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모음2008. 10. 26. 07:45

언젠가 클라이페다에 살고 있는 친구 아루나스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인 즉 "주말에 별장 지붕용 갈대 베기를 하니 구경삼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조선회사의 중견간부로 일하고 있는 아루나스(46세)는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을 가진 노총각이다. 이날 갈대 베기에 동참한 15여 명의 친구들은 대부분 노처녀·노총각들이었다.
 
다소 추운 날씨에 2~3미터나 되는 갈대를 베고 나르고 묶는데 모두 열심히 일했다. '참'으로는 샌드위치, 맥주 그리고 훈제된 고등어 등이 준비되었다. 갈대 베기를 마친 우리는 곧 허름한 집의 낡고 긴 탁자에 둘러앉았다. 삶은 감자와 함께 먹은 '붉은 사탕 무국'은 정말 맛있었다. 벽난로에 타오르는 장작불은 별장냄새를 물씬 풍기게 했다.

대개의 주말모임이 그렇듯 이날도 남자들은 알코올농도가 40~50도에 이르는 보드카, 여자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흥을 돋웠다. 술기운이 무르익자 다들 기타반주에 따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일반적으로 리투아니아인들은 술을 강제로 권하지도 않고, 돌아가면서 노래도 시키지 않는 것이 우리와는 다르다. 또 매번 잔을 다 비우지 않고 술을 조금씩 남겨두는 것이 예의이다.

분위기를 포착해 이들 노처녀·노총각들의 결혼관을 한 번 물어보았다. 우선 이들은 부담스러운 '애인'이라는 말보다는 편안한 '친구'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들은 말이 '처녀·총각'이지 따지자면 '미혼녀·미혼남'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사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동거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루나스와 동거하고 있는 아스타(26세)는 "늙은 노총각을 사귄다"고 또래 친구들로부터 핀잔을 듣거나, 부모의 반대시위에 부딪혀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오히려 아버지는 자기 친구 같은 예비사위를 얻게 되어 기뻐할 정도라고 한다. 그녀는 그저 사랑으로 아루나스를 선택했을 뿐이지 '나이가 많다'는 선입관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사랑에는 외형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부모도 결혼을 일체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애인이나 배필을 선택할 때 우선 나이 차이나 외형적 조건을 따지면서 선택의 폭을 스스로 좁히는 사람들과는 큰 차이를 보여준다.

노총각 요나스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여성을 이성으로 보았고, 16세 때 첫사랑을 하고 지금까지 다섯 번 사랑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는 한 번 이별한 후 보통 1년 반이나 그 여운이 남는다고 한다. 요나스는 현재 잉가(33세)와 사귀고 있지만, 사랑과 결혼을 결부시키지 않는다. 그는 "사랑은 결혼보다 상위개념이죠"라고 힘주어 말한다. 아스타 또한 "아루나스를 깊이 사랑해요. 그와 같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요?"라고 반문한다.

흔히들 사랑을 하면 그것을 안전하게 지속시키기 위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또 그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식을 낳는다. 하지만 아스타와 요나스는 결혼이 절대적으로 안전을 보장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같이 살면서도 서로 구속하지 않는 삶을 더욱 선호한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말을 서로 꺼내기를 꺼린다고 한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주거여건만 갖추어지면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래서 '결혼=동거'라는 등식보다는 '사랑=동거'라는 등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니 혼전 성관계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학교의 성교육도 순결교육보다는 사랑과 피임에 관한 교육에 더 치중한다. 이날 만난 노처녀·노총각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함께 지내면서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는 것을 더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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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면 족하죠, 뭐!" 결혼에는 별생각 없는 리투아니아의 세 노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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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차이가 20년이나 되는 이들은 몇 년 후에 결혼해 아들 둘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Posted by 초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