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2. 11. 24. 15:51

올해로 유럽 생활이 훌쩍 30여년이 넘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해 가장 오랫동안 머물게 되었다. 11월 중순 대구의 낮온도는 살고 있는 북유럽 리투아니아의 여름철 낮온도와 비슷하다. 영상 20도 내외다. 화창한 11월 17일 대구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성주 초천면을 향한다. 성주는 난생처음 가보는 초행길이다.

 

국채보상로에서 급행 1번을 탄다. 교통카드로 찍으니 요금이 얼만인지를 그냥 간과한다. 버스에서도 공공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니 구글 지도를 이용해 어디로 가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다. 또한 정류장 안내방송이 정확해 내릴 정류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버스 내리는 문 가까이 짐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것이 퍽 인상적이다. 

 

매곡 사거리 1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버스 번호 안내와 노선도가 명확하다. 일광욕하기에 딱 좋은 날 이곳에서 20여분을 기다려 250번 버스를 타고 성주로 이동한다. 습관적으로 교통카드를 찍으려고 하니 운전사가 내릴 때 찍어라고 한다.

 

달성군을 지나 낙동강을 건너자 즐비한 비닐온실들 시야에 들어온다.

아, 여기가 그 유명한 성주 참외의 생산지임을 절감케 한다.

 

대구 서구에서 성주 터미널까지 기다린 시간을 포함해 걸린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버스 터미널 안으로 들어가 버스 시간표를 봐도 최종 목적지로 가는 버스 시간을 쉽게 알 수가 없다. 따로 안내소나 매표소가 없어서 화물을 담당하는 안내원에게 원불교 정산 종사 탄생가와 원불교 성주 성지가 있는 초전면 소성리로 가는 버스 시간을 묻는다. 

 

"초전을 거쳐 김천으로 가는 버스들이 다 소성리를 지나나요?"

"아닙니다. 소성리로 가는 시골버스가 따로 있습니다. 하루에 몇 대밖에 없습니다."

"다음 버스는 언제 있습니까?"

"두 시간 후에 있습니다."

 

발길을 택시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

"초전면 소성리까지 택시비가 얼마나 나옵니까?"

"미터기로 가니까 나오는 대로 내면 됩니다."

"갑시다."

"제일 앞에 있는 택시를 타세요."

 

가는 길에 택시 기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본다.

성주는 세종대왕의 태실이 있고 전국 참외생산량의 70%를 차지하고...

 

낮은 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분지는 온통 하얀 비닐로 뒤덮여 있다. 저 멀리 오른쪽에 정상이 삼각형처럼 보이는 산이 돋보인다. 집에 와서 지도에 찾아보니 칠곡과 성주를 경계 짓는 영암산(정상 784m)이다. 

 

초전면 용봉리에서 택시는 좌회전을 해서 용소길 시골길을 따라 들어간다. 마치 양쪽 낮은 산을 호위 삼아 깊고 아늑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도로 옆 가로수에 펼쳐져 있는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골에 웬 현수막이 이렇게 많이?

 

"소성리 다 왔습니다."

"카드로?"

"됩니다"

 

한국에 와서 현금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 참 편하다.

택시비가 21 600원. 총 이동거리가 15km. 

많이 나왔다고 생각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속으로 "오늘은 점심은 건너뛰어야" ㅋㅋㅋ

 

먼저 버스 정류장을 향해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알아놓는다.

소성리를 거치는 버스는 성주 출발이 6:30, 7:10, 8:00, 14:20, 16:30, 18:25, 19:00다.

도착한 시간이 12:30분이나 앞으로 넉넉하게 2시간은 둘러볼 수 있겠다.

 

무성하게 자란 나뭇잎이 이정표를 가리고 있다. 언제 다시 여기를 찾을지 모른다. 소성리를 4K 영상에 담으면서 천천히 탄생가로 향한다. 

 

 

보건소를 지나 올라가니 도로 왼쪽 가로수에 현수막이 쫙 걸려 있다. 사드 기지화를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라는 현장 소식이 떠오른다. 소성리 마을회관 인근에 정차되어 있는 경찰버스 한 대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사드 설치 반대를 입증하고 있다. 개울 다리를 건너 소성리 464번지(소성길 35-5)로 향한다. 병풍처럼 둘러싸인 뒷산 달마산이 마을의 아늑함을 일러준다. 어린 시절 뛰놀던 마을 뒷산을 보는 듯하다.

 

소성리라는 이름은 서경  서경 4편 우서(虞書) 9장 익직(益稷)의 구절 소소구성 봉황래의(簫韶九成, 鳳凰來儀 연회에서 연주를 9번 마치고 나니 봉황이 나타나 그 자태를 드러냈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구성 쉼터 정자 오른쪽에 정산 주산 두 형제의 탄생가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을 만난다. 돌판을 따라 들어가니 왼쪽에 삼동윤리 게송 돌탑이 있다. 삼동윤리는 원불교를 세운 소태산의 일원주의에 입각해 앞으로 세계 모든 종교, 민족, 국가, 사회가 실천해야 할 강령으로 정산 종사가 주창한 것이다.

 

한 울안 한 이치에 (동원도리 同源道理 unu principo)

한 집안 한 권속이 (동기연계 同氣連契 unu familio)

한 일터 한 일꾼으로 (동척사업 同拓事業 unu laboro)

일원세계 건설하다

 

이 사랑채에서 정산 종사는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가지붕을 한 본채다. 여기서 원불교에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정산 종사는 1900년 음력 8월 4일, 주산 종사는 1907년 음력 11월 29일에 태어났다.

 

감회가 새롭다. 정산 종사 법어로 국제어 에스페란토로 번역했고 지난 1월 3일부터 이 에스페란토 번역판을 가지고 45명이 68회에 걸쳐 함께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쉼터를 거쳐 이제는 정산 종사가 어릴 때 기도하던 거북바위가 있는 박실 구도터로 향한다. 보건소 옆길을 택한다. 11월 중순인데도 시골집 시멘트 담장을 따라 시들지 않고 야생화가 고운 자태로 환영을 해주는 듯하다.

 

 

 

넓은 잔디밭에 대각전이 우뚝 솟아있다. 하늘은 잔잔한 듯하지만 소리 없이 양볼에 와닿은 바람은 어릴 때 맞은 바로 그 겨울바람이다. 목도리를 챙겨 온 것이 다행스럽다. 

 

대각전 기반에 세워져 있는 좌산 상사의 글이 이 성주성지의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계법계성의 성지

억조창생개복의 성지

천불만성발아의 성지

 

시멘트가 깔린 길을 따라 올라가니 원불당이 나온다

네 기둥에는 정산 종사가 지은 주문이 써여져 있다.

천지영기아심정 天地靈氣我心定

만사여의아심통 萬事如意我心通

천지여아동일체 天地與我同一體

아여천지동심정 我與天地同心正     

 

원불당에 들어가 심고를 올린다.

아래 성화는 정산 종사가 어린 시절 거북바위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기도터에 있는 거북바위다.

 

대각전 뒷면을 바라보면서 소리통(스피커)에서 낭랑한 독경 소리가 흘러나온다. 소나무 앞 긴의자에 앉아 내리쬐는 햇빛을 받으면서 나도 독경삼매에 빠져본다. 

 

법신청정본무애 法身淸淨本無碍

아득회광역부여 我得廻光亦復如

태화원기성일단 太和元氣成一團

사마악취자소멸 邪魔惡趣自消滅

 

이어서 대각전 안으로 들어가 4배를 하고 심고를 올린다.

 

정산 종사의 영정 앞에 서서 경의를 표한다.

 

대각전 앞 뜰에 걸려있는 정사 종사 10상에 발걸음을 멈춘다. 정산 종사로부터 원불교 법통을 이어받은 대산 종사는 정산 종사의 생애를 아래 10상으로 기술했다.

 

첫째는 하늘을 우러러 기원하신 앙천기원상(仰天祈願相)이요,

둘째는 스승을 찾아 뜻을 이루신 심사해원상(尋師解願相)이요,

셋째는 중앙으로서 법을 이으신 중앙계법상(中央繼法相)이요,

넷째는 봉래산에서 교법 제정을 도우신 봉래조법상(蓬萊助法相)이요,

다섯째는 초기 교단의 교화 인연을 맺어 주신 초도교화상(初度敎化相)이요,

여섯째는 개벽 시대 주세불의 법을 이으신 개벽계성상(開闢繼聖相)이요,

일곱째는 전란 중에도 교단을 이끄시며 교화를 쉬지 않으신 전란불휴상(戰亂不休相)이요,

여덟째는 교서를 정비하신 교서정비상(敎書整備相)이요,

아홉째는 큰 병환 중에도 자비로 제중하신 치병제중상(治病濟衆相)이요,

열째는 임인년에 열반하신 임인열반상(壬寅涅槃相)이니라.

 

앙천기원상에 설명된 정산 종사가 소년시절 지은 한시 두 구가 눈에 확 들어온다.

海鵬千里翶翔羽(해붕천리고상우) 

籠鶴十年蟄鬱身(농학십년칩울신) 

천리 나는 날개 가진 바다붕새  

농학으로 십년 세월 갇혀있네

La mara birdo Bungse kun millia flugilparo

dekjare enfermitas kiel gruo en la kaĝo.

(La birdo Bungse estas legenda giganta birdo, kiu eĉ kovras la ĉielon.)

 

혹시나 버스를 놓치면 서너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14:20 성주를 출발해 순환하는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여기저기 울어대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서 달마산에 넘나드는 구름을 보면서 1시간을 훌쩍 보낸다. 

 

순례하는 동안 내내 미군 헬기 소리가 그치지를 않는다.

이 고요하고 성스러운 산골마저 전쟁의 상징물이 넘나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버스로 성주 읍내 터미널에 내리니 막 출발하려는 250 버스를 탄다. 매곡리에 내려서 늦은 점심이라도 먹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런데 뒤차가 급행 1번 버스다. 

 

이렇게 15km 이동거리에 생각보다 비싼 택시비에 점심값이 포함된 셈이다. ㅎㅎㅎ

아차, 정산 종사가 유학을 공부한 인근에 있는 고산리 방문은 기약 없는 미래로 미뤄야겠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