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1. 1. 6. 05:36

유럽 리투아니아 명절 중 최대 명절은 크리스마스다. 코로나바이러스 범유행으로 리투아니아는 지역간 이동이 금지되어 있다. 거의 매년 크리스마스는 지방에 살고 계시는 장모님 댁에서 보낸다. 올해는 어쩔 수 없이 빌뉴스 집에서 식구 세 명이 조촐하게 보내야 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전염확산 추세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이 가게에서 저 가게로 돌아다니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매년 식구에게 주는 선물은 이번에는 하지 않기로 가족 모두 동의했다. 대신에 크리스마스 전야에 먹을 음식 중 하나를 직접 하기로 했다. 
"한국인으로 내가 해주면 좋을 음식은 무엇일까?"라고 유럽인 아내에게 물었다.
"약밥 한번 해봐. 하지만 요리법을 숙지하고 잘 만들어야 해."라고 아내는 주저없이 약밥을 주문했다. 종종 한인들 모임에 가서 먹은 약밥이 참 맛있더라고 덧붙였다.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고 또한 만드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참으로 난감했다. 하지만 도전해보기로 하고 우선 인터넷에서 요리법을 검색해봤다. 그리고 지인들에게도 물어봤다.    
 
검색으로는 얻은 약밥 만들기: 
필수재료는 찹쌀, 대추, 밤, 은행, 물, 커피
양념재료는 간장, 황설탕, 참기름
 
필수재료 중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것은 물과 커피뿐이다. 찹쌀도 대추도 은행도 밤도 여기선 구할가 수 없다. 10일 전만해도 슈파마켓에서 중국산 밤이 있었는데 그 후에는 찾을 수 없었다. 먼저 부엌 수납장에서 견과류를 찾아냈다. 건포도, 호박씨, 아몬드, 호두, 캐슈넛(cashew nut)이다. 물에 이 견과들을 깨끗하게 씻은 후 잘게 부셨다. 
 
대추 대신에 당도가 높은 대추야자 열매를 넣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전기압력밥솥에서 약밥을 만들었다. 
결과는?
찰밥이 아니라서 그런지 역시 찰지지가 않았고 색도 진하지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맵쌀에 견과류가 들어간 견과밥일 뿐이었다. ㅎㅎㅎ
 
요즘 프랑스어를 배우고 있는 요가일래는 반죽과 버터의 전쟁이라 할 정도로 굽기가 힘든 크루아상(croissants)을 직접 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시도한 제과이지만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앞으로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리투아니아 풍습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생선을 제외하고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아내는 생선 튀김과 나머지 여러 음식을 준비했다. 
 

소금에 절인 청어는 리투아니아 크리스마스 음식에 빠질 수가 없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은 쿠츄카이(kūčiukai)다. 쿠츄카이는 개양귀비 씨앗이 들어간 동그란 작은 건빵 이름이기도 하고 음식 이름이기도 하다. 만드는 방법은 이렇다.
 
1. 펄펄 끓는 물을 개양귀꽃 씨앗이 담긴 그릇에 부어서 하루 정도 놓아둔다.
2. 부풀어오른 씨앗을 아주 정교하게 빻는다 (그러면 우유빛 색깔이 나온다).  
3. 물을 끓어서 식힌다.
4. 식힌 물에 빻은 씨앗, 설탕 그리고 쿠츄카이를 넣는다.  
아무리 먹어도 또 먹고 싶은 그야말로 마법 같은 음식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날 저녁상에는 12가지 음식이 올라온다. 음식 12가지를 다 맛보아야 다가오는 12달 동안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먹어야 한다. 음식 12가지를 세는 데에는 집안 형편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예를 들면 과일 한 종류를 음식 한 가지로 셀 수 있고 물이나 뿌린 소금도 음식 한 가지로 셀 수 있다. 
 
또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의자와 접시와 칼과 포크를 덤으로 하나 준비해야 한다. 혹시 이날 찾아올 유형(손님)이나 무형(영혼) 사람을 위해서다. 현재 함께 하는 우리 집 식구는 세 명인데 식탁에 접시가 네 개 놓인 이유다. 
 
자, 이제 식사할 시간이다.
"제가 한 약밥이 어때?"
"한국인 집에서 먹어본 그 약밥 맛이야!"
"그래?! 다행이다."

 

내가 느낀 이 약밥의 가짜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ㅎㅎㅎ
그리고 색다른 모습 하나가 더 있다.
 
크리스마스 전야에 먹은 음식은 치우지 않는다. 정말 치워야 할 음식을 제외하고는 덮지도 않고 그대로 놓아둔다. 당연히 빈 접시와 포크와 칼을 같이 놓아둔다. 유형이나 무형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