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얘기2020. 2. 28. 08:05

아직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청정국가인 유럽 리투아니아 언론도 이에 대해 많은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바이러스 대처법에 충실히 하면서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던 사람들도 특히 쉥겐조약(국경통과간소화 조약) 회원국인 이탈리아에서 많은 확진자들이 속출하고 사망자가 이어지자 이제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막 확산되기 시작할 때 언젠가 여기도 올 수 있으니 마스크라도 미리 구입해놓자고 유럽인 아내에게 제안했다. 하지만 아내는 거의 무반응이었다. 왜 일까?

일반적으로 유럽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여기는 미세먼지란 단어 자체가 생소할 정도로 공기가 청정하다. 또한 마스크의 목적이 공기 중 병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내 기침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러니 아내의 무심한 반응이 쉽게 이해가 된다.

요즘 일주일에 네 번 대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감기에 걸린 한 학생은 거침을 할 때마다 팔을 당겨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리고 한다. 여기 사람들은 이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런데 이탈리아 코로나19 소식이 연일 보도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지난 화요일 온라인으로 마스크를 구해보려고 했으나 쇼핑몰마다 마스크가 이미 매진되어 버렸다. 거우 특수 마스크를 파는 곳에서 마스크 한 장에 10유로를 주고 여섯 장을 주문했다. 배송일이 2일에서 7일인데 금요일 현재 배송회사로부터 아직 연락이 없다.

27일 목요일 코로나19 청정지역이던 발트 3국에 확진자가 한 명 나왔다. 라트비아 리가에서 국제선 버스를 타고 에스토니아 탈린 버스역에서 내린 사람 중 한 명이 몸상태가 좋지 않아 구급차를 불렀다. 진단해보니 코로나19 확진자로 드러났다. 

[추후 추가 글: 28일 새벽 리투아니아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24일 돌아온 리투아니아 샤울레이 시민이다. 중국, 북부 이탈리아, 홍콩, 이란, 일본, 한국, 싱가포르에서 온 사람 중 코로나19 증상을 느끼는 사람은 긴급구조전화 112 또는 +37061879984, +37061694562, +37062077547로 전화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이웃 나라 벨라루스에도 28일 확진자가 나왔다. 이란에서 돌아온 유학생이다.]  
 
이번 주말에 대형 슈퍼마켓에서 가서 한동안 버틸 수 있는 식료품을 구입할 계획이었다. 에스토니아 확진자 보도를 접하자 곧장 슈퍼마켓으로 갔다. 보통 한산한 낮 시간인데 도로에는 차량이 많고 슈퍼마켓 주차장에는 평소와는 달리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한참 기다린 후에야 주차할 수 있었다.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붐볐다. 특히 스파게티 등 면류 판매대와 죽을 만들어 먹는 곡류 판매대에는 거의 물건이 남아 있지 않았다[위에 사진]. 우리 집 비상식량 중 으뜸은 쌀이다. 다행히 쌀 판대에는 쌀이 충분히 쌓여 있었다. 포르투갈 쌀 한 포대와 스페인 쌀 세 포대를 담았다. 그리고 견과류 중 이것저것을 담았다. 김치용 배추 구입도 잊지 않았다.


판매대 사이로 돌아다니는데 종업원끼리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사람들이 마치 전쟁에 대비하듯이 사 가네!"
딱 현재의 사회 분위기를 꼭 집어 표현한 듯하다. 


한편 24일 이탈리아에서는 충격적 사건이 베네토주(州) 카솔라(Cassola) 주유소에서 벌어졌다. 중국인 이탈리아 교민 장(Zhang)이 지폐 교환을 위해 주유소내 바(bar)로 들어가자 직원이 "당신은 들어올 수 없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야!"라고 하면서 그를 제지했다. 이때 옆에 있던 이탈리아인이 맥주병으로 장의 머리를 때렸다. 그는 머리가 찢어져 피를 흘리는 부상을 입었다.

조금 전 지인의 유럽인 친구 한 명이 인터넷에 아래 글을 올렸다. 
"가족과 함께 북부 이탈리아에서 스키 타고 온 학생은 이번주에 돌아왔는데 2주 동안 자가격리되어 있다. 교실에는 기침하거나 콧물을 흘리는 학생도 있다. 학부모들, 학생들 그리고 선생님들 모두 불안해 하고 있다. 나는 그저 교실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키는 것 정도로 안심시킬 수밖에 없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슈퍼마켓에 갔다. 중국인 두 명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내 옆에 서있다. 왜 하필 나야?!"   

이처럼 유럽 곳곳에서 동양인에 대한 근거없는 편견과 증오가 심해지고 있다. 한 예로 그 동안 수많은 동양인들이 유럽을 여행하면서 유럽에 유익을 준 것을 한순간에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느 나라 어디 도시에서 시작되었는지간에 어느 특정 국민이나 지역 탓으로 돌리는 것은 시대정신과 인류애에 전혀 적합하지가 않다.

당분간 목도리로 턱과 코까지 가리고 모자로 귀까지 가리면서 대학교를 오가야겠다. 하루속히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어 평소의 세상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
Posted by 초유스