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0. 3. 9. 05:54

유럽에서 30년째 살고 있다. 아내가 유럽 리투아니아인이다. 여기서는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혼자서만 밥을 준비해 다른 식구들을 위해 차려주는 일이 많지 않다. 서로 다른 직장출근이나 생활양식으로 인해서 보통 각자가 알아서 자기 음식을 해먹는다. 누가 나를 위해 밥을 차려줄 때까지 특별한 일 없이 가만히 기다리는 분위기가 아니다.
 
가족이 집에 다 있는 주말에는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거들어서 함께 밥을 해먹는다. 우리 집 경우에는 밥을 주도적으로 준비한 사람은 설거지에서 열외가 된다. 식사 준비 기여도가 제일 낮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솔선수범해서 설거지한다. 하지만 자기가 먹은 식기류 등은 대체로 자기가 씻는다. 

며칠 전 아내와 딸이 정말 모처럼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런데 면이 유럽에서 30년 살면서 처음 먹어본 것이라 참으로 신기했다. 집에서 만두류의 음식은 자주 먹지만 스파게티류의 면은 거의 먹지 않는다. 이번 스파게티 면은 굵기가 잔치국수의 소면 같았고, 맛이 한국 분식점의 쫄면 같았다. 부드럽고 쫄깃쫄깃했다.

"이제야 면을 제대로 찾았네!"라는 탄성마저 절로 나왔다.
"아직 면 남아 있어?"라고 아내에게 물었다.
"찬장에 있어."
"봉지와 같이 있지?"
"그래. 왜?"
"상품 이름을 기억해 놓았다가 다 먹으면 또 사 놓으려고."

이탈리아에서 만든 스파게티 면이다. 
듀럼밀(durum wheat)을 부순 밀가루인 세몰리나(semolina)로 만들었다. 듀럼밀의 듀럼은 라틴어로 durum인데 이는 딱딱하다라는 뜻이다. 듀럼밀은 밀 종류 중 가장 딱딱하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단백질과 글루텐 함유량이 다른 종에 비해서 상당히 높은 것이 특징이다.

파스타와 스파게티 면 종류 제조회사 그라노로(granoro)가 생산한 "카펠리니(Capellini) 16번"이다. 제품명도 재미있다. 이탈리아어로 "capellini"는 "가는 머리카락"을 뜻한다. 주말 혼자 저녁식사를 해결해야 해서 생각난 김에 이 면으로 비빔국수를 한번 만들어보기로 했다.


면은 끓이기도 쉬웠다. 끓는 물에 넣고 약 3분 정도 끓이면 된다.



카펠리니 면 색깔이나 굵기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즐겨 먹었던 잔치국수나 비빔국수의 소면을 그대로 닮았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자투리 보라색양배추와 쪽파를 활용했다. 마침 지난해 한국 사람이 선물로 준 고추장양념장이 맛을 더해주었다. 


그동안 혼자 해먹을 때에는 거의 대부분이 비빔밥 등과 같은 아주 단순한 일품요리였다. 소면을 쉽게 구할 수 없다는 핑계로 좋아하는 잔치국수나 비빔국수는 아예 내 요리목록에 넣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최근 아내가 요리에 사용한 카펠리니 면을 알게 된 덕분에 이제 잔치국수나 비빔국수를 해먹을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이 요리 실력을 키워 언젠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대접해볼 기회가 있길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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