만족해서 그만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개수를 헤아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수집가의 태도라는 설명이다. 


초기에 냄비들의 몰골이 워낙 볼썽사나워 시청에서 도시 미관을 해친다고 철거하라는 명령까지 왔었다. 하지만 “자기 집 장식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유도 없냐”며 냄비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시의 큰 볼거리가 되었으니, 시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다. 그는 다양한 옛 물건들도 모은다. 그의 살림집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수세기 전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이 든다. 옛 사람들이 사용하던 촛대, 종(鐘), 각종 식기(食器), 동전, 차주전자를 비롯해 마당 앞 개울에서 발견한 석기시대 돌도끼, 고대시대 팔찌, 1700년대 주화 등 진귀한 물건이 즐비하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08호 2004년 5월 3일자로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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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조카이자 독립운동가인 안우생의 창작 · 번역물 40편 유럽 도서관에서 최초 발굴 

빌뉴스= 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ds@chojus.com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총독을 암살해 일본의 불법 침략을 세계에 알린 안중근 의사의 구국 결의는 그의 아우와 조카 등 일가에 의해 해방 이후까지 이어졌다. 막내동생 안공근은 안 의사의 의거를 계기로 교사 생활을 접고, 형 안정근과 함께 연해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는 1921년 임시정부의 외무차장으로 임명되었고, 그해 10월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 활동을 폈다. 1925년 상하이로 돌아와 김구 선생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의열 투쟁을 벌인 윤봉길, 이봉창, 나석주 의사 등을 배출한 한인애국단의 단장도 맡았다. 그는 영어·프랑스어·러시아어 등 6개 국어에 통했다. 김구 선생의 영문편지를 대신 써주었으며, 김구 선생과 중국의 장제스 총통이 만날 때도 자리를 함께했다. 


△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문학잡지 〈Literatura Mondo〉의 1934년 11월호에 게재된 안우생의 번역작품 김동인의 '걸인'.

김구 선생 대외담당 비서로 활약 

안우생(1907~91)은 바로 이 안공근의 장남이다. 임시정부에서 운영하던 교육기관인 인성학교를 거쳐 중국 베이징 복건대학과 광둥 중산대학에서 수학했다. 1936년 한국 국민당이 조직한 한국청년전위단의 핵심 단원이 되었고, 광복군 내 정보 분야에 활동했다. 임시정부 주석판공실 비서, 선전부 선전과장, 문화부 편집위원을 지냈으며, 주중 미 대사관에서 한인공작반의 일원으로 첩보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해방 뒤 귀국해서 김구 선생의 대외담당비서로 일했고, 한중문화협회 이사와 과도입법의원 영문비서 등도 역임했다. 국내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던 때, 그는 일체의 외국 군대를 철수시키고 통일된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남북의 제휴와 합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공산주의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던 임정 계열의 인사들도 안우생 등의 설득에 힘입어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했다. 

△ 6개 국어에 능통했던 항일운동가 안우생은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로 문학작품 활동을 하면서 애국정신과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북한에 있는 안우생 무덤.(사진/ 한겨레)
 
그 뒤 안우생은 남북연석회의의 실패와 김구 선생의 피살 등으로 홍콩으로 망명했다거나, 한국전쟁 초기에 월북 혹은 납북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북한이 그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기 전까지 그의 행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항일운동을 함께 한 에스페란티스토들이 그의 소식을 팔방으로 수소문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독립을 위해 임시정부에 참여한 안우생은 아버지와 함께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 하지만 독립운동 세력이 주도하는 역사 형성이 좌절되면서 안우생은 생소한 사람으로 남았고, 제대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는 루쉰의 작품 네편을 에스페란토로 탁월하게 번역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국 에스페란토 운동사>에서 그는 ‘엘핀’(Elpin)이라는 필명으로 중국의 대표적 애국문학가인 루쉰의 소설 ‘광인일기’ ‘고향’ ‘백광’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했고, 중국인 다섯명이 번역한 다른 소설과 함께 1939년 홍콩에서 <루쉰문선>(Elektitaj Noveloj de Lusin)이 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안우생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한국인으로 중국 근대문학의 최초 소설인 ‘광인일기’를 번역했고, 그가 번역한 소설 세편이 책의 4분의 1을 차지한 것 등에서 그의 에스페란토 실력과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안우생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여러 언어를 구사했다.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에스페란토 등 6개 국어에 능통했다. 상하이에서 1927년께 에스페란토를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페란토 운동과 항일투쟁을 함께 한 중국의 원로 첸유안 교수(중국 국가언어위원회 부위원장)는 “안우생은 시를 사랑했고 아름다운 시구를 지었다. 중산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하면서 에스페란토 시 강의를 하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첸 교수는 또 잡지 발간을 함께 추진했는데, 안우생이 전쟁문학작품을 주로 싣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결국 두 종류의 잡지를 발간하기도 했단다. 그는 “나의 에스페란토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은 애국문학가 안우생을 알게 된 것이다”라고 술회했다. 이로써 안우생의 문학에 대한 사랑과 깊은 이해를 짐작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백범일지>에 따르면 조부 안태훈은 시문에 능했다고 하니 손자가 조부의 문학적 재능을 물려받을 법도 하다. 

그렇다면 루쉰 소설을 번역한 세 작품 외에도 다른 역작이나 원작이 분명히 더 있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이 섰다. 


△ 안우생의 문학작품의 보고로 1938-39년 홍콩에서 발간된 문학잡지 〈Orinta Kuriero〉(오른쪽)와 루쉰의 작품을 탁월하게 에스페란토로 번역했다는 평을 받는 〈Noveloj de Lusin〉(베이징, 1963).

김동인 · 유치진 등의 작품도 번역소개 

1991년 필자가 헝가리 엘테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부다페스트에 있는 ‘칼롤리 파이시 에스페란토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수집가 파이시의 도움을 받아 1938~39년 홍콩에서 발간된 <원동사자>(遠東使者·Orienta Kuriero)라는 잡지를 찾았다. 안우생이 이 간행물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필자는 이 잡지를 중심으로 지난 2월까지 10여년 동안 헝가리·스페인·네덜란드·오스트리아·리투아니아 등 에스페란토 도서관에서 산재해 있는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문학잡지 <문학세계>(Literatura Mondo) 1934년 11월호에 게재된 안우생의 번역작품 김동인의 ‘걸인’과 함께 두권의 책(<루쉰문선>, <루쉰소설집>(Noveloj de Lusin)), 네개의 정기간행물(<원동사자>, <동방호성>(東方呼聲·Voĉoj el Oriento), <중국보도>(中國報導·Heroldo de Ĉinio), <문학세계>)에서 모두 40편에 달하는 작품을 찾아낼 수 있었다. 거의가 1938~40년 중국의 홍콩, 청두, 중경에서 발간된 것들이다. 이것은 전부 에스페란토로 되어 있고, 원작시 3편, 번역시 14편, 원작소설 2편, 번역소설 12편, 번역희곡 4편 그리고 기사 5편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발간된 당시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에스페란토 문학잡지인 <문학세계> 1934년 11월호에 김동인의 ‘걸인’을 번역해 실은 점이다. 이 밖에 직접 구하지는 못했지만 일제시대 가난에 시달리는 한국 농촌을 다룬 유치진의 희곡 ‘소’를 에스페란토로 번역해 중국에서 단행본을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중국 청두에서 1940년 발간된 〈Voĉoj el
Oriento〉(위)와 중국 중경에서 1940년에 발간된 〈Herold de Ĉinio〉에 안우생의 작품이 실려있다.


시·소설·희곡 등 다양한 문학장르로 구성된 그의 작품의 주된 내용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전쟁의 참혹성을 알리고, 조국을 위해 분연히 전장으로 나가며 병사들이 영웅적으로 적을 무찌르는 것 등이다. 안우생은 해외 일선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직접 전개함과 동시에 민족간 상호 이해와 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중립적인 언어 에스페란토를 통한 문학작품 활동으로 애국정신과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그의 작품에는 항일로 불타오른 중일전쟁 전기의 중국 문예사조가 잘 드러나 있다. 원작시 ‘어머니의 땅’(Tero patrina)에는 “화약 냄새로 뒤덮인 이 시대에 어머니의 뜻에 맞는 새 시대를 찬미할 자손들이 기꺼이 자신을 바칠 것이다”라고 읊고 있다. ‘유격대원’(Geriloj)에는 “성스러운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유격대원들은 적의 세력을 박멸하고, 형제들에게 다시 찾아줄 평화를 위해 장렬하게 피를 흘린다”라고 적고 있다. ‘평화의 비둘기’(Paca kolombo)는 제국주의를 반대해 조국을 떠나 중국에서 라디오방송을 하면서 항일운동에 앞장선 일본 여성 하세가와 데루에게 바치는 시이다. 원작 단편소설 ‘숙모와 사촌들’(Onklino kaj gekuzoj)은 고부간 갈등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미망인 숙모를 주제로 하고, ‘쉬운 내기’(Facila veto)는 미신타파를 다루고 있다. 

특히 번역시 ‘전사의 유언’(Testamento de batalanto)의 마지막 구절인 “슬픈지고, 밤 유령들을 겁먹게 하고, 찰나의 영광을 누린 후, 번쩍이는 불꽃과 함께 꺼져버린, 성냥개비처럼 나는 잊혀져 폐기될 거야”라는 말은 애국열사들을 곧잘 잊고 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경구로 다가온다. 루쉰의 소설 세편을 에스페란토로 뛰어나게 번역한 사람으로 알려진 안우생의 문학작품 수가 적어 그동안 몹시 아쉬웠다. 

이번 발굴을 계기로 에스페란토 번역과 문학에 대한 그의 탁월성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고, 또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애국문학가로서의 그의 활동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민족 독립운동과 에스페란토를 결부시킨 대표적 인물이다. 

에스페란토 문학의 거인 

한국 근대 시문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김억은 “에스페란토는 문학적 묘사에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는 1920년대 열성적으로 에스페란토를 보급하고 한국 단편소설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해 외국에 널리 소개하기도 했다. 1938년 프랑스 파리에서 정사섭은 자신의 에스페란토 원작시 105편을 모아 시집 <자유시인>(La Liberpoeto)을 발간했다. 이들 못지않게, 짧은 기간에 활동했지만 그가 남긴 작품으로 미뤄 짐작건대 안우생은 에스페란토 문학의 거인으로 평가받는 데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1940년 이후 작고 때까지의 작품을 발굴해 그의 문학을 종합적으로 재조명하는 일이다. 


세계 공통어, 에스페란토

에스페란토는 자멘호프(1859~1917) 박사가 1887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한 세계 공통어를 지향하는 국제어이다. 그가 태어난 폴란드 비아위스토크는 당시 여러 민족이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이 어려워 민족간 불화와 갈등이 빈번했다. 이에 그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중립적인 공통어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유럽 언어의 공통점과 장점을 활용해 규칙적인 문법과 쉬운 어휘를 기초로 에스페란토를 창안했다. 에스페란토는 말이 같은 민족사회에선 그 민족어를 사용해 발전시키고, 말이 서로 다른 국제관계에서는 에스페란토를 쓰자고 주장한다. 현재 120여개 나라에 사용자가 산재해 있고, 이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본부를 둔 세계에스페란토협회를 기점으로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20년 김억에 의해 보급되기 시작해 한국에스페란토협회와 주요 도시에 그 지부가 조직돼 있고, 단국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서 에스페란토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고 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04호 2004년 4월 15일자로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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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나스 콘트리마스] 생맥주와 턱수염의 괴력!

빌뉴스=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자신의 신체 일부인 치아, 귀, 목 혹은 손가락으로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거나 끌어서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수염을 이용해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사람이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다. 

수염을 30년째 길러오고 있는 안타나스 콘트리마스 (52)는 어느 날 이 수염으로 뭔가 흥미로운 일을 시도할 궁리를 했다. 1999년 3월 그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이색 철인대회가 열렸다. 행사 전 평소 알고 지내던 조직위원들에게 그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자신의 턱수염으로 무거운 것을 한번 들어올려보마”고 제안했다. 평소 가족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긴 수염을 깎으라는 충고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오던 참이라 이 애물단지도 쓸모가 있음을 보여주리라는 오기도 작용했다. 고민 끝에 자신이 운영하는 맥주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맥주통을 들기로 했다. 

1차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연습에 연습을 거듭한 뒤 철인대회에서 40kg 맥주통을 32cm 턱수염으로 번쩍 들어올린 것이다. 사람들과 언론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다. 오랜 시간 수염을 기른 게 헛되지 않았다는 뿌듯한 생각도 들었다. 이후 그는 턱수염으로 계속 자신의 기록을 갱신해나갔다. 2000년에는 몸무게가 55.7kg이나 나가는 아가씨를 번쩍 들어올리기도 했다. 그에게 첫 기네스 공인기록 인증서를 가져다준 사건이었다. 곧이어 2001년 3월에는 59kg이 나가는 텔레비전 아나운서를, 8월에는 61.3kg의 여성을 들어올렸다. 이로 인해 기네스 기록 인증서를 3개나 더 받았다. 이제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기네스 인증서를 가장 많이 보유한 사람이 되었다. 

1999년 6월에는 1t이나 되는 경비행기를 2.85m나 끌어당겼다. 2002년 7월에는 3t짜리 군용차를 13m 끌어당기는 괴력을 보여주었다. 턱수염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는 스스럼없이 자신이 만든 생맥주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하루 5~6ℓ 생맥주를 마시고, 기록에 도전할 때는 1ℓ를 마신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힘을 쓸 때 내 몸 안의 맥주가 에너지로 변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그는 도의원으로서 지역의 정치 발전에 기여하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이제 바다에서 군함을 끌어당기는 기록에 도전할 생각이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501호 2004년 3월 17일자로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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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팔률료니테] 교도소 미인대회가 남긴 대박

빌뉴스=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2002년 리투아니아 여성 전용 교도소에서 세계 최초의 ‘미스 여죄수’ 선발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이 독특한 대회는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리투아니아의 한 텔레비전 방송사가 “아름다움이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한다. 소외되고 절망적인 여성들이 다시 어깨를 펴고,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미소를 배우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취지로 연 미인대회는 전 세계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영예의 대상인 ‘미스 여죄수’로 ‘사만타’라는 가명으로 출전한 크리스티나 팔률료니테(22)가 뽑혔다. 그는 왕관과 상금 4천리타스(약 160만원)를 거머쥐었다. 왕관은 정화(淨化)를 의미하는 은, 악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석영, 죄수에게 자유를 상징하는 비취로 만들어졌다. 

“솔직히 이 보석왕관보다 자유가 나에겐 더 귀하다. 하루빨리 자유를 찾고 싶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힌 그가 2003년 6월 3년 동안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회로 돌아왔다. 상금을 밑천으로 샤울랴이에 작은 아파트를 샀고, 어린 딸 사만타(3)와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미인대회로 얻은 유명세로 그는 이제 리투아니아의 인기 연예인 반열에 올랐다. 주위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신데렐라가 탄생했다”며 그를 축하했다.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그의 미모와 처신을 지켜보던 리투아니아 최대의 화장품 회사 대표는 그를 특별 채용했다. 

크리스티나는 집단폭행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교도소 신세를 져야 했다. 그는 남자친구가 동료 세명과 함께 술집에서 폭행하는 현장에 뒤늦게 도착했다. 경찰이 출동하자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던 남자친구는 크리스티나와 전과가 없는 동료 한명만 현장에 남기고 도망쳤다. 훈방으로 곧 풀려나올 것이라는 남자친구의 말을 믿었고, 또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라 아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 변호사도 낙관했지만 판결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결국 감옥에서 딸을 낳고 함께 살았다. 그는 딸에게 가장 큰 죄책감을 갖고 있다.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던가. 딸의 이름으로 출전한 기상천외한 교도소 미인대회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잇따른 행복에 그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잡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새 집에 필요한 가전제품을 선물로 받고, 10대들이 자신이 근무하는 화장품 매장으로 찾아와 축하카드를 건네주는 따뜻한 정을 한아름 맛보고 있다. 논란이 많았던 교도소 미인대회는 그에게만큼은 확실히 인생역전 대박의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96호 2004년 2월 11일자로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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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스 다브리슈스] 늑대사냥꾼 “늑대와 춤을”

빌뉴스=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리투아니아 북서쪽 텔쉐이 지방의 소나무와 전나무 등이 우거진 울창한 숲에는 요즈음 밤마다 “우~~~ 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담력이 약한 사람에겐 밤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이 늑대의 모습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 하지만 늑대의 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리는 기인이 있다. 바로 이 숲과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페트라스 다브리슈스(48)다. 

그는 늑대를 데리고 숲을 거닐고 함께 사냥을 하기도 한다. 새끼 때부터 키운 늑대는 그의 뜰에서 애완견처럼 살아간다. 그가 이처럼 늑대를 사랑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연은 이렇다. 1982년 소련의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공화국 일대에 많은 늑대떼들이 산에서 내려와 가축을 공격하는 사건이 속출했다. 이어 포수들이 모집되었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은 세속의 공산주의가 싫었고, 또 10형제 집안에서 자란 다브리슈스는 중간 아이는 집에서 가급적 멀리 떠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옛말을 믿고 모집에 응했다. 이렇게 그는 텐산과 히말라야산에서 늑대 등을 사냥하며 7년을 산속에서 홀로 살았다. 

이후 리투아니아로 돌아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이 나를 먹여 살렸다. 이제 자연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되었다”라고 마음먹고, 지방산림관리청 공무원이 되어 현재 14ha의 숲과 야생동물을 관리하고 있다. 5ha 숲에 우리를 쳐서 멧돼지·사슴·노루 등과 함께 한 식구처럼 살아가고 있다. 

2.5ha 숲엔 늑대를 기르고 있다. 그는 늑대를 사냥하면서 살았지만, 늑대의 지혜로움, 정의로움, 가족사랑, 위계질서에 매료되어 늑대를 기르면서 늑대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 편견을 깨는 꿈을 오랫동안 간직해왔다. 동화 속 늑대는 염소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포악한 동물로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늑대는 최소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다. 늑대는 물가의 여러 오리알을 발견하면 그 가운데 하나만을 깨먹는다. 배부르고 건강한 늑대는 절대로 다른 짐승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의 뜰엔 늑대와 염소가 사이 좋게 노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리투아니아에는 400여 마리의 늑대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몇해 전 한 리투아니아 사냥꾼의 올가미에 걸린 어린 늑대를 구출해 동물원에 보낸 뒤 다섯 마리의 새끼를 얻었다. 다브리슈스는 이 다섯 마리의 새끼들을 집안에서 정성스럽게 길렀다. 리투아니아에서 흔히 사용되는 “그는 늙은 늑대다”라는 말은 지혜로운 사람을 뜻한다. 어떤 사람은 늑대를 기르는 그를 아주 별난 괴짜라고 부르지만, 그는 “난 단지 자연의 친구일 뿐이다”라고 답한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95호 2004년 2월 4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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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나 야로니테] 하루종일 ‘삽질’하는 여인

빌뉴스=글 · 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알도나 야로니테(73·여)씨는 순전히 삽질로 연못을 만드는 일이 취미다.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늪지대에 위치한 뜰에서 쉴 새 없이 삽질을 한다. 인근 요양소 식당 일을 하다 정년 퇴직한 그는 10여년 전 자신의 집 안 작은 텃밭만 가꾸는 일이 답답했다. 그래서 버려져 있는 국유지 늪지대에 조금씩 연못을 파고 주위를 조경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국유지를 마음대로 사용한 죄로 벌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고 두려웠단다. 

주위 사람들은 뜻밖에도 조경을 한 그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고, 리투아니아 파비르제시 당국에서는 공산체제가 무너진 뒤 사유화를 추진하면서 할머니에게 아예 텃밭 인근 늪지대 2600평을 선사했다. 그는 약 2m 깊이로 한삽 두삽 흙을 파내 못을 만들고 안에 연꽃을 심었다. 주변에는 습지에 잘 자라는 화초를 심었다. 그는 지금까지 정원에 크고 작은 연못을 다섯개나 조성했다. 

그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은퇴한 노인들이 겪는 각종 질병으로 고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못 공원은 마을 주민들과 인근 요양소 환자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수많은 화초들로 가득 찬 연못 정원은 이제 지역 명소로 자리잡았고, 신혼부부의 결혼식 사진 단골 촬영지가 되었다. 야로니테씨는 연못에 핀 연꽃을 방문객들이 찾아와서 지켜볼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한다. “여긴 원래 볼품없는 늪지대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노년에 나를 찾아와 산책할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연못이 없다면 누가 늙은 나를 찾아오겠는가. 앞으로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새 못을 파고 더 아름답게 가꿀 것이다.” 놀랍게도 연못에는 많은 붕어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아마도 새끼 물고기나 알이 야생 오리에 붙어와 이곳에 보금자리를 튼 것으로 생각했다. 붕어는 남을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는 야로티테씨에게 하늘이 준 식량인 듯했다. 

그는 지금껏 혼자 살아왔다. 왜냐고 물으니 “(사람은) 혼자 태어나, 혼자 살다가, 혼자 죽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평생 가꿔온 연못 정원을 이웃집 대학생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포클레인으로 한나절이면 팔 수 있는 연못을 삽으로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년 걸려 파왔다. 그는 “기계로 속히 연못을 팔 수도 있지만, 우선 혼자 삽질을 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고 건강에도 좋으며, 더욱이 그런 기계를 빌릴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84호 2003년 11월 13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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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만타스] 아파트를 탈출한 ‘타잔’

빌뉴스=글·사진 최대석/ 자유기고가 chtaesok@hanmail.net

영화 속의 ‘타잔’과 흡사한 인물이 리투아니아에 살고 있다. 알기만타스 아르치마비추스(61)는 벌써 30년째 울창한 숲 속에서 살고 있다. 리투아니아 제2의 도시인 카우나스에 있는 자신의 안락한 아파트를 버리고 겨울철에는 지하벙커에서, 여름철에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만든 움막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전에 그는 재봉사 일을 했다. 하지만 도시의 소음과 먼지, 냄새 그리고 소란스런 대화와 만원버스 등이 싫어 쉬는 날이면 늘 배낭을 메고 자연 속을 헤맸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많은 호수로 유명한 이그날리아 지역 도보여행에 참가한 뒤 그는 자연에 완전히 매료되어 도시생활을 청산했다. 하지만 그의 갑작스런 숲 속 등장은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이 이방인을 노숙자나 마약복용자로 여겼다. 심지어 마을 술꾼들은 그를 찾아가 술친구가 돼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당장 이 이방인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그는 여러 차례 경찰서에 불려가 절도나 살인 혐의자로 추궁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곤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숲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야생생활을 즐겼다. 또 동물들도 그를 잘 따랐다. 다람쥐와 담비가 소나무 꼭대기에 만든 그의 움막에 함께 둥지를 틀고 살기도 했다. 순록도 소리만 지르면 언제라도 그에게 달려올 정도였다. 그는 순록 등 위에 안장을 얹고 말처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숲 속에 살면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법도 배웠다. 그는 주로 나무열매, 나뭇잎, 풀 등을 먹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비타민C를 대량으로 함유하고 있는 쐐기풀이다. 이 풀은 피부에 닿으면 바늘에 찔린 것처럼 따끔따끔해 사람들이 아주 기피한다. 그는 이 풀을 뜯어 빵처럼 뭉쳐서 혀에 닿지 않도록 꼭꼭 씹어먹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는 말린 사과꽃잎으로 만든 차다. 

그는 ‘리투아니아 사진작가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초라하지만 자신의 사진전시관을 숲 속에 세워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하나 더 제공하고, 지하벙커에는 사진인화 작업실까지 차렸다. 때로 자연을 주제로 시를 쓰기도 한다. 그는 “숲 속은 외롭지 않다. 금수초목들이 곁에 있고, 물이 흐르고, 새들이 노래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숲 속 생활 체험장을 만들어 청소년들에게 자연사랑을 가르치고 자신의 경험을 전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그는 혼자만의 은둔생활을 접고, ‘리투아니아 타잔’을 찾아오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생활을 시작했다. 

* 이 기사는 한겨레21 제475호 2003년 9월 18일자로 이미 보도된 내용이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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