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09.03.19 15:29

조금 전 까르르님의 글(고대녀 "MB 불도저 엔진을 꺼버려야")을 읽으면서 옛 일이 생각났다.
우선 위의 글은 지난 해 촛불집회 때 적극적인 참여로 많은 관심을 모은
한 고려대학교 여대생을 인터뷰한 글이다.

이 글을 읽으니 성균관대학교에 다니던
용기 있는 한 여대생 얼굴이 떠올랐다.

81학번으로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2-3년간은 신군부의 강압정치로 거의 죽어지내야 했다.
하지만 대학교 4학년 때 학생회관 대강당에서
처음으로 '광주학살만행' 비디오를 보고
울분을 참지 못한 적이 있었다.

이어 최루탄을 맞으면서 여러 번 교내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교외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좀 늦은 감은 있었지만, 그제서야 사회와 정치 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과 대학원 진학 등으로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신군부에 의한 광주학살만행이 세상에 점점 드러나기 시작한 무렵
12대 국회의원 선거가 1985년 2월 12일 이었다.
당시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정치 1번지' 종로구의 어느 유세전에 가보았다.

운동장을 꽉 메운 아저씨들 틈 사이로
가냘픈 한 여대생이 가방 속에
광주학살만행을 규탄하는 유인물을 꺼내 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남자들이
그녀를 낚아채듯이 하고 사람들 사이로 빠져나갔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4년 전 어느 모임에서 여러 차례 본
성균관대학교에 다니는 학번이 같은 여대생임을 직감적으로 알아보았다.

4년의 공백 속에
그녀는 용기 있는 열사가 되어 있었고,
내 자신은 그저 유세의 소심한 구경꾼이 되어 있었다.
그날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당시는 대학가 복사집에도 사복경찰이 기웃거렸다.
혹시나 금서나 불온서적을 복사하지는 않냐해서이다.

잡혀가는 그녀를 향해 주변 사람들 중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아니 바로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사복경찰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성대녀'의 용기는 오래도록 내 가슴에 머물렀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고대녀'와 '성대녀'의 용기에 고개 숙이고
이들의 행복을 기원한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